진만은 자취방으로 돌아오다가 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삼십대 초반쯤 되어 보였는데, 검은색 항공 점퍼에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르마를 타지 않고 얌전히 아래로 내린 머리카락은 눈썹을 다 가리고 있었고, 입술 바로 위쪽엔 무언가에 베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이었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얀색 손수건을 손목에 마치 팔찌처럼 묶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폰을 귀에 댈 때 그 손수건이 도드라져 보였다. 

진만은 그 남자 이야기를 정용에게 꺼냈다.

“좀 이상하더라고…. 인상도 안 좋고.”

“뭐 볼일이 있나 보지. 우리 동네에 사람이 좀 많이 사냐?”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용은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말했다. 그 말이 맞긴 했다. 원룸촌이 있고 임대아파트 단지가 있고, 또 걸어서 5분 거리에 커다란 가구공장 단지도 있으니까.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나가 보면 낯선 얼굴들이 마치 주차장에 깔아놓은 조약돌들처럼 다닥다닥 한 곳을 보고 서 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밤에는 그 많은 사람이 다 외박을 하나 싶게 동네가 조용했다.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 건너 한 번씩 이웃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싸울 사람이 있어야 싸우지. 정용은 툭 그런 말을 했다. 요샌 부부도 카톡으로 싸운대. 이쪽 방 저쪽 방 각각 떨어져서. 그게 더 깔끔하긴 하지. 

“아니 볼일이 있는 거 같진 않고…. 계속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서 있더라고. 그것도 사흘 연속.”

“별게 다 이상하네. 신경 꺼. 사람들은 네가 더 이상해 보일 거야.”

“내가? 내가 뭐가 어때서?”

“너 맨날 빈 페트병 들고 동사무소 간다며? 거기 정수기 물 받으러.” 

“아니, 그건 그냥 거기가 편의점보다 더 가까우니까….”

“구질구질하게. 거기가 무슨 약수터냐? 동사무소 직원들은 그럼 다람쥐냐?”

진만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음날 진만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다시 그 남자와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날과 사정이 좀 달랐다. 남자는 늘 있던 곳이 아닌, 한 원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층 불 꺼진 유리창을 노려보면서 입 모양만으로, 소리는 전혀 내지 않은 채, 계속 욕을 하고 있었다. “씨발년아!” 그는 분명 그렇게 욕했다. 한 손으로 무언가 집어 던지는 시늉을 하기도 했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진만만 남자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보았으나, 남자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남자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갔다.

아이 씨, 어쩌지….

진만은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처음 남자를 봤다면 아무렇지 않게, 남들처럼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벌써 네 번째였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 딱 한 명 존재하는 목격자처럼 여겨졌다. 진만은 일부러 발길을 돌려 남자의 앞을 다시 한번 지나쳤다. 남자는 여전히 이층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만은 골목길 코너를 돌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지금 어떤 남자가 원룸 건물 앞에서 욕을 하고 있다는 거죠?”

“아니, 소리를 내진 않는데요. 분명히 욕은 맞고요, 발길질도 하고 있어요.”

“발길질이요? 지나가는 사람한테요?”

“아니요. 지나가는 사람은 아니고 이층에 대고요.”

112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까 욕을 하긴 하는데 소리는 안 나고, 발길질을 하긴 하는데 사람한테 하는 건 아니란 말씀이시죠?”

“네….”

“그럼 뭐가 문제인 거죠?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피해 본 게 있으신가요?”

이번엔 진만이 침묵을 지켰다.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저희 관할 경찰에게 순찰을 돌아보라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통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진만은 순찰차가 올 때까지 남자에게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남자는 이제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진만은 그냥 자취방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진만이 있는 골목길로 순찰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됐네. 진만이 혼잣말을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남자가 또다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순찰차의 경광등이 보이자마자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 아래로 몸을 숨겼다. 진만은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순찰차에 탄 경찰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진만이 순찰차 쪽으로 다가가서 그 사람이 저 밑에, 저 트럭 아래 몸을 숨겼어요, 말을 하면 됐지만, 그러자면 그 남자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남들에겐 아무 피해도 입히지 않고 허공에 발길질을 한 남자에게…. 진만은 망설였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끝나기도 전에 순찰차는 천천히 골목길을 벗어났다. 남자가 트럭 아래에서 기어 나와 툭툭,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를 터는 모습이 보였다.

그다음 날 오후, 진만은 물류창고로 출근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진만이 종종 들르던 편의점 앞이었다. 그 출입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에고, 세상에 끔찍해라. 알바생이 뭔 죄가 있다고….”

한 중년 여자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 시간에 알바한 게 죄지 뭐.”

남자는 짧게 말했다. 진만은 어젯밤 남자를 떠올렸으나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이곳은 그 남자가 있던 원룸 건물과 떨어진 곳이니까, 그 남자는 거기에 볼일이 있었으니까.

“손수건으로 그랬다면서요?”

“그걸로 다짜고짜 목을….”

“에고 참….”

두 사람은 까치발을 든 채 계속 편의점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진만도 최대한 까치발을 높이 들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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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에 아이들과 함께 이란 학생의 난민 인정을 도운 교사 오현록입니다. 지금의 가혹한 난민 심사 시스템을 고발합니다. 

앙골라 출신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에서 100일 넘게 노숙 중입니다. 고작 난민 심사 기회를 얻기 위해. 공항에서 난민 신청한 사람의 10%만 난민 심사에 부쳐집니다. 난민 심사 영상기록을 요구한 이집트인 난민은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법정에 낼 자료를 요구했는데 경찰에 연행된 것입니다. 난민 신청 중이어서 6개월간 취업이 금지된 키르기스스탄 국적을 지닌 소녀의 가족 5명은 생계비 한 푼 없이 6개월을 버텨야 합니다. 교복값이 없다던 이 소녀 가족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법무부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4%입니다. 신청자 셋 중 하나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대다수의 나라에 비해 난민 신청자의 96%를 ‘가짜 난민’이라고 판정하는 우리나라 법무부, 2시간 남짓 만에 끝나는 면접 심사, 그리고 그것으로 바뀌는 운명. 하루에 세 명꼴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내리는 출입국외국인청. 인혁당 사건을 사법살인이라 했던가요? 그럼 출입국청이 매일 쏟아내는 이 불인정 처분은 뭐라고 불러야 힐까요? 그런데 법무부는 난민법 개정을 통해 더 엄격하게 난민 심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해 난민 재신청을 막고, 소송 기회를 축소하고, 강제송환 금지 예외조항을 슬쩍 삽입한 법안. 허위 통역과 허위 면접 조서가 번번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난민인권단체가 요구한 난민조서 허위 작성 의심 사례 16건의 진상조사 결과가 아직도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난민 재신청 기회를 봉쇄하다니요? 어떻게 1심에서 끝나는 소송이 있습니까? 헌법에 위배되는 초법적 발상 아닙니까? 국제협약인 난민협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강제송환 금지조항입니다. 그런데 국제협약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송환 금지의 예외라니요?

2018년 6월 20일 예멘 난민들의 난민 신청을 돕고 있는 제주시 삼도동 천주교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에서 한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만 체류하도록 제한한 법무부의 도장이 찍힌 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정지윤 기자

대통령께서는 국민헌법개정안에서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꾸겠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친구의 난민 인정을 돕기 위한 지난 과정에서 국민헌법개정안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며 개정 취지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낙인찍고 짓밟으려 하는 행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요? 매카시즘, 지역주의, 쟁의 노동자에 대한 비난, 지적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거부까지, 우리 사회에 널린 공격과 혐오의 딱지들.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안은 이런 공격과 혐오의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작년 제주도 예멘인 사태로 인터넷에 넘쳐났던 공격과 혐오의 글들을 아실 겁니다. 70만이 넘는 사람들이 난민 수용을 반대하며 청와대에 청원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국민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세금도둑, 일자리 강탈자, 살인자, 성폭행범, 테러리스트란 이름으로 몰았습니다. 그들이 세금도둑이었습니까? 난민 신청자 중 5%만이 생계비 지원을 받습니다. 그들이 일자리를 위협했습니까? 그들은 위험하고 불결하고 임금이 낮은 곳에서 일합니다. 그들이 살인을 하고 성폭행을 하고 테러를 저질렀습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사건들은, 사진들은 다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정부라면, 법무부라면 이런 가짜뉴스를 선별해 국민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정책과 법안을 만들어야 했고요. 그런데 법무부는 가짜뉴스에 올라탔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유령으로 살아가는 난민 신청자들. 저는 그들을 사람으로 품으시려 한 대통령님의 생각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음을 믿습니다. 

대통령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환경, 내국인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공평한 권리를 난민에게 부여해 주십시오. 국민헌법개정안에 담긴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권을.

<오현록 아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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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보면 당대 최고의 재상 제갈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죽은 제갈량이 적이자 최고의 라이벌이던 사마의를 쫓아낸 일화죠. 

오랜만에 들른 광화문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 건물에 걸린 독립운동가 초상화가 크기도 했지만 너무 현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행사가 많았습니다. 100주년이어서 그랬겠지만, 민간 행사뿐 아니라 정부 주도 포럼, 전시회, 기념회 등이 열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녀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황사처럼 전국을 강타했죠.

모든 사상은 한계를 갖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것은 한계가 더 도드라집니다. 정체성의 경계는 인위적이지만 결국 절대적이 되니까요.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민족’은 현대국가가 세워지며 생겼죠. 순수한 혈통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환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또한 역사에 기대는 사상이다 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진보적 미래를 꿈꾸기에는 부족하죠.  

그러니 정치판이 과거에 머무를수록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국민은 피곤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이 정부는 그릇된 과거를 타파하는 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에 집중하는 게 당연했죠. 덕분에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옳고 저쪽은 적폐라는 구분은 그렇게 그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어진 선은 정부를 옭아맸습니다. 적폐로 지목된 이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고, 배수진을 친 이들의 저항은 치열했죠. 과거에 대한 전투가 치열할 때 거리엔 촛불이 꺼졌습니다. 은행빚과 취업난이 그 거리를 채웠죠. 싸움이 힘들어질수록 쉬운 상대가 눈에 띄는 법. 100년 전 일본만큼 만만한 상대가 있을까요. 시선은 자꾸 과거로 가고 미래에서는 멀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졌던 과거청산의 소명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난 듯합니다. 박근혜와 주변 인물들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치적 영역을 벗어난 셈이죠. 이제 정치에 충실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첫째, 정치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총칼 없는 전쟁이죠. 갈등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논의하는 공적 장입니다. 상대가 좋건 싫건 말이죠. 싫다고 배척하는, 내가 옳다고 외면하는 순간 정치의 영역은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갈등의 당사자들은 주먹과 칼에 기댈 수도 있죠. 둘째, 정치적 미래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싸움을 과거로 몰아가도 판을 흔들어야 합니다. 불과 1년 전 평화가 있는 미래를 보여줬을 때 국민은 열광했죠. 남북평화가 중요한 미래이지만 그것뿐이라면 곤란합니다. 문재인 정부 탓만은 아니지만,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정치판에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 판마저 좁아지면서 싸움은 국민 사이로 파고든 형국입니다. 정치적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적 공간이 허약해집니다. 분노와 무시당했다는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쌓이기 쉽죠. 이들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고함에 쉽게 동화해 정치세력화할 수 있습니다. 벌써 그런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태극기부대죠. 오는 토요일이면 태극기집회는 122차에 접어듭니다. 그들은 열정과 확신이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옵니다. 부산에서,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옵니다. 매주 오는 이도 많습니다. 사비를 털어 시위용 트럭을, 동지들 먹일 식사를 준비합니다. 명확한 비전도 갖고 있습니다. 맨주먹으로 정당을 꾸렸다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하지만 공존을, 다양성을 강조하는 진보는 이들만큼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무시당한 이들을 모아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죠. 브라질에서도, 독일에서도,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만 언제까지 예외일까요? 

이런 와중에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이 2일 현재 170만명에 육박한다니 걱정스럽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의 광기가 생각나는 것은 저뿐인가요? 대화와 설득은 좋아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 하는 겁니다. 하루빨리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미래에의 비전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죽은 박정희 손에 산 문재인이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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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 선조들은 대부분 농경시대에 살았다. 인류의 역사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대단히 혁명적인 일이다. 먹고살기 위하여 사냥하고, 채집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인 기술이나, 야생곡식을 농작물화한 기술은 지금으로 보면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수준의 혁명적인 기술이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먹거리 해결의 시대에 진입했다. 정주 마을이 생기고, 사회는 분화·발전하였으며, 그 안에서 정치·문화·규율·법·질서 등이 생겨났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는 매우 단순한 사회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사람들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하여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복잡한 사회였으리라.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방법에서부터 병을 치료하는 방법, 집을 짓는 방법, 가축을 관리하는 방법, 농사를 짓고 요리하는 방법, 필요한 물품을 장터에서 교환하는 방법,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 예의범절, 장례와 제사, 글을 깨치는 일, 그리고 과거시험과 나랏일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식을 얻어야 보통사람들의 일상과 사회, 더 크게는 나라가 평온하게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근대 정규 학교가 존재하지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모르고, 활자화된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옛날 농경시대에는 젊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을 소위 어른들로부터 배웠으리라 짐작된다. 즉 어른들이 경험으로 먼저 얻은 지식을 구전으로, 또 현장에서 다음 세대에 직접 전수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스승이며, 삶의 선배가 되었다.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이라 더 뛰어나고 존경받는 어른이 있고, 반면에 그렇지 못한 어른들도 있었겠지만, 경제사회의 변화 속도가 매우 느린 농경시대에는 먼저 난 사람이 뒤에 난 사람들을 이끌고 가르칠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격이 있었다. 당시의 어른들이 과거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서, 또 자신의 지식에 비추어 젊은이들을 꾸짖고 가르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고, 또 젊은이들은 그런 어른들이 필요하였다. 

이에 비해 디지털 경제와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현대는 복잡도의 면이나 질적인 면, 사회변화의 속도 등에서 전근대 농경사회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과학기술 및 제도적인 혁신에 의해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아 매일같이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는 자세와 습관이 없으면 먼저 난 사람들이 그 변하는 속도와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에 난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먼저 공부하고 경험했다는 것이 반드시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의 변화가 그런 것들을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외적인 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경험과 연륜만으로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안내하고 지도할 능력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공부와 성찰, 그리고 열린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어느새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반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앞 세대보다 훨씬 많은 교육과 정보력, 해외경험, 디지털 지능을 가지고 있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훨씬 우월하다. 이제 오히려 그들이 어른들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고, 디지털 기술을 잘못 쓰면 고쳐주고, 세상에 대한 정보를 보다 자세하고 분석적으로 전해준다. 이제 대학의 교수들마저 세상과 학문에 대한 업데이트를 잠시만 게을리해도 학생들에게 아는 척을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세대 간 역전이 일어나는 것을 모르고 어른들이 옛날 경험과 연륜만으로 젊은이를 가르치고 꾸짖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게 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이가 아니라 현실감을 갖춘 실력으로 가르치라는 얘기이다. 젊은이들이 가르치려는 어른들을 무조건 꼰대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젊은이들만큼 알지도 못하고 실력도 없는데 무조건 가르치려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꼰대 탈출법은 그래서 매우 명료하다. 항상 열린 자세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는 것이 바로 꼰대 탈출법이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꼰대라는 호칭이 붙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를 그리워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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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2일 지난해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10만2305명으로 2017년보다 14% 늘었다고 발표했다. 산재 사망자는 10% 가까이 증가했다. 사고로 971명이, 질병으로 1171명이 각각 숨졌다. 산재 노동자가 증가한 것은 적용 사업장을 확대하고, 신청·심사 과정 등을 개선해 승인이 쉽도록 한 덕분이라고 정부는 말했다.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은 노동자가 산재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배·보상 등을 통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산재사고의 급증 현상이 산재 인정 문턱을 낮춰 더 많은 피해자를 ‘보호망’으로 끌어안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일터가 ‘후진국형’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동자의 주의 태만도 있겠으나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관리 책임은 더 크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이 입법 예고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가 반발하고 있다. ‘중대 재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정부가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두고, 작업중지 명령권이 남발되면 수백억~수천억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원청업체에 산재사고의 책임을 일부 물리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기업을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중대 재해가 일어나면 작업을 중지하고 일터가 안전한지를 살피는 일은 정부와 기업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다치고 죽어나가는 판에 ‘돈 타령’이라니 어이가 없다. 하청을 통한 작업과정에서의 안전사고 책임을 원청에 묻는 것도 당연하다. 경영계의 반발은 “위험과 함께 책임도 외주화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러니 산재 피해자 가족들이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을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난기업처벌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은 노동자 1만명당 사고로 숨지는 사망 만인율이 0.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이다. 한 해 10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일터에서의 사고’로 생목숨을 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정부와 기업은 모든 역량을 동원, ‘안전한 일터’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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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2일 열렸다. 진보·개혁 지식인들의 모임인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떻게 되었나’를 주제로 연 이 행사에서는 지난 2년의 경제정책에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다. 발제자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공정경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재벌개혁에는 소홀히 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을 포기했다’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으로 회귀했다’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등의 강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던 재벌개혁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재벌개혁 당위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중심 경제는 경쟁의 기회와 혁신의 유인이 적은 구조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도전할 기회가 줄고, 기술 탈취도 빈번히 일어나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재벌개혁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정부의 개혁열차는 2년 전 출발점에서 크게 전진하지 못했다. 재벌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추진하는 상법개정은 교착상태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보수야당과 재계의 저항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재벌의 사익편취를 방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도 마찬가지다. 이에 정부는 상법 개정안의 ‘우선순위 조정’, 공정거래법 ‘부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선공약인 상법 개정, 공정경제의 최우선 과제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반쪽 개혁’이라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칼날은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4%는 ‘재벌이 한국 경제의 불균형과 사회 불평등을 야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은 86%에 달했다. 재벌개혁이 ‘정권 출범 초기 개혁 드라이브 기회를 놓쳤다’거나 ‘예상치 않았던 경제 부진에 발목이 잡혔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집권 3년차인 올해마저 그대로 넘어간다면 재벌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재벌개혁을 위한 방안을 찾아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로 뒷걸음치지 않고 경제체질을 바꾸고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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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반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해외 순방 중인 문 총장은 지난 1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정한 기관’은 경찰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례적 입장 표명은 경찰권 비대화를 우려하는 검찰 구성원 의사를 대변하려 한 취지로 짐작한다. 그러나 임기를 겨우 두 달여 남겨놓은 검찰총장이 국회의 고유 권능인 입법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온당한 처사로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어디서 비롯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직접수사·수사지휘·영장청구·기소권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한을 주권자가 아닌 당대 권력을 위해 휘둘러왔다는 데 있다. 검찰권 분산이 기본권 확장과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 핵심적 과제로 부상한 이유다. 수사권 조정은 임은정 부장검사가 지적했듯이 “검찰에 막중한 권한을 위임했던 국민들이 검찰에 준 권한 일부를 회수해가려는” 작업이다. 검찰은 세부적 문제를 들어 반발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행태를 성찰하고 주권자에게 사과했어야 마땅하다. 문 총장의 입장문에는 한마디 자성도 사과도 없었다. 검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증좌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5월 3일 (출처:경향신문DB)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은 이제 구체적 논의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최장 330일간 각계 의견을 반영하고 면밀히 가다듬어 최종안을 만드는 과정이 남아 있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선 정보경찰에 대한 통제 강화, 경찰위원회 운영 실질화 등을 통해 ‘경찰국가화’ 우려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공수처 역시 여야 4당 합의 과정에서 기소 대상이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로 축소됐는데, 이를 다시 확대해 ‘무늬만 공수처’가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국회 논의의 초점은, 시민에게 보다 양질의 형사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맞춰져야 한다.

문 총장은 해외 순방 일정을 단축해 조기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섣부른 추가 행동은 자제하기 바란다. 권력기관 개혁은 각 기관의 ‘밥그릇 크기’를 새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개혁 당사자들은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옳다. 주권자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오만하게 굴었다가는 조직이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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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초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을 준비하던 관계자들은 전두환 대통령의 뜻밖의 요구에 경악했다. 물러나는 전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과 동등하게 예우받는 ‘이·취임식’을 하자고 고집했던 것이다. “전례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요지부동, 떠나는 대통령도 당당히 한마디 해야 한다고 우겨댔다고 한다. 이 발상은 당연히 무산되었다. 그리고 취임식 준비팀은 나중에 군의 이·취임식 문화에 대해 듣고서야 전 전 대통령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였다. 

군이 지휘관 이·취임식을 엄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부대 지휘권의 이양을 명확히 함으로써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새 지휘관에 대한 부대원들의 충성을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임하는 지휘관이 전역하는 경우에는 전역식까지 겸하게 된다. 이임 지휘관으로서는 전역사를 통해 자신의 군 생활을 총정리하면서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장군들이 전역식의 영예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된 정용후 전 공군참모총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 전 총장은 1990년 9월 차세대전투기 기종을 F-16으로 바꾸라는 상부의 압력을 무시한 채 조종사들의 의견을 존중해 F-18 기종을 고수한 ‘죄’로 서울수도병원에 25일 동안 감금되었다 강제 전역조치를 당했다. 

‘공관병 갑질’로 육군 2군사령관에서 해임됐던 박찬주 전 대장의 뒤늦은 전역사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2년 전 군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후임자가 취임하는 바람에 전역식도 못한 채 떠난 게 늘 아쉬웠다”는 게 ‘셀프 전역사’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박 전 대장이 항소심에서 공관병에 대한 갑질과 수뢰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부하의 보직 청탁을 들어줘 400만원 벌금형을 받았고, 부인도 갑질 행위로 기소돼 있다. 후배들을 향해 군인의 도를 언급할 처지가 못된다. 그는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이익보다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 인기영합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도 했다. 시민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온 한 장군의 의식에 씁쓸하다. 국민의 군대는 정녕 요원한 것인가.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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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하나의 신호로 보인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합격률’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주최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경향신문 4월26일자 12면). 합격률을 높이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7년 12월 일이다. 지난달에는 한 로스쿨생이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 앞에서 삭발을 했다. 그는 며칠 뒤 제56회 법의날 기념식장을 찾아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의 요구는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해달라는 것 하나였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0%대까지 떨어지고, 이른바 ‘오탈자’(5년·5회 제한에 걸려 변호사시험 응시기회를 박탈당한 로스쿨 졸업생)가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26일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됐다. 로스쿨생들의 외침 때문인지 합격률이 50.78%를 기록, 첫 시험 때의 87.15% 이후 줄곧 하락하다가 처음 반등했다. 로스쿨생들의 목소리도 잠시 주춤하다. 하지만 내년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2009년 3월 도입돼 어느덧 10년 넘긴 로스쿨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로스쿨을 왜 도입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잘 운영되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

4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앞에서 대한변협(왼쪽)과 로스쿨 재학생·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가 동시에 집회를 열고 있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이 발언하는 동안 로스쿨 학생들은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로스쿨 도입에 대해 내가 처음 들은 때는 1994년 어느 날이다. 서울대를 출입하면서 교수 연구실을 돌아다니다가 법대 교수이던 박세일 전 의원(1948~2017)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1년차 기자인 나에게 친절하게 이 얘기 저 얘기를 해주던 그가 갑자기 “한국에도 로스쿨을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던 질문에 “도입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묻자 “변호사 수를 늘려 국민들이 다양한 사법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시 낭인’을 없애 사회적인 비용을 줄이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저 한 대학교수의 아이디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몇달 뒤 그는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1995년부터 로스쿨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로스쿨을 도입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로스쿨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에야 도입이 결정됐다. ‘사학개혁 법안’을 포기하는 대신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입안됐고, 여야의 전격적인 ‘법안 딜’에 의해 통과됐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전 방송사와의 다큐멘터리 촬영에서 로스쿨에 대한 생각을 언급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기존 합격자가 (소수 학교에) 몰려 있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로스쿨 제도를 만들었다. 획일주의, 사법부의 순혈주의를 벗어나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이들의 구상은 현실로 이뤄지고 있을까.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사법시험 당시 서울대를 중심으로 상위 10위권 대학의 비율이 절대적이던 것이 상당 부분 완화됐고, 저소득층 및 장애인 로스쿨 입학생의 비율도 제도적으로 5~10% 보장하는 것 등이다. 다수의 전문자격자 및 직장 경험자가 로스쿨에 입학하면서 학부 전공의 다양화와 출신의 다양화도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성과도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있다. 당초 자격시험으로 운영될 예정이던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이 50%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로스쿨은 고시학원처럼 변했다고 한다. 로스쿨에도 사교육이 만연하면서 갈수록 ‘금수저’들의 리그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고시 낭인’은 ‘변시 낭인’으로 부활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며 입학한 장애인 로스쿨생들은 비장애인과의 경쟁에 밀려 변호사의 꿈을 접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 로스쿨은 ‘희망의 사다리 걷어차기’ ‘개천의 용을 없애는 제도’로 불리고 있다. 

어디든 손을 봐야 한다. 논의는 기존 법조인 중심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세일 전 의원도 “(로스쿨 도입에)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었던 법조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물론 국회에서도 법조계 출신들이 대부분 반대했다”고 회고했다. 로스쿨 제도 개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론화 방식을 적용해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늘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로스쿨 도입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을 부르는 목소리가 크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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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타오르는 태양(버닝썬)’은 손님과 종업원 간의 폭력시비에서 시작돼 마약과 성폭력 가해 연예인 구속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을 태우고 사그라들게 할 기세다. 전혀 모르는 세계를 관전하며 배우 지망생인 아들이 행여 어두운(?) 세계에 발을 디딜까 하여 두려움에 떨었다. 한번 맛보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한다는 그 약물의 세계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 반대과정이론(opponent-process theory)으로 그 기제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외부 자극에 의해 처음 만들어지는 반응이 끝나면 그것과 상반된 다른 반응 상태가 나타나 균형을 잡아준다.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자극은 이후 혐오적 느낌에 의해 대립되고, 처음에 혐오감을 준 자극은 유쾌한 느낌으로 대립된다. 예컨대 매운 고추를 먹게 되면 우리 뇌는 그것을 통증으로 자각한다. 그리고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일종의 아편물질이 분비되는데 그 때문에 매운 걸 먹고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아찔한 놀이기구를 돈 내고 타는 이유도 극도의 공포 이후 극도의 쾌함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약물에 의존해 쾌락을 맛본 이후엔 그에 대립하는 극도의 불쾌감을 경험하기에 끊을 수 없다 한다. 

플라스틱의 광범위한 사용도 일종의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스틱·목재 등 쓰레기들이 2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주 더반 항구 주변에 쌓여 있다. 이 지역에 최근 홍수가 나면서 해안을 따라 쓰레기들이 흘러들었다. 당국은 쓰레기 제거를 위한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나섰다. 더반 _ AFP연합뉴스

“생산에 5초, 사용은 5분, 분해는 500년”이지만 플라스틱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알약부터 의류, 신발, 가방, 심지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도 모자라 한 손엔 플라스틱 컵에 빨대까지…. 지난 10년간 전 세계 플라스틱 총생산량은 42%나 증가하였고 현재 바다에는 27만t의 쓰레기가 떠도는 중이며, 2050년엔 해양쓰레기가 3배로 증가하여 ‘물 반 플라스틱 반’이 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우주여행도 꿈꾸는 세상에 일회용 플라스틱의 대안은 진정 없는 것일까? 

아일랜드 브랜드 기네스의 모회사인 디아지오는 지난달 15일 맥주 포장에 쓰이는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 가능한 생분해성 판지로 대체할 것이며, 이를 위해 1600만파운드(약 238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하였다. 아디다스도 2024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만 사용하겠다 했고, 이케아는 2020년까지 자사의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 마켓컬리도 친환경 지퍼백을 도입했고, 배달의민족은 ‘일회용 숟가락 빼주세요’ 옵션을 장착했으나 그 사용량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만한 대안이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연 기업체답게 창의적 해결책도 찾아주길 바란다. 플라스틱으로 돈 번 기업이 한둘이 아닐 텐데 여태 대체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는 지난해 ‘환경분야 노벨상’으로 알려진 ‘에니상(Eni Awards)’을 수상했다. 미생물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 화학물질을 만드는 시스템 대사공학을 창시한 공로이다. 이 생물공학적 방법을 통해 인류 최대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착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내는 중이다. 세계 최초로 미생물을 활용해 친환경적으로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어 희망적이다. 

지구한계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스웨덴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은 <지구한계의 경계에서(Big World Small Planet)>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지배적인 서사는 유한한 지구, 무한한 물적 발전을 골자로 지구와 자연은 인간에게 한량없이 베풀어줄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이제 넘쳐나는 환경적 고난이 사상 최초로 세계경제에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향정신성 약물은 불법이므로 국가가 처벌한다. 플라스틱 중독은 누가 처벌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답해주셨다. 신은 항상 용서한다. 인간은 때때로 용서한다. 자연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아멘.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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