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알려진 것이 좋은 헌법재판관 후보로 꼽힐 이유일까. 미국에서는 그럴 수 있다. 유능하고 유명한 변호사가 판사가 되고 대법관이 되는 나라다. 서굿 마셜 전 연방대법관은 흑인 인권운동을 대표했다. 그 유명한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도 그가 이끌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여성차별과 싸웠다. 여성에게는 주거수당을 주지 않던 공군의 관행을 없앤 1973년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부터 수많은 사건을 변론했다.

우리나라 사정은 조금 다르다. 법관의 업무량이 세계 최고다. 그래서 성실함과 사명감이 필요했다. 수재들을 뽑아 20대에 판사를 시키는 제도는 그래서 유용했다. 대법관 업무도 격무여서 법관 출신이 아니면 해내기 어렵다는 얘기도 틀리지 않았다. 이런 우리나라에도 미국식 사례가 있기는 하다. 김선수 대법관이 그렇다. 노동법 이론과 실무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하지만 드문 경우다. 변호사들로 재판관과 대법관을 모두 채울 수는 없다. 더구나 미국의 마셜도 긴즈버그도 판사를 하다가 대법관이 됐다. 결국 재판은 법관이 한다. 가능하면 판사가 대법관이 되는 게 순리다.

우리나라에서 재판관과 대법관이 된 판사들은 법원에서 유명한 사람들이다. 법원에서 알려진다는 것은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는 일이다. 가령 김상환 대법관이 원세훈 사건을 유죄로 선고해 평가를 받은 것도 당시 서울고법에 있었기 때문이고, 유남석 헌재소장도 인권문제에 정통하지만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법원장이 되면서 재판관 후보군에 들어갔다. 이렇게 보면 판사로서 좋은 결정을 많이 해서 대법관과 재판관이 됐다는 신화가, 사실은 사법연수원 성적이 남들보다 좋았고 이후 법원장들에게 잘 보였다는 말로도 바뀐다. 

이제 사법연수원 졸업생을 성적으로 추려 판사로 뽑는 제도도,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선발하는 제도도 없어졌다. 초임 판사는 10년 경력 법조인 가운데 뽑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다. 앞으로 어떤 판사 가운데 재판관과 대법관을 뽑을지 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미선 재판관 후보자가 등장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내정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기관의 여성 비율이 30%를 초과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여성이 30%를 넘는 헌법기관이 수두룩해 사실도 아니지만, 그게 이유라면 다른 여성이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선 재판관의 이력서에는 눈에 띄는 판결이 없다. 고등부장을 안 해서만은 아니다. 2015년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됐지만 단독재판을 했다. 거듭해서 휴직하다 올해 봄에야 서울중앙지법 재판장이 됐다. 이력이 없는 이유 가운데 오랜 대법원 재판연구관 생활이 있다. 5년이나 했다. 남들의 2배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도 “재판연구관 시절부터 꾸준히 노동법 분야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것을 사실상 유일한 임명 이유로 밝혔다. 하지만 그가 노동법을 연구한 이유는 노동조였기 때문이다. 상사조였다면 상법을 연구했을 터다. 게다가 연구관은 판사가 아니다. 대법관이 원하는 보고서를 만들 뿐이다. 그래서 그가 통상임금 사건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보고서를 썼다고 시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미선 재판관은 기업의 소유자(주주)이다. 그의 수십억원대 주식투자는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우리 헌법의 이념이다. 다만 주식투자는 자본의 이윤 추구를 응원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이 낮은 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 부가가치는 21세기에도 노동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게임회사와 금융회사에서 과로로 숨지는 노동자가 많은 이유도 별다른 게 아니다. 배당과 차익이 전제인 주식투자는 사회사업이 아니다. 이제까지 이미선 재판관의 노동감수성은 드러난 바 없지만, 자본에 기울어진 사회경제적 정체성은 부정하지 못한다. 

이미선 재판관은 이발사의 딸이고 지방대(부산대)를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판사이고 남편은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다. 수십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한 자산가이기도 하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합치면 상위 0.01%에 들 것이다. 어려서 이발사의 딸이었다는 지위, 지방대를 졸업했다는 학벌을 더 이상 팔아서도, 팔리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겸양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부도덕에 가깝다.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대부분 바꾸고, 좌파 일색으로 채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88년 개헌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대법원장 1명과 대법관 11~13명, 대통령 몫 재판관 3명을 임명해왔다. 특별히 많지도 적지도 않다. 좌파 일색인지는 모르겠으나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사법기관에 자기 색을 입히려고 정권을 잡는 것이다. 미국도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재판관과 대법관 후보들을 얼마나 알고 임명하는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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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호선 전철 안에서 만난 그는 손을 들어 전철 벽면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자리에는 본래 광고판이 끼워져 있어야 했는데, 웬일로 붓글씨와 수묵화가 그려진 종이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저 작품들이 다 노인들이 쓰고 그린 거예요. 우리 학교 학생들 작품이에요. 정말 잘 쓰지 않았어요?”

그의 말대로 전철 벽을 메운 작품들은 하나같이 매끄럽고 정갈했다. 그는 한문으로 쓴 붓글씨를 소리 내 읽어준 뒤 그의 긴 인생 얘기를 시작했다.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만 마치고는 집안일을 도왔다고 했다. 그 시절 대개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의 아버지도 여자가 공부 많이 해서 뭣하냐며 중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딸을 주저앉혔다.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애들 보면 부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의 아버지는 대여섯 살에 천자문을 외운 큰아들을 법대까지 보낸 걸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다른 자식들의 원망은 외면했다. 그는 그때 악착같이 매달려 학교에 다녀야 했다면서 물러 터진 자신을 탓했다.

“평생 못 배운 게 한이었죠. 그런데 3년 전 나 같은 노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는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작년에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고교 수업을 듣는다며 수줍게 웃는 그의 얼굴이 열일곱 살 소녀처럼 곱다. 영어로 된 간판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새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는 그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별말을 다한다면서 말을 흐렸다. 

“사실 가족들한테도 이런 얘기는 하기 그렇거든요. 자식들 앞에서 뒤늦게 공부하는 걸 자랑하는 것도 우습고….”

그의 꿈은 대학교까지 가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우리 어머니의 꿈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도 꿈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어머니도 낯선 사람에게는 자기 자랑도 하고, 평생 간직한 꿈도 얘기할지 모른다. 자식들은 결코 묻지도 귀 기울여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얘기를. 나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를 두고 전철에서 내리면서 어머니한테 전화나 드려야지 했다가도 일을 보다가 잊고 말았다. 자식이란 참 무심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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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기라는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로 회귀하거나 극우 포퓰리즘에 휘둘리거나 관용과 절제의 민주적 규범을 잃은 채 전쟁정치에 휩싸여 있다. 민주주의 모델이었던 미국과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흐름과 달리 촛불집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활력을 과시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왜 국회는 격투기장으로 변하고, 거리는 성난 사람들로 넘치는가? 우리는 왜 여전히 과거와 싸우는가? 더 나은 삶은 왜 우리 곁에 없는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한국 민주주의 승리 역시 일면적 현상일까?

민주주의라면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일정한 합의를 이루고 여야, 진보·보수 모두 그 토대에 서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야가 대립해도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의 뿌리를 뽑는 일은 없으리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견과 갈등은 화해 불가능한 차이가 아닌, 타협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8일 (출처:경향신문DB)

문재인 정부 지지가 높고 한국당 지지가 낮을 때 문재인 정부는 (야당이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국정’을 했고, 개혁성과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지지가 낮아지고 한국당 지지가 높아질 때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대결이 보여준 것처럼 양쪽이 대충돌을 했다. 힘의 균형이 얼추 맞춰지면 협력적 경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야는 맨몸으로 부딪치는 쪽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치의 한 축인 한국당은 민주주의 한계선에 다가갔다. 외부의 적과 싸우며 내부 단합을 이루어냈고, 그 때문에 지지율이 더 오르자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전례 없는 존재감도 드러내고 있다. 

아마 집권당을 대신할 수 있다는 꿈까지 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한국당이 대안으로 떠올라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가 설계한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촛불·탄핵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모독을 사소한 실수로 간주하고, 평화를 조롱한다. 패스트트랙 충돌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치개혁이든 검찰개혁이든 개혁에는 관심도 없다.

당 활동은 이념 공세에 집중되고 있다. 요즘 한국당은 좌파, 독재정권, 김정은 빠지면 말을 못한다. 독재타도, 헌법수호같이 그들 사이에서나 통용될 방언(方言)으로 세상을 묘사한다. 황교안 당대표는 정치를,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선악 대결장으로 바꾸고 있다. 그는 연일 “피를 토한다” “피 흘리겠다” “도끼날을 피 흘리며 삼켜 버리겠다” “죽지 않겠다”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한국 정치를 피로 물들이고 있다.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보수층 사이에서 상대를 부정하도록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민주주의 규범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황교안이 한국 정치를 무대로 피 칠갑의 공포영화를 찍는 동안 정치혐오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주의를 서서히 죽이는 일이다. 

이렇게 지도부, 당 활동, 지지자 구성 세 요소의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한국당은 극우 포퓰리스트 당에 가깝다. 한국당을 위해서는 불행이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행인 것은 그 한국당이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친박 청산하면 내분으로 당이 와해되고, 청산을 포기하면 확장성을 잃는다. 결국 한국당은 확장성을 희생하고 내부 결속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불확실성 속에 가두었다. 최근 지지율 상승이 친박 청산 포기를 정당화해준다고 믿겠지만, 한국당이 자기 한계에 갇혀 있는 한 당 지지율 30%대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한국당은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성찰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한국당의 퇴행을 눈감아줄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지지율 상승이 부추기는 무모한 행동을 계속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흩어진 촛불은 다시 모일 수 있다. 

한국당이 지지율 상승을 믿고 탄핵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자 특별히 그럴 요인이 없는데 최근 문 대통령 국정 지지가 다소 높아졌다. 선을 넘나드는 한국당에 자극받은 시민들이 결집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한국당 해산 청원은 18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당, 다시 심판대에 설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를 멀리서만 바라보며 희극일 거라고 안심할 수 없게 됐다. 민주주의 위기의 씨앗이 자라는지 가까이서도 지켜봐야 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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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중산간(中山間)’이라는 독특한 지대가 있다. 완전한 산골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변은 더더욱 아닌 어중간한 산간인 곳이다. 이 중산간 마을마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목장들이 있다. 이곳에는 원래 고려시대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조랑말을 기르던 ‘탐라목장’이 있었다. 조선 숙종 때에는 이곳을 10개의 목장으로 확대 개편해 2만여필의 말을 길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군마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반은 초지이고 반은 곶자왈인 이 드넓은 초원은 제주 사람들이 소와 말을 방목하는 곳으로 이용됐다. 소와 말로부터 밭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긴 돌담(잣성)을 쌓았고, 쇠테우리와 말테우리라고 불리는 목동들이 소와 말을 키우는 특유의 목축문화가 형성되었다. 중산간은 물론 인근 해안마을 주민들까지 소와 말을 먹이던 삶의 터전이자 목축공동체의 현장이 바로 이 마을공동목장이다. 

최근 제주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공동목장이 그 타깃이 되고 있다. 골프장이나 위락시설 등 대규모 개발 부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2007년 67곳(7253㏊)이던 마을공동목장은 현재 52곳(5832㏊)으로 줄었다. 일제가 공유지를 주민들에게 불하한 것이 그 후손인 조합원들의 소유권으로 이어졌는데, 최근 땅값이 오르자 조합원들이 목장을 팔아치우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개발자로서는 한꺼번에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점도 공동목장의 해체를 부추기고 있다. 

제주도가 마을공동목장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천년에 걸쳐 형성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니 보존할 가치는 충분하다. 원형을 제대로 복원하면 세계 어느 곳의 목축문화보다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검은 현무암으로 길게 이어 쌓은 모양 때문에 ‘흑룡(黑龍)’으로 불리는 제주의 밭담이 이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바도 있다. 문제는 사유재산권이 침해받을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이다. 하지만 공동목장은 조상들의 피땀이 어려 있는, 그리고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해온 공동자산이다. 특정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다. 무엇보다 제주의 자연이 더 이상 훼손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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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표현은 더 과격해지고 공허한 피로와 혐오가 쌓여간다. 정치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된 SNS에 오르내리는 말들을 보면, 이성이 마비된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대화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날선 표현도 문제지만, 상식을 벗어나는 개념의 사용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실질과 너무도 달라서 도무지 그렇게 표현할 수 없을 법한 말들이 난무하는 현실을 보며, 실소와 분노를 넘어 의아심이 생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잘 알려진 고사성어가 있다.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사실로 믿게 된다는 점을 비유로 경계한 말이다. 고사의 출처에 의하면, 이 간곡한 경계를 듣고 그 누구의 현혹에도 흔들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왕 역시 결국은 측근들의 지속적인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만큼 사람은 자신에게 많이 노출되는 말의 영향에서 자유롭기가 매우 어렵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늘날 비상식적인 말들이 확신과 증오를 품고 급속도로 전파되는 데에는, 보고 있는 것만 보게 만드는 웹서비스 구조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별생각 없이 클릭한 포스트와 동영상이 빅데이터로 저장되어 그와 비슷한 콘텐츠들을 맞춤식으로 골라서 보여주는 자동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안에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고 대다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른바 ‘가짜뉴스’까지 불사하며 이 불신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대화, 합리적인 해명은 거부되고 그 이면에 다른 속내와 꼼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음모만 영향력을 키운다. 불신이 추측을 낳고 특정한 의도를 지닌 왜곡이 개입될 때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다. 결국 신뢰의 문제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나름의 맥락들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의 정보와 인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누가 그것을 골라서 나에게 보여주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오늘, 측근을 경계해야 할 이는 왕만이 아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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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다. 티끌, 즉 작은 부스러기나 먼지조차도 한데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태산이 될까 하여 실제로 티끌을 모으는 사람은 세상에 없겠으나 그게 무엇이든 ‘무엇인가’를 모으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내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로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gt;의 원작은 앙리 뮈르제의 같은 이름의 소설이다. 뮈르제는 19세기 파리에서 보헤미안이라 자칭했던 사람들의 생활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칭 ‘위대한 철학가’ 귀스타브 콜린, ‘그림의 거장’ 마르셀, ‘음악의 대가’ 쇼나르, 그리고 ‘거룩한 시인’ 루돌프가 <라 보엠&gt;에 등장하는 보헤미안이다. 이 4명으로 이루어진 보헤미안 ‘세나클’(살롱에 모여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문학동인) 중 미미의 손을 잡고 ‘그대의 찬 손’을 부르는 시인 루돌프가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헤미안은 주류의 삶을 거부하는 생활철학을 신봉했기에, 보헤미안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에게는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칭 보헤미안인 철학자 콜린은 책을 태산이 되도록 수집한다. 콜린은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만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응한다. 강의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책을 살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입의 거의 전부를 책 구입에 쏟아붓는다. 파리 센강의 콩코드 다리에서 생 미셸 다리 사이에 늘어선 서점 상인 사이에서 콜린은 유명인사다. 단 하루도 책을 사지 않고 그 길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기에, 그 거리의 서점 상인은 모두 콜린을 알고 있다. 뮈르제는 콜린의 수집벽을 이렇게 묘사한다. “만일 새로운 책을 한 권이라도 들고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면 그는 습관처럼 티투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아, 오늘 하루는 완전히 공쳤어.”

이른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법칙은 수집에도 적용된다. 콜린의 눈에 책은 보석과 다를 바 없으나, 다른 사람은 책을 그저 티끌로 간주할 수도 있다. 무엇에 ‘꽂혀’ 무엇인가를 탐닉하고 수집의 열정에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조선의 선비 이서구는 앵무새의 매혹에 푹 빠졌고, 유득공은 비둘기에 ‘꽂혀’ 비둘기를 탐구했고 비둘기 사육법을 <발합경>이라는 책에 모두 담았다. 담배가 ‘최애템’이었던 이옥은 담배에 관한 모든 지식을 수집해 <연경>을 썼다. 그들은 고질병(癖)이 있는 바보(痴), 즉 벽치라고 취급받았으나 결국 일가를 이루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귀한 것을 제대로 보는 귀한 눈이 있었던 간송 전형필은 수집으로 인한 탐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간송이 없었다면 <훈민정음 해례본>과 <혜원 전신첩>은 전설로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수집되어야 마땅한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다. 수집의 열정을 일깨우는 대상이라면 무엇이든 수집 가능하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는 구두 수집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멜다는 무려 3000켤레의 구두를 남겼다고 알려졌다. 남긴 구두의 숫자가 놀랍기만 하지만, 이멜다의 구두 컬렉션에선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이 불러일으키는 경외감을 느낄 수 없다. 돈만 많으면 구두 3000켤레를 수집하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에게 이멜다의 구두 컬렉션은 ‘강박적 쇼핑욕구’를 뜻하는 ‘오니오마니아(oniomania)’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돈만 쏟아부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품 싹쓸이’를 우리는 수집이라 하지 않는다. 결제 가능 한도가 넉넉한 신용카드만 있으면 누구나 한정판을 쇼핑할 수 있지만, 수집하려면 돈 이외에도 식견이 필수적이다. ‘오니오마니아’는 자신이 수집가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쇼퍼홀릭’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만년필도, 자동차도, 오디오도, 커피 잔도, 카메라도, 운동화도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대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모을 수 있다. 연필이 좋다면 연필을 모아도 상관없다. 코카콜라 병도 수집 대상이 될 수 있다. 스타벅스 텀블러이면 어떠하며 블루보틀의 굿즈라고 해서 수집 대상이 안 될 이유는 없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피규어를 모은다고 해서 품격이 떨어진다고 예단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수집이 찬양받을 행위인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모으는 사람은 수집으로 일가를 이룬 컬렉터가 될 가능성도 지니고 있지만, ‘오니오마니아’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품광고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수도 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해 쌓아두고 있는 소비자본주의의 풍토병인 ‘저장강박증’이라는 산을 넘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는 ‘오니오마니아’의 산도 넘어야 마침내 경지에 오른 컬렉터들이 모여 있다는 ‘태산’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책과 피규어와 만년필을 모은다. 새삼 그 물건들을 사들여 모셔둔 책장 앞에서 자문한다. 나는 ‘저장강박증’인가, ‘오니오마니아’인가, 아니면 컬렉터가 될 가능성이 있는 ‘티끌’을 모으는 사람인가? 나도 ‘태산’에 오르고 싶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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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수산단의 대기업들이 측정치를 조작해 대기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한 사실이 적발되고, 행정당국의 관리감독에도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에서 전국 1위인 현대제철은 허용기준의 5배 이상을 초과해 시안화수소를 불법 배출하고, 오염물질 저감장치 고장을 숨긴 채 5년째 가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안화수소는 흔히 ‘청산가스’라고 불리는 독성물질로 일반적인 대기오염물질보다 인체에 더 유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은 환경부의 배출허용기준 강화조치를 무색하게 만든다. 환경부는 금년부터 미세먼지 다량배출사업장의 배출허용기준을 최대 2배 강화했다. 그러나 ‘예외인정 시설’로 삼천포화력 1~6호기, 보령화력 1·2호기, 호남화력 1·2호기, 동해화력 1·2호기, 현대제철 등을 지정했다. 수많은 사업장에 유예나 면제 특혜를 주었다. 심지어 삼천포화력 5·6호기의 경우 강화 전 황산화물 기준이 100 이하인데 현재 140 이하를 적용한다. 

배출기준 자체도 대기환경보전법에서 예외적으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는 인천 영흥화력보다 여전히 2~4배 느슨하다. 영흥화력의 경우 2003년 강화된 기준이 이미 15년 이상 적용돼왔다는 점에서 전국의 모든 석탄발전소 배출기준을 영흥화력 수준으로 강화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미세먼지 다량배출사업장부터 배출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예외를 금지하며 초과배출 부과금을 현실화해 미세먼지 원인물질의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특히 전국 배출량의 약 4분의 1을 배출하는 충남의 경우 보다 적극적인 저감 대책이 필요하다. 충남도는 2017년 석탄발전소만을 대상으로 보다 엄격한 배출허용기준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그러나 유예기간이 너무 긴 탓에 금년부터 적용된 환경부의 배출기준 강화에 추월당해 적용되기도 전에 사문화될 상황이다. 지난달 늦게나마 제철업, 석유정제업 등을 포함한 것은 다행이지만, 2021년에야 적용될 예정인 조례의 배출기준은 현재 적용 중인 환경부 기준보다 20% 강화된 정도에 불과하다. 겨우 20% 강화로는 환경설비 개선이나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는 효과가 전혀 없을 것이다. 

충남도는 적어도 배출허용기준을 2021년까지는 영흥화력 수준인 현재 환경부 배출기준의 50% 정도까지 낮추고, 2023년엔 30%까지 낮춰야 한다. 환경부도 미세먼지 다량배출사업장을 답사해 매연을 맹렬하게 거대하게 내뿜는 굴뚝들을 바라보고, 미세먼지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위해 어떤 배출기준을 설정할지 고민해 보시라.

<신현기 | 당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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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년, 절반으로 나누어진 대통령 지지율만큼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평가의 준거가 관건이다. 대통령은 스스로를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 자부했다. 그렇다면 지난 2년,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혁명정부’로서 공과를 다루어야 하나? 점차 이 기준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듯하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높이 사지만, 시민들이 촛불을 들며 그렸던 ‘나라다운 나라’와는 갈수록 거리가 느껴진 탓이다. 시대적 가중치를 빼버린 수평 비교, 씁쓸하지만 덜 실망하기 위한 평가 기준의 하향이다.

무엇이 눈높이를 낮추게 했을까? 여러 민생 주제가 있지만, 내가 익숙한 분야에서 최우선으로 꼽으라면 ‘재정정책’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적 알맹이로 채워가며 민생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엉성했다.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 의하면 공약재정 대부분을 초과세수, 기금의 여유자금, 지출 절감 등으로 마련한다. ‘예상’을 넘어서는 초과세수가 어떻게 ‘계획’이 될 수 있는지 의아스럽고, 고용보험기금 등의 여유자금은 이미 존재하는 재원이다. 지출 절감은 사업마다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건만, 앞으로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대규모로 면제하고, 지금까지 대상이 한정되던 민간투자사업은 모든 사회기반시설로 확대하겠단다. 

포용국가를 구현하려면 당연히 뒤따라야 할 조세개혁도 빈약하기만 하다. 낮은 조세부담률을 상향하기 위한 의지는 출범 때도, 지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100년을 이어갈 재정정책 개혁의 로드맵”을 목표로 출범했다가 10개월 만에 별다른 성과도 없이 해산한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조세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남은 3년은 어떨까? 벌써 그림자가 깔리는 듯하다. 경기 침체와 민생고로 정부의 재정 확충이 어느 때보다 강조됨에도 올해 추경예산안은 6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복지 분야에서도 우려스러운 일이 이어지는데, 최근 두 사례는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지난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이는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고 얼마 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합의문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부담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아 결국 정부 위원들은 빠진 노사공익위원의 권고문으로 발표되었다. 근래 빈곤계층의 생활이 무척 어렵고 이들을 포괄하는 게 포용국가론일 텐데 정부의 사회정책이 재정부처에 의해 이리도 쉽게 무시된다. 

지난달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5년마다 수립되는 최초의 법정 계획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된 지 30년 만에 건강보험의 발전 방안이 법률적 근거를 갖추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의결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일부 위원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서명심의로 진행되었다. 핵심 논점은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의 과소 책정이다. 건강보험법에 따라 정부는 매년 보험료 예상수입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해야 하건만 올해는 10.3%로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낮다. 10%도 14%에 ‘상당하는’ 수치라는 게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니 말문이 막힌다. 더 심각한 건 이번 종합계획에 앞으로 올해 수준으로 국고지원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이다. 애초 ‘문재인케어’의 재정방안을 두고 의문이 제기돼 왔는데,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가입자에게 보험료 인상을 요청할 수 있을까?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 내년에 약 1조원, 완전 폐지해도 수조원이면 가능하다. 또한 정부가 과소책정한 건강보험 재정지원 부족분이 약 2조원이다. 우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정부위원들이 빠진 권고문을 봐야 하고,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궤변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작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약 GDP 21%로 OECD 평균 25%에 비해 4%포인트 부족하다. 금액으로 따지면 약 70조원이다. 포용국가를 지향하는 정부라면 ‘돈이 없다’고 엄포를 놓기보다는 최소한 ‘국제 수준까지 세입을 마련하겠다’고 천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음주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다. 내년, 그리고 중기 재정운용의 방향을 논의하는, 봄마다 한번 열리는 자리이다. 산과 들이 초록으로 바뀌듯이 재정정책에서도 변화를 볼 수 있을까? 만약 이번에도 새로운 틀의 ‘전략’을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재정 ‘관리’회의로 이름을 바꾸기 바란다.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게 말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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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날이면 종종 집 앞 한강 둔치에 나갔다. 그때만 해도 강북에 있는 대부분의 한강 둔치는 공원이라기보다는 길이었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구간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휴일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이는 자전거도로 옆 공터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 늘 바쁜 남편이지만 그래도 어린이날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연휴 기간 동안 잠깐의 시간이 생기기는 했는데, 그 시간은 늘 어버이날 행사에 쓰였다. 나는 더러 그게 심통이 나기도 했다. 번번이 아이가 소외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늙은 부모님이 사셔야 얼마나 사시겠느냐 하고 당연히 찾아뵈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는 뭐 평생 어린이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아이의 어린이 시절이 끝나는 시기와 거의 동시에 양가 어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5월이 되자 아무런 의무도 없는 텅 빈 연휴가 찾아왔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마음도 같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아이와 한강에 갔다. 이번에는 함께 자전거를 타려고 따릉이 앱을 깔아 회원 등록도 마쳤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계속 통신오류라는 메시지만 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조금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찾은 강북 둔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명확히 구분돼 있었고, 사이의 공터들도 제법 잘 단장해 놓았다. 한강에 예술공원을 조성한다더니 이런 거였나 싶게 군데군데 조형물이 서 있었다. 어떤 것은 근사하고 어떤 것은 좀 기괴했다. 한강을 향해 무리지어 걸어 들어가는 자세로 서 있는 선홍빛 펭귄 무리 조형은 아무리 봐도 스산하고 서늘했다. 그래도 길을 강 가까이까지 이어놓고 물만 깨끗하다면 발을 담가도 좋게 난간이 달린 계단을 설치해놓은 건 좋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리는 노인들에게로 자꾸 시선이 닿았다.  

엄마가 자전거를 배운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혼자 배우셨다는 것만 안다. 언니 집 근처 한강에 산책 갔다가 자전거를 배우는 노인들이 모여 있어 기웃거렸더니 다른 동네 사람은 안된다고 배척하더라며 오기가 나서 그 옆에서 혼자 배웠다고 했다. 그래봐야 페달 밟아 1~2m 가는 정도겠거니 했다. 그게 아버지가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시절인지, 그 전인지 아니면 그 후인지 모르겠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집에서 간병하던 시절, 딸들은 출근하고, 혼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남편을 돌보고 있다가 마음이 답답할 때 한 번씩 자전거를 타러 갔는지, 그 시절이 비로소 끝난 후에 혼자 길을 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어느 날은 혼자 옥수동에서 성산대교 아래까지 갔다고 했다. 그건 지금도 우리 남매의 미스터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육십 노인이 가기에 너무 아득하고 먼 거리였던 것이다. 엄마가 기분 나빠하실까봐 차마 묻지는 못하고, 성산대교까지 가려고 했던 것이다, 한남대교를 성산대교로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니다 정말 성산대교까지 갔다로 의견이 갈렸는데 이제는 물을 수도 없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조금 울었다. 어쩌면 엄마가 당신도 모르게 거기까지 밟아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더라,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더 멀리, 아주 멀리 가버리고 싶으셨을 시절이었다. 그렇게 가셨대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결국에 혹은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던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알지만 여의도에서 반포 정도까지의 거리밖에 타지 못했다. 언제고 옥수동에서 성산대교까지 자전거를 타 볼 생각이다.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도 엄마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혹 그 길을 따라가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달려가고야 마는 어떤 길의 끝과 다시 되돌아오게 되는 어떤 삶의 인력을, 그 인력 안에 놓인 비애 혹은 소소한 기쁨을 말이다. 달려봐야 알겠지만 그 길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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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7일 국무회의에 보고한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평가 및 개선방안’을 보면 지난해 정부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사람은 831만명으로, 한 해 전보다 33% 급증했다. 생산가능인구 5명 중 1명 이상이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셈이다. 이 수치만 보면 한국에서 일자리는 차고 넘쳐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늘어난 취업자는 9만7000명에 불과했고, 실업자는 107만여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실업률도 3.8%로 200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정부는 지난해 일자리사업에 20조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심각한 고용성적표를 받아들었다면, 정부의 일자리사업 정책이 잘못됐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일자리사업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뒤 6개월 이상 일하고 있는 사람은 65만여명에 그쳤다. 짧은 일자리 경험을 징검다리 삼아 민간기업 취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던 ‘직접 일자리사업’에 81만여명이 참여했으나 취업률은 17%에 그쳤다. 직업훈련 참여자 346만명 중 실업상태에 있던 사람은 30만명이었고 이 중 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46%에 그쳤다. 고용장려금 참여기업이 실제 고용한 인력도 13만여명이었고 이 중 15%는 6개월 안에 일터를 떠났다. 고용·새일 센터를 통해 44만명이 취업했으나 이들 중 절반 가까이는 6개월도 채우지 못했다. 장년고용안정지원금과 고용안정장려금 사업 등 내용은 같으면서 이름만 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일자리사업이 중복지원에 ‘알바’ 수준의 단기 일자리 제공에 그치고, 취업상담·고용유지 수준에 머물렀다면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정부도 올해부터 중복사업을 통폐합하고, 저성과사업은 ‘일몰제’를 도입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폐지하는 등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일자리 예산을 25조원으로 대폭 늘리면서도 직업훈련 예산은 4.8%를 줄여 2조1700억원만 편성했다고 한다. 정부의 일자리사업은 취약계층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주목적이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 플랫폼사업 등 새로운 기술문명이 산업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인력이 고용시장에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돈만 쏟아부어 질 낮은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효율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숫자에만 매몰되지 말고, 고용난을 타개할 현실적인 일자리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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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하철 노동자들이 위험하다. 지난달 27일 인천지하철 1·2호선을 관리·운영하는 인천교통공사 소속 기관사 최모씨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최씨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려 휴게실로 들어간 뒤 변을 당했다. 지난 3월에는 지하철 전동차를 운행하던 기관사가 온몸이 마비되는 증세를 호소해 구급차에 실려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기관사뿐 아니라 지하철 승객 모두 위험에 처할 뻔한 상황이었다. 

경향신문 7일자 보도에 의하면, 인천교통공사 노동자들이 만성적인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지하철에서는 올 들어 현장 노동자 3명이 숨지고, 열차 지연사고 2건이 발생했다. 인천교통공사 노조는 인력 부족과 설비 노후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인력 부족은 2016년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심각해졌다고 한다. 인천도시철도 운영 인력은 지하철 노선 1㎞당 24명으로 서울지하철 노선(57명)의 절반 수준이다. 기관사 예비율 역시 3.9%에 그쳐 서울지하철 1~4호선(8%)이나 5~8호선(13%)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러다 보니 기관사가 운행 중 응급상황이 벌어져도 대체 인력이 없어 그대로 운행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아찔하다.  

문제는 인천교통공사의 안이한 상황인식이다. 인천지하철에는 인력 충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조는 지난해 380명의 인력 충원을 요청했지만, 인천시는 20명만을 충원했을 뿐이다. 노조는 지난달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적정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그럼에도 공사 측은 기존 인력의 ‘직무 전환’만 강조할 뿐 추가 인력 채용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 노동자의 건강권이 위협당하고, 대형 지하철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도시 지하철은 가장 친숙하고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의 최우선 덕목은 안전이며, 이를 위한 효율적인 시설관리와 함께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특히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지하철 기관사의 적정 인력 확충은 중요하다. 인천시와 인천교통공사는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 인력 충원을 미적대고 있지만, 적정 인력은 지하철 안전 운행 차원에서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인천시와 교통공사는 인력 충원을 비롯한 인천지하철 노동조건 개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더 큰 화를 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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