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민국’이라 불릴 정도다.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역대 최단 1000만 관객을 모으는 신기록을 세웠다. 왜 이 정도로 난리일까? 돈 많이 들인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다는 충족감을 주는 ‘눈뽕’ 가득 시각효과, 호쾌한 액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물론 마블 콘텐츠를 안 보면 대화에 낄 수 없어서 억지로 본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실제로 마블 스튜디오는 얘깃거리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왔다. 원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대와 연계해 풍부히 해석할 여지를 던졌고, (비록 아쉬운 점이 있을지라도) 다양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며 편견 타파에 초점 맞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인기 있는 사회라고, 그 사회가 작품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곳은 되지 않는다. 포용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문화콘텐츠가 범국민적 흥행을 하는 한국은 포용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이 간극이 나는 흥미롭다.

한국 국민 10명 중 8명은 난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고, 젊은 남성 집단은 난민뿐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통계 지표가 나타났다. 젊은 남성들은 마블 인기를 견인하는 핵심 지지층이다. 차별, 혐오, 폐쇄는 근래의 마블 영화 <블랙팬서> <캡틴마블>에서 지향한 가치와 정반대인데, 주요 마블 소비자들이 마블의 가치와 상이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것을 보면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말도 옛말인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포용적인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를 접했지만, 그 가치에 감응하지는 않아 보이니 말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 쉽고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너무 많기에, 작품 한두 개가 끼치는 힘은 미미할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여운에 빠져있기보다, 허기를 채우듯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삼키게끔 하는 환경이다. 사람들은 ‘이야기 폭식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소비하기를 반복한다. 이야기를 주워 삼키는 동안에는 현실의 고단함도, 외로움도 잊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야기가 사람을 삼키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일. 신화, 역사, 종교 등 거대한 이야기는 그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태극기부대 어르신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반공주의라는 지나간 이야기에 삼켜져, 원혼처럼 현재를 배회하며 울부짖는 사람들.

최근 ‘20대 남성’이라고 호명 받은 집단도 이야기에 삼켜진 이들로 보인다. 말은 바로 해야지, 이들은 사실 모든 20대 남성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이 용어를 사용한 맥락에 따르면 이들은 ‘역차별 시대에 태어나 박해 받는 남자’라는 이야기에 심취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다. “페미는 정신병”이라고 웅얼대고, 불법촬영 피해 여성에게 “함부로 다리 벌리고 다녀 그런 것 아니냐”며 2차 가해하고, “사실 여자들이 일 더 못하는 건 ‘팩트’ 아니냐?”며 임금차별을 정당화하는 그들의 레퍼토리는 발전이 없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본 말을 그대로 따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논리력도 없나 보다. 그들 발언 자체가 여성혐오가 존재함을 입증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집단에 삼켜진 이들은, 본인이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하다보니까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 착각한다. 누군가 경험이나 의견을 나누고자 하면, 일단 방어부터 하고 본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내 주변은 안 그런데?”라며 속 터지게 하는 것이다. 내 편 아니면 적, 이분법으로 나눈 세계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실재하는 피해의 경험들과 문화적 폐단과 제도적 모순을 가린다. 

나는 개인과 개인 간의 다채로운 관계 맺기가 용이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 말이다. 마블도 좋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내 자신을 그보다 더 오래 봐야겠다. 멀리서부터 큰소리로 외치는 아우성들로 세상이 가득하지만, 가까이서 작게 소곤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을 표하는 데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그보다 앞서야 하는 건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기, 스스로의 약점과 두려움을 마주하기, 나의 약함을 숨기려고 타인에게 상처 입히지 않기….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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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논리력, 기억력 등 지능과 연결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뇌에는 훨씬 더 중요한 임무가 있다. 잘 먹고 잘 마시는 일이다. 불완전성 원리를 발견한 괴델처럼 세기의 천재일지라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실제로 괴델은 오랫동안 스스로 음식을 거부한 끝에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먹고 마시기는 단순하고 쉬운 일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로봇청소기를 생각해 보자. 로봇청소기는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자동으로 충전장치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면 청소기가 방 한가운데서 꺼져 있는 경우가 있다. 충전장치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에 대한 예측과 청소기 안에 남아있는 에너지에 대한 진단이 부정확할 때, 혹은 에너지가 부족한데도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최신 로봇청소기도 가끔 실패하는 이 어려운 일을 우리는 능숙하게 해낸다. 늦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프고, 배고픈 상태가 지속되면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 적극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대개는 어디선가 과자라도 찾아서 배고픔을 달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고, 약간의 짜증까지 느끼며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우리는 로봇청소기처럼 꺼지지 않고 살아있다. 뇌는 어떻게 이처럼 대단한 일들을 해낼까? 배고픈 상황을 인지하기는 어쩌면 쉬울 것도 같다. 위장이 오랫동안 비어 있는 것을 탐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갈증이라면 어떨까? 목이 마르다고 몸이 쪼그라드는 것도 아닐 텐데. 생쥐를 활용한 최근 연구에서 뇌가 어떻게 갈증을 느끼는지가 밝혀졌다. 

■ 갈증의 인식

생명 활동이 이뤄지려면 체액의 삼투압이 일정한 범위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농도가 다른 두 액체 사이에 반투과성 막이 있으면,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용매가 이동하려는 압력이 생기는데 이를 삼투압이라고 한다. 배추에 소금을 뿌려두면 물이 빠지는 것은, 배추 세포 안쪽의 농도가 소금의 농도보다 낮아서 반투과성 막인 세포막을 통해 물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삼투압이 농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체액의 삼투압을 유지하려면 목이 마를 때 아무 액체나 마셔서는 안된다. 순수한 물처럼 체액보다 농도가 낮은 액체가 좋으며, 바닷물처럼 짠 물이나 콜라처럼 농도가 짙은 음료수는 오히려 갈증을 유발한다. 

물을 마셔서 체액의 삼투압이 변하기까지는 수십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내장을 통해 흡수된 물이 온몸 구석구석을 도는 혈액의 삼투압을 바꾸고, 이를 뇌가 인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이 마를 때 어떤 액체든 마시는 즉시 갈증이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왜 그럴까? 액체를 마시면 입안에서 액체의 부피감이 느껴지는데 이 정보가 뇌에 전해지면, 갈증을 신호하는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일단 약해지기 때문이다. 갈증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약해지면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 물을 찾는 행동이 줄어든다. 

마신 물은 식도를 거쳐서 위와 장으로 내려간다. 장에서는 삼투압을 측정할 수 있다. 이 신호가 미주신경을 통해서 뇌로 전해지면 아까의 갈증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조절된다. 순수한 물처럼 삼투압 유지에 도움이 되면 갈증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계속 낮은 채로 유지되고, 짠 소금물처럼 높은 농도가 탐지되면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다시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뇌가 직접 혈액의 삼투압을 측정한다. 혈액의 삼투압이 정상화되면 갈증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낮아진다. 

■ 갈증의 해소

갈증을 탐지하는 것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산에서 물병이 비었는데 목이 마른 상황을 생각해보라). 그래서인지 갈증의 탐지에는 시상하부 안쪽의 비교적 작은 영역이 관여하지만, 물을 얻기 위해 움직이고,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여러 영역에 흩어진 다수의 신경세포들이 협응한다. 생쥐를 활용한 다른 최근 연구 덕분에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연구에선 무려 34개의 뇌 영역에서 2만4000여개 신경세포의 활동을 측정했다. 길이가 수㎜이고, 단면의 가로·세로가 수십㎛인 작고 가느다란 막대를 상상해보자. 이 막대의 표면엔 수백개의 작은 전기 센서가 타일처럼 부착돼 있다. 이 막대를 생쥐의 뇌에 꽂아넣으면, 막대가 통과하는 여러 뇌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들의 전기적인 활동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방대한 연구는 측정 기술의 발달 덕분에 가능했다. 연구자들은 생쥐가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켜두고, 앞서 설명한 막대를 다른 위치에 여러 번 내림으로써 전보다 적은 숫자의 생쥐(21마리)만 가지고도 2만4000여개의 신경세포를 관측할 수 있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그에 맞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는 기계학습 기법들이 활용됐다. 

생쥐들은 목이 마르거나 마르지 않은 상태로 실험에 참가했다. 어떨 때는 A향기가, 어떨 때는 B향기가 제시되었는데, A향기가 나온 다음에는 눈앞의 튜브를 핥으면 높은 확률로 물을 마실 수 있고, B향기가 나온 다음에는 튜브를 핥아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생쥐들은 목이 마르지 않거나, B향기가 나오고 있을 때는 물을 얻으려고 튜브를 핥는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측정한 신경세포의 과반수가 갈증 여부, 향기의 종류, 핥는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 마시기처럼 단순한 문제의 해결에도 여러 영역에 흩어진 신경세포들의 협응이 필요한 것이다. 

■ 물을 마시는 대단한 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면서 잠을 깼을 것이다. 아침의 목마름에 대비해 잠들기 전에 자리끼를 준비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 한 잔 마시는 일에도 나름의 신비가 있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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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조금 늦게 식당에 들어갔더니 이미 상이 차려져 있었고 다들 막 식사를 하는 참이었다. 나는 후배 옆 빈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게 밥을 먹었다. 수저를 내려놓고서야 내 옆의 후배가 찌개를 전혀 먹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넌 왜 찌개를 안 먹니? 하고 묻다가 퍼뜩 깨달았다. 뚝배기로 나온 찌개는 두 사람에 하나씩이었다. 그걸 내 찌개인 줄만 알고 나 혼자서 다 퍼먹어 버렸던 거다. 멋쩍고 부끄러웠다. 식사 자리에 조금 늦어 차림상의 면모를 한눈에 알아채지 못한 탓도 있었다지만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피할 수 있는 실수이기도 했다. 이미 식사는 끝나버렸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후배는 선배가 맛있게 먹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 말에 심사가 복잡해졌다. 비록 나는 먹지 못했으나 선배가 맛있게 먹었으니, 그게 누구든 맛있게 먹은 사람이 있었으니 다 괜찮다는 후배의 넉넉함에 비하자면 나는 얼마나 초라한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이런 실수, 정말 실수라면 그나마 다행일 이런 일들을 여전히 겪는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후배가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면 나는 속으로 후배가 전혀 괜찮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언제까지나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선배가 맛있게 먹었으니 괜찮다는 말은 괜찮다는 말에 하나의 설명이 덧붙여진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괜찮은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하는 말이었고 실수를 저지른 이의 마음까지 다독이고 배려하는 힘을 지닌 말이었다. 

배려란 그냥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 어떤 생각을 할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사소한 일도 무겁게 여길 줄 알아야 가능한 태도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게 여의치 않은 일이라는 건 사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알았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반쯤 찢어지게 가난했고 바다와 먼 내륙 지역이라 아주 가끔 밥상에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그런 날 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생선대가리밖에 남지 않은 그걸 드셨다.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터라 무심히 지나쳤는데 어느 날인가는 제법 머리가 굵었다는 티를 내고 싶었는지 어머니에게 왜 그걸 드시는지 물었다. 그러자 당신은 원래 생선대가리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마도 어두육미 운운하며 수긍했던 것 같다. 그다음 날이었다. 동네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농담을 듣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어머니 생신이라며 돼지비계를 잔뜩 사더랴. 왜 살코기를 안 사고 비계만 사냐고 물으니깐 우리 어머니는 원래 고기 안 좋아해요, 비계만 좋아해요 하더랴. 참말로 이런 바보가 또 어디 있겄냐. 자식 먹이려고 살코기 싫다 하신 건 모르고 우리 어머니는 비계만 좋아하신다니.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는데 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농담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생선대가리를 좋아하시는구나 했던 내가 바로 어머니는 비계만 좋아한다고 했던 그 사람임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동네 형은 내 속도 모르고 계속 말했다. 그런 불상놈의 자식, 남의 속은 눈곱만큼도 헤아리지 못하고 저만 아는 자식, 세상에 누군들 그 좋은 살코기를 마다하고 비계만 찾겠냐, 그렇게 살면 세상 헛산 거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동네 형이 다 알고서 나를 나무라는 것만 같았다.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알 수도 있었을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나는 아마도 사색이 되었을 거다.

세월이 흐른 뒤 어머니가 바다에서 난 것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생선을 굽고 살을 발라 자식 입에 넣어주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당신에게 물었다. 그 좋아하던 생선을 어찌 참으셨대요? 당신은 이렇게 답했다. 네가 하도 맛나게 먹은 게 아무렇지도 않았어야. 맛있게 드셨으니 괜찮아요. 살면서 나도 이런 말 한번쯤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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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이인영 의원이 선출됐다. ‘86그룹’ 대표주자로 3선 의원인 그는 8일 의원총회에서 결선투표 끝에 125표 중 76표를 얻어 20대 국회 마지막 여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당초 친문계 핵심인 김태년 의원과 팽팽한 승부를 벌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1차투표에서 54표를 얻어 김 의원(37표)을 크게 앞섰고, 결선에서도 김 의원을 27표 차로 너끈히 물리쳤다. ‘혁신과 통합’을 내세운 그에게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집권 3년차 개혁을 원칙있게 뒷받침하고, 계파틀에서 벗어나 당 혁신을 이뤄달라는 의원들의 뜻이 표출된 결과로 보인다.

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인영 의원(가운데)이 꽃다발을 받은 후 두손을 높이 들고 있다. 왼쪽부터 홍영표 원내대표, 이 의원, 이해찬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가운데)가 8일 이해찬 대표(오른쪽), 홍영표 전 원내대표와 함께 두 손을 높이 들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 원내대표의 가장 시급한 임무는 파행 중인 국회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선거법·개혁입법 패스트트랙에 반발, 국회를 팽개치고 장외로 뛰쳐나간 자유한국당으로 인해 멈춰선 국회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된다. 여야의 대치로 3월에 이어 4월 국회도 헛돌면서 민생과 현안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한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당장 강원 산불 등 재난 대책과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급선무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 주요한 민생·노동 입법도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올린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역시 여당의 새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여야의 협상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당은 7일 부산을 시작으로 ‘민생투쟁 대장정’이라는 전국 순회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지지세 결집에 취해 장외투쟁 수위를 높이면서 계속 끌어갈 요량인데, 이렇게 국회를 버리고 민생을 외면한 대가는 혹독하게 돌아올 것이다. 정녕 ‘민생’을 위해서라면 장외로 나돌 게 아니라 원내로 돌아와야 한다.

이 원내대표는 이제 대치정국을 풀고 국회 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외로 나간 야당을 다시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건 여당의 몫이다. 이 원내대표는 우선 단절된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교착정국을 타개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여야 모두 한발씩 물러나 대화의 물꼬를 터야한다. 그리하여 장외가 아닌 국회에서 민생과 개혁을 놓고 ‘박 터지는’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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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샘, 다음엔 합수 샘 이런 ‘히읗 자’ 연락처가 내게 있다. 한수 형은 가수 정태춘 형. 내 산골짝 집에 몇차례 오시기도 했다. 다음에 윤한봉, 합수 샘은 고향 선배다. 오월 광주의 미국 망명자. 돌아가신 뒤 기념사업회가 전남대학교 앞 공간에 같이 둥지를 튼 일도 있었다. 귀천하신 뒤에도 이름을 감히 지우지 못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단체 초대로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 망명자 합수 형이 그곳에서 허리띠도 풀지 않은 채 눕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서 오월 동지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망명자의 노래 같은 신산한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 신보에 담긴 ‘나그네’와 ‘빈산’. 먼 오랜 날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스멀거렸다. “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 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한수야, 부르는 쉰 목소리에 멈춰 서서 돌아보니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방랑자, 망명자들, 홀로된 자들. “어미마다 제 아이 불러가고 내가 그 빈들에 홀로 섰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가네. 나도 애들처럼 밟고 가네.”(나그네) 노래는 신산하게 부는 바람처럼 끝나고, 고꾸라진 팽나무가 보이는 외딴집에 사는 나는, 멀리 시내의 불빛이 깜박거리는 빈산에 기대 다음 노랠 듣는다. “억새 춤추는 저 마을 뒤 빈산….” 내일 아침엔 음반 잘 들었다는 감상문을 보내드려야겠다.

나그네라는 말은 ‘나가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다, 나가다. 집 나간 사람. ‘네’는 사람을 뜻한다. 집을 나가면 누구나 개고생. 집에서 내쫓긴 순간 고생길. 어쩌면 우리 모두 집을 나간 나그네 신세인지 모른다. 스스로 망명자가 된 사람도 있다. 망명자들의 눈은 푸른 창공 같고 한없이 가난하다. 

두 눈 질끈 감은 사람. 이 세계의 추한 혼탁에서 벗어난 용맹정진 수도자도 마찬가지다. 또한 남미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책을 읽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을 가리켜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라고 했다. 저 길거리의 사람들, 저 무수한 불빛 지붕들 아래에 더러 나그네 망명객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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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 5·18민주묘지의 광주 민중항쟁추모관에는 고정희·하종오 등 시인들의 추모시가 걸려 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박용주의 ‘목련이 진들’이다.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어디 목련뿐이랴/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 눈부신 흰빛으로 다시 피어/살아 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우리들 오월의 꽃이/아직도 애처로운 눈빛을 하는데/한낱 목련이 진들/무에 그리 슬프랴.’

박용주는 전남 고흥 풍양중 2학년 때인 1988년 4월, 이 시로 ‘오월문학상’을 받았다. 중2 소년이 대학생·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을 거머쥔 것은 이례적이다. 광주에서 태어난 박용주는 1980년 광주 서석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5·18을 겪는다. 이 시에는 그가 어릴 때 목격했을 광주의 참상이 슬프게 배어 있다. 시는 1992년 가수 겸 작곡가 박문옥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목련이 진들’은 박용주 시집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와 박문옥 음반 <양철매미>에 각각 실려 전한다. 

전북 부안여중 3년생인 이슬양(15)은 3년 전인 2016년 11월 전북교육청이 주최한 ‘너도나도 공모전’에 동시 ‘가장 받고 싶은 상’을 출품해 이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짜증 섞인 투정에도/어김없이 차려지는/당연하게 생각되는/그런 상 …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엄마 상/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슬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양은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생전에 음식을 차려주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를 통해 평소 못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밥상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이양의 동시도 최근 여수의 초등학교 교사 조승필에 의해 동요로 만들어졌다. 또 공동 에세이집 <내가 엄마니까>에도 실렸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어린이의 글이 모두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동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간절해야 한다. 느낌이 절실해야 한다. 동시 ‘가장 받고 싶은 상’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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