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통계와 데이터 프로그래밍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친 지 5학기째다. 매 학기 지자체나 정부부처 공공데이터를 통해 멋진 그래프를 그리고 분석도 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 약속하지만, 많은 문과 학생들은 통계학의 간단한 수식 몇 개만 띄워도 질겁하기 일쑤다. 그래도 매 학기 몇몇은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혼자 씨름해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이다. 높은 수준의 분석능력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알고리즘과 높은 수준의 통계학인데, 그것까지 사회학과 수업에서 다루긴 어렵다. 미적분학, 선형대수, 확률통계론, 이산수학 같은 공대의 수학 수업을 학생들에게 추천했다. 학과에서 날고 긴다는 학생들임에도 공대 수업이어서 겁이 났는지 성적은 기대하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학과 학생들은 공대와 수학교육과 등으로 원정을 나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공대의 수학 수업을 듣는 사회학과 학생들이 수업의 ‘에이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이 지방대 ‘수학 포기자’ 문과 학생들에게서도 효과를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공대로 간 사회학과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을 한 건 맞지만, 더 중요한 요소는 공대에도 수학 포기자가 많고, 아예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거였다. “어렵다”는 생각으로 공학 기초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충만한 문과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의지만으로 수학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수들도 지방대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갖고 있는 수학에 대한 ‘울렁증’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쉬운 것부터 시작해 소박한 성취를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문과 친구들도 따라갈 수 있었다. 확률통계론 수업은 고등학교 ‘확률과 통계’ 과목 복습부터 시작하고, 선형대수나 미적분학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것들은 대학의 기초 수학과목이 아니라,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마쳐야 할 ‘준비과정’과 다름이 없었다.

지방대 공대 교수와 학생들의 고충이 이해가 갔다. ‘FM’대로 수준 높게 가르쳐서는 학생들의 성취가 따라오지 못하니, 정말 쉬운 수준부터 끌고 갈 수밖에 없는 교수.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흥미를 많이 느끼지 못한 이과 학생이었으나 대학에는 가야 한다는 말에 억지춘향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 최소한 1년, 공학 공부의 기초를 만드는 ‘프렙 스쿨’(대학 예비과정)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래야만 4년 공과대학의 교과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프렙 스쿨을 지방대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안 그래도 공부가 어렵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생들이 늘어 골머리를 앓는데, 1년 더 공부시키는 게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방대 공대생들의 진로가 우려된다. 언젠가 만난 대입 컨설턴트는 “이공계는 전공이 중요하고, 문과는 학교가 더 중요하다”고 취업 문제에 대해 정리했다. 문과 학생들을 기업에서 뽑을 때 어떤 전공의 어떤 과목을 이수했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공대 출신들은 구직시장에서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전공에 따라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전공과목이 직무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기업들이 반도체학과처럼 계약 학과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로 특화된 이론 및 실습 수업을 들었을 경우 좀 더 빠르게 실무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다양한 대학의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이수했을 때 서로 같은 수준의 역량을 보증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제조 대기업들은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수한 공대생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공장마저 우수한 공대생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 지으려고 한다. 지방정부들은 대기업 사업장을 입지시키면 많은 문제가 풀릴 것처럼 말한다. 그사이 사라지는 것은 평범한 다수를 형성하는 지방대 공대생들과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대기업 계약 학과나 특성화 과정을 지방대가 많이 유치하여 학생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서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 방법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동등한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촘촘한 제도와 교육과정의 설계 없이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산업·교육·노동정책은 평범한 공고생들의 교육과 일에 대해 고민을 했고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진행했다. 최근 20년간은 우수한 인재에 대한 고민만이 넘쳐났던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나 제조업의 진화 같은 전환을 위해 정책이 좀 더 집중할 대상은 언제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커리어를 갱신하려는 우수한 엔지니어보다는 지방의 제조업 현장을 지키며 꿋꿋이 일하고 있는 다수의 엔지니어들이 아닌가 싶다. 앞서서 끌고 가는 사람 한 명이 있으려면 든든하게 뒤를 받치는 수백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대학의 공대 학부에서도 동등한 수준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끔, 그리고 현업의 엔지니어들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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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4일부터 4월29일까지 국회는 무법천지였다. 채이배 의원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의원실에 감금당했고, 국회 사무처 사무실들이 점거당했다. 팩스로 접수되던 법안이 훼손됐고, 팩스도 파손됐다. 국회의장이 경호권까지 발동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특수주거침입, 특수감금,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회의방해 등의 죄로 처벌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교사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는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한다. 황교안 대표는 ‘결사저지’를 지시했고 현장을 격려 방문하기까지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점거 현장을 진두지휘하는가 하면, 채이배 의원의 감금을 전화로 지시했다. 

조폭 사건에서도 폭력에 직접 참여했든 그러지 않았든 조폭 두목을 더욱 무겁게 처벌한다. 과거 대학생들, 노동자들이 건물 점거를 했을 때에도, 수사기관은 배후세력이라면서 학생운동 지도부나 노동운동 지도부를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대표가 그런 일을 하던 사람이다. 

문제는 이렇게 명백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까라는 것이다. 제1야당의 대표, 원내대표,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이런 난동사태를 벌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헌법이 정한 평등의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다. 만약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조폭 두목들이 ‘법 앞의 평등’을 외치며 ‘우리만 왜 처벌했냐’고 항의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지금 검찰에겐 수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남부지검은 국회 난동사태에 대해 녹색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이 고발한 사건들을 영등포경찰서에 내려보냈다. 검찰은 수사지휘만 하고 실제 수사는 경찰이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너무 소극적인 태도이다.

게다가 문무일 검찰총장은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식의 반응까지 보였다. 국회가 입법권을 통해 검경의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집단인 검경을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입법권으로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검찰총장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검찰총장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데 과연 검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기소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별검사제이다. 그러나 개별 법률로 특별검사법을 제정하는 것은 한국당의 반발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경우에 활용하라고 만들어진 제도가 있다. 바로 2014년에 만들어진 상설특검제이다. 

정식 법률 명칭이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인 상설특검제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도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미국의 제도를 참고해 박근혜 정권 시절에 입법됐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활용되지 못했다. 그 이후에 있었던 최순실·박근혜 특검이나 드루킹 특검은 국회가 별도의 개별 법률을 만들어 특별검사를 임명한 사례이다.

그러나 상설특검은 활용가치가 있는 제도이다. 별도 법률을 만들지 않아도 국회의 의결이나 법무부 장관의 판단에 의해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처럼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이 문제되는 경우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임명 절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법무부 장관이 특별검사 임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이 국회에 구성된 특별검사추천위원회에 2명의 후보자를 추천해달라고 의뢰하면 된다. 추천위원회는 의뢰를 받고 나서 5일 이내에 추천을 하게 되어 있다. 7명의 추천위원회 구성도 법률로 정해져 있다.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당연직이고, 그 외 4명은 원내교섭단체들이 추천해서 국회의장이 임명한다. 임명된 특별검사는 20일의 준비기간을 거쳐 60일간(30일 연장 가능) 수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국회 난동사건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치니 이 정도 수사기간이면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한국당도 자신들이 폭행당했다면서 고발해 놓은 사건들이 있으니 그 사건까지 묶어서 특별검사를 통해 공정하게 수사를 하자는 데 반대할 명분이 없다. 또한 이 제도는 박근혜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니,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정치적 시비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청와대나 여당도 당장의 정치적 고민 때문에 상설특검제 활용을 망설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지금의 검찰, 경찰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이 정치적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당 입장에서는 추가경정예산 등 제1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있다. 그러나 국회를 며칠 동안 점거하고 난동을 부려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헌법이 파괴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처벌받지 않는다면 헌법 11조 2항이 금지하고 있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적당히 정치적으로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이번 국회 난동사태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상설특검을 통해 철저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고 법치주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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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은 짧은 기사나 칼럼, 책 한 쪽의 구절 때문에 꽤 긴 시간 상념이 이어질 때가 있다. 이번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칼 포퍼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 과정을 다루었다는 신간 소개가 생각을 불렀다. 다니엘 스테드먼 존스의 <우주의 거장들>이라는 책이다. 안 읽은 책을 가지고도 30분씩 떠들곤 하는 이 업계의 버릇대로 예전 기억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지나가는 버스 뒤꽁무니에서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라는 커다란 광고 글귀를 본 기억부터 떠올랐다. 한 경제신문의 광고인데, 그들이 신봉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말인 것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공짜점심은 없다는 저 도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이 역겨워 속이 울렁거렸던 기억.

1997년이었다. 외환위기가 찾아오고 사회 전체가 뒤숭숭했다. 1930년대 대공황의 흑백사진 같은 풍경이 눈앞을 스쳤고 세상이 곧 망할 듯했다. 나는 당시 잘나가던 경제경영 저자가 때맞춰 써낸 원고의 편집을 맡고 있었다. 저자가 제안한 책 제목이 바로 ‘공짜점심은 없다’였다. 결국 다른 제목을 붙였지만, 그 말을 접한 순간부터 거부감을 감추느라 애써야 했다. 역겨운 말이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려면 싫은 일도 맡을 수밖에 없는 처지야말로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을 입증하는 듯해서 더 싫었다.

젠장,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내가 못살거나 망하거나 이 모양인 것은 내가 언젠가 먹은 점심을 공짜라고 착각해서 널름 받아먹은 탓이 아니야. 보상이 언제나 숨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비용을 치르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야. 인간으로 태어나 이 사회에서 사는 한, 그는 이미 자신의 값을 하는 것이고 공짜점심쯤 먹을 권리가 있어. 내 푸념을 한 친구가 받아주었다. 가난한 사람이 없다면 부자의 성취도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그들 역시 제 몫을 하고 있는 거겠지. 비록 멸시와 동정의 방식일지언정.

공짜점심론은 가난의 이유를 개인화한다. 프리드먼의 주장만 해도 그러하다. 정부의 공공지출을 통해 대중의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경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케인스의 처방에 대해 프리드먼은 그런 정부 개입, 곧 ‘공짜점심’은 반드시 다른 비용을 일으키는데, 이를테면 높은 세금으로 경제 의욕을 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자본이 쌓아올린 기왕의 부라는 것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란 말인가? 기업과 노동자가 똑같이 책임을 나눠 가지는 동등한 원자란 말인가? 나는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일찍이 버나드 맨더빌이 그의 책 <꿀벌의 우화>에서 개인의 탐욕과 이기적인 욕망 추구가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한 데서 얼마나 더 나아간 것인지.

알다시피 꿀벌들이 그렇게 분발하여 거둔 성과는 늘 어떤 기업, 어떤 자본들이 크게 잡수시고 나머지를 찔끔, 분발한 벌들에게 떨어뜨려 주지 않았나. 분발자는 나의 분발이 성취한 그 놀라운 보상에 엉엉 울며 감동하고, 자기계발의 빛나는 성공담을 좇아 다시 분발의 최전선에 앞장서지 않았나. 그런데도 공짜점심 같은 건 없으니 각자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고? 모두 공평한 비용을 치르기만 하면 좋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아마도 <우주의 거장들>이라는 책은, 욕망에 충실한 개인들의 합리적 결정과 조정이 이루어낼 조화로운 번영세상을 우주적 보편성으로 믿은 거장들의 헛된 신념을 다루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기심의 발로든 정당한 욕망이든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취하는 결정과 행동은 늘 합리적이며 따라서 조화로 나아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경제, 정치, 철학의 총체적 신성동맹은 ‘리버럴’이라 부르는 정치적 자유주의와도 뗄 수 없을 것이다. 그 ‘열린 사회’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평해진 세상이야말로 자본만으로 이루어진 꽁꽁 닫힌 보편성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우연하고도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는 일쑤 자기희생이나 양보와 절제로도 욕망의 실현 못지않은 행복감을 누린다. 세상에 공짜점심은 많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 불시의 행운, 선하고 정의롭게 사는 이에게 찾아오는 평화. 우리 의지의 준칙은 경제적 욕망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오거나 창공의 빛나는 별에서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공짜점심이 과연 없느냐는 질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많은 분들이 나서주었다. 포스팅에 줄줄이 달린 댓글에 공짜점심을 사주겠다는 지인들이 줄을 섰다. 아니, 내가 공짜점심 먹고 싶어서 이런 글을 썼나. 뭐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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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법무부에 교육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핵심부처 관계자들이 모여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외국인 정책’을 주제로 회의를 개최했다. 참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유학생, 혼인이주자, 외국인 노동자, 이주아동, 난민 등 다양한 체류 목적을 가진 외국인이 머물고 있기 때문에 각 부처에서 실시하는 외국인 정책이 유기적·통합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대감을 품고 본 보도자료에는 그동안 시행되어온 정부 정책 중 국민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는 일부 다문화 정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순간 보도자료가 누락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존 정부 정책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새로운 외국인 정책방향을 논의한 첫 회의 결과가 ‘정부가 그동안 다문화가족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주었다’는 것뿐이라니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개선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부분이 있다면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복지와 관련한 지원정책(주택, 보육, 학자금 등)은 소득을 선정기준으로 하고, 사회적 다양성 증대를 위한 제도(대학 특례입학, 특별전형 등)는 그동안의 지원현황을 파악하고 정책 효과성을 차분히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존 정책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한다면 그동안 다문화가족에 대한 정책이 시혜적 지원정책 위주로 이루어진 것인지, 당사자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기보다 편의주의적으로 기존 지원정책에 억지로 끼워 넣어왔던 것은 아닌지 정부의 진지한 자기반성이 먼저다. 제도를 만든 당사자가 그에 대한 반성문을 쓰면서 자기 잘못에 대한 고백 없이, 제도를 이용한 사람들이 특혜를 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겁하다.

사실, 급한 일은 따로 있다. 교육부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등록금을 마음대로 올리기 어려워진 대학들이 재정확보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유학생을 유치했고, 교육부는 이에 대해 정원 외 입학허용과 어학연수 기관에 대한 느슨한 인증제도로 사실상 묵인하였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전면적 제도개선과 외국인 고용 사업장에 대한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퇴직금을 출국 이후에 지급하며, 사업주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등 엄격한 통제 정책으로 일관된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이미 그 수명이 다했다. 

2018년 12월 기준 고용허가제에 따라 유입된 통제된 노동이민자의 숫자는 27만명인데, 현실에는 단순노무 업종을 포함하여 자유롭게 취업활동이 가능한 노동이민자의 숫자가 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국제인권기구에서도 고용허가제의 근본적 개선을 권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실상 인신매매와 성매매 착취로 이어지는 현행 예술·흥행(E-6) 체류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이들을 초청한 공연기획사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시급하다. 행정안전부는 외국인에 대한 행정절차에 사각지대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외국인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이후 확정일자와 거소신고를 하더라도 주민등록자가 아니라서 전입가구 열람내역에 등재되지 않아 건물이 경매에 넘겨지는 경우 법원으로부터 경매 통지서조차 받지 못한다.

외국인 정책에 대한 국민의 공감은 늘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권의 침해는 다수의 공감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문명사회의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점이다. 다문화가족과 외국인에게 너무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바로잡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한 나라의 법과 제도를 담당하는 법무부에는 부당한 차별과 인권 침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 의지가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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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을 보면 저조한 기록이 예상되는 장거리 레이스가 떠오른다. 앞서 달리던 1등 주자는 눈에 띄게 지친 기색이다. 2등 주자는 출발부터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레이스를 이어간다. 1위 주자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1·2위의 차이는 좁혀지고 있다. 레이스의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저조한 기록이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누가 1등을 하고, 누가 2등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여권은 페이스를 잃은 1등 주자 같다. 잘 나가는 초반 레이스에 취해 ‘한 번’은 오만했고, 2위 자유한국당의 저질체력에 ‘두 번’은 자만했다. 100m 밖에서 게걸음으로 쫓아오는 한국당을 뒤돌아보며 설렁설렁 달렸고,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힘내” 하고 야유 섞인 빈정거림도 보냈다. 긴장감을 잃었고, 그러면서 집중력은 흐트러졌다.

잘못된 개각은 자만의 꼭짓점이었다.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이런 인사를 단행한 배경이 됐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고위 공직자 인사에 대한 논란과 비판은 ‘이명박 정권’ 때 일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악화됐고, 4·3 보궐선거의 패배는 그 증거로 남았다. 예상을 넘어서는 싸늘한 반응에 여권은 당황한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과정을 복기하고 주변을 둘러봐야 하지만, 오히려 방어적이고 공격적이 되어간다.

실제 여권 핵심부의 이런 심리상태는 확인됐다. 지난 11일 당·정·청 회의에서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발언이 공개된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녹음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는 상황에서 흘러나왔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조바심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민주당 지도부가 한국당을 향해 감정 섞인 조롱을 던지는 것도 불안함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도둑놈들에게 국회 맡길 수 있느냐”(이해찬 대표)라는 말은 감정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선진화법을 무시하고 동물국회를 만든 한국당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집권여당 대표의 언사로는 지나쳤다. 소위 ‘한국당 따위’와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법하다. 게다가 이런 발언은 ‘오만한 여당 VS 한심한 야당’이라는 비호감 구도로 여권을 옭아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KBS가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한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대통령에게 묻는다> 인터뷰에서 송현정 정치전문기자(왼쪽)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도 여유가 없어 보인다. 취임 2주년 대담 때 개각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국민 눈높이에 때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겸허히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인사참사라고까지 표현하는 부분은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 세 채로 25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장관 후보자, 국비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떠나고 아들을 호화유학 보낸 장관 후보자 등을 보면서 서민들이 느꼈을 박탈감을 문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인사에 대한 비판을 수긍하지 않았다. 야권의 공세에 ‘밀리면 안된다’는 정치적 고려가 앞섰던 것은 아닐까.

설상가상, 레이스는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경제는 어렵고, 내치동력을 제공했던 남북관계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국면이다. 위기감은 속도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이어지고, 레이스의 근본전략은 흐트러진다. 

예컨대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관련해 뇌물죄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7번이나 만났다. 투자를 독려해 경제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터지만,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문 대통령이 국정농단에 연루됐던 이 부회장과 친분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체가 어색하다. 현 정부가 내세웠던 ‘재벌개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원칙을 잃어버린 1등, 여러모로 함량미달인 2등. 누가 이기든 최종기록은 좋을 것 같지 않다. 여권이 간신히 승리한다고 해도 뒷맛은 개운치 않을 것이다. 한국당에 간신히 앞선다면 그건 이긴 게 아니다. ‘종북좌파’ 메들리밖에 없는 한국당이 역전승을 거두는 상황은 아예 상상하기도 싫다.

뻔한 말이지만, 출발선에서 했던 다짐을 되새기는 수밖에 없다. 이 정부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실패를 바라는 사람보다 아직은 많으며, 대통령 진심을 믿는 사람들이 한국당 막말에 솔깃해하는 사람보다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여권은 냉정하게 레이스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선거제와 권력기관 개혁 등에 대한 한국당 막말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사참사, 초심을 잃은 듯한 경제기조에 대한 선의의 비판과 우려에는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4주년’ 운운하며 움츠러들 때가 아니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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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 되고

내가 엄마 되면

그 자장가 불러줄게

엄마가 한 번도 안 불러준

엄마가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자장가 불러줄게


내가 엄마 되고

엄마가 나 되면

예쁜 엄마 도시락 싸

시 지으러 가는 백일장에

구름처럼 흰 레이스 원피스

며칠 전날 밤부터 머리맡에 걸어둘게


나는 엄마 되고

엄마는 나 되어서

둥실


하재연(197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재연 시인은 시 ‘하나의 사람’에서 우리 개개인의 단독적인 존재를 빗대어서 “희고 차가운 빙하의 껍질 위에/ 대고 있는/ 나의 빨간/ 두 개의 발바닥”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우리는 외롭고 추운 존재이다. 

그러나 엄마가 있고, 엄마가 있어서 엄마는 딸과 아들을 품속에서 기른다. 낮고 고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잠을 재우고, 도시락을 싸서 쥐여주고, 원피스를 사서 입힌다. 누워 곤히 잠이 든 아이의 머리맡에 당신이 애써 마련한 것들을 가만히 놓아둔다. 아이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로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풍선처럼, 흰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도록. 그러나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엄마의 어린 딸도 미래에는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엄마, 하고 불러본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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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 하면 흔히 ‘외인부대’를 떠올리지만 진짜 최강의 특수부대는 따로 있다. 프랑스의 그린베레, 즉 해군 특수부대다. 그런데 이 부대는 외인부대처럼 전통에 빛나는 부대가 아니다. 2차대전 중 드골 장군이 망명지 영국에서 ‘자유프랑스군’으로 급조한 것이 시발이다. 이들 부대원들은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훈련받은 뒤 프랑스 내로 투입돼 레지스탕스와 협공을 펼쳤다. 우리로 치면 광복군이었던 셈이다. 이들 대원 중 제1해군특공대대 소속 오귀스탱 위베르(Augustin Hubert) 중위가 있었다.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그는 길을 여는 임무를 완수하다 전사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레지스탕스는 해체됐지만 특수부대들은 인도차이나와 아프리카 등 식민지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유지됐다. 현재 700여명의 대원이 7개의 부대에 편성돼 있다. 이들은 작전 중 산화한 초창기 대원의 이름을 부대명으로 쓰고 있는데, 그중 위베르 부대가 핵심이다. 이 부대는 대외정보기관인 대외안보총국(DGSE)과 함께 대테러 임무를 수행한다. 2개 중대에 부대원이 100명이라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나머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 내 최정예팀 ‘데브그루’와 비슷하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바로 그 팀이다. 두 부대가 다른 특수부대에서 뽑은 최정예 대원들로 구성된다는 점도 같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인질로 잡혔다 구출된 한국 여성(왼쪽)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빌라쿠브레 공군기지에 도착해 마중나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 뒤에서 걸어가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위베르 특공대가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무장조직으로부터 자국인 2명과 한국인 등 인질을 구출해 내 유명해졌다. 작전 도중 특공대원들이 인질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쓰지 않고 무장조직원들을 급습하다 대원 2명이 희생됐다. 이 때문에 정부의 여행금지를 무시하고 아프리카에 여행 간 인질들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한다. 특수부대 작전은 인질 구출이나 목표물 제거는 물론 퇴각까지 완벽해야 성공한다. 시뮬레이션으로 수십 번 작전을 검토해도 변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스텔스 헬기가 불시착하자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버락 오마바 대통령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은 유명하다. 8년 전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보여준 능력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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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사람이 먼저’인 세상,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경제정책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내걸었다. 저소득·서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소비가 일어나고 매출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것이 투자로 이어지면서 경제를 성장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50년간 대기업과 수출 위주의 성장정책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소외층을 양산했다고 보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기존의 틀로는 심화되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넘어서기 어렵다고 봤다. 고도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저소득·취약계층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후 2년이 흘렀다. 기대와 달리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고소득층의 소득은 늘어났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일자리는 연 30만명 수준의 증가에서 10만명 수준의 증가로 하락했다. 정규직·대기업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은 감소했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포함한 가구 간 소득불평등은 확대됐다. 일자리 감소의 충격이 소득하위 계층에 집중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처방전이라도 용량을 초과해 투여했을 경우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과속이 문제였다. 이는 취약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문재인 정부가 보호하려는 계층이다. 이상을 현실정치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부분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KBS가 생방송으로 진행한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대통령에게 묻는다>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3년이 남았다. 우려되는 건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최저임금 논쟁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경제과제는 산적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털어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데 나서야 한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외환위기 이후 가파르게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다. 상위 1% 계층의 소득 집중도도 상승했다. 이런 추세는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심화됐다. 수수방관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한국의 불평등 심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규모별 격차와 이중구조,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중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순간 ‘철밥통’이 되고 나머지는 ‘루저’가 되는 사회가 정상일 수 없다. 정부는 기업 간 취업형태 간 임금격차와 이중구조의 해소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 문제도 정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력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제한적으로라도 인력 구조조정을 허용하되 보완하는 방안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실업급여와 재교육을 받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불평등 확대는 소득뿐만 아니라 부의 상속에도 기인한다. 누진세제를 포함한 재분배 정책도 확대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곤란에 빠진 개인이나 가구의 재출발을 지원해 재기할 길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소득양극화와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박탈감으로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가속화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이는 해체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제의 개선 없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공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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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 대다수에게 ‘셀프 면죄부’를 주자 비판이 거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9일 ‘양승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 10명에 대해 추가로 징계를 청구했다. 검찰이 지난 3월 사법농단 수사를 마무리하며 비위 사실을 통보한 법관은 66명이었다. 대법원은 이들 중 절반은 징계시효(3년)가 지났고, 시효가 남은 법관 상당수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권순일 대법관조차 징계 대상에서 빠졌다. 그나마 징계가 청구된 10명 중 5명은 이미 기소된 상태이고, 3명은 지난해 6월 1차 징계 청구대상에 포함된 터다. 추가 조사를 이유로 늑장을 부리더니 결국 솜방망이 징계로 끝난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 기소된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에서 징계받는 법관은 1차 징계자 8명을 포함해도 10여명에 그치게 된다. 사법농단에 관여하고도 기소나 징계를 면한 법관들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재판을 계속할 것이다. 시민으로서는 이들에게 재판을 받게 돼도 알 길이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5월 13일 (출처:경향신문DB)

김 대법원장은 “이번 징계청구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조사 및 감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관료적·폐쇄적 사법제도와 문화를 개선함으로써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법농단을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변호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국민은 판사를 고를 수 없다. 명단과 비위 내용을 비공개하면서 폐쇄적 문화 개선을 논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에 와닿겠는가.” 주권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과거 잘못을 철저히 규명해 공개하고 관련 법관들을 엄정히 처벌하는 게 우선이다. 국회도 하루속히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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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법무부로 발령 났습니다. 검사장의 숨겨진 딸이냐는 축하인사를 받으며 출근하여, 전임자로부터 ‘전직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결격사유 검토’ 파일을 인계받았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장 결격사유인 내란죄 등으로 실형 판결을 받은 전과가 있는데, 특별사면으로 결격사유가 해소되는지를 검토한 자료였습니다. 특별사면은 형 집행이 면제되는 효력이 있을 뿐 유죄 판결 자체를 지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장 결격자임이 명확하고 법무부 역시 유권해석을 이미 그렇게 한 상황.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바람이 반대로 거세게 불기 시작했고, 불행히도 제가 지뢰를 인계받은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결격사유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공허했지요. 법무부 장관의 뜻은 확고했고, 그 뜻을 관철시킬 의지로 충만한 검사들과의 논쟁은 무의미했습니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여야 할 검사가 상급자의 주문에 따라 법률 해석을 뒤집을 수 있는 ‘영혼 없는 공무원’에 불과함을 깨달았던 그때의 자괴감을 잊지 못합니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주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고 황급히 출근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으로 오해하고, 검사직을 걸고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도, 왜 하필 내가 담당자일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또 다른 이유로 경악했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2018년 9월 15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한 후 겪은 일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2009년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장례 형식을 논의하는 국무회의. 법무부 장관이 노태우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 쐐기를 박으려는 듯 국가보안법 위반 면소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듯 노태우 전 대통령도 안장이 가능하다는 발언을 굳이 했다고 하더군요. 어느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로 문제 발언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행정안전부에서 그 발언을 삭제한 국무회의 회의록을 제공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해석 타당성은 차치하고 김 전 대통령의 장례 논의에서 가해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그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무례가 참담했고, 국민들을 눈속임하려는 공직자들의 처신은 황당했지요. 그러나, 결국 저는 방관했고, 침묵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무총리실에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해석 논란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은 무조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 소관인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지, 여론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행안부 소관인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며 부칙으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슬쩍 개정할지를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소관 부처 관계자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회의 자리에 법무부 담당자로 저도 참석했습니다. 법 개정은 국회 소관인데, 해석 논란이 없어진다면 제가 더 이상 검사직을 걸 필요가 없겠다 싶어 함께 머리를 맞댔지요. 검사를 오래 하고 싶었으니까요. 부끄럽지만 저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바람개비였습니다.

2011년 6월. 12·12 쿠데타 주역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 전 장군이 사망하자,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두고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과거 행적, 사면받은 실형 전과 등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사실상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초전이었으니까요. 국립묘지의 영예성에 비추어 비리 전과자의 안장은 이례적임에도 안장대상심의위원회 당연직 위원들이 있는 법무부, 행안부 등은 긴밀하게 움직였고, 민간심의위원들은 이에 반발하여 사퇴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져 언론에 보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제 담당은 아니었지만, 위원회에 대신 출석하여 안장 반대표를 던지고 사직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안장 선례와 상식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니까요. 결국 상상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방관하고 침묵했습니다.

2012년 12월.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에 맞서 무죄 구형을 강행하고 수뇌부를 향해 거듭 쓴소리를 하였더니, 정의롭다는 칭찬을 더러 듣고 있습니다. 제 부끄러움의 용량이 다 차, 더 이상 눌러 담을 수 없게 되어 넘쳐흐른 것뿐인데… 사정을 알지 못하는 분들의 과분한 칭찬은 듣기 괴롭기까지 합니다.

지난 연휴 기간, 광주를 지나다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사죄를 드렸습니다. 반성이란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께 약속 드렸습니다. 이 부끄러움을 평생 간직하며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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