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는 농업박람회(Salon International de l’agriculture)가 열린다. 1844년 가축 경연대회에서 유래한 이 박람회는 1964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어 대회마다 약 60만명이 다녀가는 유럽 최대의 농업 관련 박람회다. 축구장 20개 넓이의 전시장에 수천마리의 가축이 등장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전시장을 다 둘러보려면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지난 2월 말에 열린 올해 박람회의 주제는 ‘여성, 남성, 재능(des femmes, des hommes, des talents)’으로 인간과 땅의 근접성과 근원적 뿌리를 강조하였다. 특히 2016년부터 열리는 Agri 4.0 전시는 농업 분야의 디지털 혁신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디지털 농장, 농업 분야에 최적화된 앱,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등을 선보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문화적 DNA가 만들어진다. ‘문화(culture)’라는 단어는 ‘경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유래했다. 어떤 작물과 짐승을 키우는가에 따라 삶의 양태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는 장소에 따라 변용되기도 한다. 들판(agri)에서 경작하는 것은 농업(agriculture)이고, 꽃을 가꾸는 것은 화훼(floriculture)이며, 정원에서 가꾸면 원예(horticulture)라 한다. 현대에 와서 문화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언어, 도덕,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선진국들은 농촌을 잘사는 사회로 만들었다. 달리 표현하면 자기만의 문화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프랑스는 2017년 기준으로 농업인구가 0.7%에 불과하지만, 농업생산은 GDP의 3.5%를 차지하는 농업 선진국이다. 프랑스의 농산물은 유럽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민들은 농업국가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은 다양한 치즈와 와인 등의 농산물로 국민적 정서를 공유하고 나아가 프랑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친환경과 유기농을 중심으로 농업의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농업과 디지털을 결합하여 농업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농업박람회에 프랑스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사실에서 프랑스 농업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농업소득이 낮은 것은 둘째치더라도 갈수록 우리 고유문화의 중심이라는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2017년 현재 농업인구는 242만명, 전체 노동인구의 4.8%이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게다가 1인당 농가소득은 1652만원으로 국민 1인당 GDP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농업의 어려움은 농촌의 공동화를 만들고, 고유의 공동체적 정신을 약화시키고 있다.

농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간 차원의 노력은 꾸준히 있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를 본 농어업과 혜택을 입은 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해,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2017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 동안 1조원을 조성하는 게 당초 목표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현재 모금액은 약 544억원에 그치고 있다.

농어촌기금은 2015년 여·야·정 합의로 농어업인 장학 사업, 복지 증진, 정주여건 개선, 기업과 농어업의 협력사업 지원 등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FTA로 피해를 본 농어업인에 대한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기업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농어촌기금은 공공 투자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농어촌 현안에 민간 부문의 참여와 투자를 유도해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온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농어촌기금은 지난 2년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예를 들면 제주도 서귀포 한라봉 농가는 커피 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비료로 한라봉을 생산하고 있다. L사에서 커피 찌꺼기 비료를 무상으로 공급해 농가의 지출은 줄고, 토양개량 효과로 한라봉의 상품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품질이 좋아진 한라봉을 다시 L사에서 매입해 자사 음료의 재료로 사용하여 농가와 기업 모두의 매출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화력발전소의 온배수를 간척지의 스마트팜 조성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S발전은 35억원을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출연하여 충남 태안군 이원간척지 내에 1㏊ 넓이의 한국형 첨단 유리온실 및 스마트팜을 조성하여 곧 준공을 앞두고 있다. 스마트팜은 에너지비용이 운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연간 약 30억t의 온배수 중 일부를 원예 단지 난방 열원으로 재활용하여 에너지비용을 연간 70~80%까지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농작물을 키우기 적합하지 않은 간척지를 비옥한 땅으로 바꾸고, 이를 통해 농가의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 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상생협력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우리 농업이 지난 60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홀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농업의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한다면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이미 유럽의 선진 농업국들은 농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곡물 위주의 농업에서 벗어나 낙농, 화훼, 농기계와 설비, 스마트팜 등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농업을 첨단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여느 산업 부럽지 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는 왜 동반성장을 말하는가. 어렵고 도달 불가능할 것 같은 가치이지만, 동반성장을 위해 각 주체가 실행하는 하나하나의 노력들이 우리 사회가 극단적 양극화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만큼이나 도농 간 동반성장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지속 가능한 삶에 필수적인 과제이자 꼭 해결해야 할 사안임을 각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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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대북정책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는 듯하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힘주어 말하던 모습은 현장을 가득 메운 15만 평양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충격 이상의 전율을 느끼게 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 당시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이 가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로를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 비난하며 자신의 버튼이 더 크다고 서로 협박했다. 

캐릭터 있는 북·미의 지도자들과 종신권력을 창출한 시진핑 주석, 그리고 한반도 문제에 가장 강경한 아베 총리까지, 한반도는 스트롱맨들의 전장 같았다.

한반도에서 한국은 분명 약한 고리로 취급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는 스트롱맨들과 적절히 조율하며 북핵 협상을 이끌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충돌의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띠와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를 꼽자면, 첫째, 북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어젠다로 복귀시켰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후 북핵 문제는 북한의 거부로 남북대화 의제에서 제외됐다. 2018년 4월의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25년 이상 논의 불가 영역이었던 북핵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루었고, 북·미 협상에 시너지 효과를 제공했다.

둘째, 한국은 남·북·미 정상외교를 주도하며 북핵 협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 북핵 협상은 2017년 말과 2018년 5월, 그리고 2019년 2월 등 세 차례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주도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판문점선언과 남북 정상의 긴급 회동, 그리고 조기에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과 적절한 전화 외교를 통해 북·미 양국의 이탈을 방지하고 협상공간을 창출했다.

셋째, 정부는 북한과 9·19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에서 실질적인 군사위협을 제거해왔다. 동 합의서에서 남북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GP)를 철수하고 판문점을 비무장화하는 등 종전선언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다만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미 간 양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톱다운 협상의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으며, 강력한 대북 제재하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 상황 역시 숙제로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한반도의 시계는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가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 이 인내의 시간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 전략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미의 시·공간이 중첩되는 순간을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의 첫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신경질적인 도발에 한·미 양국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지지한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소 거친 샅바 싸움과 유화 제스처 속에 협상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한반도의 운명을 건 본게임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정일영 | IBK기업은행 북한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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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는 고교 동창생이 사건을 의뢰하려고 얼마 전 사무실을 방문했다. 졸업 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강원도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몇몇 친구의 근황을 알게 되었고, 한번 모이자는 이야기로 발전했다. 동창회라는 모임의 격의 없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생각과 정서가 달라져서 불편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모임을 찾지 않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이 모임에는 기대가 생겼다. 네 사람이 유서 깊은 특급호텔의 전망 좋은 식당에서 만났다. 한 친구는 가끔 연락을 하는 사이인데, 몇 년간 못 본 사이에 대기업의 임원으로 승진했다. 다른 한 친구는 우리가 만난 호텔의 총지배인이 되었다. 그 친구는 총지배인이 된 뒤로는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호텔을 벗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옛일과 세상사를 두서없이 나누는 도중에, 총지배인이 문득 고교 시절의 일화를 꺼냈다. 그는 나처럼 당시 서울의 가장 변두리였던 상암동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았고, 형제 많은 집의 막내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낮이나 밤이나 책을 손에서 안 놓는 모습이었다. 학업성취가 두드러진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의지력이 대단하다고만 생각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친구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집에 돌아왔는데 이미 육십에 가까운 노모가 울고 계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날 선생님을 만났는데, 친구의 실력으로는 2년제 대학도 못 갈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자극을 주려고 그렇게 말했을 수 있겠지만, 노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날 친구는 어떤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는 무사히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 무렵에는 생소하던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이 호텔에서 이른바 ‘호텔보이’로 일을 시작했고, 30년 후 총지배인이 되었다. 곧 그 호텔의 대연회장에서 딸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고, 우리는 참석하기로 했다.

원래 성대한 행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모르던 사연을 알게 돼 이번에는 남다른 감흥을 받았다. 신부와 신랑은 낭만적인 사랑으로 맺어진 선남선녀였고, 형제들이 부르는 축가는 정겨웠다. 친구 자녀의 결혼식은 처음이었는데,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며 나 또한 행복에 감염되었다. 나는 연회장을 장식했던 눈부신 꽃 중 한 다발을 얻어 가슴에 안고, 토요일 오후의 어수선한 도심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사실 그런 화려함에 이질감과 어색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엄혹했던 대학 시절의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르쳐준 사회비판적인 관점과 정서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게 성공, 자본주의, 거창한 예식, 사회적 지위 따위에 대한 불편함을 심어주었고, 나는 그런 세계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과 감정 속에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어정쩡하게 불편해했지만, 자주 타협을 하며 살았다. 다른 이들처럼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세상과 실제로 현존하는 세상의 괴리 속에 내면이 찢어진 삶을 살았다고 할까. 현존하는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결국 그 세계의 문법을 그럭저럭 수용하는 삶을 살았다. 내 삶의 안녕을 원했고, 아이의 행복을 열망했다. 돈을 모아 아파트를 샀고, 경쟁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비판적 사고를 하고, 세상을 위한 노력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모를 생각하며 평생 특급호텔을 일터로 삼고 지켜온 친구의 삶보다 내 삶이 더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떤’이다. 내가 감동한 것은 친구의 ‘성공’ 자체가 아니라, 그의 성공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 쓴 이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성적인 것, 그것은 현실적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것, 그것은 이성적이다.” 아이러니한 이 표현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아리송했고, 지금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이 말을 “이성적인 것은 현실화될 수 있고, 현실화된 것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소박한 의미로 바꾸어 생각하고는 한다. 나는 예전에는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지금 여기의 현실세계를 모두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인간세계와 인간성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존재하는 세계라 하여 그대로 비판 없이 수용할 생각은 여전히 없으나, 주어진 현실의 질서 속에서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이해심을 가지려 한다. 아니, 내 친구에게 느끼게 된 것과 같은 존경심도 기꺼이 가지려고 한다. 나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세계를 승인하고 그 속에서 낙오하지 않으려 발버둥치지 않았던가. 그리고 가난한 동네의 소년이 노모의 눈물을 생각하며 오로지 성실함으로 한 세상을 헤쳐나간 이야기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작가 앙드레 말로는 언제인가 ‘꿈같은 세계의 사실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모험가이기도 한 그가 모험을 정의한 표현이리라. 나는 말로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표현이야말로 우리가 겪는 세상의 참모습을 가장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가 덧없는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든 모순덩어리라 할지라도, 어쨌든 우리가 이 세계를 모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은 사실주의적이다. 친구는 감탄스럽게도 이 한바탕 꿈같은 세계에서 어떤 실재를 만들어냈다. 그가 해낸 것이 무엇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삶을 지지한다. 

친구의 딸은 미술가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예식 중간에 마이크를 잡은 친구는 신랑에게 딸이 결혼하더라도 ‘그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딸에게는 ‘위대한 화가’가 되라고 격려했다. 나도 그 딸이, 또  내 딸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염원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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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스승의날이다. 기념일이 많은 5월은 으레 주변을 돌아보는 달이다. 기념일 때문에 지출이 크기도 하지만, 고마워할 사람이 있다는 게, 그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념일을 핑계로 “고마워요”나 “미안해요” 같은 고백과 “행복하세요”나 “건강하세요”와 같은 바람을 수줍게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말인데도 저 말들을 할 때면 오스스 소름이 돋는 이유는 무엇일까. 슬프게도 지금껏 어떤 스승도 그 이유를 알려준 적이 없다. 어떤 것은 살면서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스승의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 연락을 드리지 않다가 기념일을 핑계로 전화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게다가 “선생님, 스승의날이라 연락드렸습니다” 같은 말을 뻔뻔하게 건넬 만큼의 내공도 없다. 그마저도 몇 년 전부터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지레 겁을 먹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전화기를 쥔 손은 파들파들 떨린다. 머리는 연신 조아린 채다. 스승들은 나를 혼내지 않을 것이다. 외려 기운을 북돋워주실 것이다. 그런데도 전화를 걸기 전부터 나는 말을 더듬고 있다.

스승은 대화의 맥이 끊길 때쯤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잘 지내지?”나 “건강하지?”와 같은 심상한 질문을. 심상한 질문인데 내게 그것은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뜨끔해서 그렇다. 내가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승이 간파한 것 같아서, 건강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나를 들킨 것 같아서. “잘 지내야지요”나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와 같은 대답으로 국면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미 나는 얼어붙었다. 정곡을 찔린 나를 떠올리며 수화기 저편에서 스승은 웃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김병익 선생님의 산문선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이른비, 2019)을 읽었다. 매 글 뒤에는 추신이 덧붙어 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을 여기로 다시 소환하는 일, 지금에 와서 옛 기억을 애타게 더듬는 일일 것이다. “무연한 것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여, 앞으로 남은 것보다 지난 기억이 훨씬 많아진 나는 이제 그것들에, 따뜻한 안녕의 인사를 보낸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겸허해진다. 무연한 것, 그러니까 아무 인연이 없는 것에게 나 또한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닿은 존재와 무연한 존재를 그러모으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승의날 하루가 모자랄 것이다. 옆에서 나를 자극하는 존재를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곁을 살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 힘들 때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아빠의 말씀이 떠오른다. 무연하기에 진한 여운을 남긴 존재도 있다. 어떤 산책길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길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다 갖게 해주었다. 지난 기억과 앞으로 남은 것의 무게가 수평을 이루는 순간을 떠올리니 아찔하다. 나이를 먹어도 스승은 필요할 것이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주는 사람’을 뜻한다. 가르치는 현장에 꼭 교단과 칠판이 있을 필요는 없다. 이끌어주는 일이 꼭 우물 앞까지 함께 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다. 나를 가운데에 두고 바라봐야 ‘예전의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존재가 보인다. 앞으로도 무수한 사람이 나를 스쳐갈 것이다. 그보다 더 무수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은 한참 뒤에야 뾰족한 섬광처럼 다가올 것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스승으로 인해 ‘나중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궁금해하는 사람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궁금함을 주변에 나누는 사람들이 내게는 모두 스승이다. 궁금함을 유발하는 생물과 무생물 또한 스승이다. 궁금해함으로써 삶의 실마리가 생기고 내일의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진다. 나의 스승은 도처에 있다. 그들 모두에게, 하나하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여기에서 거기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여기를 똑똑히 기억하리라.

무수한 스승들 덕에 이 글을 쓸 수 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손을 뻗어도 가닿을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다. 허나 손끝의 굳은살은 지금 이 순간의 밀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스승의 가르침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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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출근하다 말고 남편이 지긋한 눈길로 그럽니다. “요즘 당신이 고생 많아.” 이 양반이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눈 흘기며 출근이나 하라고 등 떠밀어 내보냅니다. 여느 날처럼 정신없이 쓸고 닦고 치우고 빨아 널고 나니 날이 뉘엿해집니다. ‘오늘 저녁은 또 뭘 해서 차리나’ 가볍게 한숨 쉬고 ‘있는 반찬에 고등어나 해서 올려야겠다’ 장바구니 들고 마트로 갑니다. 고등어가 왜 이렇게 비싸! 손 머뭇거리다 문득 ‘당신이 고생 많아’가 생각납니다. 피식, 그러곤 다시 빙긋 웃습니다. ‘다른 데서 아끼지, 뭐.’ 아내는 장어를 사 들고 콧노래로 돌아옵니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는 속담은 상대에게 좋게 대하면 내게 더 좋게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비짓국거리 사러 왔다가 고운 말 들은 생각에 ‘이 두부 얼마예요?’ 하게 된다는 말이죠(비지는 두부 만들고 난 콩 찌꺼기로 두부에 비해 형편없이 쌌습니다. 없는 살림에 참 물리게도 먹었지요. 요즘엔 콩 간 걸 비지라며 두부값으로 팔기도 하더군요).

한국 사람은 부부 사이에 애정 표현이 참 박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좋게 해줄 수 있건만 이제 와 살갑게 말하는 게 영 어색해 오글오글 목구멍부터 간지럽습니다. 연애할 때 그렇게도 속닥이던 꿀 발린 말인데 말이죠. “요새 당신 왜 그래!” 싫은 소리 해서 뭐가 남을까요. 아내는 생각할수록 종일 기분 상하고 본인도 저녁 때 분위기 싸한 집 들어갈 생각을 하니 떨떠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 열고 들어가니 직접 차려 먹든지 말든지 텔레비전 앞에서 냉랭하게 꼼짝을 않습니다. 사랑과 가정의 달, 5월입니다. 기분대로 뱉은 말은 비위 상해 비지 사려던 손조차 내려가게 하고, 달달한 말은 빈말도 예뻐서 안주로 두부김치 올라오게 합니다. 빈말, 공치사라도 예쁜 말은 마음 써야 나온다는 걸 마음으로 아니까요.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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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우리집에 연탄을 땠어요. 근데 연탄을 때니까 방이 아주 따뜻하고 나무를 안 해와도 돼서 힘이 덜 들었어요.”

연탄이라니. 갑자기 왜 연탄 얘길 하실까. 지난 4월29일 삼성백혈병 산재사망자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64)를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황씨는 2007년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둘째 딸을 잃고 10년 넘게 삼성을 상대로 싸웠다. 차라리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더 희망이 있겠다는 만류와 돈 뜯어내려는 수작이라는 조롱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황씨는 재판에서 삼성을 이겼다. 과학과 의학과 법률의 논리로 중무장했던 삼성은 황씨의 질긴 투쟁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삼성의 거액 회유를 뿌리치고, 삼성직업병피해자들을 위한 인권단체 ‘반올림’을 만들어 삼성으로부터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도 받아냈다.

보상도 사과도 끝났지만, 황씨는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하다 ‘일’이 있을 땐 전국으로 달려간다. 지난 4월28일엔 마석 모란공원에 갔다. 태안화력발전소 산재사망자 김용균씨의 추모조형물 제막식에 참석했다.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했던 이날 황씨는 마이크를 잡고 “우리 정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그런 기업을 처벌하긴커녕 상을 주고 세금을 수천억원씩 깎아줍니다. 학교에서 노동자 교육은 시키지도 않고 기업에서 일하라고 합니다. 노동자는 안 죽으려야 안 죽을 수가 없고 안 다치려야 안 다칠 수가 없습니다.”

산업재해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 ‘다시는’ 만든 세 부모. 특성화고현장실습 피해가족모임의 김용만씨,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반올림의 황상기씨. 김용만·김미숙·황상기(왼쪽부터)씨가 지난 4월29일 함께 걷고 있다. ‘산업재해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을 만든 세 사람은 전날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김용균씨 추모 조형물 제막식과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들과의 이야기마당에 함께했다. 김영민 기자

29일엔 국회에서 열린 ‘산재·재난참사 유가족이 기업책임강화 법안발의 의원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마당’에도 참석했다. “이런 자리 하는 걸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를 핍박하고 압박하고 병들고 죽게 만들어서…. 우리 아들·딸들이 더 이상 병들고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올림’의 이상수 활동가는 “사실 아버님이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삼성과의 합의 이후 마치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이 온몸이 통증을 쏟아내고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와도 그의 딸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딸의 죽음을 많은 이들 앞에서 계속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겐 참기 힘든 고통이다. 게다가 야박한 인심은 자식을 잃은 아비도 조롱하고 모욕한다. 그가 이제 자신만의 평안을 추구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굳이 감내하며, 그가 남의 자식들을 위해 나서는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황씨가 꺼낸 대답은 ‘연탄’이었다. “근데 그 연탄이란 것은 광산노동자들이 자기 목숨을 다 바쳐서 캐낸 거잖아요. 제가 택시운전을 해서 먹고살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가 비포장도로에 포장을 깔끔하게 해줬기 때문이에요. 여태껏 살면서 나는 다른 노동자들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고 살아왔거든요. 그럼 나도 다른 노동자들,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황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이 너무 소년 같아서 놀랐다. 나쁜 일이라곤 당해본 적이 없는 듯한 해사한 얼굴로 그는 딸의 죽음을, 다른 이들의 생명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맑은 얼굴의 이유를, 자기 몸이 아파가면서도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이번에 만나고서야 알았다. 황상기씨는 연탄 한 장의 따뜻함을, 그 따뜻함 뒤에 숨은 수고로움을, 그 수고로움 뒤에 스러진 많은 생명을 몸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황상기씨, 그리고 그와 손잡은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의 가족들이 모두 안녕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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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갈아 종종 신문지에 붓글씨를 썼다. 못된 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우글거린다는 말이 있는데 신문에도 많이 들러붙어 있다. 얍삽한 얼굴에는 먹물로 죽죽 긋기도 했다. 말이 먹이고 붓이지 혼자만의 글씨요 솜씨였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부친이 한 말씀 하셨다. “야야, 날 비를 잘 쓰면 장개를 먼 데로 간다캤다.” 비(飛) 자는 어쩐지 균형을 잡기가 좀 어렵다. 말뚝 하나에 겨우 의지하는 천막 같아서 웬만해서는 멋이 나지 않는다.

춘천 지나 화천의 오지마을에 꽃잔치가 있다 하여 찾아가는 길. “초대합니다. 봄의 절정인 즈음, 꽃가람 화천 비수구미 숲속에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만개했습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이 3000여 개나 꽃을 피웠습니다. 법적 지위도 그러하지만 꽃의 품격도 사뭇 다릅니다. 장소 : 비수구미 마을, 주최 : 광릉요강꽃보존회 장윤일, 노영대.”

날아갈 듯 아흔아홉 굽잇길을 넘어 飛水口尾(비수구미) 마을로 가는 동안 어쩌면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수 없는 비(飛) 자에 대한 궁리가 슬몃슬몃 일어났다. 나는 강원 춘천 출신의 색시한테 장가를 갔다. 부친한테 그런 말씀을 들었던 곳이 부산이었으니 잘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아주 멀리 간 건 확실한 셈이겠다.

‘광릉요강꽃! 30여년을 지키고 증식해 온 3000촉의 꽃망울’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린 민박집으로 들어서니 공기와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이 집은 파로호가 숨겨둔 생태마을의 한복판으로 계곡트레킹에 이은 산채비빔밥으로 널리 호가 난 곳이다. 배낭을 풀고 바로 뒷사면으로 갔다. 세상에나, 하나만 보아도 눈이 홀릴 판인데, 3000촉이라니! 이 꽃들은 매우 특별하다. 특별하고도 신기해서 야생에서 광릉요강꽃을 만나면 나는 삼배의 예를 드린다. 개화시기가 마침 초파일 근처이기도 해서 산중에서 광릉요강꽃을 만났을 때 그 말고 달리 흔감한 기분을 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러 의미가 포개진 비수구미의 이 장관 앞에서는 삼천배가 아니라 구만배로도 모자랄 판이다. 오오, 내 마음 설설 끓게 만든 광릉요강꽃.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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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에 꽃이 한창입니다. 하얗고 가늘게 뻗은 꽃잎은 하얀 쌀밥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이팝인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름이 참 정겹습니다. 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를 간지럽힙니다. 이팝나무는 우리 토종 수종으로 알려집니다. 봄날에 남쪽부터 꽃을 피워 5월에 서울에 한창입니다. 

우리 곁에 소중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팝나무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지구 북반구 중간에 위치한 데다,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이 많은 이 땅은 소중한 생명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남의 것으로 알고 지내지만 사실 이 땅이 원산지인 식물들도 꽤 있습니다. 

전 세계에 고급 크리스마스트리로 팔리는 구상나무가 그중 하납니다. 화사한 향기로 익어가는 봄을 알리는 꽃 라일락도 그렇습니다. 라일락의 원종은 수수꽃다리로 알려집니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과 덕유산 높은 지역에서 군락을 이루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수수꽃다리도 라일락과 함께 짙은 봄 향기를 뿌리며 여전히 어느 낯익은 골목에서 우리와 함께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프랑스 신부가 제주도에서 구상나무를 연구해 해외에 알렸다고 합니다. 1940년대 후반 미국 식물채집가가 북한산, 도봉산에서 수수꽃다리를 채집해서 미국에 돌아가 품종을 개량해 ‘미스 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았다고 합니다. 수수꽃다리 자료 정리를 도운 분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IMF 외환위기 때 외국 종자 기업들이 우리 종묘회사를 인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데에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5월, 거리를 거닐다 밤하늘을 하얗게 수놓은 이팝나무 꽃잎을 보면서, 올봄 출근길에 봤던 꽃과 나무를 떠올려 봤습니다. 산수유, 영춘화, 개나리, 진달래, 애기똥풀, 능수벚꽃, 수수꽃다리, 귀롱나무, 봄맞이꽃, 봄까치꽃, 철쭉, 흰제비꽃, 꽃마리, 현호색, 조팝나무, 이팝나무. 몇 걸음만 떼도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가진 나무와 꽃들을 금방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 곧 찔레꽃 향기가 퍼지겠네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품종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지식재산권 보호의 일환으로 종자를 등록하고 보호하자는 인식이 퍼진 때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전후한 때였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세계화에 발맞춰 1995년 종자산업법을 제정했습니다. 품종 보호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2012년에 식물신품종 보호법을 제정했습니다. 나무, 꽃과 함께 콩과 같은 곡물 씨앗도 우리 토종 종자가 참 다양하고 많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토종 종자와 함께 세계 각국의 종자를 모아서 보관하는 국립종자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다양한 분야에서 품종을 발견, 개발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노력이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 품종, 원종과 그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자기 것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 그런 나라를 보면 자기비하가 심합니다. 자기 것을 부정하며 다른 사람, 다른 나라에 기댈 생각부터 합니다. 자기 것을 잘 지키는 사람, 그런 나라는 곁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곁에 있는 것들을 아끼며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적어도 청년세대는 자기 것, 곁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어릴 적 가로수 하면 흔히 떠올리던 나무들이 있습니다. 이팝나무는 그런 나무 대열에 올라있지 못했습니다. 그 흔한 가로수에 남의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시절 5월에, 이 땅 곳곳에서 이팝나무를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쓸모 있는 것만큼이나 유익하지요.”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가 한 말을 떠올립니다.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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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방송 대담에서 제안한 여야 지도부 회담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의제 문제는 당초의 대북 식량지원에 국한하지 말고 국정 전반으로 확대하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제안을 청와대가 받아들이면서 해소됐다. 하지만 회담 형식을 놓고 황 대표가 문 대통령과의 ‘일대일 회동’을 역제안하고, 청와대가 “회담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하면서 꼬였다. 대신 청와대는 13일 한국당이 5당 대표 회동을 수용할 경우 문 대통령과 황 대표 간 ‘일대일 회동’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타진했지만, 한국당은 일대일 회동을 먼저 하고 3당 회담 또는 5당 회담을 하자고 맞섰다. 양측 모두 회담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형식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한국당은 5당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여야정 상설 국정협의체’ 재가동과 관련해서도 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의 원내대표만 참석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는 5당 참여 원칙을 고수했지만, 그나마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민스럽다”며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한국당이 상황에 따라 약속을 깨고 조건을 바꾸는 게 문제지만, 회담의 꼴에 집착해 대화의 기회를 저버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국회 정상화를 위해 청와대와 여야 모두 좀 더 유연한 자세를 발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청와대 직원들이 각자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생중계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5월 국회는 아직 소집 요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필두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최저임금법 개정안,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입법, 택시·카풀 합의 관련 법안,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 등 현안이 산적한데 한국당의 장외투쟁으로 국회는 장기 휴업 상태다. 국회 파행으로 민생 법안이 방치된 것은 한국당의 태업과 장외투쟁이 근인이지만, 야당에만 전부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교착 정국을 풀어갈 1차적 책임은 여권에 있다. 국회 파행이 계속되면 정부·여당은 민생 분야에서 입법을 통한 정책 성과를 낼 수 없고, 집권 3년차 국정은 굴절될 수밖에 없다.

국회 정상화의 절박함을 감안할 때 의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여야 지도부가 만나 대화하는 게 우선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과거에 여야 영수회담을 했다”며 문 대통령이 황 대표의 ‘일대일 회담’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제안이 성사되려면 한국당도 국회 복귀와 협치를 약속하는 등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청와대의 ‘선 5당 대표 회동, 후 일대일 회담’ 제안도 전향적으로 고려할 만하다. 한국당으로서도 하염없이 장외투쟁에만 매달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여야, 청와대가 한발씩 물러나 회담을 성사시켜 정치 정상화의 길을 닦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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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고교 1년생 아들을 자신의 논문 공저자로 올렸던 서울대 교수가 경찰의 내사를 받자 사직한 일이 있었다. 이 교수는 아들이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기가 쓴 논문의 제1저자 또는 공저자로 등재했다. 부자가 ‘함께 쓴 논문’은 43편이나 됐다. 이처럼 자신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린 대학교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 연구비를 받아 해외 부실학회에 참석하고 꼼수로 논문을 발표한 교수도 수백명이나 됐다. 땅에 떨어진 교수들의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교육부가 13일 발표한 ‘2007년 이후 교수들의 자녀 공저자 논문 등재 및 부실학회 참가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교수 맞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조사 결과 서울대·포항공대·가톨릭대 등 대학교수 87명이 자신의 논문 139건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렸다. 이 중 12건은 자녀의 기여가 없는데도 공저자에 올렸다고 교육부는 확인했다. 공동등재 논문이 자녀의 대학입시에 활용됐는지는 더 조사해야 하지만,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최근 4년간 90개 대학에서 교수 574명이 800회 넘게 해외 부실학회에 참석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 지원연구비를 펑펑 쓰며 부실한 논문으로 연구실적을 부풀렸다. 이게 과연 학문상아탑에서 일하는 교수가 할 일인지 묻고 싶다. 

(출처:경향신문DB)

교육부는 자녀를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린 교수나 해외 부실학회 참석 교수에 대해서는 연구사업 참여제한, 연구비 환수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연구부정이 많은 대학은 특별조사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대학 연구윤리 확립과 연구관리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구부정 행위자는 최대 10년간 국가 연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며 연구비 부정 사용 시 형사고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연구 부정을 막을 수 없다.

이참에 대학과 교수에 대한 정부의 평가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연간 수조원대에 이르지만, 논문 실적을 기준으로 연구자를 지원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교수들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부실논문, 공저자 논문들을 양산하고 있다. 논문 이외에 번역, 서적 출간 등으로 평가 기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학문을 연구하고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교수들이 양심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문화 조성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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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좌파는 돈 벌어본 일 없는 사람들이다. 임종석씨(전 대통령비서실장)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인가? 제가 그 주임검사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민생투쟁 대장정’ 첫날인 7일 부산의 아파트 부녀회에서 한 말이다. 1989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였던 황 대표는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한 이력이 있다. 타깃은 임 전 실장에 머물지 않았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잘산다.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며 소송 걸라고 해서 소송비 받는다. 우파 변호사들은 수임을 잘 못하는데….” 일련의 발언이 검증 욕구를 자극했다. 한국당 웹사이트와 언론 보도를 토대로 황 대표의 장외투쟁을 짚어봤다.

[시사 2판4판]가정의 달 (출처:경향신문DB)

# 시대착오

“제가 임종석씨 주임검사였다.” → 황 대표는 ‘공안통’이다. 지난해 펴낸 책 <황교안의 답>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으로 ‘공안부와의 만남’을 꼽았다. 그러나 1980년대 공안검사 경력은 자랑이 아니다. 당시 그들 중 상당수가 경찰이나 안기부의 고문을 묵인하거나 은폐했다. 지난해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찰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 조작할 기회를 줬다”고 발표했다. 고 김근태 의원 고문 은폐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이 대공분실의 고문 사실을 인지했으나 안기부와 공모해 이를 은폐했다”고 결론내렸다.

#자승자박

“민변 변호사들이 잘산다. 우파 변호사들은 수임을 잘 못하는데….” → 황 대표는 고검장 퇴임 후 ‘우파 변호사’로 변신했다. 17개월 동안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약 17억원의 자문·수임료를 챙겼다. 전관예우 논란은 2015년 국무총리 청문회 당시 최대 쟁점이 됐다. 

# 견강부회

“사고 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정말 필요한 에너지원을 포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지난해 3800여명이었다. ‘많은 분이 돌아가셨으니 자동차를 폐기해버려라’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9일 원전 정책간담회) → 교통사고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원전 사고는 단 한 번에 대도시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 고선량의 방사능에 피폭되면 생존한다 해도 유전자 이상이나 암 등의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 가짜 뉴스

① “(패스트트랙에) 우리는 무저항으로 저항했다.”(2일 대전역 집회) “우리 자유한국당 비폭력 저항하고 있는….”(2일 부산 서면 집회) →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 대신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에게 감금당했다. 이은재 한국당 의원은 국회 의안과 팩스로 전송되는 법안 서류를 가로챘다.

②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헌법 개정할 때도, 또 중요한 사건 결정할 때 6명이면 다 결정할 수 있다.”(3일 전주역 집회) →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된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되며,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헌재의 기능은 헌법소원·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권한쟁의 사건 심판이다. 개헌과 관련해선 역할이 없다.

③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해봐도 필요 없다는 것이 절대 다수다.”(3일 전주) →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공수처 설치법안 찬성이 ‘절대 다수’에 가깝다. MBC 조사에선 찬성이 70.1%로 반대(24.4%)를 압도했다. MBN의 경우 찬성 57.3%, 반대 29.6%로 나타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7년 9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찬성 68.7%, 반대 21.5%였다. 공수처 찬성 여론이 오래전부터 높았다는 의미다.

④ “민노총은 뭘 요구해도 다 들어주는데 농민들 말씀은 안 들어주는 정부.”(10일 경북 영천 농업인 간담회) →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최근 ‘문재인 정부 2년, 노동정책 평가’를 공개했다. 핵심 정책과제 이행은 제자리걸음이고, 노동행정은 보수적이었으며, 최저임금·노동시간 정책은 취지를 뒤흔드는 수준까지 개악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자기애

지난 11일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가봤다. 황 대표의 연설 도입부가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 목소리가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데 지금 목소리가 다 망가졌다. 며칠 전 하루에 다섯 번을 센 연설을 했더니 목소리가 이렇게 됐다.” 앞서 전주와 부산에서도 목소리 자랑을 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습관적으로 두르는 ‘겸손’이란 외피도 없다. ‘황교안적’ 정치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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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 붙잡혔던 한국인 관광객이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국민보호 책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9일 자국민 구출작전 도중 함께 억류 중이던 한국인과 미국인을 발견해 함께 구출했다. 이들은 부르키나파소에서 남쪽 베냉으로 이동하다 납치돼 28일간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부가 실종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국민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이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북부지역은 4단계로 이뤄진 정부의 여행경보 체계 중 3단계(적색경보)에 해당하는 철수권고 지역이며 남부는 2단계(황색경보)인 여행자제 지역이다. 여행 도중 불의의 변을 당해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정정이 불안하고 공관도 없는 지역을 여행하다가 발생한 사건을 정부가 몰랐다고 비난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악의적이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인질로 잡혔다 구출된 한국 여성(왼쪽)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빌라쿠브레 공군기지에 도착해 마중나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 뒤에서 걸어가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지난해 기준 대한민국의 재외동포는 270만명, 해외여행객은 2870만명이다. 이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 인력은 해당 지역 공관과 본부 인원 100여명이 전부다. 정부가 재외국민의 행적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외국민의 동선을 정부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다.

지금까지 정부의 영사조력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해외 안전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그때그때 여론과 국민정서에 의해 고무줄처럼 달라져왔다. 정부의 영사조력이 무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도 퍼져 있다. 해외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연료가 바닥나도 공관에 도와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올해 초 영사조력법이 제정돼 2021년 발효를 앞두고 있다. 영사업무에 대한 예산·인력의 확대도 필요하지만 이 법이 제구실을 하려면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합리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국민 스스로 일차적 안전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인식이 시행령과 시행규칙 안에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런 일로 정부를 흠집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는 일부 언론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공격에 대해서는 따끔한 비판을 해줄 수 있는 성숙한 인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부 | 유신모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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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