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중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장관들,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면 인사실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수현 실장은 지난 10일 ‘당·정·청 회의’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정부가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같은 자리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관료들에 대해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한다”고 했다.

공직의 특성상 ‘일 잘하는 장관’과 ‘복지부동하는 관료’는 양립할 수 없다. 관료들이 일을 안 하는데 장관이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날 리도 없고, 일 잘하는 장관 밑에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공무원은 없다. 대통령은 장관들을 신뢰하고 있는데 정책실장은 부처 공무원들이 정권 말이라도 온 것처럼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니 분명 모순이다. 얘기가 맞건 틀리건 관료들이 술렁이는 건 당연하다. “현 정권도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 “관료는 손발만 되라니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청와대와 여당이 큰소리치는 것 말고 무슨 노력을 했나”는 불만도 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네번째) 등이 12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하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관료는 권력을 획득한 정권이 수립한 국정과제들을 법률적·제도적으로 합당하게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까지 청와대는 지시하고, 공무원들은 이를 수행하는 곳이라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작동해 온 게 사실이다. 그렇게 운영되는 게 효율적이고, 5년 안에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고 여겨졌다.

이 같은 일사불란함이 정책의 효과를 보장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때 마련했던 종합부동산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종이호랑이’가 됐다. 도리어 시장은 정부 정책에 일단 버텨보자는 내성이 강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절차적으로 무리한 것이라도 BH(청와대) 지시 사항은 어떻게 해서든 달성해야 했다. 그 결과 4대강 사업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미르재단도 지원하다 위기를 자초했다.

이제는 이 같은 일방적 지시와 맹목적 시행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말을 안 듣는다고 호통치고 다그쳐봤자 그때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감사장의 한 장면. 교수 출신 의원이 “제가 10년 전부터 가계부채 증가의 심각성을 경고해 왔는데 전혀 개선된 게 없다”며 피감기관을 호되게 질책했다. 질의 시간 대부분 가계부채 증가가 왜 위험한지, 그럼에도 당국의 대책이 미흡해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국감이 끝난 뒤 만난 담당 관료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이어진 한마디. “그런데 그렇게 오래전부터 가계부채를 경고해 왔는데, 실제로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그 경고가 틀린 거 아닌가요. 정부가 잘 대처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가계부채 증가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대책 마련이라는 당위성만 좇다보니 정작 경제 현장을 놓쳤다는 지적이었다.

관료들은 어느 직능 집단보다 전문성이 높다. 해외 근무와 유학 등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는 두뇌 집단이다. 자칫 보신주의로 빠질 수도 있지만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긍정적 효과를 높이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절차와 과제별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따질 수밖에 없는 보수적인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한 ‘늘공’(늘 공무원인 전문 관료)들에게 ‘어공’(정권 탄생에 기여해 어쩌다 고위직에 오른 전문가)들의 ‘군기 잡기’는 오히려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부추길 수 있다.

‘늘공’들을 다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권은 대학교수들을 청와대 수석과 내각에 등용했다. 학문적 연구 성과와 전문성으로 국정과제들이 잘 추진되도록 책임을 맡긴 것이다. 김수현 정책실장,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전 정책실장, 홍장표 전 경제수석 등이 교수 출신이다. 그러나 이제 교수라고 해서 늘공을 뛰어넘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하기도 힘들다. 교육부가 13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 와셋(WASET)·오믹스(OMICS) 등 ‘유령 학회’에 참석한 대학교수들이 무더기 적발된 게 대표적이다. 해외 학회 참석 명목으로 국가 지원 연구비를 펑펑 쓰며 부실한 논문으로 연구 실적을 부풀렸다. 그동안 교수들의 연구비 유용, 제자들을 향한 갑질과 성희롱 등 ‘도덕적 해이’도 사회적 문제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대학교수를 비롯한 상당수 전문가들이 학문적 연구와 다양한 대외 활동을 통해 구축된 지식과 정보를 선거 공약과 정부 정책으로 구현할 기회가 많다. 정당의 정책 개발 능력이 떨어지다보니 선거 때면 정당과 후보들이 전문가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공약과 국정과제가 저절로 효과적인 정책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제는 공무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고, 그들이 혁신과 개혁의 동반자가 되도록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늘공의 무능을 탓한다고 어공이 유능해지는 건 아니다.

<박재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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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명의 노동자를 만났다. 노점상, 시장 상인 등 영세한 자영업자들이거나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 퀵서비스, 택배서비스 등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 혹은 가사노동자나 건설노동자들과 같은 일용직이었다. 아픈 곳은 없는지, 치료는 잘 받았는지를 물었다. 이들은 교통사고로, 또는 층계나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팔과 다리, 갈비뼈를 다쳤다. 노점상은 여름엔 뙤약볕, 겨울엔 찬 바람을 그대로 맞았고, 가사노동자는 청소용제로 눈과 목이 따가웠다. 장기간 육체노동으로 온몸의 관절이 아팠다. 대리기사와 가스검침원은 한밤중, 이른 아침, 늦은 저녁에 일을 하니 생활리듬이 깨져 수면도 식사도 불규칙했다. 호흡기, 소화기, 심혈관·근골격계의 만성질환을 달고 살지만, 의료비는 비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생계가 문제였다. 일자리가 위태로워서 하루를 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영업자는 거래처를 잃어버릴까 봐, 가사노동자들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까 봐 두려워했다. 택배노동자는 본인 수수료의 두 배를 내고 용차를 써야 해서 쉴수록 손해가 났다. 학습지 교사도 대체교사를 찾는 게 힘들어 산산조각난 손목뼈에 깁스를 하고 3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그러니 수술해야 하는 병에 시술만 받고, 제대로 치료받아야 할 병에 응급처치만 받고는 곧장 일터로 나갔다. 대리기사는 죽을 때가 돼야 입원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몇 시간이라도 일할 기운이 있으면 그 시간이라도 일하다보니 길거리에서, 집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돌아가시는 이들이 있었다. 버티다 결국 입원을 하게 되면 생계비는 모아둔 돈을 쓰거나 고금리로 대출을 받거나 동료들 사이에서 융통했지만, 특히 대리기사는 야간 노동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가 단절돼 아무 경제적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 20%는 된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중위소득 100% 이하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형 유급병가’를 5월 중 도입한다. 휴가를 달라고 호소할 고용주조차 없는 이들이 아파도 치료 받으러 갈 수 없는 이유가 많은데, 그중 하나인 생계비만큼은 1년에 최대 11일까지 서울시가 책임지겠다는 거다.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제도라 설왕설래가 많은 듯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병수당도 없고, 근로기준법상 유급병가도 없는 나라에서 이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급병가 제도에 대해 이들은 밥 한 끼,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탤 수 있다는 경제적 효과, 그 여유만큼 일을 줄이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는 건강효과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맙다’고 했다. ‘마음이 안정되니 일하는 능률도 오를 것’이라며. 이 제도가 생기면 내가 좀 아플 수도 있고 삶을 반추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참말로 좋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서울형 유급병가’ 제도의 진정한 의미는 하루 8만1180원이라는 금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파도 나와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일하러 나가는 그들을 우리 사회가 ‘걱정’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 그렇게 극한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고, 너무 아프면 쉬어가도 되고, 우리가 함께 도와주겠다는 연대와 포용의 감정에 있을 테다. 불평등과 양극화, 방임과 학대, 자살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지속되는 이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런 연대와 희망의 정책들이다.

<정혜주 | 고려대학교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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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봄날의 오후는 언제나 치열했다. 봄볕은 복병처럼 숨죽이고 있던 잠을 부추겨 책상 앞에 앉은 아이들을 공략했고,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아이들을 다그쳤다. 선생님들은 대개 교실 안에 빽빽하게 박혀 있는 70여명의 동태를 무시로 살피다가 머리를 책상 위로 떨구는 이는 물론이고, 저도 모르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하는 이까지 발본색원하여 가차 없이 깨웠다. 그들의 내공은 무림의 고수 못지않았다. 칠판에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던 이가 느닷없이 뒤를 돌아 손에 든 분필 토막을 튕겨 교실 맨 끝자리에 엎드려 있는 학생의 정수리를 정확히 맞히는 신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 시절 교실 안 풍경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조는 학생들을 깨워가면서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 자라도 놓치지 말라고 당당히 말하던 교사와 그 말을 의심 없이 따르던 학생들이 있는 곳. 교실이란 그런 곳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준비해 마침내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수많은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실 풍경은 예전과 달랐다. 옛날 선배들이 손에 쥐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던 분필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태연하게 엎드려 잠을 잤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묵인하기를 바랐다. “한 아이가 너무 자서 어머니와 상담을 했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요.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그러시더라고요. 학원이 늦게 끝나서 그러니까 그냥 놔두라고요.”

그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세간에 회자하던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그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학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는 뜨거운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여전히 그런 학생이 있고,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대학 교문만 겨냥하고 있다면, 아이들을 깨우면서 좋은 대학 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사회가 그 말에 공조한다면, 교실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스승의날, 잠든 교실을 얘기하고 보니 씁쓸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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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이 직업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지나친 비판과 냉소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만 불러올 뿐이다. 통념과 달리, 정치인과 연예인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윤리적인 조건이 있다. 이들의 생활은 24시간 공중(公衆)의 감시를 받으며, 검찰을 능가하는 ‘누리꾼 수사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최근 남성 국회의장과 여성 자유한국당 의원 사이에 발생한 ‘해프닝’을 두고 여야가 서로 “피해 인정” 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의 정치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명분과 성별 제도(gender)의 작동 원리를 가장 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은 국회일 것이다. 

안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패스트트랙에 한국당이 결사반대하면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여기서 안건의 정당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하는 혹은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예전 야당이나 지금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대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익을 위한 법안이라면 최선을 다해 관철시켜야 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지역구를 폐지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지 않는 한, 국회는 어차피 그들만의 싸움터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제는 몸싸움이 아니라 그 방식이다. 1990년대 이후 각종 여성폭력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정치권은 일반 여성이나 언론과 검찰 권력의 희생양이 된 여성 배우들의 고통과 피해는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이번 국회처럼 ‘성추행’ 사건을 남발해왔다. 합의가 안될 때마다 여성 의원, 보좌진, 국회 직원들을 상대당 앞에 내세워 ‘접촉’을 유도하고, 이를 성추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 성추행인지 아닌지는 국회에 율사들이 많으니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문제는 왜 이러한 젠더 전술이 멈추지 않는가이다. 

이성애 제도에서 남성과 남성의 몸싸움은 성추행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성추행범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당(自黨) 여성을 내세워야 한다. 당연히 접촉이 발생한다. 그러면 “성추행 폭거”라고 주장한다. 최근 사건이 더욱 희비극인 까닭은 “성추행범”이라는 말에 자아가 무너진 남성 국회의장이 분노한 나머지, 한국당 여성 의원의 얼굴을 진짜로 ‘감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셀프 쇼크’로 입원, 피해자 역할을 재현했다. 

이 사건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까. 여야는 서로 “자해 공갈” “성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위를 따지려는 시도 자체가 더욱 부끄러운 처신인 줄 알아야 한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긴 하다. 한국당의 송희경·이채익 의원의 피해자 모욕이다. 이들은 ‘여성=피해자’라는 통념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 의원의 외모와 학력, 결혼 여부를 두고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있는 불쌍한 분”으로 묘사했다. 

대개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지만, 실제 그럴까? 이번 사건의 경우 나경원 원내대표와 남성 의원 등 힘 있는 이들은 뒤로 숨었다. 같은 당의 여성 의원과 여성 보좌진들이 남성 의원의 경호원 역할을 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 갈등을 수습해주는 범퍼 혹은 ‘총알받이’로 이용되어 왔다. 여기엔 진보·보수, 좌우, 파시즘·자유주의가 따로 없다. 1980년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어머니’들은 언제나 시위대 맨 앞에 섰다. 전투경찰이 ‘어머니’에게는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고, 폭력을 쓴다면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모성=평화’라는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동원되는 것이다. 

나치의 파시즘 군대는 성적 순수성을 강조했지만 남성 동성애를 우려, 군인을 위한 성매매 제도를 조직적으로 운영했다. ‘성상납’은 남성 연대를 강화하거나 우호 증진을 위한 대표적인 문화다. ‘예쁜’ 여성을 물건으로 선물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이유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남성이 여성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라 하는 프러포즈가 있었다. 요즘 여성들은 말한다. “안 지켜줘도 돼. 너나 잘해.” “네가 제일 무서워.” 보호자와 피보호자 개념, 그 성별성 자체를 문제시해야 한다.

여야 불문, 국회의사당의 모든 남성에게 말하고 싶다. 싸우려면 남성들끼리 싸우기 바란다. 여성폭력방지법은 남성을 위해 만든 법이 아니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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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나드는 대기오염물질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국경을 훌쩍 넘어버리는 월경성(transboundary) 오염물질은 관할권의 충돌과 오염원인-피해 간 책임 충돌을 야기한다. 

자연의 원리에 따라 편서풍이라는 바람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즉 계절과 대기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아시아 대륙과 중국에서 미세먼지와 월경성 대기오염물질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유입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월경성 오염물질 저감의 비용과 편익, 국력과 여론의 비대칭성은 한·중 간, 더 나아가 아시아 지역의 환경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지역 월경성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의 비전과 제도를 만들 것인가? 

필자는 2015년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체결된 파리협약(Paris Agreement)과 유사한 제도적 모델을 제시한다. 동북아 대기오염 협약은 생존을 위한 공동 목표 설정, 국가결정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NDC), 재원 마련, 경험 공유, 이행의 측정·보고·검증(Measurement·Reporting·Verification)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제협약의 형태를 가져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의 환경 협력의 결과물처럼 협력 강화 양해각서, 센터 설립 등의 결과물이 아닌 각 국가에 구속력 있는 다자간 국제협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참여 국가의 책임과 피해 배상이 다자간 국제협약의 주된 내용이 된다면, 협약 자체가 형성되기 힘들 것이다. 

대신 자발적인 국가결정기여, 즉 자국 내에서 어느 정도의 오염물질을 언제까지 어떻게 줄이겠다는 것을 스스로 결정·공표하고 이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각국의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공동 저감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각국의 구체적인 저감 목표를 설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협력의 내용은 경험 공유, 공동 재원 마련, 측정·보고·검증의 확립이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미세먼지 배출 저감이 가능 혹은 불가능한가에 대한 기술과 정책 공유가 국가 자발적 기여 협약의 중추이다. 

미세먼지 저감의 성공 경험도 중요하지만 실패 경험도 공유될 수 있다. 또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기술, 정책, 인적 자원의 공유를 위한 재원 마련도 반드시 필요하다. 투명성과 측정·보고·검증 방안을 활용해 미세먼지 저감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당사자들과 함께 점검할 필요도 있다.

바람의 흐름은 막을 수 없어도, 관할권 내 미세먼지와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거나 막을 수 있다. 한 국가가 아닌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하에서 산업계, 시민, 전문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도 깨끗하고 지속 가능한 대기 환경을 누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태동 |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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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썩 좋지 않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과 반대로 하기)’ 정책으로 성사 직전까지 간 북한과의 수교를 틀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디스맨(this man)이라고 부른 것은 지금껏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양국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8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은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정점은 2006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북한과 종전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해놓고 틀어버린 것이었다. 참다못한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시드니 정상회담 기자회견장에서 부시를 압박했다. 노 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대해 좀 더 분명히 밝혀달라”고 하자 부시는 “더 이상 어떻게 말하느냐”며 거부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부시는 자서전에서 “몇 가지 주요 현안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미 경제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 재임 기간 한·미관계에 가장 많은 시끄러운 이야기가 있었다”면서도 “갈등이 표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간이었지만, 내용에서는 가장 많은 변화와 결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시드니 정상회담 때 부시는 노 전 대통령을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며 “우리 둘은 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부시는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2002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회담 장소에 먼저 나와 DJ를 기다렸다. 인간적으로 소탈한 면이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오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 방산업체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부시 전 대통령이 추도식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부시는 자서전에서 “2009년 그(노무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고 애도한 바 있다. 부시는 지난해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위트 넘치면서도 애도의 마음이 절절한 추도사로 세계인을 울렸다. 생사가 엇갈려 12년 만에 재회하는 자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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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새끼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지극정성으로 돌보지만 일단 자립할 능력을 갖추면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간다. 언젠가는 북극곰을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북극곰 역시 새끼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정말 지극한 모성으로 보살핀다. 때로는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새끼를 지켜내려고 하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다. 하지만 새끼가 세 살이 되어 자립을 하면 어미는 죽는 날까지 새끼를 보지 않는다. 요즘 하는 말로 각자도생의 길을 완벽하게(?) 가는 셈이다. 

그걸 보면서 만약 사람들도 그렇게 지낸다면 부모 자녀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인간관계 전반에 갈등이 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인간은 독립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것이 경제적 독립이 됐든, 정신적 독립이 됐든 거의 이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독립과 의존 사이에서 경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생겨난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이끌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혼자 살아가는 인구가 많다 보니 ‘홀로족’이나 ‘혼자 안녕하기’ 등의 신조어들이 생겨나는 것을 본다. 대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말들이다. 다만 그들이 불안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고 한다. 물론 SNS의 시대이다 보니 늘 그런 쪽으로는 관계가 활짝 열려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사실 나의 외로움과는 무관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잠시 외로움을 잊은 것 같은 착각만 들 뿐 돌아서면 더욱더 외로움이 커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고독을 이겨내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명제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가장 좋은 밑거름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경험들은 때로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지낼 수 있을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다. 고독을 통해 자기 성찰의 시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출처:Pixabay

물론 그러한 시간들은 인간관계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모든 면에서 고독은 때때로 우리에게 ‘홀로 있음의 자유’와 그 자유를 통한 새로운 사색과 변화의 시간들을 허락하곤 한다. 고독이란 자신의 에너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글을 읽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고독은 누군가의 말처럼 일종의 ‘나를 담는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독은 곧 내 창작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꼭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독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본다. 임상에서도 인간관계에 서툴고 상처 입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직면해야 할 외로움이 더욱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고독이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힘에 대해(때때로 우리에게 ‘홀로 있음의 자유’와 그 자유를 통한 새로운 사색과 변화의 시간들을 허락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그러니 혼자 있는 순간의 외로움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순간이 내게 찾아오는 것을 반가워해야 한다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내게 말하곤 한다.

나는 고독에 관한 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좋아한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우선 고독이란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 그 강을 건너지 않고는 제아무리 거창한 말을 입에 담는다 해도 다 어린애 장난이다.”

물론 창작을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의 결연함이 묘하게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적어도 고독에 관해서는.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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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공주우체국 집배원 이모씨(34)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이씨 사망 하루 전에도 집배원 2명이 심장마비 등으로 숨졌다. 집배원들의 잇단 죽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사망한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는 331명에 달한다. 이 중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82명이 숨졌다. 3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집배원이라고 한다. 

집배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나쁜 노동조건과 저임금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2016년 자료를 보면, 집배원들은 한 해 평균 2888시간을 일하고 있다. 일반 노동자보다 800여시간이나 더 길다. 그럼에도 상당수 집배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은 ‘고용의 외주화’에 있다. 전국의 집배원 2만여명 중 35%는 별정국 집배원, 상시계약 집배원, 특수지 집배원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하는 일은 국가공무원인 우정직과 다를 바 없는데도 직군에 따라 절반도 안되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새벽 어머니와 살던 세종시 자택에서 과로로 숨진 30대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이른 출근을 위해 전날(12일) 밤 거실에 미리 준비해 둔 집배원 조끼. 조끼 안에는 업무에 필요한 잔돈, 우편물도착안내서, 볼펜, 매직, 자동차 키, PDA 배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정대연 기자

인력을 늘리고, 임금 차별을 해소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우정사업본부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매년 4000억~5000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런데도 인력 충원을 머뭇대는 것은 법 때문이다. 국가재정법은 우편사업과 금융사업 간 교차 보조를 허용하고 있는데, 정작 우정사업법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황당한 것은 우정사업본부가 매년 수백억원을 정부 재정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공적자금 상환기금에 12년간 총 7200여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출자자인 정부에 대해 일종의 ‘배당’을 한다는 것인데, 집배원들은 늦은 밤까지 초과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부가 수익의 일부를 가져간다니 온당치 않다. 우정사업본부는 퇴직공무원의 자리 보존을 위한 산하기관 내 ‘자리’를 늘리고, 이들 기관에 과도한 위탁비용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말까지 무기계약직인 상시계약집배원 3000여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비공무원 임금도 단계적으로 올린다고 한다. 다행스럽다. 그런데 이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장 모자라는 인원을 충원하고 임금 차별을 해소, 집배원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돌려줘야 한다. 잘못된 재정 구조도 현실에 맞게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집배원들의 계속된 죽음’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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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최근 한 중학교 교사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린 글이 교사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떠들고 욕설을 하는 것은 다반사요, 지도를 하려 해도 ‘학생 인권’ 운운하며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학교)교육은 다 무너졌다”면서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게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1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글에 동의를 표했다.

교사의 권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통용되지 않은 지 오래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고, 오히려 상해와 폭행, 모욕 등 교권침해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사건은 2010년대 초반까지 200건대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50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주목할 점은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수업방해, 폭언·욕설, 폭행 등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증가도 간과할 수 없다.

출처:경향신문DB

교권침해는 교사의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교총이 최근 교원 54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4%가 교원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65.6%는 교권이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교권침해와 무관치 않다. 지난 2월 말 명예퇴직한 교사는 601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늘었다. 교권 추락에 따른 상실감과 피로감은 교사가 교단을 등지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는 미래의 동량을 기르는 교육자다. 소명의식을 갖고 가르치는 교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퇴근 후에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 도입이 교권침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현장은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교권침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학교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의 권리도 학생의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 교권회복과 학생인권조례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긍지와 보람으로 일할 때 교육이 살아난다. 오늘은 스승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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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 직전 헬기를 타고 광주에 내려와 회의를 주재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5·18 당시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는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때 사살 명령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간 여러 의혹은 많았지만, 5·18 집단발포 책임자로 전 전 대통령을 지목한 증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일명 ‘편의대’라 불리며 시민행세를 했던 사복군인들이 존재했다”며 “5월20일 ‘성남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온 30~40명이 K57 광주비행장 격납고에 주둔하면서 민간인 버스를 타고 광주 시내로 침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직접 격납고로 찾아가 제 눈으로 재차 확인했다”고도 했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국방부는 이런 증언에 대해 “앞으로 진상규명조사위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14일 (출처:경향신문DB)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9월 특별법 시행 이후 8개월째 가동조차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월 그들이 추천한 진상조사위원 2명을 재추천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한 채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은 올해로 39돌을 맞지만 상당 부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집단발포 책임자, 헬기 기총사격 여부, 계엄군 성폭행, 보안사 5·18 왜곡 및 조작 경위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엔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발견돼 계엄군에 희생된 민간인 시신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됐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진상조사위 구성을 외면하는 한국당은 도대체 진실 규명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18 망언’ 징계도 유야무야 상태다. 한국당은 지난 2월 “5·18은 폭동”이라고 주장한 이종명 의원을 제명키로 했지만 이를 확정하기 위한 의원총회는 이제껏 열지 않고 있다. 김순례·김진태 의원도 질질 끌다 솜방망이 징계로 마무리지었다. 국회 윤리위 차원의 징계도 윤리심사자문위 구성 문제에 막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한다. 황 대표는 지난 3일 전국 장외투쟁의 일환으로 광주를 찾았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와 물세례를 받은 바 있다. 그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한국당은 5·18에 대해 사죄하지도 않고, 진상 규명도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되레 아픔을 방치하고 상처를 덧내고 있다. 이러고 무슨 낯으로 5·18 묘역을 찾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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