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노동자 과로사는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2017년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배원 과로사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배노동자들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과로와 근무 중 교통사고, 자살로 숨진 우정사업본부 직원은 157명이다. 올해 들어서도 5명의 집배노동자가 숨졌다.

지난 13일에는 무기계약직 집배원으로 일하던 30대 이은장씨가 다음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잠자다 돌연사했다. 전형적인 과로사다. 이씨는 평소 과중한 업무로 힘들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근무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 외 ‘무료노동’도 잦았다.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에 챙긴 여분의 옷, 짐을 나르다 생기는 상처를 치료할 소독제 등은 필수품이었다. 정규직이 돼 행복을 배달하겠다는 이씨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십년간 반복되는 집배노동자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지난해 9월 낸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연평균 2745시간(한국 임금노동자 평균 2052시간)에 달하는 집배노동자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연 2340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2853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는 정규직 집배원을 1000명 증원하기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지난 13일 새벽 어머니와 살던 세종시 자택에서 과로로 숨진 30대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이른 출근을 위해 전날(12일) 밤 거실에 미리 준비해 둔 집배원 조끼. 조끼 안에는 업무에 필요한 잔돈, 우편물도착안내서, 볼펜, 매직, 자동차 키, PDA 배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정대연 기자

결국 돈이 문제다. 집배원 증원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부문에서 적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해에는 적자가 1000억원이 넘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기업들이 e메일이나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고지서를 발송하는 경우가 늘어난 탓이다. 민간택배업체들과 낮은 단가로 경쟁하면서 우체국 택배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그러나 우편물량이 준다고 집배노동자들의 업무강도가 낮아진 건 아니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택배가 늘어나고,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구 단위로 이뤄지는 우편 배달 노동강도는 오히려 세졌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돈이 든다. 

보편적 공공서비스인 우편을 비용만으로 따지는 게 타당할까. 오지에 홀로 사는 노인도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외딴섬에 산다는 이유로 선거공보물, 법원송달물을 받아보지 못한다면…. 이윤이 최우선 가치인 민간기업이라면 손해를 보는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당장 우체국 수를 대폭 줄일 것이다. 국회가 이 ‘죽음의 행렬’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 투입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제라도 예산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우편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우편 50g 기준(2017년) 한국 우편요금은 350원으로, 영국(722원), 일본(806원), 독일(976원) 등의 절반 이하다. 공공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한 어느 정도의 요금 인상을 검토해봐야 한다. 기업·정부 등이 우편물을 다량 발송할 때 깎아주는 돈이 연 2500억원에 달하는데 감액률이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책사회부 | 정대연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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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이 된 나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그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 것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그를 향한 부모의 걱정은 계속 많아져 간다. 5월이 되고서는 5월15일에 무엇을 들려서 보내야 하나, 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김영란법’ 때문에, 혹은 그 덕분에, 일정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새 아이의 아빠이면서 그의 스승을 신경 써야 할 자리에 이르렀다.

아마 나의 부모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이던, 정확히는 국민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사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반의 칠판마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는 글씨와 그림이 색분필로 채워졌고, 교탁에는 그들을 위한 선물이 쌓였다. 반장의 주도로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감정이 격해져 울기도 했다.

성인 여성 교육기관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15일 열린 스승의날 기념행사에서 만학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들이 무척 많다는 데 있었다. H교사는 “강남에서 일할 때는 트렁크를 열면 이런저런 선물이 많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했고, S교사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 두엇을 앞으로 불러내서 “너희는 편지 한 통 쓰지 않았느냐”고 눈물이 나도록 혼내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스승의날은 교탁에 쌓인 선물과,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 보면서 학생의 이름을 호명하는 교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질책을 당하는 학생들, 그러한 야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J는 30대 젊은 교사였고 그는 자신 앞에 쌓인 선물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들께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세요” 하고는 서둘러 수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때 학생들은 J에게서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다. 그것이 그만큼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던 것이다. 20년 전에는 H와 S의 방식이 오히려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시대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문법, 문화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를 학생으로서 젊은 교사로서 겪어낸 이들이 강단에 서고 있고, 덕분에 2019년의 5월15일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스승의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기도 하고, 아예 폐지하자는 당사자의 청원도 올라온다. 여기에는 교권이라는 것의 추락과 달라진 스승의 역할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하겠으나, 나는 나의 세대가 쌓아올린 지금의 풍경이 이전보다는 더 마음에 든다.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내일은 스승의날입니다. 이날은 선생님들에게는 스승의 길을 걷는 사명감과 긍지로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자들에게는 스승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이에 저희 유치원에서는 선물, 꽃바구니 등 일체의 물건을 받지 않으니 감사의 뜻이 훼손되거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하고 모든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아이는 참 좋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스승의날을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날’로 명시한 그 부분이 참 좋고 고마웠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에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대학원생의날’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그들은 “푸코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튜링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퀴리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김윤식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모든 교수들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 거창한 행사는 없더라도, 대학원생 동료, 선후배,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날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라고, 절박한 마음을 드러냈다.

스승의날의 주체가 ‘스승’이듯이, 이날은 유치원에서든 대학교에서든 그들이 자신의 제자들을 돌아보는 날 역시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한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답하는 주체적인 당사자가 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다. 특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바람처럼, 자신 역시 언젠가는 대학원생이었던 교수들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대학원생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선물을 거부하고 휴교를 하는 데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학교에서 맞이하게 될 스승의날은 그렇게 다시 조금은 또 다른 날로 다가갈 수 있으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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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우리의 오월은 경계에 서 있다. 겨우내 열려 있던 공간을 부리나케 푸른 잎들로 채운 오월은 봄을 성큼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경계는 우리 몸 안에도 존재하는데 몸의 내부 장기를 외부와 연결한다. 호흡 과정을 통해 폐는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한다. 소장을 거쳐 들어온 영양소도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포유동물인 인간은 산소 또는 영양분과 마주하는 폐와 소장의 경계막을 충분히 접고 구부려 표면적을 극대화한 후에야 비로소 세포를 먹여살릴 수 있게 되었다. 피부 면적은 2㎡에 불과한 데 비해 인간의 평균 폐 표면적은 50㎡(약 15평)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놀랍지 아니한가?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 소화기관의 표면적은 그보다 서너 배는 더 넓다.  

먹고 숨 쉬는 경계의 표면적이 넓다는 점은 경이롭지만 그 현상이 산소와 영양분 흡수를 향한 우리 몸의 해부학적 안간힘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일견 슬프기도 하다. 어쨌든 표면적만 보아도 피부는 확실히 방어 기관이고 폐와 소장은 에너지와 물질을 몸속으로 끊임없이 집어넣는 역동적인 기관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오월이면 나는 또 다른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바로 태반이다. 참 손이 많이 가던 아기가 제법 사람 꼴을 갖춘 일을 축하하는 어린이날이나 그 일을 묵묵히 감내한 어버이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어버이날이 공존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저 기관 때문이 아니던가? 인간의 배아가 발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반도 그 기능에 걸맞게 표면적이 11~14㎡에 달한다. 20㎝ 크기의 원반 모습을 띤 태반의 한쪽은 엄마의 자궁내막에, 다른 한쪽은 탯줄을 매개로 아기와 연결되어 태반 포유류 특유의 기관을 이룬다. 이들은 태반 없이 발생 초기에 태어난 새끼를 ‘육아낭’이라는 주머니에서 키우는 캥거루와는 사뭇 다른 생식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이 전략은 알에서 태어나 젖을 먹는 원시 포유류인 오리너구리 생식과도 큰 차이가 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발생학 강의를 하다 가끔 나는 “누가 태반을 만들었을까?”라는 생경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당연히 ‘임부가 만드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질문자의 의도를 고려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 태반은 태아가 만든다. 정자와 난자 하나가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수정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종류의 세포로 분화된다. 하나는 태아가 될 줄기세포들이고 나머지는 태반이 될 줄기세포들이다. 태아 줄기세포는 심장과 뇌, 피부 등등을 포함해서 약 3~4㎏에 이르는 신생아의 각종 세포로 분화하겠지만 태반 줄기세포는 태아와 산모의 경계면인 약 450g의 태반을 조직화한다. 이 태반을 통해 임부는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태아의 노폐물을 처리한다. 매분마다 임부의 심장을 빠져 나가는 혈액의 20% 정도가 태반을 경계로 태아와 마주한다. 이런 방식으로 태반 포유류는 조류 혹은 파충류의 탄산칼슘 알껍데기와 난황을 완전히 대체하고 자손을 보다 안전하게 이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전략이 임부의 부담을 크게 가중시켰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지구상에 태반 포유류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주연이 필요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바이러스다. 애써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우리 유전체의 약 8%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 바이러스는 유전자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 공장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가 스스로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세균이나 동물의 세포 안에 들어가 그들의 복제 기구에 무임승차해야 한다. 그렇게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고 그것을 일일이 조립한 후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를 터뜨리고 탈출한다. 역전사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매우 특별한 한 종류의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체를 숙주 세균이나 인간의 세포 유전체에 슬며시 끼워 놓는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유전체에 바이러스의 흔적이 살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돌연변이로 바이러스 유전체가 병원성을 잃은 데다, 또 숙주인 우리 세포도 이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면역계의 시선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러한 제어 장치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가끔 말썽을 일으킬 때가 있다. 여기저기 함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점핑 유전자라는 이름이 붙은 바이러스 유전자 조각이 인간 유전자 중간에 끼어들면 암세포로 바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포유류 조상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하나를 태반을 만드는 데 차출하는 술수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본디 숙주의 세포막에 바이러스의 껍데기를 합칠 때 쓰던 단백질이었다. 태반의 핵심인 영양막 세포는 ‘신시틴(syncytin)’이라 불리는 바로 이 바이러스 기원 단백질을 이용하여 임부 자궁 내막에 녹아 융합해 들어간다. 이런 방식으로 태아는 임부의 혈액으로부터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확보할 전초기지를 마련했다. 프랑스 과학자 하이드만은 영장류 태반에서 신시틴 아형(亞型)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것이 임부의 면역계를 약화시켜 태아를 공격하지 못하게 돕는 부가적 역할을 한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바이러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유전자들이 태아와 임부 사이의 ‘의사소통’에 적극 참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체에 편입한 바이러스 유전체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오월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 혹은 이전 세대와의 자리바꿈을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달이다.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에 맺은 생물학적 제휴 아래 비로소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키메라인 것이다. 6월이 오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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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고되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 착한 지인이 있었다. 작은 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고 누구든 계산 없이 성심성의껏 돕는 능력자였다. 하지만 사장은 그의 노하우만 날름날름 빼먹을 뿐 제대로 처우하지 않았다. 사람 좋은 지인은 고민은 하면서도 싫은 소리는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처지에 답답해하면서 이기적인 사장의 승승장구가 부당하다고 여겼다.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미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교수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3만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먼저 타인을 나보다 먼저 배려하는 ‘주는 사람’(giver)으로 전체 중 25%의 비율을 차지한다.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받는 사람’(taker)의 비율은 19%였다. 그 두 극단 사이에는 ‘맞추는 사람’(matcher)이 56%로 폭넓게 분포한다.


업무성과로 볼 때 이타적인 ‘주는 사람’은 아주 나쁘거나 아주 좋은 양극단을 달렸다. 이들은 조직 내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 정작 자신의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등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가 적잖았다. 이렇게 착한 ‘호구’들이 뒤처질 때 그럼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할까. 꼭 그렇진 않다는 게 그랜트 교수의 설명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 개념이 확실한 ‘맞추는 사람’들이 이들을 응징하기 때문에 성공을 하더라도 ‘반짝 성공’에 그친다고 한다. 그렇게 호혜주의에 기반한 사회협력이라는 원칙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은 일찌감치 수학적으로도 검증된 바 있다. 로버트 액설로드 미 미시간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 대회를 열어 수십 개의 다양한 전략들을 대전시킨 결과, 맘씨 좋은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 최고의 강자였다고 <협력의 진화>(1984)에서 소개했다. ‘팃포탯’의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방에게 기본적으로 호의적이고, 이후에는 받은 대로만 명료하게 돌려준다. 상대방이 한 번 배신했다 치면 한 번만 응징하고 이후에는 관대하게 뒤끝 없이 용서하고 다시 협력의 문을 열어놓는다.


반대로 복잡한 음모나 불신에 바탕을 둔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승률이 낮았다. 한 번이라도 배신당하면 끝까지 응징하는 ‘프리드먼’, 상대방이 배신할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 서면 먼저 뒤통수 쳐서 이익을 챙기는 ‘다우닝’, 상대방의 신뢰를 얻다가 느닷없이 배신하는 ‘트랜퀼라이저’ 등은 승자가 되지 못했다.


액설로드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네 가지 방법을 충고한다. ‘질투하지 마라. 먼저 배반하지 마라. 협력이든 배반이든 그대로 되갚아라. 너무 영악하게 굴지 마라.’ 사랑과 자비로 아울렀어야 할 듯한 세 번째 문장을 제외하면 설교나 설법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린다. 재산을 둘러싼 형제자매 간 암투가 기업을 산산조각 낸 사례가 부지기수인데도 ‘호구는 되지 않겠다’며 역사를 반복한다. 얄팍한 상술로 온라인에서 그럴듯하게 치장한 물건을 팔다가 들통나서 분노의 소비자 폭격을 받는 사례는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온다. 


선의를 믿고, 꾸준히 진심으로 바르고 느린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들 보기엔 ‘호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진짜 이기는 사람들은 그런 호구들이다. 이들이 오랜 시간에 거쳐 얻는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만큼 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앞에서 말한 맘씨 착한 지인은 몇 년 뒤 독립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살고 있다. 그를 호구로 봤던 사장네 회사는 업계에서 잊혀졌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의 실패에 초조해하며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 문장은 끝까지 읽어봐야 아는 것처럼 인생의 결론도 오랜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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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들은 입마개 마스크를 달고 다니며 입 냄새를 즐기는 묘한 취향들을 갖고 있다. 차라리 매연과 먼지가 입 냄새보단 나을 거 같은데. 조그맣지도 않고 얼굴을 다 가리는 마스크는 가면 수준. 시골에선 마스크를 구경하기 어렵다. 혹시 올빼미를 보면 복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군. 검은 주둥이를 가진 똥개도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해. 복면 도둑을 잡자는 것이지 검정 마스크를 쓴 날강도는 아님이렷다.

의사 샘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술을 하는 이유는 혹시 잘못되어도 담당 의사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어. 힛~. 아무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자 올빼미도 움쩍 뒷발질을 하게 된다.

입을 가리면 표정을 알 수 없지. 한 항공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내건 구호가 “노 스마일!” ‘웃지 않기’였단다. 직원들이 미소를 거두고 화난 표정을 짓는다면 손님들이 대번 외면하게 되어 있다. 거기다가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꼬마 손님들은 놀라서 울지도 모른다.

사장님은 노동자를 웃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자기도 웃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또한 노동자도 감정노동이어서가 아니라 미소 띤 얼굴로 사는 편이 먼저 자기 자신과 영혼에 좋다.

언젠가 호주 숲에 갔다가 하얀 복면을 한 ‘흰가면 올빼미’를 보았다. 가면 올빼미는 탈을 쓴 광대처럼 보였다. 불행한 죽음을 가져온다 해서 원주민들은 이 친구를 잡아다가 현관문에 못 박고 액막이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흰가면 올빼미가 살지 않아 다행. 죽음은 올빼미가 가져오는 게 아니라 웃지 않는 인간이 가져오는 어두운 침묵. 올빼미는 죽어 가면을 벗겠지만 우리는 겹겹 회칠한 거짓과 위선을 벗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관용과 호의는커녕 혐오와 배척이 도가 지나치다 싶다. 특히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 일부는 가장 혐오와 배척의 주동세력으로 고착되었다. 가면 뒤엔 전쟁광 금약탈꾼 ‘십자군’의 얼굴이 보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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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당대의 세계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명제가 옳다면, 나의 유년기와 함께했던 숱한 동화나 전설은 일찍부터 어린아이들에게 불공정한 생존법칙을 주입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은 대개 천성적으로 잘나고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미남미녀에 영리하고 지혜로운 데다 선함과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무엇 하나 모자란 것이 없었다. 미운 오리마저 알고 보니 백조였다. 반면 그들을 시기하고 고난에 빠뜨리는 이들은, 어리석은 데다 성품은 교활하고 외모도 주인공을 따를 수가 없다. 주인공이 이기는 것이 당연했다.

시대가 변하며 오랜 시간 당연시되었던 삶의 법칙과 세계관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새로운 룰을 보여주며 현대의 전설이 되어가는 작품들 중에는 최근 흥행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왕좌의 게임>도 있다.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물이다. “드라카리스!”라는 주문과 함께 하늘을 날며 불을 뿜는 용과 마법사도 등장한다. 그러나 마법은 단지 거들 뿐, 드라마는 익숙한 영웅 공식을 가차없이 배반하며 다큐멘터리에 근접하는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잘 생기고 영리하고 힘 좋은 자들, 최후까지 남아 정의사회를 구현할 것 같던 매력적이고 존귀한 자들이 속절없이 비참하게 죽어나간다. 죽음의 신에게 세속의 영예 따위는 아무런 관심사가 아니다.

이 잔혹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름을 잃은 서자, 노예로 팔려갔던 공주,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자 능욕당한 여인, 거세된 군인, 난장이, 불구가 된 소년, 자수보다 칼 싸움을 좋아하는 소녀 같은 혹독한 야생의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왕좌의 게임>은 철 왕좌를 향한 영웅들의 무용담이라기보다는 소외되고 부족함 많은 이들이 각자의 결점을 극복하고 연대하며 굳건하게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성장 서사에 가깝다. 

수많은 영웅, 전사, 현자들이 각축을 벌이지만, 가장 평범한 호빗족 소년 프로도의 손에 절대반지를 쥐여준 <반지의 제왕>처럼. 사람들이 기피하는 소수자들의 아픔과 분노, 인정받지 못한 재능을 은유한 엑스맨과 돌연변이들처럼. ‘어벤져스’의 슈퍼 히어로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을 잃고 쫓겨난 왕자, 분노조절 장애 과학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슈퍼 리치, 스파이로 양성된 고아 소녀가 그들의 본 모습에 가깝다. 모든 것을 갖춘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어벤져스 엔드 게임>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현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와 흐름, 극복해야 할 구시대적 사고 등 많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히어로들과 싸우는 타노스는 요즘 말로 ‘마초 꼰대’의 정석이다. 그는 볼수록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닮았다. 한편으로는 정이 깊은 인물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갇혀 선악을 판단하고 세상을 응징하려 든다. 딸들 역시 자신의 뜻대로 개조하고 복종시키며, 필요하면 희생도 강요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그의 곁에는 많은 부하들이 있지만, 석양 속 거대한 몸집의 실루엣은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영화는 그의 딸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루트와 로켓 라쿤으로 대변되는 자연과 생명 존중 사상, 간간이 끼어드는 양념의 역할이 아니라 충분히 제 몫을 해내는 여성들의 활약, 미국의 현실적인 부와 자본을 상징하는 아이언맨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서서히 부상하는 아프리칸 파워 등. 공생을 도모해야 하는 지구촌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특히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가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쇠락하는 백인 패권주의에 대한 연민, 오랜 수고에 대한 존경, 독려와 함께 변화되는 미국의 권력 방향을 암시한다.

상업적 목적이건, 이상적 지향이건 미국의 지식인들이 공존의 세계관을 수용하고 제시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느낀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자국 우월주의와 과도한 상업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는 아름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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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 신임 원내대표에 재선의 오신환 의원이 선출됐다. 당내 소수파인 바른정당 출신으로 김성식 의원과의 대결에서 예상 밖 낙승을 거뒀다. 원내대표 경선이 손학규 대표체제의 재신임 성격을 띠면서 국민의당 출신 중 안철수계가 오 의원 손을 들어준 결과다. 오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마지막 1년 동안 원내 정책을 진두지휘하면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노정된 당내 갈등을 수습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신임 원내대표(왼쪽)가 16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이인영 원내대표를 예방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바른미래당 새 원내대표 선출이 주목받는 것은 선거제·개혁입법의 패스트트랙 시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 원내대표 당선은 패스트트랙을 추진한 현 지도부 퇴진을 요구해온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게다가 오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불러온 사법개혁특위 위원 사·보임 당사자다. 특히 민주당 주도로 만들어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오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본회의 처리 전에 선거제뿐 아니라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모두 여야가 합의할 수 있도록 중심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 ‘합의’를 명분으로 패스트트랙 법안의 수정 방침을 밝힌 것이다. 향후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개혁입법은 암초에 부딪칠 공산이 크다. 오 원내대표는 가뜩이나 축소된 공수처의 기소권을 아예 없애자는 입장이다. 검찰의 반발을 계기로 검경 수사권 조정안도 흔들릴 상황이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개혁 취지를 후퇴시킬까 우려스럽다. ‘보완’은 공수처의 독립성 강화 등 개혁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

선거제 패스트트랙도 오 원내대표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판이다. 패스트트랙이 최장 330일이 걸리게 되면 변경된 룰로 내년 총선을 치르는 건 어려워진다. 이제 와서 의원 정수 확대 등을 거론하는 것은 패스트트랙 동력을 떨어뜨려 선거법 개정을 좌초시키기 십상이다. 선거제 개혁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데는 제3당인 바른미래당의 끈질긴 노력이 작용했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허물고 다양한 계층의 의사가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제 개혁이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 선거를 치를 요량이 아니라면 거대 양당에 유리한 현행 선거제 혁파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정파적 이해타산에 매몰되지 말고, 정치개혁의 최고 과제를 바른미래당 이름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오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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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5일 버닝썬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가 속해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 내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모 총경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뇌물죄를 벗었다. 268만원 상당의 10여차례 골프 및 식사 접대 등을 받았지만 직무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 없다는 것이다. 액수가 작아 청탁금지법상 과태료 처분 대상일 뿐 형사처벌은 어렵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단속사항을 확인해준 것에 대해서만 직권남용 및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폭행사건 피해자 김모씨가 제기한 경찰의 증거조작·폭행 의혹 등도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났다. 지난 3월부터 서울청이 광역수사대 전담팀까지 꾸려 벌여온 경찰유착 수사는 큰 죄는 없고, 작은 죄만 묻는 수준에서 끝났다. 누가 봐도 ‘제 식구 감싸기’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5월 16일 (출처:경향신문DB)

경찰이 벌인 106일간의 수사 결과도 ‘구속 4명, 기소의견 검찰 송치 5명, 전·현직 경찰 11명 입건·내사, 카톡방 멤버 수사 중’이 전부다. 사법처리된 사람이 많다고 수사가 잘됐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승리 수사만 봐도 경찰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승리는 12차례의 조사와 18건의 조서에도 불구, 구속을 피했다. 법원은 승리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적다고 했다. 경찰은 구속영장 재신청을 포기한 듯하다. 수사에 허점이 있음을 자인한 꼴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형사사법에서의 반칙과 특권을 없애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핵심 원칙 중 하나가 ‘경찰의 1차적·본래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 부여’다. 버닝썬 수사를 보면 ‘제 머리도 못 깎으면서 남의 머리는 제대로 깎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든다.

버닝썬 사건은 사회의 온갖 비리가 드러난 부끄러운 현장이자,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다. 폭행과 마약, 성폭력, 불법동영상 유포, 경찰유착 등 한국 사회의 병폐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찰이 부실수사의 오명에서 벗어날 기회는 남아 있다. 버닝썬 사건은 관련자 몇 명을 구속하고 처벌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어서도 안된다. 마약 유통·성폭력·불법동영상 유포 근절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 시행해야 한다. 경찰만 나서서 될 일도 아니다. 정부와 사법당국, 정치권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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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출근길 ‘버스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15일 서울과 경기를 포함한 전국의 대부분 지역 버스노조가 파업을 철회·유보했다. 전국 버스노사는 협상 끝에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임금 감소분 보전과 임금 인상, 정년 연장 등에 합의했다. 당장의 불은 끈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버스요금을 올리고, 광역버스에도 국민 세금을 지원하는 준공영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버스의 공공성 강화라고 하지만 결국 돈으로 해결한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예견된 사태에 수수방관하며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지난해 3월 근로기준법 개정 때 노선버스 기사들은 근로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특례업종에서 빠졌다. 당연히 근로시간이 감소하는 버스기사는 임금 보전을, 버스회사는 새로운 기사 채용에 따른 비용 보전을 요구할 것으로 예견됐다. 그런데 1년여간을 수수방관했다. 정부는 전국 버스노조 파업 선언에 ‘주 52시간제와 관계없는 임금협상용 카드’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요금 인상을 요구했다. 지자체는 정부에 재정을 통한 보전비용 요구로 맞섰다. 그러다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결국 승객과 시민들이 부담을 떠안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전국 대부분의 버스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거나 보류한 15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버스들이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번 버스노사 합의로 버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경기지역 버스요금은 200~400원 오른다. 충남과 충북, 세종과 경남도 올해 안 요금 인상이 예상된다. 또 정부는 광역버스를 준공영화하겠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떠 “버스 등 대중교통은 준공영제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준공영제 운영에 따른 비용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세금이나 요금 인상 외의 방법은 없다. 준공영제는 구체적인 대책 없이 입에 발린 말로 성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과 동떨어지면 역풍을 맞는다. 버스기사들의 주 52시간제 도입은 당연하다. 버스기사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그 자체로 노동자 복지증진이며 승객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민이 부담하는 교통요금이 늘고,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지원금을 받는 버스회사들의 회계가 불투명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주 52시간제는 2년 뒤 5인 이상 사업장 모두 적용 대상이 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영세 기업들은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이중고가 예상된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취지를 살리되 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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