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익으면 딸기밭에 갔다. 노지 딸기는 단맛보다는 신맛이 강했다. 턱이 움찔하는 신맛이었다. 그래도 토독토독 씨 씹히는 재미가 있었다. 혀가 얼얼해지도록 따먹고 나면, 다라이로 하나 가득 담아와 딸기잼을 만들었다. 한나절 꼬박 솥에 붙어 서서 단김을 쐬었다. 솥에 남은 뜨끈한 딸기잼을 식빵으로 닦아 먹으면 별맛이었다. 딱 이맘때, 하우스 딸기가 없던 시절, 딸기의 제철은 봄인 것이 당연하던 시절, 나들이 삼아 가던 딸기밭, 옛 딸기의 맛.

딸기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실 것이 분명한데도 먹고 싶게 생겼다. 빨갛고 반질거리고 통통하고 갸름하고. 예쁘게 먹음직스럽다. 향기가 넘쳐나고 단물이 퍼질 것처럼 생겨먹었다. 산딸기는 더욱 그렇다. 도글도글 알알이 선홍색으로 뭉친 산딸기의 모양은 앙증맞게 자극적이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먹고 싶게 만드는 모양. 아 이렇게 예쁜 걸 어떻게 먹어. 뭐 그런 느낌. 역시나 하우스 산딸기가 있기 전, 야산을 오가다 우연찮게 발견해 한두 개씩 맛보던, 이게 웬 횡재냐 신나면서 어디 더 없나 감질나게 만들던, 산딸기의 진짜 맛은 거기서부터 온다.  

그리고 뱀딸기가 있었다. 뱀딸기는 산딸기보다 흔하게 만났다. 모양은 산딸기를 닮았다. 하지만 먹지 못하는 딸기, 혹은 먹으면 안되는 딸기였다. 뱀이 먹는 딸기라고도 했고, 넝쿨 속에 뱀이 숨어 있다고도 했고, 뱀이 지나다니는 길에 나는 게 뱀딸기라고도 했다. 그래서 뱀, 딸기인 거라고. 독버섯처럼 독이 있다고도 했고, 눈썹을 뽑고 먹으면 독이 안 오른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보는 것만으로도 독이 오르니 눈썹을 뽑아야 한다고도 했다. 다 어린애들의 소문이었지만, 어쨌거나 뱀딸기는 금지된 열매였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었다. 먹을 수는 없다지만, 먹고 싶게 만드는 마력의 뱀딸기. 

그래서 맛보았다. 일단 눈썹 하나를 뽑아 버리고, 나무 막대기로 넝쿨을 휘휘 저어 뱀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고, 괜히 발소리를 크게 내서 허세를 부린 다음, 살금살금 다가가 냉큼 따서 후다닥 돌아왔다. 기어이 손을 대고야 만 뱀딸기. 나는 금단의 열매를 베어문 아담이다! 내게 지혜를 다오! 뱀이여 올 테면 오라! 그리고 먹었다. 실망이었다. 맛이 없었다. 시지도 달지도 쓰지도 않았다. 어중간하게 시고 쓰고 무르고 맹맹했다. 먹고 나서 알았다. 그냥 맛이 없어서 먹지 말라고 했던 거라고. 그런데 자꾸 먹으려 하니까 뱀타령을 한 거다. 뒤도 안 돌아보고 그곳을 떠났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다. 제일 맛있는 과일은 제철 과일이 아니라 먹지 말라는 과일이고, 그보다는 먹지 말라는 걸 훔쳐 먹는 과일이라고. 훔쳐 먹는 맛이야 모든 음식에 치는 최강의 감미료일 터. 그래서 또 훔쳐 먹어봤다. 작정하고 훔친 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오래전이었다. 문청 시절. 친구와 함께 일지암에 갔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여연 스님에게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오자는 것. 초의 선사가 칩거했던 일지암은 다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차를 아는 스님만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했다. 당시 베스트셀러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읽고, 벼르던 일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한낱 소설가 지망생에게 차를 내줄지 미지수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필요도 없었다. 

일지암은 참 멀었다. 첫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해질녘이 다 되어서였다. 아무도 없었다. 스님은커녕 보살도 동자승도 뵈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밤을 새서라도 차 한 잔 꼭 얻어 마시고 가겠노라 결연히 앉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스님 방은 어찌 생겼나. 먼저 문을 연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문을 연 순간 우리의 모든 신경이 한 곳으로 향해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엉덩이는 마루에 걸쳐 놓은 채,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아주 안 들어간 것도 아닌 상태로, 향냄새 그윽한 스님의 방 한구석, 찻상. 

다기만 살짝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스님이 마시는 찻잎을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만 볼 생각이었다. 손에 닿은 찻잎 하나 씹어 그 맛을 어림만 해볼 생각이었다. 혀끝에 닿은 딱 한 톨의 찻잎. 손에 쥐고야 만 한줌의 찻잎.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사람 먹을 수 있을 만큼. 스님 물건 훔치면 지옥 간다는 말 들은 적 있어? 물건이 아니라 차잖아? 스님이 계셨으면 분명 차를 내주셨겠지? 아껴둔 차를 선물로 내주셨을지도 몰라. 차를 아는 스님이라잖아? 우리와 함께 차를 마시지 못한 걸 서운해하실 거야. 그럼 앞으로 근사한 소설가가 될 사람들인데.

달빛도 없는 어두운 산길. 우리는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불빛이 보이고 절 밑 여관방에 도착해 방문을 잠글 때까지. 야 이 도둑년들아, 누군가 쫓아올 것만 같았다. 산딸기나 됐으면 그 자리에서 먹어치워 증거를 없애면 되지만, 찻잎은 다음 공정이 꼭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훔친 차를 마셨다. 물을 붓고 또 부어서, 아무 맛도 나지 않을 때까지, 붓고 또 부어서, 말없이 마셨다. 스님 방에서 훔친 녹차 맛. 그것이 내가 맛본 최고의 차 맛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별맛 없었다. 그냥저냥 녹차 맛이었다. 혀가 아니라 머릿속에 남는 맛이었다. 심장만 벌렁벌렁하는 뱀딸기 맛이었다.

<천운영 소설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전쟁 이후 60여년 단절의 역사는 기적처럼 새로운 자연을 태동시켰다. 금단의 땅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보전, 복원되었다. 경기도 파주부터 강원도 철원 고성까지 248㎞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에서 단절되지 않은 유일한 동서 생태축이다. 서부전선의 사천강·사미천·임진강은 습지 생태계의 진수를 보여준다. 중부전선의 너른 평강고원과 철원평야, 한탄강 습지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며 멸종위기 두루미의 최대 월동지다. 한북정맥 삼천봉과 적근산,  백두대간 고성재와 삼재령, 고성 건봉산 일대의 동부전선에는 반달가슴곰, 산양, 사향노루가 살고 있다. 국립생태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5929종, 멸종위기 야생생물 101종이 남한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한 비무장지대,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전쟁과 분단, 냉전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명에게 유례없는 낙원을 선사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향한 상당한 진전을 지켜봤다. 상호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며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겠다는 남북 정상의 합의에 박수를 보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며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를 일부 철수했고, 한강 하구 공동 이용을 위한 수로 조사를 추진했으며 남북 공동 유해 발굴사업을 진행했다. 파주, 철원, 고성 지역의 비무장지대 평화둘레길도 발표됐다. 경의선과 동해선을 복원, 현대화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도 정상화할 것이다.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도 남북 합의에 따라 설치될 것이다. 경제적 번영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로 나아가겠다는 원대한 그림이다. 

그런데 작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무장지대 일원의 개발 압력은 폭발적이다.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계획이 평화와 안보의 이름으로 추진되었다. 비무장지대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계획,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 한반도 생태평화관광벨트, 비무장지대 평화둘레길 조성, 문산~개성 고속도로 등 행정부 구상은 ‘생태보전의 원칙’ 없이 중구난방이다. 생명의 땅, 비무장지대가 들썩이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이 합의한 ‘한반도 번영과 통일의 평화지대’도 마찬가지다. 경제, 번영, 통일을 명분으로 사업을 밀어붙이지만 ‘생태보전의 원칙’은 없다. 비무장지대 생태·평화 가치에 입각한 범정부 부처의 일관적인 지휘체계도 없다. 통일부와 국방부 주도의 남북 협력사업은 초기부터 공론화되거나 공개되지 않는다. 2006년 수립된 환경부 남북 경제협력 환경 가이드라인은 여태껏 무용지물이다. 평화는 있을지언정 생태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의 공간’으로서 비무장지대는 어떠해야 할까. 지금, ‘평화지대’로서 비무장지대에 필요한 것은 내부 탐방이나 관광이 아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번영의 가치도 아니다. 시급히 난개발을 억제할 남북협력 관련 환경 가이드라인을 만들자. 비무장지대 보전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자. 남북 공동 생태조사를 제안해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밝히고 근현대사의 문화유산을 발굴, 보전하자. 남북이 합의한 협력사업 이외의 계획은 멈추고 범정부 차원의 비무장지대 보전체계를 구축하자. 전쟁의 역사를 대자연으로 치유하는 곳. 비무장지대는 한민족이 인류에게 선사하는 미래의 세계유산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를 용서해야 하는가. 전두환 일당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내게 떠올랐던 물음이다. ‘5·18 민중항쟁’에 대한 망언이 넘쳐나던 올해는 특히 그랬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내란,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뉘우친 적이 없다. 범죄에 대한 사법적 추궁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일련의 과정을 ‘근거 없는 술책’이라며 비난했다. 2년 전 펴낸 회고록에도 속죄는 없었다. 진실에 대한 개인적 고백인 회고록을 그는 속죄보다는 자기정당화에 활용했다. 오히려 고해성사하듯 헬기 사격의 진실을 증언했던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의 부인이 그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속죄는 고사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며 호의호식하는 학살자. 그러나 그는 법적으로는 용서받은 자이다. 대법원 판결 8개월 만에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통해 내란, 살인 등의 무시무시한 죄를 모두 용서받았다. 사실 사면은 죄를 확정하기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모든 대선후보들이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그에 대한 사면을 약속했기 때문이다(이야말로 대선 승리를 위한 ‘근거 없는 술책’이었다).

죄를 확정하기도 전에 예정된 사면은 정의의 구현을 희화화했고, 진실규명 전에 천명된 국민화합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뒤틀어버렸다. 용서가 급하니 죄상을 낱낱이 밝힐 수 없었고, 화해가 급하니 처벌을 오래 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이상한 현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용서는 끝났는데 용서할 수 없는 사실들이 이제야 나오기 시작하고, 역사를 세웠는데 거기 들어갔어야 할 벽돌들이 바깥에서 나뒹굴고 있다. 전두환은 집단발포 직전 광주에 있었고, 군대는 ‘무릎앉아쏴’의 편안한 자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으며, 헬기의 기총사격이 있었고, 야만적 성폭행이 자행되었으며, 심지어 아우슈비츠처럼 소각로를 만들어 시신들을 불태웠다는 증언과 증거들. 그런데도 용서를 받은 학살자는 “이거 왜 이래!” 하며 화를 버럭 낸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를 용서해야 하는가. 그런데 최근 나는 자크 데리다의 <용서하다>를 읽으며 내 물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나는 은연중에 용서를 속죄와 교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누군가 자기비판의 고통 속에서 속죄한다면 그 정당한 대가로서 용서를 지불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는 용서를 “계산의 논리에 휘둘리게” 한다. 법의 논리와도 다를 바가 없다. 범죄와 처벌의 호응관계를 뒤집어서 속죄와 용서의 호응관계를 만들어낸 것뿐이니까.

또한 나는 은연중에 용서를 ‘진정한 화해’에 이르는 징검다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진상규명 후 가해자가 속죄를 하고 피해자가 용서를 하면 고통이 치유되고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진상규명, 속죄, 용서, 치유는 직접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들이 아니다. 진상을 규명한다고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속죄를 했다고 용서를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용서를 했다고 해서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 것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갈등을 견딜 수 없기에 진상규명 전부터 속죄를 다그치고 속죄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피해자에게 용서하라는 말을 꺼내며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도 역사의 종결을 선언해버린다.

끝으로 내 물음에는 정말 큰 문제가 있다. 나를 은연중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자’로부터 빼낸다는 점이다. 심지어 은근슬쩍 용서의 권한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우리’라는 이름 속에 들어가서 나는 무슨 자격으로 무엇에 대해 용서를 할 수 있을까. 내게는 이 역사적인 상처와 관련해서 용서를 구할 일이 없는가.

나 역시 함부로 용서를 말했던 사람들, 심지어 피해자에게 용서와 화해를 다그쳤던 사람들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교환의 시각으로 용서를 바라본 것은 법적 처분이 끝났으니 더 이상의 추궁은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멀지 않고, 진정한 용서가 가능할 때 진정한 화해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화해를 위해 이제는 용서를 하라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멀지 않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에서 자기 자신을 빼놓는 점에서는 아주 똑같다.

이는 전두환을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용서란 물건을 교환하듯 혹은 빚을 갚듯 청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설령 그것이 속죄일지라도). 또 용서와 화해는 별개이며, 누구도 화해를 이유로 용서를 꺼낼 수 없다는 것. 아마도 상처는 ‘용서한다’는 말 이후에도 아물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는 무한한 상처 위에서 계속될 것”(데리다)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 계속해서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만 그 상처에 다가갈 수 있고 그 상처 위에서 고백하고 다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런 고백과 다짐을 가능케 한 상처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 어떤 것으로도 덮을 수 없는 상처가 어떤 것으로도 덮을 수 없을 만큼 큰 선물이라는 것.

오월 광주 39년. 이 지면을 통해 나 역시 용서를 구한다. 미안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고백합니다. 다짐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도시재생이 정부정책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그런데 도시재생은 속도전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섬세하고 다양한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장소적 특징과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서울로7017과 뉴욕의 하이라인, 그리고 이런 사업의 원형이 된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파사주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파리의 경우는 폐철도를 활용해서 부족한 도심 공원 개념을 도입했다. 철도 주변의 중층 주거들은 도심지역의 특성 때문에 공원 같은 시설들이 부족한데, 이를 해결해준 것이다. 

뉴욕 하이라인 역시 지역적 특성과 결합해서 갤러리 중심의 미술유통 산업군이 형성되었고, 패션산업의 유통과 소비공간이 확보되었다. 동시에 공간적·도시적 특징은 뉴욕에서 가장 모험 가득한 지리적 특징으로 나타나 구글 같은 IT산업들이 들어서는 장소가 되었다. 반면에 서울로7017은 이런 장소적 산업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도시 공원이라는 측면만 강조되었고, 남대문 패션시장에 공급하던 다양한 의류산업 생태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만리동 일대는 남대문 패션시장의 제조 공급원이었는데, 서울로7017은 이에 대한 접근이 없었다. 

은 고가도로에서 녹지로 조성된 서울역 앞 ‘서울로 7017’ 개장 1주년인 20일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20일 개장한 서울로를 찾은 방문객 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도시재생이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 과제인 이유는 산업 생태계나 인문 생태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며, 일자리와 경제적 파급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은 톱다운(Top-Down)의 효율성이다. 그런데 도시재생은 복잡해서 톱다운과 지역기반의 다양한 연구와 관찰, 그리고 대안이 요구되는 정책 프로세스의 테마다.

대안은 뭘까? 최근 일본 구라시키를 방문하고, 담당 공무원의 설명을 들었다. 1968년 도시미관이라는 도시계획으로 출발해 약 50년간 진행한 구라시키는 실패를 거듭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진화해왔다. 전형적 지방개발 사업인 티볼리 공원이라는 테마파크는 잠깐 반짝하고 나서 디즈니랜드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들어서면서 망해버렸다. 테마파크는 우리나라의 지자체도 얼마나 많이 발표하는가? 일시적 투자 사업일 뿐이고 지속하기 정말 어려운 사업이다. 대부분 망한다.

구라시키 역시 망하고 나니 자신들의 지역 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도시 계획의 일환이었던 구도심 역사지역을 가공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장점을 찾은 것이다. 중요한 점은 한번에 큰 사업으로 성공하기보다는 지속적 정착을 위한 장기적 시각에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정착 지원도 얼마 안되지만, 2년에 걸쳐서 상담하고 검토함으로써 작은 이익으로 정착할 진짜 주민과 상인을 찾아낸다. 경관을 위해서는 8층짜리 건물용지를 사들여 건물을 높게 짓지 않는다. 이는 장소의 완성도를 위한 일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내 소상점이나 기업들에는 온라인 판매보다는 지역 판매를 장려하고, 특화 상품화를 지자체가 지원한다.

무엇보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 2년마다 보직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을 계속 공유하고 노력하는 담당 공무원들의 노력이 돋보였고, 이들과 함께하는 지역 건축사들의 애정과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아직 완벽한 성공이라 보기 어렵지만 50년에 걸쳐서 끝없이 노력하는 구라시키의 태도에서 지역기반의 학습과 관찰, 지속적인 개선이 도시재생의 필수조건임을 강조할 수 있었다.

<홍성용 | 건축사·건축공학박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을 망치지 말고 오늘을 사세요…!”

김혜자 선생님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수상소감을 들으며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내레이션을 인용하여 오랜 세월을 함께해준 시청자들에게 그녀의 진심을 전한 순간, ‘아… 사람의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파장을 지닐 수 있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녀는 천생 배우다. 그러나 때로는 자연인 김혜자의 삶을 외면하고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고통이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겪고 있는데 촬영장에서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야 하는 순간들 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러한 내면의 저항을 극복하고 ‘가짜’에 숨결을 불어넣어 ‘진짜’를 탄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녀의 장인정신이 시상식의 무대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우 김혜자가 출연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JTBC 제공

그녀가 덧입어야 했을 등장인물, 그 낯선 영혼의 ‘말’ 한마디에 진심을 불어넣어 시청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던 공력이 이 순간 그녀의 ‘말’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의 예술혼은 배우 김혜자의 ‘말’을 ‘진짜배기’로 만들었고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안겨주었다.

요즘 정치인들의 막말 퍼레이드는 마치 그녀와는 급이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듯하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배우들, 잔재주로 그럴듯한 연기를 하지만, ‘말’의 진심이 와닿지 않는 배우들이다. 한마디로 예술혼이 없는 배우들이다. 자신이 맡은 등장인물을 책임지지 못하고 시청자들을 정서적으로 설득하는 것도 실패한다. 오직 시청률에만 혈안이 된 막장드라마 속의 배우들을 보는 듯하다. 나도 그런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촬영 직전 대본이 나와 허겁지겁 외워진 대사는 공중분해된다. 시끄러운 소음을 생산할 뿐이다. 세상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지치고 허망하게 한다. 

평소 즐겨 읽는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야고보서 3장 6절) 

삶의 수레바퀴라는 표현은 ‘창조의 질서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 몸의 작은 일부인 ‘혀’가 불의와 타협하게 되면 삶의 질서가 불살라지고 파괴된다는 의미이다.

식물마저도 거칠고 폭력적인 언어에 노출되면 시들어 죽어버리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정치적 득실에 따라, 혹은 상대편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막말이 정치권에서는 마치 공력인 듯 행해지고 있다. 시민들을 대변하고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삶의 수레바퀴를 불태우는 일을 너나없이 벌이고 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눈에 보이진 않으나 가장 중요한 인간 정신의 투영이다. 시민사회의 정신이 망가지면 눈에 보이는 문명의 산물이 제아무리 차고 넘친다 한들, 그것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귀중한 줄 알아야 한다. 사람에겐 직관이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만 우리 삶에서 많은 것들을 수행하고 평가한다. 

정치인들은 날카로운 시민들의 직관적 시선이 자신들을 시청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에 자극적이고 폭압적인 말, 획일화된 말들이 사라지고 일상에 지치고 힘든 시민들을 위로할 수 있는 여운이 깃든 진심 어린 ‘말들’이 살아나길 바란다.

<추상미 배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반 칼럼/경향시선

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꽃 진 자리

어린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정희성(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연두는 새로 갓 나온 잎의 빛깔이다. 연한 초록의 빛깔이다. 맑은 초록 혹은 조금은 덜 짙은 초록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은 당신의 봄이 연둣빛 거기까지만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산홍이 아직 피지 않은, 진달래꽃이 겨우 막 피는 그 봄의 첫머리까지만 닿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와 그 범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연두의 빛깔 거기까지만 당신의 봄을 펼치려는 것일까. 아마도 이 연두의 빛깔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설레고,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속되지 않고, 마음이 맑고 신선한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은 들떠 두근거리고, 일렁거리고, 조심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의 자세가 연두의 속뜻일 것이다. 우리 본래의 마음 그 어귀가 바로 이 연두의 빛깔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우물  (0) 2019.06.03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5월17일 토요일

-21시40분: 비상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의결

-22시00분: 민주인사·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검속

-24시00분: 전국 주요 도시 대학에 계엄군 진주


5월18일 일요일

-09시40분: 계엄군, 전남대 앞에서 학생 등교 저지 

-15시40분: 계엄군, 금남로에서 시위대 강경진압. 흥분한 시민들 학생들에 동조

-19시02분: 계엄군, 통행금지 밤 9시로 연장 발표


5월19일 월요일

-09시30분: 시민들 점차 불어나며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대치

-14시40분: 공수부대 다시 강경진압

-15시00분: 기관장·유지들 진압 완화 군에 건의


5월20일 화요일

-08시00분: 광주시·광산·나주군 일대 고교 휴교령

-10시20분: 계엄군,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 남녀 30여명 연행해 속옷 차림으로 구타

-18시40분: 택시·버스 200여대 금남로에서 시위

-21시50분: 시민들, 왜곡보도한 광주MBC 방화

-23시00분: 계엄군, 광주역에서 발포. 시민 4명 사망


5월21일 수요일

-02시18분: 시외전화 두절

-13시00분: 계엄군,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

-14시00분: 시민들 예비군 무기고 탈취해 무장


5월22일 목요일

-09시00분: 금남로에 분노한 시민들 20만명 운집


5월23일 금요일

-10시15분: 시민수습위, 총기회수 작업 시작

-13시00분: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5월24일 토요일

-13시20분: 11공수,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4명 사망

-14시20분: 송암동에서 11공수와 전투교육사령부 사이 오인 총격전 9명 사망 


5월27일 화요일

-03시00분: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광주시 진입

-04시10분: 계엄군, 도청에 있던 시민군에게 사격

-05시10분: 계엄군 도청 진압 작전 종료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유가족 이금순씨가 후유증으로 사망한 아들의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5·18 39주년 기념식은 유족·학생 등 5000여명이 참석, ‘오월 광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주제로 개최된다. 광주 _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5·18은 12·12쿠데타로 군을 장악한 신군부가 민주화 시위에 나선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 무차별 살상한 반헌법적 범죄행위다. 5·18 열흘간의 상황일지는 이를 적나라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당시 계엄군은 학생·시민·남녀노소·행인을 가리지 않고 진압봉과 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고 옷을 벗기는 등 과격 진압했다.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일반 시민들과 고교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화 요구 시위에 합류했다. 시위대의 규모는 최고 20만명(당시 광주시 인구 60만명)에 달했다. 계엄군은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고,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광주 학살’을 방치했다는 부채의식과 아픔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되었고, 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는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5·18 망언’에 멍석을 깔아주고, 망언 당사자에 대한 징계를 완료하지 않고, 진상규명위 구성도 질질 끌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아무런 조치도, 반성도 없이 기념식에 참석해 또다시 봉변을 자초했다. 한국당은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만든 민주정의당의 후신이다. 반성 없는 가해자의 모습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했다. 시민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이를 놓고 “반쪽짜리 기념식”이라고 반발했다. 진상규명위 출범이 늦어진 것도 청와대 탓이라고 했다. 참으로 뻔뻔한 얘기다. 누가 5·18을 반쪽으로 만들었나. 당시 광주시민은 대한민국 국군이 아닌 ‘괴물’과 맞닥뜨렸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CCTV를 활용한 수술실 안전과 인권보호,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근절 방안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공동발의했던 의원 5명이 발의를 철회, 법안은 하루 만에 폐기됐다. 공동발의자들의 철회로 법안 접수가 취소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법안 철회 의원들은 “보좌관이 잘못 서명했다” “좀 더 검토가 필요했다”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충분한 검토 없이 법안을 발의했다면 문제다. 한 의원은 ‘의사 항의’를 이유로 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더 큰 문제다. 고질적인 ‘의료계 눈치보기’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가 의사의 진료를 위축시키고 의료진과 환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강하게 반대해왔다. 

수술실 폐쇄회로(CC)TV (출처:경향신문DB)

수술실 CCTV 설치 문제를 놓고 논쟁한 지는 오래됐다. 국회 입법 논의 역시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나 최근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의 대리수술 사건, 분당차병원 신생아 사망 은폐 의혹 등 수술실 사고가 잇따르면서 CCTV 설치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더 이상 의료계와 환자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당한 의견을 내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논의를 제대로 벌일 때가 됐다. 의사협회는 CCTV 설치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화와 토론에는 소극적이었다. CCTV 설치는 의사의 인권 보호, 환자의 사생활 보호, 응급실과의 형평성 등 이해관계와 명분이 뒤엉킨 복잡한 문제다. 마침 오는 30일 국회도서관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린다. 의료계도 전향적으로 나서기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