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일 버스파업 정말 한대요? 마을버스는 다녀요?” 

일주일 전 이 시간, 고등학생인 작은아이는 전철역에서 먼 학교 행사장소에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계속 물어봤다. 버스파업이 예고된 전국 각지의 많은 시민들이 밤늦게까지 다음날 출근 걱정을 하며 잠들었다. 

버스파업의 직격탄은 교통약자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다른 대안이 없는 이들,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에 살거나 승용차나 택시를 탈 수 없는 학생, 노인, 저소득층 등이 교통약자들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35%가 경제적, 신체적 교통약자들이라고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의 연설로 유명해진 6411번 녹색버스의 새벽 시간 노동자들에게도 한참을 힘들게 걸어나가야 하는 지하철보다 시내 구석구석을 모세혈관처럼 연결해 주는 버스가 든든한 발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전국 버스노조가 파업을 철회·유보한 15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횡단보도에 버스들이 신호대기에 멈춰서 있다. 권도현 기자

다행히 버스파업이 현실화되진 않았다. 파업이 예고된 몇 시간 전 극적 합의로 큰 탈 없이 마무리된 버스파업은 이젠 혈세 논란으로 뜨겁다. 경기도 버스요금 200~400원 인상과 정부의 광역버스 준공영제 확대 방침을 두고 “서민 주머니 털었다” “결국 혈세 넣어 땜질했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에선 보편적 공공재인 서비스들이 우리나라에선 민영시스템인 경우가 많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정부는 투자여력이 없으니 일단 민간에 맡겨 놓고 문제가 발견되면 땜질하는 식이다. 보육, 교육, 요양, 의료, 버스서비스 등이 그렇다. 처음엔 수요가 넘쳐 적은 비용으로 호황을 누렸던 대도시 버스회사들은 전철망이 깔리고 자가용이 늘어나며 이익이 줄기 시작했다. 서비스가 악화됐고, 적자노선 폐지 움직임이 이어졌다.  

여러 문제가 쌓이면서, 2004년 7월 서울시는 시민들의 교통복지를 위해 운영은 민간회사에 맡기되 적자노선의 수입을 시의 재정으로 보전해 주는 준공영제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난폭운전이 사라졌고, 교통사고가 줄었다. 서비스 만족도가 높아지며 이용승객도 늘었다. 모두 숫자로 검증된 효과다. 준공영제의 장점이 알려지며 현재 전국 지자체 8곳에서 버스 준공영제가 운영되고 있다. 

글로벌 건축 컨설팅 회사 아카디스(ARCADIS)가 발표한 2017년 세계 100개 도시 대중교통을 비교한 도시 교통 지속가능성 지수 조사에서 서울은 세계 최고의 대중교통 도시 4위를 차지했다. 

이런 호평은 공짜가 아니다. 2004년 준공영제 도입 이후 서울시가 3조7155억원, 한해 평균 2477억원의 ‘혈세’를 투입한 덕분이다. 민간 버스업체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운영, 불투명한 원가, 정부의 재정부담 등 준공영제의 한계는 분명 심각하다. 그러나 “성과까지 지우면 안된다. 단점은 다른 방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와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한국운수산업연구원 조규석 부원장은 “승용차 통행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했다. 선진국에선 대개 수입금 75%는 재정투입이고, 요금수입이 25%가량인데, 한국은 버스에 중앙재정의 지원이 거의 없는, 정반대의 기형적 구조다. 조 부원장은 “도로 확충 위주의 자가용 중심 교통정책에서 대중교통체제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는 교통에 관여돼 있는 사람들이라면, 교통전문가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도 단언했다.

2012년 6월 이명박 정부 당시 ‘G20 회의 대중교통의제 발굴 및 협력연구’ 보고서에서도 이미 “도시교통 문제는 곧 환경문제이며, 대중교통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이 녹색교통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대중교통 수요를 증가시키려면? 투자를 많이 해 대중교통 서비스가 좋아져야 이용객이 많아지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혈세 낭비는 막아야겠지만, 혈세를 쏟아붓는다고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 강상욱 선임연구위원의 제안대로 양질의 버스기사들을 양성하는 운송사관학교도 검토할 만하다. 젊은이들이 공시에 몰리듯 운전기사가 인기 직업이 된다면 사회 전체에 더 이익이 될 수도 있다.

버스 문제는 굵직한 현안들이 걸려 있는, 생각보다 훨씬 큰 문제다. 10년, 30년 후 우리 사회의 교통과 환경, 도시문제, 일자리 창출과 노동·복지 문제가 촘촘히 얽혀 있어, 잘 풀어내기만 하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도 있다.

말끝마다 ‘민생’을 앞세우는 정치권에서 버스 문제와 씨름하길 바란다. 

마침 제1야당이 전국을 돌며 ‘민생투쟁 대장정’ 중이다. 여야 없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지향적인 버스 해법을 내놓길 바란다. 날마다 타고 다니는 버스보다 더 시급한 민생이 어디 있겠는가.

버스 문제를 뒷전에 둘 생각이라면, 아예 민생을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송현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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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아이가 태어났다. 아빠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지켜봤고, 열 달 동안 엄마와 아이를 이어줬던 탯줄을 잘랐다. 그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기쁨, 환희, 감동… 흔히 쓰는 낱말로는 가슴 언저리에서 꿈틀대다가 마침내 온몸을 뒤덮는 전율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기쁨으로 규정하기엔 울컥하는 슬픔을 담을 수 없고, 환희라고 단정 짓기엔 막연한 두려움을 품을 수 없었다. 

간호사는 카메라를 가져왔느냐, 영상은 안 찍느냐 물었지만, 아이 아빠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요즘 아빠들은 대개 한다는 탄생 이벤트만 준비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아빠로서 준비가 된 것일까? 결혼한 지 6년, 그는 종종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렇지만, 막상 아이를 안고 보니 그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아이를 보려고 몰려온 가족들 앞에서도 그는 낯선 손님을 맞는 신입사원처럼 어설펐다. 처음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되고, 처음 고모나 삼촌이 되는 이들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는 마음껏 기뻐하고, 감탄하는 그들 옆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뭐라고 인사해야 하지? 고생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안아주면 좋을까?”

산모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냐고 묻는 누이를 보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와 똑같이 처음 아이를 맞은 가족들 모두 처음 하는 역할을 능숙하게 해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아이 요람에 카메라를 달아 가족이 언제든 휴대폰으로 아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손주를 들여다보면서 웃는 부모님을 보며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처럼 자신도 제법 괜찮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모성애, 부성애라는 것은 환상일지 모른다. 아이를 낳는다고 아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천천히 엄마, 아빠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 노릇도 스스로 익히며 배워야 한다. 부모로서 절대로 자만하지 않아야 한다. 

아름다운 탄생을 지켜보며 나를 돌아본다. 좋은 엄마가 돼 가고 있는 것일까?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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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창의적 교육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이야기하는 사람들. 난 당신들 보면 웃겨. 아무도 교사 얘기를 안 하잖아. 창의적 교육을 하려면, 교사가 창의적일 수 있어야겠지? 그런데 1반부터 끝반까지 교과서 똑같아야 해. 1반부터 끝반까지 진도 똑같아야 해. 1반부터 끝반까지 시험문항 똑같아야 해. 그래 놓고 창의적 교육을 하래. 좀 웃긴 거 아냐? 똑같은 식재료, 똑같은 레시피, 똑같은 조리도구 나눠주고는, 창의적 요리를 하라는 거잖아. 그 와중에 학교당 1년에 공문 1만건씩 쏟아지고. 

이런 상황에서 고군분투해온 혁신학교 선생님들에게, 일동 박수. 하지만 계속해서 고군분투하라는 교육감들에게, 일동 야유. 역풍을 일으키는 제도들은 그대로 둔 채, 교사들의 피땀으로 순풍을 일으키라네. 이거 뭐 시시포스의 노동이야? 제일 웃기는 구호가 ‘혁신학교 일반화’. 혁신학교는 공모사업인데, 이걸 어떻게 모든 학교가 하지? 슬슬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대놓고 거부하는데, 이제 혁신학교 10년 돌아봐야겠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회를 지탱하는 두 축이 ‘문화’와 ‘제도’라면, 혁신학교는 ‘문화’를 바꾼 셈이잖아. 이제 핀란드의 ‘제도’를 한번 들여다보자. 어, 그래 핀란드. 경쟁 없어도 교육이 잘나간다는, 그저 이런 이미지로 소비되어 버린 나라. 

우리는 높으신 분들께서 교육과정 성취기준 수백개 나열해서 내려보내잖아. 헐! 핀란드는 교육과정 무지 단순해. 그저 몇 학년 때 1차 방정식 가르치라는 식이야. 어떻게 가르칠지는 교사가 알아서 하라는 거야. 대충 요리 이름만 지정해 놓고, 식재료하고 레시피하고 조리도구는 교사에게 맡기는 거지.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교과서를 쓰게 되어 있잖아. 헐! 핀란드는 교사가 교과서를 집필할 수도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6개국에서 한다는 교과서 자유발행제. 레시피를 교사가 만드니까, 당연히 요리책을 교사가 쓸 수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 교과서로 뭘 선택할지 아니면 직접 집필할지 교사가 정하는 거지. 

우리는 신학년 시작하기 2~3주 전에야 교사가 담당할 과목과 학년을 알게 되잖아. 그나마 1주일 전이던 걸 요새 겨우 좀 앞당겼잖아. 헐! 핀란드는 2~3개월 전에 알아. 심지어 초등은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알아. 

우리는 기초학력 보완교육 하려고 방과후에 남기려면 온갖 눈치 보고 민원에 시달려야 하잖아? 헐! 핀란드는 교사에게 그냥 맡겨. ‘나머지 공부’ 경험하는 애들이 무려 70%야. 우리는 일제고사 다 없앴잖아? 헐! 핀란드는 중3 의무교육 끝날 때 일제고사 봐. 우리는 수업시간 내내 잠자도 졸업장 받잖아? 헐! 핀란드는 고3 졸업할 때 인증시험 봐. 논술형 시험을 과목별로 치르고 점수 낮으면 낙제. 

핀란드 제도의 철학은 ‘무지하게 확장된 교권’과 ‘복지국가적 책무성’의 결합. 혁신학교가 교사 학습공동체를 지향했다면, 핀란드는 교사 학습공동체가 전제. 혁신학교가 배움 중심 교육을 지향했다면, 핀란드는 배움 중심 교육이 전제. 혁신학교가 선진화된 교권을 지향했다면, 핀란드는 선진화된 교권이 전제. 이게 이미지로 소비되어 버린 핀란드 교육의 실체.

제주하고 대구에서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도입한다지? 이거 무지 핀란드적인 제도야. IB는 교사가 교육과정(성취기준) 만들고, 교과서 자유발행제이고, 교사는 자기가 담당한 학생만 평가해(교사별 평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시험삼아 해볼 만한 일 아니겠어? 혁신학교 문화하고 잘 들어맞잖아. 문화 없는 제도는 공허하지만, 제도 없는 문화는 맹목이잖아. 

교육감 너무 믿지 마. 진보도 기득권이야. 교육부 권한을 교육청으로 이양하라고? 허허. 교육부가 하면 갑질이고, 교육청이 하면 갑질 아닌가? 교육부가 내려보내면 잡무고, 교육청이 내려보내면 잡무 아닌가? 게다가 그러면 교사는 국가직 공무원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아무도 이런 얘기는 안 하더라고? 잘 들어. 교육부 권한은 ‘이양’하는 게 아니라 법제도를 정비해서 ‘소각’해야 하는 거야. 공문놀음 시수놀음 교과서놀음 이원목적분류표놀음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를 한참 불태워 없애 버려야 하는 거야. 

나는 원래 이 글 안 쓰고 싶었어. 혁신학교 교사들이 얼마나 개고생해 왔는지 알거든. 평론가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 미안하지. 하지만 혁신학교가 제도 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교육감과 교육청이라는 시야에 갇히고, ‘구성’이 아니라 ‘재구성’에 스스로를 제한한다면, 나는 감히 혁신학교에 미래가 없다고 말하겠어. 아니, 진보교육 진영 전체에 미래가 없다고 말하겠어.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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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국토정보공사…. 모두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다. 이름만으로도 각 기관의 주요업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공기업의 정체(identity)가 더 궁금하다면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기관소개’에 소상히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근 공시가격의 부정확성과 불투명성 문제로 자주 거론되는 한국감정원은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 어떻게 소개돼 있을까? 주요임무와 기능을 ‘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 즉 ‘감정평가’를 하는 기관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영문명칭은 ‘Korea Appraisal Board’이고 ‘Appraisal’은 ‘감정평가’의 영문표현이다. 이름에 걸맞게 제대로 정체가 잘 소개된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름과 달리 한국감정원은 ‘한국감정원법’에 따라 감정평가행위를 할 수 없다. 한 술 더 떠 감정평가행위를 하면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감정평가업계와 한국감정원의 갈등은 부동산업계에 널리 알려진 얘기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공기업이지만 한국감정원법이 시행된 2016년 9월1일 이전까지 한국감정원은 ‘부동산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의 부칙에 근거한 ‘의제감정평가법인’으로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의 일개 회원사에 불과했다. 

또한 감정평가산업은 이미 민간영역에서 활성화됐기에 한때 민영화 대상이었다가 이명박 정부 초기 공공기관선진화정책에 따라 기능조정 대상으로 축소된 적도 있었다. 

지금의 ‘한국감정원법’은 2015년 4월9일 당시 감정평가사협회장과 한국감정원장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8개 항목의 합의안 중 첫 번째가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업자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이다. 국토교통부도 2015년 12월28일과 2016년 8월31일 두 차례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업무에서 철수하며 업무 영역을 놓고 민간업계와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은 국민에게 오해를 유발할 수 있음을 질책하면서 한국감정원의 사명 변경을 주문했고, 김학규 한국감정원장도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나 지금은 사명 변경 불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도 아직까지 뚜렷한 자체 수익사업을 찾지 못하여 보험차원에서 ‘조사·산정’이라는 외피로 감정평가업무를 걸치고 있는 듯하다.

조직의 명칭은 그 조직의 존재목적과 성격·업무를 대변해야 한다. 감정평가업계가 바라는 바는 감정평가업계와 한국감정원이 각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다. 존재의 본질과 가치는 ‘이름’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감정원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100만번 불러봤자 국민에게 그 조직은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김남성 | 감정평가사사무소 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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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영욕(榮辱)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노생이 한단에서 꾼 꿈이 오래 회자되어 온 것도 영욕의 부질없음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재상의 영예와 역적의 치욕을 번갈아 겪으며 80평생을 살았는데 깨어나 보니 조밥이 채 익기도 전이더라는 이야기다. 영욕이란 이처럼 잠깐 들었다 깨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치욕을 피하고 영예를 얻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영과 욕을 낮과 밤, 추위와 더위처럼 그저 지나가는 자연현상처럼 여겼다는 일화가 숱한 제문과 비문에서 칭송의 문투로 사용되어 온 것은, 영욕에 초탈한 사람이 얼마나 드물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영예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순자(荀子)는 영욕이야말로 성왕이 내세운 기본 원칙이라고 하였다. 그는 영과 욕을 의영(義榮)과 세영(勢榮), 의욕(義辱)과 세욕(勢辱)의 넷으로 나누었다. 의영과 의욕은 자신의 언행으로 인한 영과 욕이고, 세영과 세욕은 외부 조건에 의한 영과 욕이다. 세욕은 소인뿐 아니라 군자라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의욕은 소인에게만 해당된다. 세영은 소인도 누릴 수 있지만, 의영은 군자만이 누릴 수 있다.

퇴계 이황은 사화에 몰려 퇴출된 이연경을 두고 강호자연 가운데 의영(義榮)을 지닌 인물이라고 평했다. 권세에서 밀려난 상황임에도, 그의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를 대하다 보면 누구든 마음이 맑아지고 생각이 명료해진다. 이익만 좇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이처럼 내면 깊은 곳에서 은은히 향을 발하는 이에 대한 존경은 진실의 힘을 지니고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이황은 그가 근심 가운데 진정한 즐거움을 누렸다고 하였다.

군자에게는 의영뿐 아니라 세영도 주어질 수 있다. 사심 없는 군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예가 주어지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다만 소인의 세영과 군자의 세영을 가르는 기준이 있다. 부끄러움과 당당함이다. 소인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 게 얻은 세영을 등에 업고 떵떵거리면서도 끝내 당당할 수는 없다. 군자는 부끄러움을 알아서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분별하였기에, 그렇게 얻은 세영을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누릴 수 있다. 영욕에 초탈할 수 없다면, 영예를 추구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볼 일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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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덴마크는 유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먼저 의료 지원 의사를 밝혔다. 곧바로 최고의 의료진을 병원선 ‘유틀란디아호(Jutlandia)’에 태워 보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도 따로 의료진을 파견했다. 이들 스칸디나비아 3국 의료진의 활약은 눈부셨다. 연인원 5000명의 의료진은 쉴 새 없이 전상자와 민간인을 치료했다. 이런 노력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한국과 이들 3국은 1958년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공동으로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세웠다. 유엔의 지원사업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다. 이때 병원 측은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3국 의료진을 위해 구내 음식점과 휴게시설을 마련했다. 국내 최초 뷔페 식당, 스칸디나비아클럽의 탄생이었다.

뷔페는 원래 바이킹들의 풍습이다. 긴 항해에서 돌아온 뒤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서 축제를 벌인 데서 유래했다. 이것이 2차세계대전 중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한국에는 6·25전쟁을 계기로 본고장 뷔페가 스칸디나비아클럽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스칸디나비아클럽은 뷔페 음식에 이들 3국의 국왕 사진, 북유럽풍 가구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처음에는 주한외교사절과 정치인 등이 회동 장소로 이용했다. 1968년 의료진의 철수와 함께 외부에 개방됐는데 금세 명소가 되었다. 클럽이 낸 임차료는 의료원 의사들이 스칸디나비아 3국에 연수를 다녀오는 기금으로 지원됐다. 한·스칸디나비아 우호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다.

아쉽게도 이 클럽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의료진 철수 후 한·스칸디나비아 재단이 맡아 운영하다가 2012년 문을 닫았다. 한때 가족행사 장소로 인기가 있었으나 뷔페 식당이 많아지면서 적자를 면치 못한 것이다. 이로써 3국 의료진의 흔적은 국립의료원 내 스칸디나비아 기념관에 자료로만 남아 있다. 한·덴마크 수교 60주년을 맞아 프레데릭 덴마크 왕세자 부부가 방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공관에서 환대한 데 이어 2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라호텔에서 왕세자 부부에게 서울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한·덴마크 상호 문화의 해를 맞아 문화교류 행사들도 열린다. 스칸디나비아클럽의 부재가 아쉽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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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말부터 올해 5월 초까지 한국일보에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라는 기획을 매주 연재했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 지성사를 돌아보려는 게 그 의도였다. 60명의 지식인들이 그 대상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다룬 이들은 시인·소설가·평론가를 포함한 문학가들이었다.

문학가들이 다룬 주제들은 그렇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 민족과 역사와 사회가 일차적인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 못지않게 우리 문학가들의 시선을 끈 주제는 가족이었다. 60명 중 한 사람인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사간 날, 첫날 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셋방살이를 끝내고 서울 현저동 꼭대기에 집을 장만해 이사한 날 밤 장면이다. 말뚝이 뜻하는 바는 세상의 거센 바람 속에서 식구들을 지켜줄 든든한 집이자 가족일 것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 … / 이것이 사랑이냐 /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60명 중 또 다른 문학가인 김수영의 시 <나의 가족>이다. 김수영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정의를 절규했다. 동시에 그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 역시 노래했다. 아무리 낡고 오래돼도 좋은 것은 가족의 사랑뿐이라는 그의 독백은 여전한 감동을 안겨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내가 왜 가족 이야기를 꺼냈는지 눈치챘을 듯하다. 5월은 가정의달이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이 있다. 어제 21일은 부부의날이었다. 돌아보면 가족은 민주주의, 시장과 함께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경이로운 제도다. 민주주의와 시장이 인간이 갖는 정치·경제적 합리성을 구현한 사회적 제도라면, 가족은 사적인 삶이 진행되는 개인적 제도다. 혈연과 친밀성을 기반으로 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족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 가족이 빠른 속도로 변화해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현재 1인 가구의 비율은 28.6%이고, 2인 가구는 26.8%다. 전체 가구의 55.4%가 1~2인 가구인 셈이다. 그리고 평균 가구원 수는 2.5명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민주주의와 시장 못지않게 가족 또한 극적인 변동을 겪어 왔음을 함의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다시 1~2인 가구의 증가로 변화해온 이러한 흐름을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는 두 가지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러한 경향은 가족의 해체라기보다 그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특정 가족 형태를 정상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파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1인 가구의 증가 경향이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25년 31.3%에 도달하고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고령사회의 도래와 젊은 세대의 미혼 성향이 일차적인 원인을 이룬다. 이러한 1인 가구의 증가는 우리 사회를 혼밥·혼술·혼영의 ‘나 홀로 사회’로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나 홀로 사회에 대해 그렇다면 당사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에 대해선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연소득 1200만원 이상의 20~50대 2100명을 조사해 발표한 ‘1인 가구 보고서’가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사는 이들은 한편으론 외롭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유로움과 나 홀로 사는 즐거움에 만족감을 보였다. 71.2%가 1인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과 여성의 평균 만족도(78.0%)가 남성(64.5%)보다 높다는 결과는 특기할 만하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개인주의의 증가 경향을 고려할 때 1인 가구의 증대는 비가역적 흐름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러한 흐름을 주목할 때 1인 가구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요청된다. 구체적으로 젊은 세대의 주거 대책과 고령 세대의 고독사를 포함한 노후 대책 등에 대한 복지정책들이 강화돼야 한다. 가족의 변화에 대해선 개인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뭉클한 것 가운데 하나는 휴대폰에 저장한 가족의 사진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기엔 더없이 잔잔한 기쁨,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달을 보내면서 가족의 변동을 지켜보는 한 사회학자의 소회를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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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의한 부인 사망 사건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공인(公人)이 아내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폭력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의 시의회 의원 및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볼 때 이 사건이 정당 간의 논쟁거리로 뒤바뀌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부실한 공천절차 속에서 자격미달의 시의원을 임명한 민주당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출처:경향신문DB

가정폭력은 여성인권의 바로미터이자 ‘사적영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고문과 유사하다고 한다. 노인폭력, 아동폭력 그리고 남성 배우자에 대한 폭력도 있지만 대다수 가정폭력은 남성 배우자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가정폭력은 젠더에 기반한 사회적 폭력현상이다. 가정폭력이 길거리나 가정이 아닌 공간에서 행해지는 폭력과의 차이는, 그것이 부부, 부모자녀와 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쉽고 가정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발생하여 잘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발표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폭력을 경험한 대다수 피해자들이 폭력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그냥 당하고 있었다”가 42.8%, “자리를 피하거나 집 밖으로 피했다”가 33.3%로 대다수 피해자가 별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는 4.9%, “방어하거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맞대응을 했다”는 20.6%로 25% 정도에 그쳤다. 만약 길거리에서 동성 간에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면 과연 이런 대응 경향이 나타났을까. 가정폭력은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고약한 범죄이다. 최초 사건 발생 6년 이후에야 보호시설이나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전체 응답자의 39.1%에 달했다. 신고하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기관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서” “자녀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창피해서” “도움을 요청해도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배우자가 아는 것이 두려워서” 등으로 응답했다. 이렇게 가정폭력은 지속적이기 쉽고 표면화하기 어렵다. 가정폭력의 폭력성을 일반적 형사사건의 기준보다 더욱 무겁게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응급조치나 긴급임시조치(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와 제지, 상담소, 보호시설의 인도 등)가 실효성 있게 행해지는지도 미지수이다. 경찰에 신고했던 피해자들도 “경찰관들이 피해자의 충격과 공포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는 항목에 부정적 응답을 한 경우가 35.7%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응답을 한 경우가 절반에 이르렀다. 사법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응할 때 젠더 차별구조에 대한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인식이 없다면 ‘가족’이란 친밀성의 가장 아래 폭력이 허용되는 치외법권으로 존재할 것이다.  

특히 가해 배우자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유능한 인물이라면 여성 피해자는 더더욱 폭력을 공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개는 자신뿐 아니라 자녀가 누리는 사회경제적 지위, 나아가 남편이 속한 조직의 명망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법 제4조 제1항에는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는 아동교육이나 노인치료, 장애인 시설 혹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종사자 등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 선뜻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었을까. 가정폭력(범죄)으로 확신할 수 없어서, 개입했다가 오히려 비난을 받을까봐, 아니면 이후의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지 않았을까. 다른 한편, 법 제9조에서 검사는 가정폭력 사건의 성질 등을 고려해서 형사사건이 아니라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고 이때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그 처벌 여부를 묻는 것은 주위 공동체가 가정폭력 개입을 자제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쌍의 태도이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의 일’이라는 태도이다. 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대해 정말 주위에서 아무도 몰랐을까. 부인의 가족, 친족, 친구, 이웃, 학교, 복지단체들은 다 어디에 있었을까. 폭력에 개입하고 조언해 줄 커뮤니티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자는 폭력 행위자이지만, 가정폭력은 ‘잘못된 일’이라고 명료하게 발설하지 않았던 다층적 방관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거기에 여당과 야당이 나뉠 수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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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가슴 먹먹한 일이었다.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은하단 M87에 있는 블랙홀의 그림자가 드러난 4월10일 밤, 우주의 광대함에 압도되기보다는 내가 우주의 한 존재라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블랙홀이 관측된 후, 나는 이 일이 가능하기까지 전 세계 과학자 200여명이 어떻게 협력했는지를 촬영해 유럽남부천문대(ESO)가 공개한 17분여 분량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뭉클해지는 장면은 관측에 동원된 여덟 개 사건지평선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었다.

블랙홀 관측에 가장 적합한 조건은 사람이 견디기에는 가장 힘든 환경이었다. 도시의 빛이 관측을 방해하지 않도록 문명세계로부터 먼 것은 기본조건이다. 해발고도 5000m인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는 과학자들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했다. 겨울이면 몇 달씩 밤이 계속되는 남극은 관측에는 최적의 입지이지만, 햇빛 없는 나날을 살아야 하는 연구진은 심리적 압박과 싸워야 했다.   

특히 남극의 데이터는 다른 일곱 개 망원경에서 관측된 데이터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조각이었다. 2017년 10월경 일곱 개 망원경에서 관측된 데이터의 1차 정리가 끝났지만, 연구진은 남극 데이터가 도착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남극에서 측정이 끝난 것은 그해 4월이었고, 페타바이트(10의 15제곱 바이트)급의 데이터는 하드디스크에 저장됐다. 그러나 2월부터 10월은 남극의 비행기 운항이 통제되는 기간. 마침내 11월 초 남극을 떠난 데이터가 미국 보스턴 MIT의 헤이스택(Haystack) 천문대에 도착한 것은 12월13일이었다. 

남극 데이터가 도착한 이틀 후 연구 책임자가 연구진에 보낸 메일에는 페덱스의 배달원이 대형 화물 트럭에서 하드디스크가 담긴 나무상자들을 내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담겨있다. 페타바이트급 데이터를 옮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비행기, 배, 기차 그리고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5500만 광년 저편에 있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인류가 볼 수 있었던 데는 안전하게 데이터를 옮긴 페덱스 배달원의 기여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13일 새벽 어머니와 살던 세종시 자택에서 과로로 숨진 30대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이른 출근을 위해 전날(12일) 밤 거실에 미리 준비해 둔 집배원 조끼. 조끼 안에는 업무에 필요한 잔돈, 우편물도착안내서, 볼펜, 매직, 자동차 키, PDA 배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정대연 기자

5월12일과 13일, 불과 이틀 동안 3명의 우체국 집배원이 지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블랙홀 연구의 숨은 조력자였던 페덱스의 배달원을 떠올렸다. 세상을 떠난 세 집배원 중 두 명은 돌연사였다. 전국집배노조는 2018년 한 해에만 25명의 집배원이 안전사고, 과로사, 자살로 사망했다고 밝혀왔다.

출근길에 끝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공주우체국 소속의 서른 네 살 상시계약직 집배원의 곁에는 출근 준비해둔 옷과 집배원 가방, 정규직 응시원서가 놓여 있었다. 응시원서에는 ‘행복과 기쁨을 배달하는 집배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포부가 적혀 있었다. 

고인의 형이 올린 청와대 청원에는 고인의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였지만 근무시간 안에는 도저히 하루 1200여통의 우편물 배달을 마칠 수 없어 집에서까지 우편물 분류작업을 했다는 고된 일상이 담겨있다. 

우편집배원들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것은 어제오늘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임금 노동자 연평균 노동 시간인 2052시간(2016년 기준)과 비교하면 하루 8시간 노동을 한다고 했을 때 87일을 더 일한 셈이다.

메신저로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고 e메일이 우편을 대체한 지 오래인 것 같은 세상이지만, 집배원들의 일은 인터넷 시대에 오히려 늘었다. 등기나 택배처럼 사람을 직접 만나 서명을 받고 전달해야 하는 우편물을 보내거나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만큼의 수고인지를 안다. 

5500만 광년 저편 우주의 일도, 배달원의 노동 없이는 드러날 수 없었다. 지상에서 한 집배원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것은, 한 우주의 상실이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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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 1호기에서 최악의 안전관리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0일 한국수력원자력이 한빛 1호기 제어능력 시험 도중 열출력에 이상이 발생했으나 12시간 가까이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열출력이 제한치를 넘어서면 즉시 수동으로 정지시켜야 하지만 계속 가동됐다고 한다. 열출력이 높아지면 ‘원자로 폭주’로 이어져 자칫 원자로가 폭발하는 대형사고로 확대될 수 있다. 시민단체는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처럼 폭주로 갈 뻔한 사고”라고 말하고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원안위는 한빛 1호기 사용을 정지시키고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해 특별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원전에 특사경이 투입되는 것은 1978년 원전 상업운전을 시작한 뒤 처음이다.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이 21일 서울 중구에 있는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에서 개최한 ‘한빛 1호기 긴급정지 사건 해설’ 설명회에서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한 소장 왼쪽은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오른쪽은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이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이번 사태 경위를 보면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이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다. 한수원의 운영기술지침서에는 ‘열출력이 제한치를 초과하면 즉시 원자로를 수동정지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가동중단은 원자력안전기술원 소속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문제를 확인하고, 매뉴얼에 따를 것을 지시한 뒤에야 이뤄졌다. 한수원은 “원자로가 위험수준에 이르기 전에 자동정지되도록 설계돼있다”고 했지만, 불의의 사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2012년 고리 1호기에서 작업자들이 실수를 은폐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큰 사고를 숨긴 채 어물쩍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원전의 안전관리도 주먹구구식이었다. 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가 제어봉을 조작하는가 하면, 감독의무자는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총체적인 관리부실이 아닐 수 없다.

원전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오랜 기간에 걸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이미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경험한 바 있다. 철저한 안전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더구나 한국 원전시설은 노후화되면서 위험성은 높아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한빛 2호기와 월성 3호기가 갑자기 가동중단되거나, 불꽃이 일어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는 사고가 난 한빛 원전 1호기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 원전 전반에 대한 안전점검과 원전관리자들의 안전교육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원전 안전에 사고예방 이외의 방법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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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저임금 노동자 비율을 떨어뜨리고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올려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최저임금제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진 음식숙박업 등에서는 고용을 줄이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한 것으로 드러나 취약업종에 대한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21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최저임금 현장 실태파악 결과’에 따르면,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인 고용형태별 지니계수는 지난해 0.333으로 2017년(0.351)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임금 상위 20%의 임금 총액을 하위 40%의 임금 총액으로 나눈 10분위 분배율도 지난해 2.073으로, 전년(2.244)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률(16.4%)이 임금 불평등 해소에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감소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21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최저임금 개악 피해사례 고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문제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 일부 취약 업종에서 고용감소와 노동시간 감소가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인건비 부담을 느낀 사업주가 고용을 줄이거나 영업시간을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음식숙박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업종 내 과당경쟁과 온라인 상거래 확산 등 영업 외적인 요소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컸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일부 노동자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도 실제 받는 임금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함께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은 아쉽다. 

문재인 정부는 2018~2019년 2년 연속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로 인상했다. 이를 두고 경영계에서는 ‘수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등의 억측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속도조절론에 인상유보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말해주듯,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보장, 임금 불평등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물론 도소매업 고용감소 등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최저임금의 인상부담을 공유하거나 임대료 인하, 카드수수료 완화가 대책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이 아니라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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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컨설팅 전문회사 ‘딜로이트 글로벌’이 전 세계 42개국 밀레니얼세대(1983~1994년생) 1만34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밀레니얼 서베이’ 분석 결과를 21일 내놓았는데, 한국 청년세대의 미래 전망은 온통 ‘잿빛’이었다. 올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자는 지난해 48%에서 13%로 급락, 42개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정치·사회 전망을 긍정적으로 본 응답자도 지난해 52%에서 16%로 떨어지며 세계 평균치보다 낮았다.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1명뿐이었다. 이 항목의 42개국 평균 응답률은 29%였다. 한국 청년들은 높은 연봉과 부유함(63%), 자가주택 소유(56%)를 꿈꾸면서도 가정을 이루겠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직장 만족도도 낮았다. 절반 이상이 “2년 이내에 현 직장을 떠나겠다”고 답했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의 진단은 이처럼 참담했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빼앗은 것은 우리 사회다. 청년 실업률은 11.5%까지 치솟았고, 구직 포기자도 200만명을 넘어섰다. 고용세습·채용 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져나와 좌절감을 안긴다. 폭력·폭언 등 갑질문화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불안한 일터에서 ‘김용균’과 같은 20대의 억울한 죽음도 이어지고 있다. 직장을 다녀도 7년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결포·직포 세대’가 늘고, 결혼을 해도 아이 한 명 안 낳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 불안은 세대 간 갈등의 골도 깊게 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청년 10명 중 3명은 “기성세대는 노력에 비해 큰 혜택을 누리면서도 배려가 없다”고 답했다. 이런 응답률이 한 해 전보다 10%이상 증가했다. 

청년의 우울한 미래 전망은 한국 사회의 불안한 미래로 연결될 수 있다. 이들에게 ‘희망 사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안전한 일터를 제공해야 한다. 주거·의료 지원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기본법’의 제정과 시행이 그것이다. 이미 6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고용뿐 아니라 능력 개발과 주거·금융·문화생활을 지원할 근거를 담고 있다. 여야는 법안에 대해 합의도 했다. 이제 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법안을 처리하면 된다. 그것이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되돌려주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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