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철이다. 집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도 아카시아 향기가 훅하고 들어온다. 완충녹지로 남은 야트막한 야산에서 날아오는 향기다. 노인들의 구술에서는 종종 아카시아꽃 이야기가 나온다. 보릿고개에 배가 고파 아카시아꽃을 따먹곤 했는데 빈속이어서 나중에는 속이 아리더라는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다.

아카시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다. 벌꿀의 70% 이상을 아카시아에서 얻는다. 꽃을 따라다니며 꿀을 채취하는 이동 양봉농가 다수가 아카시아꽃을 따라다닌다. 밤꿀이니 유채꿀이니 하는 것들은 꿀벌들이 주로 어떤 꽃에서 꿀을 따왔는지, 즉 밀원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이 외에 메밀, 들깨도 중요한 밀원식물이다. 반대로 한 군데에서 계속 꿀농사를 짓는 고정 양봉은 온갖 꽃들에서 꿀을 모아 오기 때문에 ‘잡화꿀’이라고도 하고 ‘야생화꿀’이라고도 한다. 이런 꽃꿀 말고 벌에게 설탕물을 먹여서 얻는 ‘사양꿀’도 있다. 가축을 먹여 기른다는 뜻의 ‘사양’이다. 설탕물로 만들어서 꽃향도 나지 않는 사양꿀이 무슨 꿀이냐며 양봉농가와 토종꿀을 생산하는 한봉농가에서는 불만이 많다. 소비자들은 사양꿀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설탕꿀’로 이름을 바꿔 달라는 청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가공식품이나 디저트업계에서 많이 쓴다.

감미료 정도로 여겼던 벌꿀의 세계도 복잡다단하다. 양봉도 ‘축산업’이다. 동물에게 사료를 먹여 그 부산물을 챙기는 것이 축산업이라면 양봉도 당연히 축산업이다. 벌에게도 꽃이 없는 겨울에는 사료를 먹인다. 꽃가루와 설탕 등을 떡처럼 만든 ‘화분떡’을 먹이고 설탕물을 먹여 돌본다. 깨끗한 물도 줘야 한다. 또한 전염병을 막기 위해 방제작업도 해야 한다. 토종꿀 농사를 짓는 한봉농가를 위협하는 낭충봉아부패병은 토종벌만 공격해 2009년 토종벌 90% 정도를 집단 폐사시킬 정도로 무서운 제2종 가축전염병이다. 구제역이나 AI로 소나 돼지, 닭이 살처분되면 큰 충격을 받고 여론이 들끓지만 작은 꿀벌들에게 일어난 일은 잘 모르고 지나간다. 며칠 전 낭충봉아부패병 발생 소식이 들려와 한봉농가들은 긴장 중이다.

꿀벌의 역할은 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벌은 생물다양성의 파수꾼이다. 꿀도 따고 몸에 묻은 꽃가루 덕분에 수정을 한다. 친환경 농업에도 수정벌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설로 차단되어 벌이 들어오지 못하지만 벌통 하나 가져다 놓으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다. ‘수정벌 참외’라고 자랑스레 내거는 이유도 벌이 그만큼 환경에 민감해서다. 토마토 농사를 지었던 우리집에서 고된 노동 중 하나가 ‘꽃찍기’였다. 호르몬제인 수정액을 일일이 토마토꽃에 바르거나 뿌리는 일이다. 수정벌만 있으면 해결될 일이었건만. 그런 생고생을 했다니.

양봉과 농업은 공생의 관계지만 갈등도 일어난다. 한창 꿀을 모아 오는 꽃철에 예고도 없이 농약을 살포해서 벌이 죽는 일 때문이다. 근래엔 항공방제도 꿀벌에게는 큰 위협요소다. 여타의 가축처럼 사육밀도의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밀원인 꽃은 부족한데 양봉은 많이 늘어나 밀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양봉농가의 법적 지위는 취약했고 제도적 지원도 미비했다. 한국의 양봉 역사 100여년 만에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뒤늦게나마 발의되었다. 눈물겨운 벌꿀, 아니 꿀벌의 인정투쟁이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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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거친 막말이 내던져지고 죽은 이들마저 정쟁으로 소비되는 소란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이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그를 떠올린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둘러싼 정부와 검찰의 마찰은 검찰개혁이라는 오랜 난제와 맞물려있다. 그것은 노 전 대통령의 공약이자 미완의 숙원이었다. 취임 직후 그와 ‘검사들과의 대화’는 젊은 대통령 노무현의 시련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은 현재 제시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도 검찰이 자성·각성하고 자체적 개혁안을 추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권력의 축소와 조직 개혁의 필요성은 널리 인정되지만, 얼마나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관한 의견차가 첨예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장자연리스트 사건’을 조사해온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수사를 권고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성폭력과 ‘리스트’의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은 애당초 검경의 수사 부실 및 증거, 자료, 기록의 무더기 누락, 증발 때문이다. 조선일보 외압 의혹과 관련 수사의 미진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핵심 의혹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여 수사를 권고할 수 없다는 위원회의 보고는, 검찰이 주도하는 형사사법체계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한다. 증거가 부실하게 수집되고 수사기록이 어이없이 증발한 이유가 밝혀지지도 않고 누가 그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을 따름이다.

게다가 조사단 구성에서 소수인 내부단원 검사들의 의견을 위원회가 채택해 외부인 단원들의 다수 의견이 묵살되었다는 공개 비판을 진상조사단 총괄팀장인 김영희 변호사가 내놓은 터다. 힘없는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배후로 의심되는 거대 언론사의 외압과 용두사미 셀프 조사, 조직이기주의의 의혹이 남는다면, 아무리 국민의 실생활과 기본권을 내세우더라도 검찰의 자체 개혁을 신뢰하고 지지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개혁은 2003년 노 대통령 취임 당시 뜨거운 현안이었다. 검찰개혁을 최초로 시도했던 노 대통령의 개혁의지와 파격적 인사에 검찰 조직은 반발했고, 취임 한 달도 되기 전에 검사들과 마주 앉은 노 대통령에게 그들은 모욕에 가까운 공격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는 검찰개혁에 실패했고 그 실패를 통탄했다.

2007년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또다시 표면화했다. 고 노회찬 의원은 “수사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떡값 검사’ 7명의 명단과 X파일 녹취록 일부를 공개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로 인해 기소된 노 의원은 2007년 5월22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기소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꼭 2년 뒤인 2009년 5월23일에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중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노회찬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국회의원 지위를 상실했다. 이 불운한 연쇄작용은 작년 7월 그의 자결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또 임기 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의 변호인으로서 그를 지켜봤던 문재인 변호사는 이제 대통령이 되어 검찰개혁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사법정의를 담보로 잡히고 추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5월은 불안하다.

5월은 잔인한 달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시인 T S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을 목도한 후, “죽었던 땅에서 라일락꽃을” 움틔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는 4월의 생명력이 불모(不毛)의 문명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에서 절망을 느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4월은 수백의 생명을 한꺼번에 잃었던 슬픔이 지난 시절 혁명의 기억과 교차하는 시간이다. 그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가족을, 삶을, 미래를 송축하라는 명령과 함께 들이닥치는 5월은 눈부신 햇살 속에서 어김없이 1980년 광주의 영혼들을 소환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제 꼭 10년이 된 그 상실이 있다.

가장 잔인한 달을 꼽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노란 리본들이 나부끼는 팽목항 바닷가에서, 볕이 따스한 광주의 묘역에서, 노란 깃발들이 파도치는 시청 앞 광장 노제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영원히 그들의 빈자리를 더듬는 봄은 잔인하다. 노란 국화꽃에 둘러싸인 사진 속 만개하지 못한 미소로 남은 그의 혼을 달래지 못하는 우리의 봄은 잔인하다. 그 많은 이들을 잃은 뒤 세상이 과연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하기에.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은, 죽은 이들의 빈자리가 그저 폐허로만 남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두려운 일이기에.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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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9일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은 강 의원의 고교 후배인 외교부 직원이 누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주미대사관에 근무 중인) 현직 외교관이 대외 공개가 불가한 3급 국가기밀로 분류된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으로 감찰 결과 확인됐고, 본인도 기밀 누설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폭로된 내용은 이 정권의 굴욕 외교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 성격”이라고 했다. 폭로 당사자인 강 의원도 “청와대의 공무원 감찰은 공직사회를 겁박하고 야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화 내용 폭로가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궤변이다.

국가 정상 간 대화 내용은 공개될 경우 양국 간 신뢰를 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년 뒤에 공개하는 일도 있다. 따라서 현직 외교관이 기밀을 누설한 것은 두둔할 여지가 없는 불법행위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공익제보나 시민의 알권리를 위한 폭로는 은폐되는 내부의 부정·비리를 바깥에 알림으로써 공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 간 통화 내용은 부정한 내용도 비리도 아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 미국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하는 대화가 어째서 시민이 속속들이 알아야 할 일이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죽하면 한국당 소속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의원마저 “어느 때보다 한·미관계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민감한 시기에 국익을 해치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며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비판했을까. 한국당은 과거 여당 시절 외교안보 사안에는 초당적 태도로 접근하라고 야당에 요구했다. 그에 배치되는 일을 해놓고도 공익제보 운운하는 것은 시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국익은 뒤로한 채 문재인 정부 비판에만 급급한 강 의원의 국회의원 자질이 의심된다.

한국당이 기밀 유출 외교관의 휴대전화 감찰 조사에 시비를 거는 것도 억지다. 국가 기밀이 유출됐다면 보안유지를 위해 조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휴대전화 감찰은 해당자의 동의하에 실시되는 것으로 불법이 아니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해당자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외교부의 허술한 정보관리 체계도 점검해야 한다. 강 의원 역시 당리당략을 앞세워 대화 내용을 무분별하게 공개한 데 대해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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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단순한 양육 대상이 아닌 행복을 누려야 하는 권리 주체다.’ 23일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아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동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바라보면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아동권리 선언’이다. 가정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은 국가에서 보호·양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또 아동이 행복할 수 있도록 건강권·놀이권을 확대해 가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올바른 인식이고 정책 방향이다. 

정부 아동정책의 기본 방향은 국가 책임 확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료기관이 모든 신생아를 의무적으로 국가에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고,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민간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며, 아동의 창의성·사회성 개발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놀이혁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민법상 규정된 부모의 ‘체벌 권한’을 없애 아동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대목이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부모가 아이를 폭행해도 처벌받지 않거나 받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는다.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는 ‘사랑의 매’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자녀 학대를 막기 위해서다. 2013년 1만3000건이던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7년 3만4000건으로 4년 사이에 3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부모에 의한 체벌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스웨덴 등 세계 54개국은 아동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2010년 이후 몇몇 지자체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체벌을 금지하고 있으나 가정 내 체벌을 막는 방안은 여태 마련되지 않았다.  

가정 내 체벌은 가부장적 유교사회의 인습이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로 여기는 비뚤어진 사고도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사회 민주화가 확산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전근대적 체벌과 훈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사랑의 매’란 없다. 자녀에게 트라우마만 남길 뿐이다. 100년 전 어린이운동을 펼친 방정환 선생은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라’고 말했다. 민법 개정 못지않게 아동권에 대한 사회인식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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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지금까지 한·미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이 정치적 고려 없이 이뤄진 적은 없다. 그래서 한·미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말할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1985년 에티오피아를 철권통치하던 멩기스투 사회주의 정권이 반군 지역에 식량·의료지원을 중단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는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에티오피아에 식량지원을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은 재난이 아닌 정치 행위로 초래된 인도주의적 위기에 다른 나라가 순수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관여한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가 간에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조치들이 정치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미국이 독일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한 것은 독일과 소련의 밀착을 막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의 식량지원은 중동·남미 등 정정이 불안한 지역에서 외교적 도구로 활용돼왔다.   

1996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CBS 방송 시사프로그램 &lt;60분&gt;에서 배고픔의 고통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미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당시 이라크에 가해진 가혹한 경제봉쇄는 취약계층인 어린이·노약자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혔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보다 더 많은 50만명의 어린이가 식량·의약품 부족으로 사망했는데 과연 경제봉쇄 조치가 그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올브라이트 장관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북한 문제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때로는 대화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폭발 직전까지 차오른 군사적 긴장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한·미는 인도적 지원을 활용해왔다. 북한 역시 인도적 지원과 정치 행위를 분리하지 않는다. 북한은 대북 식량지원을 ‘신뢰구축 조치’라고 표현한다.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신뢰관계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2012년 북·미 2·29 합의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과 우라늄농축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은 24만t의 영양지원을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핵활동을 중단하는 ‘군사 조치’와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인도적 조치’를 맞바꾼 합의다. 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북·미 관계개선·비핵화 등과 함께 미군 유해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사업이 ‘정치적 의무’로 한 문서에 같이 담겨 있다. 

이렇듯 북한 문제에서 인도주의적 조치는 정치 행위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됐지만 아무도 이런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북한 문제에서는 인도주의적 조치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모두가 당연시할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지금 한·미는 다시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계산법이 각각 다르다. 한국은 대화 교착상태를 벗어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미국은 제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식량지원 필요성을 느낀다.

지금의 대북 제재는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유엔 정신에 반하는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대북 제재의 목적이 ‘핵무장을 막기 위한 것’에서 ‘완성한 핵을 포기하도록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제재로 북한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고 국제적 비난이 일게 되면 제재가 무너진다. 인도적 위기를 초래한 제재를 유지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별도로 해야 하는 기막힌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미 모두 대북 식량지원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안다’. 그러니 이제 식량지원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낯간지러운 레토릭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진정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할 생각이라면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다른 조건을 달아야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절대량의 부족 못지않게 분배·정책·거버넌스 등의 문제가 중요한 원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농업·복지·보건정책의 개혁을 조건으로 제시하거나, 하다못해 북한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의 송환을 협의하는 조건이라면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찬성할 수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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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칭)를 “우리 사회 각 부문을 대표하는 중립적 전문가 15인”으로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핵발전소 지역과 시민사회단체는 여기에 반대해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국민, 원전 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따라 추진되는 재검토위원회에 그 이해관계자가 빠진 것이다. 이해당사자 포함을 강하게 요구했던 지역과 시민사회의 의견이 거부된 셈이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면 결국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격렬한 저항을 피할 수 없다. 안면도, 굴업도, 위도가 말해준다. 핵폐기물 논의를 제대로 하려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논의 결과가 자신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지역주민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역주민이 배제된 채 구성하여 운영되는 위원회는 아무리 중립적이어도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중립적’이란 말 자체도 애매하고 공허하다. 에너지처럼 중차대한 문제에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이 중립적 인사라면, 그 중립이야말로 중대한 결격 사유가 아닌가. 중립적 전문가는 찾을 수도 없고, 찾아낸다고 해도 문제다.

재검토위원회 구성과 별개로 반드시 먼저 해결할 것이 있다. 관리정책을 논의하기 전에 고준위핵폐기물이란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한쪽에서는 1m 앞에 노출되면 누구나 1분도 안 걸려 사망하고, 10만년 이상 완벽한 격리 보관이 필요해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치명적 독성물질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이 위험이 과장되었다고 반박한다. 이런 상태로는 관리정책을 제대로 논의할 수 없다. 먼저 논란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중립’을 내세워 침묵하면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지난번 ‘재검토준비단’에 사용되었던 ‘고준위방폐물’이란 표현이 이번 ‘재검토위원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로 바뀌었다. 이유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관리할 대상의 위험성이 가려지고 한층 깔끔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세계에 아직 영구처분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준위핵폐기물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수혜자 부담 원칙을 적용한다면, 핵폐기물은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에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비현실로 치부된다. 어느 누구도, 어떤 정부도 그 정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언젠가 핵폐기물 처리기술이 나올 것이라는 말은 미래를 담보로 내뱉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위험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면, 가능한 한 핵발전소 조기폐쇄로 핵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다. 핵발전소와 고준위핵폐기물은 동전의 양면이다. 따로 떼어서 생각해선 안된다.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른 핵발전소는 폐쇄하는 것이 당연하다. 만에 하나, 임시저장소가 포화되기 전에 논의를 마치겠다는 의도가 있다면, 재검토위원회는 임시저장소를 확충해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기 위한 요식 절차에 불과해진다. 탈핵 정부가 핵발전을 추진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영광 한빛1호기에서 제어봉 과다 인출로 인한 출력 급증 사고가 며칠 전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에는 운전자 실수와 규제기관의 대처 미숙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고 탈핵을 선언했으면, 정부는 이제라도 자기 소신에 좀 더 과감하고 충실하길, 아무리 급해도 핵발전소 수출 같은 자가당착의 행보는 그만두길 바란다. 좌고우면하는 사이 2년이 지났다. 시간이 별로 없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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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넘은 나이에도 가끔 해야 할 일을 미룬 채 게임을 할 때가 있다. 그 아름답고 현란한 색감과 경쾌한 소리, 그리고 업그레이드되는 새로운 레벨을 접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게임에 몰입하다보면 잘 시간을 훌쩍 넘기는 날도 있고 그런 날 아침이면 잠이 모자라 하루가 몽롱하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청소년들이 무슨 수로 뿌리치겠는가 싶다.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게임만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공중보건학적 모델에 따르면 중독 문제는 매체, 사람, 환경 세 가지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게임에 적용시켜보면 몰입감이나 흥미성과 같은 게임의 특성, 충동성이나 우울 등 개인의 특성, 그리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광고나 언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 등이 어우러져서 게임 관련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나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 게임은 크나큰 유혹일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딱딱한 책상 앞에서 공부하기를 강요받고,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고, 제대로 노는 시간이나 공간이 확보되지도 않는 삶을 사는 이들의 환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들이 어디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청소년들에게 게임은 손쉬운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게임과 관련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환경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현실의 문제를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 부모들이 자녀와 게임 사용과 관련한 갈등만 없어도 훨씬 관계가 좋을 거라고 한탄하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현실이 이럴진대 ‘게임중독’은 질병이 아니라고, 질병코드화는 효자산업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라고, 사실상 게임은 인지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우기기만 하면 있는 문제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다. ‘게임사용장애’로 확정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연구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질병개념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게임과 관련한 피해는 인정한다. ‘게임사용장애’가 질병코드화되는 것이 게임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알코올사용장애’라는 진단과 관련 문제를 모두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술 판매가 금지되거나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이 진단이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게임사용장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게임사용장애라는 진단명을 ‘게임질병’이라고 부르며 호도하는 것은 비겁하다. 게임은 그 자체가 질병이 될 수 없다. 게임은 인류가 오랫동안 즐겨온 건강한 유희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되는 게임 관련 사건·사고에서 보듯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자제력의 부재,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곤란해지는 상황의 지속, 이로 인한 사회적 관계에서 심각한 장애의 발생으로 요약되는 상태는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지나치게 한 결과로 발생하는 임상적인 비정상적 상황을 말한다. 게임산업이 오히려 과도하게 게임에 빠져 문제가 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더 많은 신뢰를 얻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성장동력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책임있는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혹시나 유발할 수 있는 폐해는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중독이라는 폐해로 고생하는 사람이 드물게라도 발생한다면 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먼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오히려 공중보건학적 모델에 기초한 체계적인 예방과 개입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청소년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게임, 그 관심에 부응하는 길은 수많은 게이머의 건강과 웰빙을 생각하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다. 게임산업이여,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라.

<정슬기 한국정신보건사회 복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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