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푸르르고 하늘이 파란 한국의 5월은 아름다움을 찬찬히 상미할 여유도 없이 바쁜 달이다. 5월9일에 우리 동아시아평화연구소도 큰 행사가 있었다. 우석대학교 개교 4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한반도 평화시대와 동아시아의 변모’다. 중국, 일본에서 온 논자들이 남북이 힘을 합치는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전망했다. 

올해 5·18 기념행사 중에 ‘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 책임’이라는 심포지엄이 있었다. 나는 토론자가 되었는데, 부득이 못 갔다. 내 세션에서 한성훈은 과거청산의 국가책임과 기준을 이론적으로 논했으며, 독일, 인도네시아 등에서 보고했다. 그중에 관심을 끈 것이 인도네시아의 ‘65~66 대학살’이었다.  

1965년, 내가 대학 2학년 때 인도네시아 수하르토가 이끈 군부가 수카르노 대통령을 감금하여, 공산당원, 화교 등 100만~200만명을 학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9·30사건’이다. 5~6년 전에 일본의 교토 시네마에서 <Act of Killing>(2012)이라는 영화를 보고 옛날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이 영화는 미국인 감독이 반세기 전의 대학살 사건을 학살자들의 입을 통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가해자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버젓이 출연하고 오히려 그 만행을 자랑한다. 이슬람 극우단체의 두목 앙와르 등이 길거리를 싹쓸이하여 ‘빨갱이’를 잡아내고, 학살했다.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도구를 만들었다고 사용 방법도 소개한다. 철사의 끝을 기둥에 묶어 그 철사를 납치해온 자의 목에 감아, 다른 한끝에 단 나무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겨 죽이는 장면을 거리낌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재연해 보인다. 

내가 소학생 때 추운 겨울밤에 제주에서 밀항해온 늙은 대학생이 내 집 현관방에서 사타구니에 화로를 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4·3 때 그의 눈앞에서 학교 담임선생이 철사로 목을 졸려서 죽은 이야기를 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더욱더 혐오스러운 것은 인도네시아 학살자들이 부와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데, 앙와르는 저택 풀장에서 새의 발을 부러뜨린 어린 손녀에게 “새가 아프지 않아. 그러면 쓰나?”라고 인자하게 타이르는 장면이다. 지금도 이슬람 극우단체 멤버들이 때때로 검은 안경에 민병대 제복을 입고 지프차를 몰고 동네를 누비며 위세를 과시하곤 하는데 그 악한들도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고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고 잠에서 깨곤 한다. 독재자 수하르토가 쫓겨난 후에도 대학살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가해자가 처벌받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보호와 구제를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온 활동가를 앞에 두고 인권의 기준이네, 권리네 하는 말은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한성훈 보고에서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조치 및 배상에 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들면서 피해자에게 ‘보편적 인권’에 의거하는 처우와 권리를 부여할 것을 역설하고 있으나, 한가한 소리다. ‘이행기의 정의’는 포악한 국가폭력을 타도하고 가해자를 심판할 때 모습을 나타낸다. 피억압자들의 손으로 법·정치질서가 확립한 후에 인권이니 화해니 하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은폐되고 왜곡된 사건의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최우선”이라고 하고 있지만 ‘피해자 명예회복’은 도대체 뭘 말하는가? 흔히 ‘오명을 벗는다’고도 하는데, 부당한 판결을 받은 자가 재심으로 무죄를 받아 범죄자의 이름을 벗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범 재심재판에서는 피고인의 사상이나 정치적 행위를 묻기보다는 구류기간, 체포영장, 고문의 유무, 재판을 받을 권리 등등 절차법적 하자의 유무를 다툰다. 독재시대의 정치재판은 모두 법적 하자가 있게 마련이라서 거의 모두 무죄가 나온다. 

여러 과거청산법의 단서에서 규정하는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한다는 것은 반공, 분단, 시장경제사회에 순종하는 ‘양민’이라는 뜻이다. 냉전 시기에 공권력의 탄압을 받은 자들은 많은 경우 ‘미제의 조국 분단·지배’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의 이상에 불타던 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제주 4·3사건의 지도부는 당시 미제의 분단·점령과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에 역행하는 ‘단정·단선’에 반대한 사회주의자들인데 그들을 아무 사상성도 없는 무고한 양민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오히려 명예훼손이다.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받아, “명예회복되었다” “민주주의의 승리다”라고 떠드는 재일동포들을 종종 본다. 물론 인간은 사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옛날부터 아무런 변절 없이 지조를 지켜 살아온 양 행세하는 것은 자기와 남을 기만하는 행위다. 물론 한국에서는 무수한 ‘막걸리 반공법 위반자’처럼 무고한 죄인들이 많다. 그러나 해방 후 수많은 정치범 속에 공산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하나도 없다고 하면 엄청난 조작이다. 그들의 제대로 된 ‘명예회복’은 그의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정당성을 원래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즉 그의 사상과 정치활동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를 불법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등 정치형법이 잘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책무’ 운운하며, 국가권력이 명예회복을 시킨다면서 제2의 사상전향 공작을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서승 |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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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2016년도 발언이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잠잠해질 겁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이다. 2015년은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이기도 하다.

영화가 과장된 줄 알았더니 현실을 그대로 고증한 셈이었다는 시민들의 냉소와, 부패한 권력에 정의감 하나로 맞선 형사가 승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 관객의 쾌감 사이에는 선명한 교집합이 있다. 우리는 부패한 권력이 일상적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들이 언젠가 충분한 징벌을 받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채용비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장의 자식이나 사돈의 팔촌인 누군가는 복잡한 전형을 거치지 않고도 손쉽게 정규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다. 그렇다고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맞은 데 또 맞으면 아픔이 배가되듯 채용비리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분노는 쌓여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노를 제대로 해소해본 적이 없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강원랜드, KT의 부정 채용 청탁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채용 청탁을 받은 임원 중 극히 일부는 실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무수한 청탁자 중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성태 의원은 딸의 부정 입사와 관련한 KT 수사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검찰이 소환 여부를 고민 중이라 하고, 최경환 의원의 중진공 채용 청탁은 부적절한 행위이나 법리적으로 직권남용이라 볼 수 없다는 재판부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채용비리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만을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사건이 아니다. 왜냐고?

‘김성태 의원이 KT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돕는데, 딸을 정규직으로 일하도록 해보라’고 이석채 회장이 지시했다면, 김성태는 KT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을까. 최경환 의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무엇을 맡겨놨길래 ‘내가 결혼도 시킨 아이니 믿고 써보라’며 박철규 이사장에게 배 내놔라 감 내놔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임원의 갑질로 해결되는 일들이었다면 청탁을 하는 을에게 턱을 치켜들고 유세라도 부리지 않았을까.

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은 월권을 행사하는 정치 권력자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채용비리는 빽 없고 돈 없는 청년의 노력을 짓밟은 단편적 사건이 아니라, 정경유착이 쓰고 있는 장편 서사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반복되는 사건을 두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 역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구제하겠다는 원칙과 부정 합격자에 대한 엄격한 제재, 청탁을 받아 실행한 직원을 즉시 퇴출하겠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때론 블라인드 채용과 같은 절차의 투명성에 몰두한 나머지 진짜 근절해야 할 것을 근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채용비리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움직임이 있어야 가능하다. 권력이 쏠리는 곳이 비리의 온상이다. 그 민낯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청탁금지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 등으로 채용비리 근절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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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연휴 때 두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황금연휴를 맞이해 인천공항을 이용한 해외여행자 수가 역대 최대라는 것과, 어린이날 당일 30대 부부와 2·4세의 두 자녀가 사망한 채 발견됐는데 7000만원의 빚과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 선택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전반적 국민 삶의 질은 개선되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여전히 힘든 소득 양극화의 단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해 한국은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고 민간 소비가 2011년 이후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임금 상승률이 5.3%로 높게 나타났고, 상용근로자도 증가세가 유지됐다. 사회보장 측면에서도 정부는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연금 인상을 통해 소득을 지원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통해 지출을 경감했으며, 보건·복지 일자리를 증가시켜 전체 일자리 증가를 이끌었다.

2019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분위배율이 4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해 소득격차가 완화됐으며, 국민 평균소득은 전년 대비 1.3% 늘었다. 소득이 하위 20% 이하인 1분위 계층의 소득도 하락 폭이 작년 4분기보다 대폭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2.5% 하락해 아쉽다. 저소득층에 대한 공적 지원은 늘었지만, 근로소득 등의 하락을 보완하기엔 부족했다.

지난 16일 대통령께서 주재한 재정전략회의에서는 ‘포용성 강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이 논의됐다. 내년 예산 편성의 큰 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자리에서 여러 국무위원들과 함께 소득 1분위 등 저소득층 지원 방안을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사회안전망을 통한 재분배 강화 의견을 제시했으며, 저소득층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노인, 장애인 등 일하기 어려워 낮은 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취약계층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중증장애인 수급자부터 폐지하고, 재산 기준을 낮춰 가난하지만 엄격한 기준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지원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들의 소득은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의 절반에 불과하고, 가족 등으로부터 받는 사적 지원도 월 10만원 미만에 그친다. 소득 하위 10% 중 사적 지원을 받는 가구의 비율은 2006년 82%였으나 2018년에는 37%까지 떨어졌다. 과거에는 가족, 친지 등 ‘사적안전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급격한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이제는 ‘사회안전망’을 통한 지원이 꼭 필요하다.

또 신중년(50~64세) 등 일할 능력이 있지만 실업, 휴·폐업으로 소득이 일시 감소한 경우에는 사회서비스, 사회적 경제 일자리 등 신중년 맞춤형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근로소득공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재정전략회의에서 성장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도 충분하다는 것에 뜻을 같이했다. 또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소모성 ‘지출’이 아니며, 사회의 구조 개선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도 부처 간 공감이 이뤄졌다. 다각적인 저소득층 지원 대책이 내년부터 적극적으로 시행돼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 투자 확대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능후 |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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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여행하면서 줄곧 이런 궁금증과 함께했다. 왜 집이 이렇게 작을까. 호텔에 묵어도 그렇고 에어비앤비로 일반 가정집에 묵어도 그렇다. 한결같이 작다. 그럼에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구석구석 공간 활용이 기가 막히다. 욕실은 한 걸음 내디딜 여유 공간도 없지만 욕탕은 갖춰져 있다. 물을 받아놓고 들어가면 꼭 목욕놀이 하는 기분이 든다. 

반면에 역사 유적을 대표하는 절들은 무척이나 크다. 나라(奈良)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를 처음 봤을 때 들어가는 입구부터 그 규모에 충격을 받았다. 이곳 대불전은 동양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높이 16m에 무게 380t의 청동대불상이 있다.

작디작은 집들을 봤을 때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부채 속에 세상을 축소해 넣고, 상자 속에 신을 조형해 넣는 나라. ‘작다’는 것과 일본은 비교적 머릿속에서 잘 연결되는 편이다. 그렇다면 종교건축은 왜 저렇게 웅대하고 거창한가. 

짐작되는 이유는 있다. 과거 일본은 무사들이 다스린 나라였다. 무사의 최정점에 쇼군(將軍)이 있었고 그 아래로 봉건 다이묘와 계급이 다른 무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열화되어 있었다. 무력과 무력이 매일같이 부딪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엔 무사들의 존재감이 빛났다. 사람들은 거칠고 살기를 내뿜는 무사들을 두려워했고 주군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는 그들을 존경했다. 그러던 무사들이 전국이 평정되고 평화가 시작되자 졸지에 모두 백수가 되었다. 유학의 영향을 받아 지배층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사’로 자신들을 자리매김하고자 했지만 중국과 조선의 ‘사’가 책을 읽는 지식인이었던 반면 일본의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지 않았다. 도쿠가와 막부 초기에 지식인들은 대개 일반 평민들 속에서 나왔다. 과거라는 시험제도가 없었던 것이 큰 원인이기도 했다. 지배층이 공부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전쟁이 없어졌으니 할 일을 찾아야 했는데 무사가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형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의 차림새부터 걸음걸이까지 철저히 신분을 구분했다. 무사들은 밖에 나갈 때 꼭 두 자루의 칼을 지녀야 했다. 무사 집안 자제가 집 근처의 목욕탕에 칼을 한 자루만 차고 갔다가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그 아버지가 막부로부터 벌을 받기도 했다. 길에서 시체가 발견될 경우에도 상처보다는 그 사람의 의복을 먼저 체크하도록 근무 지침에 문서화되어 있을 정도였다.

에도시대 무사들은 주군에게 집과 봉록을 받아서 먹고살았다. 평화 시대 그들의 삶은 대체로 가난했지만 집의 외관은 사치스럽게 치장했다. 그래야 주군의 체면이 서기 때문이었다. 반면 집의 내부는 검소하고 소박했다. 내부까지 꾸밀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쇼군이 지방의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한 참근교대라는 제도가 있었다. 모든 다이묘로 하여금 가족을 에도에 남겨둔 채 1년을 단위로 에도와 번을 오가게 했다. 수백㎞의 여정을 몇 달에 걸쳐서 많게는 500명이 넘는 인원이 길에 돈을 뿌리며 다녔다. 구태훈 교수의 논문 <에도시대 무가사회의 신분과 형식>을 보면 17세기 일본에 체류했던 서양인 캠페르의 눈에 비친 참근교대의 행렬이 소개된다. 시가지를 통과할 때나 다이묘와 다이묘의 행렬이 서로 교차할 때 시종들은 매우 비정상적인 걸음걸이를 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발을 거의 엉덩이에 닿을 정도로 올리고, 동시에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뻗기 때문에 마치 공중을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최대한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기 위해서였다. 일본 종교건축의 장대함도 어느 정도는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형식과 격식을 중시한 문화의 산물이지 않을까.

이러한 과거의 유산은 다닥다닥한 현대식 소규모 집들과 함께 어우러져 도시의 장관을 만들어낸다. 조현정 박사의 논문 <일본의 소주택과 작음의 담론>에 따르면 일본의 주택이 소규모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였다. 봉건적 구습과 차별화된 근대적인 삶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작음’이라는 가치가 내세워졌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엔 생태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흐름이 이 ‘작음’에 힘을 얹어주었고, 동일본 대지진 이후로는 탈전후 지향 및 내셔널리즘의 영향을 받아 이 ‘작음’에 일본적 가치라는 성격도 부여되기 시작했다. 확고하게 단단한 ‘작음’이 된 것이다. 작다는 것이 공동체의 풍경을 이루는 데는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타인의 공간과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서로 조화를 이룬다. 큼직한 종교건축물은 그 사이에서 작은 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전통의 가치를 유지한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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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작가가 말하는 미래 인재가 되는 법.’ 중·고등학교에 강연을 가면 가끔 민망한 현수막을 본다.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를 비판해 달라고 초대받았으니 황당하다. 이유인즉, 섭외 교사가 ‘진로특강’ 명목으로 윗선에게 결재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강사 초청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맥락을 모르는 교장, 교감은 여기가 지역 명문이다, 작년 입시결과가 어떠하다는 등 학력주의가 가득한 인사말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학부모도 함께하는데, 내 이야기가 자녀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속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편협하게 제시한다. 일부 성공 사례를 포장하여 불평등을 은폐하는 강사들이 여전히 인기다. 4차 산업혁명, 블루오션, 변화, 혁신 등의 단어들이 남발되고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한 결론이 부유한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특출한 재능에 집중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고전적인 위로도 한결같다. 무엇도 특별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자는 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학교에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르지 않은 교육자를 만날 때면 슬프다. 교사 연수에서 내가 “배달노동자가 죽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새로운 플랫폼입니까?”라는 물음을 던지면 어리둥절한 낯빛을 감추지 못한다. 1등을 지나치게 미화하지 말고 계층 차별의 근간이 되는 학력주의를 의심하기 위해 공정한 경쟁이라는 신화를 깨자고 하면 발끈한다. 대학 이름이 성실함의 결과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혀를 차고, 자신이 공정하지 않게 교사가 된 것이냐며 노력을 폄하하는 게 평등주의냐고 따진다.

여러 원인들이 있을 게다. 일단 교육학의 전제가 ‘인간의 자기 성장’이고 무엇보다 교사 스스로가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바늘구멍을 통과했으니 이 가치를 더 확신한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며 자녀를 내버려두기에는 좌불안석이니 개인을 이롭게 하는 즉각적이고도 선명한 해결책을 학교에 재촉한다. 그래서 오직 성장의 관점에서만 인간이 다루어지고 성공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명으로만 획일적으로 사용된다. 이를 꾸짖는 여론은 없다. 언론은 입시결과에 호들갑이고 명문대로 진학한 선배들만이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죽도록 공부했다는 무용담을 들려주기 바쁘다. 학력주의가 정당화되고 능력주의가 신성하게 포장되면 학생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아찔한 철학을 내면화한다. 평범한 다수가 살아가는 세상에, 다수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역설은 완성될 수밖에 없다.

불평등을 ‘줄이는’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을 고민하지 않고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묘수만을 나열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파할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다. 양극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순응하고 구체적인 절망을 파괴하는 것을 체념한 학생들은 어설픈 희망의 빛에 매료되어 대학 서열화를 신봉하고, 가족 모두의 힘을 빌려 피 말리는 입시경쟁에 매진할 것이다. 족집게 강사가 교사보다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플랫폼이 마냥 긍정적으로 포장될수록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돼버린다. 혁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쪽에서는 허술해진 안전장치 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노동자가 무수하다. 효율성이라면서 등장한 괴상한 상벌점제는, 해고가 두려워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해 사고를 당하는 개인을 늘린다. 5월28일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청년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9년간 과로사로 사망한 집배원이 82명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학생들은 자신은 예외가 될 방법만을 듣는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의 미래도 끔찍할 것이다.

<오찬호 |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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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보려고 지금은 앓고 있는 중이지

이승하(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두 다 고통의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물의 푸른 덩굴이 팔을 뻗어 위쪽을 향해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수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만큼에는 이르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존재들이 곤란을 견디고 있다. 고통 없이는 빛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반짝이는 별의 배경은 긴 밤이요, 캄캄한 어둠이다. 꽃도 나비도 살아 있음을 아픔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가고 싶어”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처럼 넓고 큰 세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승하 시인은 시 ‘시원하게’에서 “내 한 생을 살면서/ 물 한 모금 달라고 애걸하는 누군가를 위해/ 시원한 물의 시 못 보여 준다면/ 밥 먹는 일이 무슨 의미 있는가”라고 썼다. 시인이 “시원한 물의 시”를 얻는 일에도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앓는 시간을, 통증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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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소위원회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을 통과시켰다. 흔히 ‘게임 중독’이나 ‘게임 과몰입’으로 부르는 현상에 ‘장애’라는 병명을 붙인 것이다. 이 결정은 오는 28일 폐막하는 총회 전체회의 보고를 거치는 절차만 남았기 때문에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ICD-11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194개 WHO 회원국에서 2022년부터 적용되도록 되어있다.

게임업계는 반발한다. 게임 시장의 위축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게 전부도 아니다. 게임이 병인(病因)이 되는 순간 게임 산업 종사자들은 병균을 만들거나 퍼트리는 사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결국 능력 있는 인력자원은 게임 산업계로 진입하는 것을 꺼려 할 것이다. 게임업계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게임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하고, 누군가가 게임 때문에 입시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듣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 같은 산업 논리는 와 닿지 않는다. 당장 내 아이가 아픈데 게임회사 하나 망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WHO의 결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게임 산업의 잠재적 위기 때문이 아니다. 게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의 고통의 진짜 이유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지만 고통의 원인을 게임으로 단순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약물 중독은 그 약물을 끊으면 치유가 된다. 치료도 중독물질을 끊게 하는 데에 집중한다. 게임의 부작용은 게임에 과도하게 의존하도록 만든 환경을 고쳐야 해소된다. 학업 스트레스가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 게임 의존도가 ADHD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즉 게임 자체가 중독적이라기보다는 다른 병인에 의한 결과로 게임 과몰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질없다. 어쨌든 WHO는 ‘게임이용장애’라는 질병을 발명했고, 학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의 짜증이나 반항을 게임 때문이라 믿을 것이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이 “일반인이라 논문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고 강변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그러니 권위 있는 국제 보건기구의 위험한 결정도 우리나라 학부모의 무모한 강변도 주어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그 전제 위에서,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 먼저 보건 당국은 WHO의 결정을 무비판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먼저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게임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자”라고 말하기에 앞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왜 게임 때문에 고통받는지 알아보자”라고 말해야 한다. 이는 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도움도 있어야 하고, 비전문가들의 의견도 필요하다. 의학 ‘엘리트’들 의견만으로 서둘러 게임이용장애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등재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게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알코올중독자에게 60도짜리 고량주나 4도짜리 맥주는 모두 중독물질이다. 게임도 마찬가지인가? 게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명절 윷놀이나 어르신들 화투도 게임인가? 교육용 게임이나 의학적 목적의 게임은? 캔디크러쉬와 배틀그라운드를 장르나 플랫폼과 무관하게 ‘게임’으로 퉁치는 것도 전문적이어야 할 보건·의학계가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게임업계도 자성해야 한다. 경제에 기여한다는 말로 버틸 시기는 지났다. 사행성 높은 게임을 퇴출시키고 종사자 노동환경의 개선이나 여성·인종 혐오적 문화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부처와 정치권, 시민사회도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임 매출 일부를 ‘뜯어내서’ 무언가 하겠다는 발상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의학계도 정말 게이머의 건강을 위한다면 환자를 만들기에 앞서 환자가 나올 환경을 제거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공부 안 하는 자식의 부모는 게임 탓을 하면서 스스로를 면책한다. 우리 아이를 환자로 만든 게임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경찰이나 언론은 복잡한 강력사건을 게임이라는 마술적 단어로 쉽게 설명한다. 대신 범죄자는 ‘환자’라는 이유로 교도소 대신 병원으로 갈 수도 있겠다. 게임 과이용자들도 자신의 불안한 삶을 게임 탓으로 돌리면서 자위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병에 의한 군 면제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사회가 이 같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WHO의 위험한 결정을 기계적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는 ‘더 위험한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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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으로 등록했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규정되면 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체계적 관리 및 처방이 가능하고, 관련 의료기술 또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WHO가 게임중독을 ‘다른 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일상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생겨도 1년 가까이 게임을 계속하거나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경우’로 정의한 것도 진일보한 결정이다. 연구자별로 정의가 서로 달라, 결과도 제각각이었던 현실을 바로잡음으로써 국내외 실태조사 및 비교가 수월해지고 제대로 된 대책 마련도 가능해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 등 인터넷 중독 인구는 4억명을 넘어섰고, 국내 역시 성인의 1%가 게임중독 상태라고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난해 조사결과를 보면, 10~65세의 67%는 최근 1년 사이 게임을 경험했으며 이들의 하루 평균 게임 이용시간은 주중 90~96분, 주말 114~163분에 달했다.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가정 내 불화가 적지 않고, 게임중독이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빚어지는 강력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WHO의 결정을 계기로 게임 과몰입에 따른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한 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소개 이미지.

정부는 게임시장 위축과 아동의 문화·예술 선택권 제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결과를 보면, 국내 게임시장은 WHO의 결정으로 2023~2025년에 매년 2조~5조여원의 위축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정책수립시 게임이 주는 긍정적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의 초·중·고교생 15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게임 과몰입 및 위험군이 1.8%였고 게임을 건강하게 이용하는 게임선용군은 17.7%였다. 나머지는 일반 및 비사용자였다. 게임선용군의 자존감·삶의 만족도는 모든 유형집단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중독세’나 ‘중독치료 부담금’ 도입, 셧다운제(0~6시 청소년 게임이용 금지)의 모바일 확대 적용 등도 신중한 검토를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 

게임업계도 시장위축 우려 등을 내세워 무조건 반대해서도 안된다. WHO의 조치는 게임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게 아니다. 질병 등록을 통해 국민 건강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도 넉넉하다. 국내 도입은 빨라야 2026년 1월이다. 그사이 충분한 조사 및 논의를 진행한다면 게임업계도 보호하면서 국민 건강도 세밀하게 살필 수 있는 대책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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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유출한 사건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정상 간 통화 내용은 조윤제 대사만 볼 수 있는 3급 기밀인데도 주미대사관 소속 다수의 직원들이 문서로 돌려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 게시판에서 이들 직원을 문책하라는 국민청원이 시작됐다. 또 한국당은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방송에서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받아봤다’고 말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여권도 똑같이 기밀을 공개했다고 역공한 것이다.


주미대사관 직원들이 기밀을 문서로 출력해 돌려보았다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외교기밀은 암호문서로 조 대사에게만 전달하고, 필요한 경우 일부 관계자만 열람할 수 있다. 이런 정보를 여러 직원들이 문서 형태로 복사해 읽고, 게다가 담당도 아닌 직원이 이를 친분 있는 국회의원에게 누설했다니 어이가 없다. 이러고도 국익을 위해 일하는 외교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 관리들이 한국 외교관들과 대화를 꺼린다는 보도가 나온 게 무리가 아니다. 외교부 내 보안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강 의원의 기밀 유출을 두둔하는 한국당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정 전 의원이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언급한 것은 청와대가 대화체 형식으로 공개한 정상 간 통화 내용이다. 당시 방송사는 자막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정 전 의원도 프로그램 특성에 맞춘 발언이라고 인정했다.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예능프로그램에서 가볍게 한 말을 시비 삼아 위기를 넘기려는 모습이 우습다. 한·미 동맹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미국의 신뢰를 허무는 일을 하고도 이렇게 대응하다니 적반하장이 지나치다.


최근 외교부에서 기강해이를 보여주는 사고가 빈발한 것을 생각하면 이번 사건은 예사로 넘길 수 없다. 본분을 망각한 외교관은 엄중히 단죄해 기강을 세워야 한다. 조 대사도 이번 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강 의원과 한국당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번 사건의 본령은 누설될 경우 한·미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국가기밀을 거의 실시간대로 폭로한 것이다. 한국당은 더 이상 억지 주장을 펴지 말고 즉각 사과부터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강 의원을 출당해야 한다고 한 것을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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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잡지, TV, 라디오의 세칭 4대 매체라 불리는 전통적 미디어의 힘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지면과 전파로 전달되는 이 매체들의 특징은 같은 내용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최근 50대의 사용량이 2배 넘게 증가했다는 유튜브 역시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가져갑니다. 전 국민이 사적인 대화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의 단톡방 리스트 사이에 드디어 광고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역시 관심 시장(attention economy)의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Seeing is believing”, 우리가 보는 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형성합니다. 

최근 길거리의 거대한 전광판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서울 코엑스 앞의 거대한 LED는 화려한 사인보드로서의 역할을 가져옵니다. 그에 반해 지하철의 광고는 예전의 영광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전 지하철역마다 가득 쌓이던 스포츠 신문이 무가지로, 다시 그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은 승객들 모두 손바닥 위의 작은 기계에 시선을 빼앗긴 것이 이유입니다. OOH(out of home) 매체라 불리는 길거리에 세워놓은 입간판을 이야기하는 빌보드가 다시 의미 있는 매체가 된 것은, 어쨌든 밖에서는 걷거나 운전을 위해서라도 핸드폰에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뉴욕5번가의 화려한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핸드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앞에 있는 무언가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걷거나, 타거나, 공연을 보거나 수업을 받거나 하는 방법밖에는 없지요. 이런 이유로 최근 극장의 광고가 더 힘을 받습니다. 어두운 곳의 거대한 스크린을 보아야만 하고, 핸드폰의 작은 빛도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선 이런 상황이 귀해집니다. 식탁에서도 핸드폰을 옆에 놓거나 눈앞에 두고 먹는 장면이 일상적입니다. 심지어 “포케몬고” 같은 AR게임에 이르기까지 이제 우리는 마치 눈앞에 필터를 끼운 것처럼 세상을 핸드폰을 통해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볼거리에도 본격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되고 있습니다. 실내에서 거대한 사인보드를 중심으로 무대가 만들어지는 e스포츠의 격전장인 “롤파크”가 시내에 자리를 잡습니다. 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를 극장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클래식 라이브 상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저 멀리 유명한 뮤지션의 콘서트 표를 어렵게 구해 가보는 것처럼 5G와 고품질의 영상 음향 전송 기술이 전 지구적인 콘서트를 동시간대에 볼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때 보아야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 국민에게 공통의 관심사가 되는 국가적인 큰 사건이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스포츠 중계, 훌륭한 예술 공연의 실황이 아니라면 반드시 그 시간에 보아야 할 이유는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함께’ 보아야 할 것들은 꽤 있습니다. 이미 방영된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동호회의 모임, 충실히 공부한 명사의 강연 후의 청중의 질의와 응답 같은 것들은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작은 모임들이 다시 전 세계적인 동호인에게 전파되며 다시 큰 관심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예전 소수의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에 보여주던 방식은 다양한 콘텐츠를 취향 저격하여 소수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때 하나하나 팬들의 마음에 꽂히는 메시지는 명확한 ROI로 다가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시청률과 광고 메시지의 인지도와 같은 도달률이 아닙니다. 그보다 팬이 정말 좋아하는 콘텐츠와 딱 맞춰진 메시지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가 주는 메시지가 상대의 주의를 흩트리고 그를 귀찮게 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해지는 시점입니다.

이제 “보는 것을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세상(believing is seeing)”이 오고 있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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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 사법연수원에서였다. 7기생 전원 58명이 교실 하나에 모여 앉아 2년을 보냈으니, 나도 그를 조금은 안다고 할 만하다. 동기생 중 유일한 고졸 학력이고, 늘 웃는 얼굴의 촌사람풍이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거셌다. 

맨 처음 기억나는 일은 연수원에서 소풍을 갔을 때였다. 연수생들이 나와서 각종 장사치 흉내를 내는데, 뱀장수, 속옷장수 다음에 그가 나와서 면도날장수 흉내를 냈다. “그럼 이 돈을 다 받느냐?”라며 물건값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예상한 다음 대사는 “아니에요. 절반 뚝 잘라서 단돈 천 원 한 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은 “네, 다 받습니다. 받고요”였다. 모두들 포복절도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 사회를 봤다. ‘무너진 사랑탑’이라는 노래를 한 곡조 하더니만, 돌아가며 노래를 시키는데 그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없어야 한다”고 법률용어를 써 가며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았다.

연수원 수료 후 들은 그의 소식 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시위사건으로 구속될 뻔한 사건이었다. 당직판사가 영장 청구를 기각했더니, 당일에 재청구가 들어와 판사 세 명이 차례로 사건 처리를 회피했다는 것이었다. 몇 달 후 그는 다른 시위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어려운 길 가는구나. 가슴이 저려 왔다.

그 해 그가 서울로 올라와 동기생 예닐곱 명이 모였는데 그 자리에 내가 끼었다. 그가 생각하는 운동이란 뭔지 물어 보았다. 어느 시골 할머니가 급환이 생겨 할아버지가 소달구지에 싣고 가다 마침 자가용 승용차가 지나가기에 세웠다. 동승자는 없고 개 한 마리가 타고 있었다. 읍내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간청했더니 승용차 운전자가 할머니를 힐끗 보곤 그대로 가 버렸다. 이야기 끝에 그가 한 말은 이랬다. 사람이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소망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가 인권변호사 노릇을 하던 시절, 법정에서 하도 집요하게 변론을 하여 판사들이 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편 미안하고 한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서 자주 떨어지기에 딱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뿐이었다. 누가 그를 욕하면 듣기 싫었지만, 칭찬해도 그저 그런가 싶었다. 그러다가 그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하루는 동기생 변호사가 판사실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물었다. “야, 노무현이 빨갱이 아니냐? 그 사람 대통령 돼도 괜찮을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빨갱이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도와줄 생각이나 하세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어느 법조계 인사가 내게 이렇게 평했다. “진주민란,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6·10민주항쟁, 광주항쟁이 모두 쌓여서 이제야 그 원이 이루어진 거다.” 대통령 취임식의 초청장이 왔는데, 하필 딸 졸업식 날과 겹쳤다. “아빠는 딸이 좋아, 대통령이 좋아?”라는 물음에, 영광의 날 그를 한번 볼 기회를 놓쳤다.

대통령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텔레비전에 나와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의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알았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망이 그의 정치에서 과연 얼마나 구현될 것인가. 마음이 어두워졌다. 나와 가까운 이로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에서 장관이 된 사람이 있어, 노 대통령이 어떻더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사람 참 선질(善質)이더구먼”이었다. 본래 보수적 성향인 사람을 장관으로 데려가기에 좀 의아했고, 그도 노 대통령을 썩 긍정적으로 평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의외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몇 해 지나 동기생 부부들을 청와대에 초대했다. 이 다정한 남자는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가, 판사 재직 중 작고한 동기생의 부인 앞에 서더니 “아…”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만찬 자리에서 몇몇이 마이크를 쥐고 덕담을 하는데 과거 부산에서 공안검사를 했던 이가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는 노 변호사가 나를 찾아와서는, 운동권 학생 하나가 잡혀간 것 같으니 행방을 좀 알아봐 달라고 합디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찾다 찾다 못 찾아 마지막으로 내게 와서 우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 어머니가 아들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라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어디 붙들려 있는지 알아내 노 변호사에게 일러주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사람, 참 따듯하구나.

그가 검찰에 소환되었다. 검찰청사 앞에 닿은 버스에서 내려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뉴스 화면에서 보는 순간 섬뜩했다. 더 깊어진 눈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맑은 눈빛에서 왠지 불길한 느낌이 닥쳐왔다. 괜찮으려나.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무슨 멍울이 지는 것 같은 서러움에 잠겨, 나는 울었다. 그러다가 몇날 며칠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난 모든 신문을 모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덧 10주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 글을 쓰는 것, 그리하여 이제껏 가슴에 담아두기만 했던 이 말을 전하는 것뿐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립다.

<정인진 |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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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달동네이다. 주소가 산104번지라서 그렇게 불렸다. 불암산 밑자락의 백사마을이 머잖아 재개발의 첫 삽을 뜬다고 한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달동네는 진정 사라지는 걸까. 이제 달동네에서는 달을 볼 수 없는가.      

달동네는 거의가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모여 살았다. 특별시민이 되었지만 막상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특별한 냉대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둥지는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서울에는 그나마 큰 산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인왕, 북한, 도봉, 관악, 청계, 불암, 수락…. 산자락에 얼기설기 허겁지겁 잠자리를 만들었다. 눈뜨면 새 집이 생겨났다. 지붕에 지붕을 맞대며 집들이 산을 기어올랐다. 

1960년대 정부는 공업을 받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시의 불빛과 공장의 기계를 동경했다. 농어촌은 점차 버림을 받았다. 낙담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수도꼭지 한번 빨아보자며 서울로 진격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가슴에 비수 하나씩 품어야 했다. 힘을 주다보니 눈에 핏발이 가시지 않았다. 산자락에 집을 짓고 내 집이라 우겼다. 그래도 당국은 모른 체했다. 정부는 도시 빈민층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핏빛 설움과 분노를 건드릴 수 없었다. 또 산업화를 위해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무허가 산동네를 적당히 방치했다. 

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위태로웠다. 큰비라도 오면 금방 쓸려 내릴 듯했다. 그럼에도 수마(水魔)는 산동네를 범하지 못했다. 오묘했다. 산속 마을이지만 나름 이리저리 물길을 냈다. 집 하나가 나무 한 그루였는지도 모른다. 비가 아무리 사납게 내려도 산사태로 산동네가 쓸려 내려간 적은 없었다.   

삶도 집처럼 비탈에 있었다. 널빤지로 가난을 가렸지만 이내 모두 드러났다. 서로 고향 자랑을 하다가, 서로 사투리를 흉보다가 곧 그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산동네에서 과거 자랑을 하면 현실이 더욱 초라해졌다. 그래서 허세가 발을 붙이지 못했다. 풍겨 나오는 음식냄새만으로도 그 집 벌이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이사를 가면 이웃들이 산 아래로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물 걱정, 연탄 걱정 없는 곳에서 잘 살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판자촌, 산동네를 어느 때부턴가 달동네라 불렀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이니 달빛이 그득했다. 그 달빛에는 푸르스름한 슬픔이 들어있었다. 달 속에서 누구는 고향을,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어머니를 보았다. 산 아래 도심에는 밤마다 휘황한 불빛이 고여 있었다. 그 욕망의 거리에 섞이지 못했지만, 그곳으로 조소를 흘려보낼 수는 있었다.

내 젊은 날도 산 중턱에 떠있었다. 백사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불암산 자락에서 1970년대 초반을 보냈다. 불암산 달동네 사람들의 하루는 비슷했다. 햇살이 들기 전 일터로 나가서 해가 떨어져야 돌아왔다. 날마다 도심의 불빛에 쫓겨났다. 만원버스에서 짐짝처럼 흔들거리다가 종점 부근에서 내려 다시 산을 올라야 했다. 집마다 불이 켜지면 비로소 동네가 살아났다. 사람들은 이내 지쳐서 잠이 들고 대신 산이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달이 사람들 잠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살았던 ‘납대울마을’은 이제 사라진 이름이지만 그때 주민들은 진정 정겨웠다. 달동네와 고단했지만 따스한 사람들을 소재로 글을 지었다.  

“산은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사람 사이로/ 소리 없이 떠올라/ 불암산이 된다, 허리가 따스한 산// 가을중턱까지 내려갔던 산그늘이/ 다시 어둑어둑 산을 기어오르고/ 모여 있던 집 하나둘 산속으로 들어선다/ 납대울마을, 표지판까지 입산을 끝마친다// 사람들이 돌아온다/ 사람 하나둘 산속에서 깜박거린다/ 사람은 잠을 자고 산은 꿈을 꾸고”(졸시 ‘사람은 잠을 자고 산은 꿈을 꾸고’) 

납대울마을이 있던 곳에는 지금 고층아파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입주민들은 달동네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시대 재개발이란 원주민 내쫓기였다. 많은 이들이 지하방, 옥탑방, 비닐하우스, 쪽방 등에 흩어져 살다 세상을 떴을 것이다.      

달동네는 없는 사람들이 서로가 그 ‘없음’을 덮어주는 마지막 공동체였다. 불암산 바위를 의지하며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겠다던 백사마을 주민들. 그들은 이미 쫓겨난 적이 있는 철거민들이다. 그들은 다시 어디에 둥지를 마련할까. 모두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 모두 가난해서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삼가 기린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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