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같은 출판계 몇 분과 무등산 가는 길. 아침에 광주행 KTX를 타면 당일치기로 너끈히 다녀올 수 있다. 행신은 幸信이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듯 행운의 우편엽서에 올라탄 기분으로 출발했다. 좌석의 등받이마다 정다운 문구가 있다. ‘마음을 잇다, 당신의 코레일.’ 행신역과 송정역을 잇는 기차에서 저 구절을 발견하니 자연스레 며칠 전 귓전을 울린 YTN의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관련 뉴스가 떠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전야제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르고 거세게 망월동의 대지를 적십니다. (…) 기념식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빗물 대신 이제는 눈물이 행사장을 적셨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물질이다. 비는 곧 물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은 낮은 곳을 찾아간다. 낮은 곳은 서러운 곳. 그렇게 물은 하늘과 유족의 가슴을 이어주고 있었다.

증심사~장불재를 잇는 길은 넉넉했다. 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직접 걸었던 인연으로 ‘노무현등산로’로 명명된 곳이기도 하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바닥에 일렁거렸다. 얼마나 화려한 흑백인가. 그 어떤 총천연색의 풍경보다도 더 가슴을 찌르는 서늘함이 있다. 최근 꽃산행을 다니면서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산에 가면 바위나 돌에서 사람의 얼굴이 자꾸 그려지는 것이다. 요즘은 아예 작정을 하고 바위 얼굴을 수집하기도 한다. 오늘, 오월의 광주, 무등산, 노무현등산로를 걷자니 감회가 아니 날 수가 없었다. 무정한 돌, 무심한 얼굴. 흙으로 녹아들어가는, 어디에서 사진으로 본 듯한, 억울하게 사라진 분들의 장엄한 표정 같은 바위 속, 돌 속 얼굴들. 바람이 깎고 비가 다듬고 발길로 조각한 바위 얼굴들!

그 돌들 옆의 덤불에 광대수염이 빤히 길 안을 바라보고 있다. 경상과 전라 등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오늘 무등산에서 보는 꽃은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꼿꼿하게 발딱 서 있는 꽃. 무언가 할 말이 많아서 고함을 지르는 꽃. 층을 지고 어깨 겯듯 모여서 피어난 하얀 꽃, 광대수염.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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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지도(言語地圖·linguistic map)라는 것이 있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게오르크 벤커(1852~1911)가 처음 시도하고 프랑스의 쥘 쥘리에롱(1854~1926)이 확립한 언어지리학에서 사용하는 지도이다. 이는 각 나라의 지방 말을 조사해 그 말이 사용되는 지역에 표기를 하는 것으로 일반 지도와는 다르다. 일반 지도도 제작하기까지 수많은 답사와 측량을 실시해야겠지만 언어지도 또한 긴 시간을 두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채록을 하거나 서면 질의응답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내가 비록 학자가 아니지만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밥벌이를 위해 전국 골골샅샅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들을 촬영하고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개 녹음을 했고 공부방으로 돌아오는 자동차에서 음악 대신 그들과 나눈 이야기 테이프를 듣곤 했다. 그렇게 해야 딕테이션(dictation)이라고 하는 녹음된 내용을 풀어쓰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서너 시간 자동차 안에서 그 내용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스토리의 대강이 외워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날 만난 사람의 이야기 습관이나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까지도 알아차리기가 쉬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게 10년 정도를 작업하고 나서 편집인으로 한국의 문화와 사상, 사람과 자연 따위를 다루는 계간지의 창간을 주도하게 되었다. 당연히 민중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꼭지를 만들었고 한 사람당 100장 가까이 되는 분량의 채록 원고를 서너 편 실었다. 그러곤 마지막에 그들이 사용한 낱말들을 정리한 꼭지를 만들어 부록처럼 넣었다. 그렇게 하면 같은 뜻을 지닌 낱말이라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큰 고개인 대관령의 이쪽과 저쪽인 평창군 횡계나 강릉시와 같은 곳을 예로 들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채록해 이야기와는 별개로 낱말을 따로 정리했다. 즉 평창군 횡계읍 대관령면 김모씨의 평창 말 혹은 강릉시 성산면 박모씨의 강릉 말 같은 식으로 그들이 사용한 말을 정리했다. 대개 큰 고개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지방에 사는 이들은 어투나 낱말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지리학적으로 높은 산이나 큰 강은 지방을 서로 구분하는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고개를 넘어야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와 같이 서로 다른 지방 말을 사용하는 곳이지만 전라도 땅에서 경상도 말을 듣거나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말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서 사람들의 이동이 쉬워 토박이의 개념이 애매하지만 예전에는 산골과 같은 경우 태어나서 한 차례도 타지로 나가지 않고 붙박이로 사는 경우가 흔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혼인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었다.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고개를 넘어서 타향으로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로 혼인을 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말은 혼인과 함께 다양한 변화를 하기 시작한다. 

어느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말과 함께 뒤섞여 지역의 정체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독특하고 새로운 말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이 좇아서 닮는 경우도 있었으며 두 사람 모두 고집스럽게 자신이 사용해오던 말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큰 고개 아래 양쪽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채록하러 갈 때는 두 눈을 반짝일 만큼 흥미로웠다. 덕분에 지리학적으로 높은 고개가 언어학적으로도 험한 고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또 그렇게 채록을 하거나 조사를 하는 대상들은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한 장소에서 눌러 산 토박이들이나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기보다 평범한 정도가 더욱 좋다. 아무래도 타지로 나가게 되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한 경험들이 본인이 지니고 있던 언어의 정체성을 흔든다. 또 교육수준은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을 알게 하기 때문에 말을 변화시킨다. 그러니 경제활동을 위해 수시로 고향과 타향을 드나들거나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채록 대상으로는 더욱 좋다. 물론 그것은 내가 왕성하게 채록을 하던 25년 전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위에 말한 조건을 기준으로 채록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보자. 군대 복무와 경제활동의 책임을 지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타지의 경험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중년의 여자들도 타지로 나가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여서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아직 말이 여물지 않은 어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남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여자들뿐이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그 마을에서 태어나서 그 마을에서 늙어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흔치는 않다. 대개 타지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이다. 더러 남자들의 경우에도 군대를 가지 못하여 마을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으면 채록의 대상으로 더할 나위 없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만만치 않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언어지도가 있기는 하다. 방언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도 조사를 진행했지만 북한 지역의 말에 대한 조사 미비로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리고 각 지방마다 조사를 진행해 언어지도를 만든 곳들도 있다. 그러나 이젠 우리나라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언어지도 한 권쯤은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은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더욱 성숙한 국가로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한 근원적인 자료들이 넉넉하지는 않다. 앞에서 말했듯 오롯하게 우리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정부 차원에서 나랏말의 다양성과 분포를 정리해 우리말에 대한 언어지도를 발표할 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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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닥칠 위기를 예감하고, 함께 떠나는 조자룡에게 “어려울 때 꺼내보라”며 3개의 비단주머니를 주었다고 한다. 조자룡은 비단주머니를 품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씩 꺼내 난관을 헤쳐 나간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쳐 온 우리나라에는 어떤 비단주머니들이 있었을까? 여러 가지 비책들이 있었지만, 사회안전망도 그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고용보험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경제와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당시 15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 당시 실업자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버팀목’ 역할을 했던 실업급여는 1995년 7월부터 시행된 고용보험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번째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외환위기의 파장은 사회 양극화로 이어졌다. 1990년대 0.26 내외였던 지니계수가 1999년 0.3까지 올라가는 등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2000년부터 시행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에게 최소생계비를 지원하여 양극화를 완화하는 최소한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안전망을 토대로 우리 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고,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세계에서 7번째로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을 의미하는 ‘30-50 클럽’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함께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음식점업, 도·소매업 등과 같은 전형적 자영업자뿐 아니라 프리랜서, 1인 사업자와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시장 내·외부 격차는 소득 및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과 국가가 함께 성장하고, 그 결실을 함께 누리는 ‘포용국가’가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들이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고용불안, 임금격차 등에 대비한 보장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할까? 그간의 노력에도 여전히 사회안전망은 충분하지 못하다. 대표적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의 경우도 취업자의 55%만을 포괄하고 있어 많은 실업자, 청년, 자영업자, 경력단절 여성들이 제도 밖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의 가구원은 실업급여 경험률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생계급여 지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일을 통한 자립 유인도 낮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일을 통한 빈곤탈출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로 채택하였고, 지난 3월에는 경사노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한국형 실업부조 운영원칙을 담은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실업부조에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OECD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전통적 실업부조 제도와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당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 구직자, 영세 폐업자영업자 등이 취업을 통해 자립하도록 돕고, 이들의 빈곤을 완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정부는 한국형 실업부조가 ‘제갈량의 비단주머니’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포용성장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갑 |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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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항간에 ‘엘리트스포츠 죽이기’란 말이 떠돈다. 오랫동안 묵묵히 스포츠에 헌신해온 지도자들과 빛나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 주변으로 이런 표현이 실체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일부 언론도 이런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있으니 이는 지도자의 헌신과 선수들의 노력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그 땀방울을 볼모로 폐습을 유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게 한다. 이참에 스포츠혁신이 ‘엘리트 죽이기’인지 다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전제가 필요하다. 부정과 비리, 폭력과 반인권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대다수 지도자와 선수들이 언제라도 위험한 상태에 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살리기냐, 죽이기냐’ 이전의 문제다. 이른바 ‘스포츠 강국’이든, ‘스포츠 선진국’이든 이 반인권적인 상황은 어떠한 이유로도 방치될 수 없다. 이 대전제에 동의하지 않고 ‘죽이기’란 말부터 앞세우면 안된다. 다행히 대한체육회와 진천선수촌, 각 시·도연맹이나 종목단체에서도 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제도 개선을 나름대로 도모하고 있으니, 이 점을 재론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 대전제를 부정하면서 ‘죽이기’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쓴다면 이는 건강한 토론이나 미래지향의 동반이 어렵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음으로, 혁신적인 제도나 정책에 의하여 ‘올림픽 세계 10위권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올림픽 10위권 유지’는 중요하다. 10위권을 유지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국가주의’는 아니다. 그 종목에 비범한 능력과 큰 뜻을 품은 선수들을 과학적으로 육성하여 세계 무대에서 아름다운 승리와 벅찬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스포츠의 귀한 가치 중 하나다.

2016리우올림픽의 국가 순위를 살펴보자. 20위권을 보자.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가 보인다. ‘선진국’이면서 ‘강국’이다. 20위권이 무슨 강국이냐고 힐난한다면 10위권 이내를 보자. 미국과 영국이 1, 2위이고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가 있다. 그야말로 ‘강국’이면서도 ‘선진국’이다. 대한체육회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바람직한 해외 사례’를 연구할 때 매번 등장한다. 특히 영국은 일찌감치 인권적이고 과학적인 선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엘리트를 육성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올림픽 10위권 유지’를 목표로 삼자는 것은 당연히 ‘엘리트 살리기’ 아닌가. 이를 위하여 국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스포츠계는 이에 적극 동의하여 폐습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 그럴 때, 선수의 능력은 더욱 과학적으로 증진될 것이며 지도자의 헌신은 더욱 고결해질 것이며 모든 엘리트의 꿈은 아름답게 실현될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당장 2020도쿄올림픽이 1년여로 다가왔다. 그밖에도 여러 국제대회가 쉼 없이 열린다. 헌신적인 지도자와 꿈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대표를 위하여 지속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부분적인 제도 ‘개선’이야 이런 와중에서도 부단하게 추진하는 것이지만 ‘혁신’은 다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그 입법 과정도 혁신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꼼꼼히 추진해야 한다. 방향을 선회하려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방향 지시등을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켜야 한다. 당장의 올림픽 준비에 곤란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포츠계 일각에서 ‘엘리트 죽이기’ 같은 말을 근거 없이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훈련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할 뿐이다. 

세계스포츠는 급변하고 있다. 급변한다는 것은, 직선으로 저만치 앞서가니 우리도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런 개발주의 상상력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어렵다. 정치, 경제, 문화, 인종, 젠더, 환경 등의 21세기적 의제들이 스포츠 내부로 들어와 의미 있게 작동한다는 뜻이다. 이 의제들은 ‘만국공통어’의 속성을 지닌 스포츠에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스포츠의 가치, 내용, 형식, 산업 등에 변화를 유발한다. 누구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 의제들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 IOC로서는 2024파리올림픽에 브레이크댄싱이나 서핑을 포함시키는 것만큼이나 인권, 평화, 젠더 등의 의제가 중요하다. 요컨대 세계사적 변화로부터 스포츠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내 엘리트 지도자와 선수들로 하여금 20세기적 스포츠 개념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인권이나 문화의 관점에서 스포츠를 건강하게 혁신하라는 요구이며 동시에 액체처럼 유동하는 지구촌 환경에서 스포츠 종목과 그 산업이 더욱 풍성하게 변화하여 격렬하게 펼쳐질 것이니 선진 시스템으로 준비하라는 요구다.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이는 확인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고 사회 관계망은 해체되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은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은 멕시코와 더불어 가장 길고 자살률은 10여년간 1위다. 이 상황에서 스포츠는, 특히 인간 감정의 극한과 그 복합성을 깊이 익히고 있는 엘리트 출신들은 극심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증대되고 있는 국민의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재능 기부’가 아니라 스포츠 가치가 사회화되는 것이며 동시에 20세기의 스포츠 개념으로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된다. 

요컨대 스포츠를 혁신하여 사회를 혁신하는 것은, 고립을 피하여 연대를 구하는 ‘21세기식 국위선양’인 바, 이는 결코 ‘엘리트 죽이기’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지도자와 선수들이 힘차게 흔들 만한 아름다운 깃발, ‘엘리트 살리기’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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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일요일 밤에 방송하는 <복면가왕>은 연예인에게 컴백 무대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인기가 많아 출연 시 주목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온 관심이 쏠릴 때 가장 드라마틱하게 모습을 공개하는 포맷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복귀하는 양상은 다양하다. 스스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고 인기가 시들어 사라졌다가 어렵게 돌아온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떠돌다가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도 <복면가왕> 출연은 가장 원하는 그림이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지금 모습에 집중하게 만든다. 나이, 성별, 직업 등 모든 것이 가면 속에 감춰지는데 도박, 폭행, 음주운전 등 그들이 저지른 잘못 역시 일종의 선입견으로 간주된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시청자들을 일단 매료시킨다면 연착륙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뿌린 지상 최고의 향수처럼 마법이 시작되면 뜻밖의 결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복귀 방송에 앞서 ‘요란’을 떨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복귀 기사는 화제성 부양에 필요하지만 히스토리를 되짚는 과정도 동반한다. 출연도 하기 전 부정적인 요소가 다시 도마에 오르면 복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복면가왕>은 출연을 비밀보장하기 때문에 앞서 치러야 하는 절차가 자연스럽게 생략된다. 반면 그런 절차의 부재에서 오는 손해를 만회하고 남을 만큼 방송은 극적으로 진행된다. 방송 후에도 가면 속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누구’인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도 장점이다. <복면가왕>이 복귀 무대로 주목받는 건 그만큼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바비킴이 이달 초 <복면가왕>을 통해 돌아왔다. 기내 난동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4년6개월이 흐른 뒤 찾아왔다. 다른 연예인의 복귀 기간과 비교해도 길었던 건 연예인 중년 남성이 일반인 젊은 여성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맥락과 더불어 당시 ‘땅콩회항’ 직후 터지며 갑질 패키지로 묶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긴 유배를 거친 만큼 시청자들의 마음도 많이 녹은 듯하다. 그의 노래가 꽤 그리웠던 모양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따뜻하게 그를 안아주었다. 그럼에도 차가운 시선이 여전한 것을 보며 좀 놀랐다. 가면을 벗고 인사하며 울컥 눈물을 쏟으려는 바비킴을 떠올리니 용서란 게 무엇인가 곱씹게 된다. 

애당초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화면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시청자도 여전히 많다. ‘미성년도 보는 TV에 굳이 그런 사람들을 나오게 할 필요 있을까’ 싶은 게 엄격한 기준을 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형벌을 이렇게 쉽게 주장할 대상이 연예인 말고 또 있나 싶다. 방송출연도 직업의 세계라면 영구 퇴출은 그만큼 높은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자숙기간은 죄질과 더불어 인기, 평소 보여주었던 인성, 안티 팬의 규모, 대체 가능성, 복귀 플랫폼 등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정해진다. 명시적으로 확인할 룰도 없어 연예인 입장에선 자숙 기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좀 안 보였는데 다시 나온 것을 보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났구나. 세월 참 빠르네…’라고 말하기에 당사자는 매일의 생계를 견디며 일 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야 한다. 한편으로 어느 연예인이 음주운전처럼 큰 죄를 짓고도 슬쩍 복귀를 해버리면 속수무책 TV에서 봐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도 현실이다. 기준이 자의적일수록 여론은 쉽게 누군가를 가혹하게 대하고 또 누군가를 쉽게 용서한다. 규칙이 명확한 경우가 하나 있는데 군 입대 문제다. 어길 경우 가장 가혹한 징벌이 기다리고 있지만 갔다 오면 과거를 묻지 않는다.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이한 경우이다.

우리 사회는 용서받는 공식이 명확하게 제시되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워낙 죗값을 치르지 않는 자들이 많으니 제대로 용서해주고 또 용서받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다. 그래서 법적 처벌 이외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경계심이 있고 또 인색하기도 하다. 그 정서적인 맥락 속에 연대 의식 없고 소수인 연예인이 유독 호되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가장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는데 이 정도는 좀 걱정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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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리는 갓은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흔히 아는 꼭지가 뾰족하고 네모진 삿갓은 얼굴까지만 가립니다. 장거리를 갈 때 해와 비를 가리려고 썼지요. 또 하나는 방갓으로 꼭지가 둥글고 목 아래까지 가립니다. 어깨에 걸리지 않으며 발밑도 보도록 사방이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하늘 보기, 남 보기 부끄러운 불효자란 뜻으로 탈상(脫喪) 전까지 어쩔 수 없는 출타 때나 썼습니다. 그리고 상반신 전체를 가리는 부녀삿갓이 있었지요. 뾰족한 감을 세워놓고 밑동을 잘라낸 듯한 모양입니다. 비싼 쓰개치마나 장옷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여성들이 외출용으로 썼습니다(허리 아래서 양손으로 들었지요). 크기가 큰 만큼 대오리(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갈대, 부들 줄기같이 가벼운 재료로 엮었습니다.

가뜩이나 미운 사람이 더 미운 짓을 한다는 속담 ‘못난 색시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통행금지가 있어 남자가 잡히면 혼쭐난 뒤 날 새고 풀려나지만 여자는 잡지 않았습니다. 늦게 귀가한 시아버지, 남편이 아침에 입을 옷을 빨러 나갈 수도 있고 범죄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까요. 그걸 이용해 밤나들이 외도하던 여성도 있었나 봅니다. 야밤 출입을 하며 부녀삿갓까지 씁니다. 야밤이라 길에 여자뿐일 텐데요. 그걸 왜 쓰냐니 양심이 덜컥해 핑계 댑니다. “달이 밝아 못생긴 얼굴 다 보여서… 순라군도 남정네고….” 못난 행실 알면서 때론 ‘오죽 사랑 못 받으면’ 쯧쯧, 모른 체도 했겠죠. 

흐린 날 등산에 무슨 선글라스냐니 멋이랍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선글라스 쓴 남자를 만납니다. ‘달밤에 삿갓 쓰고 나온다’는 그 남자 말이죠. 집에 미운 사람 있거나 미운 취급 속에 살기도 했을 겁니다. 어쩌면 ‘그래, 가지가지 해라’일지 모르지만, 알지 모른다 알지 모르지만, 아마 양심은 찔려 등산화에 흙이라도 묻혀 올 겁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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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 출마 선언할 무렵만 하더라도 미국은 물론 국내 정치평론가들은 그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잠시 스쳐가는 거품 인기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슈퍼 화요일이라 불리는 경선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자 트럼프 대세론이 공고해졌다. 뒤늦게 언론과 방송은 트럼프 돌풍의 주요 원인으로 실업률, 무역 적자, 테러 사건 이후 무슬림을 비롯한 해외 이민자에 대한 혐오 등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상징되는 보수 백인 계층의 불만과 위기의식을 트럼프가 막말을 통해 대리만족시켜준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막말이 널리 유포될 수 있는 미디어 환경과 사회구조의 변화이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 이후 60년이 흐르는 동안 미디어 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다. 트럼프의 성공은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부신(?) 성공은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도 학습효과와 자극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치인과 막말이 갑작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정치를 넘어 일상화되어간다는 것이다. 신문, 라디오 그리고 TV 같은 전통적인 대중매체에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이 추가되면서 미디어의 영역이 놀랍게 확장되었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본격적인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열렸다. 이 같은 변화는 그간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담화들이 실수든, 의도적인 것이든 곧장 공적담론의 장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개인의 신상정보가 유리벽처럼 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말과 글, 행위 역시 여과 없이 전파되는 시대란 의미이다. 위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지만, 트럼프의 성공에 자극받은 정치권과 신규 미디어는 이것을 기회로 여긴다. 미디어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한 종편, 인터넷 방송이 시청률에 연연하여 극단적인 막말을 묵인하거나 갈등상황을 의도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율에 목을 매는 정당과 정치인이 정치적 이유로 이런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미디어 연구자들에 따르면 케이블방송 뉴스나 인터넷 뉴스를 즐겨 소비하는 사람일수록 뉴스 보도의 객관성이나 중립성보다는 정파성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하는데, 종편의 보도 강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 망언과 페이크뉴스를 만들어내는 미디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막말과 페이크뉴스에 몰두하는 시청자일수록 대화와 타협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도덕 불감증 증세를 보인다. 문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견의 차이가 합리적인 토론과 설득, 타협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막말을 통해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청취자들을 향해서만 발언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막말을 중요한 정치수단으로 삼는 ‘부족주의(tribalism)’ 정치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혐오의 정치이며 사회의 신뢰를 파괴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막말과 거짓뉴스가 혐오를 유포하며 제2의 성공을 꿈꾼다. 어떤 이들은 이를 받아 다시 유포하며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J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에는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비춰주는 마법의 거울 이야기가 나온다. 그 거울에는 “에리스드 스트라 에루 오이트 우베 카푸루 오이트 온 워시(erised stra ehru oyt ube cafru oyt on woshI)”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이 문구를 거울에 비춰보면 “나는 당신의 얼굴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 소망을 보여준다(I show not your face but your hearts desire)”라는 뜻이다. 

막말과 거짓뉴스가 발호할 수 있는 배경은 자신의 확증 편향에 따라 거짓과 혐오발언을 별생각 없이 소비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거짓뉴스를 전달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막말을 하거나 성범죄 동영상을 공유하려 할 때, 항의하라! 낮고 작은 목소리라도 단호하게 거부하라! 그것만이 우리 자신을, 사회를 지키는 방법이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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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택 울산지검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비판하는 내용의 e메일을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보냈다. 송 지검장은 “지금 논의 중인 법안들은 수술이 필요한 공안과 특수 수사를 어떻게 개혁할지는 덮어버리고, 검사제도 자체에 칼을 대는 엉뚱한 처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수사권을 어떻게 떼어줄 것인가로 논의가 옮겨간 것은 경찰 주장에 편승한 검찰 해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세월호 사건 때 재발방지를 위한 개혁이라고 해경을 해체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된다. 검사장도 차관급 대우를 받아왔으나 근거 없는 관행일 뿐이다. 반면 국회의원은 주권자의 대표이자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검사 2200여명 중 1인에 불과한 ‘행정부 소속 공직자’가 입법권과 관련된 ‘단체 메일’을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낸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더욱이 문무일 검찰총장이 몇 차례 견해를 밝힌 바 있고, 청와대와 정부·여당도 검찰 입장을 존중해 경찰개혁안을 내놓은 터다. 공식 통로를 통해 의견이 개진·수렴되고 있는데도 검사장급 간부가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송 지검장이 발송한 e메일의 제목은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이다. 그는 “진상을 잘 모르시는 국민께 진실을 알리지 않는 게 죄가 되는 것 같다” “법과 원칙에 따라 내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도록 놔둔 적이 있었는지 정치권력도 반성하고 양심고백을 해야 할 것”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인다면, 평소 검찰에 대해 갖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풀기 위한 정치권의 보복으로 비쳐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을 계몽 대상으로 여기고, 정치권을 향해 양심고백을 촉구하는 게 ‘건의’인가. 검찰총장 임면절차 개선, 총장 지휘권 제한, 수사정보 보고시스템 개선 등 송 지검장 제안에 귀 기울일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 논의가 제기된 배경에 대한 본질적 성찰 없이 지엽적 개선을 꾀해봐야 무의미할 따름이다. 송 지검장의 글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드러낸다.

검찰의 전 구성원이 명심할 게 있다. 첫째, 검찰은 개혁의 대상일 뿐, 주체가 아니다. 둘째, 입법은 주권자의 대표인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몰라서 딴죽을 건다면 무지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오만이다. 시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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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국회 정상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정상화 선결 조건을 둘러싼 여야 갈등에 5월 국회는 소집조차 못한 채 ‘빈손’으로 끝날 판이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여야 4당의 선거법·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해 장외로 나가면서 시작된 ‘식물국회’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당장 재난과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은 상정도 못한 채 발목이 잡혀 있다. 한국당이 지난 25일 광화문 집회를 끝으로 19일간의 장외투쟁을 일단락한 것을 계기로 여야 대화 복원의 기대가 컸으나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특히 황교안 대표의 조건 없는 국회 복귀 결단을 바랐으나 연목구어 격이 됐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민생투쟁 대장정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황 대표는 27일 ‘민생투쟁 대장정’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폭정’이라고 비난하며 “한국당이 대안을 만들어 국민과 함께 정책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과 이제는 국회 밖에서 ‘정책투쟁’으로 싸우겠다는 선언이다. 국회 정상화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이미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2일 의원총회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패스트트랙 유감이나 사과 표명은 안된다고 정리한 상황이다. 4당의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이고 이를 물리력으로 저지한 한국당은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여당으로서 국회 파행에 대한 유감 표명 정도는 몰라도 철회까지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협상을 깨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장외투쟁에도 ‘민생 대장정’을 내걸고, 이제는 민생을 위한 정책투쟁을 선언하면서 정작 민생입법을 다룰 국회 마당을 외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국회법에 따라 짝수달인 6월에는 임시국회가 자동 소집된다. 하지만 여야가 의사일정에 합의 못하면 6월 국회 역시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 그 피해는 민생과 경제에 돌아가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여야 지도부는 국회 정상화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회 공전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교착 정국을 풀어야 할 일차적 책임은 여권에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황 대표 간 일대일 회동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도 여당이 애초 받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어 절충의 기회를 봉쇄해서는 안된다. 한국당이 장외로 나가 국회가 겉돌면서 민생법안들은 먼지만 쌓이고 있다. ‘정책투쟁’ ‘민생정당’을 운위할 처지가 아니다. 정녕 민생을 걱정한다면 조건 없이 국회로 돌아와 민생·경제를 놓고 ‘박 터지게’ 싸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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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28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전교조의 뿌리는 1987년 6월항쟁이다. 그해 9월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가 결성됐고 2년 뒤 1989년 5월28일 전교조가 창립됐다. 전교조는 시작부터 수난이었다. 결성 과정에서 교사 1527명이 해직됐고, 전교조 가입 교사 1만2000여명 가운데 90%가 탈퇴했다. 해직교사가 복직되고 노조가 합법화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1999년 합법노조가 된 전교조는 교육현장 개혁과 함께 참교육 실천에 나섰다. 교육현장에 뿌리내린 촌지를 추방한 것은 혁신적 성과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체벌을 없애는 데도 기여했다. 야간자율학습과 일제고사를 폐지하며 경쟁교육을 완화시킨 것 역시 큰 변화다. 전교조는 또 무상급식·무상교육, 내부형 교장 공모제 등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전교조가 교육개혁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전교조의 교육운동은 학교교육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 가운데 전교조 출신은 절반이 넘는다. 전교조의 지향과 가치가 교육현장에서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교조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학생들은 여전히 경쟁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은 비민주적인 조직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전교조의 최대 현안은 ‘법외노조’란 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0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두었다는 이유를 들어 노조를 ‘직권취소’했다. 전교조가 교육현장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한때 10만명에 달했던 조합원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굴절된 위상과 연관돼 있다. 노동부가 아니라 교육부가 내린 이 처분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 위배된다. 법외노조 신분으로는 교육현장을 바꿀 수 없다.

전교조를 합법화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우선 정부가 직권취소 처분에 나서는 일이다. 두번째는 소송을 하는 것인데, 이미 전교조는 해당 소송을 제기해 상고심에 계류된 상태다. 세번째는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것이다. 비준하는 순간 법외노조는 자동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것은 정부가 법외노조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다.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한 조치이자 과거 적폐를 청산하는 의미도 있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는 정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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