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 살 때 우리 집은 단칸방 셋방살이를 면하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마당이라고 해봤댔자 손바닥만 했지만, 그래도 마당 한구석에 개집 하나는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개를 얻어와 개집 앞에 묶어놓았다. 누렁이라 불리던 개는 무럭무럭 잘 자랐는데, 여름날 아버지가 자전거 안장에 싣고 대문을 나선 뒤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개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까만 눈을 끔벅이며 울던 누렁이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 시절 복날이면 개를 잡는 건 흔한 일이었고, 나도 어른들이 떼어주던 고기를 곧잘 받아먹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의 결심은 우주에서 나와 함께 존재하는 한 존재에 대한 공감, 그것 말고는 더 설명할 게 없었다. 사람 몸에 개고기가 가장 좋다는 동네 의원 말을 평생 맹신하는 아버지는 내 결심을 번번이 묵살하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먹지 말라고.

세상에 이로운 일을 실천하고자 채식을 한다는 청년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선택은 어린 시절 나의 결심과는 다른 것이지만, 채식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업하게 되면 채식주의자로 살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눈치를 준대요.”  

그는 지금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밥 먹는 게 꺼려진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만한 식단이 없는 외식 문화에 대해 말했지만, 진짜 문제는 식단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한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존중되는 것, 우리는 그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았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런 바람은 부질없을 테니까.

그는 내게 한 학자의 글을 보여줬다. ‘비거니즘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도, 잃음을 감수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비폭력을 지지하고, 나약한 존재들의 착취를 거부해 내적 평화를 얻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게리 프란치오네)

올여름 아버지에게 이 말을 해드린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궁금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20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써가면서, 장장 13개월이나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과거사위의 결론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사실 고인의 죽음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인이 숨질 당시의 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는 사이 몇몇 범죄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증거는 더 없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과거사위에 기대를 한 결정적 이유는 두 달여 동안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윤지오의 존재였다.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했고, 기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막말을 해대는 윤씨를 보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고 악인들이 처벌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실제 조사를 담당한 대검 조사단이 윤씨의 입에 목을 매다시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타깝게도 윤지오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윤씨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고인과 별로 친하지 않았으며,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윤씨는 ‘16번이나 증언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증언 횟수가 많은 것은 그녀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윤씨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조사를 받을 땐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놓고선,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심지어 장씨의 유족 등 고인이 남긴 문건을 본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니, 윤씨가 진짜로 리스트를 봤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윤씨는 재수사 불발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다. 정말 이게 우리가 원한 진정한 대한민국이냐”고 했지만, 이런 걸 전문용어로 적반하장이라 한다. 조사단에서 활동한 김영희 변호사도 사과는커녕 같이 애를 썼던 검사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검사들은 성폭행 의혹 부분을 수사에 못 넘기게 하려고 정말 총력전을 했다. … 조직적 차원에서 반대가 있지 않았나 느꼈다.” 하지만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마당에 무슨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건 어이가 없다. 안 그래도 김 변호사는 윤씨가 기억력이 뛰어나다느니,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느니 하면서 시종일관 윤씨를 옹호하는 여론몰이를 해 조사단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는데,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은 이에 항의하며 조사단을 탈퇴하기까지 했다. 

더 놀라운 점은 윤씨가 이런 결론이 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줬던 김수민 작가에게 윤씨는 다음과 같은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사건은 종결 자체가 불가능하고 … 서로 헐뜯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고.’ 그런데도 윤씨가 자신이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굴었다면, 그녀에겐 이 기회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윤씨에 대한 언론들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윤씨로부터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안달했고,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을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내보내기 바빴다. JTBC <뉴스룸>에서 윤씨가 차량 테러를 두 번이나 당했다며 부서진 차 사진을 내보냈을 때, 국민들은 경악했다. 윤씨가 스마트워치를 눌렀는데 경찰이 9시간이나 오지 않았다는 윤씨의 증언도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 윤씨 숙소의 열쇠를 복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사람들은 윤씨의 신변이 위험에 빠졌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로 인해 여경 5명이 한 달 가까이 윤씨 옆에서 심부름을 해야 했고, 그것도 부족해 사람들은 경호비에 보태라며 윤씨가 공개한 후원계좌에 아낌없이 돈을 보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실제로 윤씨를 위협한 사람은 그녀 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씨가 대국민 사기극을 펼치는 데 앞장선 언론들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윤씨의 교통사고는 학부모의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일어난 접촉사고였지만, JTBC는 그 진상에 끝내 침묵한 데다, 최근에는 장씨의 유족이 진술을 번복한 것이 재수사가 불발된 이유인 것처럼 보도했다. 윤씨의 존재를 처음 대중에게 알린 <뉴스공장>은 그녀에 대한 의혹이 쏟아지는 내내 침묵했고, 과거사위의 결론이 난 뒤엔 엉뚱하게도 김영희 변호사를 불렀다. 역시 윤씨가 출연했던 KBS <오늘밤 김제동>도 마찬가지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윤씨에 대한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진 지금이라면, 김수민 작가나 김 작가를 대리해 윤씨를 고소한 박훈 변호사 등등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자를 ‘기레기’라고 비하하는 것에 부정적이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 말이 왜 유행하는지 이해가 간다. 하기야, 나중에 사과할 언론사라면 미리부터 사실 여부를 철저히 검증했으리라. 이분들에게 윤지오가 올린, 윤씨와 SBS 박원경 기자의 전화통화 영상을 보기를 권한다. 팩트체크는 어떻게 하는지 배울 수 있고, 거짓말을 하는 이가 팩트체크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담겨 있으니, ‘참기자’가 되길 원한다면 꼭 보길 바란다. 계속 기레기로 남아있고 싶다면 안 보셔도 되지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학교 가려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으면 담배 피는 어른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숨을 참고 뛰어가요. 냄새가 너무 심해서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거든요.”(2017 전국 아동 통학로 흡연 실태조사 참여 아동 인터뷰 중)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2017년 전국 200곳의 통학로 현장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 통학로 중 196개 현장에서 담배꽁초나 담뱃갑이 발견되었다. 인터뷰한 아동 418명 모두 통학로에서 흡연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재단은 통학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라고 촉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어린이집 및 유치원 시설 경계선 10m까지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 거리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숨쉬기에는 턱없이 짧다. 2017년 통학로 현장조사 당시, 경남지역에서도 아이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통학로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교문 바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흡연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담배연기가 싫어 숨을 참고 뛰어간다는 아동, 담뱃불로 인해 화상을 입은 아동도 있었고, 담배는 싫지만 그 맛이 어떻길래 어른들이 저렇게 담배를 피울까 생각한다는 아동의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남지역의 아동 통학로는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 50m까지 지역인 절대정화구역만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었다. 

이에 경남아동옹호센터는 아이들과 함께 문제를 알리고 어린이보호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도록 ‘경상남도 금연 환경 조성 및 지원 등에 관한 조례’ 개정을 촉구했다. 도의회에 어린이보호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촉구하는 의견서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지방선거 때는 후보자들을 직접 찾아갔다. 또한 아이들이 직접 그린 금연구역 표지판을 학교 근처에 설치해 여기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4일, 이옥선 도의원의 대표발의로 경남지역의 어린이보호구역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오는 31일은 세계 금연의날이다. 뒤늦게라도 아이들이 간접흡연으로부터 안전한 등·하굣길을 위한 보호제도가 마련되어 다행이다. 아직 어린이보호구역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자체들이 있는데 조속히 대책을 강구하여 아이들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아이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이뤄낸 조례 개정이니만큼 어른들은 실천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아동이 있는 곳, 그곳이 금연구역입니다’라는 슬로건이 행복한 삶을 위한 아이들의 권리와 맞닿길 바란다.

<박문호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남아동옹호센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경제학계의 작은 논쟁이 주요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이달 초 발생했다. ‘서강학파’로 분류되는 한 교수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되는 그래프의 확대해석을 비판하였고, 보수언론은 그 비판을 소득주도성장의 근간을 흔드는 주류 경제학계의 때늦은 대반격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진영 간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비판은 엄격한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족보가 없는 좌파 이론’이라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감정적, 이데올로기적 비판과 차원을 달리한다. 또한 이러한 논쟁은 정책의 학문적 기반을 높일 수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학계의 논쟁이 이데올로기로 재포장되어 과잉 단순화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논쟁의 초점은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양분했을 때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수십년간 감소했는가이다.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의 자영업자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데 이들의 소득을 둘 중 어떤 소득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박모씨의 월소득이 300만원이라면 이것이 노동소득일까, 자본소득일까? 한국은행의 공식 통계는 이 300만원을 전부 자본소득으로 취급한다. 그러면 지난 20년간 노동소득의 비중은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박씨의 소득에는 식당 시설에 투입한 자본에 대한 보상과 치킨 튀기기라는 고된 노동에 대한 보상이 섞여 있다. 이 둘을 분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박씨가 치킨집을 그만두고 근로자로 취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 임금이 200만원이라면 박씨의 소득 300만원 중 200만원은 노동소득, 100만원은 자본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취업 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직접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OECD나 ILO와 같은 국제기구는 취업자의 평균임금을 자영업자가 취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으로 간주하여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자영업자 소득의 거의 전부 혹은 그 이상이 노동소득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노동소득 비중은 지난 20년간 빠르게 감소했다. 자영업자의 임금을 더 낮추어 잡으면 노동소득 비중 감소 경향은 완화되지만 임금을 지나치게 낮춰 잡지 않는 한 노동소득의 감소 경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학문적 연구에서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계산에서 아예 빼버리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렇게 해도 노동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따라서 국민소득 통계에 문제가 없다면 한국의 노동소득 비중은 지난 20년간 감소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관찰이 노동소득 비중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급상승시키는 정책을 정당화할까? 소득재분배가 수요견인적 성장 효과를 발생하려면 이 정책이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 가계에서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 가계로 소득을 이전시킴으로써 국민 평균 소비성향을 끌어올리고 총수요 증가를 유발해야 한다. 또한 저소득층의 소득 상승은 이들의 건강과 교육 수준을 개선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상승은 일차적으로 소득이 낮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으로부터 소득이 낮은 노동자로 소득을 이전케 한다. 이래서는 소득재분배가 성장제고 효과를 발생시키기 힘들다.

노동소득 비중이란 지표는 둔탁한 소득불평등 지표다. 노동소득에는 최저임금 수령자의 소득과 대기업 CEO의 고액 연봉이 섞여 있다. 자본소득에도 영세업자의 얄팍한 소득과 거대 재벌의 소득이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합한 총소득의 가계별 분포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많은 연구들은 종합소득 상위 1%와 10% 납세자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 중엽에서 2000년대 말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노동소득 내부에서도 최상위 소득자의 비중이 급하게 증가하였다.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니계수도 1990년대 중엽부터 계속 악화되었다가 최근에야 소득재분배 강화에 힘입어 개선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부는 노동 대 자본이라는 고전적 갈등관계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총체적 소득이 최상위 계층이 집중되는 현상에 더욱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은 둔탁한 최저임금 상승 정책이 아니라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 강화와 저소득층에 대한 이전지출 집중이라는 날카로운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송의영 |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21일 저녁 비공개로 4시간30분 가까이 회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자리에는 현직 중견기자 1명도 동석했다. 양 원장은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했다. 그건 그의 주장일 뿐 두 사람의 회동은 여러 면에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양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최측근 친문 인사다. 그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해외로 출국해 2년간 유랑생활을 한 것도 현 집권세력 내 자신의 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돌아오자마자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건 누가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해외로 떠났던 초심에 비쳐보면 회동은 더욱 피했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양 원장은 현재 집권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연구원장에 취임하면서 “정권교체의 완성은 내년 총선 승리”라며 “민주연구원이 총선 승리의 병참기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총선을 10개월 앞두고 여야가 총력전에 돌입한 민감한 시기다. 설령 그의 말대로 정치 얘기는 없었다 하더라도 총선 전략을 짜는 여당 실세와 국가정보기관 수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여러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양 원장은 “제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의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양 원장 밑에 부원장으로 초선 의원 3명을 포함한 5명이 포진해 있다. 그를 재선이나 3선급으로 대우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의 정책연구소는 정책의 개발·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국고 보조를 받고 있다. 이런 자리에 있는 인사가 공인(公人)이 아니라면 누가 공인인가.  

민주당이 이번 회동을 두고 “개인적인 만남”이라고 감싸고 도는 건 몹시 안이한 대응이다. 이전 정권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어갔을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분야를 없애고 권력기관 개혁 차원에서 정치 관여를 제도적으로 막는 방안을 추진해 오고 있다. 아울러 전임 정권의 국정원장들은 정치개입 등의 혐의로 줄줄이 단죄를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두 사람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탈(脫)정치화 의지를 의심받을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이라도 회동의 전모를 소상히 밝히고 사과하는 게 옳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8일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제조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이 품목 허가를 받기위해 허위자료를 작성,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코오롱은 3700여명의 환자가 치료받는 동안 약의 성분이 바뀐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 굴지의 재벌기업이 서류를 조작해 신약 허가를 받고, 국민들이 고통받든 말든 성분이 달라진 약을 알고도 판 것이다. 인보사는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였다. 두 개의 주사액으로 1, 2액 모두 연골세포여야 한다. 그런데 식약처 검사결과 2액에서 신장(콩팥)세포에서만 발견되는 유전자가 검출됐다고 한다. 신장세포는 암세포를 유발할 수 있는 종양원성을 가지고 있다. 코오롱은 시판 전에 2액에 삽입된 성장촉진 유전자의 개수와 위치가 달라진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고 한다. 또 시판 허가 직후 2액이 신장세포라는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판매를 강행했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국민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코오롱은 개발단계에서 2액이 왜 신장세포로 바뀌었는지, 그 경위조차 모른다고 한다. ‘위험한 가짜약’을 팔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강석연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생약국장이 28일 식약처 본원에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2005년 ‘황우석 사태’를 연상케 한다. 14년이 흘렀는데도 유사한 사건이 재발한 것은 보건당국의 안이함이 가장 큰 원인이다. 코오롱이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1·2액 모두 연골세포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1액+2액’과 2액을 비교한 자료를 제출했다. ‘신장세포+연골세포’와 신장세포 비교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1, 2액 모두 연골세포로 판단하고 허가를 내준 것은 식약처였다. 이번 검사 결과는 식약처가 ‘눈 뜬 장님’이었음을 말해준다.

바이오산업은 2016년 기준 세계시장 규모가 1조8000억달러에 달한다. 정부도 2030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6%, 500억달러 수출을 약속한 분야다. 인보사 사태는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한 국제적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유전자 치료제 등 국내 바이오산업 분야의 위축도 우려된다. 그런데 식약처가 내놓은 대책은 인보사에 대한 허가 취소와 제조사 및 대표 형사고발, 투여환자 15년간 추적관리, 단계별 안전·품질관리 기준 마련 등이 전부다. 식약처 자체에 대한 반성이나 징계는 물론 국민과 투여 환자들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제2의 인보사 사태’를 막으려면 식약처 개편, ‘징벌적 손해배상’ 등 범정부 차원의 근본적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름캠프 보조교사를 한 적이 있다. 대학원 다닐 무렵 어느 초여름, 성당 초등부 여름캠프를 도울 일손이 필요하다기에 자원했던 것이다. 신부님은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종교단체활동을 해보지 않아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라 하셨다.

괜찮다고 호기롭게 답했지만,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은 버스에 올라타던 순간부터 직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어린아이들을 가까이서 대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 사랑스러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랐다. ‘철수야! 안녕?’ ‘영희야! 놀자’ ‘바둑이 멍멍!’ 정도가 당시 알던 어린이세계의 전부였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앞에서 귀여운 율동을 시범 보일 때면 나한테도 따라 하라 시킬까봐 두려워, 뒤편에서 짐 나르는 시늉을 하였다.

첫날 저녁, ‘나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그때껏 내가 경험한 ‘나눔’이라곤 학부시절 농활 가서 갖던 평가시간 혹은 우회적으로 상대방 논지를 비판하는 토론기술 정도였다. 촛불 켜고 빙 둘러앉아 노래 부르는 말랑한 분위기는 아름답지만 더없이 생경한 무엇이었다. 얼어있던 나는 지금도 떠올리면 이불 걷어찰 장면을 연출했다. 민망해서 차마 묘사할 수 없다. 울고 싶었으나 조금 남은 이성이 그것만큼은 안된다며 붙들었다. 주일학교 교사단의 평균연령대가 스물 한둘인데, 교감선생님보다 더 나이 먹은 대학원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뛰쳐나가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래서 둘째 날은 묵묵히 힘쓰는 일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탁자와 의자를 열심히 들어 나르다 고개를 드니, 지켜보는 얼굴빛들이 안 좋았다. 아무리 “알고 보면 저 천하장사예요”라 주장해도 주위에선 예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서선생님이 토끼옷 입고 “저 닳을 만큼 닳은 사람이라고요” 했을 때의 이선생님 같은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막내교사만 괜히 “지금 저 야윈 누나가 무거운 거 나르시는데 너 뭐하냐?”며 꾸지람 듣고 말이다. 

마침 물놀이용 고무튜브가 모자란다 하여 얼른 빠져나와 강당으로 가지러 갔다. 그곳에서는 신부님 혼자 조그맣게 음악 틀어놓고 저녁 프로그램에 쓸 영상을 편집하고 계셨다. 곡명은 몰랐으나 흘러나오는 노래가 신부님께서 좋아하신다는 이탈리아 아트록 장르임은 알아들었다. 한쪽에서 튜브상자를 느릿느릿 꺼내며 나도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을 누였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제로 살아가며 음악에 대한 선호와 애착을 끊으려 노력하지만 많이 힘들 땐 어쩔 수 없이 찾아듣게 된다는. 신부님은 그렇다면 지금 ‘많이’ 힘드신 걸까? 아이들을 워낙 예뻐하시니 일정이 고되어서는 아닐 테고, 혹시 나로 인해 스트레스 받으셔서인가 싶었다. 봉사의 허울을 쓴 내 어설픈 행동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여름캠프 분위기를 망쳤구나.

상자 들고 나오다 미리 봐둔 풀숲으로 들어가 잠깐, 눈물을 쏟았다. 그러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배짱도 솟고 말이다. 그리하여 남은 일정은 그럭저럭 잘 수행한 줄 알았으나, 마지막 날 어떤 영민한 5학년 아이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샘, 그렇게 어색해하지 말고 그냥 다른 샘들 따라하면 돼요.” 끝까지 그렇게 티가 났냐고 나중에 물어보니, 다들 말도 말라 했다. 내 머리 위로 ‘어색, 어색’ 말풍선이 떠다니는 것 같았단다. 

논쟁보다 혼자 읽고 쓰는 게 좋고, 노래방 가기보다 이어폰으로 음악 듣는 걸 즐기고, 단체모임보다 한두 사람과 함께일 때 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어울리지 않게 늘 ‘함께하는 나’를 꿈꾸었다. 그 소망은 대개 저렇듯 미끄러져 부끄러운 장면들을 만들곤 했다. 그럼에도 이따금 수련원이라 불리는 장소를 방문하거나 우연히 아트록이 귀에 닿을 때면 10여년 전 그날이, 그 오후 강당에 드리우던 햇볕과 웅크리고 자책하던 내 모습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부끄러운 기억마저 이럴진대 즐거운 기억은 또 어떨까 싶다. 나중에 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 사진으로 남긴다는 그 하늘나라 사진관에 가면 한 컷만 고르느라 꽤나 애 먹을 것이다. 수많은 기억들이 손 들고 “저요, 저요!” 할 테니 말이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사회교육과>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당 대표는 전직 공안검사. 의원은 113명. 당 강령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지만 무시하는 게 좋다. 실제 당 활동과는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전부 가짜다. 진짜 강령은 따로 있다. 절대 비밀이라 활자화하지 않았다. 그걸 공개한다. 

 제1조 반정치.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우파 기득권을 위협한다.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18세 선거권이 도입되면 분별력 없는 대중들이 나라를 휩쓸 것이다. 그러므로 다당체제나 국회 활성화로 시민 다수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비례대표를 없애고 의원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선거제 개혁을 좌절시키고, 기회만 있으면 국회를 보이콧하고, 그것도 안되면 막말 망언 가리지 않고 배설하며 시민들이 정치에 넌더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제2조 배제의 정치. 시민의 정치 이탈로는 부족하다. 시민의 정치 접근 자체를 막아야 한다. 먼저 동성애, 소수자, 약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주체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보수 개신교 외의 타 종교에 대해서는 의례적인 존중의 표현도 용납하면 안된다. 당의 비밀 종교인 보수 개신교에 대한 충실성은 타 종교의 존재를 무시할 때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양한 세력의 공존은 허구이자 위선이라는 당의 유일사상을 전 사회가 학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제3조 갈등 촉진. 한국에는 좌파·우파, 종북·반북만 있으며, 둘 사이는 화해 불가다. 종북 좌파는 자기모순 심화에 따라 스스로 궤멸함으로써 역사의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저 문재인 정권을 앞에 두고 좌파 청산을 역사의 숙제로 미를 수는 없다. 지금 우리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부 명령을 거부하라고 군을 선동하고, 남북 화해를 저주하고,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한·미를 이간하고, 그래도 할 게 없으면 외교비밀이라도 폭로해야 한다. 대결의 불꽃이 한시도 사라지지 않도록 어떤 충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 균열이 구석구석까지 깊고 넓게 퍼질 수 있다. 분열은 악이 퇴치되고 선이 구현되고 있다는 증거다. 

제4조 이념 대결. 낡은 방식이지만 사람을 흥분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물론 반정치, 배제, 갈등 촉진도 수월한 편이다. 사실, 정치가 어렵지 반정치는 쉽다. 통합이 까다롭지 배제, 식은 죽 먹기다. 갈등 조정이 힘들지 갈등 조장,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념대결은 더 쉽고 더 효과적이다. 따로 준비할 것이 없다. 어떤 정책도 필요 없다. ‘좌파독재’ ‘김정은 대변인’ 운운하며 공연히 시비 거는 것으로 충분하다. 4대 비밀 강령을 가진 정당이 ‘2020경제대전환위원회’를 구성, 민생 정책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위장술치고는 허술하다. 관심도 대책도 없는 그들에게 민생은 너무 어려운 과제다. 당의 체질과도 맞지 않는다. 세상이 갑자기 미쳐서 민생 논의로 빠져들면 우파는 누가 지키나? 절대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게 놔둬서는 안된다. 여태 해온 것처럼 4대 비밀 강령을 따라 쉽게 가야 한다. 사람은 역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제일 잘하기 마련이다. 조만간 세상은 민생이란 이름의 이념전 2라운드를 보게 될 것이다. 고만고만한 정책적 이견이 어떻게 근본적 차이로 변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쯤해서 비밀 하나를 더 공개해야겠다. 다른 정당이 피해보는 일도 막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당명 폭로다. 자유한국당.

 
한국당은 이러지 않아도 정치를 잘할 수 있었다. 진보·보수 간 이견이 있는 정책 가운데 대화로 좁힐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정책 이슈에서 사람들이 진보·보수 이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경우는 10% 이하였다. 대부분 이념과 상관없이 이슈별로 선호를 나타냈다. 한국갤럽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정책을 설문조사한 결과도 시사적이다. 대북 지원을 찬성한 보수 응답자는 28%, 반대한 진보 응답자는 25%로 교차했다. 진보층 44%는 경제정책을 못한다고, 보수층 38%는 복지정책을 잘한다고 했다. 여야가 정책 경쟁을 하면 이념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당이나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지 투쟁하는 정당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황교안이 이끈 한국당 3개월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문득 개념 하나가 머리를 스치자 모든 의문이 깨끗이 풀렸다. 정부 타도에 나서고, 국회를 무력화하며 문민통제를 부정한 것, 다른 야당과도 비타협적 투쟁한 것이 모두 설명된다. 반체제 정당. 반체제 정당은 집권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뒤집는 게 목표다. 집권할 생각이면 절대 이러지 못한다. 한국당의 행운을 빈다. 

<이대근 논설고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에 소설가 방현석의 <십년간>을 집어든 건 우연이 아니었다. 1988년 단편소설 ‘내딛는 첫발을’로 주목받았던 방현석은 7년 만에 첫 장편 <십년간>을 출간했다. 한동네 친구인 ‘겹빨갱이’ 자식 정준호와 부르주아 집안 후손인 이서익을 중심으로 1970년대를 담은 소설이다. 방현석은 치열한 노동운동가로 1980년대를 보냈다. 이어진 1990년대는 소비에트 해체 이후 이념의 대혼돈 시대였다. 진보와 운동이 갖은 모욕을 당하며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청춘들은 80년대를 항변하고 싶었다. 방현석이라면 이런 간절함을 채워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 70년대를 우회했다. “내 20대의 십년간을 보냈던 80년대. 우리들의 꿈과 도전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들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우리들의 상처는 어디서부터 비롯됐고 우리들의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싹텄는가”라고 물으며. 소설 주인공 정준호는 “대가를 치르며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의 몫은 역사에 없다”라고 답했다. <십년간>은 원초적 뿌리에 대한 질문이자 지난 시절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새날은 결코 없다는 역설이었다.  

노 전 대통령 10주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정치의 10년은 더뎠다. 9년 내내 반복됐던 노무현이 남긴 과제, 노무현을 잇는 사람들이란 주제는 올해도 등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퇴행이 노무현이란 상징 자본을 여전히 유효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10주기는 과거와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지난 추억을 즐겁게 말하기 시작했고, 노 전 대통령을 조명했던 추모 영화는 <시민 노무현> <노무현과 바보들>에서 보듯 초점을 이동했다. 노무현재단은 이 흐름을 ‘새로운 노무현’이라 했다. 노무현과 새로운 노무현의 간극. 한쪽에선 아직 오지 않은 노무현의 시대를, 또 한쪽에선 새로운 노무현의 시대를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그대로인데 불과 1년 만에 무엇이, 누가 변화를 이끌었을까. 24년 전 방현석의 발언대에 서면 보이려나. ‘우리들의(노무현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우리들의(노무현의) 상처는 어디서부터 비롯됐고 우리들의(노무현의)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싹텄는가’.

노무현의 시대와 상처, 사랑을 돌이켜 보면 ‘시민’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시민’은 낯선 이름이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도 폭도로 매도되지 않았던가. 그러던 중 노사모가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면 소외된 ‘시민’이었다. 노사모는 ‘자유로운 개인의 느슨한 연대’를 강조하며 스스로 시민이라 호명했다. “노사모는 낡은 정치를 바꾸려는 한 정치인의 팬클럽을 자인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근대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했다”(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 특정 리더의 지도를 받지 않은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차원에서 노사모는 시민정치 효시로 평가받았다. 노사모를 비롯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의 헌법 제1조가 정치적 시민권을 요구한 사례라면,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열풍은 시민정치가 사회적 시민권 요구로 확산한 사례다. “이게 나라냐”고 절규했던 2016년 촛불시민들은 국정농단 세력을 끌어내리며 시민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노 전 대통령 인생도 ‘시민’을 빼곤 설명할 수 없다. 민주주의자라는 소신, 여느 정치인과는 다른 경로가 일찌감치 시민에 주목한 이유로 짐작된다. 퇴임 일성도 “시민으로 돌아왔다”였다. 퇴임 다음 날, 봉하마을 방문객들을 ‘시민 여러분’이라고 불렀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직후라 ‘국민’이라 했을 법한데 말이다. 재임 마지막 해 2007년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선 지지자들을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명명하며 “참평포럼이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9년간 시민들은 노무현(정신)을 해석하기 바빴다. 그러나 10번째 봄이 되자 더 이상 ‘노무현’만 바라보지 않았다. 지역주의 타파도, 분권·균형발전도,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도 내 몫이라고 선언했다. 실제 대한민국은 공유경제, 페미니즘, 워라밸 등 시민 주도 사회로 변하고 있다. 반면 ‘못 깨어난’ 시민들도 있다. 불법촬영 동영상을 유포하는 시민, 악플로 고통을 주는 시민, 개혁입법을 가로막는 국회의원 시민. 한 방향은 아니지만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시선을 서서히 거두며 시민인 나를 주목하고 있다. ‘노무현정신’을 신화에서 꺼내 역사로 옮겨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신화라는 강력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정치권은 지속적으로 정쟁을 시도할 테고 그리되면 사회는 퇴행할 수 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의 부재를 아파하는 시민들은 아직 ‘새로운 노무현’과 만날 준비가 안됐다고 고개 젓는다. 하지만 운명의 주인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노무현’ 곁에 시민으로 서게 될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축적된 패러다임이 아닌 혁명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 토머스 쿤의 말은 단순히 과학혁명에만 해당되지 않을 테니.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