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지키는 일은 정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다. 국회와 공공기관, 지자체,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지난 28일 ‘장기미집행 공원 해소방안’에 관한 정부와 여당의 당정협의에서 나온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다. 내년 7월 전국 1987곳 338.1㎢의 도시공원 부지가 일시에 사라질 수 있는 ‘도시공원 일몰’ 시점을 앞두고 정부가 “공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지난해 4월 처음 나온 대책에 빠져 있던 국공유지 일몰 유예 등 추가 대책이 나온 것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정작 추가 대책을 기다려 온 지자체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형적인 책임 전가와 면피’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핵심적인 정부 역할은 잘 안 보이고, 지자체로 하여금 공원 조성을 유도한다는 식의 대책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강한 의지만 표명하면서 각론에선 ‘손 안 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사가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 대책을 보면 재정적으로는 당초 최대 50%를 지원하겠다던 지방채 발행 이자를 70%까지 늘려 지원하겠다는 게 전부다. 정부는 우선관리지역 부지 매입에 필요한 지방채 발행액을 2조4000억원으로 추산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5년 동안 많아야 600억원만 지자체에 추가 지원하면 된다. 반면 지자체는 지방채와 자체 예산 4조3000억원 등 최소 6조700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지자체가 공히 열악한 지방재정을 공원 장기미집행의 주된 이유로 꼽아온 점을 감안하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국공유지도 마찬가지다. 국공유지를 아예 일몰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정부는 일단 실효를 유예하며 폭탄을 뒤로 넘겼다.  

정부가 일부라도 국비 지원을 결정하고 국공유지를 일몰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면 도시공원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대부분 도로·철도 건설에 쓰이고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일부를 도시공원에 투자할 수도 있고, 10년, 20년간 장기 계획을 세우면 큰 부담 없이 조금씩 부지를 확보해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원 조성 성과를 평가지표에 반영하겠다며 지자체만 쥐어짜려 한다. 김 장관은 “추가 대책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정책과 지원방안을 고민해 소중한 공원을 지켜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도시공원을 ‘도시의 허파’라며 미세먼지 저감효과까지 홍보했다. 빠듯하지만 아직 1년여의 시간이 있다. 김 장관의 말처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정부의 노력을 기대한다.

<이종섭  |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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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에서 천정(天正) 시대, 그러니까 서기 1573~1592년 사이에 나가사키로 처음 들어왔다. 중개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었다. 그 조리 방법은 이렇다. 달걀, 설탕, 밀가루, 꿀, 맥아당(조청), 우유 등을 섞어 뻑뻑한 반죽을 만들어 나무틀에 붓는다. 틀은 일본에서 구하기 쉬운 삼나무 계통 목재를 쓰면 그만이다. 반죽은 오븐에 넣고 구워야 한다. 번듯한 유럽식 오븐을 당장 만들기 어렵다면? 쓰던 아궁이 또는 화덕을 손보아 대류열을 가둘 공간을 확보하면 그만이다. 대단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원리를 파악해, 내가 구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쓸모 있는 사물을 만들어 내는 솜씨 또는 그 결과를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한다. 브리콜라주로 조리의 한 고비를 넘기면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한 시간쯤 불 조절에 주의해 잘 구우면 맛난 과자가 완성된다.

눈치챈 독자도 있으리라. ‘카스테라(カステラ)’ 이야기다. 더 들어가 보자. 일본인은 자완무시(茶碗蒸し)를 익히 먹어왔다. 일식 달걀찜인 자완무시는 설탕과 다디단 요리술을 섬세하게 써 특유의 질감과 풍미를 구현한다. 남중국, 동남아시아, 유구(오키나와)와 이어진 무역 덕분에 쓰자고 하면 일본인에게 설탕이 없지 않았다. 이윽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정제당의 시대를 열자 일본인은 정제당에도 금세 적응했다. 이때 비정제당 경험은 유용한 참고서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다. 자완무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카스테라에 또 다른 상상력을 빌려주었다. 자완무시의 맛과 조리의 설계에서 연역하면 이렇다. 카스테라란 밀가루 전분의 호화(糊化)가 낀 데다 설탕과 우유에서 비롯한 독특한 질감과 풍미까지 기대되는 새로운 자완무시이다. 대류열에 굽는다지만 반유동 상태의 반죽이 머금은 물기는 찌는 효과도 낸다. 틀에 쓴 나무는 물기를 붙들어주는 소재이다.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 입맛의 기호와 공동체의 선택이 그다음 진화의 동력이 되었다.

맥아당, 꿀, 설탕을 섬세하게 매만진 끝에 구현한 쨍하면서 깊은 단맛, 우유와 벌꿀이 배가한 풍미, 찜의 여운이 있는 스펀지의 물성 등은 이베리아 ‘카스텔라(castela)’와는 다른 ‘카스테라’의 속성이고 개성이다. 16세기 이베리아(포르투갈-스페인)의 카스텔라를 시조라고 한다면 일본의 카스테라는 시조와 나란히 설 만한 중시조다. 일본 제과인들은 이베리아에서 유래해, 일본 제과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꽃피어, 오늘날 동아시아 사람이 공유하는 카스테라를 일본 과자로 여긴다. 먹는 분야에서 ‘힙스터’를 자처하는 유럽 사람들에게도 카스테라는 일본 과자로 보인다. 일본풍 찻상과 함께라면 더하다. 카스테라는 메이지 시대 이후에 꽃핀 구미풍의 양과자(洋菓子)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 과자, 곧 화과자(和菓子) 동아리에 들어간다.

1718년에는 본격 제과서인 <어전과자비전초>가 등장한다. 여기에도 이베리아발 과자의 원리와 본질에 파고든 흔적이 역력하다. 달걀을 예민하게 대하고, 달걀 거품을 잘 쓰고, 대량의 설탕을 적절히 통제하는 데서 이베리아 및 유럽 제과의 특색을 발견한다. 낯선 재료인 밀가루와 낯선 기술인 제빵 또한 일본식으로 소화한다. 가령 술이나 술지게미를 써 반죽을 부풀린다는 제안도 흥미롭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옥수수술빵의 원리다. 상상력과 시도는 메이지 시대로 이어졌다. 문호 개방과 함께 폭발한 서양 제빵제과의 이입은 두 번째 도전과 도약의 계기였다. 

눈 돌려 오늘 내 나라를 바라본다. 슈니발렌, 벌집아이스크림, 대만카스테라, 뚱카롱, 흑당 음료 등등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유행이 명멸한다. 무엇이 의미 있는 시도이고 무엇은 유산되지 못할 우발적인 등퇴장인가? 무엇이 한국적 재해석이고 무엇은 열화복제인가? 열화복제라도 쌓기만 하면 유산이 될까? 아니 쌓은 게 있긴 한가? 운산조차 벅차다. 유행의 현황에 관한 중계보다, ‘뚱카롱은 한과다’와 같은 명제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관찰자의 착잡함부터 굳이 남긴다. 이 착잡함이 나와 내 동포에게 유산이 될 수 있을지조차 회의하면서.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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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건강에 아주 좋다. 토마토의 여러 좋은 성분 중 라이코펜이라는 식물의 이차대사산물은 아스타잔틴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천연 항산화제이다. 이차대사산물은 어떤 생물체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필수적인 대사산물은 아니지만 성장이나 외부 유해균으로부터의 보호, 향을 내어 곤충 유혹, 그리고 다른 식물과 상호작용 등의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식물이 만드는 수많은 이차대사산물 중에는 라이코펜, 아스타잔틴과 같이 좋은 효과가 있는 것들이 많다 보니 이들을 함유한 건강보조제들이 많이 시판되고 있다. 단순히 건강보조용이 아니라 실제 치료용 의약품들도 식물 유래의 이차대사산물들과 그들의 유도체인 경우가 많이 있다. 해열제와 진통제로 널리 사용되는 아스피린의 화학명은 아세틸 살리실산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해열제로 사용되었던 버드나무 껍질에 들어 있는 살리실산으로부터 유도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바닐라 향과 같은 식품첨가제로 쓰이는 이차대사산물들도 있다. 이렇게 유용하고 다양한 이차대사산물들은 식물을 재배하거나 식물세포의 배양으로만 생산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대사공학을 통해 식물들이 생산하는 천연물들을 미생물이 생산하도록 만들고 이렇게 개발된 미생물의 발효로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미생물에 의한 생산의 경우 식물과 같이 기후변화와 날씨, 토양의 질과 재배 인력 등에 의존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품질의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몇 가지 예를 보자. 포도 껍질에 많이 있는 폴리페놀계 물질인 레스베라트롤은 항암, 항염, 항노화, 심지어는 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드시지는 않아야겠다. 프렌치 패러독스는 적포도주를 많이 마시면 레스베라트롤을 많이 섭취하게 되어 오래 살게 될 것 같지만, 효과를 보기 위해 많은 양의 와인을 마시면 오히려 더 독이 된다. 따라서 생명공학자들은 효모를 대사공학적으로 개량해 레스베라트롤을 발효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병원에서 매우 중요한 진통제로 쓰이는 모르핀은 양귀비로부터 획득한다. 양귀비의 덜 익은 꼬투리를 긁어 상처 내서 채취한 유액을 말려 얻는 아편의 여러 알칼로이드 성분 중 하나가 모르핀이다. 2015년 캘리포니아공대의 크리스티나 스몰키 교수는 양귀비, 박테리아, 심지어는 쥐로부터 적절한 유전자들을 조합해 효모를 대사공학적으로 개량함으로써 모르핀 전구체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까지는 생산 농도가 아주 낮지만 효모의 추가 대사공학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양귀비 경작을 하지 않고도 모르핀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자 안세이아라는 회사를 창업해 기술을 개발 중이다. 모르핀을 화학적으로 조금만 변형하면, 정확히 말하자면 모르핀에 있는 두 개의 수산기를 메톡시기로 치환하면, 소위 마약의 최고봉이라는 헤로인이 된다. 평소 잘 알고 있는 스몰키 교수이기에 이러한 마약 남용을 포함한 안전문제에 대해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연방수사국(FBI)에서 매우 심각하게 감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5년 중국의 투유유 박사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아티미시닌은 말라리아 치료제인데 개똥쑥 등의 식물에서 아주 미량 만들어진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제이 키슬링 교수는 10여년에 걸친 대사공학 연구 끝에 효모를 이용해 아티미시닌의 전구체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제약사를 통해 상용화했다. 또한 키슬링 교수는 홉의 맛을 내는 이차대사산물을 효모가 만들게끔 하여 홉을 넣지 않고 맥주 발효를 해도 홉을 넣어 발효한 맥주와 유사한 맛을 내는 맥주 생산 기술도 개발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대마초가 합법화되는 것에 맞추어 대마의 성분 중 하나인 테트라 하이드로 카나비놀과 유도체들도 효모의 대사공학에 의해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식물의 이차대사산물들을 미생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필자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아스타잔틴을 생산하는 대장균을 예로 들어 보자. 우선 대장균은 아스타잔틴뿐 아니라 아스타잔틴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여러 효소들이 모두 없기 때문에, 이들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들을 도입해 생산이 가능하도록 대사회로를 먼저 설계했다.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5개의 유전자를 가져오고 미세조류로부터 유전자를 가져왔다. 이렇게 해서 아스타잔틴이 합성될 수 있도록 대장균 내에 대사회로를 구축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생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정교하게 대사의 흐름을 조절해 줘야 한다. 복잡한 대사공학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대장균은 발효를 통해 1ℓ당 432㎎의 아스타잔틴을 생산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논문에 발표했듯이 포도향을 생산하는 대장균과 코리네균도 개발했다. 포도의 향으로 쓰이는 메틸 안스라닐레이트는 식품, 화장품, 의약품에 첨가제로 쓰이는데 이제까지는 모두 화학적으로 합성된 것을 사용했다. 대장균과 코리네균의 방향족 아미노산 대사경로를 체계적으로 조작하고 그 후 식물 유래의 마지막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도입하고 전체 대사회로를 최적화함으로써 발효에 의해 메틸 안스라닐레이트를 1ℓ당 5g 이상 생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식품이나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물질들의 경우 화학적으로 합성된 것보다 이렇게 발효생산된 화합물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들 제품이 보다 고가에 판매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기능성 천연물질들은 식품, 건강,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그 수요가 급속히 늘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인구는 77억명을 넘어 100억명을 향해 계속 증가 중이다. 또한 급격한 고령화가 이루어지면서 건강 유지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기능성 천연물들은 우리가 건강하고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생물 대사공학에 의한 기능성 천연물들의 생산은 이렇게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우리 몸에 안전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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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파 가사에 길옥윤 작곡의 ‘순례자’라는 찬불가가 있다. 찬송가가 아니라 찬불가. 가깝게 지내는 운문사 승가대의 학장 진광 스님이 처음 이 노랠 가르쳐주었다. 그때 후배 여가수도 옆에서 따라 배워 불렀는데, 녹음실에서 녹음까지 해둔 기억. 내가 배운 첫번째이자 현재까진 마지막 찬불가. “당신은 꿈 찾는 방랑자. 마음의 길 가는 나그네. 인생도 사랑도 끝이 없는 길. 멀고 먼 고행길. 꿈꾸는 바다에 별 뜨면 불타는 사막도 잠들고 외로운 순례자, 거친 산길에 단풍이 깊어가네. 외로운 들판에 무명초. 잊혀진 하늘가 뜬 구름.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내 너를 사랑하리. 내 너를 사랑하리.”

뒷산에 놀러갔다가 어제 내린 장대비로 퉁퉁 분 개울물이 급히 달음질쳐 내려가는 소리. 찢기고 떨어진 어린 잎새들이 흘러가는 풍경.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시절이다. 올해도 몇 분들의 도움으로 순례를 떠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잠깐의 시간여행. 광복군의 수장 안중근의 도시를 거쳐 저항 가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노래하던 ‘야생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아랫녘에서 잊고 사는 도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올리면 가슴 저 끝, 시리고 아려온다. 오래전에 그 도시에서 출발하여 멀리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해봤다. 평생 잊지 못할 여행 가운데 한 장면. 남북이 철도를 잇는다는 소식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노랗게 단풍이 든 자작나무숲을 지나 눈 내리는 시베리아를 달리기도 했었다.

여당 건배사는 ‘위하여’고 야당 건배사는 ‘위하야’라고 한다. 여야가 힘을 합해도 될까 말까 한 대륙 연결, 유럽 연결이라는 평화와 번영의 일대 전진. 우리 동네에 영어가 쪼매 가능한 사람들만 하는 건배사가 있다. ‘무시로’ 삼행시. 무조건, 시방부터, 로맨틱한 사랑으로! 로맨틱해야 한다. 이름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매우 로맨틱하다. 강릉을 출발해 원산, 함흥, 나진을 거쳐 달리던 기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숨을 고른다. 순례자들이 기차역에 가득한 시골 도시.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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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형태의 의복이나 장신구, 장식 등 상징물은 이를 공유하는 집단에 자부심, 단합과 동료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배타성으로 인해 반감을 키우고 나중엔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종교적인 상징물 가운데 머리에 두르는 두건이나 모자만큼 눈에 잘 보이는 것도 드물다.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히잡이 대표적이다. 히잡은 머리 등 신체 일부를 가리지만, 부르카나 니캅과 같이 신체의 대부분을 감싸는 것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정교분리 원칙을 말하는 ‘라이시테’에 근거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인정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종교적 행위를 철저히 막는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학교에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함에 따라 히잡 착용이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여성 차별의 상징 vs 문화적 차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증가하는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독일에서는 유대인들의 전통모자인 키파 착용을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27일 독일정부 산하 반유대주의 대응 책임자는 ‘알 쿠즈의 날’에 키파 착용 금지를 발표했다. 유대인 혐오 범죄의 발생을 우려해 국민을 상대로 착용 금지를 요청한 것이다. 물론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항복’이라고 반발했다. ‘알 쿠즈의 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지배를 반대하는 연례 시위를 갖는 날이다.

그런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반유대주의 대응 책임자와 정반대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키파를 쓰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반유대주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독일 최대일간지 ‘빌트’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신문 1면에 키파 그림을 넣고 사용법도 게재했다. 그리고 “다윗의 별을 달고, 반유대주의 깃발을 들고, 자신들의 키파를 만들어 유대 이웃들과 연대하자”고 촉구했다. 

세상을 보는 기준은 하나일 수 없다. 그런데 인종주의와 차별, 혐오로 범벅된 편견을 자유와 진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이 빈발한다. 인종과 종교, 이념을 넘어서는 다원주의를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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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국가조사위원회의 독립전문가패널(IEP)이 SK건설이 짓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에서 지난해 7월 발생한 붕괴사고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볼 수 없다”고 잠정 결론지었다. IEP는 국제 댐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 조사기구로, 한국도 전문가 3명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했다. 사고원인에 대한 최종 결론은 라오스정부와 SK건설 간 협의를 거쳐 확정되겠지만, IEP 발표만 보면 댐 붕괴는 국내기업의 잘못에 따른 ‘인재’인 것이다. 

IEP는 “보조댐에 미세한 물길들이 존재하면서 누수로 인한 내부 침식이 있었고, 기초 지반이 약화된 것이 붕괴의 근본 원인”이라며 “댐에 물을 채우는 과정에 이 같은 현상이 최상부에서도 일어나 댐이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또 “사고 전 며칠간 집중호우가 쏟아졌지만 붕괴가 시작됐을 때 댐 수위가 최고 가동 수위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댐 붕괴는 집중호우 때문이 아니라 잘못 지은 탓이라는 것이다. 

SK건설은 “IEP의 결론은 사고 전후 정밀지반조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등 과학적, 공학적 근거가 결여됐다”며 국가조사위에 재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조사를 통해 SK건설이 댐 붕괴의 직접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래야 국내 건설사들이 입을 국제적 신뢰 하락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SK건설이 댐 붕괴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댐은 붕괴됐고, 70여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6000여명의 피해 주민 중 상당수는 지금도 수용소 같은 임시 거처에서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댐 건설에 따른 환경과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고원인이 어떻든 한국은 재건, 복구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이윤보다 우선시돼야 하고, 기업이 빈곤·고용·환경 등의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SK는 지금까지 2500만달러 규모의 구호 지원 활동을 펼쳤다. 정부도 앞으로 5년간 1200만달러 규모의 원조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와 SK건설은 댐 원상 복구는 물론 참사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이들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재난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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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한 2013년 검경 수사가 총체적 부실·봐주기 수사였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 전직 검찰 관계자들을 윤씨 비호세력으로 지목하고 이른바 ‘윤중천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과거사위는 29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의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과거 검찰 수사는 수사의 ABC도 지키지 않은 엉터리였다. 김 전 차관과 윤씨에 대해선 계좌추적도 압수수색도 하지 않은 반면, 피해 여성들과 관련해선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해 e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고 방대한 참고인을 소환조사했다. 과거사위 자료의 표현대로 “이율배반적 적극성”을 보인 셈이다. 과거사위는 부실수사의 원인으로 ‘박근혜 청와대’를 지목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앞서 과거사위는 지난 3월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토록 권고한 바 있다.

김용민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이 29일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사건 심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과거사위 발표 중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전직 검찰총장의 이름이 포함된 ‘윤중천 리스트’다. 윤씨가 원주 별장을 중심으로 다수의 검찰 간부들과 교류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제 식구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고 윤씨를 봐주기한 것”이라고 봤다. 한 전 총장 등 거명된 인사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고위간부들이 ‘스폰서’를 위해 사건을 부당 처리했다는 의혹은 가벼이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윤씨의 범죄 행각으로 많은 여성들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범행의 파렴치성을 고려할 때 더욱 엄정한 수사가 절실하다.

검찰은 지난 3월 과거사위 중간발표 이후 수사단을 구성해 결국 김 전 차관을 구속했다. ‘별장 성범죄 동영상’이 공개된 지 6년 만이다. 검찰이 이런 성과를 올렸는데도 시민은 여전히 ‘셀프 수사’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제 최종 결과가 나온 만큼, 배전의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비리를 은폐하고 범죄자를 비호한 세력이 있다면 전·현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수사해야 한다. 김학의·윤중천의 뒷배를 밝히는 게 사건의 본질임을 잊어선 안된다. 이번에도 과거의 치부와 단절하지 못한다면 검찰 조직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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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유치·건설하는 과정에 해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경찰청에 재발 방지 및 인권 보호 개선책 마련을 권고했다. 정부에도 물리력을 동원해 기지 건설을 강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했다. 늦게나마 국가의 부적절한 국책사업 시행과 인권침해를 확인, 개선책을 촉구한 것은 다행이다.

이번 조사로 강정 기지 건설은 총체적으로 잘못됐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07년 4월 강정마을회 회장은 총회 소집공고도 하지 않고, 의제도 무단 변경해 기지 건설 안건을 상정했다. 그 결과 마을 주민 1900여명 중 87명만 참여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렸고, 국방부와 제주도는 사전에 계획한 대로 사업 공식화를 결정했다. 주민들이 사후 주민투표를 통해 기지 건설 반대를 결의했지만 당국은 묵살했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할 때는 그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는 이런 과정이 전무했다. 심지어 주민투표 당일 해군은 주민 100명을 차에 태워 관광을 시켰고, 경찰은 일부 주민의 투표함 탈취를 방조했다. 주민자치의 전통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결정한 것도 모자라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반대 주민의 의사 표시까지 억압했다. 신고된 집회 방해와 강제연행은 일상이었고, 과잉 진압과 진입 봉쇄도 자행됐다. 반대 측 주민을 고의로 폭행하는 등 인권침해도 예사로 벌어졌다. 국군기무사와 국가정보원은 뒤에서 경찰의 강경 대응을 조장했다. 2011~2013년 경찰청과 청와대, 국군사이버사령부가 해군기지 관련 인터넷 댓글 등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 결과 평화로운 마을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됐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는 말 이외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문제는 해군기지가 건설된 후에도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와 법적 조치 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법원의 조정에 의해 주민들에게 청구된 구상권이 취소된 것 이외에 이번 조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사실상 정부가 한 일은 없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국가 차원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부적절한 사업 추진과 인권 탄압에 대해 마을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제주도와 함께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공공사업 추진 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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