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는 소설 <단식 광대>에서 한때 유행했던 단식 공연에 대해 묘사한다. 대중이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갔기에 굶주린 광대의 공연을 더 이상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굶주림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북한에 스위스 정부가 최근 500만달러(약 59억원)를 지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중 가장 큰 규모다. 한국이 갈팡질팡할 때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인도적 지원의 원칙을 지키면서 묵묵히 북한을 지원해왔다.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이 2006년부터 중단 없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정치와 무관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정세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이슈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또 북한 주민을 돕는 데 북한 당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린이, 임산부, 노인, 장애인 등 실질적 수혜자인 취약계층을 중점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사업 목표를 선정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수치를 근간으로 하며, 국제기구와 함께 북한 내 수요와 우선순위를 분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퍼주기 논란’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그동안 사업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EU는 평양에 사무소를 둔 자국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식량, 영양, 보건, 식수 분야의 국제개발 전문가들이 사업을 진행해 왔다. 정기적이고 전문적인 모니터링과 평가를 통해 사업의 질을 높여 왔기에 효과는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세번 째로, 금세기 가장 어려운 제재 상황에서도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칙을 지키며 인도적 지원을 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제재 예외를 유엔 제재위원회에 요청하기 위해서는 제반 시스템과 행정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국이 역량이 없어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지 못한다고는 볼 수 없다. 오랫동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하면서 전문성을 구축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북한에 식량 위기가 왔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기아 위험 경고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유엔에서도 ‘잊혀진 위기 국가(Forgotten Crisis Country)’로 북한을 선정했을 정도다. 컨선월드와이드와 세계기아원조가 작년 10월 발표한 ‘2018년 세계기아지수’에서 북한의 기아 위험 수준은 11위였다. 특히 5세 미만 아동의 약 40%가 만성 영양실조의 지표인 ‘발육 부진’에 해당했다. 나이지리아(17위)와 모잠비크(18위)보다 심각했다. 기아가 서서히 북한을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이달 초 북한 식량 생산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가뭄 탓에 극심한 보릿고개를 마주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외신은 북한의 일일 배급량이 570g에서 300g으로 줄었다고 알렸다. 주민들이 300g짜리 햇반 한 개를 긴 하루에 나누어 먹고 있는 셈이다. 

모든 데이터와 수치가 최악의 식량사정과 영양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북한의 식량 상황이 정말 나쁜지, 지원해야 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TV나 동영상에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되어버린 ‘먹방’은 이제 영어로도 ‘Mukbang’이라고 할 정도이니, 한국 사회에서 굶주림은 가장 재미없는 콘텐츠일 게다. 동시대, 같은 시간에 굶주린 배를 움켜 잡고 바닥을 기며 스스로 소멸되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에게 줄 관심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여론에 기대어 결정하려고 한다.

인도주의는 북한이라는 이슈를 넘어 인류의 공존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새겨야 할 가치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굶주림에 쓰러져 있는 북한에 몇 년째 도와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유럽과 국제사회는 묵묵히 북한을 돕고 있다. 당신이라면 누구의 손을 잡겠는가. 한국의 인도적 지원은 이미 늦었다. 더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준모 컨선월드와이드 한국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진만과 정용이 입주해 있는 원룸 건물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살고 있고, 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거주하고 있고, 초등학생 남매를 둔 일가족도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들은 환갑을 훌쩍 넘긴 독거노인들이었다. 

매일 빈 유모차를 밀고 나오는 할머니가 있었고, 복도에 퉤퉤, 아무렇지 않게 가래침을 뱉는 할아버지도 많았다. 여름밤, 늦게 퇴근해서 돌아오다 보면 비슷비슷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원룸 중앙 현관 앞 계단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말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새벽 네 시 삼십 분 무렵 불이 켜지는 방은 여지없이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방이었다. 

진만은 원룸 건물에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지냈다. 올해 일흔네 살이 된 황화수 할아버지였는데, 늘 알록달록한 추리닝을 입고 다녔다. 숱이 많은 흰 눈썹과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반들반들한 이마와 정수리, 거기에 항상 끼고 있는 흰 목장갑까지. 진만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부모 속 꽤나 썩였겠구나, 생각한 적은 있었다. 진만은 황화수 할아버지와 원룸 문고리를 고치다가 알게 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과 정용이 사는 원룸은 그 흔한 도어록 잠금장치 없이 열쇠로 문을 잠그고 여는 구조였는데, 어느 날 문고리 안에 들어간 열쇠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그리 힘을 준 것도 아니고, 맞지 않는 열쇠를 억지로 밀어 넣은 것도 아닌데, 마치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듯 툭 그렇게 되어 버렸다. 진만은 난감한 심정이 되어 멀거니 문고리를 내려다보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정용에게 갔다 올까, 하지만 그것도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았다. 부러진 열쇠가 문고리 안에 있으니…. 진만은 원룸 건물 밖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워와 툭툭 그것으로 문고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예 문고리를 다 떼어내고 교체하는 게 빠를 거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문고리를 내리치고 있을 때, 문제의 황화수 할아버지가 복도에 나타났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가만히 진만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곤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전동드릴을 들고 다시 진만 앞에 나타났다.

“교체할 거지?”

황화수 할아버지는 전동드릴의 스크루를 갈아 끼우면서 물었다. 진만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만 원이야. 문고리값은 별도고.”

그날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황화수 할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생활비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었다. 원룸 건물뿐만 아니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문짝을 고쳐주거나 부러진 식탁 다리를 다시 이어주거나 망가진 센서 등을 손봐주는 일을 했다. 언제나 일의 착수가 먼저였고, 돈은 그 후에 받았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일흔넷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팔뚝 위엔 힘줄이 선명했다.

하지만 황화수 할아버지의 진짜 정체는 다른 데 있었다. 진만은 그것을 불과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원룸 건물로 들어서는 진만을 황화수 할아버지가 불러 세웠다.

“자네, 지금 바쁜가?”

황화수 할아버지는 전동드릴을 들고 나타났을 때와는 다르게 어쩐지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바쁘지 않으면 이번엔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했다. 진만은 잠시 망설였다. 바쁘진 않았지만 몸이 피곤했다. 하지만 또 같은 원룸 건물에 살면서 계속 얼굴을 맞부딪혀야 하는 사이인데…. 진만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진만은 황화수 할아버지를 따라 302호로 갔다. 그곳이 황화수 할아버지가 혼자 사는 방이었다.

“이건 자네만 알고 있게.”

황화수 할아버지는 현관에 길게 드리워진 암막 커튼을 걷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막 커튼을 걷자 드러난 황화수 할아버지의 방 한가운데엔 원목 탁자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작은 마이크와 조명 장치까지.

“사실 나 유튜버야. 크리에이터지.”

황화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옷장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이내 스님들이나 입는 장삼으로 갈아입었다. 

‘화수 거사의 정국진단’

그것이 황화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이라고 했다. 장삼으로 갈아입은 황화수 할아버지는 원목 탁자 뒤 의자에 앉았다. 탁자 옆에는 낡은 소형 오디오가 한 대 있었는데, 전원을 넣자 ‘반야심경’이 낮게 흘러나왔다.

그날, 진만은 황화수 할아버지가 방송을 하는 내내 전선으로만 이어진 백열등을 들고 스마트폰 바로 뒤에 서 있어야만 했다. 오늘 내로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조명 장치가 갑자기 말썽을 부려 급하게 부탁을 한 것이라고 했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진만에게 자신의 흰 목장갑을 벗어주었다.

황화수 할아버지는, 아니 화수 거사는 방송 내내 이런 식의 말을 했다.

“오월은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달이지요.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고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은 법인데, 그런데도 오월은 항상 같은 고통을 우리 중생에게 안겨주는 달이기도 합니다. 바로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는 달이지요. 이곳저곳에서 우리 중생들이 세금 폭탄을 맞고 신음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입니까! 이게 다!”

화수 거사는 계속 원목 탁자를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면서 말했다. 그 때문에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은 ‘반야심경’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화수 거사는 한 시간 가까이 계속 그렇게 화를 내다가 마지막 멘트를 했다.

“우주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도 관계를 떠나선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중생들이여, 좋아요와 구독은 필수라는 거, 그거 잊지 마시길 바라옵나이다. 나무관세음보살.”

화수 거사는 스마트폰을 보며 합장을 했다. 진만은 백열등을 든 채 슬쩍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화수 거사의 정국진단’의 이전 방송 조회수는 ‘22’였다. 진만은 화수 거사가, 아니 황화수 할아버지가 어서 정신을 차리길, 마음속으로 슬쩍 바라보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날씨가 심상찮다. 더위도 안 타고 자연에 순응하자 주의라 평생 에어컨 없이 살았는데 작년엔 쪄죽을 것 같은 공포심에 한 대 들여놓고야 말았다. 올해는 5월 초부터 햇살이 예사롭지 않더니 첫 폭염주의보가 5월15일 광주에서 울렸다.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지난해에도 폭염주의보는 7월15일에 발령되었건만 올해는 두 달이나 빨라졌다. 그새 광주에는 두 번째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등도 섭씨 40도에 육박하여 역대 5월 기온의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26일 일본 홋카이도 사로마에서도 기온이 39.5도까지 올라 역대 5월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미 국립기상청(NWS)을 포함, 국내외 과학자들도 올해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록이 한번 깨지면 우연이지만 매번 깨지면 변화가 된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대기에 계속 쌓이면서 이런 기상이변은 계속될 텐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지난 11일 1958년 관측 이후 처음으로 415ppm을 돌파하며 인류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했다. CNN에 따르면 심지어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진화한 80만년 만에 가장 높은 CO2 농도란다. 이런 빅뉴스가 우리나라에서는 해외토픽처럼 스쳐지나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최근 3년간 이산화탄소 농도가 되레 증가했다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세계 196개국이 2015년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자고 협약까지 했는데 말이다.  

폭염을 앞두고 정부에서는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전 통계에 따르면 작년 1인당 전기 소모량은 역대 최고기록을 세워 2000년과 비교해 무려 2배나 썼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보다 많이 썼고, 가격이 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싼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 문제가 그 심각성에 비해 왜 해결에 진전이 없는지 쉽고도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소위 기든스 패러독스라고 일컬어지는데, 지구온난화의 위험은 직접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할 수 없기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우리 대부분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다. 심리학 실험실에서 말하는 마시멜로 효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보통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더 큰 보상보다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작은 보상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성된 시민의 자발성에만 기대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에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문제가 국내적이건 국제적이건 간에 언제나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만 실질적인 대책이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정책과 제도와 그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사회적 여론 조성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책장을 덮으며 밖을 본다. 유럽에서는 녹색당이 약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떨까. 더운 날씨,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SNS를 타고 플라스틱 대신 텀블러를 쓰겠다는 약속이 넘치고 있는데 실제로는 보기 어렵다. 작년 8월부터 커피숍에서 일회용기를 쓰지 못하도록 했지만 유리찻잔이 손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소비자가 원하니까 강제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은 만들었지만 단속을 안 하기에 장식용 법처럼 보인다. 플라스틱 사용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썼던 언론사 1층 커피숍에도 여전히 일회용만 출렁인다. 법을 만든 국회에서도 행사가 열리면 일회용품을 당연히 쓴다. 기후변화 같은 주제는 의제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명사’의 세계에 살고 있다. 환경문제 해결은 ‘동사’로만 가능한데 말이다. 시민환경단체가 건널목이 되고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지 쌓인 환경·생태 공약  (0) 2019.06.14
‘미세먼지 공론화’ 모두의 참여로  (0) 2019.06.07
말뿐인 ‘1회용품 줄이기’  (0) 2019.05.31
핵폐기물 재검토위  (0) 2019.05.24
디젤엔진을 줄여라  (0) 2019.05.17
소비문화와 이별하자  (0) 2019.05.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맘때 텃밭은 참 이쁘다. 저마다의 모양, 색깔로 자라나는 것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다. 상추와 치커리, 겨자 같은 갖가지 쌈채소들은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쌈을 싸든 샐러드를 만들든 맛나다. 건강한 맛은 덤이다. 눈곱만 한 씨앗의 열무는 어느새 열무김치를 담글 만하고, 당근도 바질도 한 뼘 크기로 자리 잡았다. 완두콩과 감자도 영글어간다. 겨울을 이겨낸 부추는 잘라 먹어도 또 자라 이웃과 나눈다.

작물들이 잘 자라고, 싱싱한 먹거리가 많아지고, 마트에서 산 쌈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맛나다고만 해서 텃밭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흙과 햇빛과 바람과 물로 씩씩하게 자라나는 그 생명의 신비로움이 아름다움의 고갱이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오감을 자극하고, 오감의 부활은 삶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땀 흘린 만큼 거둔다’ ‘땅이 스승’이라는 평범한 말에 담긴 수백가지의 뜻을 새삼 깨우친다. 씨앗을 뿌린 나 스스로가 기껍다. 그래서 텃밭은 더 이쁘다.

이맘때 땅은 농부의 손길 속에 생명의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남녘 곳곳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다. 이미 제주도의 양배추를 시작으로 해남의 겨울배추, 무안의 양파를 비롯해 대파·주키니호박 같은 농작물들이 밭에서 갈아엎어지고 있다. 월동 농사가 잘됐다고 기뻐해야 마땅한데 값이 폭락, 자식처럼 애써 키운 농작물을 농부들은 땅에 묻어버린다. 그 농부의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산지폐기, 시장격리라는 이름 아래 폐기된 농작물이 벌써 수만t이다. 해마다 반복된다. 잔인한 일이다. 정부의 제대로 된 농정정책이 없어서다.

산지폐기 소식을 듣는 이맘때면 그가 생각난다. 누구보다 땀 흘려 일하지만 먹고살기 팍팍한 도시의 소외된 약자들을 만날 때도, 공동체 파괴로 각자도생하며 배려와 나눔이 없는 한국 사회의 일면을 볼 때도, 생태환경 파괴에 따른 공포스러운 현상이 나타날 때도 그가 떠오른다.

무위당(无爲堂) 장일순(1928~1994). 무위당은 생명의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생태환경 속에서 사람과 만물이 공존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한 밥상을 맞으며 서로 연대해 함께 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꿈꿨다. 그리고 이 땅과 어울리는 생명·생태사상을 정립하고 그 위에서 몸소 실천했다.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공동체 정신에 기반한 지역민의 자립을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설립, 협동(조합)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 사람 모두를 위한 농산물 직거래인 한살림 운동도 펼쳤다.

협동조합운동·생명운동의 선구자만이 아니다. 1970년대엔 민주화운동의 한 구심점이었다. 지학순 주교와 더불어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민주주의를 꿈꾸는 각계각층 사람들이 원주에 모여들었다. ‘70년대는 원주, 80년대는 광주’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또 ‘나락 한 알 속에서 우주를 본’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되새김질할수록 깊은 뜻이 우러나는 서화작품을 남긴 예술가이기도 하다. ‘좁쌀 한 알’이라는 ‘일속자(一粟子)’란 호에서 보듯 자신을 한없이 낮춰 세상 모든 사람, 만물을 하느님으로 섬긴 수도자였다. 이 시대에 그리운 큰 어른이자 스승이 무위당이다. 지난 22일은 무위당의 25주기였다. 3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추모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도 생겼다. 무위당의 삶과 사상을 담은 <장일순 평전>(두레)이 마침내 출간된 것이다. 그동안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좁쌀 한 알, 장일순>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등의 책은 있었으나 평전은 처음이다.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이란 부제의 평전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무위당사람들’의 감수로 펴냈다. 무위당사람들은 무위당의 유지를 이어 공동체적 삶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현재 전국 12개 무위당학교와 연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삼웅 전 관장은 “무위당은 지금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선다. 왜일까?”라며 “지식인으로서 정직함, 불의에 맞선 장렬함,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과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기 때문일 것”이라고 후기를 남겼다. 무위당과 인연 깊은 목판화가 이철수는 “무위당을 잘 모르던 이들은 <장일순 평전>으로 무위당의 삶과 사상의 집에 초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지속 가능한 문명,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뭇 생명들이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상생과 공존, 공동체적 삶에 관심이 있는가? 그렇다면 시대를 앞섰던 무위당의 사상과 삶을 살펴볼 만하다. 무위당의 지혜가 담긴 이 평전이 더 널리 온누리에 퍼지기를 기대한다.

<도재기 문화에디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 사람의 내면은 치열한 싸움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 싸움은 어딘가를 엄숙하게 향하기도 하죠.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고상돈이나 모두가 꺼리던 소록도를 향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싸움이 그랬습니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반대하기 위한 싸움도 합니다. 하얼빈 역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안중근의 손길, 1987년 종로 한 골목길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소녀의 눈물, 뻔히 질 것을 알며 부산으로 내려가던 한 정치인의 발길에는 아무 말 없어도 그 사람의 진심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죠.

황교안도 진심을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5월1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 정치적 입장에서도 동성애는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며 교육을 통해 동성애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죠. 정체성 이슈인 동성애를 선택의 문제로 본 그릇된 시각보다 그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반대, 그의 싸움이 어디 있는가. 바로 성경입니다.

2017년 한 기독교 강연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죠. 황교안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50년 동안 주일 예배를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독실한 기독교 전도사입니다. 검사 시절에도 부임하는 곳마다 예배 모임을 만들어 ‘검찰 복음화’를 외쳤죠. 가난하고 공부도 못했던 자기가 관직에 오른 것도, 총리 시절 가뭄을 극복한 것도, 법안 통과도 예수 덕이라며 자기 믿음을 자랑했다죠. 다른 종교를 어떻게 보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한 절을 찾은 황교안은 합장도, 예법에 따른 반배도, 의식 참여도 거부했죠. 내 신만 정당하고 그의 가르침 그대로, 온전히 따르며 세상과의 타협을 반대한다는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각을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하죠.

어떤 종교건 근본주의가 활개를 칠 때는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왕가처럼 권력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 데 쓰곤 하죠. 정부가 역할을 못하면 그 공백을 채우기도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그런 경우죠. 정책으로 승부가 안되니 종교를 동원해 표를 모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인도 모디 총리가 그랬고 미국의 공화당도 그랬습니다. 미국 공화당은 기독교 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낙태, 동성애 등 가치 이슈를 들고나와 보수 기독교 표를 쓸어 모았죠. 덕택에 공화당은 부자 배를 불리는 경제정책을 내면서도 가난한 다수의 표를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그럴수록 성서의 외침을 더 크게 틀어댔죠. 대립과 불신은 커갔습니다. 극단적 정파성은 최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깊어져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교활한 정치가 공화당 자기 발등마저 찍고 있습니다. 극우 정치에는 종교와 가치뿐 정책이 상관이 없죠. 그러다 보니 정책에 무지하고 목소리만 큰 사람이 활개를 칠 판을 깔아준 셈이 되었죠. 거기에 트럼프가 등장한 겁니다. 이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 공화당 주류를 다 삼켜버렸습니다. 하긴 공포정치와 전쟁도 벌어지는 마당에 이런 종교의 폐해는 얌전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문제는 심각합니다.

어떤 종교를 따르고 그 믿음이 근본주의적일지 아닐지 선택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교회가 아닌 공당의 대표라면 좀 생각해봐야겠죠. 황교안이, 자유한국당의 정책과 주장이 공익을 해치면서 자기 믿음만 따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대표직을 맡은 지 두세달 만에 근본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듯한 황교안의 행보가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것과 다른 정치세력을 무시하는 것. 자기 신만 신이라는 환상과 좌파독재를 물리쳐야 한다는 환상. 과연 무관한 것일까요?

그냥 정치적 레토릭일 뿐 그의 종교적 신념과 아무 상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주 고약한 길로 황교안은 향하고 있으니까요. 사상과 지역 갈등으로 찢긴 나라를 종교로 또 나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 일 없게 정화수 떠 놓고 간절히 기도라도 해야겠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한 미래의 관점에서 볼 때, 요즈음 대한민국은 참으로 무미건조하다. 이런저런 자극적 사건은 연일 터져 나오지만, 촛불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이어받는 미래를 향한 사회적 동력과 다양한 지적 담론 및 논쟁, 실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평화를 향한 남북관계의 진전이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새 남북관계도 ‘과거의 길’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호수가 고여서 서서히 부패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리 오래된 기억도 아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구호가 생겨날 정도로 대한민국은 여기저기에서 끓어오르는 에너지와 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K팝이나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쾌거 등으로 대표되는 아직도 다이내믹한 한류가 있지만, 사실 이 분야도 우리를 흥분시킬 만한 신선하고 창의적인 거대한 활력과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밤하늘 가득한 구름을 벗어난 그나마 몇 개의 별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먼저 인터넷과 디지털 벤처의 시대를 이끌었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화시키는 한류 창업가들이 있었다. 또한 지적으로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꿈꾸는 이상과 포부가 있었으며, 북방정책, 민주화, 선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 공동체 자유주의, 경제민주화, 동아시아 공동체, 동북아 균형자 등과 같은 시대정신과 국가 비전을 담은 굵직굵직한 담론들을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적 자극은 대한민국의 미래상으로 연결되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로 분출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향한 에너지가 사라지고, 정지해 버린 대한민국을 놓고 나라의 주인은 누구이며, 이 땅의 주류는 누구이며,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지금의 경제적 파이를 누가 더 많이 떼어가야 하는가의 진영싸움, 파벌싸움만 난무하고 있다. 우물 밖으로 나가던 우리의 시야는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오고, 그 우물 속에서도 덧셈의 정치와 덧셈의 경쟁이 아니라 뺄셈의 정치와 뺄셈의 경쟁을 하고 있다. 나와 다르면 틀리고 나쁘다는 단일한 기준이 생기면서 아예 다름을 표현하지 못하는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물론 청산해야 할 과거와 적폐가 존재하지만, 미래 지향성이 없는 청산이 오랜 일상이 되어가면서 사회가 움츠러들고, 지식인도 공적인 장에서 입을 닫기 시작하였다. 그 부작용이 자극적 뉴스와 분석이 난무하는 비공인 언론공간인 유튜브의 세계다. 공인된 열린 공간에서 행해져야 할 지식인들의 건설적인 토론과 담론을 자극과 인기에 의존한 유튜버의 예능언론이 대체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너무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상화된 적폐청산의 공포 분위기와 정의로움을 무오류와 전지전능으로 치환하려는 정치세력의 책임이 크다. 그 공포 분위기와 무오류의 정의로움은 미래와 다름을 토론하고 논쟁할 수 없는 닫힌 사회를 만들어 버린다. 

물론 닫힌 사회로의 흐름은 현 정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너무나 시끄러울 정도로 가장 열려 있었던 노무현 정부를 마지막으로 정의와 옳음과 의제를 독점한 권력들이 배제의 정치를 시작한 지는 꽤 되었다. 그 세력이 지금은 다시 적폐가 되었지만, 닫힌 사회를 다시 열라는 촛불의 요구를 지금의 진보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한편 현재 우리 사회를 열지 못하는 데에는 거대 야당의 책임 역시 크다. 이들도 미래의 적폐청산을 위하여 정치자본을 쌓아가고 있을 뿐 주권자 국민의 활기를 되살릴 상상력과 정책담론, 국가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카를 포퍼가 말했듯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열린 사회의 적들은 전체주의를 지향한다. 아무리 스스로 정의롭다 생각해도 그것이 무오류와 전지전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은 적폐청산과 함께 미래로 향하는 열린 민주주의 사회를 요구했다. 적폐를 청산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 무오류성을 인정한 것으로 동일시되면 안된다. 그걸 동일시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닫힌 사회의 친구들일 뿐이다. 민주세력은 닫힌 사회의 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을 놓고 노사 간 대립이 첨예화하고 있다. 노조는 31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을 승인하는 주주총회를 저지하기 위해 주주총회장을 점거하고 5일째 농성을 벌였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수천명은 농성장 안팎에서 연대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사측은 주총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노사 간 충돌 우려도 있다.  

현대중공업 법인 분할을 위한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30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과 영남지역 노동자들이 주총장인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에서 법인 분할 중단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건물 출입문을 막고 농성 중인 이들은 주총 당일에도 사측의 진입을 원천봉쇄하기로 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계획을 발표한 현대중공업은 합병 후 회사를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으로 물적분할하겠다며 31일 주총을 예고했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 이후 생산성 증대, 원가 절감 등을 위해 물적분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물적분할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협의한 사항이며 현대중공업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찬성했다며 관철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조 측 반대는 확고하다. 회사가 분리되면 부채를 사업회사인 신설 현대중공업이 떠안아 임금삭감과 함께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노조는 신설 사업회사로 단체협약이 승계되지 않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서울로 이전하면 지역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담화문을 통해 임금이나 복지 등의 단체협약 승계를 노조에 약속했으며 인위적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이 인수·합병 과정에서 추진하는 물적분할을 탓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사측이 노조의 우려를 불식시킬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2017년 현대중공업을 4개 회사로 분할할 때 내건 ‘근로조건 유지’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여전히 회사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 불신의 원인을 찾아 신뢰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물적분할에 대한 울산 지역사회의 반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노조 역시 사측에 대한 무조건 반대보다는 대화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노사 모두 파국을 자초하는 치킨게임은 중단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9일 열린 첫 정식 재판에서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등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공소장은 처음 봤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를 두고도 “모든 직무행위를 뒤져 뭔가 법에 어긋나는 게 없는지 찾기 위한 수사였다.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고 비난했다. 함께 피고인석에 선 박병대 전 대법관도 “수사기록을 보니 많은 법관이 겁박당한 듯이 보였다”고 했다.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에서 재판거래, 내부 법관 탄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형사재판의 피고인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장·대법관까지 지낸 법률가라면, 최소한 국가 형사사법 체계와 절차는 존중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수감됐다. 기소된 이후 담당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앞서 검찰 수사에서도 신문받은 시간보다 신문 이후 조서 열람 시간이 훨씬 길 만큼 피의자의 권리를 보장받았다. ‘법관들이 겁박당했다’는 박 전 대법관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공범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현직 법관 중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은 사례는 거의 없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검찰뿐 아니라 법원과 동료 법관들까지 모욕한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일말의 성찰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잔인한 수사”를 당했다고 했다. 쌍용차·KTX 해고노동자 가운데는 사법농단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잔인한 수사’를 말하기 전에 ‘잔인한 재판’부터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법농단 재판 피고인들은 모두 노련한 법률가들이다. 담당 재판부는 이들이 정당한 방어권 행사를 넘어 형사사법 절차를 지연·방해하려 할 경우 단호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첫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은 ‘두눈 부릅’이라는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있었다. 이들뿐이 아니다. 온 나라 주권자가 사법농단 재판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9일 오후 9시쯤(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유람선과 대형 크루즈선이 충돌, 유람선에 타고 있던 여행객 등 한국인 26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에는 관광객 30명과 여행사 직원 3명 등 한국인 33명과 헝가리인 승무원 2명 등 35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한국인 7명은 구조됐다. 7명은 숨졌고, 19명은 실종됐다. 사고가 난 유람선에는 30~60대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가족 전부가 숨지거나 실종된 경우도 있다. 71세 노인과 6세 어린이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는 허블레아니호가 귀항을 위해 항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대형 크루즈선이 뒤에서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 추돌 직후 배가 뒤집혔고 이어 빠른 속도로 가라앉아 여행객들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사고가 난 유람선에는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가 없었고, 승객들은 튜브나 구명정에 대한 안내나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구명조끼만 입었어도 상당수는 어이없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 당시 다뉴브강은 바람이 강하게 불고 계속된 비 때문에 수위가 상승하면서 곳곳에는 소용돌이성 급류도 많았다. 그런데도 운항을 강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설혹 여행객들이 운항을 원하더라도 여행사 측이 이를 말리거나, 안전에 만전을 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헝가리 구조선이 29일 밤(현지시간) 한국인 관광객 33명과 현지인 2명 등 35명을 태운유람선이 침몰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불을 밝힌 채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부다페스트 _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해외여행객 수는 2870만명에 달한다. 2014년 1608만명에서 79% 급증, 사실상 ‘전 국민 해외여행시대’에 진입했다. 해외여행객은 급증했으나 현지에서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나라마다 안전에 대한 기준이 다를 뿐 아니라 있다고 해도 무시되기 일쑤다. 외교부 자료를 보면, 해외여행 중 사건·사고는 지난해 2만100건으로 10년 전보다 2.7배 급증했다.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여행객도 해마다 100명가량이다. 특히 해외여행객의 절반이 이용하는 패키지 상품의 경우 여행객은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기상 악화 등을 이유로 일정을 취소하려면 여행사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행객은 동료 여행객들을 의식해 일정 취소를 강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여행사도 환불 등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일정조정을 꺼린다고 한다. 그러니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힘들어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번에도 악천후 등 위험한 환경 속에서 유람선 운항이 강행됐고,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해외여행 안전망에 허점이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외교 채널과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구조활동을 하라”고 지시했다. 여야도 정쟁을 멈추고 한목소리로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모처럼 정치권이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신속대응팀 19명을 현지로 급파했다. 구조전문 심해 잠수요원들은 현지에서 실종자 수색과 사망자 인양 등 작업에 나선다. 정부는 단 한 명이라도 국민이 머나먼 타국에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구조와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