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지역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수도권의 지역은 주로 대안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으로, 비수도권의 지역은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쇠락하는 공간으로 표상된다. 그러면서 수도권의 인구는 다시 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비영리 민간단체 비중에서도 드러난다. 2018년 9월까지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 총 1만2565개 중 서울과 경기, 인천에 등록된 단체가 5804개로 전체의 40.46%다. 그리고 비수도권의 단체들 중 상당수는 시·도청 소재지에 있고 군 단위에는 관변단체나 보훈단체를 제외하면 단체들이 거의 없다.

다양한 사업에 비슷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딜레마는 수도권에서도 나타나지만, 비수도권에서는 그것이 더욱더 심하고 참여할 단체나 사람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연고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비수도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비수도권에서는 단체 하나 만드는 것이 아직도 인생을 걸어야 하는 작업이다.

이 와중에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공익활동 활성화를 내건 사업들이 관과 민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중간지원조직들도 많이 만들어졌고, 민관 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민사회의 역량이 새로이 드러나고 강화되는 지역을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왜 그럴까? 최근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지역혁신사업의 틀을 보자. 목적은 ‘주민이 삶 속에서 느끼는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 주도의 새로운 실험과 상호학습·확산이 이루어지는 문제 해결 복합 플랫폼 운영’이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혁신 경험 설계 및 공간 운영’ ‘공간 기반 혁신활동 지원’ ‘지역밀착 생활실험 지원’ ‘지역사회 혁신 저변 확대’ ‘혁신사례 오픈 아카이브 구축’이다.

혁신과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부각되지만 이런 전략이 처음은 아니다. 공간거점과 대관, 교육 등을 통해 주민 참여를 촉진하고 주민들이 지역문제를 새롭게 발굴하고 해결하는 다양한 사례를 만든다는 전략은 전에도 있었다. 행정안전부-지방자치단체(민관협의회)-민간위탁운영기관으로 구성된 추진체계도 그리 새롭지 않다. 과거보다 조금 더 발전된 기법들이 사용되겠지만 ‘누가 참여하나’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 점에서 아름다운재단이 2018년부터 시도하는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역사회의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다. 이 사업은 이미 능력을 가진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통해 지역을 바꾸는 방식(이미 많이 써온 방식!)보다, 개별화된 주민이나 활동가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고 지역의제 구성 이전에 지역사회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마련한다.

지역 활성화와 관련된 많은 사업들이 놓치고 있는 점은 지역에 대한 이해다. 지역에 대한 주민의 배경지식이나 경험치가 다르다는 점을 전제하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몇몇 활동가나 전문가가 주도하지 않고 주민 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사업들이 있어야 변화가 가능하다. 또한 활동의 성과가 몇몇 개인이나 단체에 독점되지 않고 지역에 축적되려면 새로운 주체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사업이 성격상 ‘성과주의’가 강요되고 그 성과가 주로 양적 지표로 측정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면, 민간의 사업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정부 사업이 전국의 ‘보편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민간 사업은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시간과 공간의 선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리산권의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새로운 활동주체를 찾기 위해 지리산권 5개 시·군에 1명씩 5명의 지역 협력 파트너를 두고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주체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지역조건에 맞게 네트워크를 구성하거나 주민들이 첫발을 떼도록 도울 작은 사업들을 지원했다. 사업의 규모나 수보다 이런 섬세한 지원이 지역을 조금씩 복원할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혁신은 지역의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더이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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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세 포기를 사다 김치를 담갔다. 배추 무게가 총 4㎏ 정도. 그런데 김치를 담그고 나니  다듬은 채소와 부속물이 합쳐져 음식물 쓰레기 1㎏이 나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013년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시험사업 지구가 되어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무선주파수 인증시스템)를 도입한 아파트다. 말은 어렵지만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 단말기에 가구별 종량제카드를 갖다 대면 자동 인식되면서 발생량을 자동 측정해 매달 정산이 되는 시스템이다. 

먹는 이야기가 과하게 넘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음식은 생산부터 지긋지긋한 반복노동을 거쳐 종당에는 ‘음식 쓰레기’라는 대면하기 싫은 실체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 복판에 들어섰다. 집집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로 골머리를 앓을 테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죄지은 사람처럼 엘리베이터 구석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실제로 가사노동 스트레스 중에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가장 높은 강도를 기록한다. 눈앞에 차려진 밥상은 식욕을 돌게 하지만 수챗구멍에 남은 이물들은 외면하고 싶다. 김치도 그냥 사다 먹었으면 이렇게 쓰레기를 대면하지 않았을 것 같아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내가 버리지 않아도 결국 어딘가에는 내가 먹은 만큼의 음식 쓰레기가 버려졌을 것이다. 그 음식 쓰레기를 대면하지 않는 비용을 매식비로 대신 지불하는 것일 뿐. 먹는 삶이 곧 버리는 삶이다. 

한국은 2015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남은 폐수를 버려왔고 2016년부터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되었다. 2006년 발효된 런던의정서는 산업폐기물의 해양배출을 국제적으로 금지하자는 결의다. 한국도 런던협약 방향에 맞춰 폐기물 정책을 짜왔다. 그 과정에서 음식물 쓰레기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전환했고, 직매립이나 소각 방법에서 재활용 처리 비율을 높여왔다. 그래서 2010년 이후에는 95% 이상이 재활용을 한다. 주로 사료와 퇴비로 재활용하고 바이오가스 전환도 포함한다. 내다 버리는 입장에서야 그나마 재활용이 된다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한 ‘잔반사료’가 결국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현재 음식물 쓰레기 11% 정도는 가축들이 해결해 준다. 하지만 이 잔반사료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전체 양돈업에서 잔반사료를 먹여 키우는 돼지는 1% 정도지만 이 돼지들은 음식물 쓰레기 해결사이기도 했던 셈이다. 인간 먹거리의 출처는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국가의 햄이나 순대와 같은 육가공품을 먹고 난 뒤 잔반으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 전역에 퍼지더니 결국 5월31일 북한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이는 ‘한반도’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한 번 걸리면 그냥 모든 것이 끝이다. 구제역처럼 살처분 이후라는 것도 없다. 업을 아예 접어야 한다. 양돈업뿐만 아니라 연관 유통산업과 외식업까지 관련 산업들이 도미노로 무너질 수 있다. 정부도 현재 최고 방역 단계인 ‘심각’단계로 규정하고 있고, 돼지의 잔반사료 급여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를 막는 일도 엄중하지만, 먹고 버리는 문제만큼은 오로지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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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인 6월1일, 천안 계성원에서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정책참여단 출범식이 열렸다. 4월29일에 출범한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주관하는 행사였다. 

전국 각지에서 성별 연령별 분포를 고려하고 학력과 직업도 추가로 고려해서 선발된, 그리고 참여하겠다는 자발적 참여 의지와 희망을 표명한, 500명이 모였다. 국민을 대표해서 이들이 미세먼지와 미세먼지 대응정책을 학습하고 토론하고 숙의해서 정책 아이디어와 국민실천방안을 마련해보자는 거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 전문가 패널로 참여했던 필자가 이번에는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으로 다시 행사를 참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행사를 참관할 수 있는 건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 그날 계획되어 있던 개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숙의”와 “경청”이란 단어가 좌우 벽면에 붙어 있었다. 

대강당은 참여자들의 의욕과 책임감, 사명감으로 꽉 찬 듯했고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국민정책참여단은 위촉장을 받았고 국민 대표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 선서도 했다. 각 연령대별로 대표자들이 나와서 참여단에 임하는 소감과 각오도 발표했다. 모두가 사뭇 진지했다. 청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민 각자가 미세먼지 피해자이면서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고백, 그래서 직접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 싶고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6월에 제1차 국민대토론회가 열리고 9월에 제2차 국민대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어떤 제안이 나올까, 국민 참여와 숙의의 결과는 어떨까, 기대가 된다.

그런데 국민정책참여단 활동이 공론화 과정에 충실하려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언론이 이런 상황을 잘 보도해서 전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가주면 좋겠지만 이제 굳이 언론의 매개가 필요하지만도 않다. 국가기후환경회의 홈페이지는 늘 열려 있다.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이 국가기후환경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좋겠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온라인 토론회”란 코너가 있고 “국민생각함”이 있다. 정부를 향해, 시민을 향해, 기업을 향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특히 국민정책참여단에는 19세 이상 성인만 참여하기 때문에 온라인 토론회에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하는 건 어떨까?

얼마 전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발표한 2018년 국민환경의식 조사에 따르면 가장 불만족도가 높은 환경문제가 바로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질 문제였다(매우 불만족 27.9%와 불만족 12.8%).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로도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질 개선이 단연 1위였다. 미세먼지 문제는 결코 소수의 사람이, 단기간에, 풀 수 없다. 배출원이 너무나 다양하고 지금의 에너지 소비와 육식 등 삶의 양식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 친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갈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 정체 현상과 맞물리면서 같은 양의 미세먼지를 배출해도, 심지어 배출량이 줄어들어도, 대기 정체시간이 길어져 고농도가 여러 날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비상저감대책이 필요한 시기는 이제 지났다. 에너지 소비 규모는 물론 기상상황과 연결되어 있기에 계절적 편차가 크지만, 문제 발생 당시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비상상황이 오기 전에 대응책을 마련해서 시행해야만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 전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국민정책참여단 활동에, 미세먼지 공론화 과정에,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 모두의 현명한 참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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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이나 노동정책을 주제로 강연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처럼 노동 문제 관련 유엔 산하 전문기구는 없나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충격을 받는다. WHO는 1923년에 설립되었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그보다 4년이 빠른 1919년 설립되었고, 2019년 현재 187개 국가들이 가입한 상태다. 우리는 1991년 152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사실 ILO는 각국의 노동입법수준을 발전·향상시켜 노동조건과 생활수준을 보장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업과 불완전고용, 노사관계, 경제발전, 자동화를 비롯한 기술변화 문제 등에 관한 연구도 한다. ILO는 2019년 100주년을 맞이하여 &lt;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gt;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오는 10일부터 약 10일 동안 100주년 기념 총회도 개최된다. 매년 열리는 총회에는 우리를 포함해 전 세계 노사정 대표가 모두 참가한다. 아마도 이번 총회에서는 ‘미래의 일’과 관련된 10가지 권고사항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평생교육, 성평등, 보편적 노동권 보장, 좋은 일자리 실현과 기술투자 및 사회적 보호 등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노동환경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인공지능, 자동화, 로봇공학 등 기술발전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새로운 기회가 주는 혜택을 받을 준비가 안된 노동자들이 기술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배운 교육과 지식은 미래에 창출되는 일자리에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새로 습득한 기술은 오래 못 가 쓸모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한다. 

2019년 대한민국의 노동현실과 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우체국 집배 노동자들이 지난 10년 사이 191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올해에만 벌써 4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언론 기사를 보니 우정본부는 적자 문제로 인력 충원이 더딘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 말에 더 화가 난다. 그럼 앞으로 흑자가 되기 전에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여성과 남성 화장실이 분리되지 않는 A공공기관도 있고, B공공기관 자회사 직원들은 별도의 휴게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다. 민간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수년째 같은 곳에서 일을 해도 처우개선은 없이 새로운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노동시장 상황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일하는 사람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해 여전히 35% 정도 낮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은 다소 해소되었으나 자산의 대물림으로 인한 소득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리거나 산업재해로 매년 목숨을 잃고 있다. 직장 스트레스는 정신건강 위험을 심화시켰다. 그럼에도 90%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노동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터에서의 권리를 위해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들고 보니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터의 권리’는 없었다. 대한민국은 ILO 주40시간 협약을 했어도 세계 최장시간 일하는 곳이다. 산업안전보건 협약을 6개나 비준했지만 OECD에서 가장 높다. 영국 사망률의 26배다. “모든 노동자들은 계약형태나 고용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는 인간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적절한 노동보호를 누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100년 전 ILO가 선언한 “진정으로 보다 인간적인 노동체제”인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 여정에 함께해야 하고, 더 나은 일의 미래를 위한 기회를 포착해야 할 시기다. ILO 100주년 보고서는 유급휴가제도를 통한 평생교육훈련 시행, 플랫폼 노동과 같은 비표준적 고용의 규율,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안전망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나, 여성과 청년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ILO 1호 협약이 8시간 노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도 ‘더 나은 미래의 일’을 위한 목표는 절실한 과제일 듯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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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의 부정과 비리가 쉴 새 없이 터지고 있다. 표절과 데이터 조작 등 일반인에게 낯익은 연구부정행위도 모자라 가짜 학회를 드나드는가 하면 연구에 기여하지도 않은 아들딸을 논문 공저자로 올린 일은 같은 교수로서 말문이 막힌다. 대학의 변화와 발전은 촛불의 시대정신에 답하는 교수사회의 자기혁신이 따라야 가능하다.


고등교육 개혁은 돈만으로 달성되지 않지만, 돈 없이는 불가능한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가 기존의 공영형 사립대 방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낸 연구보고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 방안’과 교육평론가 이범씨가 주장해온 주요 국공립·사립대를 묶는 대학 공동입학제를 보면 재정 투자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대교연 보고서에서 사립대학이 공영형(또는 정부책임형)과 독립형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기존 구상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이 높다. 정부가 대학 운영예산 절반을 지원하는 대가로 현재의 사학 ‘소유주’들이 자신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하는 공영형 사립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법인이사회의 반수를 개방이사를 포함한 공익이사로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반발을 다독이기 위해 법인이사회 구성을 그대로 두되 재정과 회계의 권한을 가진 재정위원회(혹은 경영위원회)를 신설하는 안도 쉽지 않다. 

또 보고서는 독립형을 택한 서울지역 주요 대학과 나머지 대학으로 사립대가 양분되어 1부와 2부 리그가 되고 말며, 서울의 독립형 사립대들이 주어진 자율성을 남용하여 대학의 공공성을 훼손함으로써 결국 정책 목표와 멀어질 위험을 강조한다. 이 점만큼은 이범씨의 지론과 통하지만, 해결 방향은 양자가 사뭇 다르다.

이범씨는 강고한 대학서열구조에 따르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없애기 위해 전국 국공립대학과 주요 사립대를 묶어 교수 1인당 연 1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주는 대신에 학생 선발권을 넘겨받아 공동입학제를 실시하자고 한다. 그에 따르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국공립대네트워크’ 구상의 대안인 이 구상을 실현하려면 정부 예산의 1% 정도인 연 4조~5조원이 필요하며, 급감하는 학령인구로 인해 전국 대입정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공동입학제가 가능하다. 

물론 시행 첫해부터 그 돈이 다 필요하지는 않을 테고 대학과의 협약을 통해 지원액을 매년 단계적으로 늘려가게 되겠지만, 터무니없는 액수라는 반박도 나올 터이고 기획재정부 담당자는 코웃음을 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시들어가는 심각한 현실 앞에서 막대한 재정 지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촉구하는 절박함에는 공감해야 마땅하다.

대교연 보고서의 해법은 전국 사립대를 모두 정부책임형으로 묶는 것이다. 연 4조원 규모의 국가장학금을 토대로 전국 대학의 실질적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고, 동시에 대학 운영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관련 법률과 규정을 정비하여 높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은 정부가 연 8조원 가까운 추가 재정을 확보해야 하지만, 학생 수 감소로 정부가 부담하는 예산은 해마다 크게 줄어든다.

필요한 재정 규모를 놓고 보면 두 방안 모두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 예산이 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고등교육에만 매년 몇 조원을 쓰기 어렵다. 대교연 보고서의 맹점은 반값 등록금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등교육의 가수요를 키울 염려도 있으며, 부실 대학에 국민 세금을 낭비한다는 손쉬운 반론을 잠재우기도 어렵다. 이범씨의 안 역시 대학에서 행해지는 연구와 교육의 질을 자동적으로 높이지 못한다. 교수사회의 자기혁신이 없으면 돈이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이 두 방안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교수사회의 혁신과 함께 가는 단계적 개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교직원들이 사학비리를 극복하고 대학 민주화를 진전시키고 있는 대학들을 찾아 대학 규모에 따라 연 100억~300억원씩 지원해야 한다. 이 시범 대학들의 성과에 따라서 주변 사립대학들의 민주화가 촉진되고 바람직한 대학 통폐합의 토대도 마련되며, 무엇보다도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더불어 거점국립대와 서울의 주요 사립대 중 원하는 몇 곳을 묶어 단계적 공동입학제를 시작할 수 있다. 이범씨의 생각대로 서열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학(서울대든, 연·고대든)이 공동입학제의 보상책인 획기적 재정지원을 오래 외면하기는 힘들다. 두 사업을 합쳐 첫해에 최소 3000억~4000억원이 필요하고 매년 늘려가야 한다. 교수의 개혁성과가 사업 지원의 잣대가 되어야 하며, 사업 확대는 교수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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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6일 ‘2018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통약자란 장애인과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을 말한다. 조사결과 교통약자는 지역 내에서 이동할 때 절반 정도가 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걸어가거나 자가용, 지하철 등을 이용했다. 그런데 교통약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의 정류장은 교통약자법상 시설 기준의 70% 가까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특히 점자블록이나 점자안내표지판, 음성서비스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또 교통약자용 버스좌석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거나, 승하차구역의 미끄럼방지 시설, 승하차 계단 구분도 미흡했다. 국토부는 “문제가 되는 시각장애인 시설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교통약자는 1509만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10명 가운데 3명이 교통약자라는 의미다. 교통약자 가운데는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765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어린이와 장애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 가운데 장애인들의 경우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장애인들은 이동 자체가 ‘장해물과의 싸움’이 된다고 말한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교통표지판, 차량진입차단기, 중앙분리대, 광고물 부착방지시설, 화단경계석 등 걸림돌이 아닌 게 없다. 이뿐인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지 않다. 배려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유대나 인권의식이 부족한 것이다.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267만명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450만명에 달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장애인 가운데 사고나 질병 등 후천적인 장애 발생률은 90% 가까이에 이른다고 한다. 늙고 병들건,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건 누구나 언젠가는 교통약자가 된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시민이면 누구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교통약자에게 복지의 첫걸음은 그들이 마음놓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동편의시설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민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시민들의 차별적인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 한 시설 확충은 반쪽짜리 대책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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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제64회 현충일인 6일 추념사에서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며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면서 “저는 보수든 진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애국’을 11번, ‘진보’와 ‘보수’를 9번 언급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 극명하게 갈리는 진보와 보수 간 이념 갈등에 대한 우려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항일의병과 광복군, 국군, 참전용사, 민주열사, 의인들이 나라를 되찾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진보와 보수를 따졌을 리 없다. 한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산업화와 민주화를 놓고도 상대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인정하지 않거나 폄훼해 왔다. 특히 보수진영은 애국과 태극기를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주장해왔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은 사회 전반에 서로를 공격하는 대결구도를 부추기고 있다. 선열들 앞에 한없이 부끄러운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고 했다. 독립운동, 산업화, 민주화 역사가 하나의 운명공동체 안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친 뒤 위패봉안관을 찾아 재일학도의용군 및 애국지사 위패를 살펴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U-20 월드컵에 출전 중인 우리 선수들은 한국 관중들에게 애국가를 부를 때 함께 크게 불러달라고 했다. 광주광역시의 1300여개 노래방은 경건하게 현충일을 맞자는 취지에서 6일 하루 일제히 문을 닫았다고 한다. 어린 선수들과 시민들의 나라 사랑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런 마음들이 바로 애국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인식에 공감한다. 

독립과 호국, 민주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세 기둥이다. 그 과정에서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고, 더 발전된 나라를 만드는 건 후대의 본분이다. 나라를 지키는 확고한 안보관도, 정의와 공동체를 위한 노력도 이런 추념 정신에서 나올 수 있다. 애국은 진영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재단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역과 이념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가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이다. 애국을 통합의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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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만든 적 있다. 이름은 ‘수저게임’. 말 그대로 참가자가 카드를 뽑아 금수저 또는 흙수저의 신분을 부여받은 뒤 역할에 충실히 활약하는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태어날 때 정해진 조건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졌다. 양극화를 좁히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북돋고 싶었다. 이를 위해 금수저는 더욱 부자 되는 것을 승리의 조건으로, 흙수저는 같은 계급 사람들 모두 무사히 생존하거나 혼자 계급 상승 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 자원이 한정돼 있으니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 게임의 핵심은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었다. 나는 플레이어들이 토론과 투표로 체계를 바꾸는 경험을 체득하도록 의도했다. 게임이 창작자의 의도와 정서를 전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임을 만든 적 있지만, 평소 게임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명작으로 꼽히는 타이틀 몇 편의 결말을 본 정도? 주로 롤플레잉 비디오 게임이었다. 게임 덕에 용과 마법사가 활약하는 판타지 세계도,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 미래도 활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모험을 벌인 뒤 당도한 결말을 곱씹으며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제작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닿았다고 느꼈을 때, 기꺼웠다. 감동과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물론 과정도 즐거워야 게임이다. 사실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종종 헤매었다. 말 그대로 길을 잃었다. 현실에서 길치는 게임에서도 길치였다…. 게임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기술을 숙련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퍼즐을 푸는 식의 도전 과제들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게임을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해 난도를 낮추면서, 현실을 떠올렸다. 인생의 난이도도 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지 모드’로 산다면 부족한 능력을 이유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쫓기는 기분으로부터 숨 고를 수 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으며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에 사는 대부분에게 현실은 ‘하드 모드’다.

게임이 인생과 다른 점은 스스로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다. 게임에서의 성장은 (현실에 비해)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지고, 도전 과제에는 반드시 해법이 있기 마련이며, 실수를 돌이킬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즉 게임에서의 노력은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으로 보답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이들 중 일상생활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하고, 위안을 주는 관계망에 속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 게임 관련 질병을 등록했다. 게임에 장기적으로 과몰입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에 대해서다. 이에 ‘게임은 유해하므로 청소년은 아예 게임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주장에 반대한다. 앞서 말했듯, 생각할 거리와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게임도 존재한다. 품위 없는 성 상품화와 ‘현질’ 유도, 사행성 확률 아이템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물론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게 모든 게임들을 싸잡아 혐오하고 금지하며 억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부모부터 자식이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돼줘야 ‘게임 과몰입’을 완화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자식의 관심사와 욕망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태도가 요구된다. 혹시 또 모르지. 자식이 게임에 흥미를 가지다 직접 게임을 만들어내고, 그로써 ‘성공’을 이루게 될지도.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람의 수와 그 정도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인생을 ‘즐겜’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보편의 사람들의 삶이 ‘이지 모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노말 모드’ 정도는 되도록.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일이 조금은 쉬워 지도록. 역시나 안전망을 확충하고 양극화를 좁히는 사회적 개입이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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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느 미식축구 선수가 사고로 목 아래 신체가 마비되었는데, 뇌 속에 칩을 삽입해서 TV를 켜고 끄거나 메일을 보내는 등 온갖 여러 전자 장치를 생각으로 조절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처럼 뇌 신호를 읽어들여서 외부 장치를 조절하거나, 외부 장치로부터 뇌로 신호를 보내는 기술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또는 뇌-기계 인터페이스라고 부른다. 

■ 측정하고 해독하고 자극하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활용해서 외부 장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경 신호를 읽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처럼 뇌 속에 칩을 삽입하는 침습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뇌파(EEG)처럼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기술도 활용된다.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시공간적으로 얼마나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냐, 휴대성이 어떠냐에 따라 활용 범위가 달라진다. 예컨대 뇌 속에 칩을 삽입하는 방법은 특정한 영역의 신경 활동을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하기에는 좋지만, 뇌 전반의 활동을 측정하기에는 좋지 않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뇌파는 수술이 필요하지 않고, 장비가 비교적 간소하며, 신경 활동을 밀리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러 영역의 전기적인 활동이 뭉뚱그려진 신호를 측정하므로 공간 해상도가 낮고, 뇌 안쪽에서 일어나는 활동일수록 측정하기 어렵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둘째로 측정한 신경신호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장치를 착용한 사용자가 ‘마우스 커서를 오른쪽으로’라고 생각했다면, 운동 뇌에서 일어나는 뇌 활동을 해석해서 컴퓨터에 ‘오른쪽으로’라는 명령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뇌가 한번에 하나의 정보를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라고 생각할 때마다 뇌 활동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읽어들인 신경신호가 ‘오른쪽으로’ ‘위로’ ‘아래로’ ‘왼쪽으로’ 같은 여러 생각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해독하려면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른쪽으로’라고 생각할 때의 신호를 인공지능에 입력하고, 인공지능이 이 생각이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답하게 한 뒤, 답이 틀리면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더욱이 사람마다 뇌 활동 양상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과정은 사용자가 바뀔 때마다 이루어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뇌에 원하는 신경활동을 유발할 수도 있어야 한다. 로봇 의수를 착용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꽃송이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으스러뜨리지 않고 쥘 수 있으려면 힘을 잘 조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봇 의수에 달린 센서로 측정한 정보를 신경세포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신경활동을 유발하는 것은 치료나 훈련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각 자극(예: 70도, 130도 등 특정한 각도로 기울어진 선들)을 잘 인식하게 하도록 훈련시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참가자에게 참가자의 활동이 목표 자극(예: 70도로 기울어진 선들)을 볼 때의 뇌 활동과 비슷할수록 커지는 원을 보여주면서, 어떻게든 원을 키워보라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원을 키우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이런 훈련을 거친 뒤에는 목표 자극(예: 70도로 기울어진 선들)을 다른 자극(예: 130도로 기울어진 선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한다고 한다. 

■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

글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 매튜 네이글이 뇌 속에 칩을 삽입하는 실험에 참가한 것은 15년 전인 2004년이다. 그사이에 신경신호를 읽어들이고, 해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도 발전했다. 예를 들어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말하기와 관련된 뇌 피질 표면에 전극을 심어서 신경활동을 측정했다. 그리고 측정된 신경활동이 성대, 혀, 입술 등 말하기와 관련된 근육들의 어떤 움직임과 관련되는지 예측하도록 인공지능을 학습시켰다. 또 사람들이 말할 때 말하기와 관련된 근육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측정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인공지능을 하나 더 훈련시켰다. 이 인공지능은 말하기와 관련된 근육의 움직임으로부터 어떤 말을 하는지 예측할 수 있도록 훈련되었다. 연구자들은 두 개의 인공지능을 결합해서 말하기와 관련된 뇌 피질의 활동으로부터 어떤 말을 하는지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검색해서 들어보면 발음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단어를 추론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다른 최근 연구에서는 시각 뇌에 특정한 활동을 유발하기 위해서 어떤 자극을 입력하면 좋을지를 인공지능으로 예측했다. 인공신경망은 여러 뇌 활동 중에서도 시각 뇌의 활동을 특히 잘 모사한다. 연구자들은 원숭이 시각 뇌의 여러 위치에서 일어나는 신경활동을 관측하면서, 인공신경망의 모델 신경세포들이 관측하는 뇌 위치 각각의 활동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맞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특정한 활동을 유발하려면(예: 특정한 위치의 활동량이 평소보다 훨씬 커지게 하려면) 원숭이에게 어떤 시각 자극을 보여주면 좋을지를 예측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시각 자극이 우연보다 높은 확률로 원했던 뇌 반응을 유발하는 것을 확인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발전하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물론 비장애인들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물인터넷 기술도 발전하고 있으니 온갖 장비를 생각만으로 조절하면서 육체라는 제약을 마침내 벗어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꿈같은 기술이 멀티태스킹처럼 오히려 해로울지, 빈부격차를 심화시킬지, 해킹 등 사생활 침해 문제를 낳을지,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지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어떻게 논의하고, 대비해 가는지에 달렸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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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어느 평일 오후였다. 나는 집 근처의 카페에 혼자 앉아 있었다. 다른 손님이 없어 호젓한 터라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 시간이란 하루가 알맞게 익어서 어떤 글을 읽어도 난해하지 않고 어떤 글을 써도 난잡하지 않을 듯해 자신만만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카페를 홀로 소유한 듯한 기분인 데다 성질마저 넉넉하고 부드러워져서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밝고 곱고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카운터 안쪽에서 졸던 직원이 일어났고 내가 누리던 평온도 깨졌다.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중년의 부부 뒤로 초등학교 오륙 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따라 들어왔다. 세 식구는 남은 자리도 많았건만 하필이면 내 앞자리에 앉았다. 부부의 얼굴은 검게 그을린 데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고 딸은 주름이 많이 잡힌 원피스 차림에 토끼 귀처럼 봉긋 솟은 장식이 있는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그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이혼하자고! 그래, 이혼해! 엄마, 아빠 이혼하지 마, 응?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터라 무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듣다 보니 부부가 무엇 때문에 다투는지를 알게 되었다. 남편 쪽은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던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로 더는 참을 수가 없으며 시댁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당신도 견딜 수 없다는 주장이었고 아내 쪽은 남편의 오해와 망상이 지긋지긋하며 무능도 분수가 있지 앞으로도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는 바에야 갈라서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투고 있을 수많은 부부들처럼 다투는 거였다. 내가 적이 걱정스러웠던 건 세 식구 가운데 아직 어린 딸아이였다. 부부가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비난하는 동안 딸은 울먹이면서 엄마와 아빠를 타일렀다. 딸은 급기야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더 잘할게, 그러니까 이혼하지 마, 응? 하면서 부모의 불화와 다툼이 자기 탓이라는 듯 애원했고 나는 그 아이에게 너는 잘못한 게 없단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가슴을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나는 그 부부가 서로를 증오하게 된 내밀한 속사정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증오가 어디에서 태어났든 저 아이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는 없으므로 이 상황이 자기 탓이라며 자책하는 아이에게 누군가는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 사람이 그 아이의 부모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였다. 나는 오래전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법원 앞 다방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에는 아버지가 앉았다. 옛날식 다방이라서 취향에 따라 커피, 프림, 설탕을 타 마셔야 했다. 아버지는 찻숟가락으로 커피는 두 숟가락, 프림은 세 숟가락, 설탕은 두 숟가락을 떠넣었는데 속으로 아버지 입맛도 나랑 다르지 않구나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보다 선명한 기억은 아버지가 찻숟가락으로 찻잔을 젓던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손놀림에서는 당신의 불안과 슬픔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찻잔 안쪽 벽에 찻숟가락이 자꾸만 부딪혀서 따닥, 따닥, 따닥…… 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렸다. 아버지는 식은 커피를 단번에 들이켠 뒤 나를 똑바로 보면서 네 엄마 잘 모셔라, 하더니 벌떡 일어나 다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부리나케 아버지를 뒤쫓아나갔고 법원 담장을 따라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때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이의 얼굴보다 많은 말을 해주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세 식구는 한결 개운해진 낯으로 일어났다. 서운했던 감정을 다 털어놓고 보니 그런 감정이 별거 아님을 깨달아 머쓱해하는 얼굴로 보였다. 딸이 먼저 카페를 나갔고 부부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나는 분명 부부가 딸의 뒷모습에 잠시 시선을 고정했던 것이라고 믿는다. 부부가 다투는 동안에는 들리지 않았던 딸의 목소리를 그 순간 들은 것이라고 믿는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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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동이 좀처럼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KBS와 대담하면서 5당 대표 회담을 제안한 뒤 근 한 달째다. 청와대는 일대일 회담을 원하는 자유한국당에 ‘5당 대표 회담 후 일대일 회담’을 제안했으나 황교안 대표는 ‘3당 대표 회담 뒤 일대일 회담’을 하자며 거부했다. 문 대통령은 9일 북유럽 순방을 떠나는 일정이 계획돼 있다. 청와대가 회담 날짜로 제시한 7일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국회 파행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얼핏 보면 대통령과 정당 대표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자는데 5당이든 3당이든 회담의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다. 청와대는 지난해 8월 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출범시킨 ‘5당 여·야·정 상설협의체’의 취지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야·정 협의체는 대통령과 여야 5당이 국정의 동반자로서 협치의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형식의 문제를 떠나 소통과 타협의 정치를 꾸려나가기 위한 협치 시스템인 것이다. 여기서 굳이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빼자는 한국당의 주장은 이런 틀을 깨는 것이요, 합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한국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별도로 단독 회담을 열기로 한 마당에 3당 회동만 고집하는 건 지나치다. 지난해 4월 문 대통령과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표는 5당 대표 회담 뒤 별도로 단독 회담을 한 선례도 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앞으로 전개될 과정에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정치적으로 제외시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그런 속셈이라면 거대 정당의 기득권에 사로잡힌 낡은 사고라고밖에 볼 수 없다.

마침 황 대표는 6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그간 황 대표는 대여 강경투쟁의 선봉에 서서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킨 한편 지나친 우경화로 중도층 확장에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100일을 계기로 당내에 경제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앞으로 비판보다 대안에 주력하겠다”고 한 것도 이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와 비판만 해온 제1야당이 정책으로 대결하겠다는 선언은 많은 시민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황 대표는 줄곧 민생파탄과 경제위기를 외쳐왔다. 정말 민생이 걱정이라면 여야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경제,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 현실을 논의하자는데 퇴짜를 놓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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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앗사리드’라는 사하라 사막의 청년. 프랑스 고속기차 테제베를 탄 후일담, <사막별 여행자>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단봉낙타보다 천배는 빠르고 백마리 낙타가 늘어선 카라반만큼이나 길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눈앞에 어떤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고 심장은 더 세게 고동쳤다.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더 이상 거리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낙타들과 사막의 침묵 한가운데 누리는 낙타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리듬으로부터 나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열차 승객들의 조용하고도 태연한 모습이 놀라웠다.”

빠른 강물에 빠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명조차도 날름 집어삼킨다. 속도 빠른 시대에 살면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이름 없이 사라진다. 역사는 역시 ‘느린 강’에서 비롯된다. 느린 강을 따라 걷다보면 배짱 두둑하고 맷집이 센 사내를 만나게 되리. 현명하고 강인한 여인이 손을 내미는 곳.

나는 우수리스크에 와 있다. 극동의 한쪽. 우리 겨레 고려인이 마을을 이루어 살던 땅. 추위에 맞서 두꺼운 벽채를 세우고 지붕엔 기와를 구워 얹기도 했다. 장작을 집어넣는 벽난로 페치카. 온기를 나누던 겨레의 심성을 느끼게 된다. 여기 ‘수이픈강’, 옛 발해 땅 솔빈부에 흐르던 ‘솔빈강’이 흐른다. 작가 푸시킨의 동상이 있는 이 마을 귀퉁이엔 안중근과 홍범도 비석이 나란히 있다. 권총이 새겨진 비석조차 비장하여라. 하루는 느린 강가에 위치한 헤이그특사 이상설 기념비에 보드카를 뿌려주었다. 보드카는 멀리 돌고래가 뛰노는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짧은 여름, 모두들 웃통을 벗고 일광욕. 강물에 수영도 한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수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경찰이 물에 들어간 아가씨들을 나무라자 “아니 옷을 벗기 전에 말을 해야죠”. 경찰은 웃으며 “옷 벗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는데요”. 안중근 대장도 이 강물에 말을 세워 물 먹이고, 수영도 했을 것이다. 사랑해본 사람들이 저항도 하고 혁명도 한다. 느린 강물을 보다가 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평화롭고 느긋한, 느린 강.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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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풍속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는 복장, 패션, 연애, 사교생활, 매춘제도 등이 흥미롭게 담겨 있다. 하이힐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푹스는 하이힐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실용적인 요구다. 중세 이후 절대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등 유럽인들은 집에 변소가 없어 요강 등을 이용해 창밖으로 대소변을 투척했다. 포장이 안된 도로는 비만 오면 오물이 뒤섞인 진흙탕이 됐다. 당시 하이힐은 발을 더럽히지 않고 길을 가는 유용한 도구였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자기 과시욕이다. 하이힐을 신으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이때 자연히 엉덩이는 튀어나오고 가슴을 내밀게 된다. 신체 특정 부위를 강조하기 위해 하이힐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근대 들어 도시 하수도가 발달하면서 오물 진창길은 사라졌다. 그런데도 하이힐을 신는 풍속은 이어지고 있다. 푹스는 “높은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자기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를 장악하려는 계급과 개인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유행했다”며 하이힐 유행 전파자로 사교계 여자들과 매춘부를 꼽았다. 푹스의 얘기대로라면 하이힐이 지속된 원인으로 여성의 자기 과시나 성의 상품화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하이힐은 보행에 불편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하이힐이 발목관절의 퇴행을 촉진하고 관절염과 통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출처:경향신문DB

일본에서 하이힐을 벗어던지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한 배우가 기업의 하이힐 착용 강제는 성 차별로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게 계기가 되어 인터넷상의 ‘쿠투(KuToo)’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일에는 일본인 1만8856명의 지지 서명이 담긴 건의서가 후생노동성에 제출됐다. 쿠투는 구두의 일본어 ‘구쓰(靴)’와 고통을 뜻하는 ‘구쓰(苦痛)’에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를 합친 조어다. 서양에서 유래해 전 세계로 퍼진 하이힐은 오래전에 사라진 중국의 전족(纏足) 못지않은 봉건적인 인습이다. 2015년 영국에서도 직장 내 하이힐 거부운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이 봉건 왕정시대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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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라면 먼저 보수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스님들은 앞서 나가지 않는다. 스마트폰 같은 신문물도 사용하지만 먼저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가 움직이면 조금씩 따라간다. 급변하는 사회가 과속으로 사고를 내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감사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이 종무원 노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부적으로 해결하면 될 문제에 검찰이나 경찰 같은 외부의 힘을 동원하려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5주 전에는 ‘더 쿨한 스님을 보고 싶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원래 이해심도 많고, 약자를 보호하는 데 관심도 많은 스님들이 더 넓은 마음으로 노조원들을 대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 조계종이 종무원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조계종 총무원은 노조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은 그대로인데, 징계하는 방식은 그 어떤 기관보다 ‘세련’됐고 절차는 신속했다. 지난 4월에 한 번 놀랐고, 지난달에 또 놀랐다. ‘이렇게 해도 되나? 아니, 법적으로 가능하긴 한 건가?’란 말이 절로 나왔다.

조계종 인사위원회는 지난달 9일 심원섭 지부장과 심주완 사무국장, 박정규 홍보부장 등 노조 집행부 3명에게 지난달 15일부터 ‘자택 대기발령’을 내렸다. 이들은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이미 대기발령을 받아 현업에서 배제된 상태였지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앞서 조계종 노조 집행부 3명은 지난 4월10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강원도 낙산사로 대기발령을 받아 떠났다 서울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조계종 총무원으로 출퇴근을 하던 사람들이다. 집과 가족 모두 서울에 있다. 조계종 종단은 이들에게 ‘산불피해 지원’이라는 명분을 주고 강원도로 보냈다.  

조계종 인사위원회는 징계위원회를 거쳐 지난달 24일 심원섭 지부장과 심주완 사무국장에게 징계를 내렸다. 심 지부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고, 심 사무국장은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부친상을 당해 지난달 17일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못했던 박정규 홍보부장은 지난달 27일 별도로 열린 징계위원회를 거쳐 지난 3일 정직 1개월이 확정됐다. 

조계종 인사위원회는 노조가 ‘종단 사업에 부정 내지 비리가 있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검찰 고발과 기자회견을 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을 징계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조계종 인사위원회가 지키려는 것이 종단의 명예뿐은 아닌 듯하다. 노조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노조 간부들이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자 총무원의 한 간부 스님은 “아비어미를 고소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노조가 지난 4월4일 자승 전 총무원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자승 전 원장은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을 위한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노조는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역시 노동법에 밝은 변호사를 수소문해 맞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되면 누가 더 종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도 알쏭달쏭하다. 

이제는 조계종 총무원이 그토록 바라는 부처님법이 아니라 사회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회법은 ‘부모를 고소했다’는 이유로 자식을 처벌하지 않는다. 기관의 전직 수장을 비리혐의로 고발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도 않는다. 사회법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 역시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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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어느 집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조금 식구가 많아 보이는 여느 가정의 모습과 같다. 다만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가지가 다르다. 아이들이 어른을 이모 혹은 삼촌이라 부른다. 사실 친이모, 친삼촌은 아니다. 여기는 아동공동생활가정, 보통 그룹홈으로 불리는 집이다. 

어느 사회건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날 수 있고, 부모의 학대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부모의 사망이나 가출, 혹은 학대와 방임으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사회가 돌봐야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보호 필요 아동들을 주로 대형 양육시설에 보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그런데 다르게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아픔과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기에 더욱 ‘시설’ 대신 ‘가정’에서 키워야 한다며 스스로 부모 역할을 자임한 사람들이다. 가정 돌봄 영역에서 입양이나 위탁이 기존 가정에 아이들이 들어가는 거라면, 그룹홈은 아이 5~7명과 부모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사는 새로운 가정이다. 특별한 문패도 없는 우리 동네 보통 집이다. 

처음에 그룹홈은 정부 정책 밖에 있었다. 이모, 삼촌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주변의 후원으로 전셋집을 얻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사실상 교대로 숙식까지 하는 전일제 보육사 역할을 하건만 월급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식당 식판 대신 가정 식탁을 주고 싶었다”는 어느 이모의 말처럼, 오로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운영되는 집이다. 

뒤늦게 정부가 이들을 주목했다. 1997년부터 시범사업으로 그룹홈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를 맞아 가정해체가 늘어나자 2004년에는 아동복지법에 ‘공동생활가정’을 추가해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이후 그룹홈은 꾸준히 늘어나 2017년 기준으로 533개 집에서 2811명이 살고 있다. 아이들은 중간에 친부모와 다시 결합해서 원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18세 때까지 살다가 그룹홈을 나가 자립한다.

최근 복지국가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돌봄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커뮤니티케어, 마을복지 생태계 등 자신이 사는 생활 기반이 강조된다. 불가피하게 시설에서 거주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일상 공간에서 돌봄이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깨달음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예전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착한 사업 정도로 여겨졌던 그룹홈이 일찍부터 돌봄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선구적인 복지였던 셈이다.

근래 그룹홈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동 학대와 방임으로 돌봐야 하는 아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일상생활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그룹홈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건만 정작 부모 역할을 대신할 이모와 삼촌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복지사 신분인 이들에 대한 처우가 너무 낮다. 그룹홈에서 일하기를 차마 제안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룹홈은 중앙정부 소관의 공동생활가정으로 시설장 1명과 보육사 2명이 일한다. 올해 이들이 받는 월급 총액은 185만원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의 80% 수준이다. 추가수당도 없이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호봉제도 없다. 15년 경력의 시설장이나 새내기 보육사나 월급이 같다.

올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가 공동생활가정 종사자에게 일반 사회복지사와 다른 임금을 적용하는 건 ‘차별행위’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달에 답변서를 낸다지만 이모와 삼촌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이다.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정부에 익숙해진 탓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라는 높은 장벽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그룹홈 지원은 복권기금이 주관하는 ‘공익사업’ 중 하나이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에선 기획재정위원회가 의결한다. 박근혜 정부가 부족한 복지재원을 확보한다며 ‘입양아동 가족지원’ ‘아동복지시설 기능보강’ 사업과 함께 그룹홈 지원 사업을 기획재정부로 전출시킨 결과이다. 

지난달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고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선언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보며 이모, 삼촌들은 말한다. 기획재정부로 넘어간 아동복지의 필수사업들을 보건복지부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또한 오랫동안 방치한 차별을 해결하지 않으면서 어찌 국가 책임을 이야기하느냐, 복권이 잘 팔리기만을 기대하란 말인가?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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