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7조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이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고, 내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어 가던 올해 현대중공업(이하 현중)의 대우조선 인수·합병이 시작했다. 본계약이 완료됐고 5월31일 현중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는 물적 분할을 통해 산업은행(이하 산은)과 현중이 공동출자하는 형태의 한국조선해양이라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회사가 탄생했다. 공정위와 해외에서의 기업결합 심사만 남았다. 최종 성패는 아직 알 수 없다. 공정위가 부적격 판정을 내릴 수 있고, 해외에서 LNG선 세계시장 수주잔량의 57%를 차지하는 대우조선과 현중의 결합을 독점으로 진단할 경우 부적격 판정이 날 수도 있다. 물론 준비를 잘하면 ‘운용의 묘’를 통해 성사될 수 있다.

생채기가 나고 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1월 말부터 지금까지 매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수·합병 절차가 밀실에서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인수자를 미리 정해놓고 다른 인수 희망자를 찾는 방식부터 밀실협상의 결과로 해석한다. 노조는 인수·합병 이후 인적 구조조정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거제 지역사회에도 매각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현중 노조는 물적 분할과 한국조선해양 본사의 서울 이전에 반대한다. 물적 분할 후 노조의 단체협상권은 승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조합원들은 인적 구조조정에 노출될 수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한국조선해양 본사 이전에 반대하며 삭발을 했다. 주총이 예정되어 있던 울산시 한마음회관은 용역과 조합원들의 충돌로 훼손됐다. 현중은 주총 당일 장소를 울산대 체육관으로 긴급 변경했고, 주총은 소액주주인 조합원들의 참여를 막은 채 진행됐다. 지역 방송은 용역들이 조합원들을 도발한 정황을 보도한다.

웃고 있는 자는 분명 현중이다. 물적 분할을 성사시킴으로써 3세 승계를 완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자금은 0원에 가깝다. 인수·합병에 성공할 경우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가 되며, 실패하더라도 손해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노조와 지역사회의 반대, 기업의 강행 돌파. 많은 중앙 언론은 ‘강성 노조’의 반발을 보도한다.

산은 이동걸 회장은 3월8일 “조선산업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금의 적기를 놓치면 우리 조선업도 일본처럼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며 산업 구조조정으로서의 인수·합병을 강조한 바 있다. 나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찬성한다. 대우조선의 적합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한다. 산은이 대주주로 있으면서 발생했던 ‘대리인 문제’, 즉 책임경영이 되지 않았던 문제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수·합병이 꺼림칙한 지점은 두 가지 차원이다. 우선 이해당사자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협치의 부재다. 노조가 고용보장과 단체협상 승계에 대해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현중은 보장 원칙만 내세웠을 뿐, 노동자들의 불안을 달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를 내밀지 않고 있다. 조선해양기자재 업체들의 생존 문제도 심각하다. 대우조선과 현중의 기자재 업체 중 4분의 3 정도가 겹쳐 물량이 보장된다고 가삼현 사장이 밝혔지만, 나머지 4분의 1만 위기에 처해도 부산·울산·경남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경남도가 기자재 생태계 문제 등을 논의할 조선산업 상생발전협의체를 4월에 제안했지만 답보 상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산은과 정부, 지방정부의 역할 부재다. 산은은 국가가 진행하는 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다. 산은이 부실 기업의 대주주가 되었던 것은 책임감 있는 회생을 위해서였다. 한국조선해양 설립 후 산은 보통주 지분율은 7%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1조2500억원의 주식은 배당만 받고 의결권은 없는 우선주다. 현중이 알아서 할 것이니 손을 떼겠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엔 사전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존하고 키울 것인지와, 인수·합병이 어떤 구조조정 효과를 내는지 산은의 구체적인 설명이 들리지 않는다. 주무부처들도 산은에 모든 역할을 넘기고 특별한 대응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경남도 역시 의견 청취만 하고 별다른 의사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영웅 요기 베라가 말한 것처럼 이번 인수·합병과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관문이 남아 있다. 과정이 좋지 않으면 결과가 의미 없을 수 있는 게임이다. 문재인 정부가 산업정책의 첫 번째로 제기한 ‘빅딜’이기에 정치적 의미도 작지 않다. 전통적 제조업의 위기는 부산·울산·경남에 집중되어 있고, 국가의 역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조정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 부산·울산·경남 지방정부의 주도로 노·사·정과 지역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치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고용과 기자재 생태계를 지켜내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긴요하다. 연구·개발과 엔지니어링 기능을 한국조선해양 본사로 이전하는 문제도 부산·울산·경남에서 우수한 공학인력을 어떻게 키워내고 유치할 것인지까지 고려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양승훈 |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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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예술을 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몇 주째 소화가 안된다. 장애인의 몸이 표현하는 예술의 가능성과 긍정성을 취지로 한 말일까.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그 예술이란 과연 무얼까. 이런 말이 불편한 건 성격 탓일까. 답답하던 차에 한 문화연구자의 “연극적인 것을 배반하는 ‘춤추는허리’ 연극의 공연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명치가 뚫린다. 진짜 예술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과연 진짜(정상)가 뭘까를 묻는다. 

내가 참여하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는 장애, 몸, 예술, 배우. 섹슈얼리티, 독립 등에 대한 사회의 정상적 규범을 연극으로 질문한다. 지적장애 여성 배우는 연습장에 대사를 10번 이상 적으며 자기에게 익숙한 말을 찾기도 한다. “너무나 감동했어요. 저는 지금 장애 극복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지적장애 여성은 이 대사를 “감동이에요. 장애 없어요”로 바꿨다. 대사를 바꾸며 자기 말을 만드는 과정이다. 

비정상성을 무대에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 전문적 훈련을 통해 정상적으로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 자기 장애를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대사와 몸짓을 싣는다. 비장애인처럼 정확하게 대사를 발음하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몸이 편안하게 움직이는 방향대로 이동시켜 보고 내 호흡과 경련, 뻗침의 주기와 박자를 깨닫는다. 늘 몸과 살아가지만, 내 몸을 상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움직이지? 어디가 아프고 안 움직이지? 움직이기 어려운 곳을 억지로 쓰려 하진 않지만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호흡과 박자를 파악했을 때 배우는 연기가 편안해지고 잘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아프거나 움직이지 않는 몸의 어떤 부위는 연기할 때 배우들에게 긴장을 일으키는 요소다. 쉽게 말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순간, 관객은 긴장한다. 자기 몸을 ‘제대로’ 아는 배우는 이 긴장을 가장 먼저 안다. 이 긴장과 함께 무대에서 1~2시간을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한 장애 여성 배우는 다음이 어디로 갈지 안다. 가장 나다운 동작을 하는 와중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몸의 긴장에 익숙해진 것이다. 보여지는 대상으로 전시되는 것을 거부하고 내 몸을 보여주는 장애 여성 배우가 의도한 ‘무대 위의 일’일지도 모른다. 매일 장애와 살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장애등급제가 7월부터 폐지된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의 경우 이용자 수와 월평균 시간 등을 확대하려면 올해보다 7284억원의 장애인 복지 예산이 인상되어야 한다. 한정된 예산에 끼워 맞추면 지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장애 여성 배우는 뇌변장애, 지적장애, 시각장애… 진단과 장애명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에선 서비스 기준과 양에 맞춰야 하는 처지다. 532점 만점의 종합조사표는 변화된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의학적 기준으로 진짜, 가짜 장애인을 판별하고 낙인찍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장애인의 몸과 삶을 다시 서비스 등급으로 세분화시킨다. 옷 갈아입기, 목욕하기, 구강 청결, 옮겨 앉기, 약 챙겨 먹기, 물건 사기 등 기능 제한 조사 항목에 장애를 끼워 맞춰야 한다. 이 질문이 장애인의 몸과 삶, 사회적 차별을 담아내고 있는가. 장애등급제가 ‘진짜’ 폐지되어야 장애와 정상에 대한 ‘진짜’ 질문이 시작될 수 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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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엄마를 따라온 한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와 학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를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꽉 막힌 거리에 가야 할 거리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서로 주고받을 이야깃거리가 금세 바닥을 들어내고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뭔가 괜한 상처가 될까 싶어 입안에만 말이 맴 돌았습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튀어나온 이야기라고는 20년도 지난 옛날 중학생들의 일상이었고, 저 아재의 추억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한 녀석은 손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눈은 창밖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한 곡 흘러나왔습니다. 요즘 노래가 아닌 오래된 노래인데 최근에 케이블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다시 불리는 모양입니다. 지루했던지 녀석도 조금씩 노래를 따라 불렀고,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기로 유명한 저도 나름 화음을 보태 흥얼거렸습니다. 조그마한 차 안에서 옛날 노래 한 곡을 함께 흥얼거리면서, 녀석과 처음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눈이 마주칠 때는 서로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음악이 가진 오묘한 힘을 새삼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인권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가는 노숙인 사회복지시설 영등포 보현의집에는 윈드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처음  방문할 때만 하더라도, 노숙인 자활시설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오가며 서로 얼굴을 익힌 다음에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부는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하면 뭐가 가장 좋으냐고. 평소에도 앞니가 빠진 것 때문에 웃을 때 입을 가리며 웃던 아저씨는 수줍어하는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소리 내기에 바빴는데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요. 서로 한 호흡을 맞춰갈 때마다 여기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뭔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아요.”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 그리고 그 호흡에 내 소리를 맞춰간다는 것, 굳이 평화·인권·공존이라는 어려운 말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음악을 통해 주고받고 있는 삶의 경험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하모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모양도 소리도 서로 다른 악기들이 만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피부색과 언어와 삶의 배경이 다른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경험을 직접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이 자라는 미래에는 서로의 다름이 공동체의 위협이 아닌 풍요로움이 되고, 그 풍요로움이 다시 새로운 가능성이 되는 공존의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다문화 청소년 윈드오케스트라 ‘미라클 윈드오케스트라’ 프로젝트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림동 주택가 낡은 연습실을 밝고 예쁘게 꾸몄습니다. 올해 초 영등포구 협치 사업으로 선정되어 구청을 중심으로 음악 지도의 전문성을 가진 악기 선생님들과 이주민 지원활동을 꾸준히 해온 ‘이주민센터 친구’등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날 즈음이면 아이들이 관악기 소리를 들어보고, 직접 불어보는 ‘찾아가는 악기설명회’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온 손자를 데리고 할머니가 연습실에 찾아오셨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중국에서 온 이주 여성 자원활동가의 통역으로 음악선생님과 악기 면접을 마쳤습니다.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기부해준 오래된 클라리넷을 불어보며 활짝 웃는 꼬마의 모습을 보며 작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미라클 윈드오케스트’가 만드는 기적의 하모니를 위해 따뜻한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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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필로소피)의 ‘개소리’는 영어 ‘bullshit’의 번역어다. 번역자 이윤은 ‘헛소리’로 옮길까 하다 ‘non-sense’와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개소리로 번역했다고 한다. 헛소리엔 무의미한 말이라는 뉘앙스가 있지만, bullshit에는 화자의 숨은 의도가 있다는 저자 논지를 따르려고 했다고도 한다.

개소리란 무엇일까? 소논문 분량의 이 철학책엔 비트겐슈타인이 1930년대 초 러시아어 개인 교사였던 파니아 파스칼을 문병 갔을 때 일화가 나온다. 편도선을 제거하고 요양 중이던 파스칼이 “마치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에요”라고 죽는 소리를 하자 비트겐슈타인은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

저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 해리 G 프랭크퍼트는 이 일화에서 개소리의 의미를 분석해나간다. ‘비트겐슈타인은 파스칼이 진실에 대한 관심 없이 말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프랭크퍼트는 추정한다. “파스칼은 진술의 정확성이라는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진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프랭크퍼트는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했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거짓말과는 어떻게 구분할까.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프랭크퍼트는 말한다. 거짓말을 지어내려면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릿값에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큰 진리의 적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 같은 사람과 일상 대화를 해나가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내뱉는 엄살과 과장,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도 ‘개소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랭크퍼트가 비판의 지점으로 삼는 건 공적 사안에서 자신의 이익과 속셈을 위해 내뱉는 개소리들이다.

개소리의 뜻과 범주를 확장하는 이 책은 한국 사회 막말과 망언을 분석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한국의 공적 영역엔 사실, 진실, 진리엔 전혀 관심 없이 내뱉는 ‘개소리’들로 그득하다. 최근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가장 부합하는 건 목사 전광훈의 말일 것이다.

“(문재인이) 그의 (주체)사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인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군대를 비롯하여 언론, 정부, 시민단체까지 주체사상을 통한 사회의 국가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다.” 최근 수사조정권을 둘러싼 청와대와 검찰 간 갈등이나, 노동 문제를 두고 벌어진 정부와 민주노총의 대립에 관한 언론 보도를 한두 줄만 봐도 이런 말을 하긴 어렵다.

전광훈의 말들이 대개 이런 식이다. “세월호 사고가 난 거 좌파, 종북자들만 좋아하더라” “전교조에서 성을 공유하는 사람은 1만명이다.” 전광훈의 말은 혐오, 배제, 추방으로 점철된다.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은 사탄”이라고도 했다. 전광훈을 포함한 한국형 ‘기독교 우파’는 ‘북한’ ‘이슬람’ ‘동성애’ 3대 키워드로 극우 세력을 결집하려 한다.

‘전광훈류’와 단절하고 싶은가? 극우 세력의 ‘개소리’에 대안과 대책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진보개혁’을 자처하는 이들이 차별금지법 문제를 두고 전광훈 앞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밝힌 게 몇년 되지 않는다. 선거철 표계산을 두고 벌어진 어정쩡한 타협과 이상한 관용, 부끄러운 굴복은 오늘의 전광훈류를 강화·확산하는 데 일조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당시 야권 의원들이 낸 의원 입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현 대통령도, 현 총리도 당시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동성애와 양성애 등 ‘성적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은 2013년 2월20일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발의됐다. 이낙연도 이름을 올린 이 법안은 제안이유를 이렇게 썼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대부분의 인권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음.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엔 인권이사회, 유엔 경제문화사회적 권리위원회 등에서 차별금지법 채택 권고 및 촉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음.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일임.” 6년이 지났다. 20대 국회에서 정부 발의건 의원 발의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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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렇게 심장을 쫄깃하게 한 축구 경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36년 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멕시코에서 4강 신화를 쏘던 때도 이 정도로 승부가 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날 최고의 패배자는 생중계를 보다 승부가 기울었다며 성급히 TV를 끈 시청자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젊은 태극전사들이다. 이강인, 오세훈 등은 더 이상 틀에 짜맞춘 전술로 무장한 ‘한국형’ 전사가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기술에 창의력까지 장착한 ‘발칙한’ 전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승부의 또 다른 주역은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이었다.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과 세네갈전의 경기. 연장 전반 조영욱이 역전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VAR은 고비 때마다 승부의 균형추를 바로잡았다. 후반 14분 이지솔이 상대 수비수에게 밀려 넘어진 것을 심판이 VAR로 확인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여분 뒤에는 반대로 한국 수비수의 핸드볼 반칙을 잡아냈다. 이날 VAR은 모두 7번 가동됐는데, 심판이 손동작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VAR을 선언한 뒤 TV 화면에 ‘check / possibly penalty(페널티킥 가능성)’라는 표시가 뜨면 모두가 가슴을 졸여야 했다. 특히 한국이 2 대 1로 뒤지던 후반 막판 세네갈이 골문에 추가로 넣은 골이 VAR로 취소되지 않았다면 승부는 진작 끝났을 것이다. VAR의 역할은 심판 판정을 돕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이번 대회부터 페널티킥 키커가 공을 차기 전 골키퍼의 두 발이 모두 골라인에서 떨어질 경우 반칙으로 규정했는데, VAR은 어김없이 이를 잡아냈다. 후반 29분 이광연 골키퍼가 막은 세네갈 선수의 첫번째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때 오세훈의 첫번째 킥을 막아낸 세네갈 골키퍼의 선방이 모두 반칙으로 선언됐다.

당초 축구계 일각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VAR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VAR이 경기의 재미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오히려 오심 논란을 잠재우고 ‘축구 정의’를 구현한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축구 경기에 새로운 풍경이 추가됐다. 골을 먹었다고 마냥 실망하거나 반대로 골을 넣었다고 기뻐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VAR로 바로잡아야 할 곳이 어디 축구의 골뿐이랴.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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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방에 앉아 침대 옆에 놓인 시집을 읽습니다

당신이 비운 집

한쪽에 놔둔 식물에 물을 주라 하였기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도 봅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 한 병 꺼내 마셔도 좋다 하였기에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 희미한 삶의 냄새

이 삶은 달걀을 어디에 칠까요

무엇에 부딪쳐 삶을 깨뜨릴까요


이병률(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집을 비운 사람의 방에 잠시 들른 사람이 있다. 집을 비운 사람과 그 집을 방문한 사람은 서로 일상에서 친하게 교유(交遊)하는 사이. 메마른 화분에 물을 줘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러 가서 그이처럼, 그이가 읽던 시집을 읽고, 그이의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을 꺼내기도 한다. 그이가 되어본다. 그럴 때 시인은 책을 펼치고, 눕고, 혼자 먹는 이 일이 다름 아닌 삶의 희미한 냄새라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이가 매일매일을 사는 공간에서 우연히 그이가 되어봄으로써 그이의 생활과 마음 안쪽으로 들어가 보게도 된다. 그이 일상의 모래알 같은, 부서진 조각을 봄으로써 그이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도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씨와 작은 움직임 등을 읽음으로써 그이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물로 샘 전체의 물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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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대한 지지여론이 77.5%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기득권 정치는 반응이 없다. 국민소환제를 진지하게 추진하겠다는 움직임도 없다. 국회에 국민소환제에 관한 법률안이 3건 발의되어 있지만,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지역구 관리만 열심히 할 뿐, 국회라는 헌법기관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여당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 자유한국당과 협상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설사 협상이 타결돼서 국회가 열린들 며칠이나 가겠는가?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심의를 한들, 여당이 생각하는 대로 결론이 나겠는가?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국회의 모습은 반복될 뿐이다. 지금 미봉책으로 ‘타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문제를 더 곪게 만들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불가역적이고 포괄적인 정치개혁이다. 그것을 위해 필자가 몇 가지를 제안해본다. 

첫째, 국민들의 국회 불신을 걷어내려면 국회의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내년 예산부터 국회의원 연봉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리면 가능한 일이다. 현재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별표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은 월 101만4000원의 수당만 받아야 한다. 그런데 단서조항을 통해 국회규칙으로 수당을 올릴 수 있게 해놓고, 국회규칙에서는 다시 국회의장이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해놓았다. 이렇게 법규정을 변칙적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들 맘대로 수당을 올려온 것이다. 수당 외에 별도로 받는 ‘입법활동비’도 월 120만원으로 정해놓았지만, 마찬가지 방법으로 올려서 국회의원 1인당 월 313만6000원씩을 받고 있다. 

국회의장이 한국 정치를 바로잡을 의지가 있다면, 자신의 권한으로 국회의원 수당, 입법활동비 등을 대폭 삭감하기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현재 수당, 입법활동비 등을 합쳐서 연 1억5000만원이 넘는 국회의원들의 ‘셀프 연봉’을 대폭 삭감한다면, 정치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반복적인 국회 파행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묻는 의미도 있다.  

둘째, 각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 지도부는 자유한국당과의 어설픈 타협 시도를 중단하고, 원칙대로 패스트트랙 당시의 국회 난동사태에 대해 자유한국당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개혁에 뜻이 있는 모든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힘을 합쳐서, 과감한 국회 특권 폐지를 추진해야 한다. 

국민소환제 도입, 국회에서 사용하는 모든 예산의 영수증 첨부 의무화, 국회의원을 감시하고 연봉을 결정하는 독립기구(국회감사위원회) 설치, 국회의원 징계건을 다루는 기구에 외부위원 절반 이상 참여 보장 등의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이 대안들은 2009년 국회의원들의 예산 부정사용 스캔들이 터졌던 영국에서 이미 도입된 것들이다. 영국 하원의원 46명이 사퇴하고 142명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진통을 겪은 후에, 영국은 IPSA(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라는 독립기구를 설치해서 국회의원들의 예산 사용을 감시하고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 기구에서 국회의원들의 연봉도 조정한다. 2015년에는 국민소환제를 도입했고, 올해 5월3일에 첫 번째 소환된 국회의원이 나왔다. 영국 하원에 설치된 윤리위원회는 7명의 국회의원과 7명의 외부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서 출석정지 10일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자동으로 해당 의원에 대한 국민소환 절차가 시작된다. 윤리위원회의 징계 외에도 법원 판결에 의해 구금되거나, 예산 부정사용으로 처벌받으면 곧바로 국민소환 절차가 시작된다. 소환 절차가 시작되고 6주 내에 유권자의 10%가 소환 찬성에 서명하면 소환이 이뤄진다. 소환 대상자가 억울하면 그다음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면 된다. 이런 영국의 제도를 따라가기만 해도 대한민국 국회를 확 바꿀 수 있다.  

셋째,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 정당들은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지금 패스트트랙에 올려져 있는 선거제도 개혁안은 불충분한 점이 많다. 더 나은 방안으로 만들려면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선거제도는 절반짜리 ‘준연동형’이 아니라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추진하고, 앞서 언급한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전제로 의원 숫자를 증원하는 것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개헌 논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합리적 보수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개헌을 통해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직접민주주의 확대, 권력 구조의 민주적 재편을 이뤄내야, 국가의 비전이 다시 세워지고 정치의 문제해결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일들을 논의하고 추진하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범국민 정치개혁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정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추진되면 시민들도 지지할 것이다. 특권 폐지-국회개혁-선거제도 개혁-개헌을 통해 불가역적이고 포괄적인 정치개혁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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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한 곳은 대영박물관도서관이다. 거듭된 추방으로 유럽 각지에 쫓겨 다니며 살던 그는 30대 초에 영국을 마지막 망명지로 선택했는데, 죽기 전까지 30년이 넘도록 거의 매일 대영도서관을 다니며 이 문제작을 썼다.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첫 번째로 입장해서는 문 닫을 때까지 남아있던 그를 직원들이 종종 쫓아내야 했단다. 얼마나 독서와 집필에 몰두했는지 도서관에서 가끔 실신까지 했다니 그 몰입의 강도가 놀랍다. 마르크스만이 아니었다. 대영도서관은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코넌 도일, 버나드 쇼의 서재이기도 했다. 이들의 빛나는 작품들이 거기서 탄생했다.


얼마 전 도쿄경제대 서경식 교수가 글에서 ‘도서관적 시간’과 ‘신자유주의적 시간’을 비교했던 게 기억난다. 서경식 교수는 예산을 이유로 한 도서관들의 장서 폐기와 사서 감축을 보면서, 도서관의 존재가치를 ‘비용 대비 효과’로 계량하는 성과주의가 느리고 깊은 도서관적 시간을 밀어내고 있다고 한탄했다. 도서관의 시간은 한 개인 또는 한 정부의 수명으로는 잴 수 없고 장기적 기준으로만 그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주의는 확실히 책과 도서관의 적이다. 책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자기계발의 도구로 대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그런 용도로조차 책을 읽지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스마트폰의 검색과 SNS의 소통이 훨씬 효율적이니까. 간단하게 답을 얻을 수 없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구하는 사색의 시간은 효율의 이름 앞에서 숨을 거두고 있다. 아마도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타자를 혐오하는 언어가 넘쳐나고, 그도 아니면 반짝반짝 연출한 사진들로 인정을 구하는 풍경이 책과 도서관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생각이 물러나면 그 자리는 날것 같은 감정과 욕망들이 차지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 도서관에서 깊게 오래도록 책 읽은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종종 가기는 하지만 앉아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열람실은 비좁고 사람들로 혼잡하여 그 틈에서 책읽기에 빠질 것 같지가 않아서다. 젊은 시절 도서관이 주었던 그 경험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도서관’이란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안 때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부터다. 청소년에게 변변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라 도서관에 가면 뭔가 다른 재미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공부나 책읽기를 핑계 댔지만 사실은 친구들과 온종일 노닥거리기 일쑤였다. 머리가 제법 컸다고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같은 성인소설도 대출해 보았다. 야한 장면을 보려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막상 그 부분에 가면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 전혀 읽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에는 대학도서관이었다. 공부도 하고 시간도 때우고 여학생을 사귈 기회도 엿보고 시시때때로 시위도 벌어지는 학내생활의 주 무대였다. 두꺼운 원서를 대출해서 보곤 했는데, 실제로 읽은 부분은 고작 몇 페이지뿐 주로 남에게 보이려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한적한 여름방학의 도서관은 운치도 그만이었다. 텅 빈 도서관에는 창밖 숲속의 매미 우는 소리가 가득했고, 밤늦게 도서관을 나설 때는 뿌듯한 충만감 위로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도서관은 책을 읽어도 좋고 필생의 역작을 집필해도 좋고 그냥 시간을 보내도 좋은 곳이다. 나는 도서관이 반드시 책만 읽어야 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은 자기 자신을 도야하고 생각을 영글게 하고 다른 곳에서 얻지 못할 경험을 쌓는 곳이다.


요즘의 공공도서관은 도서 대출을 도서관의 가장 주된 기능으로 놓고 열람실을 차츰 줄이는 추세다. 수험생용 독서실로 변할 바에야 아예 열람 공간을 없애겠다는 취지인 듯하다. 수서 공간도 제한되어 있는지라 해마다 책 일부를 폐기하고 새 책을 채우는 일을 반복한다. 가벼운 베스트셀러가 늘 1순위이기 마련인 이용자들의 신청 도서를 먼저 구입하고 남은 예산을 쪼개 수서 가치가 높은 책 구입에 배정한다. 


높다란 천장에 널찍한 테이블, 묵은 책 내음 사이에 어둑한 통로, 창밖에서 흘러드는 아카시아 향기, 새소리…. 우리 경제 수준과 국가 예산이 이런 공간들을 곳곳에 마련할 만한 정도는 되지 않을까. 1년이 아닌 10년, 50년의 단위로 생각할 여지는 없는 것일까. 거기서 수험공부를 하든 연애를 하든 어떻다는 말인가. 젊은 날 도서관에서 보낸 한때의 시간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남을지를 생각해보면.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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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24일 퇴임하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후임을 인선하기 위한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추천위)가 오는 13일 열린다. 추천위는 지난달 검찰 안팎으로부터 추천받은 인사들 가운데 현직 고검장급 등 8명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검토 중이라고 한다. 추천위가 이들 중 3명 이상을 추천하면, 법무부 장관이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종 후보자의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된다. 차기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이지만, 과거 어느 총장도 해내지 못한 책무를 완수해야 한다. 바로 검찰개혁이다. 차기 총장이 갖춰야 할 최우선 자격요건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와 실천력, 리더십이다.

문무일 현 총장을 위시한 검찰 상층부는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권력기관 개혁안에 강력히 반발해왔다. 총장이 주권자의 대표인 국회를 향해 ‘민주적 원칙 위배’ 운운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였다. 이들은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이 커지면 국민 기본권이 약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권력에 굴복한 편파·부실수사로 기본권을 침해해온 것은 바로 검찰이었다.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검찰 조직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 대한 재수사 결과도 이를 다시 입증했다. 검찰은 ‘기소하지 않을 권한’을 남용해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에 면죄부를 줬다. 외압이나 유착 의혹을 받아온 다른 전·현직 검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차기 총장은 과거의 잘못된 타성과 관행, 조직이기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해 시민의 개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 연합뉴스

검찰은 부정하고 싶겠으나, 검찰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역대 정권에서 번번이 좌초했던 검찰개혁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데 공동체의 합의가 이뤄진 터다.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여야 4당 합의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검찰개혁은 권력과 유착해온 극소수 검사를 제외한 대다수 검사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임관할 때 선서했듯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차기 검찰총장은 2200여 검사들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가진 인물이 맡아야 한다. 대통령이 총장 인선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를 떠나 최적임자를 인선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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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의 기괴스러운 언행이 가관이다. 전 목사는 지난 5일 시국선언문이라는 것을 내고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종북화, 공산화됐다” 운운하며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엉뚱한 하야를 주장하면서 내세운 이유라는 것이 온통 가짜뉴스에 저급한 색깔론, 뒤틀린 혐오로 가득하다. ‘하야 망언’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전 목사는 8일 문 대통령을 독일 히틀러에 비유하며 “하야할 때까지 청와대 앞에 캠프를 치고 1일 릴레이 단식 기도회를 하겠다”고 했다. 가당치 않게 히틀러 나치즘에 저항한 독일 신학자 본회퍼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생명을 걸고 문재인을 책망하기로 했다”는 데 이르면, 그 도착적 망상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앞서 전 목사는 지난해 말 목회자 집회에서 문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청와대로 진격해야 한다”고 선동했다고 한다. “한국교회 연합 조직으로서의 대표성을 잃은 지 오래”지만, 명색이 한기총 대표회장을 맡고 있는 목회자의 발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망발이다. 이쯤이면 목회자의 탈을 쓴 극우 파시스트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오죽하면 한기총 총회 대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145명이 성명을 내고 전 목사의 사퇴를 촉구했을까 싶다.

사실 전 목사의 극우 성향 발언과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열린 ‘문재인 대통령 퇴진 총궐기’ 행사도 전 목사가 극우 성향의 개신교 목사들과 함께 주도했다. 2007년 대선 때는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설교했다. 얼마 전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하나같이 신앙의 본령은 물론 정교분리라는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행각이다.

태극기부대 등 극우 세력의 준동과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한국당, 여기에 종교적 명분을 입혀주려는 전 목사 같은 일부 극우 목회자들의 선동질은 종국에 공동체를 좀먹는 재앙이 되기 십상이다. 선량한 목회자와 신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결국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신성모독’의 결과를 낳고 있는 전 목사가 있어야 할 곳은 청와대 앞이 아니다. 기독교계 원로인 손봉호 교수의 고언으로 대신한다. “조용히 물러나서 회개하고 아주 건강한 시민으로 봉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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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실규명을 밝히는 증언의 의미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은 겨울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과 때이른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6월7일 현재 117일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중이다. 지난 2월8일 지만원 초청 국회공청회 이후 농성단은 망언3적 국회제명, 전두환과 지만원의 구속수사,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 5·18진상조사위 즉각 가동이라는 목표 아래 활동해왔다. 특히 10차에 걸친 매주 목요일 5·18행동의 날에 구체적인 증언과 사실을 토대로 학살과 왜곡의 주범들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지며 굳은 의지로 투쟁을 계속해 왔다. 

촛불혁명으로 당선되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올리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자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만원 일당과 극우 유튜브들의 악의적인 왜곡선전이 기승을 부리는 중에도 올해 5·18은 의미있는 계기를 맞았다. 39년간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한 전 미군 501정보여단 소속 김용장씨와 505보안대 특명반장 허장환씨의 매우 뜻깊고 소중한 증언에 뒤이어 오원기씨, 문용식씨, 최종호씨 등의 양심고백이 나왔다. 과거 힌츠페터 등 외신기자들의 활동과 헌틀리, 피터슨 선교사 부부의 증언, 이경남과 신순용, 최영신씨 등 계엄군의 용기있는 증언이 계속 나왔지만 올해의 증언은 양과 내용의 중요성에 있어 의미가 매우 컸다. 재조사에 대한 전국적 여론이 높아지고 5·18진실 말하기운동의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로써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던 80년 5월21일의 전남도청앞 집단학살은 그 실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전두환이 이날 헬기를 타고 정오 무렵 광주에 도착해 K-57 제1전투비행단장실에서 정호용, 이재우 등과 회동한 것은 이제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헬기사격이 시행되었고, 도청 앞에서는 앉아쏴 자세로 집단발포가 이루어져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앉아쏴 자세는 자위권이 아니라 사살명령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한 조준사격이라는 증언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200여명 행방불명자의 의문에 대해서도 이들의 소중한 증언으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계엄군이 항쟁 진압후 가매장했던 시신을 파내 지문을 채취하고 광주 국군통합병원에 설치한 임시화장장에서 소각하는 한편 일부는 시청의 쓰레기차에 실어서 매장했고 일부는 수송용 헬기로 바다에 투기했다는 증언은 이제 검증과 조사를 통해 국가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5·18 증언에 대한 물타기 공격의 의도를 묻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증언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포함한 물타기와 왜곡의 가짜뉴스 대량유포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황석영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 번역자라는 설갑수씨의 경향신문 6월3일자 기고문은 충격적이다. ‘5·18의 꿈같은 증인 김용장은 미 육군 군사정보관이 아니었다’라는 제목의 글은 바로 그날 뉴데일리 등 극우 인터넷 신문과 ‘펜 앤드 마이크’ 등 그동안 5·18 왜곡에 앞장서 온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 바로 인용되며 김용장씨 증언의 신뢰성에 커다란 흠집을 냈다. 이는 마치 도둑을 신고하니 어떻게 도둑인지 알았느냐, 당신이 누군데 도둑이라고 신고하느냐 시비를 거는 상황과 흡사하다.

설씨는 제목에 ‘…이 아니었다’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썼고, 특히 ‘위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증언 전체가 가짜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설씨는 누구이길래 이런 글을 무슨 이유로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스스로 글을 써서 투고했을까? 그는 영문판 <Gwangju Diary>를 번역한 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마저도 5·18기념재단으로부터 돈을 받고도 마치 받지 않고 봉사한 것처럼 선전해왔다가 나중에야 돈을 분배했다고 변명했던 사람이다. 2년전 5·18기념재단이 UN에서 열었던 학술회의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가 출연한 것과 관련하여 마치 5·18기념재단과 광주를 대변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행세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군 정보보안사령부 등 민감한 기관에 개인적으로 질문해 알아낸 사실이라며 김용장씨의 신분과 증언의 신뢰성을 공격했다.

김용장씨의 신분에 문제를 제기한 설씨의 신분 역시 확실하지 않다. 그는 2017년 광주지역 매체에 자신을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의 기자였다고 소개한다. 설씨의 글이 몇 차례 실린 ‘Property Casualty 360’은 해당 매체의 생명보험 정보관련 에디션이다. 설씨는 또 자신이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컨설턴트이자 미국 Unite Here! 노조의 분석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대립하는 측에서 확인해보니 두 곳 모두 설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회답을 받았다고 했다. 

5·18농성단 측에 걸어온 전화에서 설씨는 단지 김용장씨가 미군 정보요원인지 아닌지가 5·18의 핵심적 진실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해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충심에서 우러난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고문이 공개되었을 때 일어날 파장에 대해서도 이미 예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농성단 측은 이전 그의 행적을 미루어볼 때 그의 말과는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개연성을 포착했다. 5·18관련자는 물론 시민단체와 민주시민들이 5·18의 진상규명에 몰두해 있고, 5·18에 관한 모든 정보를 보고받은 미국이 살인마 전두환을 지원한 책임이 몇몇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다. 팀 셔록의 체로키 파일 분석에 의하면 5·18 당시 한국 주재 CIA 요원 그레그는 전두환에게 광주항쟁을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린 1980년 5월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PRC)의 핵심 참석자였고, 설씨는 그레그와의 밀접한 관계를 수차례 발언한 바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갑자기 김용장씨의 증언을 위증이라 하며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그가 가졌다고 주장하는 5·18에 대한 충심을 되려 의심케 한다. 오히려 5·18에 대한 책임을 일관되게 부인해온 미국의 태도에 편승 혹은 나아가 옹호하려는 숨겨진 다른 목적을 겨냥한 의도적 왜곡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무지에 발붙인 은밀한 목적의 왜곡행위를 사죄하라

첩보의 세계에서 신분이란 비밀에 속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소속기관을 회사라고 부르고 서로 사장, 이사, 부장으로 부르며 특수임무의 경우는 더욱 남이 쉽게 알 수 없어야 한다. 설씨가 김용장씨를 단순 통역관 또는 언어전문가라며 정보관련 업무에서 배제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다. 본 농성단에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당시 광주 주재 미 501정보여단 요원이었던 그린 그릭(Green G. Greek)은 한국어를 알지도 못하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고, 처음 김용장씨가 통역관으로 들어간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실제 정보수집 현장에 투입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보고서 역시 김용장씨의 손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본부와 본국 정부에 보낼 때는 그릭이 자신의 고유코드로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설갑수씨의 사실확인 요청에 미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 공보국이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정보전문가로서 훈련받거나 고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 신원이 불확실한 민간인에게 국가안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이 소속 요원에 대한 정보를 사실 그대로 공개할 리 없다. 정보기관 요원은 퇴임시 근무 중 취득한 정보를 일체 발설하지 않는 기밀보호 서약을 하고 나온다. 설갑수씨의 질문에 그들이 사실 그대로 말하리라는 것은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5·18 당시 서울 공군 706보안부대장 운전병이었던 오원기씨는 최근 광주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1980년 5월21일 미 8군 용산 헬기장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귀빈용 공군 헬기에 혼자 탑승한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전두환이 5월21일 광주행 헬기를 타고 내린 곳의 증언이 둘 다 있는 것이다. 김용장씨의 진술 하나만으로 전두환의 광주 집단사살 명령이 증명된 것이 아니며, 이를 뒷받침하는 양심고백이 더 나와야 한다. 우리는 이미 80년 당시부터 5·18에 대한 모든 기록이 왜곡 조작되었고 그 이후 80위원회와 5·11대책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광범위하게 조작과 증거인멸이 자행되었음을 알고 있다. 미국이 30년이 지난 기밀해제 자료들을 한국 측에 제공할 때도 검게 칠하고 가려놓은 채 복사해 보내서 진실을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던 것도 그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설씨는 기고문에서 외국인 철수작전(NEO)을 부인하며 김용장씨가 거짓말을 한 증거로 선교사들의 증언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외무부의 기록에는 전시 또는 천재지변 상황에나 실시되는 자국민 소개에 미국인 23명 일본인 14명이 광주와 목포를 벗어난 것으로 되어있으며 한국 공군과 보안사 기록에도 증거가 남아있다.    

더 이상 검증 없는 주장과 거짓에 5·18 진상규명의 초점이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설씨는 그의 기고문을 끝맺었다. 그러나 설씨의 주장은 최근 수세에 몰려있던 극우세력에게 반격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어준 왜곡행위가 되었다. 이로 인해 39년간에 걸쳐 진실규명 투쟁을 해온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 모든 민주시민의 가슴은 멍들었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와야 할 계엄군 측의 양심고백과 증언을 주저하게 만드는 후유증이 예상된다. 5·18의 충심을 가장한 그의 행위는 더욱 가증스런 일이다. 설씨는 지금이라도 그의 감추어진 목적과 헛된 소영웅주의를 포기하고 5·18영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함이 마땅하다.

<김용만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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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리라… 그리 마음먹고 가지만, 기실 바람이 아니다 보니, 그물에 걸리면 생채기가 생긴다. 이렇게 부딪쳐 가다 보면 결국 그물이 찢길 터. 그리 믿고 씩씩하게 걷자. 그리고… 내 뒷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이 그물을 찢어버리고 말테다.”

2012년 9월, 민주화운동 거목이신 박형규 목사님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논고하며 검찰 과오를 반성하였다가 간부들에게 시달린 후 일기장에 남긴 다짐입니다. 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저처럼 괴로움을 겪지 않아야, 후배들이 떳떳한 삶을 한결 쉽게 선택할 수 있고, 그래야 사법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겠지요. 검사이자 선배의 의무입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고위 인사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가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5월31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로 들어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해 12월, 또 다른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무죄라고 말하기 위해, 검찰청법 조문 사이에 잠자고 있던 이의제기권을 깨웠습니다. 이의제기권은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에 저항할 수 있는 합법적인 무기라, 2004년 도입되었음에도 수뇌부가 절차규정을 만들지 않는 방법으로 사문화시켜 검사들이 그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법전을 뒤지다 우연히 이의제기권 조항을 발견하고, 누가 감히 행사할까 싶어 웃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제가 꺼내들고 있었지요. 중징계 받았지만, 5년에 걸친 소송 끝에 징계는 취소되었고, 업무 특성상 절차규정을 만들 수 없다고 우기던 검찰은 2017년 12월 절차규정을 결국 만들었습니다.

안도하고 감사하면서도, 무언가 미진하고 허전했습니다. 뭘까? 왜지? 금방 답을 찾았습니다. 항명을 용납하지 않는 조직 문화에서 ‘누가 감히 행사할 수 있나’라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이의제기권은 다시 잠들어버릴 것이란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속 저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2018년 3월, 저는 검사들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징계하고 수사해 달라고 내부 제보시스템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에 복종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에 가담하면, 검사들도 처벌 받는다는 명확한 선례를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지요. 항명으로 인한 불이익도 두렵지만, 복종으로 인한 불이익이 더 크면, 검사들도 결국 이의제기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 없이 상급자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은 검사일 수 없습니다. 그런 검사들을 처벌하여 상명하복을 최우선시하는 검찰의 조직 문화에 경종을 울려 검찰 기강을 바로 잡아야만, 검찰이 바로 설 수 있고, 검찰이 바로 서야만 사법 정의도 바로 섭니다. 그래서, 저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동료들의 잘못을 조사해 달라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검찰에서 노골적으로 ‘제 식구 감싸기’를 하여 사표만 수리하고 사건을 덮었다가 외력에 떠밀려 뒤늦게 수사 중인 사건들이 마침 있었고, 검사들의 범죄를 눈감아준 검사들에 대한 징계시효와 공소시효가 다행히 남아있어, 선례를 만들 천재일우의 기회였지요. 그러나,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스스로에게 족쇄가 될 선례를 결코 만들려 하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정능력이 있는 검찰이었다면, 지금처럼 거센 개혁 요구에 직면하지 않았을테까요.

예상대로 대검은 2015년 부장검사와 귀족검사의 성폭력범죄를 은폐한 자들에 대한 징계와 수사 요청을 묵살했습니다. 부득이, 저는 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으나 1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습니다. 대검에서 이미 직무유기가 아니라고 선언한 사건이라 중앙지검의 결론이 다를지… 그리 기대하지 않았습니다만, 고발인 조사를 받고 보니 더욱 기대를 접게 되었습니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아직도 확고한 검찰 현실이고, 기소 독점권과 수사권으로 쌓아올린 검찰의 방어벽은 너무도 강고합니다. 재정신청을 염두에 두고 고발장을 제출한 것이라 실망할 것 없는데도, 서글픈 마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2016년 부산지검 귀족검사의 공문서위조 은폐 사건’을 가지고 경찰청으로 갔습니다. 상명하복이 검사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 없고, 검찰의 조직적 일탈도 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는 선례를 만들 때까지 계속 두드려 볼 각오니까요. 5월31일, 경찰청에 출석하여 포토라인에 서서 카메라와 마이크 너머 자욱이 날아오는 돌팔매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아리지만, 어차피 가기로 작심한 길이니 비명 대신 노래 부르며 가려 합니다. 현재의 검찰에 대한 슬픈 노래(哀歌)이자 마땅히 있어야 할 그 검찰에 대한 제 사랑 노래(愛歌)가 지금은 너무도 미약하지만, 언젠가 동료들과 함께 어우러져 함께 부르는 합창이 되는 날, 검찰이 진정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검찰로 우뚝 서겠지요. 그날이 언젠가 오리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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