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산물 도매시장과 관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고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데 중요한 통로가 되는 도매시장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농산물 유통에서 도매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도매시장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진정 우리 농업인과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와 논리가 필요하다. 이해관계자들의 파워게임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은 시장과 정책 모두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5년 가락시장부터 건설하여 현재 전국에 33개의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매시장 정책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농업정책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되며 세계적으로도 내놓을 만한 유통모델이다. 기존 후진적인 위탁상 중심의 유사시장을 흡수해 영세하고 교섭력이 없는 농업인들을 위한 근대적 도매시장과 경매제를 운영해 왔다.

도매시장의 핵심 유통주체는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이다. 도매법인은 농업인의 농산물을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중도매인은 낙찰받은 농산물을 마트, 식당 등 수요처에 판매한다. 이러한 이유로 도매법인은 높은 가격에 팔고자 하고, 중도매인은 낮은 가격에 구매하고자 한다. 서로 견제관계인 두 주체 간 거래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우리나라 농산물 거래의 표준 역할을 한다. 

물론 그동안 도매시장 운영 과정에서 유통주체별 역할과 경매거래제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왔고, 정부에서도 경매제도의 단점 보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시장교섭력이 낮은 중소 농업인들에게 ‘출하 선택지’를 늘려주기 위해서는 유통주체에 대한 진입규제를 없애고 도매시장 상인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주장들이 농업인들이 출하하는 농산물의 판매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얻을지, 아니면 상인들의 ‘구매선택지’만 늘려 농업인들의 거래교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간 견제와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어느 일방의 혜택을 확대,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가 된다.

도매시장 유통주체에 대한 규제와 거래제도 개선은 농산물 제값 받기와 가격진폭 완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제도는 유통환경 변화를 고려하여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되어야 한다. 다만 가격교섭력이 없는 중소 농업인들을 도외시하고 상인들의 흥정에 의한 거래방식과 가격결정 구조를 늘리는 것이 규제완화이자 자유시장경제라고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공영도매시장은 농업인과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상인들은 맘껏 장사하되 공적인 통제를 받는 것이 근본 취지다. 도매시장이 농업인과 소비자를 위한 역할 및 기능이 크게 감소했거나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거래시스템을 개혁하는 게 마땅하다. 다만 농민의 유일한 소득원이며, 소비자의 먹거리인 공영도매시장의 특성상 운영의 공공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다. 정부에서 유통포럼을 운영해 도매시장 문제를 적극 진단하고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다니 기대해 본다.

<김병률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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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양파가 오고 있다. 황토밭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드센 바닷바람을 꿋꿋하게 버티면서 속을 채운 무안 양파는 아삭아삭하고, 매콤하면서도 달다. 입맛 없을 때, 양파 하나 썰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그늘에 잘 매달아두면 몇 달이 지나도 무르지 않는다. 늦봄에 받은 양파를 가을까지 너끈히 먹을 수 있다. 

무안에서 나고 자라 어릴 적 내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양파밭으로 달려가야 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파란 바닷물처럼 일렁이는 초록빛 밭 풍경만 떠올렸다. 일이 있어 무안에 갔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양파밭이었다. 바닷가 양파밭의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마침 겨울이었다. 겨울 양파밭은 붉었다. 손가락 길이의 가느다란 이파리를 내민 양파는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 이파리가 해풍에 맞서며 꼿꼿하게 서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는 동안 땅 밑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려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날 양파밭은 허탕이었으나, 우연히 들어간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백반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무안을 다녀온 뒤로 무안 양파를 받을 적마다 붉은 밭과 푸른 바다와 음식 솜씨가 빼어난 식당을 떠올렸다. 그 무안 양파를 이제는 집에 앉아 받아먹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양파를 보내주던 친구의 아버지가 몇 해 전에 돌아가셨고, 연로한 어머니 혼자 양파 농사를 짓기는 어려우실 테니까. 친구는 주말마다 가서 일을 거들었지만, 몇 해나 버틸까 싶었다.

그런데 친구의 막내동생이 서울에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반가웠다. 지금껏 악착같이 한 게 없어 형제들이 미더워하지 않았는데, 웬걸 동생은 토양에 맞는 좋은 품종을 고르고, 기계를 써서 비용을 낮추고, 직거래 통로를 만들었다 한다. 반년 새 양파 전문가가 된 동생은 동네 어르신들 농사도 돕는다고 했다. 동생은 겨울을 이겨낸 양파처럼 어려운 시기를 스스로 넘어선 것이다. 그 장한 초보 농민의 첫 수확물이 지금 오고 있다. 

며칠 전, 양파값이 폭락해서 출하가 늦어진 양파를 폐기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몸에 좋은 무안 양파를 꼭 챙겨 먹을 때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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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인 <괴물>의 영어 제목은 ‘The Host’였다. 호스트는 손님을 초대한 주인, 주최자, 숙주(宿主) 등의 뜻이니 조만간 ‘기생충’이란 영화도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기생충>의 주인공 부부 이름도 기택과 충숙이다. 봉 감독은 근대성, 한국 현대사,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뛰어나게 변주한다. 영화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일관된 사유가 있다. 이번 작품 도 그 자장 안에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세르의 <기식자(Le Parasite)>는 기식을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본다. 그래서 책 제목도 기생충(寄生蟲)이 아니라 기식자(寄食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대개 “기생충 같다”라고 표현하지만 기생은 생산성(환경 파괴)을 최고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기생’은 오해와 낙인이 많은 단어다. 과거 기생은 여성의 직업이었다. 그들은 놀고먹지 않았다. 기예를 갖추고 일하는 이들이었다. ‘기생충’은 여기에 ‘벌레 충’까지 붙었다. 벌레가 생태계에 기여하는 역할을 생각하면, 인간이야말로 벌레보다 못하다. 맘충, 설명충처럼 한국사회에서 혐오의 접미사가 된 벌레는 억울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생에 해당하는 영어 ‘parasite’는 ‘para’와 ‘site’의 합성어이다. ‘para’는 “옆에, 나란히, 같이” 등의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기생은 타인과 같이 산다는 뜻이다. 숙주와 기식자는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같이 사는 사이다. 삶의 주최자는 손님이 필요하다. 숙주도 다른 숙주에게는 기생하는 존재이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미셸 세르는 최고의 기식자를 왕(王)으로 보았다.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포스트 휴먼’이라고 불릴 정도의 기이한 세계를 살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질주가 그것이다. 빈부의 양극화는 건강, 교육, 문화 등 일상은 물론 인생과 자아의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의하면, 당대 국가와 자본의 목표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재생산은 국가의 부를 생산하는 데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국가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탈락시켜 국민을 ‘잉여’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고용의 종말은 필연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논란이 되었던 “좌파 신자유주의”는 모순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비극은 이 폭력적 자본주의 자체는 속수무책이고, 현실 정치는 이 과정의 방식을 얼마나 ‘인간답게’ 다룰 것인가를 둘러싼 속도 조절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 아베 일본 총리는 자국 영화의 수상을 축하하기보다는 일본 사회의 주변부를 그렸다는 이유로 못마땅해했고, 평소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고레에다 감독은 뒤늦은 총리의 축하전화를 거절했다. 예술이 권력의 선전 도구가 아닌 한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세계를 조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이 없다면 할 이야기도 없고, 따라서 예술도 없다. 

<어느 가족>의 자국어 제목은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이다. 두 작품 모두 기존의 가족 제도와 양극화 시대를 매개시킨다. 가족은 애초부터 계층 재생산의 핵심이 아니던가. <어느 가족>에서도 일하지 않는 이들은 없다. <어느 가족>과 <기생충>은 작품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자립과 의존, 주인과 식객, 시혜와 수혜의 의미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면에서 닮았다. 

통념과 달리, 자립의 상대어는 의존이 아니라 독점이다. 인간 생활에서 완전한 자립은 가능하지 않다. 자립의 반대는 독점이거나 고립이다. 지역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가로막는 것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독점이다. 글로벌 경제란 일국 내부의 자본주의 분업이었던 도시-농촌의 위계가 전 세계적 지역 분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각 나라 ‘특산품’의 품목과 경쟁력은 같지 않다. 미국은 무기부터 쇠고기까지 모두를 팔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렇지 않다. 빈부 격차는 필연적이다. 

작품의 시선은 기생의 약함이나 쓸모없음이 아니라 기존 개념을 질문한다. 우리에겐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기생이 뭐 어때서?” “진짜 기생하는 인간들이 누군데!” “기본소득은 당연해!” 이 시대, 기생은 전쟁의 대안이다. 공존하지 않으면 공도동망(共倒同亡)이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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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인문학 가운데 철학과 역사학은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 사회과학의 기초를 이뤄왔다. 그러면 문학은 사회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학 가운데 사회과학에 영감과 통찰을 안겨준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1984>를 들고 싶다. 특히 <1984>는 사회학·정치학·신문방송학 등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오웰은 이 소설에서 당대 현실을 해부한다. 그가 겨냥한 것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비판이다. 둘째, 오웰은 미래 사회를 전망한다. 그가 우려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감시사회로서의 미래다. 오웰이 예견한 것은 디스토피아 세계다.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라는 우울하고 섬뜩한 오웰의 경고는 정보사회에 대한 선구적인 통찰을 이뤄왔다. 널리 알려졌듯 <1984>는 초고가 쓰인 1948년의 ‘48’을 ‘84’로 바꾼 것이다. 이 초고가 1949년 6월8일 세상에 나왔으니 지난 토요일은 <1984> 출간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서구 사회에서 오웰의 <1984>가 누린 명성은 앞선 세대의 고전들에 필적했다. 2009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주요 언론사와 대형 도서관의 추천도서 목록 및 관련 기록을 토대로 뽑은 ‘역대 세계 최고의 100대 명저’에서 <1984>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3위를 기록했다. <1984>는 2007년 일간지 가디언에 의해 ‘20세기를 가장 잘 정의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4>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제목인 1984년에 치러진 지구적 이벤트였다. 1984년 1월1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과 유럽을 인공위성으로 연결한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빅브러더’의 대중 통제와 조작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오웰의 전망에 이의를 제기했다. 백남준이 주목한 것은 소통을 위한 매체로서의 텔레비전의 기여였다. 텔레비전의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소통의 자유라는 긍정적 측면보다 대중의 통제라는 부정적 측면이 더 크게 보이니 백남준보다는 오웰의 견해에 더 가까운 셈이다.

<1984>가 지난 70년 동안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며 미쳤던 가장 중요한 영향은 감시사회로서의 현대사회의 그늘에 대한 성찰적 계몽에 있었다.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 오세아니아는 텔레스크린·사상경찰·마이크로폰 등을 이용해 개인의 생활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 감시와 통제를 위해 오웰이 내세우는 허구적 존재가 빅브러더다. 빅브러더는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한 일망감시체제인 ‘파놉티콘’(원형 감옥)과 닮아 있고, 오늘날 우리 일상이 속속들이 기록돼 있는 ‘빅데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1984>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당의 슬로건이다. 당은 과거의 기억을 통제하고 조작하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 대한 항구적 감시 체제를 완성한다. 감시 체제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분석하듯 자본주의·산업주의·군사적 힘과 함께 현대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자, 정보사회의 도래와 진전으로 더욱 강화돼온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한 그늘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오웰의 비관적인 전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1984>의 텔레스크린·사상경찰·마이크로폰 등에 대응하는 오늘날의 신용카드·e메일·휴대전화·폐쇄회로(CC)TV·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은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킨 것인가, 구속시킨 것인가. 둘 다 옳다는 절충적 관점에서 우리 인류는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자유의 확장’과 함께 그 기술적 전체주의가 낳아온 ‘자유의 구속’이 공존하는 ‘이중 사회’의 그물망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오늘날 시민 다수의 사생활을 이제 국가와 기업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추적하고 감시하며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웰이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일관된, 그리고 성찰적인 비판이었다. 빅데이터, 가짜뉴스,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우리 시대에 <1984>는 현재진행형이다. <1984> 출간 70년을 맞이하여 조지 오웰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은 이유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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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과 유럽의회를 방문했다. 의회 곳곳을 안내하던 관계자가 메인 프레스룸 입구에 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Anna Politkovskaya(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군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등 러시아 정부 비판 기사로 명성을 얻었다. 용기있는 탐사보도로 수많은 언론상을 받았으나 2006년 10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였다. 살인범 5명은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EU 출입기자와 유럽의회 의원들은 기자정신을 기려 공식 브리핑이 열리는 프레스룸을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룸’으로 명명했다.

러시아의 언론환경은 엄혹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사례가 잦다. 2009년 ‘노바야 가제타’의 아나스타샤 바부로바 기자가 총에 맞아 숨졌다. 지난해에는 푸틴 정부의 ‘시리아 용병 파견’ 의혹을 파헤쳐온 ‘노비 덴’의 막심 보로딘 기자가 자택 발코니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는 최근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19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49위를 기록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온라인 매체 ‘메두자’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반 골루노프가 지난 6일(현지시간) 마약 소지·거래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골루노프의 소변검사에선 마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두 달간의 가택연금 명령으로 대신했다. 언론은 지면을 통해 골루노프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베도모스티·코메르산트·RBC 등 3개 일간지는 10일자 1면을 일제히 ‘나/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살해당하기 1년 전 운명을 예감한 듯 이야기했다. “위험은 내 일의 일상적 부분이 됐다. 하지만 내 임무를 멈출 수는 없다.”(BBC 인터뷰)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추구하는, 세계의 모든 기자는 ‘이반 골루노프’요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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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시민으로서 자기 견해를 가지고 당당하게 발언하는 여성·청년들은 ‘너는 너무 정치적’이라는 타박을 듣기도 한다. 때로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보통의 생활인뿐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민망하고 부담스러우며, 천박한(?) 것으로까지 간주된다. 요즘처럼 현실정치가 천박한 막말과 서민의 삶과 무관한 정쟁으로 점철되면 다시 탈정치·반정치의 힘은 커진다. 

그런데 이 같은 정치에 대한 의도된(또는 강요된) 무관심은 한편 역사적으로 구성된 정치문화의 일부이다. 멀리 가면 태생부터 외세의 침탈과 극단적 이념대립 때문에 수많은 지사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현대 한국 정치가 배경이다. 예컨대 황순원 같은 대작가가 <소나기>(1953) 같은 초등학생들의 ‘순수한’ 우정(?) 이야기 같은 것을 쓰거나 평생 칼럼 같은 ‘잡문’을 멀리한 것도, 그가 겪은 참담한 이념 대립과 강요된 사상전향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군부독재 시절 부모들은 자녀들이 운동과 정치에 가까이 갈까 늘 전전긍긍했다. 박정희·전두환에게 저항한 사람들이 어떤 희생을 당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라 상징되는 퇴행의 시대에는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강하게 새로 구조화되었다. 그래서 학생은 학생운동으로부터, 교수는 학술운동으로부터, 시민들은 노동운동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누가 조장하고 누구에게 유리한 것이었을까?

과도한 정치열과 정치혐오(냉소)가 동전의 양면으로 상존하는 한국에서 ‘건전하고 성숙한’ 정치적 시민으로 살고 처세하기란 쉽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정치라는 ‘바보’에게 ‘웃으면서 화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2016~2017년 ‘웃으면서 화내기’의 높은 경지를 실행해보았다. 촛불항쟁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온통 망쳐놓은 정치에 대한 고도의 ‘웃으면서 화내기’였다. “이게 나라냐?” 시민들은 실로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매주 장수풍뎅이연구회, 민주묘총, 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고산병연구회 같은 깃발들을 들고나와서 창의력을 뽐내고 아이와 가족들 또 친구들과 함께 ‘직접행동’을 수행했다. 그것은 혹자들의 안타까운 바람처럼 혁명에는 못 미쳤지만, 분명 대단한 민주주의의 성취였고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높은 ‘반폭력’ 시민성의 증거였다. 시민들이 너무 빨리(?) 정치를 정치인들과 새로 선출된 정부에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것은 차라리 아쉬웠다.

그런 고도의 정치능력은 오랜 시간의 단련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원점에는 1980년의 광주항쟁과 1987년의 6월항쟁이 있다. 32년 전의 오늘, ‘웃으며 화내기’는 불가능했다. 쏟아지는 최루가스와 백골단 폭력 앞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전국의 민정당 사무실과 파출소를 공격했다. 항쟁을 겪었던 부산이나 광주에서만이 아니라, 대구나 대전처럼 얌전한(?) 동네에서도 그랬다. 시민들은 물론 이 ‘반폭력’을 찬성하고 격려해주었다. 

‘87년체제’는 지루하고 낡았지만, 시민들은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다하며 직접행동과 대의제 양쪽을 다 사용하여 일상과 헌정을 지켜내는 정치적 능력과 경험을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 ‘선진’ 정치문화가 아직은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 극우 정치종교에 기댄 시대착오와 냉전 공안 세력이 실재한다.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천박한 인식과 사세에 맞지 않는 ‘좌파’ ‘독재’ 따위의 어설픈 수사, 군복과 태극기를 두른 패션이나 군가와 새마을노래 등이 난무하는 태극기집회는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그 수준은 한국 민주주의 문화의 일부이다. 

태극기집회를 눈여겨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그 옆을 지나가는 보통의 시민들과 젊은이들이 거기에 어떤 눈길을 보내는지? 황당함, 불편함, 경멸, 연민 등일 것이다. 그럼에도 90%의 시민들은 그들에게 항의하거나 시비 걸지 않는다. 황당한 내용의 집회를 열고 쿠데타를 선동하거나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활개 칠 ‘자유’조차 봐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두운 한국 정치사와 타락한 기득권을 반영하는 안쓰러운 행위임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보수’가 조장하는 수준 낮은 정치문화에 대한 시민들과 생활인들의 인내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 시민들이 전두환의 포악과 박근혜의 암둔함을 내친 항쟁의 단호한 주체였다는 점을 6월항쟁 기념일에 새겨본다. 특히 여성·청년들에게 ‘너는 너무 정치적’이라 타박하지 마시라.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야말로 ‘꼰대’이거나 새로운 시민정치의 싹을 배제하려는 술수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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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상사와의 갈등을 겪느라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그가 회의 시간에 상사에게 소위 ‘바른말’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완전 찍힌다고 경고했을 때 그만뒀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됐고 결국 마지노선을 넘고 만 거죠.”

그는 그때부터 상사의 교묘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했다. 어느 날은 터무니없게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일을 끝내 놓으라 했다가 또 어느 때는 프로젝트에서 아예 배제하는 식이었다. 동료들도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대놓고 이의 제기를 하지는 말라고 충고했다. 시간이 흐르면 상사도 지칠 테니 그때까지 참는 것이 진짜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그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는 점이었다. 

“요즘은 퇴근해서 집에 있는 동안에도 아내나 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것보다 그 인간 미워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형편이에요. 처음엔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죠. 어느 날 아내가 콕 집어서 지적해 주기 전까지는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자기한테도 말하기 힘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실제 일어난 일보다 훨씬 격렬한 감정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분노라는 한 가지 감정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계속해서 확대하고 증폭시켜 온 것이었다. 그는 매우 분노한 채로 마음속에 쌓여 있던 감정들을 여과 없이 다 쏟아냈고, 그것만으로도 아주 후련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얼마나 자주 실제보다 어마어마하게 부풀려지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비로소 자신도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물론 그의 사례는 조금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물체다. 그리고 생물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다. 따라서 힘든 일이 있으면 고통스럽고,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고, 불쾌한 일이 있으면 화가 나고, 무서운 것이 있으면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다만 거기에 더해 그런 감정을 확대하고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있으니, 그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다. 계속해서 그 생각에만 골몰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상황을 더욱 나쁜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황에 맞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기쁨, 우울,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은 그것을 겪어내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또한 상황에 어울리는 적절한 감정들은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떤 것 때문에 상처를 잘 받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지표가 되어 준다. 특히 그런 감정들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불편한 감정을 덜 경험하는 지혜를 쌓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일어난 상황보다 지나치고 부적절한 감정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충동적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상황에 맞는 감정을 적절하게 습득하는 것이야말로 곧 우리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인간관계를 잘 맺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또 하나,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는 것이 솔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여과 없이 모두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우리의 뇌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일정한 여과 장치를 거친 다음 표현하는 쪽이 훨씬 더 지혜로운 행동이다. 그에 관해서라면 저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미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도덕적인 인간이란 적절한 감정을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양창순 |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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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밤 별세했다. 이 이사장은 가족과 지인들의 찬송과 기도 속에 향년 9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인동초 부부’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 헌신한 고인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린다.

이 이사장은 정치인 김대중에게 반려 이상의 존재였다. 김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 길을 내내 함께 걸었던 정치적 동지였다. 박정희 정권에 맞서 해외에서 투쟁하는 김 전 대통령에게 흔들림 없이 싸우라고 편지로 격려했고, 옥중의 김 전 대통령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의 메시지를 바깥 세상에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벼린 것이 이 이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엔 그 유지를 받들어 민주진보 진영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차례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고단했지만 빛나는 삶이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6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이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기에 앞서 한국 여성의 권리 향상에 헌신한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당대에 드물게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YWCA 총무 등 여성단체 활동에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후 동교동 집 대문에 나란히 내건 두 사람의 문패는 양성평등의 상징과도 같았다. 김 전 대통령이 주도해 13대 국회를 통과한 가족법 개정안에는 고인의 의지가 묻어 있었다. 여성부 신설과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 등 시대를 앞서간 김대중 정부의 여성 정책에 미친 고인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고인은 최근 부부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국민’에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모두가 새겨야 할 말이다.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 이사장의 유지대로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넘어 화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고인이 천국에서도 기도하겠다고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도 완성해야 한다. 10년 전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이 이사장은 “아프고 견디기 힘든 인생을 참으로 잘 참고 견뎌준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며 작별을 고했다. 오래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시민들이 그 인사를 되돌려드린다. 고인의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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