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 출간에 관여하고서부터, 나를 기획자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생겼다. 그렇게 거창하게 기획이라고까지 할 게 없는 일이어서 민망했다. 김동식 작가가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집 출간 이후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단행본 매출의 2%를 기획인세로 지급하겠다는 계약서를 건네면서 “당신이 작가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요다출판사로 데려와 달라”고 했다. 작가의 인세 10%를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출판사의 이익을 나와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판사로부터 1년간 받은 기획인세는 내가 3년 동안 글을 써서 번 것보다도 더 많았다. 김동식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덩달아 새로운 업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여러 플랫폼의 글들을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2018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에 ‘문화류씨’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여우스님’이라는 글을 읽고는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회색인간>이 출간된 지 정확히 1년이 된 시점이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각색했다는 그의 글에서, 나는 1년 전과 비슷한, 한 작가와 그의 글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문화류씨 작가에게서는 아주 빠르게 긍정적인 답신이 왔고 우리는 곧 만났다. 그는 3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다. 그는 약간 큰 덩치에 잘 어울리지 않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동식 작가님이 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러웠고, 언젠가 그 기획자인 김민섭 작가님이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정말 1년 만에 연락을 주신 거예요.” 

김동식 작가의 사례는 무척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작가가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아 계속 글을 써 나간 젊은 작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1년 전의 내가 정말로 기획이라는 것을 했고 그것이 한 개인과 출판사에만 의미 있는 일로 남은 것이 아니구나, 하여,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2019년 6월에, 문화류씨의 소설집 두 권이 출간되었다. 그의 책을 기획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휴대폰 자판으로만 단행본 두 권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하는 것이었다. 휴대폰 자판이 더욱 편해서 글을 퇴고할 때만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다고 했고, 심지어 누워서 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문자나 톡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답답해 컴퓨터를 반드시 이용하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니터로 어떻게 책을 읽나’ 하는 거부감과 불편함을 모두가 가졌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킨들과 같은 전용기기가 보편화되었고 휴대폰으로 어디에서나 전자책을 읽는다. 그에 따라 손안에 들어올 만한 6인치 내외의 화면에 어울리는 글쓰기 방식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노출되는 플랫폼의 경우에는 그 담당자들이 노골적으로 “단락은 문장 2~3개마다 꼭 구분해 주시고요, 이미지도 화면마다 하나씩은 삽입되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제도권의 글쓰기 교육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읽는 방식의 변화가 쓰는 방식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들뿐 아니라 기자 등 글을 쓰는 모두는 자신의 글이 6인치의 모바일 화면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이중번역과 같은 방식으로 써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휴대폰에 익숙해진 어느 세대는, 혹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모바일 화면으로 글을 보는 데서 나아가 쓰는 세대로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류씨 작가는 마치 동시번역을 하는 것처럼, 쓰는 동시에 독자들의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손가락 작가’들의 탄생을 계속해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김동식 작가만큼이나, 문화류씨라는 새로운 작가도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은 새로운 손가락 작가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우리 앞에 계속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로서도 누구 하나 잘되고 끝나지 않는 그런 연속된 기획을 계속해 보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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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간혹 사람들은 단식을 한다. 한두 끼는 몰라도 나는 여러 날 굶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젊은 날 나는 단식을 하던 빙장 어른 앞에서 회 한 접시에 두 병의 소주를 꿀꺽 한 ‘인정머리 없는’ 짓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은 나중에 ‘맛있게 먹기 위해’ 지금 단식을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매우 흥미로운 얘기였지만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나중에 미국에서 실험하는 도중에 그 말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우연히 찾아왔다.

아마 2005년이었을 게다. 누구라도 그렇듯 실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진행된 최신의 연구 결과물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인터넷을 통해 새롭게 발표된 논문을 읽는 게 주된 일과가 된 것이다. 어쨌든 그때 읽었던 논문은 24시간 동안 굶은 섬유아세포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역사 내내 배불리 먹은 경험이 없기에 동물들이 굶는 일에 잘 적응되어 있다는 따위의 슬픈 사연은 아니었다. 대신 배양액에 혈청이 없어 굶주린 세포 표면에서 안테나 같은 뭔가가 돌출된다는 내용이었다. 돌출된 세포 소기관은 흔히 섬모(cilia, 纖毛)라고 불린다. 보통 이 소기관은 노잡이처럼 단세포인 짚신벌레를 움직이게도 하지만 기도(氣道)의 상피처럼 고정된 세포에서는 먼지나 세균을 붙잡은 점액을 목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최신 생물학>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이 사용한 세포는 섬모를 써서 움직이는 능력은 없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과학자들은 세포의 표면에 돌출된 안테나 모양의 섬모를 운동과 결부된 소기관과 따로 구분하여 일차(primary)섬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꼬리를 움직여 정자가 움직일 때 또는 기도 상피세포가 섬모를 움직여 점액을 운반할 때 관여하는 단백질 묶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움직임을 담당하는 축(axis) 구조가 없는 일차섬모는 세포 안에서 주로 감각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2005년 논문에 등장했던 세포는 과연 무엇을 감지한 것일까? 분명 세포는 배양액의 영양소가 ‘적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 뒤 ‘셀’이라는 저널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청을 다시 공급받은 세포 표면에서 일차섬모가 눈 녹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일차섬모는 굶주린 세포의 표면에서만 형성된 것이다. 그 뒤로 다양한 종류의 세포에서 일차섬모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지방을 저장하는 세포에서도 그 존재가 밝혀졌지만 섬모는 주로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감지하거나 색상을 구분하는 눈의 세포들도 표면에 섬모가 있다. 평형을 담당하는 귀의 세포 및 후각을 담당하는 세포들 모두 섬모에 의지해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수행한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단식을 하는 사람들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나랑 마주했던 그 어른도 단식에 따른 생리적 변화가 바로 저 감각의 예민함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의 변화를 인식한 세포들이 온갖 감각을 동원하여 먹을 것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정황이 익히 연상되는 것이다. 개별 세포도, 그 세포의 집결체인 생명체도 모두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고자 애를 쓴다. 

이렇듯 굶으면 세포 표면에서 형태학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만 세포 안에서는 자기소화(自己消化, autophagy)라는 세포 과정도 진행된다. 스스로(auto) 먹는다(phagy)는 뜻의 이 과정은 당장 긴요하지 않은 낡은 단백질이나 손상된 세포 소기관을 처분하여 세포가 굶주림을 모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효모에서 이러한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박사는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오스미 박사 연구팀은 자기소화에 관계되는 유전자를 없애버린 몇 종류의 생쥐 새끼가 고작 12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탯줄을 통해 어미로부터 영양분을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하는 생쥐의 새끼가 초유를 먹기 전까지 자기 스스로 영양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생아도 마찬가지다. 출산 직후 신생아의 혈중 포도당의 양을 측정한 연구에 따르면 혈액 안의 포도당은 1시간이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상적인 신생아들은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하여 혈중 포도당의 양을 회복하고 자기소화 과정을 통해 아미노산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를 겪지 않는다. 그러나 신생아에 대한 영양 공급이 늦어지거나 자기소화 능력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성인들도 하루 정도 굶으면 간에 저장된 창고에서 뇌가 사용할 포도당을 우선 갹출하고 자기소화를 진행하여 아미노산을 충당한다. 하지만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본디부터 그렇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근육에 저장된 포도당 덩어리는 포식자 동물로부터 재빠르게 도망치거나 먹잇감을 쫓기 위해 비축된 것이며 다른 목적으로 양도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잠깐 굶더라도 우선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굶는 시간이 길어지면 근육단백질, 나중에는 지방산을 분해하여 입맛 까다로운 뇌를 먹여살린다.

굶주린 세포 혹은 생명체가 일차섬모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자기소화를 진행하기도 한다면 이 두 과정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 두 과정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섬모가 없으면 자기소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아직 정확한 생물학적 전모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뇌와 주변 기관 모두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호작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차섬모가 ‘실질적으로’ 인간의 모든 세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접하면 나는 자주 뇌까린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 것일까? 과학의 길은 참 멀고도 멀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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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별로 어떤 게 더 나쁜 범죄인지 따질 생각은 없지만, 아동학대는 한 아이의 인생과 그 아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다. 대검찰청의 2015년 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피해자로서의 아동은 발달 단계에 있으므로 신체적·정신적·성적 가해행위가 성인보다 훨씬 큰 법익 침해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이들은 “별것 아니겠지”라며 넘길 수 있는 작은 학대 행위라도 아이에게 장차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의 부모는 어떤가. 아이를 학대당하도록 뒀다는 자책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만 어긋나도 과거의 학대 사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아이를 위험한 환경에 두는 국가와 사회를 원망할 것이다. 이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관두거나, 아이를 더 낳으려다 포기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아동학대범죄는 엄하게 처벌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형법’ 등에서 처벌하는 아동학대관련범죄 종류만 20개에 달하고, 범행의 경중에 따라 가중 처벌도 내릴 수 있게 해놓았다.

하지만 엄격한 법과는 달리 아동학대범들에게 내려지는 판결들을 살펴보면 관대하기 짝이 없다. 소변과 각종 오물이 묻은 휴지로 아이들 입을 닦는 등의 학대를 한 한 보육교사는 최근 판결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00여 차례에 걸쳐 아이들을 학대한 보육교사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11월 발간자료를 보면 아동학대범죄자의 75%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내지 벌금형을 받았다. 가끔은 아동학대범에게 중형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이는 이미 아동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뒤의 경우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지난해 5월 보고서를 보면 국내 아동학대 피해아동 발견율은 2016년 기준 2.15‰(인구 1000명당 발견율)로, 미국(9.2‰)·호주(8.5‰)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01~2016년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신고접수 및 의심사례 건수의 일관된 증가추세를 보인다”며 “한국사회에 잠재적인 아동학대 사례가 만연한 상태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우려했다.

그나마 아동학대 범죄가 적발돼도 범행을 입증하거나 피해사실을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현실적으로 ‘예방’만이 최선책이다. 아동학대범들에게 형벌 외에도 아동복지법을 통해 학교나 학원, 보육기관 등 아동관련기관에 10년간 취업을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를 둔 이유였다. 누군가는 “가혹하다”고 할 만한 이런 제도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정을 살리고, 사회 전체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에 최근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는 “일괄적으로 아동학대범에게 10년 취업제한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아동학대를 엄벌해야 한다는 취지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안에 따라 10년 제한이 ‘정말’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도 싶다. 헌재결정에 따라 법이 개정돼 12일부터는 범행의 경중에 따라 최장 10년까지 취업제한을 법원이 내릴 수 있다.

종전 아동학대범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의 부칙이 개정돼 12일 이전에 아동학대로 확정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의 취업제한이 기존 ‘일괄 10년’에서 ‘최대 5년’으로 대폭 감경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변 묻은 휴지를 아이들 입에 들이댄 교사의 경우 예전 같으면 10년이었어야 할 취업제한이 3년으로 줄었다. 벌금형만 받은 학대범들은 1년만 기다리면 재취업이 된다. 취업제한도 일종의 형벌로 본다면 아마도 역대급 ‘감형 이벤트’가 아닐까 싶다. 예정보다 일찍 아동관련기관으로 돌아오게 될 학대범들이 모쪼록 마음을 고쳐먹고 재범에 나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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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운이 좋으면 고수, 스승을 만나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히피>라는 소설에서, 여행길에 만난 스승 셋을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 스승은 도둑이었죠. 집에 들어가려는데 열쇠를 잃어버렸지 뭐요. 마침 길 지나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눈 깜짝할 새 문을 따는 재주를 지녔더군. 직업이 뭐냐 물으니 도둑이랍디다. 그는 날마다 실패하고 또 내일 또다시 도전한다고 했소. 두번째 스승은 개였죠. 목마른 개가 강물에 다가왔는데, 자기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뒷걸음쳤다오. 결국 개는 목마름을 참기 어렵자 정면 돌파를 결심, 강물에 뛰어들었죠. 순간 그림자는 사라지고 말았죠. 세번째 스승은 어린아이라오. 촛불을 들고 오길래 그 불 어디에서 났는지 물었지. 그러자 아이가 양초를 콧바람으로 훅 꺼버렸소. 여기 방금 있던 불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며 오히려 묻더군. 비로소 신성한 불빛, 지혜의 불빛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이처럼 이야기, 춤, 명상기도 속에 참된 지혜의 불빛이 있다오.” 

노력하여 배우지 않으면 야만인이 되고 말지. 야만인의 입에는 추한 막말과 가짜뉴스. 잘근잘근 이웃을 못되게 씹어대니 입끝에 피냄새. 한 고고학자가 정글을 탐험하다가 식인종 부족에게 붙잡혔다. “우리도 이제 옛날 그 무시무시한 식인종이 아니니 안심해라.” 과학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식인종이 컴퓨터 앞에서 검색하고 있는 걸 보고 기절초풍. 쇼핑몰에서 신제품 바비큐 그릴을 검색하고 있더란다. 신종 야만인.

당대 고수를 찾아다니는데, 도둑과 개와 어린아이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없겠다. 야만인들 같은 피 묻은 더러운 입들. 철 지난 반공을 팔아 밥벌이를 삼는 자들. 땅밟기 개종 여행이나 다니면 무슨 배움이 생기겠는가. 종교인의 입에서 피냄새가 가장 역하게 나는 아이러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빨래를 해서 널었다. 요즘은 귀를 자주 씻고 싶어진다. 세탁기에 귀를 넣어 깨끗이 세척하고 싶다. 상쾌해진 귀로 다정하고 다감한 이야기, 사람을 먼저 살리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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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에 대한 예의 차원인 ‘조문’과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가 이율배반적으로 결합되는 조문외교. 세계 외교사 페이지에는 조문외교의 성패를 보여주는 사례·교훈이 빼곡하다. 1980년 5월 티토 유고 대통령 장례식에는 58명의 정상이  참석해 ‘인류의 정상회담’이라는 말이 나왔다. 장례식을 계기로 동·서독 정상회담도 열렸다. 주인공은 단연 소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동맹 노선의 상징 티토 장례에 나타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반면 부통령을 파견했던 카터 미국 대통령은 조문외교 실패 비난에 시달렸다. 1989년 2월 히로히토 일왕 장례 때 조문외교의 주역은 첸치천 중국 부총리였다. 중·일관계가 해빙되는 계기가 됐다. ‘놀랍게’ 당시 한국에서는 강영훈 국무총리가 조문사절로 갔다.

조문외교가 극한 논란을 겪은 경우가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장례 때다. 김영삼 정부는 외교가 아닌 정치로 개입했고, 정상회담을 할 뻔한 남북관계는 이후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반면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가 제네바 북한대사관으로 가서 조문했다. 이를 비난하고 나선 공화당을 뉴욕타임스가 사설로 꼬집었다. 사설 제목은 ‘어이, 이 양반아. 그런 게 외교인 거야’.

북한은 1994년 문익환 목사 별세 때 김일성 주석 명의의 조전을 시작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고위급 조문단을 파견하는 등 남북관계에서 중요 역할을 한 남측 인사들에게 적극 조의를 표해왔다.

고 이희호 이사장에 대한 높은 수준의 조문이 기대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고인은 2000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2011년 12월26일에는 김정일 위원장 빈소를 찾아 상주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박지원 의원이 “정치적 의미를 떠나 반드시 조문사절을 보내야 한다”고 할 만했다. 북한이 어제 판문점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전달했다. 4월 이후 일체의 남북 접촉을 끊고 있는 북한이 부담스러운 조문단을 피하면서 고인에 대해 예를 갖추는 방식을 찾은 셈이다. 조문외교의 신종을 찾을 만큼 작금의 남북관계가 미묘하다는 방증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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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향기가 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라는 존재에 대한 아무런 정보와 서술 없이도 느껴지는 내밀한 설렘. 왠지 그는 갓 씻고 나온 듯한 말간 얼굴에 깊은 눈을 가진, 조금은 호리호리한 청년일 것 같다. 두툼한 살집의 동네 아저씨나 청결 강박증세를 가진 청년일 수도 있으련만, ‘비누 향’이라는 작은 단서가 주는 암시가 제법 강력하다.    

신체와 관련된 감각적 판단은 다분히 원초적이며 보수적이다. 좋은 향기는 안전하며 나쁜 냄새는 위험하다. 썩었거나 부패한 것들이라 간주되기 때문이고, 질병이나 죽음의 예후와 가장 가까운 것이어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정신적인 불편함이나 악을 설명하는 경우에도 ‘더럽다, 역겹다, 두드러기 날 것 같다’ 등의 물질적, 신체적 오염을 뜻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역겹다거나 토할 것 같다는 말은 역한 냄새의 다른 표현인 동시에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기택네는 식구들이 모두 ‘백수’로 피자 박스 접기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아들 기우(최우식)와 아빠 기택(송강호), 엄마 충숙(장혜진), 딸 기정(박소담·왼쪽부터)이 반지하집에 함께 있는 영화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청결치 못한 신체와 냄새에 대한 예민하고 불안한 심리는 오랫동안 악을 구축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하층민이나 경멸대상에게는 늘 비슷한 이미지가 사용된다. 어둡고 습한 곳, 냄새 나는 곳에 살고 있는 것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소탕할 수 있는 것들, 크기나 공격력에서 맹수나 인간에 비교할 바가 아닌 것들이다. 이 미물들에게 보이는 경멸과 불안감이 때로는 과도하고 호들갑스럽게도 느껴지지만, 실제적인 바이러스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미지란 강력한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유태계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는 증언한다. “나치는 유태인을 ‘독일인의 몸 안에 사는 더러운 기생충들’이라고 묘사하는 동시에, 화장실 출입을 못하게 했다. 이로 인해 독일인들은 수시로 길거리나 승강장에 쭈그려 앉은 유태인을 보게 되었고, 처음엔 동정하던 이들조차 우리를 역겨워하기 시작했다.”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부족 전쟁,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같은 민족절멸운동(제노사이드)에는 늘 “바퀴벌레”라는 묘사가 동반되었다. 조지 오웰 역시 계급을 나누는 데 있어서 역겨움이 차지하는 비밀스러운 역할을 한 문장으로 묘사한다면, “하층민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 폴 블룸은 신체와 관련된 정치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몸에 대한 역겨움은 타인을 인간성을 결여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고, 불행과 괴로움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이는 잔인함과 비인간화를 촉발하는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응당 받아야 할 고통으로 정당화하며, 심지어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기도 한다.” 폴 블룸의 맥락으로 보자면, 특정 지역인들을 ‘홍어’라고 부르거나 세월호 희생자 시신을 어묵이라 조롱했던 행위 역시 그저 생각 없는 이들의 가벼운 언행이라고 볼 수 없다. 독한 냄새와 훼손된 신체에 대한 불쾌감과 두려움을 자극하여 차별의 정당성을 갖기 위한 어두운 심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혐오를 가진 사람들은 늘 신체나 정신의 상처를 희화한다.

영화 <기생충>에는 이러한 낯익은 배타성의 코드가 무수히 드러난다. 어느 때보다 직접적인 제목을 포함하여, 평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퀴나 곱등이 같은 벌레들, 지하실, 어둡고 비위생적인 공간, 비좁고 음습한 틈, 격리 수용되는 하층민의 모습들. 그러나 영화는 ‘반지하의 냄새’를 넘어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로의 확장을 통해 ‘반지하보다는 괜찮은 삶’이라고 안위하던 사람들마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며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배타성이 강한 사회는 타인에 대한 선 긋기를 넘어, 결국 자신의 삶도 부정하게 만들며 결핍과 자기 연민, 우울감을 만들어낸다.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욕망의 사다리 어디쯤에서 수시로 킁킁대며 나와 타인의 냄새를 확인해야 하는 세계는 황량할 수밖에 없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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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김세윤 김정민 김주성 김현우 박지민 박태준 엄원상 오세훈 이강인 이광연 이규혁 이상준 이재익 이지솔 전세진 정호진 조영욱 최민수 최준 황태현 그리고 공오균 김대환 오성환 인창수 정정용. 

그들은 원팀(One Team)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 형은 동생을 믿고, 동생은 형을 따른다. 감독은 말한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그림을 그려라. 그리고 즐겨라.” 믿음은 통합과 뒷심을 끌어냈다. ‘흥(興) 축구’는 압박을 잊게 하고, 그라운드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만들어냈다. 폴란드에서 열리고 있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그 무대이다. 원팀은 지더라도(포르투갈 0-1) 좌절하지 않았고, 질 것 같은 경기는 뒤집었으며(세네갈 3-3, 승부차기 3-2), 강팀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었고(아르헨티나 2-1, 에콰도르 1-0), 이겨야 할 팀(남아공 1-0, 일본 1-0)에는 어김없이 승리했다. ‘1983년 4강’을 넘어선 사상 첫 남자팀 FIFA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2일 폴란드 루블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 4강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정정용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기뻐하고 있다. 루블린 _ 연합뉴스

스무살 청년들의 도전이 놀랍다. 그들은 엄격함과 위계질서 속에 축구를 ‘전투’로 여기는 시대에 종언(終焉)을 고했다. 재미로 시작했고, 재기발랄함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축구를 한다. 4강전 승리 뒤 라커룸이 감독과 선수들의 막춤으로 뒤엉킨 ‘클럽’이 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율 속에 지키는 규칙은 확실했다. 위기는 잊고, 포기는 더더욱 없었다. 다 진 줄 알았던 세네갈전의 후반 연장 8분의 동점 극장골이 그랬고, 1·2번 키커가 거푸 실축한 승부차기에서 기어코 역전을 이뤄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포르투갈전 패배 때 고개를 숙이는 대신 “졌지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해준 형들이 고맙다”는 청년들이다. 국민들에게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는 당찬 주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강인·오세훈·최준 등의 골과 절묘한 연결, ‘빛광연’으로 불리는 골키퍼 이광연의 선방쇼로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원팀의 승리는 ‘막말’과 망언이 난무하는 정치권에 질린 국민들에게 더없는 위로였다.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희망을 선물했다. 이제 원팀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하나만 남았다. 우승이다. 최선을 다한 그들이다. 내친김에 우승으로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이미 그들은 자신들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은 16일 오전 1시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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