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물관리기본법이 공포된 지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4일 시행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하위법령을 포함한 법체계도 모두 완성되었다. 이로써 국가 차원의 통합물관리, 유역 중심의 국민참여형 물관리가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물분야 연구와 거버넌스 활성화에 관여해온 학자로서, 물관리 일원화를 주도한 통합물관리 비전포럼의 위원장으로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회가 깊다. 비전포럼을 통해 함께한 관계자들과의 협치 경험이 수자원 관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991년 발생한 낙동강 수질사고 대책으로 수량-수질 분리의 원칙을 확립하고 수질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하면서 물관리의 이원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기대와 달리 예산의 중복투자, 비효율적 물관리 등의 문제점이 부각되었고, 분절되었던 물관리를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일원화 시도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갈등만 증폭되었을 뿐 번번이 무산되었다.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었으나 이해관계의 대립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던 노력을 결집하고자 한 환경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7년 7월 민·관·학 전문가 약 200명이 모여 통합물관리 비전포럼이 출범하였다.

비전포럼은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에서 모이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였다. 불신의 벽은 높았으나,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절충점을 찾기 시작하였다. 전국적 토론회를 개최하여 지자체·시민사회의 공감대도 얻었으며, 순조롭게 합의에 도달하였다. 또한 포럼 내에 6개의 분과를 설치하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물관리 핵심가치, 정책목표 등 국가비전을 제시하였고, 지역별 물관리 비전과 거버넌스 구축의 기반을 다지는 등 물관리기본법 시행을 차근차근 준비하였다.

이로써 일원화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하였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한 의견 차이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원화는 이상기후의 확산으로 더 미룰 수 없는 국가 중대사라는 판단으로, 국회와 민·관·학 주요 인사들에 대한 설득과 중재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 결과 2018년 5월 숙원이었던 물관리 일원화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었고, 그해 6월 물관리기본법이 공포되었다.

법령 제정으로 큰 틀에서 통합물관리에 관한 합의를 이루었지만 세부 방안을 정하는 더 큰 난제가 남았다. 많은 어려움에도 비전포럼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물관리위원회 구성 및 역할, 갈등조정 방안 등을 담은 시행령 공포도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환경부가 이 기반을 잘 활용하여 꽃을 피우는 일이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기다. 지금까지 주요 업무가 규제를 통한 감시였다면, 앞으로는 통합물관리를 위한 수요와 공급 및 하천·지하수·농업용수 관리 등의 정책 집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물 복지를 위해 수익성 없는 영역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고, 기술개발 지원을 통한 물산업 육성 등의 성과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가진 역량에 더하여 국토부에서 이관된 수자원국과 한국수자원공사의 역량을 통합물관리에 활용한다면, 일원화의 성과도 조기에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통합물관리 비전포럼은 임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있다. 비전포럼이 그려온 이상은 곧 출범하게 될 물관리위원회가 충실하게 실행해 줄 것이라 믿는다. 물관리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며, 제한된 수자원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이 다 함께 협력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허재영 통합물관리비전포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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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찰은 희한하다. 경찰의 임무를 다룬 ‘경찰법’ 제3조에는 ‘치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라는 규정이 있다. 정보경찰의 임무다. 

문제는 뭐가 치안정보냐는 거다. 보통은 범죄정보를 떠올리겠지만 경찰이 말하는 치안정보의 개념에 범죄정보는 없다. 범죄정보는 경찰청 정보국이 아니라 경찰청 수사국 범죄정보과 같은 곳에서 다룬다. 사이버 범죄정보라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서, 국제범죄정보라면 외사국에서 다룬다. 범죄정보를 뺀 치안정보라는 게 무엇일까.

사전적으로야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일 텐데, 그 안녕과 질서가 주권자인 시민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다스리는 쪽’, 곧 집권세력 입장에서의 안녕과 질서인 경우가 많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보경찰의 활동은 온통 대통령을 위한 보고서 작성에 맞춰져 있다. 검찰수사로 정보경찰의 민낯이 드러났듯이, 대통령의 사주팔자가 좋아 국운이 상승한다는 식의 유치한 정보보고도 넘쳐난다.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기도 한다. 대통령 친위세력의 당선을 위해 동향을 파악하고 사전투표소를 염탐하면서 선거판세를 읽기도 한다. 3000명 남짓한 정보경찰은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 치안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고 있다. 

경찰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위해 일하며 권력의 핵심과 연결망을 만들 수 있어 좋을 게다. 청와대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답을 찾아주니 좋을 거다. 

문제는 대통령과 경찰에게 좋다고 시민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거다. 납세자인 시민이 비용 전부를 부담해야 하는 조직이 주권자인 시민이 빌려준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그저 반민주적인 작태일 뿐이다. 

경찰청은 정보경찰의 역할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집회·시위 관리나 신원조사 등을 정보경찰이 맡고 있지만 집회·시위와 관련한 신고 업무라면 경찰서 정보과가 아니라 민원부서가 맡는 게 맞다. 집회와 시위를 하려는 사람들을 위축시킬 의도가 아니라면 분위기조차 비밀스러운 정보과에서 맡을 까닭이 없다. 집회현장에서 정보경찰이 대화를 촉진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겠지만, 그런 일은 원래부터 관련 부처의 몫이다. 괜히 몸값을 올리고 자기 역할을 과장하기 위해 집회현장을 오갈 이유는 없다. 만약 불법행위가 있다면, 수사나 형사 부서가 맡으면 된다. 전형적인 민원부서 일이어야 할 신원조사도 마찬가지다. 뭐라 변명하든 정보경찰의 핵심은 대통령을 위한 정보보고일 뿐이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려면 각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보경찰에 의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정보에 의존하면 더더욱 안된다. 궁금하다면 각계 인사를 직접 만나면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전화, 이메일 등 온갖 매개들을 활용하면 된다. 언론보도나 인터넷 등에 귀를 기울여도 좋다. 측근이든 정적이든 상대의 은밀한 움직임까지 알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라면 굳이 정보경찰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이 국내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니 경찰정보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에서 그렇다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인사검증에 꼭 필요하다지만, 인사검증 자료를 인사혁신처나 관련부서가 아닌 정보경찰에 기댈 까닭도 없다. 범죄 관련 정보를 알고 싶다면, 공직 후보자에게 범죄경력조회를 떼어오라고 주문하면 그만이다. 사영기업도 다들 그렇게 한다. 굳이 필요하다면, ‘세평(世評)’ 정도일 텐데, 믿거나 말거나 식의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평판을 듣기 위해 3000명이나 되는 정보경찰을 운영할 필요는 없다. 만약 꼭 필요한 기능이라면 인사혁신처, 굳이 중복 검증이 필요하다면 국무총리실에 관련 기능을 두면 된다. 

정보경찰의 보고서는 일선 정보관이 작성한 다음 경찰서 정보과 - 지방경찰청 정보부 - 경찰청 정보국으로 이어지는 지휘 라인을 통해 이중삼중의 점검과 보안을 거친 후 청와대 보고용으로 거듭난다. 일제강점기의 특별고등경찰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았던 노하우가 있으니 정보경찰이 만든 보고서를 읽는 재미도 괜찮을 거다. 그 재미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대통령이 싫어할 만한 보고는 일선 정보관들부터 기피한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양념 치듯 가끔 넣겠지만, 결국은 대통령의 결단만이 나라를 구한다는 식의 보고서가 잇따를 뿐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노동조합도 없고 기본적인 민주시민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는, 오로지 정권에 대한 충성만을 거듭한 사람들에게 기댈 일은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보경찰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 정보경찰의 보고서야말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의 장막일 뿐이다. 청와대 직원들이 정보보고서 읽는 재미에 빠져 아무리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하더라도 넘어가면 안된다. 정보경찰을 악용하지 않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도 답은 아니다. 

정보경찰이 망치는 건 대통령만이 아니다. 경찰에도 득이 될 건 없다. 일부 고위직이야 정보경찰을 통해 청와대와의 연결망을 갖게 되어 좋을 거다. 계급정년이 있는 팍팍한 현실에서 승진을 거듭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거다. 몇몇 정치경찰에게 좋은 일이 10여만명의 경찰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경찰은 법 집행기관이다. 종사자도 많고 대민접촉의 폭도 넓고 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언제나 공정해야 하며 법 집행기관으로서의 권위도 필요하다. 그러니 제발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뻔하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쫓아다니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법률 개정도 필요 없다. 대통령만 결심하면 된다. 앞으로는 정보경찰이 만든 보고서를 읽지 않을 테니, 만들지 말라고 지시하면 된다. 할 일이 없어진 정보경찰 부서는 폐지하고 정보관들은 민생치안 현장으로 시민들을 위한 역할로 돌려보내면 된다. 정보경찰을 없앴을 때의 부작용이나 문제는 하나도 없다. 정보경찰을 그대로 둔 채 진행하는 경찰개혁은 공염불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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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늦은 밤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대구에서 발표할 일이 있어 왔다가 동대구역 가는 길입니다. 불금의 저녁, 대구도 길이 많이 막히네요. 엄청 덥고요. 기사 아저씨는 계속 문 정부 욕만 하시고.” 아는 교수였다. 답장을 보냈다. “제가 반복적으로 겪는 일 겪으셨군요. 서울 말씨만 쓰면 바로 나옵니다.” 위로의 문자가 왔다. “아…그런 거군요. 대구에서 사는 거 만만치 않으시겠습니다.”

어쩌다가 대구가, 참내. 목구멍으로부터 쓴물이 올라왔다. 2005년 대구로 이사 왔으니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택시를 타면 몇 마디 말에 바로 타지 사람인 걸 알아챈다. 구어 활용 습득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아무리 대구 말씨를 흉내 내도 금방 티가 나는 모양이다. 열의 여섯, 일곱은 ‘소위’ 진보 정권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얼마전에도 그랬다. 서울 갔다 돌아오는 길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탔다. 행선지를 말하고 몇 마디 주고받고나니 ‘주 52시간 근무제’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밤중에 손님이 없다카이요. 주 52시간 정책인동 뭔동 땜에 밤에 일을 안 한다카이. 일을 안 하이 일감이 어데 있심니꺼. 소득주도성장한다꼬 카는데 일하는 시간이 줄었뿌이 소득도 준다카이요. 수출로 묵고사는 나라 아닙니꺼, 우리가. 이기 말이 되는 일입니꺼, 어데요. 최저임금 올린다고 설치뿌리이 원가가 올라가가 수출경쟁력이 똑 떨지는 거 아입니꺼?”

이럴 경우 보통 “예, 예” 하며 짐짓 맞장구를 쳐준다. 집에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게 아닌가. “이기 다 자유민주주의 파괴할라꼬 카는 빨갱이 때문이라예. 아이라예?” 나도 모르게 욱했나 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뭡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택시기사가 움찔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내뱉었다.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카마 그 뭐라캐야 되노. 자유 아입니꺼? 자유!” 작정을 하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 자유가 뭐냐니까요?” 대답을 못하고 버벅대다 고함을 지른다. “독재 안 하는 기지예. 문재인 함 보이소. 좌파독재 아이라예? 지 혼자 다 해묵잖아예. 국민 생각은 쪼매도 안 하고 저거들 빨갱이만 좋자고 그카는 거 아니라예. 그카다가 문재인이 총 맞아가 죽는다카이요, 죽어.” 깜짝 놀랐다. “아니 대통령을 총 쏴서 죽이는 게 자유민주주의예요?” “그라마 아니란 말인교? 자유민주주의 미국 함 보이소. 케네디도 총 맞아가 죽었잖는교.” 무슨 이런 논리가? “아니 자기랑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고 총 쏴 죽이는 게 자유민주주의예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라. 그 말은 그렇다카는 기 아닙니꺼? 누가 문재인 총 싸가 쥑이뿌만 어얘노 카는기지, 내 말은. 그래 좌파독재하다 보만 국민이 가마이 있겠는교?”

갑자기 1970년대 미국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떠올랐다. 베트남전 퇴역군인인 주인공은 심야 택시를 몰며 쓰레기와 같은 추악한 뉴욕 밤거리를 떠돈다. 고작 이따위 나라를 지키려고 베트남에 가서 목숨 걸고 싸웠단 말인가.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싶지만 현실적 힘이 없다. 마지막 희망인 사랑마저도 일그러지자 분노가 극에 달한다. 모든 게 잘못된 정치 탓 같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과대망상으로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암살에 나선다. 

자신이 처한 참혹한 현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 무력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무력감은 가상의 악에 대한 분노와 테러로 돌변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가 말로 의사소통하는 정치제도를 만든 이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치가 무력감과 분노를 자극하고 조장하는 폭력적인 ‘군사 언어’에 기대면 희망이 없다. 현재 수많은 ‘택시 드라이버’가 군사 언어를 사용해서 무력감과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럴수록 공감을 못 얻고 끼리끼리 고립되어 과대망상 테러를 꿈꾼다. 보다 보편적인 ‘시민 언어’를 써서 자신이 처한 곤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정치의 공간이 활짝 열려야 비로소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인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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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온실가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한국도 그 몫을 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이 최근에 내놓은 3차 에너지 기본계획은 석탄과 원자력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 중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2040년에는 최대 35%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중요하고도 현명한 전환 조처로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열과 풍력을 활용하는 핵심 기술을 획득하고, 이동 수단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배터리 관련 기술을 촉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험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깨끗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도입하기 위해 과감한 조처를 단행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필요성은 최근 유엔 사무총장이 내놓은 요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20년부터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새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청에 부응하도록 한국 내에서 불필요한 석탄 사용에 제동을 걸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관련 분야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 

에너지 경제 분야의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한국은 석탄으로 인한 좌초자산 발생 가능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좌초자산은 시장 환경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을 뜻한다. 손실액은 10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석탄발전을 선호하는 현재 한국의 정책이 안고 있는 규제상 허점 때문이다. 기후 관련 조처들이 가속화되고 재생에너지 기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미 쇠퇴한 석탄산업을 붙들고 있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이와 같은 잠재적 피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논란을 빚고 있는 해외 석탄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찌레본 2호기 석탄발전소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한국 정부가 소유한 한국전력은 베트남의 응이손 2호기 석탄화력발전소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또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인도네시아의 자와 9·10호기 석탄발전 프로젝트 투자에 관여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2010년 이후 주로 동남아 지역의 석탄발전소 프로젝트에 1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왔다. 

세계 2위와 3위 규모의 석탄발전소가 충청남도 당진과 태안에 있다. 한국의 석탄발전소 절반이 모인 이곳 충남은 2026년까지 14기의 석탄발전소를 퇴출시키기로 했으며, 재생에너지를 촉진하여 에너지의 절반가량을 충당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야심찬 석탄 퇴출 계획이다. 지난해 공무원연금공단과 사학연금도 석탄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대신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조처는 석탄으로부터 탈출하는 국제적 투자 추세를 따른 것이다. 이미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금융기관들이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투자에서 이탈했다.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세계 최대 은행 중 하나인 미쓰비시 UFJ 금융그룹은 새로운 석탄발전소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다. 또 세계 최대 연기금 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42억달러에 이르는 석탄 관련 투자와 80억달러에 이르는 석유 및 천연가스 관련 투자를 곧 중단한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금액 200억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본과 노르웨이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정부 연금 펀드인 한국의 국민연금공단도 이러한 추세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석탄발전소의 40% 이상이 이미 수익 중단 상태일 뿐만 아니라 투자금을 잡아먹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진정나아가려면, 한국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통해 지속하고 있는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를 중단하고 석탄발전을 비호하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들여 조성한 정부 자금을 석탄 관련 좌초자산의 덫에 빠뜨려 날려버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온실가스 탈출 여정을 선도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석탄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투자를 빠르게 전환하고 그 이익을 취하여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일본과 중국을 압도하는 주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의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대로 “기후변화 대응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과제를 이행하는 기회가 되고,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성화를 밝히는 주역이 될 것이다.

<크리스티나 피게레스 전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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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위원회)에 낸 의견서에서,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이행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권위원회는 2017년 한국 정부에 ‘기업과 인권’ ‘차별금지법’ ‘노조 할 권리’ 등 3개 분야 권고안을 제시했고, 법무부는 후속조치 관련 보고서를 지난 4월 제출했다. 인권위 의견서는 사회권위원회 요청으로 제출됐다.

인권위는 국가기구이지만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인권 보호·향상과 관련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정부와 국회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책임을 방기하는 가운데 인권위가 쓴소리를 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인권위는 의견서에서 “최근 한국 사회는 여성, 이주민·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강화되고 조직화되는 등 혐오·차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사회권위원회가 권고한 ‘포괄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인권위의 제정 권고 이후 2007년 법안이 입법예고됐으나 보수 개신교계 등이 ‘성적 지향’ 항목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제정이 무산됐다. 이후에도 몇 차례 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철회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국회와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정부입법안이든 의원입법안이든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사이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까지 조롱 대상이 되는 부끄러운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밝히고 있다.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의 차별금지 정신을 저버리는 일부의 반인권적 주장과 행태를 방기하는 정부의 무책임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계속 미룬다면, 그사이 상처받고 피해 입는 이들만 늘어나게 된다.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시민의 분노에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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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여야 간 협상이 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최대 난관인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서 절충점을 찾아 합의문까지 쓰는 단계에서 협상이 틀어졌다. 자유한국당이 추가경정예산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해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13일 이런 논리를 내세우며 국회에서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다 성사된 국회 정상화 합의까지 틀어버리는 제1야당의 처사에 말문이 막힌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6월13일 (출처:경향신문DB)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경제청문회를 열어 무엇이 문제인지 소상히 밝히고,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정책 집행자의 자격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명백한 모순이다. 정부가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맞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하려는 일에 일부라도 협조했다면 여당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경제가 ‘폭삭 망했다’면서도 추경은 논의조차 거부했다. 직접 민생을 챙긴다며 국회 밖으로 돌았다. 이제 와서 왜 추경이 필요한지 따지기 위해 경제청문회를 열자고 하니 말이 안된다. 한국당이 갑자기 청문회를 요구하는 속셈은 뻔하다. 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한껏 비판한 뒤 그것을 명분 삼아 등원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미 국회를 외면할 수도, 추경을 거부할 수도 없게 돼 있다는 것은 온 천하가 안다. 국회에 등원해야 한다는 압박이 당내에서도 커지고 있다. 장외투쟁의 역풍에 밀려 등원하면서 명분까지 챙기겠다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 합의를 틀어놓고 “청와대가 야당을 조롱하고 압박하면서 재를 뿌리고 있는데 어떻게 국회를 열 수 있겠느냐”고 또다시 남 탓을 했다. 한국당은 지금 등원에 조건을 내걸거나 명분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국회가 공전하는 데 실망한 시민들이 한국당 해산 청원에 이어 국회의원 소환제를 거론하는 판이다. 한국당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이다. 아무리 제1야당이라고 해도 정부 비판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그게 건강한 여야관계이고, 민주주의다. 중재를 맡아온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이번 주말까지 국회를 열지 못하면 단독소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더 이상 민생을 외면하지 말고, 남 탓도 하지 말고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민생을 팽개쳐놓고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도 야당 설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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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동력은 다소 잃었으나 ‘기득권 카르텔형 부패국가’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 보입니다. 비록 가시적 성과는 흐릿해도 초심으로 제시했던 핵심공약 대부분이 시도되었고 지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약 이후 전혀 실천할 맘이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국토 환경개선의 근간인 “생태계 보전”을 위한 ‘자연자원 총량관리제도’와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이 그것입니다. 실천은커녕 논의조차도 없습니다. 이 제도는 지금도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전문가를 바보로 만들어버립니다.

정부 논리로는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법은 없어도 됩니다. 가방끈이 조금 긴 자가 개발예정지역을 잠시 둘러보고 상상으로 조사서류를 작성하면 가장 힘든 조사과정이 쉬이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전문가 1인이 단 3시간 만에 방대한 지역에 7개 분야 전문조사를 마쳤어도 정당하답니다. 그 전문가의 눈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늪지대에 널린 수달과 삵의 배설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혹여 누군가가 문제를 밝혀도 일부 부족했다고 간단히 인정하면 됩니다. 조사 당시 안 보였을 뿐이니까요. 문제를 만든 사람만 괜한 짓 한 게 됩니다. 심지어 계약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전문 ‘조사자’로 버젓이 내밀어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궤변의 논리까지 정부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성실한 전문가는 정말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앞으로 우리나라 멸종위기종 목록은 모두 없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개발로도 멸종되지 않고 알아서 잘 살기 때문입니다. 모든 멸종위기 동물은 다리가 달려 서식처가 파괴되면 알아서 제 살 곳을 찾아가고, 식물은 옆으로 옮기면 됩니다. 보존할 가치가 높은 지역은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대단하다고 자랑했던 설악산 정상부 고산지대도 가치가 없답니다. 산양은 딴 데 가서 산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갈까요? 

개발에 의한 환경영향을 줄이려는 법률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한데 정작 이 법의 해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의 환경영향평가는 말 그대로 요식행위가 되었습니다. 법률의 허우대는 멀쩡합니다만 이는 다만 의미 없는 검은색 글자일 뿐입니다. 법으로 환경의 가치가 강화됨에도 왜 그 중요한 야생생물을 연구하는 전문가와 대학교 전공은 대부분 사라졌을까요? 열심히 하면 일자리를 뺏기는 이상한 법 때문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니 배움의 열정과 자긍심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그러니 대학에서 이런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성실하면 일할 수 없는 이상한 법 때문에 ‘복붙’의 비양심적 업체들과 무늬만 전문가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겠지요. 이제는 학문의 근간이 되는 생물분류군별 조사자조차 섭외하지 못하는 현실이 대한민국 환경의 현 주소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더욱 열악해지는 ‘오염국가 대한민국’에서 왜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네들은 거짓과 진실도 다수결로 판정한답니다. 짐짓 점잔을 빼고, 권위를 내세우는 판정단에는 거짓말한 당사자가, 거짓을 묵인했던 사람이 들어와도 무방하답니다. 이렇게 거짓은 또 진실이 됩니다. 그리고 항변할 수 없는 생물들은 사라집니다.

최악의 환경오염 국가에 살지만 이들에게 표를 주는 우리가 정부를 욕하면 안됩니다. 우리 동네가 개발되면 잘살 것이라는 허상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국정농단을 겪고 탄생한 정부조차 이 공약의 먼지를 털지 않아도 되는 이유겠지요. 정치가는 정권을 잡기만 하면 공익은 접어두고, 소위 통 큰 개발로 주민을 기망하여 표를 구걸해야 하니 자본과 권력의 지향점이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표, 최순실표 막개발이 멈추지 않는 이유이겠지요. 

눈앞의 욕심은 질병으로 돌아옵니다. ‘생태계 보전’ 공약에 쌓인 먼지를 털어낼 시간입니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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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선거제도 개편과 의원정수 확대가 지금 정치개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꽉 막힌 정치에 변화를 줄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 선거제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날카로운 논쟁점이다.

세대·지역·계층을 불문하고 균열 중인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게 있다면 “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어떤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감(切感) 때문이다. 정치는 지금 모든 실패와 악덕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지난달 패스트트랙 정국은 ‘동물국회’의 아수라장을 다시 불러냈다. 이후 국회는 간판만 걸린 ‘빈집’이다. 추가경정 예산안은 13일로 딱 50일째 멈춰 서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모두 ‘불확실성’의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다.

제1야당은 밖으로만 돌며 지지층 규합에 골몰 중이다. 여당은 ‘단독국회’를 으를 뿐 속수무책이다. 외려 야당은 “(단독국회를) 청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라고 야유한다. 멀어지는 여야의 거리만큼 지지층의 적대감도 커졌다. 정치인들은 이 적대감을 동력으로 삼아 더욱 ‘악’하게 싸운다. 적대는 혐오로, 혐오는 ‘죽기 살기’식 저주의 정치로 악화됐다.

한국정치의 비극은 국회 5분의 4를 두 정당이 점령한 ‘양극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이런 양극화 구조를 만들고,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1 대 1 다툼’에 지지층을 붙들어맬 편가름에 매달리고, 자신들 득점보다는 상대 실점에 기댄다. 애초 ‘협력 정치’의 싹이 트긴 쉽지 않다.

공통분모가 ‘지금 정치론 안된다’라면 출발점도 그곳이다. 정치의 구조·제도·문화를 모두 바꿔야 한다. 야당이 되면 “제도 탓이 아니다. 운용이 문제”라고 하지만, 매번 입장만 바꿔 반복되는 것을 보면 맞지 않다. 제도는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그 제도를 운용할 사람을 결정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제도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제도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이 시기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가 다를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 동안 민심이 직접 반영되는 통로로서 지역구 다수대표의 장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원화된 이해관계를 담기엔 역부족이다. 마치 3차원 입체영상 시대를 살면서 흑백TV 시절에 갇힌 꼴이다.

특히 표심과 의석의 불일치는 제도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소외와 불만, 갈등을 만든다. 지역에 따라 40% 가까운 표심이 정치적 대리인을 내지 못하는 사표가 된다면 그들은 ‘불만스러운 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처럼 지지층도 극단화하는 이유다.

선거제 ‘개혁’의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 지금 정치의 소명은 ‘통합’이다. 양극화하는 정치를 다극화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다당제 안착 필요는 그래서 생겨났다.

문제는 비례대표 확대는 지역구 축소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 기득권의 벽은 선거제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선거구 획정의 과거사를 보면 의석 하나를 놓고 사생결단하는 게 정치인들 생리다. 국회 의석을 줄이면 선거제 변화에 동의한다는 한국당 입장은 그래서 거짓이다. 의원들의 기득권 욕망을 부추겨 좌초시키겠다는 ‘떼쓰기’에 가깝다.

정치를 바로잡을 책임과 권리, 힘은 오직 주권자에게 있다. ‘이대론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정치적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소진하고 만다면 주권자의 ‘직무유기’다.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바꾸는 일에는 딱 주권자들이 명령한 만큼만 움직인다.

주권자들이 막힌 정치의 숨길을 열어줘야 한다. ‘의원정수 확대’ 결단을 고민해야 한다. 정수 확대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권리와 책임을 삐뚤게 사용하는 제도의 결함이 문제다. 주권자들은 의원정수와 함께 권한과 책임의 수정도 명령해야 한다. 권력을 줄이고, 책임을 더하는 급부가 따라 붙어야 한다.

국민소환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정치인 언행에 대한 주권자들의 책임 추궁이 명료해진다면, 거짓·막말·선동과 같은 황폐한 정치는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국회 전체 권력의 크기가 동일하다면 정수 확대는 개별 의원의 권력을 줄이는 일이다. 주권자들은 ‘정당해산’을 청원하기보다 의원정수 확대와 국민소환제 도입을 청원했어야 했다. 

문제는 남는다. 지금의 정당 문화를 감안하면 의원정수 확대에 걸맞은 공명한 공천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두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라면, 용기를 내 시작해야 한다. 시작조차 않으면 변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기회조차 없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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