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독일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던 한 선배의 영결식이 있었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20대에 유학길을 떠났던 한 청년이 말년에 잔인한 병마와 싸우다가 이국땅에서 80세에 숨을 거두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그와 영원히 작별하면서 외국땅에서 살면서도 두고 온 산하의 운명을 참으로 많이 걱정하고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유럽의 윤이상과 이응노, 일본의 배동호, 김재화, 곽동의 그리고 미주의 임창영, 김성낙, 최홍희 등 국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사들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애국지사들이 그동안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던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피해 살길을 찾아 남만주로 향했던 동포의 후손들은 해외동포 중 여전히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스탈린시대에 연해주로부터 멀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도 많은 수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에 사는 동포사회도 규모로는 중국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대부분 분단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 이뤄졌다. 일본의 동포사회는 식민지 모국이었던 일본이라는 조건 때문에 특이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규모로 보면 중국과 미국동포사회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와 구성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미주 등지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동포사회를 이제 지구촌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현재 750만명 정도로 구성된 해외동포사회의 규모는 해외에 사는 약 5000만명의 화교나 2400만명의 인도인과 비교하면 물론 작다. 그러나 한반도 안에 사는 동포의 10%가량을 차지하는 해외동포사회는 결코 작지 않은 한민족공동체의 한 부분이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인종청소’에 의해 150만명이나 살해되어 겨우 300만명이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의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 현재 700만명이나 흩어져 살고 있다. 프랑스의 샹송가수 샤를 아즈나부르는 자기 민족의 이 슬픈 역사를 대표적으로 증언했다. 심지어는 조국도 없이 400만명이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도 있다. 대대로 살았던 땅을 떠나 타 지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 만든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의 고통과 수난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디아스포라 하면 으레 유대인을 떠올리지만 인접한 강대국의 억압과 전횡 때문에 모국의 인구보다 더 큰 디아스포라를 해외에 형성한 아일랜드인이나 폴란드인도 있다. 독일의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가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한 동기도 아일랜드와 폴란드의 운명과 비슷한 역사를 한국에서도 발견한 데 있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이런 희생자들의 디아스포라라기보다는 현재 가장 큰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면서, 주로 상업활동을 통해 성공한 중국인의 디아스포라를 따라 화상(華商)의 ‘대나무 네트워크’(竹網)와 비슷한 한상(韓商)의 네트워크 결성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나는 뉴욕의 맨해튼과 플러싱에서 사업경험이 많았던 한 친구에게 그 가능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화교들은 신용을 담보로 해서 서로 돕는데 우리 동포사회에서는 어떤 사업이 잘된다고 하면 서로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함께 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자조 섞인 소리로 답했다. 식상할 정도로 익히 들어온 내용이었다.

내부적으로 갈등이 없는 디아스포라는 없겠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는 특히 분단된 조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크고 작은 내부갈등을 낳았다. 미주동포사회에 있었던 안창호와 이승만 계열 간의 알력이나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 민단과 조총련 간 갈등이 대표적인 예였다. 유신체제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둘러싼 첨예해진 국내의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해외동포사회는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불러온 ‘촛불혁명’을 비판하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로스앤젤레스나 프랑크푸르트에도 등장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렇게 국내정치적 상황과 민감하게 연동된 한인 디아스포라 내의 오래된 갈등도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장기적으로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포공항을 떠날 때 지녔던 생각이 일생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몸만 외국에 와있지 생각과 행동거지는 그대로이고 향우회, 동창회, 교회, 한인회 등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지금 세대의 자리를 새로운 세대가 채울 때면 한인 디아스포라의 생활세계에도 많은 변화가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내부적 분열과 갈등뿐 아니라 거주지역의 주민과 타민족의 디아스포라 간의 소통도 대체적으로 원활하지 못하다. 한인상가가 분노한 흑인들의 주된 공격대상이 된 1992년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그러한 예의 하나다. 새로운 세대는 높은 교육수준, 직업의 다양화, 타민족과의 결혼 등을 통해 이전 세대보다 한층 더 열린 사고와 소통으로 한인 디아스포라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성장했다.

인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현재 지구화과정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진행되는 이주와 이민은 지금껏 주로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체성 대신 초국가적이거나 초문화적인 ‘디아스포라적인 흐름’을 만들고, 이는 새로운 차원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이라는 유일한 정체성 대신에 한국인이자 동시에 미국인, 독일인 또는 중국인일 수도 있는 일종의 혼합된 정체성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현주소를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 나간 주장일 수도 있다. 민족국가의 정체성은 고사하고 분단국가 안 남북한 두 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아직도 여과없이, 때로는 오히려 증폭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통일은 남쪽이 지향하는 동시성과 지구화와 북쪽이 추구했던 비동시성과 주체화가 상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남쪽이 강조해온 지구화와 북쪽이 강조해온 주체성은 상호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지구화를 향한 강한 욕망과 자기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결합할 수 있는 초문화적인 행위주체로서의 한인 디아스포라는 민족분단의 극복과정을 단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 규모는 작고, 시작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조국분단에서 비롯된 증오와 갈등 때문에 외국땅에서도 시달렸고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화스러운 통일조국을 기다리다 끝내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애국지사들과 최근에 연이어 작별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제3의 공간으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소년은 양모에 의해 자물쇠로 채운 창고에 갇혔다. 6세 때부터 12세가 될 때까지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양모는 친자식들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소년에게 먹게 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소년의 양손을 뒤로 묶고 얼굴에 바구니를 씌워두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소년의 손과 배에 화상을 입히고 쇠파이프로 수시로 폭행했다. 12세가 된 소년은 4층 환풍구를 통해 뛰어내려 세상으로 나왔다. 가해자인 양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2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보육원에서 생활한 소년은 화가 나면 자해를 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았지만, 투약을 거부하거나 치료를 중단한 경우가 많았다. 소년의 몸은 어둡고 좁은 창고를 탈출해 세상으로 나왔지만, 소년의 정신은 아직 6세에 머물러 있었다. 파란 하늘과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넓은 학교 운동장은 소년에게 낯선 세계였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소년은 보육원 친구들과 수시로 가출했다. 찜질방을 전전하거나 노숙을 하며 편의점에서 과자와 담배를 훔쳤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제 16세가 된 소년은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되어 교육을 받고 있다. 끊임없이 산만한 모습을 보이고 동료학생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소년에게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자신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하고 학교 다닐 때 해보았다며 무척 좋아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조립하는 데 3~4시간 걸리는 프라모델을 소년은 1시간 만에 만들었다. 그것도 화상을 입어 수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손으로 해냈다. 프라모델을 만들 때 소년은 설명서를 진지하게 정독하고 계획을 세웠으며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는데, 그 모습에서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소년은 담임교사와 개별상담을 할 때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답변했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세세한 부분까지 담담하게 얘기했으며, 살아갈 계획과 장래희망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 학생들에게는 공격적이고 겉도는 모습을 보이며 갈등을 일으켰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과적 치료와 상담을 통해 자존감을 찾아주고 높여줘 학교와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전문적인 약물·심리치료를 받고, 집단상담과 단체생활을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전문 의료소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 부족과 님비현상으로 인해 법무부가 수년간 추진해온 전문 의료소년원 설립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위기 청소년, 그중에서도 정신질환·지적장애 청소년들은 국가가 끌어안아야 할 대표적 소외계층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교육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에게도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소년의 행복과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기성세대와 국가의 책임이다.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보호직 공무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치세력을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관행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생겼다. 혁명 과정에서 소집된 국민의회는 의장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왕당파, 왼쪽에 공화파의 자리를 배치했다. 공화파가 왕당파를 타도한 뒤 구성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는 오른쪽에 온건 개혁세력인 지롱드가, 왼쪽에 급진 개혁세력인 자코뱅이 앉았다. 이후 우파는 대체로 온건한 개혁세력, 좌파는 급진적인 개혁세력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물론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뒤에도 왕당파가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저 시대착오적 구세력일 뿐, 우파도 좌파도 아니었다.

시민혁명 시대에 뒤이어 계급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주창하며 좌파를 자처(自處)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 내부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으며, 부르주아 진영도 좌파와 우파로 갈린다고 보았다. 좌파와 우파는 이념이나 계급이 아니라 태도와 관련된 개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우파니 좌파니 하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전래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1920년대 초반의 식민지 상황이 대혁명 당시의 프랑스와 비슷한 면이 있었기 때문인지, 우파와 좌파도 프랑스 혁명 당시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1925년 ‘시대일보’는 시골의 한 작은 학교에서 일어난 내분을 보도하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육영의숙을 옛날식 한문서당으로 고치자는 사람들의 주장과 완전한 학교 제도로 변경하자는 주장으로 좌우파가 갈렸다.” 복고주의자 또는 중세 회귀주의자를 우파, 진보주의자 또는 근대주의자를 좌파로 분류한 것이다.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가 정치적 개념어로 정착한 것은 1920년대 중반 ‘민족단일당’ 결성 운동 과정에서였다. 192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사람들 대다수는 계급혁명만이 모든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 ‘민족’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사회운동들을 ‘계급 모순을 은폐, 호도하는 부르주아 운동’이라고 배격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타도를 선차적 과제로 삼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조류 변화에 따라 그들도 민족운동 진영 중에서 협력할 부류와 배척할 부류를 나누기 시작했다. 

3·1운동 이후 민족주의자 일부는 ‘인류통성과 시대양심’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회진화론의 세계관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자치 능력과 경제력 등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전제이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직적 훈련이 필요하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적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부류는 타협파, 개량주의자, 우파 등으로 불렸다. 반면 독립 우선 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부류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감시와 통제하에서 독립할 실력을 기른다는 것은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류가 비타협파, 좌파로 불렸다. 민족주의자를 자처했던 사람들도 이런 호칭을 거부하지 않았다.

1927년 민족단일당으로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민족주의 우파를 기회주의로 규정하고, 그를 일체 배격한다고 천명했다. 이후 민족주의를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것은 사회적 통념처럼 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흔히 ‘좌익’으로 불렸다. 물론 이들 외에 ‘친일파’로 불린 집단도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민족주의 우파는 자기 논리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친일파에 수렴해갔다.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 좌파 중에서도 일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투항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정치세력으로서 친일파는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민족개량주의와 친일의 논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친일파 개개인도 정치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민족국가 건설 방략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 과정에서, 외부적으로는 냉전체제의 형성 과정과 관련을 맺으면서, 정치 지형은 급속히 재편되었고 각 정치세력의 이름도 달라졌다. 일제강점 말기 한인들에게 이름, 언어, 역사 등 민족의 표지를 다 버리고 철저한 일본인이 되라고 요구했던 정치세력이 ‘애국’을 명분으로 삼아 정치무대에 뛰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알려진 뒤, 그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상국민회의로 결집했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모였다. 이때부터 전자를 우익, 후자를 좌익으로 분류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도 좌익이 되었고, 친일파라도 우익으로 불렸다.

단독정부 수립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좌익이건 좌파건 공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정치세력이 되었다. ‘좌(左)’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은 언제 잡혀가 고문당하고 죽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역대 독재정권은 ‘좌경 용공세력’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비판세력을 탄압했다.

2002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표가 대한민국 정권을 ‘좌파적인 정권’으로 규정하여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확대되자 발언의 주역은 “좌파적인 정권이라고 했지 좌파정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며 한발 물러났지만, 언론은 이윽고 ‘좌파정권’이라는 말을 관용어로 만들었다. 이는 6·25전쟁 이후 한국인들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좌(左)’라는 글자에 대한 적대감을 동원하려는 ‘언어전술’이었다. 프랑스 국민공회의 예에서 보듯, 공화국에서 우파와 좌파는 개혁 속도와 방법론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반개혁 세력은 반개혁 세력일 뿐,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과연 ‘좌파정권’이 들어선 적이 있는가? 지금 우파라 불리는 세력은 과연 우파일까?

<전우용 | 역사학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젠더 갈등이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을 초래한 한국사회의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란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을 말한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남성=아버지의 위기”로 해석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무엇이었나? “아빠 힘내세요”였다. 더불어서 “부-자되세요!!” “신(新)현모양처”가 있었다.

이 세 유행어는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아버지들의 위기’로 이야기하고, 그들이 “노오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런 수사 안에서 외환위기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가 되고, 그 개인의 얼굴은 ‘남성’으로 상상된다. 이때 여성의 자리는 “남편 기 살려주고 자식 건사도 잘하면서 동시에 맞벌이를 하는” 신현모양처였다. 

이처럼 한국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형질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성별화된 문화적 위로를 경유해 위기를 외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남녀 공히 함께 경험한 재난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제일 먼저 해고되어 비정규직화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화제가 됐던 맥주 브랜드 카스의 CF ‘너무 예쁜 그녀-지갑’ 편을 떠올려보자. 맥주값을 낼 돈이 없는 남자 친구에게 커리어우먼인 여자 친구는 자신의 지갑을 건넨다. 하지만 왜인가? 왜 ‘여자’라는 성별이 해고의 기준이 되었던 시대에, 남자의 지갑에도 없는 돈이 여자의 지갑에는 있다고 상상되었는가?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이후 부성 멜로드라마의 인기로도 이어졌다. <내 딸 서영이>나 <7번방의 선물> 같은 작품들에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거나 죽어버렸고, 딸은 홀로 잘났으며, 아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다. “고개 숙인 아버지와 똑똑한 딸”이라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대. 욕심 많고 뭐든 잘하는 남자아이들을 ‘알파보이’라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독 여자아이들만은 ‘알파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이후 현상이다.

2016년 즈음, 사람들은 온라인 여성혐오의 원인으로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꼽았다. 2018년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는 한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고스펙 여성들이 하향결혼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한국 여자들은 잘나가고 한국 남자들은 기가 죽고 말았다는 인식이 강화,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 공히 불안 위에 서 있을 때에도, 남성의 어려움만은 그토록 짠하고 여성의 투쟁은 ‘알파걸들의 투정’으로 폄하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토록 여성들이 잘났음에도 왜 남녀 평균임금 격차는 여전히 대략 35%나 나는 것일까).

그런데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라는 표현 뒤에는 거대 괄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괄호 안에는 “그러나 성공한 남자, 돈 많은 남자와는 결혼하는 여자”라는 말이 숨어 있다. 이런 상상력과 연결된 조어가 바로 “김치녀=남자의 경제력에 빨대 꽂아 사치하는 무개념녀”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남성=경제력’ ‘여자=성공한 남자의 트로피’라는 가부장제의 오래된 도식이 살아 있다. 청년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부장제의 지배규범이다. 반면 어떤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판을 용인하면서, 이 위에서 ‘분배 정의’의 문제로 화를 내고 있다. 여자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그러므로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운동에서 젠더 갈등이란 가부장제의 성차별주의를 뒤집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면,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말하는 젠더 갈등이란 ‘잘나가는 여자 vs 고개 숙인 남자’라는 판타지로부터 비롯된 날조된 프레임이다. 젠더 갈등을 논하려면 이런 상이한 이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학생 지도에서 교사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대부분의 교사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출신이라는 데 있다고들 한다. 공부에 흥미 없어 하고 활동적이며 순응적이지 않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비폭력 대화’를 주제로 한 교사 연수에서 선생님들과 ‘관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라고 했는데 우리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의 익숙한 습관을 넘어 나 자신에게 어떻게 새로운 시각을 허락할 수 있을까? 특히 학생들을 바라볼 때 겉모습 너머 내면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연수생들은 교사로서 학생을 만나 사용하는 말의 대부분이 평가와 판단의 말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평가와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이 쓴 글을 읽을 때”라고, 어떤 선생님은 “축제 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볼 때”라고 했다. 

한 선생님은 ‘가정방문을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지각도 자주 하고 규칙도 자주 어겨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은 아이가 있었는데 가정방문을 해보니 기본적인 돌봄조차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 나와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정방문을 다녀온 후 아이가 더 이상 문제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시간에 너무나 무기력하고 수업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있었는데 다른 교과 선생님 수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자신의 수업시간에 보는 것만으로 학생을 판단하기 쉬운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우리 인식의 한계를 금방 알 수 있다. 

가르치는 일이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면 우리는 조급해지고 엄격한 시선으로 학생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면 해야만 한다는 판단으로 강요의 화살을 무수히 날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의 간극은 커진다. 

교사의 고정된 시선 너머 각자 다른 빛깔로 생동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온전히 다가갈 수 있을까? 

그것은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이 들 때마다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고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전함과 새로움을 허용해야 한다. 교사로서 아이들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며 새로운 도전에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급변하는 척박한 교육현장 속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고 배움을 이어가기 위한 실마리가 아닐까 싶다.

<손연일 | 월곡중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 없습니다. 먹고살 걱정에 자식 걱정, 학비 걱정, 진로 걱정, 할 일 산더미라 걱정, 다들 한두 가지씩 매일 걱정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걱정이라 잠도 안 오고 밥맛 잃고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도 있습니다. 퀭한 눈에 푸석한 얼굴, 초조한 태도로 그저 노심초사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와하하 개그맨이 웃겨도 멍하니 딴생각이고, 산해진미 앞에 두고 젓가락 쥔 손이 식탁 아래로 맥없이 떨어집니다.

지나친 걱정은 해롭기만 하다는 속담 ‘걱정이 반찬이면 상발이 무너진다’가 있습니다. 

걱정이 태산이면 나오는 한숨을 어쩔 수 없죠. 밥 한 술 떠먹고 반찬 집으려다 젓가락 탁 휴~, 국물로 밥 삼키고 또 젓가락 들려다 어깨 축 휴~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걱정인지조차 잊은 채 기분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댑니다. 속 시원히 털어놔주면 좋으련만, 구들장 꺼져라 혼자 한숨만 쉬고 있으니 바라보는 사람도 한숨 나옵니다. 

“상 꺼지겠다….” 그만 젓가락 들고 걱정을 내려놓으라 팔 추켜주지만, 젓가락 끝은 여전히 반찬 위를 서성입니다. 상판 꺼지고 상다리 무너지도록 한숨만 쌓이지요. 끼니 거르고 불면의 밤을 보낸들 한숨으로 무엇 하나 바뀔 리 있을까요? 

지나친 걱정은 지능을 원숭이 수준까지 떨어트린다고 합니다. 근심과 불안에 잡아먹히면 걱정이 걱정이고, 해결의 실마리 어른거린들 눈앞 캄캄해 못 보고 못 잡아냅니다. 

종이 한가운데 ‘걱정’이라고 쓰고 동그라미 치십시오. 옆으로 가지 뻗고 ‘왜?’라고 쓰고 또 동그라미로 마감합니다. ‘… 때문에’ ‘도와줄 사람은?’ ‘어디서 구하지?’ 떠오르는 대로 마구 곁가지 뻗어봅니다. 

밥상 책상 앞에서 한숨 쉬면 복 나가고 답 없습니다. 엉클어진 머릿속 대신 한눈에 보이도록 종이 위로 생각 한 상 쭉 차려봅시다. 한숨 대신 생각 나와야 답이든 뭐든 나오지 않을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자스키 1인자였던 미국의 린지 본은 올해 초 은퇴하면서 “그동안 열몇 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려니 내가 너무 늙은 기분이었다”는 말을 했다. 본은 1984년생, 만으로 34세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1980년대 후반생이 중고참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3월 이후 출생한 선수들이 올해 프로에 입단했으므로 1980년대 후반생이 맏형이 되어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어느덧 우리는 2000년대생이 스포츠 무대에서 입신양명하는 시대에 와 있다.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 최우수선수상(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이 2001년생이다.

누구나 ‘요즘 애들’과 세대 차이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해 출간된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대와 소통해야 할 필요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에게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내야 하는 스포츠 지도자들이야말로 ‘요즘 애들’과의 소통 기술이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트래킹 데이터 장비로 투구 궤적과 회전율을 파악하고 타구 발사각을 측정해 선수 훈련과 전력 분석 등에 활용하는 게 유행이다. 감독과 코치 대다수는 이런 데이터 없이도 삼진을 잡고 홈런을 쳤던 세대지만 젊은 선수들은 다르다. 이들은 코치의 경험보다 데이터를 더 신뢰한다. 코치가 투구나 타격 메커니즘 등을 지도할 때 자신의 주장을 데이터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선수를 설득하기 어렵다.

류현진의 LA 다저스 동료인 1994년생 선발투수 워커 뷸러도 이런 부류다. 이닝 수와 실점 등 경기 결과보다 데이터상 공의 움직임과 회전율에 일희일비한다. 마운드에서 8실점을 했어도 데이터가 만족스럽다면 “오늘 대단했다”며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의 어른들은 이런 선수들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애틀랜타의 1952년생 론 워싱턴 코치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요즘 선수들은 직업윤리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1955년생 감독 네드 요스트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는 “예전엔 감독이 호통쳐도 선수들이 다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요즘 선수들은 2주일은 침울한 기분으로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우리 때는 데이터 없이도 잘했다’거나 ‘너희들은 너무 유약하다’고 훈계했다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선수들의 신망을 잃고 현장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다. 이들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을 적극 공부하고 선수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U-20 월드컵 대표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도 소통이다. 정정용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술 전개와 옵션을 상세히 설명한 ‘마법노트’를 만들어 나눠줬다. 선수들은 이것을 보며 전술을 몸에 익히고 실전에서 활용했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격려했던 정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팀을 뭉치게 했다.

책을 읽어가며 탐구해야 할 정도로 낯선 세대가 스포츠 주역이 되는 시대에 체육 정책과 체육계 어른들이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4일 정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학교 스포츠 정상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기단체 등 현장 체육인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권고안 철회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학교 스포츠의 문제점, 인구 감소에 따른 선수 수급의 어려움,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세대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에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무작정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지만 정부의 방향이 옳다 해도 현장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행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상호 소통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스포츠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외부에 멱살 잡힌 사람의 몸. 아무리 고급한 생각을 한다 해도 밥 한 톨 삼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건사하기가 난망이다. 기생(寄生)이란 말을 굳이 해야 하랴. 항산이라야 항심이라고 했다. 삼시세끼. 이보다도 더 일상을 좌우하는 게 달리 없으니 몸의 안팎이 다 같다. 오죽했으면 삼식이, 라는 참으로 모멸스러운 별명이 등장했을까. 

어디에서 오는지 도무지 그 정체를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배꼽시계가 뻐꾸기처럼 울었다. 또 도래한 점심. 이번 끼니는 출판도시 내 옥호도 사뭇 다정스러운 ‘곰씨부엌’으로 정했다. 곰처럼 우직한 분들이 묵직한 국물을 끓여낼 것만 같은 식당.

좋은 식당은 배고픈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내 가슴살을 잘게 저민 닭곰탕이 나오고 숟가락을 집었다. 첫술이 들어가고 들척한 국물이 목울대를 휘젓고 내려갈 때, 옛날 생각이 거슬러 올라왔다.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는 여섯 개의 입을 달래느라, 그 간단없는 삼시세끼를 감당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윽고 허기가 다스려지고, 국물이 바닥을 보일 무렵, 숟가락을 그릇에 걸쳐놓는 여유도 찾았다.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다가 아, 퍼뜩 알게 되었다. 

‘곰씨부엌’ 앞마당의 울울한 나무. 6월의 푸르른 신록이 도드라지는 벚나무들. 그들이 식당을 환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통유리창 바깥은 생생한 현실이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닿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 잎사귀가 춤을 추는 곳이었다. 나처럼 빈틈없는 몸을 가진 나무들을 보다가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나무들도 식사 중! 이 환한 햇빛 아래로 소풍 나온 듯! 

입안이 씰룩거릴 때마다 정확하게 리듬을 맞추며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들의 동작. 목구멍 너머로 꿀떡 삼킬 때면 더 크게 끄떡이는 잎사귀들의 움직임. 그것은 나의 저작운동과 때맞추어 궁합을 맞추는 나무들의 식사법이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벚나무 옆에서 벚나무와 함께 또 한 끼니를 때운 하루.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심학산 아래 ‘곰씨부엌’ 앞의 벚나무  (0) 2019.06.18
덜꿩나무  (0) 2019.06.11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산딸나무  (0) 2019.06.04
무등산의 광대수염  (0) 2019.05.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폭발사고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조금은 느긋한 주말 기분에 젖어 침대에서 TV를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자막이 떴던 순간의 기억이다.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는데,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내가 학교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의 학교에는 선진국에 비해 안전 인프라가 한참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밤을 새우며 실험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간혹 일어난다. 그 장면을 떠올린 것일까. 정당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정치개혁을 위해 단기필마로 분투하다가 마침내 목숨을 버린 그를 보며 폭발사고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설명해야만 했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 설명 말고, 정치개혁을 시도한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도록 하는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사회과학자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나 한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음날 선배 정치학자 한 분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16명의 학자들이 1년간 노무현 정부를 연구했다. 1주기를 맞아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2011년 책이 출판되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부검’이라고 하고 싶었다. 폭발사고를 연상케 한 섬광 같은 비극의 통보로부터 시작된 책의 취지에 걸맞은 제목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은 다른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원래의 제목으로 남아있다. 책을 세상에 내놓고도 마음의 짐은 쉽사리 덜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조용히 그를 애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8년 만에 다시 열어보니, 이 책에 포함된 내 원고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두 번째 시도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그 시도는 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는 첫 번째 시도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시도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무심한 세월이 흘러 어느새 그 두 번째 시도가 진행 중이니 그걸 지켜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그때 나는 4대 개혁 입법의 실패로부터 세 개의 교훈을 도출했었다. 

첫째, 사회적 소수파 정권의 개혁 전략은 사회적 기득권 정권의 전략과 달라야 한다. 사회적 소수파 정권은 기업도, 언론도, 관료도 자기편으로 가지지 못한다. 기득권을 가진 야당은 굳이 ‘반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수파 정권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철옹성 안에 ‘주둔’하면서 적들이 지치고 분열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철옹성은 안보와 성장이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국회로 돌아와 ‘반격’하지 않고 종북타령이나 하면서 ‘주둔’하는 이유이다. 

둘째, 갈등의 전략을 고민하고 생태적 통제(ecological control)에서 벗어나야 한다. 갈등에는 야당을 상대로 하는 대외적 갈등과 당내에서 벌어지는 대내적 갈등이 있다. 철옹성 안에 주둔하기만 하는 적을 상대로 준비되지 않은 공격을 할 때마다 병사들은 지치고 마침내 대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열린우리당이 여러 개의 계파로 갈라져 요란하게 갈등했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갈등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생태적 통제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상대에게 너무도 분명히 알려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뻔히 밟아나갈 길목만 차단하면 쉽게 나를 통제할 수 있다. 과거 한나라당은 4대 개혁 입법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정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장외집회를 이어가면서 경제를 망가뜨리고 북한에 종속된다는 거짓 선동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결국은 경제와 안보라는 길목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지지세력을 찾을 수 있는 정책을 먼저 해야 한다. 진보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대부분 공공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꼭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공공성은 공공의 이해에 봉사하지 개인의 이해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지세력은 찾기 힘들고 반대세력은 쉽게 찾아진다. 개혁을 초창기에 하지 않으면 힘이 빠져 못한다는 말이 정말로 불변의 진리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탄탄한 지지세력을 조직해 나갈 수 있는 작은 정책부터 시작해서 임기 말에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을 이루는 것이 나은 전략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시도는 철저하게 전략적이어야 한다. 예측 가능한 개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냉정이 필요하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70여일 동안 닫혀 있던 국회의 문이 어렵사리 열리게 됐으나, 자유한국당의 끝없는 몽니 때문에 일단 ‘반쪽’ 정상화에 머물 판이다. 여야의 막판 협상이 접점 찾기에 실패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만으로 국회 소집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바른미래당 주도의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17일 국회에 접수했다. 소집요구서 제출 이후 3일이 걸리는 만큼 6월 임기국회는 오는 20일 개회된다. 여야 4당만의 국회 소집을 불러온 것은 전적으로 한국당의 책임이다. 한국당은 여당과 협상하며 이견이 좁혀질 때마다 새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절충 기회를 차단해왔다. 지난주엔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재구성을 등원 조건으로 내걸더니, 이번엔 난데없이 ‘경제실정 청문회 개최’를 새로 내세웠다. 추가경정예산안을 50일 넘도록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추경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한 경제청문회를 열자는 건 국회 정상화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공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경제위기와 실정 등을 따지고 싶으면 해당 상임위와 대정부질문, 예산결산특위에서 현안 질의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파행 국회를 규탄하는 범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기 위해 정상적인 국회 운영에 훼방을 놓고 있다며 선거제와 국회의 개혁,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촉구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한국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경제 청문회 개최와 함께 ‘패스트트랙 원천 무효와 사과’를 등원 조건으로 못 박았다. 한국당이 정쟁에만 골몰하는 상황에서 여야 4당만의 국회 소집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만 국회가 열리더라도 한국당이 반발할 경우 추경안과 민생법안 처리에 난항이 불가피하다. 자칫 국회를 소집해놓고도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한 4월 임시국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한국당의 어깃장으로 6월 국회에서마저 추경안 처리가 불발되면, 추경 효과는 급속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여야 4당은 국회를 열어 놓지만 말고 상임위와 특위 활동을 통해 민생 현안을 보살피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황교안 대표는 의총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투쟁을 쉽게 양보할 수 없다”고 강경 노선을 주도했다. 사사건건 반대와 강경으로 일관해 정부·여당을 궁지로 내몰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이다. 정략적 이해에 매몰되어 민생과 경제를 외면하고 국회를 방치한다면 심판의 화살은 한국당을 향하게 될 터이다. 국민 10명 중 8명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지지할 정도로 들끓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정녕 황 대표 말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투쟁정치를 접고 이제라도 ‘개문발차’한 국회에 동승해야 한다. 민주당도 대화의 끈을 놓지 말고 한국당을 설득해 국회를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한국당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윤 내정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지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의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하는 등 ‘적폐청산 수사’의 상징으로 각인돼온 인물이다. 특히 그는 문무일 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다. 검찰 관행에 비춰보면 윤 내정자보다 선배인 고위간부 상당수가 용퇴할 가능성이 크다. 파격적 총장 발탁이 검찰 조직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은 그에 대한 호오를 불문하고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검사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첫째, 적폐청산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적폐청산 기조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윤 내정자 지명을 통해 적폐청산의 고삐를 늦출 뜻이 없음을 확인했다. 둘째, 검찰의 변화와 쇄신 필요성이다. 법조인이자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인 문 대통령은 검찰의 생리를 잘 안다. 지금까지 유지돼온 총장 인사 관행을 깨뜨림으로써 인적쇄신을 포함한 대대적 개혁을 견인하겠다는 뜻이 드러났다.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 중앙지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 내정자도 자신이 발탁된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차기 검찰총장의 최우선 과제는 검찰개혁의 완수다. 윤 내정자의 검찰개혁에 대한 구체적 견해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그는 특수부 검사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권 분산 방안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장 지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관련 질문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윤 내정자는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내부 반발을 넘어 개혁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입증해야 한다. 보수야당의 ‘코드 인사’ 비판과 관련해서도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 내정자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윤 내정자가 인사청문절차를 통과한다면, 6년 전 밝힌 소신대로 검찰을 특정세력·인사가 아닌, 주권자 전체에게 봉사하는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검찰주의자’로서의 과거와 결별하고, 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이는 ‘새 검찰의 초대 총장’이 돼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의미 없는 전공 2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공이 2위라는 표현은 전공 성적이 2위라는 말인가? 2등이나 했는데 의미가 없다고?’ 등과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검색을 해보고 나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미국의 한 언론이 가장 ‘쓸모없는 전공 10위’를 소개하고 있었다. 인류학 및 고고학, 영화·비디오 및 사진, 미술, 철학 및 종교, 음악, 체육, 역사, 영어영문 등이 불명예를 안았다. 실업률이 높고 연봉이 낮다는 이유였다. 반면에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은 전공은 경영학, 컴퓨터 및 정보과학, 공학, 의학, 수학 및 통계학 등이었다. 이학, 인문학, 문예의 토대 위에 실용과학이 의미가 있다는 건 좀 살아보면 깨달을 수 있는 상식이다. 잘못된 기준을 두고 평가하거나 평가를 위한 평가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평가란 좁게는 ‘물건 값을 헤아려 매김’을 뜻하고, 좀 더 넓게는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평함’이라고 정의된다. 즉 돈을 쓸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게 평가의 근본 이유이다. 하지만 사려는 입장에서 값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파는 쪽에서 이런저런 비용을 따져서 ‘희망’ 가격을 매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어려운 물건의 경우에는 ‘감정평가’를 한다. 하지만 모두가 결과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복수의 감정평가를 평균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상거래에서도 이러한데 다른 목적의 평가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학업의 평가는 시험을 통해 이뤄진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학업의 성취도와 부족한 부분을 살펴 좀 더 효과적인 학습계획을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학생의 등급을 나누기 위한 수단처럼 여겨진다. 이런 평가는 시험을 잘 치르게 할 여력이 되는 부모에게나 유용할 뿐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쓸모없을뿐더러 유해하다. 평가의 방식을 떠나서 목적과 쓰임이 중요하다.

직원들에게 인건비를 지출하는 기업들은 고과를 통해 자사의 인력을 평가하고 급여와 승진에 반영한다. 최근에는 상사가 일방적으로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에서 탈피하여 다면평가를 도입하기도 한다. 상위자, 동료, 하위자, 고객 등 피평가자와 관련된 모든 사람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방식이다. 이처럼 새로운 평가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도입하는 이유는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이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친구의 회사를 망하게 하려면 경영 컨설팅을 받게 하고 성과지표를 도입하게 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성과지표는 ‘미래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핵심지표들을 묶은 평가기준’을 뜻하며 계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간단하게 계량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니 우습기만 한 지표들이 버젓이 쓰인다. 보고서 작성 개수, 업무회의 진행 건수, 구매자 면담 건수 등이 진정한 성과가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일반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의미 없는 지표가 종종 쓰이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성과지표를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도 적용하라는 압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명분은 지원정책이 얼마나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했는지 성과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일반경영에서도 도입이 어려운데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평가에 적절할 리 없다고 여겨진다.

굳이 정책의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면, 일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정책이 추구했던 목표와 철학이 얼마나 구현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경제정책의 성과를 담당 공무원이나 개별 기업이 아니라 경제성장률이나 고용률 등으로 살피듯이 마을공동체 지원의 성과도 개별 참여자가 아니라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진정으로 살피는 방법을 구해야 좀 더 의미 있는 평가일 것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서운 중2’ 뺨치는 한국당  (1) 2019.06.28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모르는 것  (0) 2019.06.25
평가의 의미  (0) 2019.06.18
택시 드라이버  (0) 2019.06.14
쉽게 현명해지는 방법, 걷기  (0) 2019.06.11
국제노동기구 100주년, 일의 미래  (0) 2019.06.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