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훈 교수는 지난 7월24일자 경향신문에 ‘석원정 소장의 반박에 대한 재반론-“다시 살펴봐도 다문화 가정폭력 통계엔 오류가 있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앞서 7월11일 설 교수의 ‘다문화가족 가정폭력, 인권위의 엉터리 통계’에 대한 나의 반론 기고문에 대한 설 교수의 재반론문이다. 나는 결혼이주여성의 42.1%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국가인권위의 조사 방식이 엉터리였다는 그의 최초 기고문과 이후 재반론문의 문제점에 대해 재반박하고자 한다. 

재반론문에서 설 교수는 “질문 문항과 선택지가 아예 다른 경우 비교를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바로 그것이다. 설 교수 자신도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방식, 즉 서로 다른 문항과 선택지로 조사된 보고서의 피해율을 단순 비교 후, 그에 터잡아 인권위의 다문화가정폭력 통계에 오류가 있다고 단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게 나를 포함한 이주인권 활동가들의 시각이다.

더욱이 맨 처음 기고문에서 설 교수는 “그 조사가 엉터리라면, 조사결과가 ‘피해자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해 다문화가족 구성원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최근 언론에 보도된 결혼이주여성의 폭력피해 상황은 과장된 것이고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핵심적 주장이다. 하지만 조사연구 설계 시 목적과 조사대상의 특성에 따라 비확률표본 방식 또는 확률표본 방식 중 적절한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조사결과는 각각 나름의 특징과 의미가 있다. 따라서 조사방법론과 피해율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핵심은 실제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폭력피해가 현재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오래된 인권과제다. 게다가 가정폭력 피해는 증가하는 추세다. 보고 사례를 보면 폭력의 양상은 물론 가해자도 남편만이 아닌 시가 식구 등 다양하다. 사망에 이른 피해자도 적지 않다.

또 많은 이주여성들이 체류자격에 발목이 잡혀 가정폭력을 견디거나 숨기려 한다. 심지어 자신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 출신 한 이주여성은 남편이 식칼을 들고 와 식탁에 꽂아놓고 겁을 주는 일이 빈번하자 견디지 못하고 양육비도 포기한 채 이혼한 후 딸을 데리고 나와 살고 있다. 그럼에도 결혼생활 파탄의 원인을 물으면 “문화 차이”라고 답한다. 현실이 이렇기에 현장의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가정폭력 관련 통계수치가 현실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통계수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 가정폭력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폭력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과 배경에 대해 주목하고 올바른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과 아동에 대한 참혹한 폭력행위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주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이 시점은,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을 근절할 대책을 세울 좋은 기회다. 이미 작년 기준 15만9000명에 달하는 결혼이주여성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언제까지 비문명적인 가정폭력에 이들을 방치하면서, 통계방법론만 논하고 있을 것인가?

<석원정 |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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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국 지린(吉林)에서 왔다. 그의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먹고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척박한 땅을 개척한 수십만명의 조선인 중 하나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지린에 닿았을 때 그곳은 일본 괴뢰군이 세운 만주국의 땅이었다. 

조선일보 기자였고, 친일문예지 ‘조광’의 편집자였던 친일 문인 함대훈이 만주국의 여러 지역을 돌고는 ‘만주국이 건국한 지 6년. 그동안 여기 이 높고 큰 건물과 넓고 긴 도로가 질서정연히 째였다. 이 건설이 만주인도 아니오 조선인도 아니오 일본인이다. 일본인의 위력은 이만치 크다’(<일제말기 문인들의 만주체험>, 민족문화연구소)는 글을 발표했을 무렵, 만주 땅의 모든 학교에서는 조선어가 금지되었다. 학교 안에서 조선말을 하는 학생은 괘패라는 것을 줬는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괘패의 수를 세서 벌을 받았다(<기억 속의 만주국Ⅰ>, 강대민 외). 

조선인이 아니라 황국신민이라 말하길 강요받았지만, 그들은 만주국일 때도 중국일 때도 굳건히 우리말과 문화를 지켜냈다.

지린에서 온 그는 자신의 가족이 지린에 뿌리를 내리게 된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20대에 혼자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떠났던 땅으로 돌아와 건설 현장에서 무거운 철근을 나르며 오래전 이 땅을 떠났던 이들의 절박하고도 쓸쓸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꽤 열심히 일했고, 몇 년 전에는 건축자재를 만드는 작은 공장 하나를 인수했다. 지린에 있던 부모님과 동생이 와서 공장 일을 도왔다. 며칠 전 그는 아버지 칠순을 맞아 식당을 빌려 잔치를 했다. 아직 조선족들은 칠순잔치를 한다는 그의 말대로 대림동에서 꽤 유명한 중국식당은 방마다 성대한 칠순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곱게 한복을 입은 노인이 트로트를 열창하는 며느리와 아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뭉클했다. 노인의 희미한 웃음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으며, 그리고 지켜야 했던 우리 민족의 고단한 역사가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역사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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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외교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한국의 평화와 번영은 주변국과의 화해·협력에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운명이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최근 한국은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로부터 전 방위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평소 경쟁하고 대립하던 정치세력들이라도 이런 때는 힘을 합치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그런 장면을 볼 수 없다. 한국의 창의적인 정치인들은 이때야말로 상대를 몰아붙일 좋은 기회로 여기며, 공동의 적을 잊은 채 서로를 적이라고 부른다. 

여야는 지금 결투로 승부를 가리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팽팽히 대치하고 있지만 뜯어보면 외교정책 차이는 크지 않다. 일정한 재임 기간을 갖는 통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외교정책의 폭은 제한적이고, 대격변이 닥치지 않는 한 누가 집권해도 국익에 관한 정의, 동원 가능한 자원, 협상 수단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정학의 지배를 받는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야당은 외교정책을 전면 폐기하라고 정부를 공격하지만, 그들이 집권한들 말대로 하기는 어렵다. 외교정책만큼 집권세력에 대해 비탄력적인 것이 없다. 

일본의 무역보복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너무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야당이 대책이라며 내놓은 것이라고는 겨우 특사 파견,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한·미·일 공조 복원이다. 문제의 핵심과 무관한, 협상 전술에 관한 것으로 정부에 맡기면 될 일이다.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에 더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야당이니까 하는 말에 불과하다. 야당이 집권했다 해도 주변국 모두와 동시에 대립을 심화시키는 행동은 하지 못한다. 

여야 간 차이가 커 보이는 게 있기는 하다. 대북정책이 대표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비핵 평화정책 전면 수정,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합의 파기를 주장한다. 그건 남북관계에 파국을 부르는 일이다. 현실적 대안이 아니다. 그저, 자기 이념의 표현, 차별성·존재감 과시를 위해 대북정책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차이는 대북정책 방향이 아닌, 특정 현안과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태도에서 나타나지만 그것이 초당 외교 거부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 하는 게 초당 외교다. 초당적 대응과 협력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외교 실책이 있으면, 야당으로서 당연히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면한 외교 현안을 해소해야 할 시급성·중요성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아무리 당파성이 필요하다 한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굳이 나서서 대통령을 ‘적’이니, ‘안보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니 비난하는 것은 공동체를 이끌겠다고 준비하는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대외관계의 난제를 헤쳐 나가야 할 대통령을 흔들어 나무에서 떨어뜨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 법이다. 정부·여당 또한 야당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려 노력했어야 한다. 야당 존중 없는 초당 외교는 가능하지 않다. 정부·여당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야당이 알아서 도와주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초당 협력은 야당에 대한 청구권이 아니다. 대야 압박 수단도 아니다. 대야 압박 공세와 초당 협력은 병존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권은 친일이냐 반일이냐,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이분법으로 제1야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격적 언어를 구사했다. 한국당이 남북 화해·협력 문제를 친북이냐 반북이냐 이념 문제로 왜곡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접근법이다. 정부가 초당적 지원을 받으며 일본의 도발에 대처해야 한다는 건 반일이 아니라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교 문제를 정당 정체성 혹은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가는 게 내부 정치 싸움에 효과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외교 현안 해결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 

사람들은 외교 문제가 국내 갈등을 초래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국내 갈등의 불쏘시개로 외교 문제가 동원됐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무엇이든 끌어들여 충돌을 일으키는 게 한국의 정치 공간이다. 외교 문제 해결의 중심축이 굳게 세워지는 대신 반일과 친일, 애국과 이적, 여와 야의 대립 축이 우뚝 서 있는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이다. 

외교 문제가 내부 문제로 수렴되고, 모두가 내부 투쟁에서의 승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불안정한 대외 정세에도 한국인의 시선은 밖이 아닌, 안을 향해 있다. 모두 ‘한국 정치’ 때문이다.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놔야 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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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을 하지.” 면장(面長) 노릇을 하는 데에도 식견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와전되어 사용되는 속담이다. “배우지 않으면 장(牆)을 대면하고 서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lt;서경&gt; 구절에서 유래한 ‘면장(面牆)’이 무지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여왔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뜻의 ‘면면장(免面牆)’이 ‘면장을 한다’는 표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장(牆)은 보통 담벼락으로 풀이되는데, 집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세워둔 가림막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깨달음을 위해 좌선하는 선사가 아니고서는, 앞이 꽉 막힌 곳에 서 있기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면장을 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은 자신의 눈앞에 가림막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배우지 못해서 가림막에 막혀 살면서도 그게 가림막인 줄 몰랐다면, 요즘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가림막에 온갖 정보가 난무해서 세상을 다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그 가림막 너머 혹은 바깥에 무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소수의 일방적인 대중매체에서 정보를 얻던 때에 비해서 무궁하게 선택 가능한 쌍방향의 인터넷 공간을 활용하는 오늘, 오히려 우리 앞의 가림막이 더 견고해지는 면도 있다. 스스로 검색하고 선별했다고 믿는 정보들이 실은 누군가가 거르고 가공한, 혹은 은폐하고 왜곡한 정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과 해석이 혼재된 가운데, 의도적 해석을 거친 사실을 근거로 비타협적인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저마다 자기 앞의 가림막이 전부인 줄 아는 한, 건강한 토론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일관계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견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섣부른 판단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나의 가림막에 비친 정보들이 과연 누군가 덧씌워 놓은 프레임에서 자유로운지 살필 필요가 있다. 면장을 면하려면 먼저 내 눈앞에 가림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가림막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 조금만 더 품을 팔아서 해석 이전의 사실들에 눈길을 돌리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전문부터 2007년 한일수교회담 백서, 2012년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문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날것의 자료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가림막을 주체적인 사고의 창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야말로 이 시대에 면장을 면하는 길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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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된 딸(박근혜)은 첫 여름휴가를 그 섬으로 떠났다. 2013년 7월30일 페이스북에 휴가 사진 5장이 공개됐다. 그중 기묘한 사진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나뭇가지로 다섯 글자를 모래 위에 쓰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저도의 추억.’ 38년 전 대통령 아버지(박정희)가 이 섬에서 읊은 시의 제목이다. 대통령 첫해 여름휴가지에서 아버지를 소환하며 ‘추억 정치’를 극적으로 연출한 그 사진들은 최순실이 지휘·감독·선별해 전파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7월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백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쓰고 있다. 출처 : 박근혜 페이스북

대통령 아버지는 풍광이 수려한 남녘의 작은 섬(면적 43만4181㎡)을 사랑했다. 1954년부터 대통령의 여름 휴양지로 이용되던 저도를 1967년 처음 방문한 박정희는 휴가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러다 1972년 아예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했다. 홀로 아름다운 섬의 몸에는 권력의 장치들이 새겨졌다. ‘바다의 청와대’란 뜻의 청해대로 이름 붙여진 별장이 증개축되고 9홀 규모의 골프장도 조성됐다. 은빛 찬란한 섬진강 모래를 운송해 202m의 인공 백사장을 만들었다. 딸 대통령이 ‘저도의 추억’을 새긴 바로 그곳이다. 권력의 공간으로 재구성된 그 섬에서 박정희 가족은 여름마다 ‘추억’을 쌓았다.

부녀 대통령의 추억이 서린 그 섬은 어떤 이들에게는 아픈 추억으로 되새겨진다. 섬 밖으로 밀려난 주민들이다. 저도는 민간인 출입이 원천 금지됐고, 천혜의 어장인 저도 해안에서 고기잡이도 금지됐다. “이제 쫌 돌리도라.” 저도가 속한 장목면 주민들은 30년 넘게 ‘저도 반환’ 운동을 벌여왔다. 장목면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마자 ‘청해대’를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관리권은 여전히 국방부가 보유했고, 이후에도 대통령들의 휴가지로 계속 이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대통령 휴양지인 경남 거제 저도의 산책로에서 남해를 바라보고 있다. 저도는 이날 47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저도를 찾았다. 2017년 대선 당시 공약했던 ‘저도 개방 및 반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과 17개 시·도에서 온 100여명의 탐방단은 47년 만에 열린 ‘금역의 섬’을 밟았다. 앞서 거제시와 행정안전부·국방부가 참여한 ‘저도상생협의체’는 오는 9월부터 1년간 저도를 시범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상시적이고 완전한 개방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빼앗긴 섬과 바다를 “이제는 쫌 돌리도라”.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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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다. 필요한 경우 발명자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쓸모를 사용자가 만들어 내기도 한다. 거창하게 명명하자면 발명의 민중화 혹은 이반 일리치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고유한(vernacular)’ 사용법 발명이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상공을 날고 있던 한 비행기 조종사가 코카콜라를 마시고 빈병을 내던졌다. 소비자본주의의 관습에 따르면 빈병은 쓰레기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코카콜라 병을 부시맨이 발견하고, 그들은 빈병의 ‘고유한’ 사용법을 발명한다. 코카콜라 병은 악기가 되고, 절구통 방망이가 되고, 밀대가 되고, 망치도 된다. 영화 <부시맨>은 콜라병의 ‘고유한’ 사용법 연대기라고 해도 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고유한’ 사용법은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부잣집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노르웨이 빙하수 생수병을 나는 꽃병으로 쓰고 있다. 소주병은 참기름 병으로 쓰기 딱 알맞다. 스티로폼 박스에 상추를 심는 ‘고유한’ 방법을 한국의 아파트 거주자는 잘 알고 있다. 철지난 잡지는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기에 제격이다. ‘고유한’ 방법은 우리 삶의 양식을 좌우하고 있는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최소화된 저항일 수도 있다. 일회용품을 여러 번 쓰면 그만큼 소비시장의 규모는 축소되고 자본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줄어든다. 비록 미약해도 ‘고유한’ 방법이 반복되면 시장 자본주의에 스크래치 정도는 낼 수 있다. 

발명자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용법을 개발해내는 데 있어 자본주의적 시장은 ‘고유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우리보다 민첩하다. 발명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웹은 사용되고 있다. 웹의 발명자는 학문 공유라는 거룩한 이상을 설계했겠지만, 시장은 포르노 유통의 새로운 통로를 웹에서 발견했다. 전화라는 미디어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니엘 벨이 전화기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최초 발명자는 안토니오 메우치이다. 메우치는 아파서 집에 누워 있는 아내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도 대화하려고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전화의 본래 용도는 서로 아는 사람끼리 대화하려는 것이었다.  

전화의 용도는 사용자에 따라 그리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요즈음 서로 아는 사람조차도 전화를 거는 일이 거의 없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개인과 개인은 음성이 아니라 SNS로 혹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사이 소비자본주의는 전화의 새로운 용처를 찾아냈다. ‘콜 센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하루에 수통의 전화를 텔레마케터로부터 받는다. 피자를 주문하려고, 분실한 신용카드를 신고하기 위해,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해서 등등의 사유로 콜 센터에 전화를 걸고 누군지 모르는 상담원과 통화한다. 

전국에는 현재 3만여개의 콜 센터가 있고, 콜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50여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에도 수차례 통화하는 상담원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대체 도시의 어디에 그들의 근무처가 있는지도 우린 알지 못한다. 일상적으로는 접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콜 센터를 한 소설의 안내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피자 프랜차이즈 콜 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했던 작가 김의경은 그곳에서 일하면서 관찰하고 직접 경험한 일을 생생하게 소설 <콜 센터>에 담았다. “똑같은 기계적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싫증나고 단조로운 고역, 이것은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이, 바위처럼, 지쳐빠진 노동자 위에 끊임없이 떨어져 내려온다.” 엥겔스가 19세기의 공장 노동자를 묘사한 이 구절은 김의경이 소설에서 묘사한 콜 센터의 풍경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책상이 빼곡하게 놓여 있는 콜 센터에서 상담사는 전화를 받고 또 받으며 거의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전화를 상담사를 괴롭히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상 블랙 컨슈머라 부르지만, 왠지 그 호칭보다는 ‘진상’이 그들에게 어울린다. 진상이 콜 센터 노동자에게 욕설을 하고 성희롱을 늘어놓으면,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상담사는 “귓속으로 파고드는 온갖 배설물을 홀로 외롭게 처리”해야 한다. 

진상이 상담사를 괴롭히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진상은 평범하다. “80%가 대학생과 휴학생 그리고 얼마 안되는 취업준비생”으로 이루어진 비정규직 상담노동자를 전화로 괴롭히는 진상 역시 대개의 경우 약자다. 누군가 그 사람을 화나게 했고, 화나게 한 사람에게 갚아줄 수 없는 처지가 아닌 그 약자는 자신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 진상으로 변신한다. 약자들의 화풀이 폭탄 돌리기 연쇄사슬 중 맨 끝에 있는 콜 센터 노동자의 소원은 단 한 가지라고 김의경은 전한다. “블랙 컨슈머에게 똑같이 욕을 해주는 것, 모든 상담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담노동자는 간절한 소원을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그들을 대신하여 말해주고 싶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다. 손님은 그냥 손님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왕이 없다는 뜻이다. 프랑스는 대혁명 때 왕의 목을 내리쳤다.

<노명우 |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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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9.91%가 되었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서는 것은 분권과 균형발전을 추진해온 정부 정책이 실패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물리적 인프라(하드웨어) 중심의 혁신뿐만 아니라 교육, 교통, 주거, 문화 등과 관련된 생활양식(소프트웨어)의 혁신도 이룰 수 있도록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도 획기적인 지방분권과 주민 주도의 마을계획, 주민자치회, 참여예산을 통해 지방자치 혁신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입안자들이 이러한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전북 남원시 산내면을 방문했으면 좋겠다. 산내면은 1998년 실상사귀농학교를 시작으로 꾸준히 귀농·귀촌자가 모여든 지역이다. 전체 마을 인구 2000여명 중 25%인 500여명이 귀농·귀촌자다. 면내 초등학교 학생이 100명이 넘고, 중등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도 있다. 최근에는 대안대학인 ‘생명평화대학’에 젊은 청년들이 함께하고 있다. 

산내면의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난 이유는 첫째, 실상사귀농학교를 통한 집단적 귀농이다. 1998~2010년 이 학교를 졸업한 600명의 졸업생 중 400여명이 산내면에 자리 잡았다. 귀농학교 학생들은 봄·가을 두 차례 3개월간 숙식을 함께하면서 농사와 농촌에서의 새 삶을 시작하는 기술을 배우고 교류하며 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실상사는 집과 땅을 내어주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귀농·귀촌자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자치의 문화다. 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농촌 과소화의 원인을 일자리 문제로 보고, 농공단지를 조성해 기업을 유치하는 것과 관광산업을 통해 일자리 만드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산내면에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듣는 질문도 뭐 해서 먹고사는가(일자리)와 심심하지 않은가(문화)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귀농·귀촌자들은 서울 등 도시의 괜찮은 일자리를 뒤로하고 시골에 온다.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와 문화를 만들었다. 산내마을신문에 따르면 산내면에는 40여개의 각종 자발적 모임이 있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즐기는 문화도 만들어 가고 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공동체 문화가 이들이 시골살이를 하는 이유이고,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다시 귀농·귀촌자들이 들어온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기대하듯 예산주기에 맞춰 1년 만에 창업을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관광객이 산내면 시골 마을을 찾는 이유는 마을마다 만들어진 각종 체험공간이 아니라 잘 보존된 지리산과 그 자락에서 행복하게 사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오관영 |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 이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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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니는 학교 복장규정을 새로 정하는 데 학부모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해서 회의에 참석했다. 교복 길이, 덧입는 옷의 종류, 화장과 머리 모양,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정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의견을 설문으로 제시할 수도 있었으나 사전 논의에서 결정된 내용이 설문에 반영될 거라서 나는 참석을 택했다. 개선하고 싶은 안이 있었고, 복장과 두발의 자율이라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 각각 어떤 입장인지도 궁금했다. 혹시라도 학교에서 ‘학생다움’을 강조해 보수적인 결정을 유도하면 적극적으로 아이들 편에 서야지 홀로 투사인 척 그런 오지랖 넓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학교가 보수적일 거라는 건 나의 편견이었다. 특히 교사들의 의견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세 그룹 중 가장 파격적이었다.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원하는 어떤 방향도 동의했다. 어떤 안은 교사들이 낸 것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그렇게 입장이 정해지기까지를 설명하는 교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교사로서 자신들이 지도해 온 ‘학생다움’이 복장과 외모, 태도가 아니었나 생각했다는 것, 그리하여 처음부터 학생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교사에게는 또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해보았다면서 학생에게 학생다움이란 수업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고, 교사에게 교사다움이란 그 수업을 준비하고 도와주는 것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꺼내놓지도 못한 오해를 삼키며 부끄러웠는데, 한편으로 신선한 감동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치마 길이와 명찰, 머리 길이로 인한 체벌이 하루를 시작하는 교육이었던 나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밝은 미래를 엿본 기분이었다. 

학생들의 입장은 다소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학급 내의 토의를 거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 기성세대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지나침을 배제하려는 어떤 기준이 있었다. 무릎 아래 치렁치렁 늘어진 치마도 싫지만 다리 전체가 훤히 드러나는 치마도 적당하지 않은 것 같고, 화장은 하고 싶지만 입술과 피부 정도의 가벼운 화장만 허용하는 게 맞는 거 같고, 액세서리는 나쁠 것 없지만 안전을 위해서 목걸이나 늘어뜨리는 귀걸이는 안될 것 같다고 하고, 실내화는 귀찮지만 청소할 때를 생각하면 구분해서 신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다. 풀어놓는다고 지구 반대편으로 겁 없이 달려 나갈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중도의 보수성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도 궁금했다. 그것이 스스로 자신의 테두리를 검토하고 정해나가려는 자의 자정능력이라면 바람직하지만, 안전한 곳만 골라 디디며 살도록 훈련받은 자의 내성이라면 조금 쓸쓸한 일일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아이들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 그래도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쳤으니 세상의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인지했을 테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 넓어진 테두리에서 살다 보면 스스로가 결정한 삶을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깨닫게 되겠지 기대해볼 뿐이다. 

복장 규정 개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 현재의 교육제도 개정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사고 존립 논쟁도, 수시와 정시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자유학년제와 진로탐색체험에 대해서도 각각의 교사 단체와 각각의 학부모 단체만 첨예하게 옳고 그름을 논할 뿐, 지금 그 교육 과정을 겪어내는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불합리한지, 무엇이 부당한지, 어떤 방향을 바라는지 묻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교육에 대한 권리가 복장에 대한 권리만 못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만약 묻는다면 이 아이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도 궁금하다. 학생 50% 이상의 의견이 나오면 교사, 학부모의 의견과 무관하게 무조건 반영하게 되어 있는 복장규정처럼 학생 50% 이상의 의견이 무조건 반영되는 교육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현재의 교육제도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지, 나는 그 결과도 농담처럼 궁금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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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는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 입법안을 31일 입법예고한다. 지난 22일에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등 ILO 미비준 3개 협약에 대한 비준을 외교부에 의뢰했다. 비준과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회원들이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 중위소득의 대폭 인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부가 예고한 법률개정안은 실업자·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 소방공무원·대학교원 및 퇴직 공무원·교원의 노조 가입 허용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또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 규정을 삭제했다. 다만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노사분규 때 노동자의 업무시설 점거를 금지하는 조항도 들어있다. 노동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법률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공익위원안에 포함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 보장 방안, 노조설립신고제 폐지 등은 법안에서 빠졌다. 입법안이 공익위원안보다 후퇴한 데에는 재계의 입김이 작용했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ILO 핵심협약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회원국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자는 게 취지다. 당연히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동관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지난해 7월 이후 경사노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논의를 40차례 이상 개최했다. 그러나 노사 간 견해 차만 확인한 뒤 공익위원안으로 대화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를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풀어가려 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무역마찰을 우려해 서둘러 비준 준비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정부 계획대로 비준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르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비준동의와 함께 관련 노동법 개정이 이뤄진다. 그러나 앞길은 순탄치 않다. 당장 노동계는 정부 개정안이 ILO 핵심협약 기준에 못 미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 비준동의와 입법 과정에서 재계의 입장을 지지하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반대할 것은 명백하다. 정부 입법안은 여러모로 불충분하다. 그래도 사업장 내 민주주의와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필요하다. 국회도 관련법 개정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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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재정의 역할이 강조되는 때라 혹시 세입 확충 계획이 담길까 기대했는데 역시 없었다. 5년간 누적해 총 5000억원의 세입이 감소한다. 최고소득층에 세금을 조금 더 부과하고 기업에 법인세를 깎아 주지만 규모가 미미해 사실상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작년에 발표된 총 2조5000억원의 감세안을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간 (박근혜 정부가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증세 정책을 펴서 이루지 못했던) ‘증세 없는 복지’가 문재인 정부에서 구현될 듯하다.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세법을 그대로 두고 과감히 지출을 늘리는 방법은 뭘까? 임기 2년은 예상보다 많은 세입이 있었으나 이제 초과세수 행진도 끝났다. 올해 국세 수입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국채로 갈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수준은 외국에 비해 낮아 국채를 발행할 여지가 존재한다. 필자 역시 지출 확대를 위해 국채를 활용하자고 말한다. 정부가 포용국가 복지를 주창하지만 여전히 기초생활보장, 장애인복지, 기초연금, 건강보험, 사회서비스, 공공임대주택 등 핵심 분야에서 추가 지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채가 지니는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여기서 조달된 재정은 일회성, 즉 마중물일 뿐이다. 대체로 사회지출은 비가역적이어서 한두 해는 국채에 의존하더라도 그다음부터는 세입제도에서 지속적으로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 국채 확대를 추진한다면 증세 계획도 함께 논의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통령은 재작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중산층과 서민들 증세는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여당에서도 제기되자 겨우 핀셋 증세로 생색을 내는 데 그쳤다. 시민들의 어려운 가계를 감안한 거라지만 ‘나라다운 나라’의 재정전략과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문재인케어’에선 지난 정부가 물려준 누적적립금이 있다며 법정 국고지원액을 과소지원하고, 국민연금에선 현행 재정불균형을 그대로 놔두는 개편안을 추진하며, 복지 확대 재정은 국채에만 의존하려 하니 참 마음 편한 정부이다.

작년에 3873명을 면접조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세금을 더 거두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에 대하여 4분의 3이 정당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복지를 늘리기 위해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할 계층”으로 상위 20%만 꼽은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에 그쳤다. 시민들이 복지를 체험하면서 재정의 책임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곰곰이 숙독해야 할 대목이다.

복지가 발전하는 만큼 증세도 이야기해야 한다. 중간계층까지 포함하더라도 직접세 구조에서는 누진증세 혹은 부자증세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세금의 사용처를 사전에 정하는 ‘복지증세’ 방식이면 세금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몇몇 복지단체들이 전체 세목의 개혁 로드맵과 함께 시민의 참여를 이끄는 상징으로 ‘복지에만 쓰는 세금,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발표한 1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서 안정적 재원 방안을 강조하면서 참고사례로 프랑스와 일본의 사회보장세를 소개했다. 보수 정부였지만 복지재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흔적으로 읽힌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올해 발표한 2차 기본계획에는 해당 주제의 내용이 거의 복사하듯 1차와 같은데 유독 사회보장세 부문만 빠져 있다.

프랑스에는 복지재정을 감당하기 위해 별도로 사회보장재원조달법이 존재한다.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사회보험료뿐만 아니라 여러 세목들이 복지지출과 연계되는 복지증세 구조이다. 일본 역시 소비세를 올리면서 인상액을 모두 복지에 사용하기로 법에 담았다. 복지 재정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세금이 복지에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세 전략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세를 도입한다면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에 다시 일부 세금을 부가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예전의 방위세, 지금의 교육세와 같은 목적세이기에 지출 항목을 미리 명시하면 가구 유형별로 세금액과 복지급여가 정해진다. 시민들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안내서에서 추가로 내는 세금액과 새로 누리게 될 복지를 알 수 있고, 대다수는 낸 세금보다 더 복지로 돌려받는 ‘재분배’를 확인할 것이다.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복지 바람이 분 지 10년째다. 이제 시민들은 복지를 경험하고 세금에 대한 책임도 인식해 가고 있다. 복지증세 이야기를 주저하지 말자.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가 ‘증세 없는 포용복지’ 정부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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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의도 정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뼛속에는 ‘그때그때 달라요’ DNA가 숨어 있다. 자신과 당의 유불리에 따라 과거를 싹 잊어버리고 대응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말’ 정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당에서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공수가 교대되면서 되풀이되다 보니 악순환의 정치문화로 뿌리내렸다. 상황에 따라 변신해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반응은 히스테리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니 정치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공인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면 신뢰받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도 ‘내로남불’로 비난받고 있다. 야당 시절에는 극단의 표현으로 혹평을 쏟다가도 여당이 되면 180도 태도를 바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리화하는 모습이 카멜레온의 전형으로 비친다.

조국 전 민정수석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임 수석 인선안 발표에서 떠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내가 행위자일 때와 관찰자일 때가 일관적이지 않은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편향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할 때와 남이 하는 것을 바라볼 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이중 잣대는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기제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가혹하게 비난하다가도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변명하는 모순적 태도를 그저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정치인이나 정당은 달라야 한다. 신뢰의 정치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려면 언행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언행을 평가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등등을 알아낸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에 대한 여야의 논평대립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금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을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무부 장관에 최측근 민정수석을 기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최악의 측근인사·회전문 인사”라는 논평을 냈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여당이 되어 똑같은 상황을 옹호하고 있는 모양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지금은 헌법질서에 대한 모욕이자 보복·공포정치의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가 검찰권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명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검사 전성시대의 절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이 다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던 때다. 거기에 청와대 파견검사까지 합치면 청와대가 일선 검찰청 이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는 모양새여서 검찰공화국 소리를 들을 만했다. 청와대의 검사들, 검찰에 장악된 법무부가 청와대와 검찰 간의 끈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대통령 최측근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부 장관이 되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사정라인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연결고리를 통해 검찰의 중립성이 심히 해쳐질 것이라는 우려가 설득력이 있었고 현실화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매우 느슨해졌다. 그만큼 검찰권 장악 우려는 해소된 상태다. 아무리 대통령의 분신으로 인정받는 인물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더라도 검찰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제도적으로도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청와대에는 파견검사도 없고,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사파견도 불가능해졌다. 민정수석비서관도 검사 출신이 아니다. 검찰이 장악했던 법무부도 상당부분 탈검찰화가 이루어졌다.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이 비검찰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확 달라진 상황이다. 사람만 달라졌다면 야당의 우려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인사권으로 검찰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이전 정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여당의 태도를 ‘내로남불’로 깎아내릴 수 있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행’이라는 명목만 보면 똑같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 실질이 다르다. 그리고 기획하고 착수했던 법무·검찰 개혁의 완수라는 법무부 장관의 임무도 다르다. 

올바른 비판을 하려면 자기가 경험했던 것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시각과 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반대편에 서 보고 한쪽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해야 대립정치의 악순환도 끊어낼 수 있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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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찾은 교토의 여름은 무덥고 습했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 두 나라가 연일 주고받는 날선 언어와는 달리 교토에서 만난 지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대화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악화 일로를 걷는 한·일관계로 이어졌다. 짧은 시간에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 간 출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회의적 의견이 다수였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은 일본 지식인층에서조차 한·일관계를 논할 때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언어가 실종된다고 개탄했다. 그 자리를 ‘신념의 언어’가 차지했다. 한·일관계가 서울 출발 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정부 간 교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학 간 학문적 교류와 협력 역시 예전과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확정된 교류 일정도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취소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특히 일본이 우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분야의 협력은 더욱 그랬다. 열려있던 소통의 문들조차 하나, 둘씩 서서히 닫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일관계가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이지 않고 이념(또는 신념)적으로 경화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한다. 

첫째, 한·일의 민과 관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답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각자 신념에 매몰되어 그 신념이 지향하는 것들을 절대선이자 정의로 맹신하고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사실(fact)의 힘을 믿기보다는 강철 같은 신념을 내세워 한·일관계의 현실을 바꿔보려고 한다. 사실이 아닌 완강한 신념으로 무장한 언어는 소통이 아닌 불통을 만들었다. 그 언어는 곧장 무기가 됐다. 결국 ‘간헐적 반일 감정’의 주기만 단축시켰다. 

둘째, ‘군국주의 일본’이 보여준 야만성이 잠복기를 거쳐 아베의 시대에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아베에게 던질 ‘아름다운 복수’는 어쩌면 우리만의 공허한 감성적 수사일 수 있겠다 싶다. 일본이라고 해서 이성적 집단이 분출하는 높은 윤리의식과 정의가 왜 없을까마는 미국과 탯줄이 연결된 아베의 시선이 불길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를 더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때문이다. 이러한 ‘아베의 일본’을 이웃국가로 두고서 한·일관계의 미래를 밝게 그려나가기란 어렵다. 

셋째, 한·일관계의 이른바 패러다임 이동(shift)이 시작됐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이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의미한다고 할 때, 한·일관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당대 일본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한국에 대해 공유하고 있던 신념과 가치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양국 모두 ‘정상적 인식’으로 서로를 보는 것이 한계에 도달, 이제는 새로운 렌즈로 양국관계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작금 한·일의 불화는 두 정치지도자가 지니고 있는 세계관 충돌의 결과이다. 무엇보다 아베의 일본은 유독 한국인에게만 깊은 회오(悔悟)도 없이 역사로부터 애써 도망을 치려고 한다. 아베가 그 역사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1965년 한일기본협정 시대의 한국이 아닌 지금의 우리가 여전히 일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긴 호흡으로 역사를 읽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퇴행적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갈등에서 전환점은 어느 지점에서 만들어질 것인가?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긴 해도 한국이 1965년 기본협정을 폐기할 의사가 없다면 그리고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기를 희망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면 어떤 형태로든 봉합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처의 흔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폐 속에 결핵을 앓은 자국이 완치가 되더라도 남는 것처럼 말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 격돌한 시간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저녁자리를 끝내고 어둠이 짙게 내린 교토의 거리로 나서자 고온다습한 공기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이병철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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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는 29일 일부 관련 보도에 대해 “현재 ‘청해부대의 파병’과 같은 보도가 있었는데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우리 선박의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호르무즈 파병은 지난 24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 자리에서 파병 요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각국 외교관들을 불러 호르무즈해협의 ‘민간선박 공동호위 연합체’ 결성에 참여하도록 설명회를 열었다. 이 호위 연합체에 청해부대를 파견하자는 방안이 파병안의 개요다. 아덴만에서 한국 선박 호송 등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전구역 확대는 신규 파병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70~80%가 통과하는 길목인 만큼 이 지역의 안정은 한국의 경제적 이해에도 직결돼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이 2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해리 해리스 주미대사(왼쪽)와 함께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파병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호르무즈 긴장, 즉 미·이란 간 갈등이 왜 벌어졌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공동으로 타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봉쇄하면서 긴장을 키웠고, 지난 5~6월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피격사건이 잇따르자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연합군 결성에 나선 것이다.

요컨대 호르무즈 긴장은 미국의 일방통행식 합의 파기에서 촉발됐다. 게다가 유조선 피격사건은 경위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은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격화시킬 뿐이다. 한국의 파병은 명분도 없는 데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 이란과의 관계파탄은 물론 중동 일원의 친이란 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최우방을 자처하는 일본조차 파병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동맹국이자 한반도 평화를 좌우할 힘을 가진 미국의 요청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면 다른 지역의 분쟁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은 그 원칙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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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러시아의 한국 영공 침범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핵무기 도입을 주장했다. 조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며 “미국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즉각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틈만 나면 나오는 한국당의 전술핵 배치 주장에 어이가 없다.

조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다. 조 최고위원은 “언제까지 북한의 웃음거리, 조롱거리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며 “대한민국이 핵무기로 무장돼 있다면 일본, 러시아, 북한, 중국이 이렇게 얕잡아 보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동북아지역이 핵 도미노에 빠져 핵위협이 더 커지게 된다. 그전에 핵무장 시도만으로도 국제사회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당의 이런 주장에 이미 여러 차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더구나 과거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에 한국군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고 관여는 더더욱 할 수 없는 핵무기를 다시 들이자는 게 제정신에서 하는 소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일회성이 아니다. 당내 북핵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인 원유철 의원도 전날 핵무장론을 언급했다. 과거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한 바 있다.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주장을 조장하는 당의 풍토이다. 황교안 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이 북한 편에 서 있으면 이 나라와 국민은 누가 지킨다는 말인가”라며 9·19 남북군사 합의 폐기를 주장했다. 지난 27일엔 “우리가 이겨야 할 상대방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믿기지 않는 위험천만한 인식이다. 과거 새누리당 집권 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위기를 유발해놓고 허둥댄 것은 까맣게 잊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것은 안보위기를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한국당이 진정 안보정당을 표방한다면 최소한의 합리성은 담보해야 한다. 허황된 핵무장론을 배척하지 못하는 한 한국당은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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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자 5명 중 1명이 ‘아빠’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상반기 민간부문 육아휴직자 5만3494명 중 남성이 1만1080명으로 20.7%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중이 20%를 넘은 것도, 반기 만에 1만명을 돌파한 것도 처음이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9% 급증했다. 이런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사상 처음 2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남성 육아휴직이 늘어나는 것은 ‘맞돌봄’ 문화가 확산하고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진_ 서성일 기자

육아휴직 아빠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엄마 혼자 육아를 도맡는 ‘독박 육아’로는 갈수록 깊어지는 저출생 현상을 완화할 길이 없다. 육아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은 개인적으로 자아실현 기회를 상실하는 일일 뿐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다. 저출생·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부모와 사회가 함께 키우는’ 문화가 필수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성 육아휴직이 아직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가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7%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59.2%)보다 소폭 줄기는 했으나 대기업 쏠림은 여전하다. 육아휴직이 자녀를 둔 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로 인식되고 장려되는 기업문화 정착이 시급하다. 기업은 육아휴직을 장기적·거시적인 인적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론 기업에만 책임을 미룰 수는 없다. 남성 육아휴직을 늘리려면 정부의 더 많은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중소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 더욱 다양한 우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한 육아휴직 재원을 다양화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준다. 따라서 혜택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고용보험에 가입한 임금노동자들이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일반조세나 통합사회보험기금 등 다양한 재원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충당한다. 그래서 자영업자·프리랜서·실업자들도 육아휴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육아빠(육아하는 아빠)’의 보람과 기쁨을 더 많은 아빠들이 누릴 수 있도록 더 촘촘한 제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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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인 7월28일 장맛비가 내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차별에 저항하는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의 2주기 추모식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님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박정기님은 지난해 향년 89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막내아들 박종철은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에 의해 23세로 죽어갔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마석 모란공원 추모식에 아버님과 30년 동안 활동을 같이했던 유가족들을 비롯해서 민주화운동의 동지들, 그리고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저는 추모식에서 장남수 유가협 회장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에 이어서 추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추도사를 여기에 옮깁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자리에 서니까 종철이 초혼장을 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1989년 3월3일로 기억합니다만, 3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장대비가 하루 종일 퍼부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정을 나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들러서 노제를 하겠다고 했지만 경찰이 길을 막았습니다. 길바닥에서 장대비를 맞고 하루 종일 버텼습니다. 결국 장례 일정은 늦어져 마석 모란공원에서 불을 켜고 하관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 종철이 유택을 마련하지 못했던 일에 후회가 많았습니다. 강압에 의해서 임진강 얼음물에 아들의 뼛가루를 뿌렸습니다. 

“철아, 이 애비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그때의 아버지의 외침이 많은 이들을 울렸습니다. 고문에 의해 막내아들을 빼앗기고도 무덤 하나 만들어주지 못한 못난 ‘애비’…. 아버지는 다른 열사들의 추모식에 가서 한편에서 우시고는 했습니다. 그 회한이 너무 컸습니다. 그런 회한이 다른 열사들의 묘보다 종철이 묘를 크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아버지와 딱 30년을 같이 활동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유가족과 동생을 잃은 형 유가족으로 만났습니다. 그 30년을 친아버지보다 더 자주 만났고, 대화를 했습니다. 유가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요? 저는 아버지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일기에 제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거리의 투사’로 많이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늙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아버지는 금테 돋보기안경을 끼고 신문기사를 열심히 찾아 읽으셨고, 책도 부지런히 읽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으로 33년째 근무하던 중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했던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나 자신도 이웃도 구하지 못하고 여든여덟 해를 살았지만, 내가 구하려 한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이었다. 나는 아직도 철이가 죽음과 맞바꾸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쓰신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아버지의 공부는 책 읽는 공부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으로, 온갖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통일선봉대장으로 몸으로 아끼지 않고 당신이 갈 곳을 찾아서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1991년에는 강경대 사건과 관련해서 구속이 되어 영등포교도소에서 몇 달을 사셨습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감옥살이를 그대로 따라서 했습니다. 신입으로 감방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사코 말려도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낮은 곳으로 향하려던 종철이의 뜻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걸레 들고 방바닥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재소자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싸움을 하기도 하면서 아버지는 민주투사로 거듭났습니다. 

책을 읽다가, 신문을 읽다가 의문 나는 일이 있으면 공책에다 꼭 메모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했습니다. “박 국장” 때로는 “박 선생” 하면서 전화를 거셨는데, 그 시간이 새벽 5시, 6시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침형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에 새벽 4시경에는 이미 잠에서 깨었다가 그래도 생각해주신다고 참고 참다가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늦게 들어와 한참 곤한 잠에 빠져들어 있는 그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가 솔직히 짜증이 났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거리에 나오신 것은 지난 촛불항쟁 때 부산에서였습니다. 그 추운 날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게 무리였지만 누가 아버지를 말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 무렵에 아버지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때는 새벽시간이 아니라 낮 시간이었습니다. “박 선생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잘 있나?” 오늘 아버님의 따뜻한 그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생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뵌 건 지난해 3월이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한 번 찾아뵈어야지 하던 참에 부산에 일이 있어서 내려갔던 길에 들렀습니다. 종부 형에게 전화를 하니, “정신이 없으셔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시지만 너는 알아보시지 않을까?”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도통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하셨습니다. 전날 문무일 검찰총장이 사과를 하러 다녀갔고, 그런 통에 기력이 더 없으신 것 같다고 간호사들이 말해주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스물세 살의 철이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무엇을 꿈꾸었을까? 나는 그 답을 지금도 찾고 있다.”

아버님은 저세상에서도 공부를 하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먼저 오신 이소선 어머님, 문익환 목사님, 박용길 장로님, 김진균 교수님, 김근태 선배님, 그리고 최근에 자리를 잡은 노회찬 의원님에게 궁금하신 걸 물어보시고 토론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 아버님은 막내아들이 죽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걸 “한 인간의 사랑”일 거라고, 이미 오래전에 답을 찾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추구하셨습니다. 

항상 배우고 공부하는 유가족,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어른, 그래서 끊임없이 약자와 고통받는 자의 곁을 찾아가셨던 그 발걸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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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가 말하길,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뉜댔다.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이건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한 기준이며 그 나머지에겐 모두 아차상을 주겠노라고 그는 썼다.  

나의 학생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을 종종 본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다. 어떤 얘기를 하려다 말 때. 말 못할 이유로 당장의 솔직함을 포기할 때. 남 탓만 할 수 없을 때. 가장 원망스러운 건 자기 자신일 때. 아이들은 복잡한 마음으로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고친다. 그렇게 쓴 것들은 아주 조금 노인의 문장처럼 보인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글을 완성해놓고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 원고지에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그저 다음주에 쓴 이야기는 내게 보여주고 싶어지기를, 안심해도 되는 독자로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애쓸 뿐이다. 10대들 앞에 글쓰기 교사로 서는 건 마음 놓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연습 같다. 아이들이 비밀과 죄책감을 쌓으며 어른이 되어갈 때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 중 하나일 수 있도록 말이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여느 소년들처럼 그 책 속의 소년도 슬픔과 그리움을 겪으며 자라난다. 그는 엄마가 아빠와 싸운 뒤 만드는 카레의 맛을 안다. 그 카레는 맛이 없다. 미움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소년은 생각한다. 또한 소년은 죽음이 두렵다. 엄마와 아빠가 죽을까봐, 누나들이 죽을까봐, 자기가 죽을까봐 두렵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막 눈물이 난다. 소년은 울면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을 하는 노래도 있다. 뮤지션 신승은이 쓰고 부른 ‘쇳덩이’라는 노래다. 노래는 부모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거냐고. 아이가 이런 세상에 왜 나를 태어나게 했냐고 물었다면, 어른은 이런 나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고 묻는다. 쇳덩이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 적어본다.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아/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쇳덩이가/ 왜 나의 가슴팍 위에 자리 잡고 있는지/ 숨을 왜 잘 못 쉬고 있니/ 네가 물었고/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쇳덩이가/ 왜 너의 가슴팍 위에도 자리 잡고 있는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서로가 들어줄 수 없는 딱 그 모양의 쇳덩이/ 왜 태어난 건지 모르겠어/ 엄마 아빤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건지/ 어쩌면 거기서부터 난 잘못되어 있는 건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포옹을 할 때마다 귀를 닫고서 했었지/ 사랑을 잘해보고 싶어/ 깨끗하고 행복한 사랑/ 애초에 내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가 나서서 말해준다면/ 오늘부로 깨끗이 포기할 텐데/ 너의 뒤통수를 만지는 일도/ 함께 아침을 차려 먹는 일도/ 논쟁을 하다 와락 껴안는 일도/ 어쩌면 나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이었다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꼭 해보고 싶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이 노래가 흘러나와 나는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건넜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가슴팍 위 쇳덩이를 솔직히 말해보려던 참에 상대방의 가슴팍 위 쇳덩이도 보여 입을 다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감각 같았다. 내 것 아닌 쇳덩이의 색깔과 모양과 무게도 곧바로 알아보는 안목. 서로 들어줄 수 없음을 알고 귀를 닫은 채 하는 포옹. 

이 가사는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일까.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일까. 아니라면 노인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일까. 잘 모르겠다.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이 아니라는 것만 알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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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처음 주창했다. 남과 북이 통일되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일 텐데 통일대박론의 맹위는 정권이 바뀐 지금에도 여전하다. 그러나 ‘대박’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 중에는 한국인들이 잊어버린 게 하나 있다.

1930년대 만주국 개발론자들이 즐겨 쓰던 ‘보로모케(떼돈벌이·ぼろ儲け)’란 단어가 있다. 당시 일제는 괴뢰 만주국과 조선을 통일하려 했는데 그때 조선인들에게 만주 개발을 홍보하며 썼던 단어가 ‘보로모케’, 즉 대박이다. 조선총독부가 ‘조만일여’론을 주창하며 조선 자본가들에게 만주의 석탄자원 등의 채굴에 참여하고 철도와 기타 부동산, 공장 등에 투자해 ‘대박’나라고 홍보했다. 신문 광고에는 ‘일확천금’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고 이광수 같은 작가도 열심히 선전에 참여했다.

당시 만주 개발론자들에게 만주와 조선의 평범한 민중들을 위한 풍요로운 공동체 건설 따위의 철학은 없었다. 만주군 군관학교를 다녔던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대일본 만주국의 유산>(고단샤, 2010)이라는 책에 관련 일화가 나온다. 기시 노부스케는 1936년 만주국 정부 산업부 차관이었다. 박정희는 이후 일본 총리가 된 기시를 1961년 11월에 만났다. 기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만주 개발 5개년 계획’이 실제로 잘 안됐던 것을 언급했고 박 대통령은 만주국에서 못해낸 경제발전론을 한국에서 이어받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강남 개발로 땅부자들이 생겨났지만 그곳에 원래 살던 진짜 땅주인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1930년대 만주 개발의 수혜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만주의 평범한 농민들이 만주 개발로 부자가 됐을까? 결국 부자가 된 건 조선과 일본의 자본가들이었다. 만주 주민들의 균등한 삶의 질 향상은 없었다. 

‘조선·만주를 통일하고 만주의 자원을 개발해 경제대박을 내자’는 만주 개발론을 보고 따랐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용어까지 비슷한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왔다. 통일을 경제발전의 논리로 국한시키는 그 철학에도 놀랐지만, 아버지 때의 만주 개발 선전용어였던 ‘대박’이란 단어를 비슷하게 따온 것에서도 놀랐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 대박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맥락을 잊어버린 것 같다.

만주와 조선을 통일하고 만주의 자원을 수탈해 부자가 되려 했던 일본과 조선의 자본가들이 즐겨 사용한 ‘대박’이란 단어를 남한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민중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 남한 자본가들이 자신들을 수탈하려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나는 ‘한·몽 평화협력 회의’ 참석차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 논의가 된 것은 남한 자본이 어떻게 몽골 자원을 개발해 공장을 만드느냐 따위들이어서 크게 실망했다. 한국인들은 몽골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는 데만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지금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태도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도 노골적으로 ‘대박’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통일에 대한 기본 철학은 박근혜 정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남북정상회담 때 동행한 기업인들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자본의 이익 창출 논리대로만 움직이며 사는 대기업 총수들이 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까지 남한식으로 개발해서는 안된다. 남한에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킨 경제개발 방식을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게 남한 자본가들과 그들에게 둘러싸인 문재인 정부의 인식이다. 북한도 남한처럼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다 장악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망하는 식으로 개발되는 게 그게 한민족의 미래인가?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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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방에서 학생 상담을 하다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노노재팬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일본제 필기도구를 많이 쓰고 있는데, 쓰던 것은 버리지는 않지만 새로 구입할 때는 꼭 원산지를 확인해서 일본제가 아닌 것을 고르고, 가능하면 국내 제품을 사용한단다.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방학식 날에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방학 중 노노재팬 활동 캠페인을 하려고 했다가 학교에서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에 대한 캠페인은 불가’라고 허락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요즘 노노재팬 운동이 정부나 단체, 어떤 기관의 주도가 아닌 순수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동력들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무렵부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위안부소녀상 건립운동에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게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적극적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입시제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교과서를 익히고 문제의 정답을 잘 맞히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량도 입시 평가 대상이 되면서 시간을 쪼개서 참여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이 강조되었고 학생들이 교과서 밖으로도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런 의미 있는 활동에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지금 노노재팬 캠페인의 경우,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인가 아니면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인가, 또는 우리 정부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따른 인접국의 반발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데도 이에 대해서 학생들이 공부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반론하며 토론하는 과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배움의 과정 중인 학생들에게 적절한 탐구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 과정에서 발견해야 하는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역량을 준비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단순하게 친일은 나쁘고 우리는 옳다는 선동적 논리나, 우리가 잘못했으니 빨리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정치적 해법만 횡행하는 현실은, 자칫하면 건강하게 시작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캠페인이 방향성을 잃고 극단의 논리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반한 서울형 민주시민 논쟁수업은 큰 의미가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란 구서독에서 1976년에 ①학생에게 강압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금지. ②학문적·사회적 논쟁 상황을 교실수업에서 그대로 재현. ③학생 실생활과 관련 있는 주제에 대해 학생 자신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판단·결정하는 원칙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학생들은 ‘교복 입은 민주시민’이기 때문에, 학교의 교실뿐만 아니라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문화의집과 같은 청소년 기관에서도 상시적으로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은 어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짐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아주 좋은 세계시민 학습 주제라는 것을 이해하자.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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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많이 지는 사촌동생이 학교에 들어가 배운 노래를 했습니다. “어린 송아지가 큰 솥 위에 앉아 울고 있어요.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히프짝이 뜨거워.” ‘응? 히프짝?’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줬더랍니다. 영어사전 뒤져보니 ‘엉덩이’ ‘궁둥이’ ‘둔부’ 여러 가지로 뒤섞여 나오더군요. 그러곤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다시 그 ‘히프(hip)짝’이 떠올라 사전을 깊이 뒤져봤습니다. 우리가 앉을 때 바닥에 닿는 부분이 ‘궁둥이’, 궁둥이 위쪽 살 많은 부분이 ‘엉덩이’, 엉덩이에서 가장 뒤끝에 있는 부분이 ‘꽁무니’, 이 셋을 모두 다 합친, 흔히 ‘둔부’라고 하는 부분이 ‘볼기’더군요. 그러니 네발짐승 ‘어린 송아지’가 주저앉은 ‘butt’을 궁둥이가 아닌 엉덩이로 번역한 거겠지요.

얼마 전 할머님 세 분이 말씀 나누시다 민망한 단어가 나오니 목소리를 죽여 수군거리시더군요(청력들이 나쁘신 탓에 주위에 다 들렸지만요). 또 예전에 자리 비운 어느 여직원을 기다렸더니 “똥 누고 왔어요” 해서 민망해한 적도 있었죠(그녀가 생글거리며 그랬습니다. “그게 뭐 부끄럽다고 그래요.”). 

업어 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라는 속담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가 있습니다. 궁둥이를 맞든 볼기를 맞든 어느 쪽이나 한 몸이라 아프긴 매한가지죠. 또한 치마 걷고 앞뒤로 쭉 터진 고쟁이를 옆으로 제쳐 오른쪽 궁둥이를 활짝 까고 일을 보는데 누가 나타납니다. 엉겁결에 오른손 놓고 왼손으로 끌어 덮으려다 되레 왼쪽 볼기 전체를 노출시킨 경우일 수도 있겠지요. 부끄러운 짓 가리려는 얕은 수가 마찬가지이자 되레 더 부끄러운 짓이라는 말입니다. 

쑥스럽다고 ‘아내’ 대신 ‘와이프’를 쓰고, ‘볼기’ 놔두고 ‘히프’를 쓰게 되었네요. ‘히프’를 ‘히프’라 부르는 나라들에선 부끄러운 ‘볼기’를 고상하게 ‘히프’라 부르는 나라의 언어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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