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검찰 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문무일 총장은 과거 검찰권 행사가 불공정하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구형을 하며 과거사 반성을 하였다가, 간부로부터 “선배들을 권력의 주구로 몰았다”는 질책을 들은 게 불과 몇 년 전이라, 놀라운 변화에 안도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늦은 검찰의 두루뭉술한 사과에 사법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검찰을 용서해줄지… 자신이 없네요.

과거사위원회 권고로 몇몇 사건은 재수사에 착수하여 수사 결과가 뒤집어지기도 했지만, 대개의 사건은 공소시효 등의 한계를 넘지 못하여 책임자 처벌에 실패하였고, 문무일 총장의 사과로 일은 정리되는 수순입니다. 불공정했던 수사 책임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검찰을 이끌었을까? 몹시 궁금하여 검찰 내부망을 뒤져보았습니다.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6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 중앙지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저는 정치적 외풍에 흔들림 없이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고 부정부패에 추상같은 정의로운 검찰을 꿈꿉니다. 국민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 맑고 밝고 바르고 따뜻한 검찰을 소망합니다. 저는 어떤 어려움과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리에 연연해서 할 말을 못하거나, 합리적인 소신을 굽히는 일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2007년 11월,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런 취임사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춰 정연주 KBS 사장을 배임으로, 광우병 방송 관련 <PD수첩>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무리하게 기소하는 등으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더욱 짙게 한 채 중도 사퇴하였지요.

“우리의 상대는 범죄 그 자체입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의 지위나 신분이 높건 낮건, 힘이 있건 없건 고려치 않아야 합니다.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용도 없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저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2009년 8월, 김준규 검찰총장도 이런 포부를 밝히며 취임하였습니다만, 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에 풍자 쥐 그림을 그린 사람에 대한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 사건 청탁 대가로 차량 등을 선물 받은 속칭 ‘그랜저 검사’에 대한 부실수사와 과감한 불기소 결정 등으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검란사태로 2012년 12월 중도 사퇴한 한상대 총장, 혼외자 논란을 초래한 채동욱 총장, 제가 직무유기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한 김진태, 김수남 총장을 비롯해 역대 총장들의 취임사와 퇴임사를 검찰 내부망에서 순서대로 찾아 읽어보았지요. 비장하고 결연한 단어들이 칼날인 양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가, 그분들의 행적을 떠올리면, 장식용 칼인가 싶어 검찰 구성원으로서 마음이 무참해집니다. 

문무일 총장은 취임사에서 “우리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에 국민이 감동을 느끼게 해 보자”고 했지만, 검찰의 변화속도가 시대의 변화속도보다 더뎌 국민들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임기가 곧 끝나는 총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한 사과에 진심을 담아내는 것은 차기 총장과 검찰에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검찰은 범죄자에게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법집행기관입니다만, 정작 내부에서 상명하복하여 검찰권을 불공정하게 행사한 검사들은 인사로 보답받을 뿐 문책받지 않았습니다. 차기 총장은 이제라도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읍참마속 없는 사과와 공직기강 확립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검찰에,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옆으로, 아래로 나누어주십시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검찰이 검찰권을 감당하지 못하여 개혁 대상이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다면, 내려놓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입니다.

윤석열 후보자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기소하기 위해 직을 걸어 후배들의 귀감이 된 선배입니다. 국민들이 그때 보여준 결기를 기억하고 환호할 때, 주범인 원세훈을 불구속 기소하기 위해 압력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여 결국 기소유예해버렸던 국정원 간부들을 비롯해 부끄러웠던 사건들을 기억해주십시오. 그 부끄러움이 양심의 거울이 되어줄 테니까요.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동으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 당태종의 지혜는 리더의 덕목입니다. 검찰이나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앞세우고, 쓴소리에 귀를 열어주십시오. 검찰에 고통스러운 격랑의 시간입니다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마지막 순간이라는 절박함으로 검찰을 이끌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그러한 절박함으로 앞으로도 건의와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잘못을 한다면 직을 걸고 말려보겠습니다.

<임은정 |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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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년 더위를 떠올려보면 벌써부터 올해 여름 날 일이 아득하게 여겨진다. 이런 때는 시원한 소설 하나 읽으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데, 그런 소설이 있을 리가 없다. 소설은 보통의 삶에 어려 있는 보통의 이야기를 쓴다. 다만 그 보통의 이야기의 바닥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려고 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란 것들이 대개 불안하고, 짜증스럽고, 몹시 걱정스러운 것을 보면 소설이 저 홀로 시원하게 쓰여질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죽하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고 하겠나. 소설보다 더 끔찍한 범죄, 더 말도 안되는 거짓말, 더 어이가 없는 기만이 횡행하니. 그러니, 대신 더 짜증나고, 더 지긋지긋하고, 더 팍팍한 소설을 소개해드리면 어떨까. 한여름에 뜨거운 욕탕에 들어앉으면서도 진심으로 어, 시원하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게 우리들이니. 그러나 그런 소설들은 좀 더 더울 때, 폭염의 절정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대신에 이야기의 무대를 현실과는 약간 다른 곳으로 확장시켜보면 어떨까. 현실에서는 잘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기묘한 범죄가 일어나는 추리소설도 좋고, 역시 현실에서는 잘 만나지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 로맨스 소설도 좋겠지만, 조금 머리를 써가며 읽어야 할 과학 소설은 어떨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 테드 창의 신작 소설집이 오랜만에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언젠가도 한번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는데, 영화 <컨택트>의 원작자이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쓰는 작가답게 소설의 영역은 과학과 우주를 넘나든다. 만일 소설이 이야기의 외피를 쓰고 정보만을 전달한다면 그것을 좋은 소설이라거나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작가는 과학적 소재를 통해 존재의 근본에 대한 문제를 흔히 제기한다.

예를 들어 세상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면, 그러니까 기압이 완전히 균일해져 흐름이 사라져 버리는 세계가 있다면, 그곳의 생물체들은, 혹은 존재들은 어떻게 되겠는지. 소설에 대해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다. 게다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이 반드시 소설의 흥미진진함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작가가 의도했거나 말거나, 이 소설을 읽다보니 흐름이 멈춰버린, 혹은 기묘하게 왜곡되어 버린 우리 사회를 문득 생각하게 된다. 어떤 세계든, 어떤 사회든 흐름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권력이든, 기회든, 자본이든, 혹은 개인 간의 관계든 마찬가지다. 이 불균등한 흐름이 불균등하게 멈추지 않은 채 건강하게 흐른다면 그것은 분명히 동력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균등을 가장한 불균등을 선전하는 파워게임들이다. 약자에게 기대 자신이 약자임을 호소하며 선전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모든 차별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흐른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나오고, 여성들은 무대에서 엉덩이를 들이밀고, 심지어는 위로랍시고 자기 자식을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가족들끼리 모이는 명절날에도 하지 않는 일이다. 대체 뭐하시는 분들인가. 테드 창의 소설에서 기압이 사라져 버린 세계는 거대한 돔으로 갇혀 있는 세계다. 안에서 멈추는 순간 더는 소통이 안되는 구조의 세계라는 뜻이다. 그러니 여성 당원들이 그런 춤도 출 수 있었던 모양이다. 위로를 빙자하여 자랑도 하고, 또 위로를 빙자하여 속내를 감출 수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소통의 실패가 아니라 의도적인 불통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어떤 세계의 종말이 아니다. 긴장과 소통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세계에 대한 희망이다. 자기 안에서 자기끼리 흐르는 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는 세계에 대한. 대개의 종말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종말은 파국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실체로 다가온다. 수많은 경고와 예언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SF 소설에서 보이는 세계는 현실세계와는 많이 다르지만, 은유가 자유롭다는 면에서는 더 통렬하게 현실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계의 종말을 현실의 파국으로 은유하여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 중에 <바빌론의 탑>이라는 것이 있다.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인간들. 하늘에 대해 알고 싶은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탑을 쌓아올리는 인간들의 욕망, 혹은 열망, 인간이 갖고 싶은 권력의 의지, 혹은 진실에 대한 추구가 긴박하게 펼쳐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탑이 지상의 꼭대기에 닿아 하늘의 바닥을 뚫게 되었을 때, 인간이 닿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마침내 하늘일까. 그렇다면 최초로 그곳에 발을 디딘 인간이 그 순간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폭염이 오기 전에 반가운 소식도 있다. 마침내 누진제가 조정되어 올해는 전기료 염려가 그나마 덜할 듯하다. 세상을 걱정하기 전에 당장 닥친 더위가 더 염려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덜어진 전기료만큼 그 염려도 덜어지겠다. 더위를 잊게 하는 좋은 이야기들이 함께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더위는 잊게 하면서 현실은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김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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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을 잡아가라. 권성동에게 청탁을 받아 부정하게 채용을 실행한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이를 부탁한 권성동이야말로 구속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권성동이 무죄를 받아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관철하고 싶다면 사법부는 자기 쇄신할 능력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인정하기 싫다면 권성동을 잡아가라.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 나가겠다는 약속으로 증명하라. 더 이상 당신들의 무능력을 탓하는 것만으로 이 사건을 끝내지 않을 것이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6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다수의 청탁과 조직적인 명단 관리, 광범위한 점수 조작으로 인해 자기 실력으로 지원한 사람은 합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는 내용이 1심 판결문에 적혀 있음에도 권성동은 무죄다. 공정 사회의 원칙을 무너뜨렸다거나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우습게 알고 있다는 식의 말로 채용 비리를 설명해보았자 청년을 팔아 감성을 자극하기만 하는 구호로 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취업을 준비했던 청년 당사자의 입으로 채용 비리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블라인드 채용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마냥 구는 태도에 지친 지 오래다. 그들에게는 사회의 원칙과 누군가의 삶을 헤집어놓았다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이젠 청탁금지법으로 현직 의원을 구속할 수 있는지, 단순한 징계 이상의 처벌이 가능한지, 오·남용되는 지역구 의원의 권력을 어떻게 감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할 뿐이다.

청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가 기대하는 호혜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는 일에서 그칠 수 있는가. ‘워터랜드 사업이 중단되지 않을 수 있도록’ 부탁하는 최 전 사장과 ‘잘 챙겨볼 테니 내 비서관의 취업 또한’ 부탁하는 권성동의 관계는 부정한 관습을 빼놓고서 이해하기 힘들다.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 관습을 오래도록 유지해온 부정한 권력을 알면서도 읽어내지 않는 판결문은 얼마나 무용한가.

그러니, 부디, 청탁금지법을 개정하라. 이 법은 대통령령으로서 입법부와 사법부 공직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민간이 공직자에게 하는 청탁은 법률로서 금지해도 공직자의 민간에 대한 청탁 제재는 없는 셈이다. ‘청탁임을 인정하더라도 청탁금지법이 생기기 이전이라 본인은 무죄’라는 주장은 그가 자신이 가진 권력의 속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감시당하지 않는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다. KT, 중소기업진흥공단, 강원랜드로 시작된 전수조사 결과 부정 채용이 확인된 수백개의 공공기관이 그러했으며 강원랜드 채용 비리를 수사할 당시 조직적인 외압과 내압이 있었다는 안미현 검사의 증언이 그걸 증명한다. 권력은 그 자체로서 활동하고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개인의 다짐과 청렴 혹은 도덕성으로 관리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청탁금지법 개정과 함께 공수처의 필요성을 매번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회의 변혁을 위해 제도의 개선과 개인의 인식 변화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미처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제도가 주는 한계 속에서도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1심은 이렇더라도 2심의 판결은 다를 거라 기대하며 다시 한번 외친다. 권성동을 잡아가라. 아, 염동열도 함께 잡아가라.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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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다들 글쟁이인 데다 나이 차가 많지 않아 부담이 없는 자리다. 20대 초·중반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여서 서로 막역하다.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가 자주 나와도, 때로 정치나 종교 관련 이슈가 불거져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그만. 뒤끝이 없다. 오륙년 전만 해도 아이들 교육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곤 했는데 자녀들이 다 크고 나자 화제가 달라졌다. 단연 건강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 

머리카락이 빠진다, 시야가 좁아진다, 귀가 잘 안 들린다, 잇몸이 약해진다, 허리가 아프다, 목덜미와 어깨가 뻐근하다 등등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늘어놓는가 하면, 집중력과 기억력 특히 초단기 기억력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는 둥 하소연이 이어진다. 무슨 자랑거리도 아닌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조로(早老) 경진대회’에라도 참가한 것처럼 자기 증세를 과장하고 나선다. 얼마 전부터는 치매 예방법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그중 하나가 탁구다. 탁구가 유연성과 민첩성을 좋게 하고 근육량을 늘려주기 때문에 치매에 걸릴 확률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 쓰는 몇몇 후배들은 만나기만 하면 탁구 얘기다. SNS에도 탁구하는 사진을 자주 올린다. 관련 용품을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그중 한 후배가 문학상을 받았을 때 탁구 동호회 회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수상을 축하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달에는 인천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다가 역 구내에 탁구장이 들어선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후배들 말에 따르면 탁구가 생활체육의 총아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라고 한다.  

탁구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토지 탁구’다. 10여년 전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 잠시 머무를 때, 30여년 만에 탁구와 다시 만났다. 창작실 입주 작가 중에 ‘경력자’가 몇 있어서 점심과 저녁 시간에 자주 라켓을 잡았다. 문제는 승패였다. 내기를 크게 하는 것도 아니고, 진다고 해서 명예에 금이 가는 것도 아닌데 몇 번 지고 나면 다들 안색이 불편해지곤 했다. 사실 승부를 가리는 모든 경기가 그렇다. 지면 아프다. 내가 바둑이나 장기를 배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와 새로운 룰을 만들기로 했다. 승패가 없는 탁구. 기존의 점수 매기는 방식을 버리고 대신 공을 주고받는 (랠리) 횟수를 점수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 룰을 적용하면 상대방은 물리쳐야 하는 공격 상대에서 함께 가야 하는 배려의 대상으로 격상된다. 서로 상대를 배려해야만 랠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생각과 능력이 필요하다. 후배와 나는 탁구를 ‘인간의 얼굴을 한 기록경기’로 전환시켰다고 환호했지만, 아무도 우리가 개발한 ‘배려 탁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원규 시인의 시 중에 ‘속도’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토지문학관에서 실험한 ‘새로운 탁구’가 떠오른다. 시 ‘속도’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를 단박에 뒤집어버린다.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만날 수가 없을뿐더러, 만난다 하더라도 왜 거북이가 사는 바다가 아니고 토끼가 사는 육지에서 만나는가라고 반문한다. 오만방자한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라는 시인의 질타는 ‘왜 백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으로 확대된다. 느림을 기준으로 하면 기존의 달리기 순위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말할 것도 없이 토끼가 꼴찌다.    

모임 친구들이 탁구장에 나가자고 권유하지만 아직 라켓을 구하지 못했다. 승패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민망한 데다 체력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그 반작용일까. 스포츠 중계방송을 더 많이 본다. 겨울에는 유럽 프로축구, 봄부터는 미국 프로야구.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승부의 세계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한계의 극복, 정체성과 결속력 강화, 대리 만족 등 순기능이 여럿이지만 부정적 측면도 있다. 그중 하나가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구기 종목에서 탁월한 기량이란 상대방을 ‘합법적으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예술이 그런 것처럼 스포츠도 현실을 반영한다. 승자독식으로 요약되는 돈(힘)의 논리가 프로 스포츠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프로 스포츠와 직결되는 엘리트 스포츠는 국가(민족)주의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후배와 함께 실험한 ‘배려 탁구’나 이원규 시인이 제안한 ‘늦게 달리기 경주’는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상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승패에 기반한 경쟁사회, 속도를 우선시하는 산업문명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스포츠도 바뀔 것이다. 아니 먼저 바뀔지도 모른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 풀뿌리민주주의에 있듯이, 생활체육이 현대 스포츠의 폐해를 넘어서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탁구는 기존의 힘의 논리를 무력화하고, 늦게 달리기 경주는 생산력 제일주의를 뒤흔들 수 있다. 인간으로부터 존엄을, 문명으로부터 지속 가능성을 앗아간 기존의 관계와 가치를 전환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쟁에서 상생으로, 속도에서 방향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이 거대한 전환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예술과 체육이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제도와 규칙 안에서 그 너머를 추구하는 권능을 가진 존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와 체육인 아니었던가. 이들이야말로 미래를 먼저 사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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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에는 50대 후반인 직원이 유난히 많다. 1987년부터 3년간 7413명을 채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1988년에는 농촌지역, 1989년에는 도시지역에 의료보험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집단별로 ‘의료보험조합’을 만들던 시절이라서 전국의 시·군·구에 255개 조합을 신설하는 대작업을 했다. ‘전 국민 건강보장’ 시대가 이렇게 열렸다. 

이것은 1977년 의료보험을 시작한 지 불과 12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직장별, 지역별로 분리 설치된 의료보험조합들은 재정상태가 너무 달랐다. 가난한 농촌 지역조합은 늘 적자였으나 대기업 직장조합이나 대도시 지역조합은 적립금이 남아돌았다. 전국적으로 보험 혜택은 동일하게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자 조합은 돈이 많아도 혜택을 늘릴 수가 없었다.

논쟁 끝에 2000년 367개 의료보험조합들을 ‘통합일원화’하여 건강보험공단을 ‘단일 보험자’로 하는 제도를 만들게 됐다. ‘의료보험’도 ‘건강보험’으로 명칭과 개념을 변경했다. 치료뿐 아니라 예방도 활동영역에 포함하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건강검진이다. 전 국민에게 일정한 간격으로 종합적인 건강검진을 해주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2008년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여 건강보험과 짝을 이루게 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 기능이 떨어져 수발이 필요해진 노인을 위한 요양보험은 국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또 하나의 변신은 건강보험, 요양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5가지 사회보험료를 통합 징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사업체마다 각종 사회보험료를 계산, 납부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가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부터 건보공단이 한꺼번에 징수하여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에 징수금을 넘겨주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공단, 요양보험공단, 사회보험료 통합징수 공단의 3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도 개편됐다. 보험료를 부과하는 기준과 방식을 바꾼 것이다. 소득파악이 어려운 상태라서 지역보험료는 집, 자동차, 가족구성원의 성, 연령 등 갖가지 추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중심 부과방식을 개발하고, 직장가입자도 월급 외의 기타 소득까지 모두 반영하는 체계를 만들어냈다. 피부양자도 일정한 소득이 있으면 별도의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조세개혁’에 해당하는 이 시도가 노심초사하는 준비 끝에 큰 문제없이 진행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재진행형의 변신이 바로 ‘문재인케어’다. 60% 이하였을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05년 암 보장성 확대로 65.0%까지 뛰었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 떨어졌다.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보장률은 62.6%에 불과했다. 보험급여 혜택을 늘리면 비급여 진료가 더 팽창하는 풍선효과 때문이다. 문재인케어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 진료 항목을 모두 건강보험으로 포함하면서 보장성을 늘리는 전략이다. 2022년까지 70%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건강보험은 개혁을 거듭해 왔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도는 뿌린 만큼 거둔 성과다. 고령화시대의 도전은 더 클 것이다. 전 국민 건강보장 3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응전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것이다.

<김용익 |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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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할 때 가장 힘든 작업이 책 옮기기라는 것을 많은 사람은 안다. 책장에 놓여 있을 때보다 존재감을 더 드러내는 것이 흩어져 있는 한 권 한 권인 것이다. 8년 전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할 때, 처분해야 할 만여권의 책을 두고 얼마나 큰 내적 갈등과 변덕과 결정 장애를 겪었는지. 언젠가 읽을 것이며 언제든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데려온 책들이었다. 한데 그 만여권에 대한 애착은 의외로 수월하게 놓을 수 있었다. 대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전자책 시대가 시작되면서 책이라는 물체 자체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 옅어진 시점이었다. 필요하면 바로 검색해서 내려받을 수 있으니 언제라도 갖고 있는 셈이다, 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갖고 싶은 책을 안 사기 너무 어렵다. 다시 책장을 늘리고 있는 형편이다.

요즘 신간은 종이책과 전자책이 거의 동시에 출간되니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꼭 종이책을 사고 만다. 종이책은 어떤 전자적 부팅이나 새로운 기술적인 탐색 없이 그냥 단순하게 펼치면 되니까, 밥 먹을 때 숟가락을 드는 정도의 단순한 동작만으로 책의 세계에 빠질 수 있어서 좋다. 전자책이 부피가 준 대신 여러 겹의 번거로운 동작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에는 간과했다.

지금 종이책의 장점을 띄우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종이책은 낡는 맛조차 좋고 전자책은 검색과 공유와 소장이 쉬우며 오디오북은 심지어 눈을 감고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엇이든 고유한 장점이 있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다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왜 읽지 않는 책을 꽂아두었는데도 흐뭇할까. 왜 생활공간이 좁아져도, 발에 걸리는데도 책을 계속 사들이게 될까. 나는 이것을 사람의 마음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칼럼니스트가 사석에서 고백했다. 원고를 막 쓰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뭔가 생각이 맴돌고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장에 손을 뻗어 아무 책이나 뽑는다는 것이다. 그날의 운세처럼 자신이 사놓은 책 중 하나가 무슨 영감을 줄 거라는 기대감에. 그 기대감에서 벗어나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는 ‘원고 쓰기 비법’ 같은 것을 토로했다. 문장이 문장을 부르고 책의 기운이 원고 쓰기에 스며든다고나 할까. 일견 미신 같아도, 쓰려는 주제와 가까운 책에서는 명확한 논거를 얻고, 전혀 다른 차원의 책에서는 신선하거나 엉뚱한 발상이 떠올라 일단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도움을 찾기에는 종이책이 쉽더라는 얘기.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이 글을 쓰기 전에 번역본이 아직 출간되지 않은 일본의 <독서와 일본인> 교정지를 들췄다. 묵독과 음독, 그리고 전자책 시대의 독서까지 수치와 근거를 바탕으로 일본의 독서사를 다룬 원고다. 이 원고를 스르륵 넘기다 무슨 영감을 얻었는가 하면 내가 책을 왜 잘 못 버리는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던 것을 이 원고는 명쾌하게 정리한다. 

“종이책 이전에도 기원전 4000년의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서 시작하여 고대 인도의 나뭇잎 책, 이집트나 그리스의 파피루스 책, 중국의 죽간본, 중동이나 유럽의 짐승 가죽 책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존재했다. 여러 시대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는 자연물에 정착시켜 그것을 말거나 철하거나 한 것이다. 그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책이었다. 21세기 서두에 이질적인 책들이, 돌연 대량 판매 상품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명멸하는 빛의 점으로 만들어 휴대가 가능한 것. 정착은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그것이 전자책이다.”

‘정착은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명멸하는 빛은 어떡해야 온전히 소유될까. 그 답을 몰라 아직도 책은 종이책이라는 미련을 품는다. 책장에 꽂힌 다양한 타이포의 제목만 읽고 말놀이를 하거나, 같은 계열의 색상인 표지를 늘어놓고 감상할 때도 있다. 나의 소중한 책들을 가지고서. 이런 즐거운 놀이를 다른 물건으로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컵을 모으고 어떤 사람은 펜을 모은다. 또 어떤 사람은 골동품을 모은다. 모으는 종류는 달라도 이유는 한결같다. 모으면 즐겁고 모아놓은 것이 흐뭇해서다.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라면, 인공지능(AI)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다. 

나는 책을 모은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삶을, 생각을 정리한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내가 모아놓은 책들에 정착한 셈이다. 내가 책을 샀지만, 그 책들이 나를 받아들이고 정착시켰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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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모내기를 마쳤다. 우리 논에 와서 모를 심고 간 이앙기 주인은  도랑 옆에 기계를 대고 꼼꼼하게 흙을 씻어낸 다음, 창고에 이앙기를 넣었다. 마을 전체에 모내기가 끝났다.

모내기를 이렇게나 느지막이 하지 무렵에 하는 것은 밀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밀 가운데서도 토종밀은 그래도 조금 더 이르기는 하다. 어쨌거나 밀은 보리보다 더 늦고, “하루라도 더 논에 세워 가, 바짝 익혀야지” 하는 말씀처럼 가능하면 늦게 베는 게 좋아서, 밀 농사를 짓는 집이 모내기가 늦다. 십 년 전 이사를 와서 처음 농사를 배울 무렵만 해도 하지가 되어서야 모내기를 하는 집이 적지 않았다. 토종밀 농사를 짓는 집이 흔해서, 우리는 그저 이웃들 하는 대로만 따라 지었다.

게다가 우리집은 밀가루를 내는 방앗간 옆집. 6월 말이면 악양 곳곳에서 밀 가마를 실은 경운기들이 방앗간으로 모여들었다. 토종밀 농사를 두고 보자면 온 나라를 통틀어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었겠지만, 이제 막 시골로 이사온 풋내기가 그런 걸 알 리가 있나. 남쪽 지방 이모작 농사를 짓는 마을은 으레 그러려니 했다. 깜깜한 여름밤, 개울가 방앗간은 알전구를 여러 개 켜 놓고, 가루를 빻았다. 쉬지 않고 밀 방아가 돌면, 한쪽으로는 20㎏짜리 밀가루가 도톰한 비닐봉지에 담겨 줄줄이 늘어선다. 다음날, 짐차에 실으려고 품에 안으면 그때까지도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던 것. 보드라운 밀가루가 손에 묻어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삼 년 전에 마을 앞길을 넓힌다고 방앗간이 헐렸다. 그러고 나서 악양의 토종밀 농사는 눈에 띄게 줄었다. 방앗간이 있을 때는 밀을 방앗간에 팔 수도 있어서, 힘닿는 만큼 밀 농사를 지었던 것이, 방앗간이 사라진 다음에는 가루를 내기도, 내다 팔기도 어려워졌다. 아직도 토종밀 농사를 짓는 집은 손에 꼽는 정도. 그리고 비슷한 때에 나라 전체로도 우리밀을 사서 먹는 양도 줄어들고 있다.

‘농부시장 마르쉐’라는 장터가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직거래 장터. 농사꾼이 직접 가판을 열고 농사지은 것들을 늘어놓는다. 제철 농산물로 만든 먹을거리도 팔고. 그리고 햇밀을 타작한 때에 맞춰서 ‘햇밀’ 장도 연다. 벌써 몇 해가 되었다. 농부가 직접 밀가루를 팔거나, 햇밀로 구운 빵이나, 밀가루 음식을 판다. 장이 열리는 것은 7월의 두 번째 일요일인 14일 혜화동. 

밀이 다 익어가던 무렵에 마르쉐 일을 하는 이보은씨가 다녀갔다. 우리집 밀은 보자마자, “키가 작아서 콤바인으로 벨 수 있어요?” 한다. 벼나 밀이나 키가 너무 작으면 ‘클라스 콤바인’이라는 기계를 써야 하는데, 한눈에 그걸 알아보고 걱정했던 것. 다행히 간당간당하게 보통의 콤바인을 쓸 수 있는 키는 되어서 타작은 어렵지 않게 했다. 그리고 우리집은 옆집 방앗간이 사라진 뒤로, 몇 해 밀가루를 빻던 방앗간마저 갈 수 없게 된 처지였는데, 적당한 방앗간도 소개를 받았다. 

며칠 전에 마르쉐 장터에서 빵을 구워 파는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올해 마르쉐 햇밀 장에 우리집 밀가루로 빵을 구워 팔고 싶다고 했다. 농사가 적어서 빵 가게에 낼 만큼 밀가루가 나오지는 않는데, 마르쉐 같은 자리가 있으니 이런 기회가 생긴다. 쌀이든 밀이든 그리고 커피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농산물이든 같은 품종이어도 농부가 있는 땅이 다른 만큼, 농가마다 서로 다른 농산물이 나온다. 농부시장 마르쉐에는 그걸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자리가 여럿 있다. 시작하는 농부들을 만날 수도 있다. 흔히 보게 되는 규모를 늘리거나, 신기술로 깜짝 놀랄 만한 농사를 지어서 주목을 받는 농부들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애쓰고, 즐거워하는 농부들 말이다. 지난주에 밀가루를 빻아서 나눠 담고는, 날마다 햇밀 요리를 하고 있다. 부침개를 부치고, 수제비를 끓이고, 난과 치아바타를 굽고, 도넛을 튀기고. 한여름, 7월은 우리나라의 햇밀 제철이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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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


- 정끝별(1964~)


여름이 오고 능소화가 피었다.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능소화가 피었다. 여름 내내 능소화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다. 달군 솥처럼 뜨거운 하늘 아래에 열정적으로 꽃을 피운다. 그처럼 옛집 담벼락에도 능소화가 여름을 살다 갔다. 옛집 골목과 담 아래에는 노래와 이야기와 달콤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 옛집 담벼락에 능소화도 다 졌지만.

시인은 시 ‘나침바늘을 보다’에서 “낮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물을 켜야 한다고/ 밤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불을 켜야 한다고”라고 썼다. 우리의 낮과 밤이 삶이라는 꽃의 개화를 돕던 시절이 있었다. 화관을 쓴 듯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 빠진 듯이, 염천처럼 뜨겁기만 하다면 꽃은 언제든지 필 것이다. 여름날의 능소화처럼 우리의 담벼락에 “뚜뚜랄라 따따룰루/ 명랑한 열망”으로 피어 함께 삶을 합주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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