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에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증거 내밀기다. 발뺌하거나 다그치면 “증거 있어? 증거 대 봐”라고 방어하거나 공격한다. 증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 찬 오리발이지만 막상 증거를 내밀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법정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려면 물증도 필요하고 증인도 불러 신문해야 한다. 모든 분쟁은 증거싸움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증거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진실은 인정받지 못한다. 범죄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죄판결이 난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증거를 인멸하기도 한다. 미행하거나 몰래 엿듣기도 하고 흥신소의 도움도 받는다. 불법으로 도·감청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위치추적기를 달기도 한다. 증거를 시멘트 바닥에 파묻기도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현금 가방을 건네기도 한다. 증인과 입도 맞춘다. 올 들어 적폐청산 수사 때문이었는지 압수수색 건수가 대폭 증가했는데, 수사기관은 물증확보 수단으로 압수수색영장을 활용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이메일도 들여다보고 금융계좌도 추적한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압수수색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영장 범위를 넘어서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하기도 하고 압수수색으로 얻은 증거로 영장에 적힌 혐의와는 다른 별건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기도 한다. 증거로 유무죄가 판가름 나니까 증거수집에서 불법의 선을 넘어설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월29일 오전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정황이 확실하고 심증이 있어도 무죄가 될 수밖에 없다. 증거재판주의다. 증거라고 다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유죄를 입증할 스모킹건이라도 위법하게 손에 넣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다.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압수수색해 찾아낸 물증이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받은 자백은 증거로 제출되어서도 안되고 증명의 자료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증거법의 대원칙이다. 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도지사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때마침 들어온 도지사 비서관의 업무일지를 압수한 사건에서 그 업무일지에 도지사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압수범위를 벗어난 위법수집 증거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한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전환점이다. 아무리 진실발견이 형사소송의 목표라 하더라도 적법절차의 원칙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특이한 점은 이 판결에서 당시 대법관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이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다면서, 증거수집 절차의 위법사유가 영장주의의 정신과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 한해 그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별개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이다. 지금 사법농단 재판의 피고인으로서 권한남용 혐의의 증거가 들어있는 이동식저장장치(USB)의 압수수색이 위법하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법관 시절의 입장에 따르면 증거능력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재판에서 핵심 피고인들은 검찰의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양승태 피고인을 비롯한 고위 법관 출신 피고인들은 압수한 USB 등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저장장치에는 범죄사실과 관련된 엄청난 파일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증거능력 인정여부가 사건의 핵심쟁점이다. 양승태 피고인의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절차에서 어떤 위반 행위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최근 여러 재판에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어 대법원 판례에 따른 당연한 결론이지만 사법농단 재판의 방패막 판결이자 방향제시일 수 있다는 지적이 검찰을 긴장하게 했었다. 어떤 항소심 재판부는 별건수사에 활용한 위법한 압수수색 관행의 근절을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재판부의 보도자료 배포가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증거법 대원칙이기는 하다. 피의자 피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적법절차의 원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위법수집 증거의 배제법칙은 법원이나 검찰 모두 법치국가 형사소송절차에서 지켜야 할 철칙이다. 실체적 진실발견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적법절차의 원칙 아래 형사사법 정의의 실현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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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후 “북·미는 각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 협상을 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협상 시점이) 7월 중순 정도가 될 것”이라고 구체화했다. 북한 매체들도 1일 회담 결과에 만족을 표시하며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대화를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대로라면 이달 중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끄는 미국팀과 북한의 새로운 협상라인 간에 실무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개월 동안 교착에 빠져 있던 북·미 협상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6월6월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회동을 마친 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기남 기자

북·미 양측은 연내 합의를 목표로 실무합의가 이뤄지면 3차 정상회담을 열어 협상을 최종 마무리하기로 했다.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을 모색한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양측은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교환 등을 규정한 싱가포르 합의 이행 방안과 인식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신뢰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후 평화체제 논의, 그리고 비핵화 순서로 가는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이행방식’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입체적으로 추진(동시적·병행적 이행)할 것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실무협의 성패의 관건은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북핵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가 내포돼 있다. 미국의 대선이 코앞에 닥친 것도 장애물이다. 북·미 모두 국내 요인을 감안할 때 대폭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이번 판문점 회동을 만들어낸 것은 양측이 인정한 ‘유연한 접근’이다. 북·미 모두 자기 방식만 고집한다면 협상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북·미 실무협상팀은 유연한 태도로 양측 간 간극을 좁혀나가야 한다. 북·미가 이른 시일 내에 협상을 재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실 있게 협상을 준비하는 일이다. 정상들이 어렵사리 살려낸 회담의 동력을 꺼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북·미 간에는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협상이 하루아침에 깨질 수 있다. ‘하노이 담판’ 때처럼 또다시 본회담에서 뒷걸음질 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북·미 협상에서 칼날을 잡은 쪽은 역시 북한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제안에 전격적으로 응한 것은 협상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북한이 과거 벼랑 끝 전술과 다른 셈법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미국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접근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북·미 모두 냉철한 자세로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담대한 접근과 창의적인 발상으로 양측의 실무협상을 추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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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맞서 경제 보복에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스마트폰과 TV용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대상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불산(에칭가스) 등으로, 앞으로 한국에 수출하려면 90일가량 걸리는 당국의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국을 우대국가로 분류해 수출 허가를 면제해 왔는데, 앞으로는 일일이 허가를 받게 하겠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로 미뤄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는 ‘금수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조치는 그간 한·일관계에서 지켜져온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그동안에는 정치·외교적 갈등을 빚더라도 경제활동은 보장하는 ‘정경분리’가 대체로 지켜져 왔다. 물론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이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를 축소했고, 최근 한국산 수산물에 대한 검역조치를 강화하는 등 조금씩 훼손돼 왔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조치는 ‘금지선’을 넘는 망동(妄動)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답지 않은 치졸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8일 G20 공식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나눈 뒤 걸어나가고 있다. 오사카 _ 연합뉴스

일본이 이번 조치에 대해 일절 사전설명이 없었던 걸 보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8초 악수’로 끝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과거사 문제와 무역을 결부시켜 보복하는 것이 아베 총리가 G20 회의에서 그토록 강조한 ‘자유무역’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달 하순의 총선을 앞두고 한국을 때려 표를 얻겠다는 얕은 심산도 엿보인다.

이번 품목은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한국기업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일본은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의 수출을 통제하는 추가 보복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이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대응조치 방침을 밝힌 것은 당연하다. 장기적으로는 부품소재의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 노력을 통해 ‘탈(脫)일본’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다만 경제보복 조치가 길어져 업계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외교적 해법 모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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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1일 정부가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방안을 내놓지 않고 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3~5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연대파업을 선언했다. 현재로서 파업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노총은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20만명이 파업에 동참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파업은 예고된 수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지난해 말 현재 파견용역 비정규직이 있는 공공기관 290곳 가운데 직접고용 전환은 174곳, 자회사 전환은 42곳이다(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조사). 미흡한 성과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 들어서는 정규직 전환이 더 늦어지는 양상이다. 게다가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정규직 전환 예외 노동자를 포함시키고,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화 규정을 넣음으로써 ‘무늬만 정규직화’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잡월드,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의 노사분규는 대부분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발생했다.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임금의 50~60%를 받는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위반한 임금 차별이다. 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가 비정규직 노조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5%가 ‘직장 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정규직 전환을 각 기관의 자율적 노사합의에 맡긴 채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노동존중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를 위한 노·정 교섭에 즉각 나서기를 바란다. ‘비정규직 제로’를 실천하기 위한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 비정규직 연대파업에는 급식조리원·돌봄전담사 등 학교 비정규직 5만여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시·도교육청은 학교급식·돌봄교실 운영 등에 차질이 없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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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역동적인 나라가 있을까? 지난 주말에 판문점에서는 남·북·미 3개국 정상이 합동으로 연출해내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큰 사건 앞에 다른 사안들은 쉽게 잠식당해 버리기 일쑤다. 인권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인권의 목소리가 힘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권 중에서도 스포츠인권과 같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다만 스포츠인권과 관련해서는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사건이나 일어나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뿐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4차에 걸친 권고안을 발표했다는 뉴스는 주목받지 못한 채 흘러가버렸다. 체육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중요한 내용이었고, 그러기에 체육계 내 기득권세력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6월은 U-20 월드컵으로 뜨거웠다. 매번 경기를 드라마같이 치르면서 결승전에 안착하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남자 축구가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니 그럴 만했다. 그런 한국 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팀의 막내인 이강인이었다. 그가 킬 패스와 발기술로 상대 선수를 따돌리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래서 준우승 팀임에도 불구하고 이강인 선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선수인 마라도나, 메시가 받았던 그 상을 받은 것이고, 당연히 그의 몸값은 올라갔다. 

그런데 만약 이강인 선수가 한국에서 학생선수로 성장했다면 오늘의 그가 될 수 있었을까? 정규 수업 중에도 합숙훈련을 받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훈련을 받았다면 과연 그는 엘리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유년기에 스페인으로 축구유학을 떠났다. 

“낮 12시 반까지 수업이 있었어요, 점심 먹고 다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했고,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간식 먹고 6시에 훈련장 가서 9시에 집에 왔어요.” 

그는 운동선수였지만,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모두 다 받았고, 평일에 2시간 정도만 훈련을 했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수업 다 빼먹고, 수업에 들어가도 멀뚱멀뚱 수업에도 따라가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스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전 학기에 85% 이상 출석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정규 수업 중에는 훈련도 금지되고, 연습이나 대회도 없다. 일본 문부성은 학교운동 운영 원칙에서 평일에는 2시간만 훈련을 허용하고, 주말 연습도 전일 연습을 금하고 있고, 대회 출전을 주말에 했을 경우는 평일 중 하루를 쉬도록 하며, 아침운동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선진국들일수록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일수록 학습권을 인권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고심을 하고 있고, 이미 그를 위한 시스템이 상식으로 정착되어 있다. 오로지 엘리트 선수만을 육성하는 한국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권고가 지난 5월31일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나왔다. 학기 중에는 주중 대회를 금지하고, 최저학력에 도달한 학생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며, 장시간의 훈련과 합숙을 금지하고, “전국소년체육대회는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스포츠축전으로 확대·개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체육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U-20 월드컵 결승전이 막을 내린 직후인 6월18일,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의회 등 8개 체육단체는 연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위원회 권고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권고라는 것이었다. 소년체전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지금과 같은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생선수들의 공부를 지원하라는 주장이었다. 1972년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국가주의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선택받은 그들,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이 체육계를 대표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17년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는 고졸 754명, 대졸 207명 등 964명의 학생선수가 지원했다. 이 중 100명만이 프로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프로의 문턱을 넘은 100명 중에 그라운드에 서는 기회를 얻은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오로지 운동만 했던 이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줄까? 오로지 소수의 몇 명만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바뀌고, 그런 가운데 스포츠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발굴되는 시스템이어야 다른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는다. 

올림픽헌장은 스포츠가 인권임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어떠한 차별 없이 올림픽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헌장 제4조다. 나아가 헌장 제6조는 이런 권리가 “인종, 피부색, 성별, 성적지향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체육계에 만연한 인권침해와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권고를 6월까지 4차에 걸쳐서 권고했다. 이 위원회의 권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두를 위한 스포츠’다. 올림픽헌장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권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굳어진 내용들을 권고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체육을 즐길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일, 그래서 합숙소에서 불이 나 청소년 선수 수십명이 사상을 당하는 일이 없고, 미래의 선수생활을 소수의 코치나 감독에게 저당 잡혀서 온갖 인권침해에도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도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권고가 잘못일 수 없다. 스포츠가 모두가 향유해야 하는 인권임을 부정하는 잘못된 스포츠 시스템은 개혁되어야 한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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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위원회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 판지 병원(Panzi Hospital)을 설립해 분쟁하 성폭력 피해자 수만명을 치료하고 지원해 온 드니 무퀘게 박사에게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저는 9년 전 유엔 고위직으로 인권 업무를 수행하던 중 DR콩고를 방문했는데, 현장에서 성폭력 생존자들을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쳐 온 무퀘게 박사와 2주간 같이 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무퀘게 박사가 2~3일 ‘제1차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이번 회의는 우리 정부 주도로 작년 6월 출범한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Action with Women and Peace)’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열리는 첫 국제회의입니다. 이니셔티브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분쟁하 성폭력 피해 여성 및 소녀들을 위한 사업을 현장에서 지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여성·평화·안보라는 유엔의 중요한 의제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에는 무퀘게 박사를 비롯해 분쟁하 성폭력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아프리카연합 여성·평화·안보 특사 등 분쟁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이끄는 글로벌 리더들과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참석합니다. 분쟁하 성폭력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 생존자들의 경험과 증언을 직접 청취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국제 청년 논문 공모전을 통해 미래 세대들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대응 방안들을 공유하는 순서도 있습니다.

분쟁하 성폭력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국제사회는 내년 20주년을 맞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를 통해 분쟁하 성폭력이 인권 유린의 문제를 넘어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도전임을 직시하고, 분쟁의 예방과 그 해결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후속 안보리 결의들과 다양한 대응 노력들을 통해 이 문제는 오늘날 국제사회 핵심 의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누군가가 ‘왜 우리나라가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서 이 주제가 갖고 있는 비중과 중요성,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위안부라는 가장 극명한 분쟁하 성폭력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한국이야말로 이 의제에 기여하고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사적 소명과 역량을 갖춘 남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간 정부는 분쟁하 성폭력 문제에 있어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피해자의 존엄과 상처를 치유하며, 이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민사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로힝야 난민 여성과 여아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 왔고, 올해에도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제73차 유엔 총회에서 분쟁하 성폭력을 철폐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듯이, 이 같은 피해자와 생존자 중심의 접근법은 ‘사람중심’ 국정철학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이번 회의가 아직도 성폭력이 전쟁의 수단이 되는 참혹한 현실의 굴레를 끊어내고 여성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 분쟁의 예방과 평화 구축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강경화 |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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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생들은 문제를 마주했던 순간에 대해 글로써 증언하곤 한다. 열 살 김지온은 이렇게 썼다. “5년 전 일이다. 침대 위에 앉아서 휴대폰에 딸린 조그마한 장식용 하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야광 하트가 좋아서 조금씩 입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야광 하트는 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고 말았다. 순간 좀비 영화에서 다른 사람은 모두 도망치는데 나 혼자 좀비 떼에 물려 뜯기는 기분이 들었다.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이 왜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마’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한테 소리쳤다. ‘물 줘! 빨리!’”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물을 가져다 준 엄마에게 방금 일어난 돌발 상황을 털어놨을까? 김지온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만 알기로 선택한 것이다. “엄마한테 야광 하트를 삼켰다는 걸 숨긴 이유는 수술할까봐였다. 한 달 뒤에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수술하면 아파?’ 엄마는 아프다고 했다. 1년 뒤에야 나는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했다. 5살에 삼켰고 지금은 열 살이니까 야광 하트는 5년간 내 뱃속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숨긴 자잘한 문제들이 내 유년에도 있었다. 엄마 물건을 혼자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려놓고는 함구한 적. 원감 선생님의 도시락 잔반 검사를 피해 몰래 토란을 남기고 감춘 적. 분명 은폐였다.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이자 갈등을 덮어놓는 임시방편이었다. 어째서 회피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걸까.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려는 게 우리의 본능 중 하나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연령대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누적될수록 익숙한 갈등에 대해서는 면역이 생기기도 한다. 2016년에 열세 살이던 양휘모는 이렇게 썼다. “가끔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른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어떤 태평함과 담담함이 양휘모의 문장에서 느껴진다. 엄마에게 혼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는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알고 있는 듯하다. 낮에는 싸웠던 우리지만 밤이 오면 화해하게 될 거라고. 왜냐하면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나 또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사랑의 확신 때문에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도 지어 부를 수 있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이라는 가사를 쓰는 건 그가 지금의 속상함에 매몰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양휘모가 한 살 한 살 자라날수록 그를 무너뜨릴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아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라도 한 사람이 천하무적이 되는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새로운 문제로 새롭게 괴로워할 테고 새로운 만회의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열일곱 살의 나사라는 아이는 필리핀에서 한 친구와 싸웠다가 화해한 일을 회상하며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상철이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야! 네가 우리 진실게임 한 거 말하고 다녔냐?’ 상철이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더 부글부글 끓어서 ‘네가 진실게임 말하고 다녔냐고!’ 하며 상철이의 어깨를 살짝, 아니 조금 힘을 실어서 쳤다. 그러자 상철이가 ‘나 치지 말라고!’ 소리치며 내 몸을 한 바퀴 엎어치기했다. 3학년 형들이 달려와 우리 둘을 떼어 놓았다. (…) 어느 날 상철이는 나에게 다가와 선데이 마켓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마켓은 더웠고 붐볐고 복잡했고 시끄러웠다.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 나는 상철이 뒤만 졸졸 따라갔다. 걔는 많이 와본 사람답게 성큼성큼 걸었다. 좋은 망고와 좋은 수박이 뭔지 알려줬다. 우리는 과일을 한가득 샀다. 학교로 돌아와서 함께 나눠 먹었다. 무너진 장벽 위로 꽃이 피는 느낌이었다. 상철이가 선데이 마켓을 알려줬을 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고 즐겁게 쇼핑을 하고 놀았다. 그런데 상철이의 의사는 들어보지 않았다. 상철이가 ‘콜’하긴 했지만 당황스러워서 거부를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마켓에 있는 내내 나는 즐거웠어도 상철이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지만 그때 상철이는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나사는 아는 듯하다. 관계가 회복되어도 때로는 상처 부위가 아주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문장 덕분에 나도 남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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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햇볕은 쨍쨍’ 2절입니다. ‘메’라는 식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보릿고개 막바지에는 쫄면 굵기로 길게 뻗어나가는 메 뿌리를 캐서 모자란 밥 대신 날로 먹고 찧거나 가루 내서 쪄내고 국 끓여 먹었지요. 메는 약용식물로도 쓰이니 잡초치고는 꽤 고마운 풀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사꾼들에게 대부분의 잡초란 고맙기는커녕 이런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여름지이(농사) 가운데 가장 힘든 게 바로 잡초제거, 즉 김매기니까요. 김 한 번 매봤다면 다들 땡볕에 허리가 골백번은 끊어져 봤을 겁니다.

메와 달리 대부분의 여름 잡초는 못 먹을 풀들 천지입니다. 애초 농작물이 덜 자랐을 때 미리 났더라면 쉽게 솎아내기라도 했을 텐데, 부쩍 키 자란 작물 사이로 돋으니 행여 작물 다칠세라 김도 팍팍 못 맵니다. 음력 5월 초여름.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뜨거운 지열에 숨은 헉헉 차오릅니다. 캐고 뽑고 뜯으며 앉은걸음으로 한참 매다 돌아보니 작아서 못 보고 지나친 잡풀이 새로 돋은 듯, 그새 더 자란 듯이 뒤로 즐비하게 솟아나 있습니다.

속담에 ‘먹지도 못할 풀이 오월에 겨우 난다’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뜻은 ‘미운 사람이 더 미운 짓을 한다’지만, 이 속담에서 뜻하는 미운 짓은 ‘굼뜬 짓’을 말합니다. 바쁘다고 어서 나오라며 동동거리는데 가기 싫어서 채비만 한세월입니다. 서둘러야 저물기 전에 다 맨다 채근하는데도 미적미적 저 뒤에서 하기 싫은 호미질입니다. 꽁무니에 불붙은 양 다들 뛰어다니는데 혼자 궁둥이 끄응 겨우 뗍니다. 안하고 싶다 겨우겨우 하는 밉상 느리광이가 어디나 꼭 있습니다. ‘손 하나가 아쉬워 참지만 이번 일만 끝나봐라!’ 다들 눈에 호미 끝 뾰족하게 세웁니다. 뭉그적대는 저 궁둥이걸음을 콱 찍어서 바퀴의자째 들어내고 싶어서 말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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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기간이다. 중간고사를 치른 지 두 달 만이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학생들 시험 부담이 말도 못하게 크다. 

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 학교(교사)의 고사 부담도 엄청나졌다. 더 완벽하고 치밀하게 치러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규 고사만큼은 아니지만 수행평가 또한 점점 그렇게 돼가고 있다. 

내신(중간고사+기말고사+수행평가)이 입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입시정책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내신 또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이 입증하는 듯하다. 우선 입시경쟁이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전국적 경쟁은 완화됐겠지만 학교 친구들 간의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 사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능 사교육은 감소됐겠지만 대신 내신 사교육이 증가했다. 객관식 시험의 폐해 또한 전체적으론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 

선행학습 문제는 어떨까? 선행학습의 양상에만 변화가 있을 뿐 선행 부담은 여전한 듯하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내신도 중요성이 커지면 수능 못지않게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다. 사실 내신 선행과 수능 선행이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수능 사교육과 내신 사교육이 중첩되는 것처럼 이 둘 또한 상당 부분 중첩된다. 물론 차이점도 크다. 수능은 시험 범위가 방대하고, 내신은 수업 진도가 시험 직전에 끝나는 것이 선행 유발의 주요 요인인 듯하다. 

수능이 요구하는 학습량은 방대하다. 내신의 개별 고사 하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많은 공부를 수업 진도만 따라가며 해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학부모·학생의 생각은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내신은 수업 진도가 시험 직전에 끝난다. 8~10개의 시험 과목 진도가 대체로 시험 며칠 전에 끝난다. 수업 진도만 따라가도 내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다른 모든 것은 동일하고 선행학습 여부에서만 차이가 나는 두 학생이 있다고 하자. 한 학생은 선행학습을 많이 하고, 다른 학생은 선행을 하지 않고 수업 진도만 충실히 따라가며 공부한다. 중간·기말 고사 2~3일 전, 두 학생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한 학생은 시험범위 전체에 대한 학습을 마치고 실전 대비 문제풀이 공부에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다른 학생은 시험이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배운 내용을 익히는 데에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한 학생은 실전 대비 공부를 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학생은 이제 막 배운 내용을 익혀야 하는 상황이 다른 여러 과목에서 동시에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학부모의 하소연이 실상을 말해준다. “내신 경쟁은 시험 전에 선행을 몇 바퀴 돌렸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시험 전에 선행을 많이 돌린 순서대로 등수가 나온다고 보면 돼요.” 

현재의 고교 내신 또한 냉혹한 줄 세우기를 근간으로 하는 입시요소다. 수능, 대학별 고사 등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자주 하는 얘기지만 입시의 세계는 나쁜 놈들의 세계다. 내신 또한 착한 놈(입시)이 결코 아니다. 학생들을 더 가까이서 더 빈번하게 괴롭힌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제일 나쁜 놈일 수 있다. 이제는 내신과 내신제도의 폐해와 문제점을 살펴봐야 할 때다. 

(그동안 저의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기정 | 서울 구암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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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물어본 사람은 없지만, ‘탈(脫)브라’ 취재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지난달 15일자 토요판 커버스토리에 ‘굿바이, 브라’라는 제목으로 한국 여성 31명의 탈브라 체험기를 담았습니다.

기사를 쓰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여름이 오네. 아 덥다. 속옷이 존재감을 확 드러내는 그 계절이 또 오는구나.’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SNS에는 유독 편한 브래지어 광고가 올라왔습니다. ‘안 입은 것 같대. 편하지만 가슴은 모아준대. 셔츠인데 유두를 가려줘서 이것만 입어도 된대.’ 광고들을 보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출처:경향신문DB

그래, 브래지어 얘기를 한번 써보자 싶었습니다. 흔히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것을 ‘노(NO)브라’라고 하는데, 그 말은 뭔가 불편했습니다. 입는 게 정상인데 안 입는다는 뜻이 포함된 것 같아서요. ‘탈브라’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미 ‘유브라, 탈브라’라는 단어로 SNS엔 많은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한국 사회에서 탈브라를 경험하고 실행한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제 주위에는 탈브라를 하는 사람이 없어(보여)서 어떻게 인터뷰할 사람들을 구할까 고민했어요. 드랙킹 취재 때 만난 드랙아티스트 ‘아장맨’이 생각났습니다. 아장맨은 흔쾌히 자신의 트위터에 저의 글을 올려주었습니다. ‘탈브라 아무말대잔치를 벌여보자’는 내용이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10대부터 70대까지… 덴마크, 파리, 네덜란드의 교민과 유학생까지. 이성애자, 성소수자, 직장인, 프리랜서, 학생, 딸을 키우는 주부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탈브라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약 70명의 연락을 받았는데 시간의 한계 때문에 그중에서 31명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편하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다가, 아파서 등등) 탈브라를 시작했다가, 점점 자신의 몸과 이 사회의 금기, 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얘기해줬습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처진다고, 브래지어 끈은 보이지 않게 하라며 엄마에게 혼났다는 한 여성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왜 우리는 가슴을 꼭 가려야 하며, 가린 것도 가려야 하며, 보이지 말아야 할 가슴까지 그 와중에 남들 기준에 예뻐 보이게 관리해야 하는 거죠?” 불편한 속옷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음란한 시선과 모순적인 규제가 많은 상처를 새겼으며, 2000년 이후 태어난 학생들까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설리씨 얘기를 했습니다. 설리씨는 최근 방송에서 “브래지어는 액세서리일 뿐”이라 해서 박수를 받았죠. (사실, 취재하며 설리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어요. 설리씨, DM 보내 미안해요. 어쨌든 그 마음,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쫄보 중의 쫄보’랍니다. 그런 저도 지지난주 탈브라를 실행해봤습니다. 외국이었고 남들은 거의 수영복 차림인 분위기였지만… 그때 느낀 해방감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자유로워서 자유가 뭔지 잊었다”고 해준 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탈브라 기사의 주제는 “여러분, 브라를 벗으세요!”가 아닙니다. 브라를 입고 벗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함께 나눠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어머머머. 개인이 속옷을 입고 벗고를 사회가 규제하던 시대가 있었대. 여성과 남성의 가슴을 차별하던 시대가 있었대”라며 갸우뚱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탈브라 취재를 도와준 많은 분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자유를 동경하는 쫄보였습니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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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행이 실제로 어른거린다. 그해 여름, 자기검열부터 했다. 벌써 ‘조국 법무장관’을 변호하려 동원되는 여권의 옹호논리가 기시감이 드는 데다, ‘내로남불’을 경계해야 하는 건 언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8년 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최측근 권재진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내정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정한 법 집행의 책임자이자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관리해야 할 법무장관으로 곧바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내정설이 제기될 때부터 임명까지, 경향신문의 세 차례 사설은 이 기조하에서 “불통인사” “헌법 모독”을 비판하고 철회를 촉구했다. 다시 보니 일부 매체를 빼곤 비판의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직행, 최측근 임명에 따른 법집행의 공정성 논란, 최악의 회전문 인사, 총선관리의 중립성 등이 공유된 비판의 지점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5월20일 국회에서 열린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당정청 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직행, 대통령의 최측근,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등 조국 법무장관(설) 앞에 놓인 조건은 8년 전과 흡사하다.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윤석열 후보자와 당시 역시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직진한 한상대의 평행까지 감안하면, ‘조국-윤석열’ 조합의 데자뷔는 어쩔 수 없다. 여권이 내세우는 ‘인물의 차이’와 ‘의도의 선의’로 돌파하기에는 “그해 여름 네가 한 말”이 너무 강렬하다. 더욱이 그것은 여전히 온당하다. 조국 법무장관 카드는 “어떤 정부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과 좋은 관행”을 허물 만큼, 우위의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그해 여름’을 소환해보자.

2011년 7월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에 당시 우윤근 국회 법사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긴급성명을 내고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장관에 임명된 적은 역대 정권에 한번도 없으며 측근인사 회전문 인사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인사”라며 “법치국가의 기본틀을 흔드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김진표 당시 원내대표는 “선거중립을 내팽개치고 어떻게든 유리한 판을 짜보겠다는 불순한 의도”라고 규탄했다. 현 청와대 주역들의 어록도 선명하다. 노영민 당시 원내수석부대표(현 대통령비서실장)는 “청와대가 특유의 오기를 부리는 것 같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성토했다. 아무리 사정 변경을 내세운들 이 지당한 비판의 잣대를 조국 법무장관 카드가 벗기 쉽지 않다. 

사실 그때 야당만이 아니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반대론이 드셌다. 소장파는 집단 성명을 냈고, 지도부에서도 남경필·나경원 최고위원 등이 비토론을 폈다. “선거관리 주무장관으로서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인사” “오기 인사”, 비판의 날도 퍼렜다. 소장파 정태근 의원은 ‘5년 전 한나라당이 한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아전인수하지 말고 역지사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6년 문재인 전 민정수석(3개월 전에 물러나 ‘전직’ 이었다)의 법무장관 기용에 반대했던 사실을 환기하며 “야당일 때와 지금의 말이 다른 것은 공당이길 포기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자기편을 옹호하는 데도 지켜야 할 금칙”, 그나마 그들은 지켰다.

그해 여름의 귀결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한 일”의 현실화로 끝났다. MB는 ‘권재진 법무장관’을 강행했다. 당시 청와대와 친이계 의원들의 비호논리가 있다.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 능력이 우선, 장관도 대통령의 참모, 대통령의 신임은 장관 일을 하는데 장점 등등이다. 아마도 ‘조국 법무장관’ 카드가 실제화될 경우, 야당을 중심으로 거세질 반대에 대한 여권의 반박 또한 그 어간 어디쯤에 머물 터이다. 다른 건 ‘기승전-조국’으로 상징되는 검찰개혁의 연속성이라는 명분일 터이다. 하지만 사법기관 개혁은 국회 패스트트랙을 통해 법제화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국회의 시간’에서 조국 법무장관의 존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묻게 된다. 계속될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고, 여당 및 청와대 참모들의 도저한 ‘자기부정’을 강제할 만큼 ‘조국 법무장관’은 의의를 갖는 것일까.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을 이번에도 실행하면 관행이 된다. “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은 “개혁정부도 한 일”이라는 면죄부가 씌워진다. 김선수 현 대법관은 그해 여름 이렇게 갈파했다. “청와대 수석으로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을 검찰 조직을 관할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검찰의 중립적인 기소권 행사라는 사법개혁 방향에도 어긋나고, 수사권 독립이라는 대전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 당위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검찰개혁 등을 앞세워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직행을 밀어붙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 다른 ‘오기 인사’로 비치기 십상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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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뇌처럼 복잡한 회로의 북한산. 선잠을 깨고 나와 지하에서 출발했다. 연신내역-불광사-족두리봉 옆길로 오른다. 번들거리고 번잡한 도심에서 30여분 만에 이런 풍광과 시야를 얻다니, 과연! 이윽고 향로봉 아래 고개에 이르렀다. 차마고도를 연상케 하는 돌고개가 꼬부라져 돌아가고 그 날망 끝에 인왕산 아래 동네가 잘록하게 걸린다. 꼭 10년 전에 바로 이 자리를 다녀간 뒤 이런 일기를 썼다. “등산객이 빠져나간 만큼 일요일의 시내는 조용하다. 한반도 중앙 고원에 건설된 문명의 도시, 서울. 저녁밥 짓는가. 푸르스름하게 가득 찬 기운. 승가사 계곡 물소리 찰방찰방 귀에 담아 구기동으로 내려왔다.” 

같은 요일, 같은 자리에서 그 풍경을 본다. 침침한 눈 사이로 산은 여여하고, 거리도 여전하다. 몇 가지의 변화는 있다. 그동안 문득문득 들이닥친 생각들이 내 두개골에 주입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나이 마흔부터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한다. 오십에는 자연과 접촉면적을 넓히는 게 장땡이다. 육십부터 지붕 아래를 지옥으로 여겨라. 

그때와 같은 품목의 김밥에 물, 과일과 빵을 우물거리며 천하의 한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무슨 난투극이라도 있었는가. 얼룩덜룩 멍이 들었다. 곧 한줄금 퍼부을 기세다. 오늘도 식물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담을 만한 게 없다. 공중으로 가는 시선을 아래로 구부렸다. 나무보다는 바닥의 돌을 자꾸 보는 건 발과 접촉하는 곳의 사정이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비비고 싶을 만큼 기묘한 표정의 돌들. 마을버스 속에서 판문점발 속보를 찰랑찰랑 귀에 담으며 탕춘대-포방터시장-홍제역으로 내려왔다. 과연! 나로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오늘 벌어진 일들 속에서 그래도 꽃 하나를 소환하는 일이다. 북한산 초입, 태극기가 펄럭이는 바위 너머에서 꽃 한 송이를 보았더랬다. 아주 가늘고 너무 여린 병아리난초였다. 아무 데서고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야생화. 나의 머릿속을 양초처럼 순간 환하게 밝힌 병아리난초. 너를 만났기에 마음 놓고 돌을 보았단다. 오전에 너를 활짝 보았기에 오후에 이렇게 확 좋은 뉴스를 듣는구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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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류현진의 2019년은 특별하다. 16경기9승2패, 평균자책점 1.83.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전체 1위다. 13.43에 달하는 볼넷 대비 삼진 비율도 마찬가지다. 0.90에 불과한 1이닝당 출루 허용률은 리그 1위다. 그의 공은 빠르지 않다. 평균 구속이 시속 146㎞로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시속 150㎞)에 못 미친다. 지난 2년여간 어깨와 사타구니 부상으로 힘든 시기도 보냈다. 투수가 어깨를 다치면 수술을 하더라도 십중팔구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이 야구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재기에 성공했고 시속 140㎞대의 공으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하고 있다. 그 비밀은 뭘까. 

우선 건강한 몸이다.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한화 시절에도 줄곧 어깨에 염증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못 던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술 후 2년여의 재활기간을 거치면서 프로 입단 때와 비슷한 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부하는 류현진’도 한몫했다. 선발 등판 이틀 전 건네받은 전력분석표를 완벽하게 숙지한 뒤 경기에 나선다. 지난해까지는 ‘대충 하던 일’이라고 한다. 

다저스가 게시하고 류현진이 공유한 NL 올스타 선발 투수 류현진 이미지

그의 투구는 예측을 벗어난 트위터 제안으로 외교적 성과를 낸 ‘트럼프의 비무장지대(DMZ) 회동’을 연상케 한다.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강속구 투수와 이를 받아칠 준비가 돼 있는 타자들의 시대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최첨단 신기술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런 무대에서 투수 중 하위 9% 수준의 구속으로 타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타자들의 생각의 허를 찌르는 ‘수 싸움’의 결과다. 전력분석가를 통해 타자를 파악한 뒤 5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섞어 던지는 ‘감성투’로 타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결혼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갖게 된 것도 최고 투수로 발돋움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류현진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나선다. 그는 특히 KBO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완성차’다. 한국 야구를 온전하게 대표하는 인물인 것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오는 10일 미국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다. ‘메이저리그 몬스터’로 거듭난 그가 보여줄 ‘수 싸움’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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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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