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파파.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며 육아하는 아빠를 뜻하는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최근 몇 년간 급속히 확산된 유행어로 꼽힐 만하다. 지난달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북유럽 순방 직전, 그리고 순방 일정에서 라테파파들을 만나는 장면이 보도되며 다시 한번 ‘라테파파들’이 조명받았다. 재원 다각화 등 아빠 육아휴직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논의도 활발하다니 참 반갑다.  

안 회그룬드 주한 스웨덴 대사는 “잦은 해외 출장 때는 남편이 집안일을 전담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에서는 부모 모두가 일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녀의 고정 역할도 없이 필요에 따라 부담을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송현숙 기자

경향신문은 지난해 4월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저출산의 스웨덴식 해법을 5회에 걸친 기획기사로 실었다. 취재는 필자가 맡았다. 우연한 기회에 스웨덴에서 1년을 생활하면서, 어디서나 마주치는 육아하는 남자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공원, 카페, 도서관, 거리, 마트 등에서 아이들과 함께 출퇴근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의 모습에 반했다. 당시 기사를 요약하면, 스웨덴도 한두 세대 전엔 한국과 비슷한 가부장적 사회였지만, 사회의 방향을 바꾸려 결심하고 철저한 계획과 의지로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평등 사회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1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어린이박물관’에서 한 아빠가 아이들과 책을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휴일에 주로 보는 풍경이지만 스웨덴에서는 평일 오후 일을 마친 ‘라테파파’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박용하 기자

수많은 댓글 중 아직까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워킹맘들은 날마다 동동거리며 살고 있는데, 왜 라테파파들만 칭찬받느냐는 불만이었다.  

연관검색어나 관련 이미지만 찾아봐도 두 단어의 차별적 지위를 실감할 수 있다. 라테파파는 여유 있는 파란 하늘, 봄날의 이미지다. 워킹맘은? 촉박한 시간 집 안팎의 일에 치여 땀에 젖은 여름이 떠오른다. 

한두 세대 전 한국과 비슷했던 스웨덴의 정책 지향은 분명했다. 남녀 모두에게 노동자와 부모로서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이를 위한 시스템의 구축이었다. 집 밖에선 남녀 간의 고용률과 임금격차 해소, 집 안에서는 동등한 가사와 육아 분담을 실현하려 끈질기게 노력하고 결과를 추적했다. 부모로서, 노동자로서 누릴 권리와 의무를 얘기하니, 남녀 성별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과업이 됐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몇 년 새 라테파파는 유행어가 될 만큼 주목받았지만, 워킹맘의 문제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실에선 일하는 여성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부부 중 맞벌이 부부는 46.3%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최고치였다는 발표가 지난주에 나왔다. 그러나 여성들의 노동현실은 척박하다. 불평등 지표 ‘부끄러운 세계 1위’라는 중계만 계속될 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적 고민은 뒤따르지 않는다. 

지난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9년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하며 또 한번 굴욕을 되풀이했다. 100점 만점에 20점을 겨우 넘겨 평균 60점을 크게 밑돌았다. 스웨덴은 80점 이상의 점수로 1위였다. 특히 한국은 노동과 관련된 지표가 압도적으로 나빴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는 34.6%에 달했다. 여성의 기업 이사 비율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2.3%에 불과했다. 평균(22.9%)은 물론, 28위인 일본(6.4%)과도 큰 차이가 났다.

지난 1일부터 오는 7일까지는 제24회 성평등주간이다. 지자체마다 성평등주간 행사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는 올해 주제를 일하는 여성으로 잡았다. 지난 1일 서울시청에서는 ‘성평등 노동시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및 정책 제안’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초청 특강을 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는 이상적인 노동자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실질적인 지표들을 제시했다. 김영미 연세대 교수는 기업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녀 노동자들의 불평등 노동의 풍경을 전하며, 기업의 변화를 주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뜻깊고 유익한 자리였다. 한 가지 아쉬움은 정작 이 얘기를 함께 듣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남성 청중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톡홀름 성평등 포럼’ 참여자의 중요한 한 축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남성 집단이었다. 국제무대의 남성 고위인사들, 육아와 가사 참여를 독려하는 국제 아빠단체 회원들, 각국에서 성평등 포럼을 찾은 정책 담당 공무원들. 포럼에서 만난 이들은 “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녀 공동의 적은 가부장제이며 남성도 희생자” “페미니즘은 평화로운 공존과 번영을 위한 국제기준”이라고 역설했다.  

정작 ‘라테파파’의 종주국 스웨덴에선 ‘라테파파’라는 용어를 잘 몰랐다. 라테파파들을 취재한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원래 아이들은 같이 키우는 거 아닌가, 당연한 얘길 뭘 기사까지 쓰나’라는 반응이었다. 모든 엄마가 일하니 워킹맘이라는 단어도 없고, 모든 아빠가 아이를 키우니 라테파파라는 단어도 딱히 쓰지 않는다. 단어는 없지만 사회는 워킹맘, 라테파파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사회는 남녀의 날개로 난다. 양 날개를 활짝 펴야 높이 날 수 있다. 우린 어떤가.

<송현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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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래도 독립운동사에서는 산(若山)이 되어 한 산맥을 이루었는데 “6·25의 원흉” “6·25 남침에서 핵심역할” “6·25전쟁의 1등 공신으로 훈장을 받았다” 등으로 공격한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북한 정권 수립의 공훈자 (중략) 한국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을 많이 죽인 대가로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고 했고, 같은 당의 황교안 대표는 독립군을 괴롭힌 간도특성대 출신 백선엽 장군을 찾아가 약산을 “6·25 남침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다.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6·25 남침에도 공을 쌓았다고 해서 훈장까지 받았다”고 단정했다. 

약산이 6·25전쟁의 주범이고 원흉인가? 소련 극동전선군 제88독립보병여단의 애송이 대위였던 김일성은 빨치산 동료들을 감시·보고하는 프락치 역할로 소련 군부의 신임을 얻어 1945년9월 초 스탈린에 의해 북한 지도자로 발탁되었다. 그 여단은 만주 빨치산 출신 조선인들로 구성됐다. 나중에 김일성이 북한 실세가 됐을 때 이들은 북한의 핵심세력이 된다. 약산은 1948년 4월 남북 협상으로 늦게 북으로 갔다. 9월 북한 내각 구성을 보면 그는 군이나 당 실권에서 밀려나 명목상 한직인 ‘국가검열상’이 되었다.

약산 김원봉

김일성은 빨치산 출신의 인민집단군총사령관인 최용건에게 ‘민족보위상’을 맡김으로써 군의 실권을 쥐게 했다. 유성철에게는 인민군 작전국장을 맡겼다. 소련은 김일성도 믿지 못해 소련에 있는 고려인 200여명을 5차에 걸쳐 북한으로 데려왔다. 이들을 소련파라 한다. 북한에서는 빨치산을 거친 제88여단 출신과 소련파가 핵심 요직을 장악했다. 김일성은 1950년 3월30일~4월25일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 허가를 받고, 5월에는 중국의 마오쩌둥을 만나 2~3주 안에 남한 점령을 끝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 후 소련 군사고문단이 남침작전 계획을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에게 넘기면서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약산은 북한에 자신의 세력이 없었다. 조선의용대 출신들은 해방 후 거의 다 흩어졌고, 한글학자로 정치력이 없는 김두봉의 연안파와 협력하지만 그 핵심세력에 밀렸다. 나중에 인민공화당으로 독자세력을 구축했으나 김일성 세력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끝까지 ‘조선로동당(공산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이러한 북한의 정치판도에서 약산은 “전쟁의 원흉”이 되고 전쟁에 참가하여 “국군을 많이 죽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1952년 3월19일 공훈을 받은 것은 ‘국가훈장 1급 최고훈장’이 아니라, 1951년 조선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평북도 전권대표로 있을 때 평북지역의 보리 파종 실적이 우수하다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이 준 ‘로력훈장’이다. 

전쟁이 나면 남한에 잔존한 남로당 20만명이 대환영할 것이라 장담했던 박헌영의 말이 공수표가 되어버리자,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전쟁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평양에 있는 ‘미제 간첩’이라는 죄목을 붙여 처형했다. 약산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탈북하려다 발각돼 역시 중국 장제스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숙청되었고, 가족 모두 사라졌다. 약산의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20대 초반부터 조국 해방과 독립을 위해 활동한 약산이다. 서슬 퍼런 일제가 최고의 현상금을 걸고 수십년간 뒤쫓았으나 그는 산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약산을 우리 동포가 모독하고 있다.

<박의영 | 목사·박문희 박차정 의사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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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서는 안나푸르나가 보였다. 아침에는 샘터에 쪼그리고 앉아 새파란 하늘에 솟아 있는 새하얀 봉우리를 보면서 이를 닦고, 밤에는 달빛 아래 푸르스름한 봉우리를 보면서 졸았다. 그 마을 아이들은 아침이면 흰 교복 상의에 짙푸른 치마나 바지를 입고 한 시간쯤 걸어서 학교에 갔다. 좁은 산길과 가파른 재를 넘고 넘어서 닿은 학교는 산허리에 우뚝 서 있었다. 교실에는 아이들이 빼곡했고, 교실 칠판에는 마치 나뭇잎을 그린 듯한, 산이나 나무를 나타내는 기호와 같은 네팔 글씨가 씌어 있었다.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는 아이들이 칠판에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가는 맑은소리가 서늘한 산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네팔에 머물 때는 네팔어를 공부해야겠다 싶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뒤로는 까맣게 잊었다. 김포의 한 도서관 복도에 전시된 여러 나라 책 중 네팔 책을 보고는 십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네팔 풍경을 표지로 쓴 책에는 고딕체의 네팔 글씨가 선명히 박혀 있었지만,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네팔 옆에 전시된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책 모두 단 한 글자도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책들은 전시용이 아니었다. 벽에 ‘당신의 선택으로 도서관의 책을 산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여러 나라말로 ‘오래되거나 전문 도서, 유해 도서 등 도서관 부적합 도서는 밑으로 빼주세요’라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서야 책이 놓인 탁자 아래 큰 종이상자가 하나씩 놓인 까닭을 알았다. 그러니까 도서관이 구매할 외서를 이곳에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직접 고르도록 한 것이다.

책이 전시된 복도 쪽 교실에선 한국어 수업을 했고, 수업이 끝난 후 나온 이들은 탁자 앞에서 책을 뒤적였다. 대개 도서관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말을 들으면서 살아야 하는 이들이 모국어로 된 책을 손에 든 기분은 어떨까. 나는 네팔 책을 보는 청년을 보면서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마을에 사는 흰 교복 입은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곳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겠구나 싶어 괜히 뭉클했다. 세상에 기여 따위를 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꼿꼿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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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1970년대에 보냈다. 텔레비전이 중산층 가정에까지 보급되던 시기다. 텔레비전은 보통 거실이나 안방이라고 부르던 부부 침실에 있었다. 부모는 저녁 9시 종합뉴스까지는 자녀의 텔레비전 시청을 묵인했다. 뉴스가 끝났는데도 텔레비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부모의 잔소리를 각오해야 했다. 그게 싫은 자녀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부모는 자녀가 방에서 공부하리라 짐작했다. 아니 기대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기대를 늘 배반한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자녀에겐 라디오라는 탈출구가 있었다. 1970년대 중산층 가정에 텔레비전은 한 대뿐이었지만, 라디오는 웬만하면 여럿 있었다. 심야 라디오 방송은 청소년의 성장 각본이자 숨겨진 커리큘럼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방에서 자녀는 정성을 다해 사연을 써서 방송국에 보냈고, 진행자는 각종 사연을 공감하며 읽어줬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춘기에 접어들던 내게 밤은 나 자신에게 몰입하기에 안성맞춤인 시간이었다. 밤의 어둠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강해질수록, 잠들지 않은 밤은 내면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방송국에 보낼 사연이나 고민을 일기로 쓸 때에도, 항상 내겐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곁에 있었다. ‘밤을 잊은’ 시간을 매일 반복하며 나는 성인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 시절 또 다른 이유로 ‘밤을 잊은 그대’도 있었다. 1970년대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의 ‘그대’이다. 내가 ‘밤을 잊은’ 이유와 그들이 ‘밤을 잊어야’ 하는 이유는 달랐다. 수출주도 성장기의 시대, 상품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공장이 잠들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시대였다. 밤을 잊도록 강요받은 청계천 노동자의 이야기를 김민기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 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우리들은 타이밍 약 사다 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리누나.” 야간 노동이 밥먹듯 강요되던 그 시절, ‘밤을 잊은 그대’의 친구는 타이밍이라는 약이었다. 밤을 잊기 위해 그들이 먹었던 타이밍은 의학검색엔진에 따르면 타이밍 각성제, 흥분제로 분류되는 한 알에 무수카페인 50㎎이 들어있는 약이다. 효능은 졸음을 쫓는다고 되어 있다. 타이밍은 1970년대의 ‘밤을 잊은 그대’의 알레고리와도 같다.

자본은 잠들고 싶지 않다. 잠들어 있는 시간은 생산이 중단되는 시간이고, 생산이 중단되면 이윤도 중단된다. 인간은 밤에 잠들어야 일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력을 회복할 수 있지만 자본은 잠들지 않아야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잠들지 않으려면 사람도 잠들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어떤 사람에게 잠들지 않도록 강요한다. 잠들지 못하도록 사용하는 장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70년대엔 타이밍 약이 필요했지만,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엔 타이밍 약이 필요 없다. 

2019년 나는 가끔 아주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일 아침 식사가 걱정되면 잠들기 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내일 아침거리를 주문한다. 자정 이전까지 주문하면 아침 7시에 현관 앞까지 어제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다. 신기할 뿐이다. 첫 주문을 하던 날, 정말 그다음 날 아침 7시에 현관 앞에 어김없이 도착한 박스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 참 편해졌네”라고.

이 마법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궁금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렁각시 로봇이 발명되어 실생활에 투입되기라도 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불과 몇 번의 검색 끝에 2019년의 새벽 배송을 하는 ‘밤을 잊은 그대’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20·30대의 사람이다. ‘밤을 잊은 그대’가 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있어야 하고, 스마트폰도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통해 구인과 구직이 이뤄지고, 애플리케이션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서로를 모른다. 자신을 고용된 노동자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노동조합도 없다. 플랫폼을 통해 그때마다 서비스 계약을 맺는 논란 많은 전형적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방식이다. 

자기 자동차로 배달을 하고 기름값도 자부담이고, 자기가 통신비용을 지불하는 자기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밤을 잊은 그대’는 배달 건수당 돈을 받는다. 배달 건당 받을 수 있는 돈은 가변적이다. ‘밤을 잊은 그대’의 숫자가 부족하면 배송 단가가 올라가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내려간다. ‘밤을 잊은 그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밤을 잊은 그대’의 건당 수익은 낮아진다. 

현대판 ‘밤을 잊은 그대’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현대의 방식으로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새벽 배송을 검색하면 된다. 간헐적이고 비정기적으로 회사와 건당 계약을 맺는 ‘밤을 잊은 그대’는 자신이 용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용돈을 버는 플랫폼을 소유한 주체는 자본주의적 기업이다. 타이밍 약 없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이런 방식으로 자본이 축적되어 간다. 우렁각시는 예나 지금이나 없다.

<노명우 |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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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을 때 이미 ‘위기’라는 말이 함께 나왔다. 이들에게 ‘위기’자를 떼고 어엿한 세대주로 독립시키고자 BK21, 기초학문 지원 육성, 박사후 연수 지원, 시간강사 연구 지원 등 온갖 이름의 사업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위기’와 함께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는 ‘대학에 전임교원으로 채용되기 전 박사 학위자 등 연구자’로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실체가 모호하다. 대학원 진학과 학위 취득을 거쳐 정규직 교원 임용이라는 순조로운 삶을 경험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그 자리마저 줄이고 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에 어쩌란 말이냐는 소리도 들린다. 교수랍시고 으스대는 사람들한테 세금을 쓰자고? 학문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얻기 위해 학기당 9~12학점 강의를 하려고 시·도를 넘나들며 일주일 내내 뛰고 있다. 학생들은 교수라 부르지만 실제는 학교에서 배정하는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강의하면서 학문적 성과를 내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금수저와 천재만으로 학문의 후속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강사들은 부당한 지원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교육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공정한 학문 경쟁이 이뤄지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강사료를 현실화하고, 강의 준비와 학생 평가를 해야 하는 방학 기간에 임금을 지급하며, 퇴직금은 물론 사회보험을 보장해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하지 않아도 되게 하자는 거다. 1년 단위로 고용하되 무조건 재임용이 아니라 지원 기회를 보장해 최소한의 직업 안정성을 제공하자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

많은 대학들이 강사를 ‘초빙’하고 ‘겸임’시키면서 강사 수를 줄이자 일부 언론은 “강사법이 강사를 내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경 기준을 강화해 저공해 고연비 차를 만들라고 하면 차를 좋게 만드는 것이 맞지 차 팔기 어려워졌다고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강사법 정착은 학문후속세대 독립의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논의 중인 학술연구교수 사업도 추경에 적극 반영해 대상자 수를 대폭 확대하고 지원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그동안 생계 때문에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없던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대학은 과연 학문후속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학원생으로, 조교로 써먹고 등록금까지 받다가 졸업하면 학문후속세대 양성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수십년째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과목은 교수를 채용해야지 강사법 때문에 강사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불평해선 안된다. 이번 강사법과 학술진흥법 개정이 ‘학문후속세대’가 더 이상 위기에 내몰리지 않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선일 | 경희대 교수·민교협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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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가 자전거 타기다. 세 발, 네 발 자전거만 타던 아이가 보기에, 두 바퀴 위에 앉아 넘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 능력이다. 나 역시 처음 두 발을 땅에서 떼고 페달을 밟는 순간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다시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무리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도 선 채로 균형을 잡을 순 없어. 일단 밟아!”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판문점 회동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깜짝쇼를 연출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상황에 따라 표변하며 백척간두의 줄타기를 이어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 사이에서 한발 물러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 예기치 못했던 역사적 전개에 감격하는가 하면, 실제 성과도 없고 외교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탄하기도 한다. 그중 색깔론에 의지해 온 이들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허망하다. 종북 세력은 필시 반미주의자이고 한·미 공조 강화는 대북 강경대응으로 이어져야 마땅한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판단이나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이전에 옳다고 여겼던 관점만으로 더 이상 설명하기 힘든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아가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은 학문의 여정에서 가만히 있으면 뒤로 떠내려갈 수밖에 없음을 경계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지만, 더 이른 출처는 나날이 새로워지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음을 강조한 내용이다. 자신이 떠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어느 땐가 옳았던 시각이 영원히 옳으리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에 빠진 셈이다. 이에 관한 한 정치적 입장이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다.

냉정하게 바라보며 꼬장꼬장 비판할 일이 있고, 비틀거리더라도 마음 모아 밀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언젠가 겨레가 하나 되는 꿈을 이루어가는 길에는 엄청난 난관이 산적해 있다. 위태로울 뿐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조심스레 그러나 과감하게 두 발을 동시에 페달에 올리고 구르는 순간이 없다면, 그 길에 영영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출발선에 선 채로 아무리 균형을 잡아보려 한들 아무 의미도 없다. 균형은 달려야 잡힌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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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사회의식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아니 안타깝고 서늘한 자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V)’가 그것이다. 이 연구보고서는 계층갈등, 젠더갈등, 세대갈등, 공공갈등을 중심으로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보고서에서 나의 시선을 특히 끈 내용은 두 가지다. 먼저 타인 신뢰에 관한 것이다. 조사 문항은 ‘내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이뤄져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의(‘매우 동의’와 ‘약간 동의’)는 63.15%이고, 반대(‘매우 반대’와 ‘약간 반대’)는 13.25%다. 이어 나를 이용할 가능성에 대한 인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조사 문항은 ‘만일 조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 들 것이다’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구성돼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의는 54.24%이고, 반대는 16.22%다.

이런 조사 결과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유사한 통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회 연계 지원’에 관한 국제 비교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지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회 연계 지원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72.37점)를 기록했다. 다른 이들을 신뢰하기 어렵고, 다른 이들은 나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어려울 때 의지할 이들이 매우 드문 공동체가 정직한 우리 사회 현실임을 여러 조사 결과들은 증거하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에 물론 반론도 가능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금 모으기 운동’에서 2017년 전국민적인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강력한 공동체주의적 열망을 과시한 바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실존의 ‘개인적 자아’보다는 가족과 국가의 ‘관계적 자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전통으로부터 작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비정한 개인주의와 온정적 공동체주의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사회가 한국사회의 현재적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불신이 불안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불신이 개인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불안은 개인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갖지 못하니 나의 삶이 불안하고, 나의 삶이 불안하니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갖지 못한다. 불안과 불신이 이렇듯 결합돼 함께 증폭돼 온 것이 우리 사회의 솔직한 자화상이 아닐까.

불안과 불신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 두 기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불안은 두려움으로, 불신은 무관심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다시 두려움은 공포로, 무관심은 냉혹으로 진화한다. ‘불안-두려움-공포’에 대한 사회심리적 반작용이 ‘적대’라면, ‘불신-무관심-냉혹’의 사회심리적 인과물이 ‘혐오’이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마주하는 적대와 혐오의 원인을 모두 불안과 불신에 귀속시킬 순 없다. 그러나 불안과 불신이 시민문화의 사회심리학적 코드로 자리 잡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불안과 불신의 시민문화의 다른 이름이 각자도생(各自圖生), 적자생존(適者生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망탈리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민문화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떤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던 광복 이후 모더니티의 그늘에서, 어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증가해온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에서, 또 어떤 이는 상호작용 밀도가 높은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느 하나에 귀속시킬 수 없는 다차원적 원인이 서로 결합해 불안과 불신의 시민문화를 주조해 왔다고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불안과 불신의 시민문화를 안심과 신뢰의 시민문화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또 격차와 불평등 같은 사회경제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대책은 일시적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다차원적인 만큼 그 해법은 정치·경제·문화 등 다각적으로 마련돼야 하고 그 주체 또한 정부·기업·시민사회 등 어느 하나에만 떠넘길 수 없다는 점이다.

모더니티의 궁극적 목표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있다. 우리 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독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절반의 모더니티’만을 성취한 사회가 한국 사회의 현재적 초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나머지 절반의 모더니티라 할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일궈가길 바라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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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살았던 동네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아이들 여럿이 손을 동그랗게 잡고 둘러서야 잴 수 있을 정도로 허리 굵은 나무였다. 그늘도 당연히 넓어서 여름이면 그 아래 펼쳐진 커다란 평상 아래로 하루 내내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한강 가까운 낮은 지대에 있는 나무라 심한 홍수로 서울의 절반은 침수 피해를 입었던 어느 여름에는 그 나무도 불어난 물속에 잠겼다. 풍성한 잎만 물 위에 드러나 있어 멀리서 보면 작은 섬 같았다고 했다. 

그 나무를 출입문처럼 지나가면 나오는 달동네가 재개발이 된 건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뒤로 이어진 야트막한 야산을 다 파내면서도 그 나무는 베지 않았다. 오히려 비탈진 길을 평지 가깝게 만드느라 주위를 다 돋워 높이는 와중에도 나무 둘레에는 적당한 넓이의 단을 쌓아 뿌리가 다치지 않게 했다. 이 때문에 키가 작아져 예전의 높고 우람한 느낌은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그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 사는 집은 다 부수면서 나무는 손대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는데, 어른들 말씀으로는 오래된 나무를 함부로 베면 동티가 나서 그런 거라고 했다. 개발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미신이라 웃고 넘겼는데, 나중에 재개발이 끝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보니 신기하게도 그 마을의 가장 오래된 나무는 훼손되지 않고 어딘가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중 적잖은 나무들이 시에서 지정한 보호수이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들도 제법 있었다. 

아무리 재개발이 이뤄진 동네에도 가장 오래된 나무는 남아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갖는 의미를 상상한다. 기복적인, 미신적인, 주술적인, 그런 불가해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그런 믿음으로 개발에 제한 기준을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그런 마음들이 삶을 조금 덜 경망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안부가 궁금한 나무가 하나 있다. 역시 어린 시절에 본 나무다. 앞서 설명한 나무와는 이웃한 지역에 있던 나무인데, 오래된 나무도 아니고 그러하니 그만한 위풍은 갖추지 못한 나무이기도 한다. 가운데 공처럼 둥근 매듭이 있는 모양이 독특한 나무인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그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 뒷마당에 서 있었다. 그 옆에 뚜껑이 닫힌 우물이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곁에서 아이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우물가를 돌던 아이가 물에 빠졌고, 그 아이를 건지려다 어미도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 나무를 한 그루 심었더니 그렇게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그런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공처럼 둥근 매듭을 억지로 젖가슴에 비유할 수는 있다 한들 그게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런 사연이 있어 그 나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전해지고 있었는데, 바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나무가 울음소리를 낸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을 또래 중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 나무도 이런저런 재개발 여파를 뚫고 꽤 오래 살아남았다. 아직도 그 나무를 베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앞서의 느티나무처럼 따로 보호구역을 두어 보존한 것도 아니고, 그 지역 지형도가 너무 바뀌어 그 나무를 눈앞에서 본다 한들 알아볼 것 같지도 않다. 혹여 어느 비 많은 날 그 근처를 지나다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때에나 비로소 알게 되지 않을까. 

여느 해보다 다소 늦게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그래도 날이 더워지니 이런저런 괴담이 들린다. 얼마 전에는 특정종교 단체에서 나눠주는 선풍기를 받지 말라는 SNS 메시지를 받았다. 환각 성분이 있어 사람을 마취시키고 납치한다는 거였다. 

요즘의 괴담은 예전에 들었던 것 같은 전설이나 사연은 없는 것 같다. 전설보다는 삶이 더 괴담에 가까워서일까. 하기야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아파트에서 여자아이들에게 말을 걸며 배회한다는 구체적인 두려움을 홍콩할미가 무슨 힘으로 이길 수 있겠는가.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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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여야는 지난주 국회 상임위를 정상가동하며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직을 의석수 순위에 따라 1개씩 나누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우선권을 가지게 됐다. 현재 정개특위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사개특위는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민주당이 어느 특위 위원장 자리를 선점할지 정하진 않았지만 심 위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기정사실이다. 심 위원장의 교체를 놓고 정의당은 사전에 아무런 협의나 설명도 없이 이뤄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하더라도, 선거제 개혁안을 여기까지 힘들게 끌고온 심 위원장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의 교체는 매우 아쉽다. 

현 상황에서 민주당이 어떤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지는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정개특위는 선거제 개혁법안을, 사개특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다루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혁안과 검찰 개혁안에 대해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런 한국당의 태도에 비춰봤을 때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는 특위에서 개혁안이 원활히 추진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은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아 선거제 개혁을 책임 있게 완수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를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제 개혁과 검찰 개혁은 우선순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모두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지난 4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표결을 선거법-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법 순으로 정해놓은 바 있다. 선거제 개혁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후순위에 있는 검찰 개혁안과 관련한 야 3당의 공조는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의석수가 과반이 안되는 민주당으로선 어떤 식으로든 ‘패스트트랙 연대’를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선거제 개혁 공조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을 강조해온 민주당 입장에서 어느 특위를 택해야 할지 고심하는 건 이해된다. 당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선거제 개혁이 좌초되면 다른 개혁입법도 줄줄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더 이상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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