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의 아빠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닭을 많이 기르는 지인으로부터 한 나절쯤 병아리들을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병아리가 작은 방 하나에 가득할 만큼 많았던지라, 삐약삐약 재잘거리는 소리도 제법 컸다. 그런데 닭이건 강아지건 어린 시절에는 대개 호기심이 많지 않나. 아빠가 가만히 누워 있노라니, 병아리들이 콕콕 쪼아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를 콕콕 쪼아대니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성가셔서 ‘휘익’하고 휘파람을 불어보았다. 그 순간, 삐약삐약 소리로 가득하던 방이 일시에 조용해졌다고 한다. 겁을 먹은 병아리들이 바짝 굳어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몇 초만 지나도 다시 삐약거리며 콕콕 찍어댔지만. 그날 아빠는 휘파람을 여러 번 불어야 했다.

방 안은 삐약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는데 모든 병아리들이 아빠의 휘파람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을까? 혹시 휘파람 소리를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주변의 병아리들이 겁을 먹으니 덩달아 겁을 먹은 병아리도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의 답을 알려면, 병아리들 사이에서도 감정이 전염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 감정의 전염

감정은 전염된다. 그래서 주변에 침울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덩달아 침울해진다. 주변에 밝고 명랑한 사람이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처럼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감정이 맞춰지는 현상을 감정의 전염이라고 한다. 

감정의 전염은 공감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공감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공감은 감정의 전염보다는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의 처지를 사실적으로 요약했을 뿐 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정보는 전혀 담지 않은 자료만 읽고도 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추론하고, 추론한 감정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몸짓, 표정, 목소리, 말투 등 상대방의 감정을 알려주는 정보를 어느 정도 접할 수 있다. 공감에서 인간의 언어 능력 덕분에 가능해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상당 부분 감정의 전염과 관련된 셈이다. 

여러 사회 현상에서 공감 부족이 문제시되다 보니, 공감은 대단히 어렵고 특별한(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쥐, 돼지, 큰까마귀도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감정이 전염된다고 한다. 예컨대 쥐 A와 B를 한 쥐장에서 며칠간 함께 기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A쥐를 특정한 상자에 넣어두고 발에 전기쇼크를 주면, A쥐는 나중에 이 상자에 들어가기만 해도 벌벌 떨면서 무서워하게 된다. 이를 공포 학습이라고 한다. 공포 학습을 갓 끝낸 쥐를 원래의 쥐장에 넣어서 10분간 동료 쥐 B와 함께 지내게 둔 뒤, 이번에는 쥐 B에게 공포 학습을 시킨다. 그러면 쥐 B는 전기 쇼크를 주는 상자에 있는 동안 쥐 A보다 더 많이 떤다고 한다. 쥐 B는 쥐 A와 함께 있는 동안 쥐 A의 공포 감정에 전염된 상태에서 공포 학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 공감이 주는 이점

감정은 왜 전염되는 것일까? 감정이 환경적, 신체적 필요에 부응하여 뇌의 작동 양식과 생리 상태, 행동 양식을 조율하는 적응적인 작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화가 아주 많이 났는데, ‘아, 화난다’고 냉담하게 생각만 하는 사람은 없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흡이 가빠지고, 사고도 평소와는 달라지며, 당장이라도 싸울 준비가 된 상태가 화가 난 상태다. 그래서 서로 다른 개체 간에 감정이 전염되면, 상황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 예컨대 무리 중의 한 개체가 두려워한다면, 다른 개체도 덩달아 두려워함으로써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큰까마귀를 이용한 최근 연구를 통해서, 감정의 전염이 다른 개체에게 감정적인 변화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 양상도 바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큰까마귀들을 관측자 그룹과 실행자 그룹으로 나누고, 관측자 그룹의 큰까마귀들에게는 새장의 한쪽 끝에서는 먹이를 얻을 수 있고, 반대쪽 끝에서는 먹이를 얻을 수 없음을 학습시켰다. 충분한 학습이 이뤄진 뒤, 새장 안의 임의의 장소에 새로운 먹이통을 두면 사전정보가 없는 큰까마귀는 이 먹이통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실행자 큰까마귀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전염되면 새 먹이통에도 시큰둥해하고, 실행자 큰까마귀로부터 긍정적인 감정이 전염되면 새 먹이통에 흥미를 느껴 먹이가 없는지 얼른 확인해 볼 것이다.

연구자들은 관측자 그룹의 큰까마귀를 충분히 훈련시킨 뒤, 이들을 실행자 그룹의 큰까마귀가 보이는 새장으로 옮겼다. 실행자 그룹의 큰까마귀에게는 맛있는 먹이와 맛없는 먹이를 둘 다 준 뒤, 맛있는 먹이 또는 맛없는 먹이를 빼버렸다. 그러면 실행자 그룹의 큰까마귀는 맛없는 먹이가 남았을 때는 실망해서 다른 곳을 더 자주 기웃거린다. 반면, 맛있는 먹이가 남았을 때는 먹이가 있는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열심히 머리를 움직여 먹이를 먹었다. 관측자 그룹의 큰까마귀는 실행자 그룹의 큰까마귀에게 어떤 먹이가 주어졌는지는 볼 수 없고 실행자 그룹 큰까마귀의 행동만 볼 수 있었다. 연구자들의 가설이 옳았다. 관측자 그룹의 큰까마귀들은 실행자 그룹 큰까마귀가 (맛있는 먹이를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본 뒤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먹이통을 확인했다. 반면 실행자 그룹 큰까마귀가 실망한 모습을 본 뒤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사람, 돼지, 쥐 같은 포유류뿐만 아니라 까마귀와 같은 조류도 서로 공감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공감은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나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안내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같은 종 안에서 너에게 나쁜 일은 나에게도 나쁜 경우가 많고, 우리 집단에 나쁜 일은 나에게도 나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나에게 이롭기 때문에라도 타인을 공감해야 할 모양이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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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관심 종자)’이세요?” 누가 대뜸 당신에게 묻는다고 상상해보자. 기분이 어떨지. 많은 경우, 모욕받았다고 생각하며 얼굴 붉히지 않을까? 관심 끄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나머지, 염치도 수치심도 없는 행위로 사회적 해악을 끼친 이들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겪었다. 사탄도 실직시킬 정도로 못된 소리 한다든지,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한 뒤 ‘인증’한다든지, 거짓말로 왜곡된 상황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애먼 사람 욕먹게 만든다든지 등등.

하지만 그들만이 관종일까? 요즘 들어 나는 관종을 타자화할 수 없게 됐다. 무언가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관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고, 가치관에 동조받고 싶고, 감정에 공감받고 싶다는 욕망은 강력한 창작의 동기이다. 과정에서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닿고, 감흥 주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짜릿해! 늘 새로워! ‘좋아요’가 최고야!

관심은 비단 기분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에 희귀하게 빛나는 스타들이 독식했던 자원을 이제는 작은 별들이 잘게 쪼개어 나눠 갖는 시대가 됐다. 관심의 크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소셜미디어의 팔로어 숫자다. 마케터들은 별들에게 팔로어 규모에 비례하는 돈을 주고 광고를 의뢰한다. 이들은 창작물의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플랫폼에서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설령 즉각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관심은 여전히 중요하다. 일단 관심을 받아야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취직? 인사 담당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연애? 가까워지고 싶은 대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해결을 위해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간은 한정돼 있다. 관심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일종의 경쟁을 거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기획력과 창의성을 갖춘 이들이 유리하다. 적확하게 표현하고 삼키기 쉽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그리고 운이 따라준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즉 문화 자본을 쌓은 관종이 주목받기 쉽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교육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서, 혹은 생계에 쫓겨서, 시간이 없어서 예술적 경험과 감각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은 좌절과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한 친구는 세상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고 자신은 엑스트라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결국 (비극적으로) 죽고 나서야 관심받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좌절하지 않고 콘텐츠 생산자가 되는데, 그게 하필 혐오 콘텐츠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욕해줄 것이 분명한 ‘만만한 대상’에 대한 익숙한 혐오를 험한 말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런 식으로 혐오로 뭉친 집단의 재간둥이가 되어 관심과 인정을 받고 큰 수익까지 거둔 사례가 숱하게 남아 있다.

이런 사례가 한국 사회에서 양산되는 일을 그만 보기 위해,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플랫폼 업체를 압박하고 규제하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관심받고 싶은 욕망을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심이라는 자원이 더 작고 다양한 것들에까지 미치도록 사회적 조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청년 정책뿐만 아니라, 문화적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섬세한 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관종’이라는 용어 사용은 관심을 바라는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니까 자꾸 솔직하지 못하게 ‘나는 관심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막상 관심 안 주면 수동공격하며 칭얼대는 피곤한 녀석들이 나오는 것 아닐까. 차라리 솔직해지자. 나는 관종이다. 다만 관심받고 싶어 벌인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틔우는 등의 효용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에 성공한다면, 여러분들은 ‘좋아요’를 아끼지 말아주시길….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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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마두금이 울리는 몽골의 내륙 사막.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가 여기선 ‘사막과 슬픔의 볼레로’로 바뀐다. “몽골시골몽골시골….” 풀벌레 눈물타령. 방음이라곤 되지 않는 천막집 게르. 침대는 움직일 때마다 공포영화의 효과음처럼 끽끽거린다. 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백야의 초원과 사막. 옛 우리 조상들은 몽골과 한 지붕을 덮었다. 대륙을 나눠 쓰면서 말을 달렸다. 말 대신 지금은 오토바이가 눈에 띈다. 

유목민들은 여기 천막집 게르에서 살아간다. 게르에서는 밥 냄새가 항상 폴폴 난다. 일본에서 가장 방귀를 잘 뀌는 인간 ‘아까끼고 또끼어’도 게르에서 살면 냄새가 금방 달아나서 살 만하겠어. 구두쇠 ‘무라카와 쓰지마’는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이곳에서는 김새는 이름.

몽골엔 홉스굴 같은 너른 호수도 있다. 전에 왔을 땐 홉스굴에서 보트를 탔다. 사막의 눈물이 다 모여 있는 그곳. 사막은 본디 바다였다가 물을 잃고 말았으리라. 사막 모래는 그래서 꺼이꺼이 소리내어 운다. 바닷물과 헤어져 슬픈 모래는, 마두금에 맞춰 노래를 한다.

배에 같이 탔던 몽골 친구가 그랬다. 물이 드문 초원의 마부나 목동, 사막의 상인이 되지 않아서 정말 만족한다고. 물이 없는 곳에 사는 괴로움을 상상해봤다. 이렇게 귀한 물에다 쓰레기를 버리는 문명. 플라스틱 부유물과 폐그물, 폐유 유해물질을 몰래 버리는 범죄자들. 급기야는 방사능 오염물질까지 바다에 흘린다.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말리라. 

산양은 높은 절벽에서 살면서 인간이 사는 마을 따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인간의 쓰레기에는 입도 대지 않겠노라 각오했을까. 어쩌다 비가 내리면 얼굴을 씻기는 하겠지. 양심을 씻어야 하는 인간보다 성화된 존재가 분명하다. 

나는 게르 바깥에서 세수를 했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흙먼지나 씻는 정도. 향수 대신 초원에서 나는 허브향으로 땀내를 쫓는다. 단출하고 가볍다. 유목민이 된 기분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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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들어가서 ‘백색소음’을 검색하면 꽤 많은 영상이 뜬다. ‘잠 잘 오는 음악-빗소리 백색소음 5시간 연속 듣기’는 조회수 1000만을 돌파한 ‘대박 콘텐츠’다. ‘집중력 높이는 소리-빗소리 효과음 백색소음 ASMR’은 413만, ‘서울대 도서관 백색소음 2시간’은 296만의 조회수(3일 오후 6시 현재)를 각각 기록 중이다. 

영상을 들어보면 제목 그대로다. 빗소리 백색소음에는 빗소리만 나오고, 도서관 백색소음에선 책장 넘기는 소리나 재채기 소리 등이 아주 작게 들린다. 이런 콘텐츠들이 왜 인기를 끄는 걸까.

백색소음(white noise)은 음폭이 넓어 일상생활에 방해되지 않는 소음을 말한다. 백색광(white light)에서 유래된 용어다. 모든 파장의 빛이 균등하게 혼합되면 흰빛(백색광)을 띠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고루 섞이면 백색소음이 된다. 시냇물 소리, 비 오는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치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같은 자연과 일상의 소리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백색소음은 자극적이지 않고 평탄해서 귀에 익숙하다.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역할도 한다. 독서실의 완벽한 정적보다 카페의 적당한 소음 속에서 공부가 더 잘된다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이 때문에 요즘 새로 개업하는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들은 “집중력 향상을 위한 백색소음기를 설치했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유럽연합(EU)이 이달부터 EU 회원국 내에서 개발·판매되는 신형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해 ‘엔진 소리’를 내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BBC·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들 차량은 후진하거나 시속 12마일(19.3㎞) 이하 저속으로 주행할 때 엔진 소리와 비슷한 경고음을 내는 시스템(AVAS)을 달아야 한다. 휘발유·경유차와 달리 엔진 소리가 없거나 작은 전기차·하이브리드차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는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거나 배출량이 적다는 요소 외에 무소음·저소음이 또 다른 강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조용해서 위험’하다면 마땅히 정숙성을 양보하는 게 옳다. 소음이라고 모두 추방할 대상은 아니다. 착한 소음도 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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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정말 좋은 글이 무엇인지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어떤 글을 읽고 참 좋은 글이라며 감탄하는 경우는 많지만 왜 좋은 글인지를 설명해야 한다면 곤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게 하나 있다면 좋은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든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 해도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저만큼 옮겨놓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처럼 훌륭한 글이 있다면 사람이 쓴 게 아니라고 해도 좋을 테다. 어쨌거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좋은 글들은 부드럽게 우리 내면으로 스며들어와서는 우리의 마음을 어느 쪽으로든 한 뼘 정도 움직여 놓고 가버린다. 

이 사소한 움직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중도, 중용처럼 우리가 익히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삶의 태도들이 실제로 실현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여겨져서이다. 과유불급은 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게 똑같다는 뜻이기도 하고 중도를 지키며 중용의 미덕을 발휘하는 게 중요함을 암시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만 들으면 어린 시절의 일화가 하나 떠오른다. 6남매의 장녀인 어머니는 당신의 동기들과는 무척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어머니의 고향은 고창이고 결혼해서 살게 된 곳은 정읍인데 고창이나 정읍이나 촌구석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당신의 다른 형제들은 모두 서울에서 성가하여 살았던 까닭에 아무래도 신세가 비교되어 마음이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큰딸이 보고 싶으면 바람처럼 왔다가 겨우 하룻밤 주무시다 가시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시골 동네에서 촌부로 나이 들어가는 큰딸이 안타까워 오래 머물지 못한 거였고 어머니는 사는 꼴을 속속들이 내비쳐 당신 아버지를 마음 아프게 할 수 없어 오래 붙들지 못한 거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나면 어머니는 언제나 남몰래 눈물바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이었다. 외할머니가 혼자 찾아온다는 기별이 있었다. 그런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기에 어머니는 무척 들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등장하게 된다. 아버지는 맏사위답게 장모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달리 해드릴 일이 없었으므로 연로하신 장모님이 머무는 동안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고된 몸을 지지면 좋겠다 싶었다. 장인어른은 바람처럼 왔다 한숨만 내쉬다 가곤 했던 터라 모실 겨를조차 없었지만 장모님이 찾아오는 건 처음인 데다 며칠 머물 계획이라 아버지도 잔뜩 긴장했던 거였다. 외할머니가 오기 하루 전날이었다. 아버지는 평소라면 드나들 생각도 안 하던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군불을 땠다. 말이 군불이지 아궁이 속으로 끝도 없이 솔가리와 장작을 밀어 넣었다. 이러다 솥이 다 녹고 구들장이 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난생처음 후끈거리다 못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방에서 잠을 잤는데 새벽녘에 우리 식구 모두 깨어나 난리를 피워야 했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고 불을 켜서 확인해보니 바닥에 깔아둔 요가 여기저기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부리나케 요와 이불을 밖으로 던졌다. 그러고 나니 처참한 방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나 불을 땠는지 아랫목이 그냥 그을린 상태가 아니라 장판이 여기저기 다 타버린 거였다. 너무 뜨거워서 발바닥이 델 지경이었다. 날이 샐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장판을 여기저기 들춰 주전자로 조금씩 물을 흘려 넣으면서 물이 마르면 다시 흘려 넣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그날 집에 오신 외할머니는 끌탕을 했다. 살다살다 장판이 이렇게 타버린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과유불급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나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아주 조금 움직인 걸 보았다. 한심하고 무능한 맏사위지만 한심하고 무능해도 괜찮다는 쪽으로 한 뼘쯤 움직인 것을…. 올바른 중간이란 반드시 중간이라 여겨지는 어딘가를 점유할 때만 가능한 건 아닐 테다. 걸을 때마다 무게중심이 이동하듯 지금 당장은 모자라거나 넘쳐보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느 한순간 절묘하게 무게중심이 되어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니 말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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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비무장지대에서 김정은을 만났다.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당장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에 아주 약간의 손을 보탰던 적이 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북한 경제는 잘 모르지만 에너지나 자원 혹은 환경 분야에서는 가끔 자문을 해주게 된다. 천천히 하라고 한다. 불투명한 상황에서 너무 빠르게 갔다가는 돌아 나오기 어려운 위험에 부딪히게 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7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조림 협력 분야에 대해 주워들은 얘기는 남북협력이 현실에서 얼마나 어려운지, 진짜 뼈저리게 보여준다. 헐벗은 북한의 산에 나무를 심는 연구사업은 위험하지도 않고, 공감대를 얻기도 쉽다. 어린 묘목을 보내려고 했더니, 묘목은 괜찮은데 트럭이 제재 대상이라는 거다. 어쩌라고! 이걸 어떻게 어떻게 넘어간다 해도 다음 단계는 더 어마어마하다. 어린 묘목을 심어놓고 측정 장비로 데이터를 모으는데, 측정의 핵심 요소인 센서는 군사장비 항목이라서 절대로 안된단다. 나무 좀 심고 북한 기후나 토양에 적합한지 살펴보는 간단한 연구사업도 엄청난 기획력과 추진력이 필요한가 보다. 

독일 경제가 최근 외형적으로는 괜찮다. 국가 브랜드지수가 드디어 미국을 넘었고, 실업률은 5% 정도 되는데, 이 정도면 사실상 완전고용이라는 것 같다. 통독 이후에 가장 고용상황이 낫단다. 물론 독일 경제도 위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최저임금제를 연방 차원에서 도입했는데, 동독 지역의 노동자들이 서독 지역에 대거 오면서 시장 교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통독 30년 정도 되었는데, 이제야 그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신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초보적인 경제협력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분명히 돈이 될 것 같거나, 공적인 이익이 충분한 인프라 구축도 아직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시범사업 단계도 못 넘어갔는데, 상업적으로 불투명하거나 제도가 보장되지 않은 분야는 모색 단계를 넘기 어렵다. 

공장을 짓거나 철도를 놓는 것 같은 일들은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늦게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화 특히 영상 분야는 상업적이기는 한데, 공장에 비하면 정말 규모가 작은 사업들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적이기는 하지만, 전체 다 해야 몇조원 시장에 불과하다. 영화나 드라마는 돈이 커봐야 100억원에서 200억원 사이다. 

KBS 같은 공영방송국에서도 남북합작 드라마 같은 걸 준비한다. 간단하게 북한의 드라마 촬영장 정도 빌리는 것인데, 그나마도 쉽지 않단다. 영화도 여러 팀이 다양한 방식으로 남북합작 영화 준비를 하는데, 경험도 없고 루트도 만만치 않으니 힘들어하는 것 같다. 사극 같은 경우는 남북이 모두 좋아할 영웅들이 있으니까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게 다룰 소재들을 발굴할 수 있다. 남북 사이에는 경제보다 문화가 먼저 움직이는 게 더 부드럽고 효과적일 것 같다.

이 분야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공부문이 먼저 움직일 수 없을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소프트 경제에서 남북 사이에 오고 갈 대금을 재단 차원에서 운용하면 경제 제재를 피해 나가면서도 필요한 투자를 자체적으로 하는 메커니즘을 설계할 수 있다. 개별 회사는 북한을 상대로 리스크 헤징이 어렵지만, 영화와 드라마 혹은 뮤지컬 같은 것을 묶으면 규모에 의해서 어느 정도는 평균 수익률을 맞출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에 드라마 상영으로 받을 돈을 한국에서 북한 공연을 하는 것과 연계하면 돈이 오고 가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북한 배우가 받을 돈과 남한의 설비를 각각 현물계상으로 처리하면 좀 더 복잡한 거래도 가능할 수 있다. 우리 정도 규모의 경제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할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측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안고 투자 결정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공장, 철도, 도로, 파이프라인 이런 설비만 중심으로 생각하면 남북 경제교류는 아직은 먼 얘기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소프트 경제로 넘어오면, 남북영상협력재단 정도의 돈과 권한을 갖춘 기구 하나만 있어도 훨씬 빠르게 남북이 같은 걸 보고 즐길 수 있다. 이런 기구 하나 더 만드는 게 남북교류라는 큰 이익에 비하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 것도 아니다. 남북협력기금이 14조원 넘게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돈 좀 쓰자. 통일부가 주관하고 문체부가 협조하면 상업 영화나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북한의 것은 북한에, 남한의 것은 남한에 그런 원칙을 세우면 ‘퍼주기’라고 욕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남북합작 드라마, 남북합작 영화, 지금이 딱 시작할 때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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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대치 과정에서 고소·고발당한 같은 당 의원들의 ‘수사 자료’를 경찰에 요구했다고 한다. 경찰업무를 소관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은 지난달 27일 경찰청에 패스트트랙 수사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 고소·고발 사건 상황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종배 의원은 수사 계획과 함께 수사 담당자의 이름·연락처, 조사 대상자 명단을 추가로 요구했다. 58명에 달하는 한국당 의원들이 고발된 상황에서 경찰청을 관할하는 행정안전위 소속 의원 등이 경찰에 수사 상황과 계획, 수사관 신상 자료까지 요구한 것은 명백한 수사 외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자료 제출을 요구한 날은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국회의원실에 감금해 사법개혁특위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혐의로 경찰이 한국당 엄용수·여상규·이양수·정갑윤 의원에게 소환을 통보한 당일이었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이 통보된 시점에 같은 당 의원들이 직접 수사 자료를 요구한 게 ‘외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이채익·이종배 의원 역시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정의당으로부터 고발당한 상황이고, 이종배 의원은 ‘채이배 의원 감금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결국 수사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 범죄 혐의자가 지위를 남용해 수사기관을 위압한 꼴이다. 법과 원칙에 앞서 최소한의 상식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행태다. 논란이 일자 이채익 의원은 ‘통상적 상임위 활동’ 운운하며 오히려 “자료 요구 내용이 외부에 알려진 경위를 밝히라”고 경찰을 압박하고 나섰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국회의원의 자료 요구 권한이 자신이나 자기 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 대처에 이용하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이런 수준의 법의식을 갖고 있으니, 자기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그렇게 유린했을 터이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 경찰의 소환에 불응 방침을 밝힌 상태다. 국회법을 짓밟는 폭력과 불법이 난무, 그것을 처벌해 달라고 서로 고발장을 제출해 시작된 수사다. 입법자가 스스로 법을 어기고, 이제 법의 집행마저 거부하는 아연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 국회에서 벌어진 공공연한 불법행위가 합당한 처벌 없이 유야무야된다면 법치는 설 땅을 잃는다. 한국당은 소환 불응에 수사외압 같은 가당찮은 행태를 그만둬야 한다. 공당이라면 경찰 소환에 응해 떳떳이 조사받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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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일 ‘북한 어선 삼척항 입항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군 당국의 최초 발표와 달리 육·해군의 경계 태세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건의 ‘허위보고·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방부는 지휘 책임을 물어 박한기 합참의장 등은 엄중 경고, 육군 8군단장은 보직 해임했다. 또 현장 경계에 실패한 육군 23사단장과 해군 1함대사령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해경정이 15일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어선을 예인하고 있다. 독자제공

사건 발생 당시 군 당국은 “(어선을 탐지하지는 못했지만) 경계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고, 어선을 발견한 곳을 “삼척항 인근”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의 어선이 삼척항으로 입항하는 장면을 육군 해안 초소 감시장비와 해경·해수청·수협 등의 CCTV가 촬영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지역 방어를 책임진 육군 23사단은 어선의 입항을 확인, 예인한 동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최초 상황을 통보받지 못했다. 육군과 해군, 해경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지 못하고 따로 대응한 것이다. 정부 조사단이 경계 근무의 허점을 확인한 것은 온당하고, 또한 잘한 일로 평가한다. 하지만 군 당국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발표에는 의문이 든다. ‘삼척항 인근’이라고 표현한 것을 군인들의 평소 언어 습관 탓으로 돌린 점부터 그렇다. 북한 어선이 항구에 입항해 주민에게 휴대폰까지 빌린 상황과 ‘항구 인근’에서 배를 발견한 것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또 초기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설명도 군색하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 볼 때 국방부와 합참의 지휘부가 오판했거나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정부의 합동조사 결과는 여러모로 아쉽다. 그 내용이 지난주부터 언론이 익히 예상한 대로인 데다 국무총리실이 갑자기 발표 주체로 나선 것도 어색했다. 국방부가 ‘셀프 조사’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졸속 추진했다고 출입기자단이 항의할 정도이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도 징계 조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누군가가 책임질 일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 야당들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청와대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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