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태어났을 때 나라는 일본 손에 넘어갔고, 그의 아비는 선산까지 팔아 만주로 일본으로 유랑했다. 의지할 데 없던 그는 열두어 살 때부터 일본 사람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때 일본말을 배웠다. 그는 눈칫밥을 먹으면서 어른이 됐고, 이웃 마을 처자와 혼례를 올렸다. 어찌어찌 남의집살이를 벗어나 집을 얻어 살림을 차린 그는 둘째 아들을 낳고 얼마 뒤 강제 징용돼 일본 광산으로 갔다. 이후 석 달쯤 지나 어린 아들이 사경을 헤맨다는 전보를 받았다. 그는 일본 관리에게 사정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통역을 해줬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내 말을 곧이들었어. 그래서 아들만 살려놓고 바로 돌아오겠다고 했지.” 집에 와서 보니 아프다던 아들은 멀쩡했다. 그의 부인이 아무래도 남편이 못 돌아올 것 같아 거짓 전보를 쳤다고 했다. 그는 그때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살아 돌아온 자는 끔찍한 노역을 해야 했던 광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는 광복 후 마을에서 일본인들이 내쫓길 때 앞에 나서 그들을 도왔다. “그 사람들도 불쌍했지. 대개 거지꼴로 우리 마을로 들어와 고생하며 살았거든. 그 사람들은 여기 그냥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일본 가면 또 거지꼴일 테니 그랬겠지.”

그는 성난 마을 사람들을 다독여 일본 사람들이 무사히 마을을 떠나게 했다. 그는 말했다. 그들은 죄가 없다고. 그는 누구의 잘못으로 힘없는 이들이 강제로 끌려가고, 내쫓겨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이 철도를 놔줘서 우리나라가 발전했다는 말을 평생 입에 달고 사셨다. 그 철도 위를 달려 강제 징용되었던 내 할아버지의 말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슬펐다. 

오랫동안 그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준 것은 국가였다. 국가는 한 개인의 삶에 무책임했을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강제 징용 배상을 트집 잡는 일본의 행태에 ‘국가의 이익’ 따위를 거론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내 배상받게 된 이춘식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큰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 부담된다고 한 말에 가슴이 아프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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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만남을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내가 당황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트럼프 노벨 평화상 후보론’이고, 또 하나는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언급된 ‘문재인 대통령 조연론’이다. 일단 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과 관련한 수많은 유엔 조약을 앞장서서 위반했기 때문에,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두 번째 의견이다. 여야 간 정쟁으로 치부하기엔 심각한 사안이다. 국제정치에서 ‘팩실레이터(facilitator)’는 외교력으로 국가 간 갈등이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행위자를 말한다. 촉진자, 조력자, 주동자, 조성자 등의 뜻이 있다. 한마디로, 능력이 있어서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다. 어떤 종류의 영향력이든 지렛대(레버리지)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는 ‘강국’이지만,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나 중재력 측면에서는 ‘중견국(middle power)’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야당 일각의 “문재인 조연” 운운은 국제정치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거나 흠집 내기이거나, 둘 다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45년 미 군정 이후 지난 74년 동안, 우리는 프란츠 파농의 표현대로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글자 그대로, 서구가 심어놓은 ‘식민(植民)’이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의 정치, 경제, 일상은 ‘미국’이거나 ‘미국이 아닌 것(북한)’에 의해 좌우되었다. 독재는 쉬웠다. 미국을 욕망하고 동일시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친북’으로 몰면 그만이었다. 특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한반도는 미·소에 의한 분단이 아니라 미국이 기준이 된 분단이었다.

분단 체제는 남북 간의 대립이 아니었다. 통치자들에게만 유리한 이데올로기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단을 이용하지 않은 첫 번째 지도자였다. ‘통일’은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가 여럿이 되는 것이다. 현재 남북은 ‘대립하고 있지 않다’. 가난한 북한은 ‘주적’이 아니라 관심 없는 타자일 뿐이다.

판문점 만남을 두고 자유한국당은 조연이라고 했지만, 실제 우리 정부의 역할은 조정자에 가까웠다. 다른 국제 관계에서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기회가 많지도 않고, 이 분야에서는 주연과 조연이라는 용어 자체가 난센스다. 이제까지 국제 사회에서 주연은 주로 전쟁을 일으키는 침략자들이었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과 위계를 강조하는 사고방식도 시대착오적이지만, 요즘과 같은 ‘관종’의 시대에 주연 강박, 주인공병은 위험하다. 이미 주인공병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관심을 받는 방법이 주로 혐오 행위이기 때문이다. 막말이나 혐오가 자원으로 연결되는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남북관계에서는 남북 당사자론이 있을 수 있고, 한국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할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최소한, 한국 현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설인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되었다”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나는 예전에 국방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반도가 유사 이래 27번 외침을 당했다는 의견부터 900번 당했다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잦은 국경 접촉 사고까지 외침(外侵)이라며, 2000번이 넘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약소국의 운명’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당나라가 등장하면 고구려와 백제가 망했고, 원나라가 부상하면 몽골군이 쳐들어왔으며, 명나라가 등장하니 고려가 멸망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니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청나라가 등장하니 병자호란이,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더니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의 식민 지배가 일어났다는 식이다. 물론 이는 단순한 외세 환원론으로, 이 글에서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피해를 당해왔다는 깨달음은 중요하지만, 피해 경험이 자신을 정의하는 정체성이 되는 방식은 위험하다. 피해 사실과 피해 의식은 다르다. 피해는 상황적인 것이지 본질이 아니다. 피해 의식은 개인과 사회의 성숙을 가로막고,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는 상황을 인식하기 힘들게 한다.

나는 이번 회담이 감격스럽다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피해자 콤플렉스를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심리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돈이나 무기로는 살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과 아류 제국주의 의식이 뒤섞여 있다. 동전의 양면도 아니고 한 모습이다. 자부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열등감이 자부심으로 포장될 때 세상은 끔찍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무대에서의 주연 - 미국도 불가능한 일 - 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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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언론에 따르면 지난 6월20일 이란의 미군 무인정찰기 격추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통제 시스템을 마비시키고자 시도한 사이버공격은 사이버전이 물리공격으로 이어질 뻔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실제 무기 없이도 공격이 가능한 사이버 세상은 범죄와 분쟁을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규범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버 세상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이미 지난해 백악관을 중심으로 국가사이버보안전략을 발표하고 사이버보안청(CISA) 신설 등 조직개편까지 단행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아세안에서는 싱가포르와 일본 등이 역내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경쟁적으로 자국의 사이버보안 역량을 강화하고 서방 주도의 국제사회 규범 형성에 대항하는 규범과 협력체계를 구축 중이다. 

(출처:경향신문DB)

한국도 그간 축적해온 사이버보안 대응역량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의 사이버보안 논의에 적극 동참하여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올해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고 5G+전략을 발표하여 ‘가장 안전한 5G 환경 구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향유하고, 글로벌 5G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안전이기 때문이다. 해킹에 따른 감염 대응·예방 체계를 사전에 구축하기 위해 정부는 융합보안을 위한 안전망을 마련하고 5G 플랫폼의 안정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먼저 보안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보안 강화를 지원하고, 지능화·대규모화되는 사이버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한 지능형 침해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이어 클라우드 보안 및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제 운용에 있어 기업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보안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개선을 추진 중이다. 또한 초연결시대 산업은 물론 국민생활 전반의 보안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핵심기술 개발과 실증, 표준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전한 5G+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에 기업, 기관, 국민들의 자발적 동참도 더해져야 한다. 제조, 건설, 물류 분야 기업들은 시스템 설계 시부터 보안을 내재화하고 일반기업과 기관들 역시 침해사고 예방과 대응을 위한 인적, 물적 투자를 늘려야 한다. 국민 개개인은 비밀번호 설정, e메일 발송자 확인, 최신 운영체제 사용 등을 습관화해야 한다. 무인이동체와 자동화기기, 지능형 CCTV 등 새로운 5G 기반 융합기기들도 마찬가지다. 

7월은 정보보호의달이고, 10일은 정보보호의날이다. 7월 한 달간 과기정통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은 다양한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5G 상용화 원년인 올해의 주제는 ‘5G+, 초연결사회, 정보보호’이다. 

이번 정보보호의날이 국가 사이버안보 역량을 총결집하고 국민 모두가 정보보호의 기본을 지키고 함께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유영민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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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는 발명을 부른다. 소비자의 상상은 수요를 일으키고, 사업가의 혁신은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현실화한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소비를 하겠다’는 욕구는 배달서비스의 혁신과 번창을 가져왔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물질적인 재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브랜드)를 소비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는 ‘배달서비스’를 소비하는 사회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배달서비스는 초기에 방문판매업 형태였다. 팔도를 누빈 주인공은 보부상. 이들은 삼국시대부터 지방을 돌며 일용잡화를 팔았고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다. 보상은 필묵, 금, 은, 동 제품이나 세공품 등을, 부상은 나무, 그릇, 토기 같은 제품을 취급했다. 연지·분·머릿기름 따위의 화장품과 패물을 팔러 다니던 행상도 있었다. 주로 노파들이 활동했다고 해서 아파(牙婆)라고도 한다. 본격적인 배달업의 시작은 조선 후기다. 조선 실학자 황윤석은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에 과거시험을 본 다음날 평양냉면을 시켜먹었다고 썼다. 순조가 달구경을 하던 중 ‘냉면을 사오라고 시켰다’는 말도 전해진다. 1920년대 모던보이와 모던걸 사이에 설렁탕을 배달시켜 집에서 먹는 것이 인기였다고 한다. 정기적인 배달서비스의 대명사는 신문과 우유였다. 신문은 자전거, 우유는 리어카에 실려 독자와 소비자를 찾았다. 

정보기술의 발달, 1인 가구의 확대, 소비자의 니즈 변화는 배달서비스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통신기술과 배달서비스 발달로 범지구적인 구매·공급이 가능해졌고, 품목은 셀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드론기술을 이용한 무인배달도 현실화하고 있다. 서비스 속도는 가히 광속이라고 할 정도로 빨라졌다. 국내에선 주문 하루 안에 배달하는 곳도 많다.

정부의 주세법 개정으로 한강에서 치킨·생맥주를 시켜먹을 수 있게 됐다. 음식점에서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자장면에 고량주, 치킨에 맥주처럼 음식과 함께라면 술 배달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과 소비자들의 개선 요구 때문이라고 한다. 배달중독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우리는 ‘호모배달리우스’가 돼가는 건 아닌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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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인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2013)를 연전에 읽고 기분 좋게 놀랐다. 과문한 탓인지 이 같은 서사를 그전에는 본 적 없었다. ‘쇼코’는 주인공 ‘나’의 일본인 친구다. 소설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새로운 우정과 교호와 교감에 관한,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이 주체인 ‘공(共) 성장’의 서사다. 

섬세하기로 유명한 이 작가의 데뷔작은 나에게는 21세기 이래의 새로운 한·일 우호를 함축하는 서사로 읽혔다. 도쿄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나의 친구는 최은영 작가를 일본 학생들이 듣는 자신의 한국문학 수업에 초대하기도 했다.  

2016년 12월31일 세밑 부산에서 열린 촛불시위는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날 여성, 학생, 민주노총과 시민단체 회원 등 약 5만명의 부산 ‘촛불’이 모였는데, 그 슬로건은 지금도 음미할 만한 것이다. 시민들은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탄핵심판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퇴진, 그리고 12·28 한·일 합의 폐기를 요구했다. 박근혜+아베의 ‘불가역적’ ‘위안부’ 문제 해결과 10억원의 ‘지원금’은 할머니들의 소망도, 시민들의 뜻도 아니었다. 그렇게 촛불은 ‘평화’와 끝나지 않은 탈식민의 과제도 제기하고 있었다.

‘쇼코’의 친구이며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한국인들과 촛불을 들었던 보통의 한국인들은 물론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심으로 평화를 옹호하며, 제국의 폭력에 고통당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진심으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현재 아베 신조는 그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다. 현해탄의 평화와 사람 사이의 정을 공격하고 있다. 

오늘날 민족주의는 쉽게 위험하고 낡은 것으로 간주된다. 반일 민족주의 또한 심각한 혐의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실제로 여성과 소수자를 억압하거나 엄연한 다른 모순(계급·지역·젠더 등)을 덮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동원되기도 했다. 이승만도 심지어 이명박도 반일 민족주의의 대중성을 이용하려 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이후엔 탈민족주의가 지식계와 담론장의 상식처럼 되기도 했다. 

과연 종래의 민족주의는 오늘날 한국이 구가하는 글로벌리즘(한류, BTS, 200만명의 이주자, 글로벌기업 등으로 상징된다)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제 한국은 그런 민족주의와는 시쳇말로 ‘사이즈’ 자체가 안 맞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의 거추장스러운 옷을 계속 입고 있다. 첫째는 외적 현실 때문이다. 미국의 여전한 패권과 제국적 횡포, 중국의 가공할 굴기와 그 부산물들. 초강대국이 그물 쳐 놓은 지정학적 매트릭스 속에 여전히 한반도는 갇혀있다. 비극적이고 소모적인 분단의 현실 또한 ‘민족’을 해산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과 우경화가 한국 민족주의를 주삿바늘이 되어 자극한다.  

둘째는 한국 내부의 문제다. 국가폭력 가해자, 친일파, 극우 종교세력, 매판자본과 일부 지식분자들은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한국을 지배해왔다. 그 (무)의식의 매개가 식민주의다. 이는 물론 자유한국당이나 조선일보 등속의 정신상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며, ‘현실’의 힘으로 움직인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가치다. 민족주의는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탈식민주의와 교집합이 있다. 입맛대로 이상적이고 투명한 것만을 골라 취하기란 불가능하다. 초정세적이고 ‘보편타당’한 ‘탈민족’의 논리란 책상 앞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한국 지식계는 미국이나 일본을 경유하여 수용된 종래의 탈식민주의·탈민족주의를 갱신하고 새로운 공동체와 세계시민적 규범을 논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데, 그 언어와 앎은 잘 개척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기득권자나 지식인들은 시민대중의 반일 행동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쉽게 비웃는다. 대중을 일차원적 민족주의자들이거나 배타주의자라 치부하는 것은, 다양한 ‘쇼코’의 친구들인 오늘날 한국 시민의 글로벌한 삶의 실상에도, 동아시아의 현실에도 맞지 않는 오만이다. 

한국과 일본의 ‘글로벌한 분업체제’와 인적·문화적 교류 등을 통해 얽힌 다양하고도 넓은 선린관계를 생각할 때, 아베 신조의 도발은 실로 졸렬하고 무례한 것이다. 아베는, 일면 낡아가고 일면 갱신돼가던 한국 민족주의의 날과 시민대중 마음의 역린을 건드렸다. 연일 분석가들이 그 단기·장기적 의도를 말해주는 것처럼, 빤히 보이는 책략에 말려들지 않게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대처해야겠다. 

식민주의에 맞서는 전선은 내외에 걸친다. 오늘의 이 대립은 국가대표 축구경기 같은 가상적 ‘한·일 대결’이 아니라, 현실의 식민주의 대 민주공화국 시민 간의 대결처럼 보인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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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길에 만나는 고양이가 있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 몰골이 형편없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먹이를 사서 놓아주었지만 몹시 배가 고플 텐데도 다가오지 않았다. 이윽고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줄곧 졸졸 따라오던 녀석에게 다시 먹이를 주었다. 그제야 녀석은 다가와 먹이를 다 먹어 치우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그 후로 매일 가게에 들러 고양이 먹이를 사기 시작했고 늘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자 녀석의 모습이 놀랍게 달라졌다. 온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매혹적인 자태로 바뀐 것이다. 내가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 같아 흐뭇했다.

언젠가는 새벽 강의가 있어 이틀 만에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녀석은 먼 발치에서 날 보자마자 시선을 홱 외면했다. 왜 그동안 모습을 안 보였느냐고 따지는 품새였다. 그러고도 서너 달이 더 지나서야 녀석은 내가 아주 잠깐 만지는 정도의 터치(?)를 허용했다. 그 후 본격적인 ‘밀당’이 시작됐고 요즘 들어서야 녀석은 내가 나타나면 먼저 다가와 아는 체를 한다. 그러다가 제 볼일이 있으면 언제 널 알았냐는 듯이 외면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때마다 내 심정은 녀석과 아주 제대로 ‘썸’을 타는 느낌이다. 

그러던 중에 문득 상대방이 고양이가 아니고 사람이라도 내가 단순히 썸을 타는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 터였다. 만약 내가 그처럼 공들인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그 고양이처럼 나왔다면 난 분명 엄청나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제대로 된 인간관계란 어떠해야 할까 하는 기본적인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예컨대, ㄱ씨는 아는 사람이 많기로 장안에 손꼽힌다. 잘나갈 때는 눈도장 한 번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를 다 자신의 편익에 맞추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그가 자신의 위치에서 물러났을 때 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편 ㄴ씨는 처음부터 그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역시 상대방에 대해 마찬가지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가 생각하는 것도 깊고 인간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냉담하다고 흉을 봤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분명했다. 가까운 사람들과는 자주 못 만나도 그냥 생각만 해도 좋은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니 언제 만나도 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만나서 불편한 사람들과는 그 만남을 최소화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ㄷ씨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만남을 갖지 않았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특성상 퇴근 후에 연구할 것도 많고 자기는 사람들을 만나면 쉬이 피곤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세 사람의 사례는 각자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인간관계의 스타일 역시 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그 타입을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고, 처음에는 사교적이지만 오히려 친해지면 더 이상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어느 쪽이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인지 규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정신의학적으로는 인간관계에 대해 친밀함을 추구하면서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고, 적극적으로 자기가 주장해야 할 때는 주장하고, 남의 의견을 따라야 할 때는 또 적절하게 타협할 줄 안다면 그는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은 옷차림을 하듯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인간관계의 해법인 셈이다.  

물론 그런 해법을 하루아침에 내 것으로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만큼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고양이와 썸을 타면서 느낀 단상이라기엔 좀 무거울 수 있지만 날이 갈수록 인간관계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양창순 |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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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8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재지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지정취소 결정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은 9일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 결과 대상 13곳 가운데 8곳이 지정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정취소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올해 지정취소 통보를 받은 자사고는 지난달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한 전주 상산고, 부산 해운대고, 경기 안산동산고를 포함해 11곳으로 늘었다.

현재 전국에는 자사고 42곳이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올해 평가 대상 24곳의 46%인 11곳이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정부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됐다. 물론 지정취소 통보를 받은 11곳이 모두 일반고로 바뀐다고 단언할 수 없다. 교육부의 최종 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국정과제인 만큼 교육부가 교육청의 지정취소 결정에 반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은 실현단계에 들어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 결과 공개 간담회에서 박건호 교육정책국장이 평가 대상 학교의 현황 등이 적힌 문서를 들고 평가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자사고란 ‘일반 사립고와 달리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에 더 많은 자율권을 보장받는 학교’를 말한다. 교육과정 운영을 다양화해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자는 게 지정 취지다. 취지대로라면 고교교육의 다양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자사고들이 ‘교육 다양성’이라는 취지와 달리 ‘대입 진학교육’에 몰입하고 있다. 상산고의 경우 학생의 약 20%가 의대에 진학하면서 ‘의대 입시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이 때문에 자사고에는 서열화, 과열경쟁, 사교육비 등의 꼬리표가 붙는다. 자사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고교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2016년 한국교육개발원 여론조사 결과 고교평준화 찬성률(64.7%)이 반대(20.9%)의 3배나 됐다. 지난달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자사고·특목고 축소’ 설문조사에서도 찬성이 반대의 2배였다. 

그렇다고 40여곳의 자사고를 한꺼번에 일반고로 강제전환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5년마다 하도록 돼 있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일반고 전환을 유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자사고를 지원하는 학생에게 일반고 지원 기회를 금지한 대통령령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헌재는 일반고와 동일하게 후기에 입학전형을 실시하도록 한 대통령령에 대해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자사고가 완전 폐지될 때까지는 자사고와 일반고가 함께 경쟁하는 고교체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방향은 옳다. 일각의 반발이 있지만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각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에 맞춰 점수 경쟁 위주의 고교교육, 서열화된 고교체계를 바로잡는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 자사고 방식의 경쟁 위주 교육을 지양하면서 일반고 육성을 통한 교육의 다양성·수월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반고 전환과정에서의 지원도 필요하다. 아울러 달라진 교육환경에 걸맞은 방향으로 대입제도도 개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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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증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윤 후보자가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친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 ‘변호사를 소개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으나,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언론 인터뷰 파일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이 윤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뉴스타파’가 8일 공개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2012년 12월 윤 후보자가 “이 사람(윤 전 서장)한테 변호사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중수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변호사)이 보고 ‘(윤)대진이한테 얘기하지 말고, 윤우진 서장을 한 번 만나봐라’고 했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윤 후보자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다. 그는 발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건 수임에 대한 소개를 한 적은 없다. 변호사(선임)는 자기 형제들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초점은 크게 두 가지다. 법적 측면과 정치·도덕적 측면이다. 설사 윤 후보자 해명이 거짓이라 해도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인사청문회법상 공직후보자의 위증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처벌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헌법 제12조 2항이 규정한 진술거부권(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의 개념에 따른 것이다. 이남석 변호사가 공식 선임되지 않았다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보기도 어렵다.

정치·도덕적 측면에서 보면 사안이 가볍지 않다. 고위공직, 그것도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핵심 의혹에 대해 말을 바꾼 것은 잘못이다. 게다가 윤 국장이 “(형에게) 소개는 내가 한 것이고 윤 후보자는 관여한 바 없다”고 하며 또 다른 논란거리가 보태졌다. 윤 후보자도 뒤늦게 “윤 전 서장에게 이 변호사를 소개한 것은 윤대진 (당시) 과장”이라고 했다. 오락가락 해명으로 ‘강골 검사’의 신뢰성에 흠집이 간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윤 후보자는 “혼선을 드려 송구하다”고 사과했으나 충분치 않다. 이 변호사 소개 과정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낱낱이 정리해 국회와 시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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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9일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경제보복을 긴급의제로 상정, 국제사회에 그 부당함을 알리기로 했다. WTO 제소도 진행키로 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 일본의 규제철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이날 각의(국무회의) 후 문재인 대통령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대해 “협의 대상이 아니다. 철회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곧 있을 당국자 간 실무협의회에 대해서도 “사무 레벨에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응은 예상했던 바다. 정부는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일 양국 기업을 통한 ‘1+1 보상’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로서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양보한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거부했고, 더 나아가 일본 기업에 대한 보상요구를 없던 일로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중재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작은 뒷걸음질에도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극적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갈등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9일 (출처:경향신문DB)

그렇다면 우리는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빈틈’을 메워야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경제의 아픈 곳을 겨냥하고 있다. 높은 수출 집중도와 뒤떨어진 핵심 소재·부품산업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수출에서 반도체 의존도는 20%가 넘는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1400억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봤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151억여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핵심소재 개발을 게을리한 탓이다. 

정부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켜야 한다. 특정업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분업구조는 수평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강소기업을 육성해야 부가가치 높은 소재·부품 개발도 가능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규제는 풀고, 예산도 더 늘려야 한다. 국회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번 사태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기업,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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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성 리더들의 애환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된다. 개인이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걷히고 나면 남성들에겐 다른 사다리가 기다리지만 왜 여성들은 허공과 맞닥뜨리게 될까. 갈등과 직면하면 왜 여성들의 고군분투는 더 독해질까. 남성은 결정만 생각하면 되는데 여성은 왜 비판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고려해야 할까. 여성에 대한 시선은 남성이 지배하는 분야에서 성공했다 추락했을 경우 훨씬 가혹해진다. 여성 리더가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노란 벽돌길’(<오즈의 마법사> 중 도로시의 길)은 애초부터 없었기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개인의 결함이 여성 전체의 결함으로 치부되는 현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문제로 사임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한 영국 문화도 작용했겠지만 메이 총리의 눈물을 두고 나약한 지도자라는 비아냥이 붙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두번의 세월호 재협상과 이상돈 당시 중앙대 명예교수 영입과정에서 당내 반발에 부딪힌 뒤 칩거했다. 탈당설까지 돌 무렵, 박 원내대표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들은 분주해졌다. 다른 언론사 후배가 하소연을 했다. “회사에 보고했더니 ‘(박 원내대표) 성질 좀 죽이라고 해라’라는 말부터 하더라고요. 아니, 복귀 메시지가 뭔지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성 원내대표였다면 그 선배는 ‘성질’ 얘기부터 했을까.

반면, 2007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영웅 가족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눈물을 보였을 때 언론은 “백악관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성이 울면 개인 감정으로 존중하면서, 여성이 울면 여성 전체를 감정적인 존재로 몰아가는 것이다. 여성이 이성보다 감정에 압도될 것이라는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고, ‘감정적’이라는 평가는 여성의 결정을 깎아내리려 할 때 빈번하게 사용되곤 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결정적 위기 때 상당수 여성 리더들이 등장하는 현실을 주목해보자. 미국 인지심리학자 터리스 휴스턴은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에서 이 현상을 ‘유리절벽’이라고 표현했다. 유리천장을 부수고 올라온 ‘성공한’ 여성이 남성보다 ‘위험 부담’이 큰 지도부에 오른 경우를 빗댄 말이다. 얼마 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민 문제 등으로 위기에 놓인 유럽연합(EU)의 첫 여성 집행위원장에 지명됐다. 남성 전임자가 성폭행 혐의로 사임한 뒤 선출된 국제통화기금(IMF) 첫 여성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도 있다. 제너럴모터스의 첫 여성 CEO 메리 배라는 임명된 지 몇주 만에 자동차 수백만대를 리콜하는 악재와 만났다. 조사 결과, 자동차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음을 회사 측은 진작에 알았다고 한다. 휴스턴은 이 사례를 통해 ‘어떤 방법도 효과 없을 때가 여성의 조언을 구하기 가장 좋은 시기일까’라고 되묻는다. 아니다. 조직 번영기에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자가 되면 소소한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휴스턴은 충고했다.  

우슐라 폰 데르 레옌 독일 국방장관이 독일 베를린의 연합 박물관에서 열린 베를린 독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 리더들에겐 이처럼 전형적인 경로가 있다. 남성들이 ‘이미 정해둔’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해석되고, 결국 권력도 덜 쥐게 된다는 것. 그래서 여성이 아무리 남성적 리더십을 보여도 의심받게 된다는 것. 여성 리더가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란 자각이 없을 때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보면 알 수 있다. 나 원내대표는 숱한 막말 의혹에 반박 강박증을 드러내는 ‘프레임’이란 용어를 자주 끌어온다. 문재인 정부를 ‘신독재’로 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퇴행적 정치관을 드러내는 사례도 잦다. 필라델피아 선언(‘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이 발표된 지 75년이 지났음에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동자유계약제’를 버젓이 주장했다. (남성들보다) 더 남성적으로, (보수의 언어보다) 더 보수적으로 발언하는 이유가 여성 리더라 위태로워 보인다는 불안을 더 극렬한 남성화로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지 모르겠다. 패스트트랙 정국 때 여야 합의안이 한국당을 거치면 혹이 더 붙거나 부결됐다. 당내 혼란이 불거지면 통상 중진들이 수습에 나서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거의 손을 놨다. 나 원내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쥔 지도부인데도 말이다. 이는 (나 원내대표가 여성이라) 제어 가능하다고 보거나, 혹은 무시해도 생존 가능하다고 확신해서라고 봐야 한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보수정당의 절체절명 위기에 거머쥔 첫 여성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이 나 원내대표 스스로를 ‘특별한’ 여성 리더로 여기도록 부추기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과거 여성 리더들에게 가해졌던 비판을 상기해보라. 정치적 역량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여성’이 소환되지 않았던가. 보수정당 첫 여성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이 ‘특별한’ 것이 아닌 ‘여성’이라는 표지임을 자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는 여성 리더 ‘나경원 정치’의 가치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나 원내대표만 갈 수 있는 권력의 직항로, ‘노란 벽돌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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