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부터 5일까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사실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정규직, 그중에서도 전문직이 되기를 기대하며 공교육의 현장에 보내지만, 아이들은 비정규직이 지키는 학교 정문을 지나, 그들에게 수업을 듣고, 그들이 만든 밥을 먹고, 다시 4대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보습학원의 강사들을 만나러 간다. 

역설적으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다시 대학원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정규직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진다. 아무리 간편한 노동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지만 학교가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내가 속한 단톡방에서도 그렇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아이들을 볼모로 파업하는 일은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일’이어서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학부모들의 걱정이 컸다.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데 대한 번거로움과 아이들이 빵이나 라면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급식 대란’이라는 단어와 함께 분노의 감정으로도 확산되었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는 6살 아이가 있어서, 당사자라기보다는 적당히 어중간한 자리에서 이 일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몇 년 뒤 아이에게 무엇이라고 말해 주면 좋을지를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볼모’라는 표현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만큼 아이들에게 사람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다. 네가 오늘 한 끼를 굶는 이유는 너의 밥을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해 주고는, 도시락이나 빵이나 김밥 같은 것이나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면 된다. 그러한 간편식을 몇 끼 먹는다고 몸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도 자라나서 노동자가 된다. 누구라도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전문직이거나 정규직이 될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은 평범한 노동자가 되어 저마다의 노동의 공간에 존재하게 될 텐데, 그 평범이라는 것의 기준은 그때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다. 그들은 사람뿐 아니라 기계나 인공지능과도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아프지도 않고, 잠을 잘 필요도 없고, 의료보험이나 퇴직금이 필요하지도 않은, 그러한 존재들이다. 여기에서 승리해 정규직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노동하지 못하고 기계가 생산한 부를 기본소득의 형태로 나누는 최초의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처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그들의 노동이 외로워지거나 슬퍼지지 않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개선하는 일이다.

그에 더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것은 그들을 돌보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일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그들의 어깨에 지우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박탈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 그런 폭력의 언어는 스스로의 논리적 감정적 빈곤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의 노동 역시 또 무언가의 무게에 짓눌려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우리에게 ‘나는 어떠한 노동자로/부모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표를 가지게 해 준다. 이 파업을 대란으로만 여길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사람과 노동의 소중함이라는 감각을 일깨워 주는 교육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선택이 모든 부모들에게 남는다. 

혼자 잘 먹는 한 끼보다도 함께 굶는 한 끼가 아이가 올바른 개인으로 자라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 굶음에 아이와 함께 동참하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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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17일부터 사흘간 국제 드라큘라 콘퍼런스가 루마니아 브라쇼브에서 개최되었다. 15세기에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이 살았다는 곳에서 멀지 않은 도시다. 드라큘라의 역사와 신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하기 위해 1995년부터 국제대회가 열렸다고 하니 호사스러운 인간의 호기심을 판매하는 시장에서 드라큘라에 제법 상품성이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드라큘라는 유럽의 역사에서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인 뱀파이어와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이미지를 획득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도 영화나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기 때문에 햇빛을 싫어하고 빈혈이 심한 데다 잇몸이 점차 줄어들면서 이가 길어지는 현상에 주목한 의학사가들은 드라큘라가 포르피린증(porphyria)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의인화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한다. 짐작하다시피 포르피린증은 인간의 몸에 포르피린이라는 물질이 많아서 생기는 증세를 칭하는 의학 용어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화학과 생물의 경계에서 20년 넘게 공부한 내 입장에서 보면 포르피린(porphyrin)은 우리 인류에게 단연 가장 중요한 화합물 중 하나이다. 간단히 숫자로 예를 들어보자. 우리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세포이다. 인간이 가진 전체 세포가 약 40조개라면 그것의 절반이 넘는 약 25조개의 세포가 적혈구이다. 순전히 산소의 운반만을 목적으로 진화한 적혈구 안에는 세포라고 규정할 만한 소기관이 아무것도 없다. 유전 정보를 함유하는 핵도 없고 세포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도 없다. 대신 세포 하나당 2억개의 헤모글로빈 분자가 들어 있다. 헤모글로빈(heme+globin)은 네 개의 글로빈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고 글로빈 하나당 한 개의 헴(heme) 분자가 할당된다. 헴이라는 화합물이 글로빈 단백질 하나와 일대일로 결합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적혈구 하나에는 8억개의 글로빈 단백질과 8억개의 헴이 들어 있다. 적혈구 세포 숫자에 헤모글로빈 분자 수를 곱하면 20,000,000,000,000,000,000,000이다. 0이 무려 스물두개다. 이 계산에 따르면 우리 몸 안에는 최소한 저만큼의 헴 분자가 들어 있다. 

그럼 포르피린은 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간혹 나는 수업시간에 포르피린의 화학적 구조가 네 잎 클로버를 닮았다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이 클로버 중앙에 철이 들어가 있는 물질을 우리는 헴이라고 부른다. 헤모글로빈에서 산소와 결합하는 부위가 바로 헴 안의 철이다. 그러니까 헤모글로빈 안에 헴이 그리고 헴 안에 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헴 안의 철 대신, 눈자위 아래가 파르르 떨릴 때 복용한다는 마그네슘이 포르피린 분자에 들어오면 엽록체라는 화합물이 된다. 동물의 몸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헴과 태양 복사에너지를 수확하는 엽록소의 기본 골격이 바로 포르피린이다. 호흡과 광합성이 없는 다세포 생명체가 없듯이 포르피린이나 헴을 만들지 않는 생명체도 존재하지 못한다. 

상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헴은 세균이나 식물, 동물 모두 몇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매 단계마다 효소가 일을 한다. 따라서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완제품인 헴의 양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헴 전구체 불량품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증세를 포르피린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햇빛 아래에서 단백질 강보에 싸인 헴은 안정적이지만 자유롭게 활보하는 불량 포르피린은 화학적으로 매우 극성스러워서 세포 입장에서는 위험한 물질이 된다. 또 헴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아 헤모글로빈의 재료가 적은 포르피린증 환자는 자주 빈혈에 시달린다. 

포르피린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햇빛에 노출되면 살기가 괴로워지니까 빛을 피하는 드라큘라의 행동적 특성은 이해가 간다. 십자가를 기피하는 일은 종교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도 드라큘라가 왜 마늘을 싫어하는지는 잘 모른다. 최근에 게재된 한 의학 논문에 마늘 성분이 헴을 분해하도록 도와서 빈혈 증세를 더욱 심하게 할 것이기에 이들이 마늘을 피할 것이라는 자못 ‘비장한’ 추론이 실리기도 했다.

좀 생뚱맞긴 하지만 포르피린증을 앓는 사람들은 잘 먹어야 한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헴을 합성하라는 개시 신호가 전달되고 그에 따라 포르피린의 양이 늘면서 위험 물질이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셀’ 자매지에 발표되기도 했다. 이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은 18~19세기에 걸쳐 장기간 영국을 통치했던 조지 3세의 행적에서 영양 결핍에 따라 악화되는 전형적인 포르피린증 증세를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소재에 본격적으로 과학적 잣대를 들이댄 매우 흥미로운 결과이기도 했지만 헴의 존재가 생명체의 ‘먹고사는’ 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겠느냐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 멋진 연구였다. 

현재 유럽에선 40도를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사람의 체온에 육박할 정도의 더운 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드라큘라처럼 우리도 이젠 여름 햇빛을 피해 다녀야 하나 중얼거리며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드라큘라의 저변에 깔린 생물학에서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힐 어떤 묘수를 깨우칠 순 없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산소와 강하게 결합하는 헴 분자를 개선해 태양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포획하는 동시에 이산화탄소를 고정해 온 식물의 엽록소처럼 포르피린 구조를 흉내 낸 모종의 화합물을 합성할 수는 없을까? 선크림을 바르는 대신 하마처럼 자외선을 차단하는 붉은색 색소를 분비해 태양과 세균으로부터 인류의 피부를 보호할 수는 없을까? 줄기는 모래와 자갈에 꼭꼭 숨겼지만 옥살산 결정의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햇빛을 받아들인 다음 광합성을 수행하는 나미비아 나미브(namib) 사막의 선인장을 어떤 식으로든 모방하는 건 어떨까? 

전 지구적 차원의 오싹한 납량(納凉) 특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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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는 독일 언론인 위르겐 슈미더가 40일간 ‘거짓말 안 하기’에 도전한 경험을 정리한 책이다. 친구가 바람피운 사실을 발설했다가 얻어터지고, 정직하게 소득신고를 했다가 세금폭탄을 맞고, 아내에게 솔직한 감정을 말하다 쫓겨나는 등 악전고투기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전으로 증명한 셈이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펠드먼은 2002년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주 거짓말을 하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평범한 사람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10분에 약 3회씩 거짓말을 한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물론 상당수는 ‘선의’의 소소한 거짓말, 의도적인 생략, 과장, 회피 등이다. 여하튼 10분에 3회라면 거짓말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의 일부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런 거짓말의 일상 속에서도 공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충격과 분노에 빠진다. 이유는 뭘까. <속임수의 심리학> 저자 파멜라 마이어는 ‘공인들의 거짓말은 곧 집단의 신뢰와 사회 질서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돋우기 때문’이라고 봤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7년 ‘인사청문회와 낙마의 정치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0년부터 청문회를 거친 공직 후보 341명의 사례를 전수조사한 것이다. 낙마 사유는 부동산 투기가 가장 많았고, 금전적 부당이득, 거짓말·위증, 탈세, 가치 논란의 순이었다.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해 ‘한국적’ 관대함이 여전한 상황에서, ‘거짓말·위증’이 주요 낙마 사유에 들었다. 천성관 검찰총장(2009년)·김태호 국무총리(2010년)·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4년) 후보자 등이 대표 사례다. 공동체의 신뢰 자본을 훼손하는 공직자의 거짓말에 시민의 눈높이가 엄정해지고 있다는 방증일 터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위증 논란에 휩싸였다. 7년 전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위증 논란이 점화됐고, 이를 해명하다 또 다른 위증 시비를 불렀다. 내용의 위법과 심각성을 따지기 앞서, “명백한 거짓말”은 분명해 보인다. ‘선의’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앞세워 돌파 분위기가 완연하지만, 거짓말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예외사례가 추가되는 것 같아 못내 불편하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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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돌아와 여행 때 찍은 사진들을 밤새 정리. 공복감을 달래려고 우유를 끓이다가 급기야 짜이를 한잔 만들어 먹었다. 인도인 친구가 있는데, 고국에 다녀올 때마다 그에게 짜이 찻잎을 부탁한다. 또 언제 생길지 모르니 아껴서 마시고 있다.

피로가 겹치면 달달한 밀크 티가 구미에 당긴다. 짜이를 파는 커피숍에 앉아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면서 동무들이랑 수다를 떨고 싶다. 코끼리의 나라 인도는 이야기만 들었을 러시아의 음악천재 차이코프스키. 아시는가. 인도에선 내 별명이 짜이가 고픈 ‘짜이 고프스키’라는 걸. 한 잔에 1루피 때부터 그 동네엘 가보곤 했는데, 지금은 심지어 50루피 짜이도 있다고 들었다. 세상 어디나 물가는 오르는데 사는 형편은 수십년 똑같다.

음료 차 문화가 커가면서 조급증이 많이 줄어드는 걸 보게 된다. 두런두런 차를 나눠 마시면 일상의 속도가 느려진다. 급박한 속도로 하루를 달리다보면 사건사고가 터지게 돼 있다. 하루에 차를 얼마나 자주 또 오래 마셨는가에 따라 한 인생의 속도를 알 수 있겠다.

내친김에 차이코프스키 얘길 하자면, 연주 여행 중에 이런 일기를 남겼다. “내가 정말 즐거운 시간은, 늦은 저녁 방에 앉아 차를 홀짝이며 혼자 쉴 때다. 어둠이 내린 창문 밖을 보는 일은 행복하다. 손님이 없는 이른 아침 시간도 좋다. 그 밖의 시간은 정말 피곤하다. 40㎞ 정도로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더구나 낯선 타국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것도 괴롭다.” 주기별로 대인기피증을 앓았던 작곡가는 그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고 창작에 열중할 수 있었다. 혼자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차의 두 가지 즐거움은 여러 잔을 내려 다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한 잔을 내려 나 홀로 마시는 것.

청문회에서는 왜 아무개랑 같이 밥을 먹었냐며 따지더라. 차를 같이 마신 것 가지고는 따지지 않아. 차나 마시지, 왜 밥들을 먹어가지고… 밥은 식욕이라는 욕망을 동반한다. 여기에는 다른 욕망들까지 달라붙게 되어 있다. 어디서 차 한 잔 하자는 건 작은 내디딤. 라면 먹고 가라는 말은 당돌한 유혹이 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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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부위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머리, 팔, 다리처럼 덩어리로 구분된 경우도 있고, 정강이와 종아리, 엉덩이와 궁둥이처럼 섬세하게 구분된 것도 있다. 드러나는 부분만 아니라 장기와 핏줄, 근육, 뼈 등이나 뇌 속의 무수한 신경물질에도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 이름이 있음에도 대명사 ‘그것’ 혹은 ‘거기’나 애칭, 별칭으로만 불리는 부위가 있다. 몸속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것도 아니고 좀처럼 사용하지 않아 잊힌 것도 아니다. 강력한 존재감에 난도 높은 특명을 완수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것’은 마치 007이나 MI6로 불리는 비밀 특수요원처럼 남다른 능력과 기대로 인해 오히려 은폐된 존재다. 또한 생식과 배설, 성스러움과 속됨. 창조와 권태, 노동과 휴식, 자존감과 수치감, 숭배와 터부 등 수많은 모순된 역할과 감정 사이를 부유하는 양면성의 예술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그것’이 여성에게는 하나 더 있다. 젖가슴이다. 하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이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응집된 존재다. 남성들이 가장 숭배하는 곳이자 여성성의 상징인 곳. 그래서 은폐와 동시에 주목받기 위한 은근한 노출과 부풀림이 발생하는 곳이다. 무수한 영화제는 가슴을 최대한 노출한 여성 배우들로 가득하고, 보통의 여성들도 있는 살을 최대한 끌어모아 은근 슬쩍 유혹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밀당’의 고수랄까.

남성들은 여성의 가슴을 몹시 숭배한 나머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금기를 요구했다. 살덩이는 슬쩍슬쩍 보여줘도 되지만 수유 기능을 가진 작은 돌출 부위만은 공식적으로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언제든 드러내도 되지만, 여성들은 상상조차 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만 아무튼 여성들은 ‘작은 점’ 하나를 가리기 위해 아무리 더워도, 소화 기능이 약해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브래지어로 가슴을 압박한다. 80세가 넘은 나의 엄마는 브래지어가 살갗을 스치는 것이 아프다며 러닝 위에 입고 계신다. 관습이란 때로 기묘하다. 여성의 젖꼭지에 무슨 죄가 있다고.

조선 후기 풍속화나 사진을 보면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성들이 많다. 아들 낳은 여성들의 자긍심이라는 설도 있고, 수유를 하는 여성들이 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여성도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늘 금기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불과 100년도 안된 일이다. 금기와 터부란 그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 관습의 일부일 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최근 젊은층에서는 ‘여성의 신체에도 자유를 주자’는 탈브래지어, 탈코르셋, 노하이힐 등의 이슈가 자주 등장한다. 내용 자체로만 보면 논란거리가 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상태에 반하는 패션을 상시적으로 착용하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 엄숙한 자리도 아닌 일상에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몸보다는 자신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데 동의와 허락을 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서구에선 건강을 생각하는 브라리스 패션이 일상이 되었고, 남성들도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착용한 정장이 근무복이던 시대에서 해방된 지 오래다. 

한발 더 나아가 요즘은 남녀 모두 레깅스 패션을 선호한다는 기사를 읽는다. 중·장년 세대가 보기엔 다소 민망한, 하체의 모든 굴곡이 온전히 드러나는 발레복 같은 의상이 청바지와 더불어 필수 아이템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칸 영화제엔 보통의 여배우들 의상과 달리, 다른 곳은 가리고 가슴만 온전히 노출한 반전 패션으로 시선을 모은 여성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엔 해마다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남성 배우도 있고, 외국엔 남학생도 치마를 입을 수 있는 학교도 등장했다. 남성과 여성의 전형성, 금기와 터부에 대한 개념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는 시대가 흥미롭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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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찰청,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대한노인회, 대한의사협회 등 21개 민·관·학계 주요 기관이 참여하는 ‘고령운전자 안전대책 협의회’가 발족했다. 협의회는 앞으로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과 수시적성검사 제도 개선, 운전면허 자진반납제도 지원 등 노인 교통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는 오래됐다. 65세 이상 노인의 면허소지자 비율은 2016년 8%, 2017년 8.8%, 2018년 9.4%로 꾸준히 늘고 있다. 노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도 2014년 2만건에서 2017년 2만7000건으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 기간 노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3185명이나 됐다. 특히 80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사망자가 매년 100명 이상 발생한다는 통계는 주목할 만하다. 초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지난 6월 4일 오후 일본 후쿠오카시에서 81세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교차로에서 일으킨 사고 현장을 현지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현재 서울, 부산, 인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조례 개정을 통해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반납제’를 시행하고 있다. 70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정액 교통카드 지급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정부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등 면허 재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정부가 검토 중인 대책에는 ‘고령자 조건부 면허제도’가 들어 있다. 고령 운전자의 연령이나 신체조건 등을 감안해 조건부로 면허를 허가하는 제도다. 일정 연령 이상의 초고령 운전자나 인지기능 검사, 야간운전 시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고령 운전자에게 고속도로 통행 제한이나 야간운전 금지 등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고령자 운전 제한 조치는 적극적인 교통사고 감소대책으로 충분히 검토할 만한 사항이다. 이를 위해 수시적성검사 확대 등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운행 제한 조치가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시행된다면 노인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노인들의 신체조건은 연령보다 개인차가 더 큰 경우가 많다. 노인의 이동권을 방해하지 않도록 면밀한 배려도 필요하다. 노인의 안전운전을 위해 표지판 등 교통환경을 개선하는 보완책도 병행해야 한다. 고령자 운전 제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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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10일 ‘6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고용률이 높아지고 취업자수가 괄목할 정도로 증가했다. 15세 이상 고용률은 61.6%로 6월 기준으로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취업자수는 올 들어 가장 많은 28만여명이 증가해 고용회복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실업률은 4%에 이르면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 실업자수도 10만여명 늘어난 113만여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긍정·부정 지표가 혼재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동향에서 고용률과 취업자수의 고공행진에 방점을 뒀다. 그럴 만도 하다. 고용은 15세 이상 고용률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기준으로 삼는 15~64세 고용률(67.2%)도 1989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자수도 2018년 1월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취업자수 증가는 올 들어 대부분 20만명 수준을 넘기면서 당초 목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5월19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열고 최근 고용동향과 정책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일자리의 질 측면에서 고용상황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6만6000명), 금융 및 보험업(-5만1000명)에선 일자리가 감소했다. 취업자수 증가의 상당수는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재정일자리’가 견인했으며, 핵심 노동 연령대인 40대 일자리는 줄었다. 특히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감소는 성찰적 분석이 필요하다. 지난달 비임금근로자 가운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2만6000명 감소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가장 많이 줄었다. 올 들어 감소세가 본격화하더니 감소폭도 급격히 증가했다. 정부는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정확히 분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증가하자 “좋은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정부는 이날 통계를 두고 ‘고용회복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고용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주력인 제조업과 40대의 어려움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일자리의 주체인 민간부문에서 고용동력의 상실이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정부가 추진했던 양질의 일자리 증가라고 말하기 힘든 통계가 많다. 정부의 진단과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배치된다. 냉정한 진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정책 시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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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