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

몸이 좌우로 흔들린다. 중력이 비껴가는 것이 느껴진다. 경광등 불빛과 사이렌 소리가 눈과 귀를 파고들다 튕겨져 나간다. 

새벽 한 시.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아버지 연세는 78세.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저혈당 쇼크. 구급차에서 내려 응급실로 이송 중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다급하게 아버지와 링거를 연결한다. 아버지 팔뚝이 링거의 수액을 들이켠다. 10에서 200으로 혈당수치가 치솟는다. 위급한 상황이 지나갔다. 

안내에 따라, 응급실 옆 조그마하게 붙어 있는 수납·입원 창구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든다. 통장 비밀번호든, 숨기고 싶은 치부든 적으라고 하면 적을 태세다. 

환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성별.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이 자택인지 전세인지 아니면 월세인지를 묻는다. 바로 아래 칸에선 환자의 직장명과 직장 전화번호도 기다린다.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본능이 각성한다. 여긴 병원이고 나는 입원약정서를 쓰고 있다.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 환자와 보호자를 혼내주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선다. 입원약정서가 채무이행각서로 보인다. 병원이 불법을 저지르겠는가. 병원 법조팀에서 충분히 검토했을 터. 하지만 아픈 가족이 볼모가 되어 무언가를 강요당하는 느낌이랄까. 아픈 게 죄라면 죄겠지. 

약정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여러 개의 사전에서 약정이 약을 달이는 기구라는 의미가 아닌 이상, 어떤 일을 약속하여 정하는 행위라는 공통된 의미로 해석된다. 그럼 약속이란 무엇인가. 어린이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서로 어떤 일을 정해 놓고 어기지 않기로 다짐하는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환자가 병원에, 병원이 환자에게 하는 약속. 입원약정서에는 병원이 환자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 안 보인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 나이, 질병, 장애, 종교,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성적 성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알게 된 환자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다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빌미로 의사와 간호사를 탓하고 싶지 않다. 

어디 이런 문제가 의사, 간호사의 문제겠는가. 관행으로 쌓여온 병원시스템일 테고,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권위주의적 문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나와 우리 모두의 유산 아니겠나. 

환자와 그 가족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해주는 병원 관계자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환자와 그 가족의 작은 바람이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병원을 맴돈다. 

다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 날아오는 시선. 유쾌하지 않은 시선이었다. 

다행히 해가 뜨기 전에 입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는 곤하게 주무신다. 오늘 아침 일어나시면 적지 않은 검사를 받으셔야 할 것이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어찌 됐건 시간은 흘렀고 모든 것이 안정감을 되찾은 느낌이다. 

이제 지방의 강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기차를 타야 하는 나에게 남은 미션은 병원을 나서는 일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야간 당직 간호사가 뒤에서 부른다.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환자분 실비보험은 있으시죠. 물어보는 이도 어딘가에 적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물어보는 것일 게다. 

마지막까지 전해오는 시선. 이보다 확실한 졸음방지약이 또 있겠나. 다행히 졸지 않고 집까지 잘 도착했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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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은 28년 전 산속으로 들어가 칩거하며 명상생활로 들어갈지, 뜻있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시작할지 고민하다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1991년 창간호를 낸 그 잡지가 격월간 ‘녹색평론’이다. “이대로 가면 이 세상이 망할 게 눈에 명확히 보이는데, 연구실에서 책이나 읽고 학생들 가르치며 지낼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줄곧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성장(담론)의 폐해를 비판했다.

김종철의 신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는 비판의식의 고갱이를 담았다. “선진화를 향한 사회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은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다. 출생, 양육, 교육, 취직, 주택, 의료, 노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 모든 국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끊임없이 유린되거나 뒤틀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그가 한국 사회를 진단한 이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촛불집회와 정권교체 이후 ‘유린되고 뒤틀린’ 것들에 대한 부분적 개선이나 시도가 이뤄졌지만, 자본과 권력의 논리는 본질의 측면에서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면을 채우는 건 여전히 ‘출생, 양육, 교육, 취직, 주택, 의료, 노년, 사망’ 문제다. 잇단 노동자의 죽음 같은 여러 사건·사고 원인을 돌이켜보면, 부와 경제성장, 효율과 비용절감이라는 이름의 탐욕이 드러난다. 이 탐욕은 경제학의 이름을 달고, 집약적으로, 대규모로 나타난다. 두드러지는 게 토건이다. 

최근 제2경춘국도 건설 논란이 불거졌다. 자라섬과 남이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대형 교량이 문제가 됐다.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선박 안전을 위협한다고 이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1시간 만에 주파하는 열차가 이미 운행 중이다. ‘주말 상습 정체 해소’용 도로라는데, 주말 차량을 유입하려 산을 깎고 강바닥에 교각을 박아 도로를 늘리려는 까닭을 납득하지 못한다. 

강원연구원은 경제효과를 강조한다. 이 연구원이 지난 2월 내놓은 ‘춘천 광역교통망의 완성-제2경춘국도와 외곽 도로망 정비’ 정책 자료를 보면, 생산 유발효과는 1조425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6384억원, 고용 유발효과는 1만3883명이다. 사회 간접적 편익도 1조6664억원으로 추산했다. 9000억원짜리 사업이 3조300억원의 경제효과를 낼 것이라고 계산했다. 제2경춘국도는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이다. 

정부는 ‘지역산업을 뒷받침할 도로·철도 등 인프라 확충’ 7개 사업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중 4개 사업의 경제효과가 언론 등에 나왔다. 석문산단은 ‘생산 유발효과’가 3조5000억원, 대구산업선은 2조2017억원, 울산외곽순환도로는 2조5906억원이다. 부산신항~김해 간 고속도로는 ‘경제 유발효과’ 1조4000억원, 새만금국제공항은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가 2조7046억원이다.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뺀 추정치다. 

4개 사업비는 4조6000억원. 토건에다 ‘신성장동력’이니 ‘한류’니 이름 붙은 사업이 투자 대비 서너 배의 ‘경제효과’를 불러온다면 한국은 돈이 발에 차이는 사회가 될 것이다.

40조원. 이명박 정부 초기 나온 4대강 사업 경제효과다. 어느 언론은 ‘강물 따라 돈이 흐른다’는 제목을 붙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이명박 정부에서 31조원을 들인 4대강 사업의 경제효과가 6조6000억원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맹렬하게 성장 논리에 매달린다. 거짓 경제효과로 점철된 탐욕의 경제학을 알면서도 속는다. 와중에 생태·노동·인간 존중은 밀려난다. ‘공정 채용법’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때문에 기업들 경영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는 보도가 버젓이 나온다. ‘경제성장’과 ‘기업발전’에 경도된 사회를 성찰하지 못하면 ‘아동 노동’을 정당화하는 시대로 역행하지 말란 법도 없다.

김종철과 ‘녹색평론’이 주장하는 바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세상이 그닥 나아지지 않거나 퇴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농사 같은 순환적 삶의 질서와 시민의회나 추첨 민주주의제 같은 급진적 민주주의, ‘공생공락의 가난’을 주장하는 김종철의 사상은 물질의 풍요와 성장 담론, 대의민주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회에서 무력해 보인다. 그 자신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파국보다 당장의 현실이 급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가 더 좋은 삶을 보장해준다는 시스템의 처방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지금 김종철이 강조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보겠다는 각오다.

‘급진적 삶의 전환’ 사상을 비현실적 이상론이라 폄훼할 일은 아니다. 핵폐기부터 화폐주권을 거쳐 자연권 헌법까지 김종철이 앞서 소개·주장한 대안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 이미 시도 중이거나 실현된 것들이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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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꽃들이

사방에서 지펴진다면

알전구처럼 밝혀준다면


그 길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섧디설운

이름 하나

기억 하나

돌아오겠지요.


노향림(19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동백나무들이 빗살처럼 촘촘하게 늘어선 숲길이 있다. 그 숲길을 걸으며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그이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시인은 그 숲길에서 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글이글하는 불과도 같은 붉은 동백꽃들이 피는 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동백꽃들이 알전구처럼 환하게 피어나면 시간의 미로 속으로 사라졌던 그이의 이름과 얼굴과 기억이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그리워하면 동백숲길은 우리의 잃어버린, 부서진 옛 시간을 되찾아주고 회복시켜줄 것이기에. 아주 잊히는 것은 없고, 그리워하면 저 먼 곳에서 다시 봄처럼 옛사랑의 기억은 돌아올 것이기에. 

최근에 새 시집을 펴낸 노향림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누가 그랬던가, 시의 씨앗을 사람들 마음 안에 다 틔워주는 일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시간 속에서 잊혀가고 소외된 시의 본적지로 나는 오늘밤도 푸른 편지를 쓰리”라고 적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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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식당으로 나를 찾아왔다. 고등학교 동창이라는데 당최 기억나지 않는 이였다. 그럴 땐 기억 못하는 사람이 일단 죄인이 되는 법. 게다가 손님을 맞는 식당 주인 입장까지 더해지면 영락없이 취조실에 갇힌 죄인 꼴이 된다. 아무리 얘기를 나눠봐도 개인적 추억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그다지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방증. 그러니 결코 죄를 지었다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어깨를 펴며 발뺌을 하려는 순간, 불쑥 질문 하나가 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너 아직도 단무지 좋아하냐? 

나 아직, 단무지, 좋아하냐고? 그러니까 이 질문은, 삼십년 전 내가 단무지를 아주 좋아했고, 그걸 알고 있을 만큼 나와 너는 가까운 사이였고, 또 그걸 증명할 만한 유별난 사건 같은 걸 증거로 쥐고 있다는 뜻?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단무지를 좋아했다고, 내가? 응, 무지하게, 내가 싸온 단무지 반찬 네가 다 먹었잖아. 내가? 그래, 분식집에 가면 또 어쨌게, 쫄면 한 그릇에 단무지를 열 번도 더 달라고 해서 먹었을 걸? 단무지 먹으려고 쫄면 시킨 사람처럼, 너 그래서 분식집 아줌마한테 쫓겨났잖아, 기억 안 나? 

이쯤 되면 취조가 아니라 고문이다. 반찬 빼앗아 먹은 거 미안하다고 사죄해야 할지. 나는 오래전 분식집 진상손님이었습니다 양심선언을 해야 할지. 내가 단무지를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인 데다가, 그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분식집 아줌마가 종종 눈을 흘기기도 했었으니, 기억은 안 나지만 기억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단무지는 단무지, 죄는 죄, 너를 기억 못하는 죄까지 뒤집어쓸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해 주었다. 

기억 안 나는데? 그리고 나 단무지 안 좋아해. 아니야 너 진짜 좋아했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 그냥 있으면 먹은 거겠지. 진짜 좋아했는데.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하고 헷갈린 거야, 나 단무지 별로야. 

그렇게 쐐기를 박고 돌아섰다. 짧은 승리감 뒤에 깊은 자괴감이 몰아쳤다. 아, 세 번씩이나. 사랑하는 이를 부정한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단무지는 아주 어릴 적 짝사랑의 맛 아니었던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카린에 빙초산을 들이 붓고 샛노란 물을 들였다 해도 맛있는, 어쩌면 그래서 더 맛있었는지도 모를 ‘닥꽝맛’ 몰래 훔쳐보던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면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내 등짝을 세게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다. 거짓말하면 혼난다, 찰싹. 바른대로 말해, 찰싹. 아, 맞다 거짓말하면 안되는데, 먹는 걸로 거짓말하면 진짜 혼나는데. 내 생애 가장 많이 맞은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쫀드기 때문이었다. 현란한 형광의 자태를 뽐내던, 날로도 먹고 연탄불에 구워도 먹고 가늘게 찢어도 먹는, 달짝지근한 맛에 쫀득쫀득한 식감에 찬란한 과일 향이며, 먹어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엄포까지, 불량식품의 대명사 쫀드기는 지혜의 열매, 금단의 열매, 유혹의 열매였다. 과자 사 먹어야 해, 쫀드기 같은 건 안돼. 어느 날 내 손에 50원짜리 동전과 함께 올려진 단서 조항. 물론 과자를 사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게에 도착했을 때, 나의 각오와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과자 한 봉지 값이면 쫀드기에 아폴로까지 먹을 수 있는데.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가.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데. 나라고 못 먹을 게 어디 있겠는가. 엄마가 일일이 확인할 것도 아니고. 그때 나는 정말 지혜롭고 똑똑한 아이였다.

물론 걸리면 끝장이었다. 거짓말 뒤엔 빗자루가 따라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애야 했다. 아껴 먹고 싶은 마음도, 이참에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참아야 했다. 나는 담벼락에 혼자 숨어 아무도 모르게 쫀드기와 아폴로를 먹어치웠다. 손가락에 달라붙은 것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쫀드기에서 침 발라 오려낸 코끼리만 아니었어도 완벽히 속일 수 있었다. 쫀드기 안 먹었어. 사실대로 말해, 주머니에 이건 뭔데? 형광 코끼리를 손에 쥔 엄마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인정하면 다시는 내 손에 동전은 쥐여지지 않을 테니까. 나는 끝까지 우겼다. 나도 몰라 그게 왜 거기 들어갔는지. 우기다보니 정말 쫀드기 같은 건 안 먹은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할수록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깟 쫀드기 하나 먹었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왜 나만 못 먹게 해. 그때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쫀드기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 쫀드기는 그냥 불량식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지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 등짝을 후려쳤다. 나는 그날 정말 많이 맞았다. 엄마도 나도 참 징하게 고집스러웠다. 

최근에 쫀드기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고백하자면 못 먹을 맛이었다. 아무리 추억의 맛이라지만 도대체 무얼 추억해야 할지 모를 맛이었다. 이걸 보호하자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거짓말을 했던가. 허망했다. 그런데 나는 또 무얼 위해 단무지를 부정한 걸까. 지금까지도 애정하는 단무지를. 내 모자란 기억력을 보호하기 위해? 기억에도 없는 이의 소상한 추억에 방어하기 위해? 그날 나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여전히 단무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그이에게 죄를 덮어씌웠다. 그깟 단무지의 추억으로 나를 옭아매려 하다니. 하지만 그리하여 단무지를 생각하면 그 애까지 생각나게 되었으니, 내 순정한 짝사랑의 맛은 그렇게 변질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천운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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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1일. ㄱ씨의 최초 장애등록일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88년 11월 장애인등록제가 전면 시행되었고 학교 교사에 의해 등록되었다. 2003년 2월28일. ㄴ씨가 지적장애가 무엇인지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장애인으로 등록한 날이다. 등록증 뒷면엔 보호자 전화번호가 적혔다. 보호자가 필요한 존재.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인식을 파악하게 하는 단서다. 1994년 6월26일. ㄷ씨는 장애인 등록 후 전화요금, 전기료 등 몇 개의 감면 혜택을 받았다. 걷기 어려운 장애가 있었지만 3급이기 때문에 2급까지 이용 가능한 장애인 콜택시를 탈 수 없었다. 등급에 따라 차등화된 서비스에 맞춘 삶, 자신으로 살기보다 제도가 구획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강요받는 것, 장애등급제가 만든 차별의 구조다. 무엇보다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은 실재하지만, 개인의 몫이었다. ‘의학적 장애인’ 개념을 강조한 장애등급제의 몰젠더성은 장애인 간의 차이를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2019년 7월1일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다. 

장애 여성 운동을 함께하는 동료인 이들은 평등할 수 없는 관계가 차별이라고 말한다. 관계란 둘 이상의 사람이 관련을 맺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이란 범주를 정책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질병과 손상에 대한 의학적 기준을 내세웠다. 사회와 장애가 어떤 구조적 관계 맺음 속에서 차별이 발생하는가? 질병과 손상을 가진 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어떠한가? 제도는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누락시켰다. 장애인을 잘 관리하고 보호하겠다는 시혜적 접근이 존재의 존엄함을 앞질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천5백여 명이 1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서 집회를 열고 장애인 복지제도의 전면 수정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마련을 촉구하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는 충분한 협의 없이 성급하게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했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제도가 개편되면 혜택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 발표와 다르게 서비스의 질이 더 떨어지고 장애 유형별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장애계는 광화문 농성장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5년간 투쟁했다. 그러나 개편된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의학적 기준에 의한 기능평가 방식이 유지되었다. 가짜 장애인이 세금을 축낸다는 복지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불신은 수혜자를 선별하는 기존의 틀을 정당화한다. 부족한 예산은 서비스 대상자를 엄격하게 가려내는 차별의 수단이 된다. 한국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6월 발표한 개편된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표에 의한 모의평가에 따르면 장애인의 생존권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도 삭감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짜라고 분노하며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다시 농성에 돌입한 이유다. 

변경된 제도가 ㄱ, ㄴ, ㄷ씨의 삶의 변화를 가져올까?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자신의 의지로 변화되어야 한다. 변경된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표가 이들의 의지와 욕구를 담아내기에 제한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애등급제와 개편된 종합조사표 모두 장애인 내의 차이를 지운다.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차별의 시작이다. 특히 등록제가 가진 몰젠더성은 장애 여성이 겪는 젠더권력 차이를 함몰시킨다. 다수의 장애 여성은 무수한 돌봄노동과 감정노동 등 재생산 노동을 도맡는다. 돌봄 수행자가 젊고, 장애가 없는 건강한 사람일 거란 사회의 믿음은 도전받아야 한다. 젠더, 나이, 장애 유형,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계급, 인종 등 장애인 간의 차이는 욕구와 필요를 드러내는 제도 속에서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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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 서초동에서 잠수교를 거쳐 서울역까지 행진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풍선이 들려 있었다. 몇 사람이나 알아보았을까. 그것은 개선 행렬이었다. 지난 30여년의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 1988년 11월부터 실시된 장애등급제가 마침내 폐지되었다. 이날 한 운동가는 한국 장애인 운동의 역사는 7월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7월1일은 그만큼 중요한 날이다.

하지만 그날의 행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애인을 보지는 못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무려 1842일의 농성도 불사했던 사람들인데 어깨를 들썩이기는커녕 토닥이는 말들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가 조금은 해낸 거야.’ 행진은 저녁 무렵 끝났다. 서울역 광장에서 몇몇은 승리를 자축하겠다며 소리를 질렀고 몇몇은 악대를 따라다니며 어설프게나마 춤을 추었다. 그러나 곧이어 모두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날 밤 사회보장위원회 건물 앞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요구하는 1박2일의 노숙 농성에 들어갈 참이었다. 경찰이 도로 한 편에 내어준 통로를 따라, 7월1일 이후에도 여전한 밤길을 전진하는 휠체어 행렬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7월1일이 7월1일 같지가 않았다.

그동안 장애인들에게는 6개의 등급이 있었다. 팔을 잃으면 1등급, 손가락을 잃으면 2등급, 앉지 못하면 1등급, 앉기는 하는데 10분을 못 버티면 2등급, 지능지수가 34 이하면 1등급, 49 이하면 2등급. 그런 식이었다. 장애인 개인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국가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장애인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팔다리는 있는지, 옷은 혼자서 갈아입는지, 말은 알아듣는지, 그저 눈금만을 기록해왔을 뿐이다. 장애인은 불편하지만 장애인 관리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었다.

이런 등급제를 폐지하는 데 천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요구의 핵심이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하기 때문이다. 저울대에 올린 고기마냥 등급을 나누지 말고 장애인 각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 그런데 등급제 폐지에 천재들이 개입한 것 같다. 등급 분류는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되었는데 ‘종합조사표’라고 하는 복잡한 점수표가 생겨났다.

종합조사표에 따라 장애인들은 저마다 수능점수 같은 점수를 받는다. 사회활동과 가구 환경도 고려하지만 각자의 장애에서 파생한 기능 제한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596점 만점에 532점). 이를테면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으면 24점을 받는다. 그러나 보고 듣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총점에서 36점이 깎인다. 공격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다시 8점이 깎이고, 약간이나마 주의력을 갖추었다면 20점 중에서 10점 정도는 사라진다. 

그런데 종일 누워 지내야 하는 최중증 지체장애인이라고 해도 현재의 서비스 등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인지행동에 문제가 없으면 특정 과목을 응시하지 않은 학생처럼 8개 항목 94점이 모두 날아간다. 거기에 보고 듣기까지 가능하면 36점이 추가로 사라진다. 이렇게 잃은 130점은 한 달 최대로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에서 120시간을 잃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월 120시간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다.

종합조사표를 만든 천재들은 6등급의 흉측한 막대그래프를 없앤 대신 개인별 점수를 이용해서 아름다운 정규분포 곡선을 얻었다. 서비스 총량은 별로 늘지 않았는데 왼쪽 지체장애인한테 빼낸 시간을 오른쪽 발달장애인한테 채워 넣으니 균형 잡힌 통계 곡선이 생겨났다. 장애등급제 폐지로 이제야 수학적으로 무언가 바로잡힌 세상이 도래한 건가.

그런데 등급제를 폐지하고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실시하라는 단순한 요구에 왜 이렇게 천재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당신에게 무슨 서비스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이런 물음 하나 던지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장애인의 손상을 등급으로 평가하는 대신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묻고 조사하고 개발하자는 게 그렇게 이상한 말인가. 예산 문제로 당장 시행이 어렵다면 일단 욕구와 필요를 조사하고 목표를 세워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역시 내가 바보인가.

하지만 세상엔 이런 나라도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시민이 활동서비스 지원을 신청하면 공무원이 당사자를 만나 상황을 확인한 뒤 서비스 제공량을 확정해준다. 발달장애인처럼 특별한 손상을 가진 시민들에게는 의사결정 조언, 야외활동 동행, 친구 서비스, 함께 머물러 주기 등등 별도의 열 가지 서비스가 지원된다. 인상적인 것은 달랑 두 장 자리 신청서다. 항목도 단순하다. 이름과 주소를 적고 필요한 서비스를 적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공무원이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내용을 확인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장애인에 관한 정규 분포 곡선 같은 건 없다. 누군가를 장애인으로 규정해서 통계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장애를 겪는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 서비스는 온갖 기능별 점수를 더한 뒤 종합 고득점자에게 제공되는 게 아니라 해당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공된다. 나는 바보라서 그런지 이런 게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로 보인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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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초병 근무지 무단이탈 사건은 ‘도 넘은 군 기강 해이’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14일 국방부 등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일 밤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초병이 근무지를 벗어난 뒤 복귀 중 경계병과 마주치자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사건 발생 9일 만에 해당 병사는 검거됐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장병에서 군 수뇌부까지 군 기강의 해이가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병사는 “음료수를 사러 자판기 있는 곳에 다녀오겠다”며 소총을 초소에 내려놓고 200m 떨어진 건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탄약창고 근처에서 경계병과 마주치자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했다. 경계를 서던 병사가 총기를 놔두고 근무지를 이탈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발생 장소가 해군의 지휘본부인 함대사령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군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병사에게 허위 자수를 종용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헌병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군 수사당국은 허위 자수 관련 강요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해군참모총장은 이 사실을 알고도 장관과 합참의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을 제보받아 폭로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합참의장이 (자신의) 전화를 받고서야 관련 내용을 알았다”고 했다. 군 보고체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목선을 해경정이 지난달 15일 예인해 가는 장면이다. 독자 제공

이번 사건은 심각한 군 기강 해이가 드러난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이 벌어진 지 채 한 달도 안돼 발생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전군에 ‘완벽한 대비태세’를 주문했다. 그러나 흐트러진 군 기강은 달라진 게 없다. 지난 12일에는 고성 해안 30m까지 북한의 목선이 올 때까지 군은 발견하지 못했다. 군 기강이 이 지경인데도 책임지는 군 수뇌부는 보이지 않는다.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철저한 조사와 책임추궁을 통해 문란해진 군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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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새 대표가 이끄는 정의당체제가 13일 출범했다. 2017년 7월 이정미 의원에게 대표직을 넘긴 이후 2년 만에 다시 당의 간판이 된 것이다. 심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내년 총선 승리로 60년 양당 기득권 정치를 종식하고 다원적 정당체제의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개혁경쟁을 넘어 집권경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기대와 희망이 섞인 당찬 포부다. 진보정치가 시대변화와 민심에 부응하고,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며 미래비전을 보여준다면 불가능한 꿈만도 아닐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신임대표가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탑에서 분향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뭐니뭐니해도 심 대표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는 내년 총선 승리다. 정의당은 현재 국회의원 6명인 미니 정당이다. 그도 지역구 의원은 둘뿐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소수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고 당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참신하고 역량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정책을 다듬어 시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진보정치의 가치를 힘 있게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제 개혁을 완수하는 것도 심 대표가 앞장서 풀어가야 할 숙제다. 심 대표는 “불공정한 선거제도를 바로잡아 민심이 살아 숨쉬는 국회, 국민주권주의를 온전히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존의 거대 정당이 품지 못하는 비정규직과 농민, 청년과 여성, 소외된 약자들을 생각하면 정의당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다. 앞으로 패스트트랙 공조를 유지하며 정치발전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서주길 바란다. 

아쉬운 건 ‘정의당 내 심상정·노회찬 이후를 끌고 갈 차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 대표는 고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진보정치의 황금시대를 만드는 게 소명”이라고 말해왔다. 이를 위해선 유능한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새로운 리더십으로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정의당이 할 일은 많다. 그래서 과감한 도전과 새로운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심 대표에 대한 기대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심 대표가 그 열망에 부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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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5일에 발생한 목선 귀순 이후 발생한 문제로 군심이 흔들리고 있다. 평생 군생활을 했으나 이번처럼 망측한 사건 처리와 이후 조치를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경계작전의 잘못보다 군수뇌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책임전가가 더 심각했다.

북한 목선이 속초항에 들어온 것은 6월15일 새벽이었다. 그날 아침 보고를 받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CCTV를 보면서 군의 경계태세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합참은 전비태세검열단을 보내 문제를 파악했다. 경계작전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기존의 장비로 목선을 식별하는 것이 곤란하며, 해경과 제1함대사, 육군 23사단 그리고 8군단과 직접 상황을 공유하는 체계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상적이라면 목선과 같은 작은 물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레이다 성능을 높이거나 레이다를 보고 해석하는 병사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지역 작전부대 간 서로 상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체계를 보완하면 된다. 문제를 분명하게 식별했기 때문에 사후조치만 잘하면, 다음에 유사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 것은 17일 국방부 언론 브리핑이었다. 사건 당일인 15일 상황판단과 달리 17일 브리핑에서 국방부는 군의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니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18일, 하루 만에 대통령이 군의 경계작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 그러자 19일, 국방부 장관은 군의 잘못이 없다던 말을 뒤집고, 군의 작전실패를 인정하면서 동해안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제8군단장을 보직 해임시키고 제23사단장과 해군 제1함대 사령관을 징계에 회부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계작전 실패가 아니라, 군 수뇌부가 자신들의 판단을 분명한 이유 없이 바꾸면서 신뢰를 상실했고 정무적 판단 잘못을 전방지휘관의 작전실패로 전가한 것이다. 경계작전 수행 간 문제는 분명히 있었고 현장에서 보완하고 고치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먼저 군수뇌부가 경계작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잘못되지 않았다고 사실을 덮으려 했으며, 전방 작전 지휘관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무능력과 무소신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려 한 것이다.  

상당수 장교들은, 군수뇌부가 17일에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다고 허위발표한 것은 청와대 최고 안보책임자와 교감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군은 최초부터 ‘탄도미사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청와대 안보실과 상황평가회의에서 그 판단이 바뀌었다고 한다. 청와대 안보최고책임자가 당시의 안보상황을 고려하여 ‘탄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번 17일 국방부의 입장이 갑자기 변한 것을 보면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추론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6월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이 예정되어 있었고, 남·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 이번 17일 군수뇌부 판단번복에 청와대 안보실 책임자가 개입했다면, 이는 두번이나 동일한 잘못을 한 것이다. 한번은 경험 부족이지만, 두번은 실력 부족이다.   

설사 청와대 안보실의 정무적 이유로 판단을 번복했다하더라도 그 최종책임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의 몫이다. 청와대의 요구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와대 안보실의 요구를 수용하는 순간, 모든 것은 군수뇌부의 책임이다. 군수뇌부가 청와대 안보실 뒤에 숨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군수뇌부는 자신들의 정무적 판단 잘못을 작전의 실패로 전가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과거 군수뇌부들 중 무능력하다고 비난을 받은 경우는 있었으나, 지금처럼 책임전가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군문에 들어설 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지휘관이 부하에게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군수뇌부는 군의 정신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자신을 지켜주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상관의 지시라고 할지라도 목숨 걸고 이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전방의 지휘관들도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는 군지휘체계의 최고정점인 대통령의 군통수권 기반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군인들은 능력이 부족한 상관은 용납해도, 신뢰를 상실한 상관에게는 복종하지 않는다.

<한설 |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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