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71주년 제헌절이다. 제헌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냥 평범한 날이다. 경제 불황으로 일상이 힘든 사람들에게 헌법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주요 언론도 연일 경제성장률과 고용 문제만을 강조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헬조선’의 현실은 상당 부분 정치의 문제, 특히 자유주의를 제어할 공화주의의 실종에 기인한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식민의 치욕,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기적의 역사를 썼다. 특히 시장경제가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 최빈국을 11대 경제 강국에 올려놓았고, 50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로서 3만달러 이상의 국민소득을 갖는 3050클럽에도 7번째로 가입했다. 평범한 국민 개개인 모두의 힘과 희생으로 이룩한 성취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부유한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는 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까? 사회·경제적 양극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신뢰와 공동체의 붕괴로 각자도생하는 현실 속에 국가의 존재는 너무 멀다. 더욱이 디지털 혁신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주도하는 미래는 우리가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시장경제는 미래를 향해 바쁘게 나아가지만 우리를 태우고 가야 할 정치와 사회는 그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꾸려갈 희망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재분배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지난 35년간 절대적 빈곤 인구는 줄고 신흥국과 선진국 간 경제적 격차도 축소되었지만, 국가 내 불평등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피케티 교수는 정치·이념적 대립 구도가 다차원적으로 변화된 것에 주목한다. 이것은 공화주의의 실종으로 설명된다. 어떤 가치를 중시할 것인지 합의를 이루고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바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구성원을 결속시키는 공화의 상실은 신자유주의의 발흥으로 연결되었다. 정치의 무능이 비단 분배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화주의의 복원은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공화의 정신은 제헌헌법 이래 헌법의 요체인 민주공화국에 포함되어 있고, 민주공화국은 임시의정원이 1919년 4월11일 채택한 임시헌장 제1조에서 유래한다. 공화국은 ‘공적인 것’이라는 라틴어 레스 퍼블리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협의로는 비군주국을 의미하지만, 광의로는 공동체의 요청에 따라 공공복리에 봉사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공화주의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공동체주의와는 다르다. 공공성과 법치주의, 공감과 연대의 가치, 책임윤리를 강조한다. 물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공공성 회복으로의 가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토론을 통한 일련의 사회적 합의, 그를 위한 민주시민 역량 강화와 협치·대화의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의식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대의식을 공유하게 될 때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의 기적을 넘는 새로운 기적을 만들 것이다. 100년 전 민국(民國)을 외치면서 민주공화제를 헌장에 명시한 선조들의 열정이 다시 우리 평범한 개개인의 마음에 살아나는 제헌절을 꿈꾼다.

<하정철 |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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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로 강연을 하러 가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고등학생들은 궁금해도 선뜻 꺼내지 못하는 질문. 이 책 팔아서 얼마 벌어요? 조금 젠체하고 싶은 학생은 이리 묻기도 한다. 연봉이 얼마예요? 가게에서 주인에게 물건값을 묻듯 학생들은 태연하다. 상품의 가치가 가격으로 매겨지듯 사람의 가치도 돈으로 가늠하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의 호기심은 당연하다. 학생의 질문이 무례하다 생각해 당황하며 질문한 제자를 힐긋대고, 강연자의 눈치를 살피는 선생님들도 사실은 궁금할 것이다. 책을 써서 먹고살 만한 것인가?

내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책을 팔아서 먹고살 수도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책의 뒷면에 표기된 책값을 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말한다. 여러분이 서점에서 제 책을 한 권 사면 책값의 10%가 제 통장에 들어온다. 물론 세금을 빼고. 그러니까 작가가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려면 얼마나 책이 팔려야 할지 계산해 보라. 학생들은 수군대며 얼마나 팔려야 백 만원이 되는지 따져보다가 실망한 얼굴로 말한다. 왜 10%밖에 못 받는가? 아마 그들의 실망은 자신들이 일 년에 책을 몇 권이나 사는지 뻔히 알기 때문에 더 클 것이다. 그래서 10%를 고작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나는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가는지 설명하는데, 엊그제 문득 내년 최저임금이 터무니없이 적게 인상된 것이 생각났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최저임금에 적용되는 이들은 없는 것일까. 인쇄소에서 제본 공장에서 일하며, 혹은 책을 운송하며 1시간에 만 원도 못 받는 이들이 있다면, 정말 그들이 생계도 되지 않는 돈을 받아 우리 경제는 안정이 되는가. 책값은 크게 인상되지 않고, 팔리지도 않고 그래서 저작권인 인세 10%도 부담되고, 매절이라 해서 한 번에 지급하는 원고료는 부단히 깎고 있는 출판업계도 을의 희생으로 책을 더 낼 수 있는가. 하지만 노동력을 팔고도 기본적인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책은 어찌 사볼 수 있을까. 책을 펴낸 갑인 나는 책을 사서 봐야 하는 을의 생존이 중요하다. 을이 살아야 갑이 산다는 것은 책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갑은 자꾸 을만 을러댄다. 을이 참아야 우리가 다 잘산다고.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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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 야, 너희집 아이는 특목고, 자사고 보내놓고 왜 다른 집 애들은 못 가게 해? 조선일보 사설 보니까 ‘배가 아파서’라던데? 다른 사람들이 못 올라오게 사다리 걷어차는 거 아냐? 

읍읍 : 사다리 안 없어졌는데요? 서울대 3000명, 연고대 8000명, 의대 3000명 입학정원 그대로인데요? 사다리의 구조나 배치가 바뀌는 거지 사다리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만일 자사고, 특목고 다 없어지면 사다리 올라가는 비용은 줄어요. 대입 사교육비는 그대로라 할지라도 고입 사교육비는 없어지니까(사다리 불변의 법칙).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파 : 어쨌든 자사고, 특목고 반대하면 자기 아이는 보내지 말아야지! 사람이 도덕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여기서는 이랬다 저기서는 저랬다 하니까 사람들이 진정성을 의심하는 거지, 이 ‘강남 좌파’야. 

읍읍 : 제가 언제 자사고, 특목고가 부도덕하니까 없애자고 했어요? 그런 학교가 많이 있는 고등학교 생태계가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니까 바꾸자는 거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라니까요(도덕적 기준과 기능적 기준의 구분).

좌파 : 아항~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기능적 문제라고? 참 편리한 사고방식 갖고 계시네, 이 ‘강남 좌파’야. 너 학벌주의 반대한다면서? 그런데 네 아이는 학벌을 위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잖아!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일관성 없는 거 맞네! 

읍읍 : 아니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간 게 왜 학벌주의지? 

좌파 : 어라 ‘좋은’ 대학? 너 이제 보니 학벌주의자 맞구나. 서울대를 최고로 치는 학벌병 환자!

읍읍 : 학생 1인당 투입하는 교육비 통계를 보세요. 서울대는 4334만원, 연세대는 3024만원, 한양대는 2138만원, 중앙대는 1504만원. 이뿐만 아니라 학생 대 교수 비율도 서울대-연고대-서성한-중경외시 서열대로예요. 그러니까 서울대가 제일 ‘좋은’ 대학이잖아요(대학 서열의 물질적 근거). 

좌파 : 그래도 서울대 졸업하면 사람들이 알아주잖아! 실제 실력보다 프리미엄 붙고. 선후배 동문 끼리끼리 뭉쳐서 패악질하고. 

읍읍 : 그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면 패악질 안 하면 되잖아요? 

우파 : 네 논리대로면 부동산 투기한 고위공직자들도 다 봐줘야겠네? 법은 지키면서 투기했으니까 봐달라는 누구누구하고 네가 뭐가 달라? 

읍읍 : 내가 언제 법만 지키면 된다고 했나?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땅 투기나 주택 투기가 부도덕하냐고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할걸요. 그러니까 청문회 때 문제가 되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한테 자사고, 특목고나 명문대 가려고 노력하는 게 부도덕하냐고 물어보면, 다들 아니라고 할걸요(대중의 도덕 관념에서 부동산과 교육의 차이).

좌파 : 사람들은 1점 차이로 갈라서 합격·불합격을 나누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교육적으로 전혀 타당성이 없어! 능력주의는 배제와 차별을 일으키는 기제라고. 

읍읍 : 아니 변별 때문에 경쟁이 생기나? 경쟁은 ‘변별’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격차’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대학들 사이에 격차가 크니까 그만큼 경쟁이 격렬해지는 거죠. 또 그래서 날카로운 변별력이 요구되는 거고(경쟁의 원인에 대한 이해).

좌파 : 천박한 능력주의자 같으니라고. 시험으로 능력 측정해서 사람들을 갈라놓는 차별주의자! 

우파 : 아니 이 무식한 평등주의자야, 능력주의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엽관제(spoils system)야. 자기하고 친하거나 돈 찔러준 사람 막 자리에 앉히는 거. 능력주의가 얼마나 공정하고 좋은 건데? 

읍읍 :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능력 측정의 잣대가 별로 합당하지 않다든가, 선발의 결과 나타나는 격차가 너무 커서 문제인 거죠. 공무원 시험 문항들이 공무원으로서의 소양을 측정하는 데 적합하지 않아 보여요. 공무원 되려고 몰리는 이유는 되고 못 되고에 따른 격차가 크기 때문인 거고. 이런 것들을 고쳐야지요. 이런 말 하니까 꼭 내가 우파 같네(시험 및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의 문제점). 

우파 : 우파는 무슨 우파? 격차를 줄이자고? 이게 줄어?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거는 자연법칙이고 인간 본성이야,

좌파 : 무슨 소리? 차이가 차별을 일으키는 거야, 차별을 막으려면 차이를 일으키는 행위에 동참해서는 안돼. 

읍읍 : 그러면 차별을 일으키지 않는 차이는 어디부터인가요? 

좌파 : 하여튼 서울대는 안돼. 최고 학벌의 상징이잖아. 

읍읍 : 그러면 연고대는? 

좌파 : 연고대도… 서성한도 곤란해!

읍읍 : 그럼 중경외시? 동건홍숙?… 아니면 혹시… 지잡 읍읍?

<이범 |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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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이 갑자기 달라졌음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흔히 ‘표변(豹變)했다’고 한다. 이 말은 본디 표범이 가을에 털갈이하는 것처럼 허물을 고쳐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좋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원 출처인 주역 ‘혁괘(革卦)’에서는 ‘혁면(革面)’과 대비되어 사용되었다. 겉 표정만 바꾸는 혁면과 달리 표변은 전면적인 변혁을 뜻한다. 주희의 주석에 의하면 이 둘은 모두 ‘대인호변(大人虎變)’의 결과다. 통치자가 바르고 알맞은 도리로 개혁을 단행하면 천하의 모든 사리가 호랑이 무늬처럼 선명하고 아름답게 드러난다. 그 영향으로 선량한 이들은 온전히 교화되고 이기적인 이들조차 적어도 겉으로는 교화를 좇는 사회가 된다는 맥락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주역의 순서상 혁괘는 정괘(井卦)의 다음에 온다. 우물은 그대로 두면 더러워지고 수시로 바꿔야 청결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혁괘로 이은 것이라고 전한다. 혁괘는 연못 아래에 불이 있는 형상이다. 물은 불을 사그라들게 하고 불은 물을 말려 버리므로 서로 치명적이다. 게다가 위로 치솟는 불이 아래에 있고 아래로 흐르는 물이 위에 있으므로 둘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서로가 서로를 변혁시키지 않을 수 없으니 갈등과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이 바름을 지키는 꼿꼿함이다. 혁신은 도처에서 강하게 버티는 관성들을 하나하나 누그러뜨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한 치라도 바름이 흐트러지거나 때가 차기 전에 성급하게 꺾으려 들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된다.

혁신을 말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술의 혁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술의 혁신이 다시 제도와 생활의 혁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변화의 속도가 높고 폭이 클수록 혁신의 요구도 거세진다. 정치권에서도 역시 언제부턴가 혁신이 화두다. 정부는 창업과 융·복합의 혁신을 강조하며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걸었고 엊그제 당대표에 오른 이는 문화혁신을 키워드의 하나로 삼았다. 공천혁신으로 살 길을 찾는 당도 있다. 그러나 어느 층위에서 말하든 간에, 혁신은 본래 위험하다.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내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신중함, 호랑이 무늬처럼 선명한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바름이 있어야 후회가 없다는 혁괘의 경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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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선거·노동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 공안부의 명칭이 56년 만에 ‘공공수사부’로 바뀐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공안 정세분석’ 등의 업무는 폐지된다. 지난해 6월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공안 개념을 재정립하라고 권고한 내용을 일부 반영한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체제를 뒷받침하는 전위대 노릇을 했던 공안부 개혁에 시동이 걸린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노동·선거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개혁위 권고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16일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대검찰청 공안1·2·3과는 업무특성에 따라 각각 공안수사지원·선거수사지원·노동수사지원과로, 대검 공안기획관은 공공수사정책관으로 변경된다. 대검과 일선 검찰청에서는 앞으로 ‘공안·노동 정세조사 업무’를 하지 않고, ‘학원, 사회·종교단체 관련 사건’ 전담도 폐지된다. ‘공안 사건’도 ‘공공수사 사건’으로 부르게 된다. 

1963년 서울지검에 설치되며 등장한 공안부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보다 정권안보와 체제 유지에 기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작곡가 윤이상을 간첩으로 몰았던 동백림 사건에서부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과거사 조사 및 재심 결과 ‘조작’으로 드러난 사건들은 모두 공안부의 ‘작품’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인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공안정책을 내세우며 조직을 축소했으나 공안검찰의 환골탈태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공안검찰을 내세워 ‘공안몰이’에 나섰다.

개혁위는 검찰이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은 노동 사건을 공안 시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노동 사건을 공안 영역에서 분리하라고 했다. 검찰도 이 권고대로 노동 사건의 형사부 이관을 검토해왔다. 하지만 공안부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 사건을 타 부서로 넘길 경우 공안부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왔다고 한다. 공안검찰 개혁이 검사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밀린 형국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명칭을 바꾼 공안부가 오명을 씻고 거듭나는지 지켜보려 한다. 추후 노동 사건의 형사부 이관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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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해버렸다. 200m와 400m, 1600m 계주까지 열다섯 살 양예빈 선수가 달리는 모습을 편집한 4분27초 분량의 유튜브 동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는지 모른다. 머리카락을 야무지게 땋아 묶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내달리는 모습을 보면 내가 바람을 가르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내 인생에 그런 달리기의 기억은 없다. 양 선수가 지난 5월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200m 1위를 차지하며 세운 기록은 25초20. 내 생애 최고기록은 30여년 전 대학입학을 위해 치른 체력장에서 100m를 20초에 달린 것이다. 나는 체육시간이면 주눅 드는 아이였고, 피구든 발야구든 팀을 갈라 게임이라도 할 때면 속한 팀에 민폐가 되는 존재였다. 흔한 ‘운동 못하는 여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양예빈이 지난 5월 전국소년체전 200m에서 1위로 결승선을 골인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대한육상연맹 제공

그런 내가 달리기하는 여자, 축구하는 여자 때문에 설렌다. 지난 7일 끝난 2019년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 여자 축구팀의 미드필더이자 공격수 메간 라피노. 월드컵 출전만 세 번째인 서른 네 살의 그는 이번 대회에서 여섯 골을 넣어 득점왕이 됐다. 프랑스와 8강전을 치르며 골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빠르고 낮게 차 프랑스팀 수비수들과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관통하고 골망을 흔든 프리킥은 영리하고 날카로웠다. 

양예빈과 라피노를 보던 즈음, 나는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베트남 출신 아내의 동영상도 보았다. 양예빈, 라피노와 함께 달리며 숨차던 내 몸은, 베트남 아내가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할 때도 똑같이 떨리고, 숨막히고, 몸서리쳤다. 소리 질러요, 누가 좀 와 줘요,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아우성들이 내 안에서 들끓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 분노 때문에 거칠 것 없이 내닫던 두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전시회에 가면 절반은 양화, 절반은 음화로 표현된 여성의 얼굴 위에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말이 오려 붙여진 그의 기념비적인 포스터와 맞닥뜨릴 수 있다. 1989년 미국 워싱턴에서 있었던 여성의 낙태권리 회복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크루거가 만든 이 포스터의 명제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땅에서 다채롭게 변주된다. 

혼자 사는 여성들은 자신의 거처를 들고나는 일조차 두렵다. 언제 누가 내 집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엿볼지, 내 뒤를 따라 들어와 덮칠지 불안하게 주위를 살펴야 한다. 대중 앞에 얼굴을 내놓고 사는 지상파 방송의 남성 앵커도 지하철역에서 여성의 몸을 불법촬영하는 나라에서는 관음증으로부터의 안전지대가 없다. 여성용 공공화장실 문에 달린 옷걸이의 작은 구멍마다 휴지가 꼭꼭 메워진 풍경은 이 관음증에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수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 243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85명이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은 여전히 피해자가 원치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의 영역에 있다.   

여성이 몸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과 폭력 앞에 노출되는 이유가 되는 세상에 살다보면 여성은 그것이 마치 본성인 양 자신의 몸과 관련된 일들에 움츠러들게 된다. 맞받아쳐야 하는 순간에 얼어붙는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의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놀고 즐기는 능력이 ‘사내다움’으로 칭찬받고 장려되는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운동을 못해도, 자신을 방어하는 힘을 기르지 않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다. 

여성에 폭력적인 사회구조와 법, 제도를 바꾸는 것은 더 말할 필요 없이 지속해야 할 일이다. 개인이 신체적으로 약하든 강하든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지 못하는 사회는 야만의 정글일 뿐이지 않은가. 그와 더불어 여성의 몸에 대한 서사도 다르게 쓰여야 한다. 어린이집부터 할머니가 될 때까지 튼튼한 몸, 역동하는 몸이 아름다운 여성의 몸으로 교육되고 격려되어야 한다. 달리는 양예빈과 라피노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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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한 여야 3당의 협상이 좀처럼 타결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과 여타 법안들을 처리하자는 입장이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정경두 국방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표결을 추경 처리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한국당은 그간 패스트트랙 사과와 철회를 요구하며 국회를 올스톱시킨 채 장외를 맴돌았다. 국회 정상화 협상에선 이견이 좁혀질 때마다 정치개혁특위 재구성, 경제청문회 개최, 북한 목선 국정조사 등 갖가지 조건을 추가로 내놓으며 국회 등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지각국회에서 난데없이 국방장관 해임안을 또 들고나온 것이다. 정치는 협상이라지만, 추경을 볼모로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를 부르는 행태에 어지럼증이 느껴질 정도다. 도대체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추경안과 국방장관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국방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국방장관 해임안에 대해 “군 내부 기강의 문제는 해당 부대 지휘관이 책임지고 개선할 일이지, 정부의 안보정책·대북정책 문제로 확대시켜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이어 “안보가 무너졌다고 국방장관이 책임지라는 건 과도한 정치공세”라고 했다. 그의 지적이 옳다. 한국당은 정부·여당을 몰아세우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할 것이란 정치적 계산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나, 야당의 정치공세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지금 나라 현실이 위기 상황이라는 건 모두 잘 알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고, 대외 경제여건도 악화일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투자와 소비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추경은 지난 4월25일 국회에 제출된 이후 석 달이 다 되도록 묶여 있다. 5월에 처리돼야 경제성장률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는데, 6월을 넘기고 이젠 7월에도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이번 추경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 3000억원도 긴급 편성됐다. 민생·재해 등 다른 예산도 급하지 않은 게 없다. 그런 추경을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하는 건 국회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7일은 제71주년 제헌절이다. 70년 전 제헌의원들은 새 조국을 만든다는 열정으로 1년 365일 중 320일 이상을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지금 국회는 문을 여는 게 뉴스가 되는 판이다. 누구보다 법치를 지켜야 할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조차 쉽게 어기는 일도 허다하다.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정치인이 조롱거리가 되고,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해 제헌절을 맞는 심정은 더욱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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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겨울이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그는 언론계 입사 선배였다. 이후 우리는 몇 차례 마주쳤다. 미소 지으며 안부를 묻고 곧 헤어지는 사이였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표백>의 작가 이름이 장강명이라 했을 때, ‘그 장강명?’ 하는 생각이었다. 그가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신문기자는 취재 결과를 어떻게든 글로 표현해내는 직업이라, 많은 기자들이 소설 쓰기에 도전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직업 세계에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릴만큼 성공한 이는 매우 드물다.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은 예외적 사례다. 장강명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그가 계속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의심한 것도 사실이다. 

장강명 작가. 이상훈 선임기자

그런데 놀랍게도 장강명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그는 다산의 작가가 됐다. 2015년에는 장편만 세 편을 펴냈다. 그중 많은 작품들이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판매도 잘됐다. 이른바 ‘헬조선’ 담론과 맞물린 <한국이 싫어서>나 인터넷 여론 조작을 그린 <댓글부대>는 문학계를 넘어 사회적 관심까지 받았다. 

장강명이 가장 최근에 낸 <산 자들>(민음사)은 ‘2010년대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주제로 한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산 자들>에는 업무 태도를 두고 갈등을 겪는 아르바이트생과 중간 관리자, 철거 용역에 맞서 버티는 철거민들, 한 동네에 자리 잡고 경쟁하는 세 빵집, 급식비리가 벌어진 고등학교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들이 실렸다. 언론에서도 종종 다루는 소재들이다. 

‘산 자들’이란 표제를 따온 ‘공장 밖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 사건을 암시한다. 잘 팔리지 않던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가 세계경제의 침체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외국인이 회사를 샀다가 다시 내놓으면서 직원들의 고용 유지 방안을 두고 이해가 갈린다. 노조, 경영진, 법원은 각기 다른 숫자로 회생계획 혹은 해고계획을 짠다. 해고 위기에 놓인 노조원들은 공장 점거에 들어간다. ‘해고는 살인’이었으므로 해고자는 ‘죽은 자’, 해고되지 않은 자는 ‘산 자’였다. 

장강명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두루 전한다. 회사를 살리라는 채권자와 직원의 요구에 포박된 ‘관리인 사장’, 총고용 보장이라는 구호에 붙잡힌 노조 위원장의 입장을 병치한다. 악에 받친 죽은 자들과 울부짖는 산 자들이 나란히 등장한다. ‘같이 살자’고 하는데, 같이 사는 방법은 저마다 다른 풍경을 30쪽 남짓한 단편 속에 그려낸다. 

간결하고 명쾌한 언어는 많은 경우 저널리즘의 장점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들춰내고 권력의 부패를 드러내는 데는 단순하지만 강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언어들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담아내는 건 아니다. 직진하는 언론은 종종 산 자와 죽은 자의 모호한 경계를 담아내는 데 실패한다. 우리 삶과 사회의 많은 지대가 사실은 회색이다. 그곳에선 선과 악,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다. 장강명은 기자가 아닌 소설가의 언어로, 단편적인 기사로는 알 수 없었던 사태의 내막을 더듬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복직한 김득중 노조지부장의 인터뷰에서 의외로 감성을 자극한 대목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모인 날의 묘사였다. 마지막 복직자들이 회사에 모여 근로계약서를 쓰고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기업노조 위원장과 간부들이 와서 밥값을 내줬다. 파업이 끝나고 구치소 독방에 있던 김득중은 ‘산 자들’의 이름을 적어내려가며 분노할 정도였으나, 이제 다시 그들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동료가 됐다. 사측의 90도 인사와 함께 ‘을들의 승리’로 기억되는 남양유업 대리점주들 싸움의 끝은 씁쓸했다. 사측이 내놓은 30억원의 ‘상생 기금’을 점주들은 투쟁 기여도에 따라 나눠가졌다. 남양유업을 넘어 모든 을들의 투쟁기금에 ‘상생기금’을 쓰려던 이상적인 이들은 대리점주 모임에서 쫓겨났다.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남양유업 갑질 사태가 한창일 때는 보이지 않던 이면들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개를 편다. 

때로 좋은 기사는 문학의 영역을 넘본다. 때로 좋은 문학은 기사처럼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가격한다. 거짓을 말하는 이를 두고 ‘소설 쓴다’고 비난하곤 하지만, 지어낸 이야기라고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기자였다가 소설가가 된 장강명은 경직된 저널리즘이 가닿지 못한 사회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기자에게도 가끔은 소설가의 자질이 필요하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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