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망언으로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았던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18일 최고위원직으로 다시 돌아온다. 김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 비판 여론이 심상치 않자 한국당은 그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다. 징계 직후 당 지도부는 김 의원의 최고위원직이 박탈되는지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그런 논의는 없었다. 박맹우 사무총장은 “당헌·당규상 당원권 정지자가 당원권을 회복했을 경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당의 부담이 적은 방향으로 정치적 결단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5·18 망언자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최고위원에 복귀시키는 게 ‘정치적 결단’이란 것이다. 시민들은 한국당 아침 회의 때마다 최고위원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망언을 떠올리고, 망언을 감싼 한국당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최고위원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은 “5·18은 폭동”이라고 한 이종명 의원도 당에서 제명했지만, 징계를 확정할 의원총회를 이제껏 열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언제 열릴지 기약할 수 없다. 당 주변에선 사실상 제명이 무효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김진태 의원은 ‘경고’라는 솜방망이 징계로 일찌감치 마무리됐다. ‘5·18 망언’ 의원 3명이 모두 징계 전과 다름없는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희생자와 유족, 광주시민들만 깊은 상처를 입고, 가해자들은 멀쩡한 격이 됐다. 이들의 망언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죽음으로 항거해 얻어낸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한바탕 ‘징계쇼’로 면죄부를 준 한국당은 스스로 한통속임을 보여준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니 한국당이 열 번, 백 번 사과한다 해도 진정성 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당의 막말은 5·18 망언뿐만이 아니다. 엊그제 다른 최고위원은 누리꾼 댓글을 인용해 “세월호 한 척 가지고 이긴 문재인 대통령이 어찌 보면 이순신 장군보다 더 낫다”고 했다. 인용할 게 따로 있지, 대통령을 깎아내리겠다고 300명 넘는 인명이 숨진 국민적 참사를 끌어다 옮기는 몰상식과 비정함에 말문이 막힌다. 유독 한국당에 막말이 끊이지 않는 건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지도부 책임이 크다. 그렇다면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막말 정치인을 기억해 두었다가 내년 총선에서 심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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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어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될 학교를 포함한 일반고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9일 서울지역 자사고 8개 학교에 대해 지정취소 결정을 내린 지 1주일여 만이다. 교육부는 지정취소된 자사고에 대해 이달 안에 재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서울교육청이 자사고 폐지 최종 확정에 앞서 일반고 전환 자사고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만큼 교육청의 고교교육 정상화 의지가 확고함을 방증한다.

서울교육청의 일반고 지원 방향은 재정 확대와 교육과정 다양화로 모아진다. 서울교육청과 교육부는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에 20억원을 지원한다. 교육청은 기존 일반고처럼 ‘일반고 전환 자사고’에 매년 8000만~1억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교육과정 다양화를 위해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는 고교학점제선도학교나 교과중점학교 등을 지정받을 수 있다. 수강 학생이 적거나 교사 수급이 어려운 소인수 과목에는 강사비를 지원받고, 기존 일반고와 네트워크로 상생할 수 있도록 맞춤형 프로그램도 제공받을 수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주장하며 일반고 종합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교육청의 지원방안은 고교교육을 일반고 중심으로 정상화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당장은 자사고 지정취소 학교가 일반고로 순조롭게 자리 잡도록 지원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전체 일반고를 종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담화문을 내 고교교육의 방향으로 평등교육, 학생 맞춤형교육, 학교별 특색교육을 제시했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과정 다양화와 특성화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앞으로의 과제다.

도입 20년이 된 자사고는 사실상 시효를 다했다. 설립 취지인 다양성교육, 특성화교육은 사라지고 입시전문기관으로 전락했다. 자사고 폐지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에 따라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확산추세다. 올 들어 자사고 4곳이 재정상 이유를 들어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대세다. 이제 일반고를 중심으로 고교체제를 개편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조희연 교육감은 고교체계 개선을 위해 자사고의 법적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개정과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위한 국민적 공론화를 제안했다. 관련기관과 부처가 적극 검토할 사항이다. 서울교육청의 일반고 종합지원 대책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체제 개편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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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은 서핑의 새로운 성지다. 수도권에서의 접근이 용이하고, 초보자와 고수 모두에게 적합한 파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니아의 문화였던 서핑이 양양이 발견된 후 새로운 해양문화가 됐다. 양양 서핑의 중심지는 죽도해변이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곳은 몇 년 사이 렌털숍과 스쿨, 아기자기한 카페와 펍으로 가득한 ‘힙 플레이스’가 됐다. 맛집이나 술집 같은 유흥업에 의해 뜬 동네와 문화나 예술로 인해 발전하는 동네의 차이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기록하려는 자의 유무다. 양양은 후자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몰려 서핑을 즐기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죽도해변에서 인구해변으로 넘어가다보면 검은색 3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띄는 로고가 있다. WSB 팜 서프 매거진(WSB Farm Surf Magazine: 이하 WSB). 면사무소와 파출소가 있는, 나름 지역의 중심지지만 ‘매거진’이라는 명칭이 낯선 게 사실이다. WSB를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서핑 플랫폼회사다. 2016년과 이듬해 여름마다 2권의 무크지를 발간했고 서핑을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참가한 콤필레이션 앨범 <파도타러 가는 7번 국도>를 제작했다. 이 ‘잡지사’의 핵심 인력은 두 명, 한동훈 대표와 장래홍 편집장이다. 서핑대회에서 만난 둘은 본래 타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의기투합하여 서핑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하고 2013년 양양으로 내려와 사무실을 차렸다. 때마침 서핑이 곧 붐을 타기 시작했다. 서핑을 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그들을 가르치는 숍과 스쿨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말하자면 문화가 움튼 것이다. 하지만 서핑을 다루는 전문지도 없고, 서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매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는 유행은 기억으로만 남는 법. 그래서 무크지를 만들었다. 가이드북이자 서핑문화의 기록지다. 국내외의 서핑 스폿, 서핑에 목숨을 건 이들의 인터뷰, 그리고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커버하는 서핑 가이드 등 서핑과 관련된 거의 모든 콘텐츠가 담겨 있다. 한 대표와 장 편집장을 포함, 공식 스태프는 네 명에 불과한데 사진, 필자, 일러스트, 번역까지 참여한 인원은 웬만한 메이저 잡지에 뒤지지 않는다. 그만큼 서퍼들의 커뮤니티가 탄탄하다는 증거다. 

무크지와 음반 같은 아날로그 매체만 낸 게 아니다. WSB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운영하는 동명의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앱) 때문이다. 인터뷰, 스폿 소개 등이 있는 ‘서프 TV’ ‘스폿 가이드’ ‘서핑 레슨’ 등 다양한 서핑 콘텐츠를 동영상으로 제공하는 이 앱의 핵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고 있는 라이브 웹캠이다. 국내 해변 23곳에 HD 웹카메라를 설치하고 파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한다. “타지에서 살고 있는 서퍼들은 현지의 지인들을 통해서만 서핑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파도가 좋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낚시’인 경우도 생긴다. 지인이 없으면 기상청 예보만 보고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 예보에 파도 정보는 없다.” 장 편집장의 말이다. 이 웹캠은 보다 정확한 서핑을 가능케 했다. 당일로 서핑을 즐기는 경우 출발 전 아예 어느 스폿의 파도가 좋은지 확인한 후 행선지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 기상 스타트업과 제휴, 스폿마다 파도차트를 제공한다. 일출과 일몰 시간은 물론이고, 시간대별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 초당 파도의 높이, 물때까지 서핑에 필요한 꼼꼼한 정보를 제공한다. 파도는 사람의 뜻대로 만들 수 없지만, WSB를 통해 최소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서핑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은 평일에도 늘 우리 홈페이지를 띄워놓고 파도 치는 모습을 바라본다고 하더라. 꼭 서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ASMR처럼 활용한다고 하더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폭풍이 몰아치든, 사무실에서건 고속도로에서건 WSB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바다에 데려다 놓는다. 서핑문화를 모으고 엮어 지금을 기록하고, 기술을 활용하여 미래를 바꾼다. 몇 년 사이 죽도해변의 땅값은 수직상승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가 밀려온다. 하지만 WSB는 ‘문화와 기술’이 교차하는 또 다른 파도를 만들고 있다. 이 파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새로운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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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 여행 다큐에 몇 차례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멕시코에 가서는 열기구를 탔다. 이전에 터키 파묵칼레에서 열기구를 한번 타보기도 했는데,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한마디로 ‘째진다’. 매사추세츠에 사는 작가 댄 펜웰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88가지를 꼽는다. “댄스 강좌에 등록하라. 매일 8잔의 물을 마셔라. 헌책방에서 한나절을 보내라. 이웃을 위해 과자를 구워라. 단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꽃을 보내라. 한 가지 멋진 마술을 익혀라.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카드를 써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카메라를 지니고 다녀라.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라. 혼자 여행을 떠나라. 악기를 하나 배워라. 유머집을 한권 사서 외워라. 아이스크림 한통을 혼자 다 먹어라.” 뭐 이런 내용들. 그 가운데 “열기구를 타라!”는 순위도 있다. 다음은 열기구 조종사의 기도문. 어딘가 열기구 여행사 벽면에 적힌 글이란다. “바람이 그대를 부드럽게 반겨 주기를. 태양은 그대를 따듯한 손길로 축복해 주기를. 신이시여! 저 하늘 높이 또 안전하게 비행하도록 돕고, 다시 사랑스러운 대지의 품으로 되돌려 주시기를.” 


동네 할머니들은 비닐봉지도 아끼느라 빨아서 빨랫줄에 넌다. 가끔 빨래집게를 탈출한 검정 비닐봉지가 하늘을 비행한다. 유에프오의 등장에 송골매가 놀라서 뒷동산에 숨기 바쁨. 이렇게 더운 날은 헬륨 가스가 따로 필요 없어. 바람이 살짝만 불어 주면 모든 비닐봉지들이 하늘로 박차고 오를 기세. 요새 아이들은 풍선 가지고 노는 일도 드물다. 풍선을 주면 빵~ 터트리고 보는 재미. 흔하다보니 귀함을 몰라. 우리는 만년 어린 왕자. 동심에 가득 차서 하늘을 꿈꾼다. 열불이 나면 열기구. 이열치열 열기구. 열심히 산 자여 열기구를 타라. 우울증이 심한 자 열기구를 타라. 예수 재림을 믿는 자 열기구를 타라. 혼잡한 전깃줄을 피해 땅에 돌아오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뭐 한 가지 꼭 해봐야지 벼르고 살면, 삶이 되게 온온해지더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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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대통령님도 비리 사립유치원 개혁운동에 함께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의 요지는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회계비리가 적발된 사립유치원들의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도록 대통령이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청원자는 지난 3월 유치원 집단 개학연기 사태 당시 활동했던 경기도 지역 학부모단체와 정의당 경기도당이다.

사립유치원의 설립 인가 및 폐원, 감사 및 처분 등에 관한 권한은 대부분 교육감에게 있다. 문제가 있다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에게 했어야 할 청원이 청와대까지 온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청원자들은 “경기도교육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학연기 사태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완패’로 끝나긴 했지만 사립유치원 문제는 사실상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장 필요했던 ‘유치원 3법’ 개정은 국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원아 200명 이상 대형 유치원에 대한 에듀파인 도입은 법률 소송에 휘말렸다. 그나마 강도 높은 감사를 통해 사립유치원의 각종 비리를 밝혀낸 게 유일한 성과로 꼽히지만, 유치원 문제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감사마저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 사립유치원의 절반에 달하는 1800여개의 유치원이 있고, 신도시들을 중심으로 대형 사립유치원이 많은 경기도에서 말이다.

표면적으로만 봐도 경기교육청의 최근 감사는 비위를 적발하기 위함인지, ‘전수 감사 달성’이라는 전시 행정을 위함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감사 대상 기간을 ‘직전 5년’에서 ‘직전 3년’으로 줄여 비위가 극심했던 2014~2015년 회계장부에 대해선 면죄부를 줬다. “감사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감사 대상이 너무 많다”는 이유를 들어 본청에서 하던 감사 업무 일부를 산하 교육지원청에 넘겨줬다. 

감사 대상임을 통보받은 유치원들이 이를 회피할 목적으로 폐원 신청을 내는데도 “요건을 갖추었으니 안 받아줄 수 없다”며 족족 폐원을 받아줬다. 올해 폐원을 허가해준 52개 유치원 중 48개가 감사 대상 유치원이었다.

학부모단체와 정의당은 이 같은 감사 축소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경기교육청의 답변은 매번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다”라는 식이었다. 보다 못한 한 시민감사관은 “감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언론에 폭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기교육청은 “진상을 밝히겠다”면서도 진상규명에 앞서 해당 시민감사관의 업무를 정지시키고 직위해제부터 했다. 현행법상 공공기관에 제보한 게 아닌 이상 ‘공익제보자’ 취급도 못 받는 탓에 이 시민감사관은 보호받기는커녕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찾기 어려운 처지다.

교육청의 업무를 감시하고 문제가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경기도의회의 경우 감시는커녕 사립유치원의 이익을 대변하고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각종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기도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올해 교육위원회 회의록만 뒤져봐도 도의원들이 유치원을 어떤 방식으로 옹호해왔는지는 쉽게 확인된다. 이 문제 역시 학부모단체 등이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등에 수차례 이의를 제기했지만 민주당이 여태껏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학부모단체가 찾은 곳이 국민청원이다.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기지 못하면 다른 수많은 청원처럼 잊힐 거 같아 이참에 이들을 대신해 물어보려 한다. 

경기도교육청, 그리고 경기도의회에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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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이 있다. 칼럼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고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서만 세상사와 그에 대한 의견을 접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저널리즘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가 저 직함을 걸고 으스댄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럼니스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시대가 변한 것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불현듯 칼럼 쓰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09년부터 칼럼을 썼고, 칼럼집만 두 권을 냈다. 근 10여년을 해온 일인데 언제까지 이럴 셈인가라고 고민하다보니, 최근 꽤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칼럼이 쉬운 글은 아니다. 칼럼이라는 글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제약은 분량과 마감일이다. 칼럼의 분량은 많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어떤 것을 넣고 어떤 것을 빼야 하는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조사를 바꾸고, 몇 편의 글이 필요한 이야기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축약할 것인지를 두고 골몰해야 한다.           

게다가 칼럼을 쓰는 날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성이 없는 이야기라면 상관없겠지만, 산재하는 이슈들 중 어떤 것을 골라서 이야기할지도 매번 결정해야 한다. 퇴고를 마치고 마침내 원고를 보내는 새벽이 오면 잠시 해방감에 젖었다가, 나중에 신문에 실린 글을 보며 후회와 반성을 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사이클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주나 월 단위로 반복된다. 

하지만 새로운 어려움들은 이런 통상적인 어려움과는 결을 달리한다. 칼럼은 기사가 아니지만 저널리즘의 일부이고, 거짓된 사실이나 과장이 있어선 안된다는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한다. 그런데 이 팩트 체크가 요즘 고역이다. 칼럼리스트는 기자가 아니므로 대체로 팩트 체크는 언론들의 보도에 의존한다. 그런데 같은 사건에 대해 언론사마다 이야기가 다른 것은 예사이고, A라고 보도되었던 내용이 알고 보니 B라는 식의 일들도 걸핏하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여러 언론사의 기사들을 복수로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기사의 원출처가 되는 자료들까지 뒤져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잘못된 사실들이 칼럼에 섞여 들어가는 일이 생기고야만다. 

게다가 요즘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칼럼니스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수많은 SNS들에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생긴 일들에 대해 전문지식이 담긴 글들을 생산해낸다. 굳이 전문지식이 아니더라도 경청할 만한 좋은 관점과 의견들이 ‘좋아요’와 ‘공유’를 타고 돌아다닌다. 글이 싫다면 유튜브에 가보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기 이름을 건 채널을 개설해놓고 쉬지 않고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 주제에 대해 쓴 칼럼을 봐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좋은 칼럼을 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재치로 웃게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또 칼럼이 언론의 지면에 실리는 이상 그것은 공적인 말로써 기능한다. 때로는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곧 사라질 과거는 아닌가 고민하다가도, 내 글이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글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다. 10년이나 계속 기용을 해주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속편한 생각도 없지는 않다.

칼럼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마지막 문단이다. 뻔한 교훈적인 말이나, 의미 없는 선언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뻔한 선언과 의미 없는 교훈으로 끝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주어진 지면이 다 채워진 관계로 이만 줄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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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을 때는 판판하게 땅을 다져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다. 기둥에 가로 방향으로 올린 큰 보가 바로 대들보다. 대들보는 평형을 잘 맞춰야 한다. 수평이 맞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집이 기운다. 기둥과 함께 가장 중요한 구조물이다보니, 자랑스러운 자녀를 집안의 대들보라 비유하기도 했다. 자리를 잘 잡은 대들보처럼, 한쪽으로 기울지 않아 안정된 상태가 ‘평형(平衡)’이다. 물리학의 평형(equilibrium)도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도 물리계가 변화 없이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면 ‘평형’이다. 

책상 위에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다. 볼펜은 역학적 평형상태에 있다. 아래로 지구가 당기는 뉴턴의 중력이 있는데도 얌전히 가만히 있는 이유가 있다. 볼펜에 작용하는 힘을 모두 더하면 정확히 0이 되기 때문이다. 즉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중력과 정확히 같은 크기의 어떤 힘이 볼펜에 작용하고 있어야 한다.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려는 것에 저항하는 수직 방향의 힘이라는 뜻으로 ‘수직항력(垂直抗力)’이라 부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 책상 위 볼펜에 작용하는 수직항력은 전자기력이다. 볼펜과 책상을 구성하는 원자가 서로 가까워지면 원자핵 주위의 전자가 먼저 만난다. 이들 전자는 쿨롱의 전기력으로 서로 밀어내고 결국 책상이 볼펜을 위로 미는 수직항력을 만들어낸다. 책상 위 가만히 놓여 있는 볼펜처럼, 물체가 역학적인 평형상태에 있으려면 작용하는 힘이 서로 비겨 힘의 총합이 0이 되어야 한다. 비김은 평형의 필요조건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람들을 둘로 나눠 줄다리기를 할 때, 양쪽의 힘이 비기면 줄은 옆으로 움직이지 않고 평형을 유지한다. 꼼짝하지 않는 줄만 쳐다보는 사람은 양쪽에서 줄을 당기는 많은 사람들의 안간힘을 눈치 채기 어렵다. 상황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된다 해서 노력을 멈춰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안심해 노력을 멈추는 순간 힘의 비김이 어긋나 평형상태에서 벗어난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운 상황이어도 그 속내는 다를 수 있다. 평화로운 겉모습의 이면에는 수많은 힘이 서로 비기고 있다. 

하루하루 큰 변화 없이 되풀이되는 우리 삶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기사님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직장에 도착해, 일찍 청소를 마친 분들 덕분에 말끔해진 건물에 들어선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눈에 띄지 않는 많은 이의 안간힘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앞에 놓고는 이것이 얼마나 기적같이 감사한 일인지 깨닫고 전율한 적이 있다. 무엇 하나 손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필자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지 돌이켜보기도 했다. 우리 삶의 평화로운 매일의 일상은 함께하는 모두의 연결된 안간힘의 결과다. 오늘 하루 무사했다면 모두에게 감사할 일이다. 

물리에 평형이 있다면 생명에는 항상성(homeostasis)이 있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우리 몸의 근육은 ATP 분자에 담긴 화학적 에너지를 역학적 일로 바꾼다. 휘발유에 들어 있는 화학적 에너지를 이용해 차를 움직이는 자동차 엔진과 비슷하다. 우리 몸의 근육이 역학적 일을 할 때는 열도 함께 발생해 체온이 오르고, 체온을 다시 내리기 위해 우리는 땀을 흘린다. 자동차가 냉각수와 라디에이터로 하는 일을 우리는 땀으로 하는 셈이다. 액체인 땀이 피부에서 기체로 변하는 과정에서, 물 분자 사이 연결의 사슬을 끊기 위해 상당히 큰 에너지(기화열)가 필요하다. 땀이 피부에서 증발할 때 주변에서 큰 에너지를 흡수하니, 이 과정을 이용해 우리는 체온을 낮출 수 있다. 더운 날 온몸이 털로 덮인 강아지가 물기로 촉촉한 혀를 입 밖으로 내밀어 헉헉 거리는 것도 똑같은 이유다. 혀의 수분을 증발시켜 체온을 낮춘다. 추운 날 몸이 저절로 떨리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몸을 떨면 근육에서 열이 나 체온이 오르기 때문이다. 체온이 오르면 내리는 방향으로, 체온이 내려가면 올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거꾸로 돌이키는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을 이용해 우리는 항상성을 유지한다.          

우리 몸의 항상성이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버틸 수 있는 한계보다 더 큰 변화가 생기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생명의 죽음이다. 잠깐은 숨을 참을 수 있지만, 한 시간을 숨 못 쉬면 우리는 죽고, 오랫동안 물을 못 마셔도, 음식을 먹지 못해도, 체온이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죽는다. 항상성이 작동하는 한계 안에서만 우리는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살아있음의 특징이 항상성이고, 항상성의 비가역적 깨짐이 죽음이다. 

맑은 호수에는 햇빛이 잘 통과해 수초가 울창하다. 여러 곤충과 물고기가 수초와 함께 살아가며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한다. 어느 정도의 유기 오염물질이 호수에 유입되어도 이를 분해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어 호수는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물이 혼탁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햇빛을 받지 못해 수초가 죽어 사라지면, 수초에 기반해 삶을 이어가던 많은 생물종도 함께 사라진다. 이렇게 한번 혼탁해진 호수는 오염물질의 유입이 멈춰도 다시 맑아지기 어렵다. 오염물질을 분해할 생태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항상성이 깨지면 생태계도 병든다.

오랜 기간 큰 변화가 없던 지구의 기후가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물리학의 역학적 평형에서 힘의 비김이 깨지면 물체는 가속도를 갖게 되어 속도가 점점 늘어난다. 음의 되먹임으로 유지되던 지구의 기후도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면 양의 되먹임으로 폭주한다. 기온이 오르면 기온을 낮추는 방향이 아니라 거꾸로 기온을 더 오르게 하는 메커니즘이 촉발된다. 역학적 평형을 유지하려면 세심한 힘의 비김이 필요하듯이 지구의 항상성을 위해서도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안간힘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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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