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선의 삼척항 입항에 해군 2함대사령부 허위 자수 사건으로 군이 몰매를 맞고 있다. 시민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이해가 간다. 군은 경계 실패와 거짓 해명, 그리고 기강 해이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북한 어선이 삼척항에 도착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군을 두들기는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심지어 정부 내에서조차 군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이 정치권이다. 여야 모두 안보를 걱정한다면서도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군을 끌어대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 정부가 군을 정권의 기반으로 활용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군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군 비판에는 군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중마저 결여돼 있다. 9·19 군사합의를 공격하던 차에 북한 어선 사태까지 터지자 두 사안을 엮어서 기다렸다는 듯 무차별 공세를 펴고 있다. 오랫동안 운용돼온 군의 경계근무 실태 등 안보 현실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문재인 정부 비판을 위한 도구로 군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당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걸어 추경을 막고 있지만, 이 정도 사안으로 국방장관을 해임한 사례는 없다. 한국당은 과거 집권 시 천안함 폭침과 목함지뢰 도발은 물론 일명 ‘노크 귀순’ 때 자신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가 지난 5월 전방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에게 “군은 정부와 입장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주적’이라는 인식을 빼면 한국당이 스스로 안보정당이라고 일컬을 만한 근거는 이제 없다. 가관인 것은 군 출신 인사들이 이런 공세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량한 지식을 활용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얄밉게 군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군을 지휘하던 시절에는 더 많은 은폐와 조작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안다.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는 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과도하게 이를 부각해 군의 입지를 흔들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옛 국군기무사의 계엄 문건에 대한 대응이 과도했다는 점은 관련 수사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데서도 확인되고 있다. 국방개혁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보여주지 못한 채 병사들의 복지 등 인기에 치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보수야당의 대척점에 서는 이념성 강한 정책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군을 필요 이상으로 두들긴 후과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이달 초 동해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새떼를 북한 비행기로 의심해 쫓더니, 그제는 서해에서 북한 잠수함을 본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5시간 동안 수색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제 군 지휘관들이 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담당 작전 구역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데 부대의 역량을 결집할 것이다. 사소한 빈틈도 보이지 않아야 진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이 자초한 일이라거나 군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진통이라고 할지 몰라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관계와 더불어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 군사 정세가 크게 변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군을 잠재적 적국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주변국과 전쟁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북한 어선 한 척에 온 나라가 매달릴 때가 아니다. 군은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이고, 그 군의 임무를 선택하는 것은 시민이다. 군은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서 자신들이 어떤 임무를 우선 수행해야 할지를 국민에게 묻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대응하고, 대양에서 국익도 보호하고, 그러면서 북한 어선의 침투까지 물 샐 틈 없이 다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이 군의 임무를 정해줘야 하는데 “모든 것을, 그냥 무조건 다 잘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또 그걸 못하면 회초리 한 대로 충분한데 몽둥이로 3박4일간 두들겨 패고 있다. 이것이 지금 정치권이 하고 있는 일이다.

미국의 정보 당국자가 수년 전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는 데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이 말을 전한 정치인은 “지금은 공중급유기에 F-35까지 도입했으니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위했다. 역사학자 한명기는 임진왜란·병자호란은 중종 이후 선조 때까지 근 100년간 조선의 조정이 만주와 일본 열도에서 일어난 변화, 즉 동북아 정세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정치권이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기울고 백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난리가 터진 뒤에 선조가 잘못했느니, 율곡의 10만 양병설이 어떠니 갑론을박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집안에서 학대받은 자식이 집안의 안위를 위해 몸을 던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군을 마냥 두들길 때가 아니다.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일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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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18일 만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초당적으로 대처하기로 뜻을 모았다.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부당한 경제보복”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과 범국가적 차원의 비상협력기구 설치 등 4개항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여야가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며 정부에 힘을 실어준 모습을 보여준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경제·외교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회동은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한 초당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시민의 관심이 지대했다. 일본은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추가 경제보복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자가 한목소리로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한 건 우리 협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국가경제의 펀더멘털 및 소재·부품·정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범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위한 비상협력기구를 운영키로 한 것은 의미가 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간 현안마다 대립했지만, 한·일 경제충돌이라는 유례없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힘을 합쳤다. 시민 눈높이에 맞춘 정치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만하다. 부디 이번 합의가 일회용 레토릭(수사)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회동 테이블에는 추경안 처리, 국방장관 해임안 등 다른 현안들도 올랐으나 참석자들은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예상했던 대로다. 회동 한번으로 주요 쟁점들에 대한 여야 간 의견차가 해소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서로의 주장을 놓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작은 차이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동은 작년 3월 이후 1년4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이 황 대표와 만난 것은 대통령 취임 당일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여야 소통이 없었다는 얘기다. 생각이 다르면 다른 대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소통이다. 이번처럼 대일(對日) 이슈에 힘을 합친 기조를 살려가면 얼마든지 난국을 헤쳐나갈 지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회동에선 문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담을 정례화하자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원활한 국정운영과 협치를 위해서는 여야 지도자들이 자주 만날수록 좋다. 이번 회동이 그동안 말만 무성하고 진척이 없었던 협치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대화는 미사일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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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8일 국회에서 국회교육희망포럼이 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박경미, 도종환 의원과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예술대학 교육여건 실태와 지원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효율성과 취업률을 중시하는 대학평가체제가 보편화되면서 예술대학은 늘 구조조정 1순위였다. 예술대학은 취업률, 전임교원 확보율, 등록금 환원율 부문에서 다른 단과대학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준에 있다. 예술대학의 입시 경쟁률이 여전히 매우 높고, 등록금도 평균적으로 의과대학 다음으로 높은데, 정작 예술대학의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지방 예술대학은 폐과, 통폐합, 정원감축의 구조조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럼을 주관한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예술대학의 등록금은 국공립대학은 평균 50만원, 사립대학은 105만원이 더 많다. 전임교원 비율은 인문대학과 비교했을 때도, 전국 141개교 중에서 98개교가 낮았다. 등록금을 많이 내는데도, 정작 ‘실험실습비’는 차등등록금의 13.97%, 전체 등록금의 3%밖에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돈은 훨씬 많이 내고, 혜택은 못 받는 상황인 것이다.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전국의 예술대학생 1만1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9%만이 교육환경에 만족한 반면, 72.8%가 불만족이라는 답변을 했다. 작년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났듯이, 예술대학은 위계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온상이 되었다. 예술대학은 이 상태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학생들은 창작의 미래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는 것인가?

예술대학 학생들의 절규와 예술대학의 열악한 환경을 꼼꼼하게 분석한 자료를 접하면서 내심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예술대학의 위기 극복을 위해 교수들이 그동안 특별히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이러한 활동에 격려는 못할망정 겁박을 했다고 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대로라면 예술대학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존경받기는커녕 성희롱, 성폭력의 가해자로, 교육과정의 무능한 스승으로, 예술현장의 위계적 권력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더 이상 부끄럽기 전에, 예술대학의 미래를 위해 교수들이 나서야 할 때다. 나는 예술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예술전공 학생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실천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교육-창작-현장이 유기적으로 잘 연계될 수 있도록 예술대학이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체질 개선해야 한다. 예술의 현장은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학교의 교육과정은 30~40년 전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프로덕션 시스템은 예술대학을 상업화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 안에서 교육과 창작과 제작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교육과정을 혁신하는 게 목표이다.  

둘째,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종합적인 지원 계획이 필요하다.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예술가들의 창작 지원, 무대가 아니더라도 예술전공을 살려서 다양한 사회진출을 이끌 수 있는 활동지원, 지속 가능한 창작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마련해주는 생활지원을 종합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술대학의 새로운 교육·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국책 사업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전국의 인문대학 교수들이 나서서 인문학 살리기 운동을 펼쳐 인문한국(HK)사업이 시작됐다. 예술대학도 인문한국사업처럼 예술대학의 교육과 창작 역량을 강화하는 가칭 예술한국(AK)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지원정책을 위해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예술대학의 교수들도 제자들의 교육권과 창작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예술대학 살리기 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런 일련의 노력들이 약탈적 대학평가와 위계에 의한 성희롱·성폭력으로 망가진 예술대학을 살리는 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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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9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소재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3곳에 대한 재지정 평가에서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등 8개 학교의 재지정 취소를 발표한 이후 각양각색의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특히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되면 고교 서열화가 심화된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 하향 평준화가 된다, 강남8학군이 부활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박탈된다 등 볼멘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이 중 필자로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강남8학군이 부활된다’는 것이다.

강남8학군(강남구·서초구)은 1970년대 강남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강북에 있던 경기고·휘문고·중동고·서울고·숙명여고 등이 이곳으로 이전하고, 이 학교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실적이 높아지면서 입시의 뜨거운 지역이 되었다. ‘교육특구’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사교육의 대명사 대치동 학원가라는 상징적인 거리까지 생겨나게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주장하며 일반고 종합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8학군은 1970년대 이후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다만 201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학생부(교과·종합)전형이 도입되면서 다소 불리해진 적은 있다. 교과 성적(내신) 등 학생부 기록 사항이 수능처럼 전체 수험생을 대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학교에서 평가하여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부전형으로 선발하는 모집 인원이 2020학년도 대학입시의 경우 전체 4년제 대학 모집 정원의 67.0%로 많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강남8학군이라고 해서 유리하고 불리하고 한 것도 아니다. 

만약 대학입시 제도가 과거 학력고사와 수능 성적으로만 선발할 때로 돌아간다면 강남8학군은 입시에서 ‘대박’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행 대학입시 제도로 볼 때 그럴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차,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정시 수능전형으로 30% 이상을 선발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니 강남8학군이 좀 더 유리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려대·서울대·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는 것을 유지하는 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만 놓고 보면 강남8학군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런데 왜 강남8학군의 열기가 식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서울대와 의학계열 합격자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울대 2019학년도 합격자수 상위 50위권에 강남8학군 고등학교가 무려 11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것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정시 수능전형 합격자수가 많다는 것과 재수생 비율이 매년 적지 않다는 점이면.

강남8학군 자사고들의 2019학년도 서울대 최초 합격자수를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 살펴보면, 세화고 수시 7명·정시 18명, 세화여고 수시 4명·정시 9명, 중동고 수시 8명·정시 12명, 현대고 수시 8명·정시 5명, 휘문고 수시 5명·정시 19명 등으로 현대고만 수시 합격자수가 많았고, 나머지 학교들은 정시 합격자수가 많았다. 졸업생 중 재수 비율은 2019년 2월 졸업자를 기준으로 휘문고 63.9%, 중동고 61.9%, 세화고 50.8%, 현대고 50.3%, 세화여고 43.9% 순이었다. 이처럼 강남8학군 자사고들만 봐도 서울대 합격은 정시 수능전형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재수 비율은 50%를 넘는다.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사고를 확대할 때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다양한 교육이 정시 수능전형으로 대거 합격시키는 것이었나? 

강남8학군은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다시 뜨는 곳이 아니라 원래부터 떠 있던 곳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는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식의 교육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고뇌했으면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유성룡 입시분석가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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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가면 ‘카농’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가톨릭농민회’의 줄임말이 ‘가농’이고, 1970~1980년대 지역에서 ‘카도릭농민회’라고 발음을 하곤 했기 때문에 아직도 ‘카농’이 입말에 붙어서다.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농민운동 조직은 ‘가톨릭농민회’였고, 굵직한 농민운동가 상당수가 ‘카농’ 출신이다. 고(故) 백남기 농민도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까지 지낸 가톨릭농민회의 대표적인 운동가였다. 당시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폭력 앞에서 가톨릭교회의 보호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가입해 농민운동을 펼쳤다. 1985년 소를 끌고 나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 값 피해보상투쟁’이나 수세폐지 운동, 의료보험 통합제 투쟁, 수입개방 저지 등 한국 농민운동사의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다 더 이상 종교의 보호를 청하지 않아도 될 만큼 농민운동의 힘이 축적되고 1990년 전국적인 농민운동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창립되면서 가톨릭농민회는 본연의 일로 돌아왔다. 대표적인 운동이 ‘우리밀살리기운동’이었다. 여전히 농민운동가들 중에서는 가농과 전농의 멤버십이 겹치곤 한다. 뿌리가 같아서 그렇다. 

단일조직의 농민회가 만들어졌지만 농촌의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자유무역의 기조에 따라 농산물 개방의 십자포화를 당하던 차에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서는 쌀 개방까지 예고했다. 모든 것이 다 열린다는 뜻이고 농민들의 분노와 두려움은 상상을 넘어섰다. 지금과는 달리 농촌에 뿌리를 두는 도시민이 많았던 때여서 농촌의 처지에 함께 아파했다. ‘우골탑’을 쌓아 서울로 도시로 온 대학생들이 농촌에 가서 농활을 하고, 다시 자기 고향에 내려가 부모의 농사를 돕던 시절이었으니 도시민들도 쌀 시장 개방만은 반대했다.  

이에 가톨릭농민회는 농촌현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연대를 촉구했다. 그리고 1994년 김수환 추기경이 농업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담화문을 통해 “오늘날 농업, 농민이 처한 어려움은 비단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이며, 모든 국민이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이 없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을 명동성당에서 천명한다. 그렇게 1994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우리농)’가 만들어졌다. 가톨릭농민회가 생태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면 우리농 소비자들은 의식적으로 소비하여 도농공생을 꿈꿔왔다. 우리농운동은 국산 농산물 소비운동을 넘어서 생태지향성이 강해 유기농 및 친환경 농산물과 생활재 소비를 독려하고, 도농 공생과 생태적 삶에 대한 고민을 하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초창기에 농민들도 농약 없이 짓는 농사에 대한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소비자들은 예쁘장한 농산물에 익숙해져 있어 운동의 속도는 더뎠다. 게다가 한국의 농업·농촌은 격변했다. ‘수입농산물’이라고 지칭하기도 힘들 정도로 글로벌 차원에서 먹거리는 생산되고 소비된다. 라면 한 봉지에 관여하는 국가만 해도 여럿이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창립 25주년을 맞이했다. 이 운동을 제안했던  이들도 이제 늙어 고된 유기농 농사에 힘이 부친다. 세상은 농촌을 죽여왔지만 이들은 살리는 길을 느리게 걸어왔다. 근래 서울 송파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동 우리농의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한다. 속도보다 방향을 택한 우공이산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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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해당 산업 전체가 술렁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일본산 비중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90% 이상, 에칭가스가 44% 정도라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산업 분야의 추가 규제 가능성도 크다. 정부와 기업은 각종 대책 마련에 바쁘고, 일본의 조치를 부당하게 여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촘촘한 국제 분업체계로 이뤄진 반도체 같은 산업에서 모든 과정을 국산화할 순 없다지만, 그럴수록 탄탄한 기본의 확보가 더욱 절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름도 잘 모르는 기본소재에 화려한 첨단산업의 명운이 달렸듯이, 오늘날의 놀라운 발전과 풍요와 편리도 결국 몇몇 ‘기본’에 의존하고 있다. 기본의 위기는 우리의 삶 전체의 위기를 뜻한다. 오늘날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면, ‘기후’는 가장 중요한 삶의 기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는 현재의 기후위기가 기후재앙으로 변할 때까지 남은 시간을 10여년으로 추산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느긋하다. 지난해의 살인적인 폭염은 기억 저편에 묻혀 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없어서인지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 정치도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놓고 논쟁 중인데, 한국 정치는 말이 없다.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설마 내가 사는 동안에야 무슨 일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리 위급한 일도 강 건너 불로만 보인다. 안이한 상황 인식에서 진지하고 적극적인 대응은 나오지 않는다. 하던 일을 접고, 위험을 알리기 위한 자발적 행동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편, 소수이긴 하지만 기후변화를 자신의 문제로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주로 청소년들이다. IPCC의 전망에 따르면, 현재의 청소년들은 기후재난의 한복판에서 살게 될 사람들이다. 기후변화의 결과는 오롯이 이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래서인가,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에 저항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진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를 시작한 스웨덴 학생 그레타 툰베리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해야 할 것을 하자. 바로 지금 여기서. 사는 규칙을 바꾸자. 행동이 희망을 낳는다.” 이런 요구가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면, 우리가 처한 상황 자체가 상상하기 힘들 만큼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임을 알아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절하고 현실적인 대응이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쉬운 까닭이다. 지금처럼 살면서, 어떻게 해결해보자는 주장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기후변화가 기후재앙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면, 방식만 다를 뿐 우리는 어차피 변하게 되어 있다. 파국이 닥치기 전에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변할 수 있다. 파국이 닥치고 나면 더 이상 선택의 기회는 없다. 우리는 강제로 변하게 된다. 양쪽 모두 고통이 따르지만, 강제되는 변화의 고통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거기서는 변화의 의미를 찾을 수도 부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변화는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 할 것이다. 우리의 선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삶을 계속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중시해온 그 어떤 것도, 경제발전도 풍요와 편리도, 삶의 기본인 기후를 대신할 수 없다. 툰베리의 말대로, 생존의 문제에서 “중간지대”는 없다. 우리가 변화하든 기후가 변화하든 둘 중 하나다. 우리 앞에는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가 놓여 있다.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기>)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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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50년의 시차를 둔 이들 외교 행위는 지금 한·일관계 암운의 출발점이다.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정치적 부정(不正)을 흠잡고자 함이 아니다. 판박이처럼 닮은 내용의 ‘불구성(不具性)’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크게 3가지다. 피해 당사자(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를 배제한 국가의 폭력성, 주권자인 국민 의사에 반한 비정상 통치행위, 그리고 소위 ‘불가역적 종결’이라는 논쟁성이다. 이들 합의는 개인의 권리를 소멸해버린 국가의 전횡과 한 정권의 선택이 국가에 어떤 위기를 드리우는지 보여준다. ‘역사 파산’을 선언한 일본은 이를 근거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을 만들어 냈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환장할 역공 프레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 대표 초청 대화’에서 여야 5당 대표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청와대에서 회동하는 것은 1년4개월 만이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바른미래당 손학규·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 대통령, 자유한국당 황교안·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제외교 질서상 전면 부정은 아니라도 과거 정부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걷어내려는 한국민의 변화와 성장을 일본 정치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치곤 예외라 할 만큼 정권교체가 드문 게 그들 정치문화다. 시민이 정치적 성취를 이루고, 그 시민의 의지를 권력이 존중하는 문화가 그들에겐 낯설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이후 더욱 힘을 받는 이들 변화가 못마땅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한·일을 지탱해준 ‘정·경 분리’ 원칙을 깬 수출금지 조치가 한국 정치를 흔들려는 망상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과거 그들을 몰락으로 이끈 침략적 망상과 다르지 않다.


‘일본은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


두 나라 국민들은 이제 불편한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지정학적 위치와 과거 역사가 지운 숙명이다. 21세기 국가적 무력의 한 수단이 경제적 강제임을 생각하면 한·일은 지금 전쟁 전야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무역보복을 두고 “여러 차례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한·일의 충돌로 새삼 애국적 열정들이 가슴속으로 들어왔을 터다. 그러나 1세기 전 ‘인간의 암흑’을 만든 것과 같은 배타적 열정이어선 안된다. 시민들의 자생적인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둘러싼 논쟁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불매운동을 단순히 ‘애국적 열정의 반작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세기 한국민들의 성취와 의식 성장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치를 정치·경제적 성장에 대한 위협과 도전으로 느끼고, 다시 힘으로 누르려는 일본에 격렬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애국적 열정 이전에 시민 개개인의 고양된 자존감이 동인(動因)이다.


정치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었다. 대외적으로 과거가 남긴 외교적 부채를 국제질서 틀에서 해소하면서도, 지금 주권자들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하는 이중적 과제다. 그 방향은 ‘평화·공존’의 원칙과 ‘냉정한 현실주의’의 접근법의 두 가지다. 이 궤도에서의 이탈은 두 나라 국민들의 고통을 의미한다.


친구일 수도, 적일 수도 있다면 그들은 중요한 ‘평화 관리’ 대상이다. 북한이 가장 중요한 평화 관리의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선 그간 우리를 옭아매온 친일·반일의 이분법은 무용하다. 호혜의 노력과 냉정하게 경계하는 준비가 함께 요구될 뿐이다.


보수는 유효성이 다한 ‘우방·동맹’론에서 벗어나야 하며, 진보는 과거에 기댄 적의만을 일본 앞자리에 둬선 안된다. 특히 내부의 갈등이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 정치에 간여하려는 유혹이 돼서는 평화적 공존은 없다. 일부 보수 정치인과 언론을 왜곡 인용한 일본 극우매체들의 ‘가짜 뉴스’ 공격은 한·일의 시계가 1세기 전에 멈춘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토착왜구’ 같은 논란이 이어지고, 이를 정치적 편가름 소재로 삼는 무지는 그들 눈에 가장 취약한 공격 포인트로 보일 것이다.


동시에 일본을 ‘애써 무시’하려는 정신 승리만으론 경쟁할 수 없다. 지난 시기처럼 일본 앞에서 과도하게 흥분하든, 주눅이 들든 모두 동일한 패배의식일 뿐이다.


한·일이 보다 성숙한 민주국가로 진전하려면 구성원들로 하여금 집단의식을 표출토록 하는 상황은 옳지 않다. 역사적으로 얽힌 국가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현 시기 한·일 정부는 그 점에서 외교적 실패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불매운동 등 애국적 열정이 정부의 외교적 안일이나 미숙을 가리는 장막이 돼서는 안된다. 강제징용공 문제는 공론화된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 몇 개 정부에 걸친 일이다.


그동안 모든 한·일전은 유혈 없는 전쟁이라 할 만큼 양국 국민들 감성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친구 편에 두면서도, 적의의 감정으로 마주 달린 지난 시기는 유효하지 않다. ‘애써 무시’하는 게 아닌 경쟁자에게 ‘냉정한 존중’으로 맞서야 한다. 일본 조치로 드러난 취약점을 조용히, 빠르게 교정하며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성장하는 한국과 경쟁하는 한·일’이라는 진짜 ‘불가역적 상황’에 대처하는 길이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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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반달’은 1924년 윤극영이 작사·작곡한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다. 달의 정경과 신화가 어우러진 노래다. 토끼는 달의 신 ‘항아’의 분신이다. 인간 세계에 살았던 후예의 아내 항아는 서왕모가 준 불사약을 먹고 달나라로 도망쳐 신선이 됐다. 항아는 두꺼비로 변신하고 토끼가 된다.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토끼, 달을 갉아먹는 두꺼비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워싱턴기념탑에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110m 길이 새턴 5호 로켓 이미지가 투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태백은 술과 달의 시인이었다. 그는 술잔만 들면 달을 노래했다. ‘흰 토끼는 봄가을로 약 방아 찧고/ 항아 선녀는 외로이 살며 누구와 이웃 하는가.’(시 ‘把酒問月·파주문월’) ‘적객 시인’ 소동파에게 달은 함께 회포를 풀고 고향에 안부를 주고받던 천상의 친구였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 문인을 만나 달에도 세계가 있다면 그곳 사람들 역시 지구를 바라보며 땅의 이치를 논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보인다. 그들에게 달은 계월(桂月)이고 옥토(玉兎)였다. 위성·천체 등의 천문학적 개념은 희박했다. 오랫동안 달은 꿈과 신화, 상상의 터전이었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문학의 달 ‘웨량(月亮)’과 천문의 달 ‘웨치우(月球)’로 구분한다.

1969년 7월21일 오전 11시56분(한국시간),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다. 인류 최초의 장엄한 제1보였다. 이날 경향신문은 1면에 ‘인간 달을 딛고 서다’라는 제목으로 달 착륙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45억년 신(神)의 영지를 헤치는 인류의 대창세기’ ‘인류의 위대한 업적’ ‘우주 하이웨이는 힘차게 뚫렸다’…. 암스트롱의 제일성 “작은 한 걸음이었지만 전 인류의 위대한 도약”은 금언이 됐다. 모두들 환호하고 희망에 부풀었지만, 시인 윤극영은 울적했다. 그는 달을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급히 펜을 들었다. ‘옥토끼들이 떡방아를 찧고 있는 달나라를 찾아갔더래요/ 첫발 내디디며 두리번두리번 그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떡이란 하나도 없고 바윗돌 천지 … 야릇한 생각이 치밀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어딜 갔을까요’(시 ‘옥토끼의 본적’, 경향신문 1969년 7월21일자)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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