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면 청년은 사실상 법외 존재다. 대한민국의 1746개 법률 가운데 ‘청년’에 대한 법률은 딱 1개다. 15년 전에 처음 만들어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유일하다. 그 법은 청년을 이렇게 정의한다. ‘청년이란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법령에서 청년이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다 보니 청년과 관련한 사업과 정책은 노동시장 진입 지원에 국한되어 왔다. 매년 수조원의 청년 예산이 오로지 ‘고용 촉진’에 투입되었지만,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정권마다 늘어난 청년 일자리 예산은 ‘청년을 위한다’는 알리바이 구실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년 정책의 설계와 시행에 있어 이전 정부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실제 노동시장 바깥 영역에서 제기되는 청년 문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대응 체계는 전무하다. 소득·주거·부채·교육·건강·문화 등 다기한 청년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아직껏 청년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청년을 가리키는 나이마저 국가기관마다 다르다.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도 세워진 적이 없다. 기본법의 부재에서 빚어진 현실이다. 서울시부터 시작해 올해 2월 인천을 끝으로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청년기본조례가 완료되었다. 지자체는 청년을 위한 기본조례를 완비한 마당에 정작 이 조례를 뒷받침할 법률이 없는 상황이다.

청년 대표성 측면에서 세계 최악인 ‘늙은 국회’의 청년 외면은 심각하다. 20대 국회 발의건수(2만484건), 처리건수(5985건)에서 청년 안건은 0.5%도 되지 않는다. 청년 관련 발의 안건은 60여건에 그치고, 그중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2건에 불과하다. 2023년까지 연장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과 국회 청년미래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 전부다. 19대 국회에서는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이 청년 법안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이런 풍토에서 청년기본법이 여야 합의로 성안된 것은 실로 사건이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청년 의원들이 앞장서 7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2년여 방치된 터다. 사장되어 있던 청년기본법을 불러낸 것은 결국 주체인 ‘청년’이었다. 1만명이 넘는 서명 등 직접 행동과 더불어 소수인 여야 청년 의원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청년기본법을 살려냈다. 꼭 1년 전 국회 청년미래특위는 여야 합의로 기존 7개 법안을 통합 조정한 청년기본법을 마련, 발의했다. 대치로 날을 지새우는 20대 국회에서 희귀한 성취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 문제 해결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하는 법적 근거이다. 청년 규정을 19~34세로 확대하고, 고용·주거·복지·교육·문화 등 제 분야에 청년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기본법이다.

하지만 국회 특위에서 여야 합의로 발의된 이 청년기본법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년이 넘도록 관련 상임위에서 논의도 없이 계류 중이다. 정원 10명을 채우지 못해 국회 연구단체도 꾸리지 못한 청년 의원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청년단체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메아리가 없다. 한때 20대 지지율 하락에 비상이 걸린 여권이 긴급회의까지 열어 ‘청년기본법 처리’를 다짐했지만 그뿐이다.

청년기본법 제정은 청년 문제 접근에서 ‘거대한 변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청년’은 나쁜 정치의 인질이 될 수 없다. 청년기본법에 대한 여야의 성찰과 다짐은 차고 넘친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던 2017년 2월 임시국회에서 행해진 정우택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다.

“청년들이 좌절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습니까. … 청년기본법은 청년 정책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삼아 정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청년 정책들을 모아 총괄토록 하는 법입니다. 이를 통해 청년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고통이 되고 있는 고용, 주거, 학습 등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한 법입니다. 청년기본법은 조속히 통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3년차, 지난 6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역설한다.

“무엇보다 국회는 청년의 꿈을 지켜야 합니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이므로 청년의 삶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 우리도 실정에 맞게 청년들에게 안정적 주거와 양질의 직업교육, 일자리 제공을 통한 취업의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청년 정책의 기본 틀을 세우는 청년기본법 제정입니다.”

무슨 이유와 명분, 설명이 더 필요할까. 말로만 ‘청년은 미래의 희망’이어서는 안된다. “청년의 삶과 꿈의 기반이 될” 청년기본법 제정을 더는 미루지 말라.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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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11일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은 날이다. 1년여 입원 생활 끝에 큰 수술을 한 그날 이후 두어 달을 병원에 더 머물러야 했다. 그러고 2년여 동안 걷고 뜀박질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재활운동이 이어졌다. 몸과 생각을 추스른 후 향한 곳은 중국과 일본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뻔질나게 두 나라를 드나들었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다닐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다닌 것만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정리라는 것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전통문화 중 무엇이 같고 다른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세 나라가 공통으로 지닌 것 중 가장 먼저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마애불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의 마애불은 대부분 답사를 마친 상태였으므로 중국 쪽은 석굴불이 주류를 이루는 실크로드가 아닌 ‘신의 땅’이라 불리는 티베트의 라싸에서 시작했다. 나름대로 정한 석굴불과 마애불의 기준에 따라 충실한 답사를 하며 우리나라 서해안과 마주 보는 장쑤성의 롄윈강(連雲港) 공망산마애석각(孔望山摩崖石刻)까지 무사히 다다랐다. 

사실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조각이 망라된 중국 최초의 마애석각이라고 하는 그곳까지 가는 길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시골이어서 찾아가기도 어려웠으며 현지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어눌하게 물어도 자기 일처럼 친절하게 알려주었으며 심지어 오토바이에 나를 실어 현장까지 데리고 갔다가 다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기도 하였다. 

더러 혼자 외진 곳까지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집으로 초대를 받기도 했다. 차를 한 잔 얻어 마시는 정도면 다행이지만 식사자리라도 마련되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말했듯 나는 큰 수술로 인하여 감염에 취약할뿐더러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술과 담배를 입에 댈 수도 없을뿐더러 그 이유를 잘 설명할 만큼 중국어에 능통하지도 못하다. 그러니 다반사로 권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까닭을 아예 종이에 프린트해 가지고 다녔다. 구겨지지 않도록 코팅을 하여 배낭에 넣어 뒀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보여주면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 정도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일본은 중국보다 더 자주 찾았는데 그들만의 독자적인 전통문화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앗아간 문화재들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키나와로부터 홋카이도까지 발길 닿지 않은 진진포포나 공항 그리고 기차역이 없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도 마애불을 찾아다녔었는데 일본의 마애불은 80% 이상이 규슈지방에 분포되어있다. 또 규슈지방에서도 오이타현에 대부분이 모여 있다. 오이타현 우스키시 후카타에는 우스키석불로도 불리는 마애불상군이 있는데 같은 장소에 ‘후루조노 석불군’, ‘산노잔 석불군’, ‘호키석불 제1군’, ‘호키석불 제2군’처럼 네 곳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 새겨진 마애불 60여구 중 59구가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마애불로는 유일하다. 조성된 시기는 대략 헤이안시대(794~1185) 후기부터 가마쿠라시대(1185~1333)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채색을 한 마애불들이 많다.  

이러한 마애불은 긴키지방의 나라시에도 제법 있다. 규슈지방의 마애불들보다 조성 연대가 위로 올라가는 나라시 외곽 야타야마의 폐사가 된 다키데라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는 현존하는 일본의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라고 전하는 나라시대(710~794) 전기에 조성되었다는 마애불이 있다. 큰 바위에 작은 사각형 감실 다섯 개를 파고 그 안에 손바닥만 한 작은 불상과 보살상을 새긴 형태이다.  

그러나 그곳은 단박에 찾을 수가 없었다. 두 차례나 근처를 헤맸지만 실패하고 세 번째 만에 찾았는데 고약한 경험과 함께였다. 고리야마역에서 택시를 타고 산으로 들어가 마애불 근처의 사찰로 갔으나 하필 아무도 없었다. 12월 초였지만 단풍이 곱게 물든 산사의 계단에 하릴없이 앉았는데 마침 노인 둘이 등산을 가는지 사찰로 들어섰다. 옳다구나 싶어서 태블릿 속의 사진을 보여 주며 그곳을 아는지 물었다. 세련되지 못한 발음 때문인지 노인은 되레 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스스럼없이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면전에서 옆에 서 있던 동행과 귀엣말을 하는데 가관이었다. 내용은 대략 저 사람은 한국인이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장소를 알려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소리만 조금 줄였을 뿐 대놓고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당연히 나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고 입가에는 어이없는 웃음이 흘렀다. 

마침 그때 산 위로부터 산악자전거를 탄 40대 남성이 한 명 내려왔고 그에게 마애불의 위치를 다시 물었다. 남자가 위치를 알려 줄 듯하자 노인들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 좀 전 그들끼리 나누던 귀엣말을 전했다. 그러자 남자가 나처럼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노인들을 바라본 후 나를 향해 영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다짜고짜 영어로 마애불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행히 노인들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고 남자는 나를 보고 씩 웃고는 쏜살같이 산을 내려갔다. 물론 나도 노인들을 본체만체한 후 발길을 돌렸었다. 

그렇게 6년 동안 일본을 드나들며 겪은 일본은 여전히 뿌리 깊은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열등감은 섬이라는 자연 지리적 조건에서 생기는 것이다. 대륙을 질투하지만 지향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겨우 대륙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반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대륙의 일부이고 일본은 섬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열등감을 극복하고 감추려고 그들은 번번이 대륙을 탐하면서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들이 대륙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있던가. 아니 없다. 잠시 이겼을지언정 끝내 이긴 전쟁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꿈꾼다. 그 미래는 정제되지 못한 욕심덩어리다. 스스로 허방다리를 파놓은 것을 잊고 그곳을 딛는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어찌 이토록 어리석단 말인가.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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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일관계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인해 1965년 맺은 한일협정체제가 위협을 받자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가하려고 한다.

1965년 맺은 한일협정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주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던 것에 대해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저 해방 이전에 있었던 한·일 양국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한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인 일본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화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상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식민지 문제에 대해 회피했기 때문에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협정과 식민지 체제하에서 일어난 강제징용 문제를 별도로 판단한 것이다.

한일협정은 일본에 대해 식민지화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체결 당시부터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이 협정은 박정희 독재정부가 계엄령을 내리는 등 국민적 저항을 군사력으로 진압한 가운데 체결되었다. 그러나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이후 국가적 강압은 힘을 잃었다. 이제 한일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한국의 국내적인 지지기반은 거의 없다.

양국 관계는 기본적으로 양자 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합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1965년 한일협정의 한 부분인 어업협정의 경우,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일본 측의 요구에 의해 1998년 개정한 바가 있다. 이처럼 한쪽에서 기존의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일협정은 식민지 문제를 공백으로 남겨두었고, 이는 한국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민주화된 현대 한국에서는 독재정권 때처럼 국민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식민지 문제에 대해 한·일 간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지속된 일본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자신에게 명확한 역사적, 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은 양심적인 대다수 일본 국민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새로운 합의는 일본의 기득권에 대해서도 보장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모든 금전적인 청구권을 해결하기로 한국 정부로부터 약속받았다. 따라서 새로운 합의에 의해 일본 정부가 식민지 책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배상금은 일본 정부가 지출하되 그만큼 한국 정부가 일본에 보충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은 가장 원하던 식민지 책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고, 일본 역시 1965년 한일협정이 가져온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해결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일 양국이 함께 나아가는 미래를 위해서는 일본이 언제든 한국을 침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계속 새로운 금전 요구가 늘어난다고 염려하는 일본인들의 불안도 해소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위기에 빠진 지금이 오히려 오랫동안 묵혀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존의 한일협정체제가 한·일 양국의 우호를 보장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식민지 문제 해결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한·일 양국은 식민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종원 |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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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들이 쇠락하고 있다. 웬만한 군소 도시마다 구도심은 활력을 잃었고 인구 변동, 주거, 교육, 교통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상황의 심각성으로 보건대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미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정책 수립 이후 이명박 정부의 도시 활력 증진, 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 지원사업 등이 전개되었거니와, 각 정부가 바라보는 도시재생의 가치관은 별개로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10조원씩 향후 5년 동안 50조원이 투입되는 것은, 어떤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 나라의 안전하고 안정된 일상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에 늘 보게 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 ‘해외 사례’다. 공무원이나 시·도의원들이 현지를 방문한다. 열흘 정도 일정을 잡아 서너개 도시를 살펴보게 되는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몇 개 도시들의 외형을 주마간산으로 살피기 쉽다. 그 도시들이 오랫동안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섬세하게 추진한 과정을 보기보다는 그렇게 하여 가시적으로 보이는 결과들, 특히 특정한 랜드마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의 북부 도시 빌바오다. 역시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이 미술관 때문에 한 해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도시재생 빌바오 랜드마크’, 이렇게 검색하여 보면 국내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기관에서, 공무원과 시·도의원들의 출장 보고서에서 ‘랜드마크 하나로 관광객이 모여든다’는 주장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빌바오는 1980년대 이후 거의 한 세대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했다.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 보행 위주 교통체계 개선, 각종 스포츠 시설과 클럽을 통한 실핏줄 같은 인간관계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시민 중심의, 시민 참여의, 시민이 실제로 활동하는 거버넌스가 원동력이었다. 영국도 1990년대 말에 도시재생뉴딜사업(NDC)을 전개하였다. 이 약자의 ‘C’는 ‘Communities’, 즉 공동체다. 지방정부, 기업, 시민공동체, 학교 등이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추진하였다. 글쎄, 우리의 오래된 관 주도 방식에서 과연 이러한 착상 자체가 가능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1세기 들어 주요 선진국마다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한 시민 스포츠 정책을 확장하였다.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도 2000년대 이후 스포츠클럽 활성화 정책이 펼쳐졌으나 대체로 ‘관 주도’의 일시적 지원 ‘사업’이었다. 최근에는 3년간 매년 3억원씩, 총 9억원의 국비를 지원하는 ‘K-스포츠클럽 공모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역시 지자체 중심이고 시설 운영 중심이다. 물론 인구 1만5000명당 체육관 1개인 일본에 비해 인구 5만7000명당 체육관 1개라는 절대 부족 요소가 있으므로 시설 확충이 필요하지만, 그게 스포츠클럽이나 그 사회적 문화 형성의 본질은 아니다. 

스포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이미지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다. 물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지구를 구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고 나아가 정부 정책이 되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건강한 신체’에 부합하지 않거나 어떤 장애나 나름의 소신으로 그것을 거부하게 되면 스포츠 정책의 방외자가 되고 심지어 비애국자가 된다. 이른바 ‘건강’은 특정한 수치와 지표로 객관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특정 목표가 설정되고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와 그 밖의 열패자가 생긴다. 스포츠 좀 즐겨볼까 하다가 금세 그만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전국의 주요 스포츠 시설들의 동호인 조직조차 대회 참가를 전제로 하는 우승열패 문화가 압도적이다. 

노령화 추세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노인 대상 스포츠와 여가 활동 역시 ‘활력’이 주제다. 그 활력은 물론 신체에 집중되는 바, 그러한 신체를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한 노인들은 이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배제된다. 또한 ‘활력 넘치는 노인’이란 이미지는 각종 용품 소비와 연결되는 바, 비용 측면에서도 전적으로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스포츠클럽 사업이 결국 시설 확충과 그에 따른 인력 충원으로 귀결될 수도 있어 염려스럽다. 앞서 스페인 빌바오를 얘기했듯이, 그들의 도시재생 목표가 관광객 유치가 아니었듯 그 도시의 스포츠 활성화도 시설 확충이 목표가 아니었다. 해체 위기의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여 고립과 외로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을 안정적인 사회 관계로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핀란드는 아예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전개된 것이었고 최근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이민자가 급증하는 곳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20세기의 국가주도형 스포츠에서 21세기의 시민참여형 스포츠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이로써 도시의 쇠락을 막고 급변하는 사회 변동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재생에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한 시설이나 최신 장비까지도 필요 없다. 우선 주민들이 웅크리고 있는 쇠락한 동네부터, 최소한의 사회 행위 동기를 상실하고 있는 가난한 마을부터, 인구 변동이 극심하여 서로의 몸이 부딪치는 지역부터 작은 스포츠 공간을 마련하고 청년 스포츠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도시의 작은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작은 몸의 움직임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그 지역 공동체가 더 이상 해체되지 않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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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집 자식이 훌륭하다 소문 자자할 때 사람들이 그럽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뉘 집 자식이 망나니짓을 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럽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같은 말을 다르게 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부모의 행실과 집안의 내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씨도둑은 못한다’지요.

농부는 수확할 때 잘 여물고 실한 씨앗들만 골라 다음 파종 때 쓰려고 따로 갈무리합니다. 열심히 잘 키운 작물은 씨앗도 다르고 그 씨앗 심어 난 떡잎 역시 남다릅니다. 부실하게 키운 작물은 응당 그 씨앗이 하잘것없고 싹수 또한 노랗지요. 좋은 종자는 누가 훔쳐갈세라 종자 자루를 베고 잘 만큼 애지중지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훔쳐갈 수 없는 종자가 있습니다. 그건 한 집안이 면면히 이어온 올곧은 가풍과 내력이란 씨앗입니다. 농부가 몇 십 년에 걸쳐 옹골진 씨앗만 고르고 고르듯, 종가는 아니더라도 내실이 실팍한 집안은 대대로 실한 씨앗만 내는 번듯한 종가(種家)가 됩니다. 태어나보니 그런 집안이고 자라다보니 몸에 배는 게 그런 반듯함입니다.

깍두기집안에서 자기네도 잘되고 싶어 ‘이런 자녀가 성공한다, 내 아이 이렇게 키워라’, 이런저런 롤모델에 벤치마킹 합니다. 그래봐야 허수아비의 아들은 결국 ‘허수’일 뿐입니다. 악다구니로 부부싸움 하고 ‘얘는 누굴 닮아 이 모양이냐’는 집안에선 실한 씨를 얻을 수 없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최고의 가정교육은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도 배운 집 자식이나 가능하겠지요. 인사드리러 갔더니 시어머니자리는 종종거리고 남편자리와 시아버지자리는 받아먹기만 한다면, 또 “모르면 좀 가만있어요” 시아버지자리가 일상인 듯 면박당한다면 어서 빨리 도망치라는 말이 우스개만은 아닐 겁니다. 

어디서 도둑질해 온 게 아니라면 예비 배우자도 그 집구석의 그런 씨앗일 테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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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봄밤>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종영했다. 약사이자 싱글대디인 유지호(정해인 분)와 도서관 사서에 다른 남자와 교제 중이던 이정인(한지민 분)이 만나 사랑을 이뤄가는 이 드라마는 현실 연애를 느끼게 해주는 디테일한 전개로 호평을 받았다. 나는 이 드라마를 매회 본방으로 꼬박꼬박 시청했는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요즘은 기다리기가 싫어 중간부터 따라잡아 막판에 본방을 시청하거나 다 끝난 뒤 몰아보는 게 흔한데 이 드라마는 한 주를 기다리는 게 훨씬 더 좋은 느낌이었다. 그건 <봄밤>의 주인공들이 현실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숙고의 시간을 함께하며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의미 있었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봄밤>의 소재는 자극적이면서 진부하다. 아이 있는 남자가 혼담이 오가는 여자와 눈이 맞아 주변의 만류에도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는 어느 주말 드라마에서 본 것 같다. 하지만 제작진은 두 주인공을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선봉에 세움으로써 우리 예상과는 다른 싸움을 보여준다.

배우 정해인과 한지민이 출연한 MBC 드라마 '봄밤'의 한 장면. JS픽쳐스 제공

이정인은 자식이 아이 있는 자리로 시집가는 것을 봐야 하는 애끓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용서를 비는 것으로 어려움을 돌파해나가지 않는다. 그가 유지호를 선택하는 건 단지 그를 원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해명이 꼭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자칫 성급한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 상처받기 쉬울 유지호의 마음에 집중한다. 동시에 마음을 확인한 만큼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유지호는 아이만 남겨두고 떠난 옆자리를 누군가로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가 연애에 나서는 것은 단지 이정인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은 세심하게 서로의 감정과 입장을 헤아리는 것으로 어려움을 돌파한다. 둘 다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생각을 섣부르게 먹지 않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시청자 역시 긴 고민 끝에 나올 그들의 행동을 긴 호흡으로 기다린다.

반면 정인이 교제하던 기석(김준한 분)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알겠다, 또는 알아’란 말이다. 부잣집에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그는 정인의 생각을 단정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숙고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당연하게’ 진행될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경로를 이탈하려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정인의 언니 부부는 기석과 정인이 함께할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아버지가 목매는 눈에 보이는 조건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다.

이·유 커플은 한국 사회의 복잡한 인간관계망 안에서 감정의 싹을 틔운다. 기석은 유지호의 대학 선배고 지호 친구의 직장 상사다. 정인의 아버지는 기석 아버지(김창완 분)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장을 맡고 있다. 정인의 형부는 기석의 선배다. 불편한 시선들과 압력이 둘의 관계를 시험한다. 가시덤불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온몸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부모 말 들을걸 그랬어’라는 진부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유려한 탈출이 필요하다.

이정인과 유지호가 인상적으로 보여준 건 서로에 대한 대단한 집중이다. 가부장제는 선택을 부모(아버지), 조건에 의지한다. 그렇게 ‘정해진’ 위치만 찾고 정작 깊이 숙고하지 못하면서 패착이 쌓인다. 가부장제의 정점에 있는 기석의 아버지가 조건에 안 맞다며 만남을 꺼렸던 정인을 보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가진 한계를 스스로 폭로하는 순간이다. 강변에 처량하게 앉은 그는 아마 떠난 아내를 떠올리며 균형감각을 상실해온 자신을 자책했을지 모른다. 

주인공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없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한다. 그리고 끝내 다치지 않고 빠져나오는 과정은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방식이 아니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가 상견례까지 해놓고 결혼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막을 내린다는 거다. 그건 결혼을 복원하되 그것이 우리가 추구할 ‘유일한’ 가족 형태는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봄밤>은 어떤 모습이건 주인공들처럼 개인이 개인에게 집중하며 얻은 결론은 모두 소중하며 정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닐까?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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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 박힌 그 코는/ 내 딸의 코였어./ 빨대가 막아버린 그 숨은/ 내 딸의 숨이었어./ 한순간 멋과 편리를 위해 잠깐 쓰고 버린 것들이/ 내 딸의 숨을 막고/ 내 딸의 삶을 후벼판 거지.”(‘무제’)

시를 본 순간 숨이 잠깐 멎는 듯했다.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씨가 쓴 시다. 코에 빨대가 꽂힌 거북이의 모습에서 딸을 떠올린 유경근씨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또 그가 ‘그 사건’ 이전과 이후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에 수장된 딸과, 바다거북이가 겪는 고통이 그에겐 분리되지 않았다. 거기엔 뛰어난 시적 상상력이나 은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떠올랐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이 목숨을 잃은 딸과 인간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로 목숨을 잃고 다치는 동물이 그에겐 하나로 연결됐다. 

6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법적 사용 금지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참가자가 바다거북이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유경근씨는 생명다양성재단·시셰퍼드코리아 등 환경단체에서 기획한 ‘쓰레기와 동물과 시’(쓰동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 시를 썼다.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지난해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눈앞에 귀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몇몇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쓰레기는 불편한 형태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의성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산’과 같은 모습으로, 플라스틱 조각을 아기새에게 먹이로 주는 앨버트로스의 모습으로.

빨대가 코에 박힌 거북이, 앨버트로스의 입에서 나온 플라스틱의 이미지는 충격적이지만, 너무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나와 연결된 일로 느끼긴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는 내가 버린 쓰레기가 이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다양성재단과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공동 조사한 보고서엔 한국에서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매년 바닷새 5000마리, 바다포유류 500마리를 죽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눈감고 있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증거’가 생긴 셈이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은 바다를 건너 굶주린 앨버트로스나 거북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고 내장에 남아 썩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볍고 편한 플라스틱이 지닌 불멸성이다. 

최근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에서 ‘연결’이란 말을 새롭게 접했다. 그에 따르면 ‘연결감’은 나와 남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타자화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동물은 “가장 타자화된 타자, 남 중의 남”이다. 그는 지난해 ‘동물 축제 반대 축제’를 기획한 데 이어 ‘쓰동시’에 함께하며 바다 생물을 죽이는 쓰레기에 대해 말한다. 그는 “비건(채식주의자)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회복하는 사회운동”이라고 말한다. 

유경근씨의 시가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와닿은 것 또한 ‘연결감’ 때문이다. 바다 생물의 고통이 부모 잃은 자식의 고통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전환되어 전달됨으로써 ‘타자’였던 거북이의 고통이 내게 와닿았다. 세월호 참사를 초래한 무능력한 국가·사회 시스템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무관심과 남용이 다른 생명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육식의 성정치>에선 고기 뒤에 가려진 진짜 동물의 모습을 ‘부재 지시 대상’이라고 부른다. 삼겹살이란 명칭은 살아 움직이는 독립된 생명체로서의 돼지를 망각하게 만들고 공장식 축산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가려버린다. ‘가려진 대상’을 인식하는 데는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공장식 축산의 실상, 플라스틱 쓰레기의 폐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그저 눈감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잠시만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먹고 쓰고 버리는 행위가 세계와 다른 생명에 끼치는 영향을 직시하는 것이다. 제대로 본다면,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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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복

간밤에 비가 왔나 보다. 하루 내내 험상궂은 하늘의 표정. 태풍 다나스는 소멸했지만 그 뒤끝은 남았다. 대서(大暑)가 임박했는데 아직 매미가 기척이 없다. 올해 첫 매미소리는 언제? 하려는데 멀리서 맴맴맴, 이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는 매미답지 못했다. 이내 소리의 꼬리가 툭, 끊어졌다. 혹 내가 머릿속에서 작곡한 매미소리였을까?

동네 한바퀴를 하다가 이웃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예전에는 교사나 계단이 보였는데 이제는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은 늘 반듯한 줄로만 알았다. 실은 몹시 울퉁하고 불퉁하다. 비 오고 난 뒤에는 그 실상이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이 뛰놀다 간 텅 빈 운동장에 서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책 하나를 썼는데 그 첫대목은 이렇다. “늦은 밤 초등학교 옆을 지나는데 때마침 비 내려 운동장으로 내처 들어간 적이 있는가. 운동장 흰 모래가 밤하늘의 별들과 은밀히 내통하는 시간. 소나기 한 줄금 온 뒤 비릿한 비냄새가 코끝에 아릿할 때 초등학교 깜깜한 운동장에 서본 적이 있는가.” 

이에 촉발되어 내가 나온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오륙도에서 시작하는 갈맷길 꽃탐사를 마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학교는 기억 속의 모습에서 그리 변한 게 없었다. 다만 새삼 느낀 건 운동장이 퍽 좁아졌다는 것과 화단이 무척 빈약하다는 것. 내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을 우람한 나무를 기대했건만 운동장 사정이 넉넉하질 못했다. 화단을 뒤지니 동백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은 계요등이 눈에 띄었다. 때가 겨울 끝 무렵이라 작년 열매가 저물어가는 희미한 빛을 끌어당기며 여물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 꽃산행에서 심심찮게 계요등을 만났다. 꽃은 참 야무지고 예쁘기 그지없는데 냄새가 좀 독특하다. 사정이야 어떻든 활짝 핀 계요등은 고약한 냄새를 뚫고 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덩굴이 되었다. 하늘에 구름이 있다면 땅에는 운동장이 있다. 오늘 큰아이가 졸업한 운동장에 서서, 나를 배출한 부산의 그 운동장, 그 안에서 씩씩거리며 뛰놀았던 나, 그런 나를 바라보기도 했을 계요등을 떠올렸다. 계요등, 꼭두서니과의 덩굴성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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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가 공인한 세계 최장수 노인은 1997년 숨진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다. 122년 164일을 살았다. 그녀는 평생 직장 일을 하지 않았다. 대신 테니스, 수영, 펜싱, 사냥, 등산 등 운동을 즐겼다. 좋아했던 음식은 평범했다. 쇠고기와 튀긴 음식, 초콜릿 등이었다. 애연가였던 그녀는 많은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의 장수 비결로 운동을 꼽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두 가지로 확정할 수는 없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고 있다. 바야흐로 ‘백세시대’다. 건강관리·식이요법 등 생활습관 개선이 한몫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의료기술 발달이다. 여기에 의료산업까지 가세하면서 의료는 삶이 되었다. 병원은 이제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일상의 공간이다. ‘의료 쇼핑’이란 말도 낯설지 않다. 주기적으로 행하는 건강검진은 의료 행위라기보다는 통과의례라고 말하는 게 옳겠다. 

엊그제 보건복지부의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세(여 85.7, 남 79.7세)로, OECD 평균(80.7세)보다 2년이나 길었다. 2007년(79.2세)에 비교하면 3.5세, 1936년(42.6세)에 비하면 40세가 늘었다. 역시 의료의 힘이다. 2017년 한국 국민 1명이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6.6회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많았다. 환자 평균 재원일수는 1인당 18.5일로 일본에 이어 두번째였다. 반면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다. 호주·미국·캐나다 국민은 10명 중 9명이 건강하다고 답했지만, 한국인은 3명에 그쳤다. 오래 살지만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는 건강수명에서도 확인된다. 2017년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5세(남 64.7, 여 65.2세) 정도다. 기대수명과 17년 차이가 난다.  

기대수명이 신생아가 몇 세까지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나이라면,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질병과 부상의 기간을 뺀 활동연령을 말한다. 올바른 나이듦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함께 가는 ‘활동적인 노화’여야 한다. 오래 살기보다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계층·지역 간 ‘건강불평등’이 없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건강해야 한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사는 일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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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우리 안의 과거>라는 책을 통해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한·일관계의 위기를 둘러싸고 이적행위에 가까운, 정부 전복이라도 희망하는 듯 막말을 쏟아내는 일부 수구언론과 정치권의 행동을 살피기 위해 10년 전의 우리, 어쩌면 20여년 전의 우리로 되돌아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는 정권교체 과정은 보수기득권 세력과 일정한 타협을 통해 이루어졌다. 비록 국민이 열망하는 전면적 민주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개혁이 조금씩이나마 진행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한민국의 수구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입지와 이해를 크게 위협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에 의해 기획된 문화투쟁은 자신들이 장악한 언론사를 통한 거대한 반동이었다. 1987년 민주화투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치공간이 대폭 확장되었지만, 확장된 공간으로 스며든 것은 민주화, 노동운동 세력이기보다 그간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야합하던 수구세력이었다. 

3당 야합을 통해 한 뿌리가 된 김영삼 정부였지만, 그들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자학적 역사관으로 비판하면서 반공친미주의를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고, 분단을 고착화한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國父)’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부활시키는 상징조작에 나선다. 이승만을 앞세워 자연스럽게 박정희로 연결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의미는 사라지고, 한보와 김현철 사건 등으로 실추된 정권의 도덕성을 만회하기 위한 인기 전략으로 치부되었다. 무능한 민주화 세력에 대비되는 유능한 박정희의 근대화 세력이라는 이미지가 강력한 리더십과 청렴, 자기희생과 경제성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박정희 사망 10년 즈음에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과오보다 공적이 많았다”는 응답이 전체 61%를 차지했다. 과거는 선택적으로 기억된다는 점에서 ‘질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탄압,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실은 쉽게 망각된 반면 ‘양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각종 경제지표와 생활지표들이 부각되었다. IMF 외환위기로부터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유산과 철저하게 결별하기는커녕 도리어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했다. 표면적으로 화해와 용서를 말했지만 사과 없는 일방적 용서였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100일의 밀월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수구언론의 난타를 당했다. 이것은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 무능한 민주에 대한 실망이든, 문화투쟁의 결과였든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렀다. 수구세력이 펼친 문화투쟁의 정점은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권의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이었다. 대통령의 멘토라 불렸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이명박 정권은 과거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공중파 방송’ 때문이라 보았고, 집권 직후부터 공영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장악을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언론 장악을 위해 이명박 정권이 경찰, 검찰, 국세청, 법원,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국가기관까지 총동원하여 공영방송 사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축출되었다. 이후 MB특보 출신 사장들은 눈에 거슬리는 언론종사자들을 걸러냈고, KBS와 MBC를 비롯한 공영미디어 시스템은 무력화되고 말았다. MB정권과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 채널들을 각종 특혜와 편법을 통해 신설하도록 제도화했다. 지금도 우리는 과거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남긴 상처와 공포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며 오늘을 기만하고 왜곡하는 자들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존재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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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22일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의 규제조치 즉각 철회와 이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언제 의결될지는 기약하기 어렵다. 여야의 국회 의사일정 합의가 또 불발됐기 때문이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도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 등을 위한 의사일정을 논의했지만 본회의 일정을 잡지 못했다. 참으로 답답하고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일본 경제보복 조치에 초당적으로 대처키로 약속한 것이 엊그제다. 여야 지도자들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힘을 모으겠다고 하니 시민들은 반가웠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정쟁과 당리당략으로 무엇 하나 이행하지 못하는 정치력 부재만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 회동에서 여·야·정이 설치, 운영키로 한 범국가적 차원의 비상협력기구도 탄력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초당적으로 대처키로 한 사안까지 이 모양이니 다른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날 여야 원내대표들은 애초 도시락 오찬까지 함께하며 현안 논의를 이어가려 했지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역구 일정을 이유로 먼저 일어섰다고 한다. 지금 그렇게 한가한 때인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선 일본의 폭주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전례 없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시민들은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등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는 마당이다. 한데 정작 시민의 대표들은 일본을 상대로 일치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도대체 결의안 처리가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시간을 끈단 말인가. 시민을 위로하고 안심시켜주기는커녕 되레 화만 돋우고 있으니 이런 대의기관이 무슨 필요가 있나 싶다.

한·일 갈등 속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3~24일 방한한다. 또 대일 문제 대처를 위해 국회 차원의 미국 방문단이 24일 출국한다. 이런 때 대한민국 전체 의원이 한목소리로 일본의 보복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우리 협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꾸로 여야가 갈라진다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여야는 당장이라도 협상을 재개해 대일 결의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를 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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