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과거부터 누적된 문제들을 처리하는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과거발(發) 이슈들로 사회는 용광로처럼 뜨겁다. 그렇지만 갈등은 녹지 않고 숙제처럼 쌓이기만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채 맺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비롯됐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 갈등은 이명박 정부가 교육에 경쟁과 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을 접목시킨 결과였다. 22조원이나 강바닥에 뿌렸던 4대강 사업은 완공 후 유지보수 비용으로 매년 5000억원을 쓰면서도 ‘녹조라테’ 등으로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 방송 장악을 위해 대선 캠프 인사가 사장이 돼 남긴 후유증에 방송은 지금도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독재정권과 무능한 보수정권의 탓으로 돌리자는 건 아니다.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비용을 양산시키는 현 정부의 정책적 미숙함도 분명히 존재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포에도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선 것은, 임금과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자회사 직접고용 방식이라는 정책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근본적 대안을 실현하지 못한 채 각론에만 매달린 형국이다.

그러나 문제의 시작과 전개는 거두절미하고, 기승전 ‘문재인 정부 탓’으로 마무리해버리는 ‘애국 보수’들의 막무가내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 나라가 혼란하기를 바라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다.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저주와 비아냥이 각종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한쪽 눈 감고 일단 쓰는 정파적 시각’은 결국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타협과 협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국회는 갈등을 오히려 부풀리고 있다. 계속되는 막말에 “문 대통령이 야당 복은 있다”는 야유에도 대안세력으로서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야당, 그런 야당을 두고도 제대로 공약 사항을 추진하지 못하는 여당의 합작품이다.

설득을 위한 정교한 논리, 공감을 얻기 위한 소통능력이 없다보니 ‘흘러간 옛 노래’가 반복된다. 자사고 문제가 그렇다. “수월성 교육” “다양성 확충” “사학의 자율성” 등 10년 전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은 냉정하다. 정원을 채우지 못한 자사고가 절반을 넘는다. 총 54곳이던 자사고 가운데 이미 12곳이 자율신청으로 일반고로 전환했다. 올해도 이미 4곳이 지정 취소를 요청했다. “등록금은 비싼데 야간자율학습밖에는 해주는 게 없다. 결국 재수를 택한다”는 학부모들의 불만도 높다. 자사고 100곳을 추진하던 이명박 정부조차 2년 만에 ‘일단 멈춤’으로 돌아섰던 건 ‘자사고 과잉’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 피해는 지금 너무도 넓고 깊다. 현재 한국의 고교 서열화는 부모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각해졌다. 8개 영재학교, 20여개 과학고와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 전국 단위 자사고, 광역 단위 자사고, 일반 단위 자사고 순으로 서열화가 고착됐다. 대입에서 결정되던 인생이 이제는 고입에서 결정된다. 사교육은 이를 파고든다. 서민은 부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권탄압 수준의 가혹한 생활 속에 공부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어떻게 ‘수월성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구분짓기다.”(전경원 참교육연구소장 인터뷰)

그럼에도 지금 자사고 한 곳을 법적으로 취소시키기가 쉽지 않다. 복구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도 촉발한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보(洑)에 막힌 강의 흐름을 되살리자는 ‘자연성 회복’은 물부족을 우려하거나 수막농업을 도입했던 지역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갈등을 무조건 ‘진보와 보수’의 차이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득권을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를 이념대립이란 껍데기로 포장한 것이 의외로 많다.

최근 “지금 우리 회사는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전 정권과 지금 정권에서 잘나갔던 사람들이 매일매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한 방송사 동료 기자의 말에 귀를 의심한 적이 있다. 옳고 그름을 놓고 직(職)을 건 논쟁이 아니라 그저 이전 정권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은 지금 배제되고, 이전에 배제됐던 사람들이 “메인 스트림”이 되면서 벌어지는 자리싸움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과거의 잘못된 정책이나 결정을 바로잡는 데는 거대한 복구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갈등을 조정해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건 정책결정권자의 책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편을 갈라 싸우자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활약하고 있다. “극단을 경계했으며, 포용과 균형의 정치”를 보여준 고 노회찬 의원이 그립다.

<박재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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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의 다문화가족 가정폭력 통계에 대한 필자의 기고문을 비판하는 글이 월요일 게재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의 표본설계뿐 아니라 설문지 구성과 결과 분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밝히며, 석원정 소장의 비판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가정폭력에 관한 국가 승인 통계는 여성가족부가 2010년 이후 3년마다 시행하는 ‘가정폭력실태조사’다. 2016년 조사에서는 ‘가정폭력’을 부부 폭력과 가족원 폭력으로 나누고, 부부 폭력은 최근 1년간과 그 이전으로 시기를 구분한다. 부부 폭력은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성적 폭력과 통제의 다섯 유형으로 나누고, 가족원 폭력은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의 세 유형으로 구분해 조사했다. 각 지표에서 최근 1년간 폭력피해는 ‘전혀 없다’ ‘1년에 3~4회’ ‘월 1회’ ‘월 2~3회’ ‘주 1회’ ‘주 2~3회’ ‘거의 매일’의 7점 척도로 측정했고, 그 이전 피해는 ‘있다’ ‘없다’의 2점 척도를 사용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는 이러한 지수·지표 체계를 깡그리 무시하고, 가정폭력을 심리언어적 학대,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건강상 불이익, 활동자유 구속, 고국과의 단절 강요, 경제적 학대의 일곱 유형으로 구분하고, 대상과 시기를 통합해 조사했다. “한국 체류 중 귀하의 남편이나 남편의 가족들이 귀하에게 다음과 같은 행동을 얼마나 자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뭉뚱그렸다. 총 21개의 지표를 제시하고, 각각에 대해 ‘전혀 없다’ ‘별로 없다’ ‘대체로 있다’ ‘종종 있다’ ‘자주 있다’의 5점 척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국가 승인 통계의 가정폭력 지수와 달리 구성했다면, 그에 대한 타당도와 신뢰도 분석이 필수다. 그러나 보고서에서는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곱 개 하위지수는 그 값을 산출하지도 않았다. 자료 처리 과정에서 ‘별로 없다’를 어떻게 처리했는가도 중요하다. ‘전혀 없다’와 ‘별로 없다’를 묶어 ‘없다’로 분석했다면, ‘가정폭력 등 인권침해 사례는 하나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인권연구의 대원칙을 어긴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 결과를 조작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대상과 시기를 구분해 조사한 결과를 재구성한 값을 ‘뭉뚱그려 조사한 결과’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매우 크다. 특히 질문 문항과 선택지가 아예 다른 경우 비교를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구나, 두 조사에서는 공통으로 가정폭력을 ‘여러 지표 중 어느 하나라도 경험’한 것으로 측정했으므로, 대상과 시기를 구분해 조사한 결과를 단순히 더한 값과는 다르다. 석원정 소장이 산출한 수치는 그래서 공허하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어느 한 유형만 경험하기보다는 여러 유형을 중복 경험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비교 근거로 제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와 ‘국제결혼중개업 실태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와 같은 비확률 표본의 일회성 조사가 아니라, 법률에 근거하여 3년마다 시행되는 확률 표본의 시계열 조사다. 필자는 그 값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했다.

비확률 표본조사라면 국가기관 명의로 공표해서는 안된다. 언론은 오류 정보를 유포하여 다문화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인권위가 발표한 통계의 원자료와 분석과정은 전문가들에게 검증받아야 한다. 인권위의 결단이 필요하다.

<설동훈 |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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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로 귀촌한 뒤 텃밭을 일궈 토마토, 가지, 피망 따위를 조금씩 심고는 아침마다 둘러보면서 농사가 재미있다던 우리 부모님은 옥수수를 심고는 손사래를 쳤다. 강원도 찰옥수수라고 하면 갓길에 큰 양은솥을 걸어놓고 쪄낸 것만 사 먹어 본 도시 사람들은 옥수수 한 알이 땡볕 아래에서 옆 순을 떼고, 풀을 뽑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 여물 거라고는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은 작년까지 옥수수를 심어 이맘때 택배로 한 자루씩 보냈다. 그때마다 냉동고에 얼려놓은 옥수수는 이듬해 햇옥수수를 쪄서 다시 들일 때 반쯤 버려졌다. 그래서 부모님이 올해부터는 옥수수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며칠 전 현관문 앞에 옥수수 한 상자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아니, 또…. 구두덜거리면서 보니 보낸 이가 다르다. 영월에서 온 옥수수 상자를 열어보니 밭에서 바로 딴 듯한 옥수수가 가지런히 들어 있다. 나는 보낸 이의 이름을 되뇌면서 그해 여름을 떠올렸다. 차가운 바다에서 막내딸을 잃은 부모는 내가 찾아갔을 때 마침 점심을 먹고 있었다. 딸을 찾아 장례를 치른 뒤 암이 재발한 아버지는 영월에 집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한 달 사이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다혜 아버지는 점심을 먹고 왔다는 나한테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내놓았다. 첫 수확인데 잘되었다면서 웃는 그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저 사람이 영월에 가면서 교회도 다니자고 해서 같이 나가요. 자기가 교회를 다녀야 우리 막내를 만날 수 있다고….”

찐 옥수수를 잔뜩 싸 주면서 다혜 어머니가 귀엣말을 하는데, 가슴이 먹먹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해 겨울 다혜 아버지는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막내딸과 남편을 잃은 다혜 어머니는 홀로 영월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봄에 전화로 옥수수가 잘 크고 있다고 말한 그는 혼자 옥수수를 따면서 얼마나 여러 번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을까. 나는 다혜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옥수수 찌는 법을 배워 냉동실에 넣어놓았다.

“우리 애들 생각했던 분들하고 나눠 먹고 싶어서요.” 이렇게 맛있는 옥수수를 딸 입에 넣어주지 못하는 그의 말이 두고두고 저리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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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은 반지하에서 아무 계획 없이 살던 이였다. 하지만 4수생인 기택의 아들이 부잣집 박사장 딸의 과외선생이 되자 나머지 구성원들도 다 그 집에 취업하고픈 욕망을 갖는다. 희대의 사기를 동원한 끝에 기택과 아내, 그리고 딸도 결국 박사장 집에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넷이서 돈을 번다면 얼마 안 있어 반지하를 벗어나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건 바로 기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박사장네 가족들은 기택네 가족에게서 불쾌한 냄새를 맡는다. 박사장은 그걸 ‘가끔 지하철을 타면 나는, 행주 삶는 듯한 냄새’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할 때, 사람은 위축된다. 기택은 냄새를 없애보려 노력하지만, 딸의 일갈은 그런 노력이 헛수고임을 말해준다. “그거, 반지하 냄새야.” 결국 분노한 기택은 사고를 치고, 그 대가로 박사장네 가족은 파멸을 맞는다. 여기에 대한 소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인데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는 쪽과, 당장 먹고사는 게 중요하니 참아야 한다는 쪽, 둘 다 틀린 의견은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이 한창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맞서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체결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다. 당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3억달러를 받았는데, 일본에 강제로 징용당한 우리 국민들의 청구권이 여기에 포함됐는지에 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 측은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판단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가 돈을 받아놓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사안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결론을 낼 때 7명은 다수의견을 냈지만, 3명은 별개 의견을, 2명은 다수의견에 대해 반대의견을 낼 정도였다. 물론 이걸 빌미로 경제전쟁을 선언한 일본의 행위는 치졸하다. 게다가 일본은 식민지배 이외에도 숱하게 우리를 괴롭혔다. 국민들이 일본을 규탄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정부가 볼 때는 이번 사태가 꼭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전쟁에 들어가면 정권의 지지율이 오르는 데다 경제가 나쁜 것에 대한 책임을 일본에 전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을 매개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한·일관계의 악화는 재앙 그 자체다. 일본음식점 주인은 텅 빈 가게를 보면서 눈물짓고,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부품을 수입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른다. 누군가는 이 사태가 ‘하늘이 주신 전화위복의 호기’라며 일본 부품의 국산화를 주장하지만, 국산화라는 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해 다른 의견을 내거나, 정부가 일본과 협상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문빠’로 일컬어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그런 사람들에게 ‘토착왜구’ ‘너희 나라로 가라’ 같은 막말을 해대기 때문이다. 정부 대응에 대해 회의적인 멘트를 날렸다는 이유로 방송사 앵커가 하차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민정수석이란 분도 합세한다.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에 대해 한국 정부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정권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을 겨우 견뎌냈는데, 이젠 친일파가 될까 봐 눈치를 보게 생겼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선빵’을 멋지게 맞받아쳐 놓고 인제 와서 굽히자니 영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부라면 자존심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된다. <기생충>에서 기택이 한 선택은 한 가족만 파탄시켰지만, 정부의 선택은 수많은 이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처럼 우리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 끝까지 싸워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니 얼마든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787년 전,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무신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며 항쟁의 길을 택했다. 적당히 항복을 받고 전쟁을 끝내려던 몽골은 이 조치에 격분한다. “(몽골 장수) 살리타는 이참에 아예 고려를 완전히 제압하고자 강화도를 공격하는 대신 분풀이 삼아 한반도 전역을 유린하기로 마음먹었다.”(<종횡무진 한국사 1권>, 463쪽)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사로잡힌 백성은 20만이 넘고, 죽은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467쪽) 결국 고려가 사신을 보내 항복하기까지 했으니, 고려가 그 항쟁으로 얻은 것은 없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당시 고려보다 낫고, 지금 일본은 당시 몽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경제전쟁이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 큰 손해를 입힐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난, 정부가 자존심을 잠시 접어두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련다. 이러면 내게 어떤 말이 쏟아질지 잘 알고 있기에, 미리 얘기한다. 그래, 나 친일파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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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지각을 하거나 막차를 놓쳤을 때 간신히 잡아 탄 택시는 서울의 교통상황을 탓하며 아슬아슬한 곡예·난폭 운전을 서슴지 않는다. 기사님의 신세한탄, 베트남전 참전이나 정치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몇 번의 경험으로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랩(Grab)택시나, 우리나라의 ‘웨이고 택시’ ‘타다’의 쾌적한 실내와 친절한 서비스를 한번 겪어보면 왜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운송서비스가 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택시업계는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외면하면서 줄곧 ‘무조적인 카풀 전면 금지’ ‘타다 결사 반대’를 요구하는 등 대화와 타협이 없는 힘겨루기(치킨게임)만을 벌이는 양상을 보여 왔다. 국회 중재로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가동해 합의를 도출하고도, 생존권 위협으로 인식하는 기존 업계와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면서 자신들의 사업 방식을 고수하는 플랫폼 업계 간의 정면충돌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성장과 발전은 시계(視界) 제로에 빠지는 듯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17일 국토교통부는 택시와 플랫폼의 혁신과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필자는 대화와 협의를 통해 상생방안을 마련하고 업계의 지지를 얻어낸 정부의 노력이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일방의 승리나 양보가 아니었다. 플랫폼 기업은 더 이상 불필요한 분쟁과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제도권 내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와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가맹사업 활성화 등을 통해 기존 택시를 혁신의 파트너로 끌어안으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던 기존 택시도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규제의 틀 안에 있던 기존 택시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녹여낸 것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만, ‘규제 프리형’을 표방하면서 기존 택시업계의 반대를 이유로 렌터카 허용을 명확히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택시를 포함한 새로운 운송서비스 시장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어렵게 시장 참여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낸 만큼 이 기회를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며, 이제 남은 것은 택시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들의 공감이다. 발표된 상생방안의 제도화를 위한 실무 논의기구는 무엇보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를 더 배려하고, 업계의 이해관계보다는 ‘국민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번 기회야말로 도약이냐 정체냐의 중대 갈림길에 선 택시가, 다시 한번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교통서비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하헌구 |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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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뜻밖의 모임에 초대 받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인훈 선생의 1주기 모임에 와서 추모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최인훈 전집>을 펴낸 문학과지성사의 부탁이었다. 청소년 때부터 존경해온 선생을 추모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었지만 문학을 잘 모르는 사회학 연구자이기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선생의 가족이 추모사를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게 됐다.

“아내가 물컵을 찾아 내게 주면서 말했다. / ‘저더러 애들 데리고 왔다 가라시는군요.’ /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 ‘응 그러시는군. 일부러 내가 올 건 없고, 오겠거든 애들 데리고 당신을 보내라는군.’ ”

소설 <화두>의 마지막 장면이다. 미국에 계신 선생의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통화를 마친 다음 선생과 아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선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라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 이 장면을 소설의 마지막에 놓아둔 까닭은 뭘까. 그 답변은 <화두>의 2002년판 서문 ‘21세기의 독자에게’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재심’도 ‘부활’도 없다.” 그런데 “기억은 생명이고 부활이고 윤회다.” 선생의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아들보다 손주들을 찾은 것은 ‘기억의 전승’을 상징한다. 조부모의 기억이 부모의 기억을 통해 아이들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게 개인의 역사이지 않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어머니를 나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딸아이가 기억하듯 말이다. 하버마스가 이성의 중요성을, 라캉이 욕망의 의미를, 바우만이 변화하는 현대성을 알려줬다면, 이렇듯 선생은 내게 ‘기억의 힘’을 가르쳐줬다.

돌아보면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다. 두 가지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문학사상’에 발표했던 내 글을 전집 <화두> 1권의 말미에 싣고 싶다고 하셔서 보내드렸던 일이었다. 나는 <화두>에 나타난 선생의 내면의식을 관념의 세계시민과 현실의 세계시민이라는 문제틀로 살펴봤다. 현실의 민족주의와 이상의 코즈모폴리타니즘 간의 긴장은 비서구 지식인이 견뎌내야 할 사유의 숙명임을 선생은 일찍이 통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의 교양 프로그램 <한국 지성사> 진행을 맡았을 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선생께 전화를 드렸던 일이었다. 선생은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1시간 가까이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과 <화두>의 주인공 최인훈이 전화선 너머 저쪽에서 내게 직접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뜻밖의 감동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은 삶과 작품이 완전히 일치한 드문 작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의 한 정체성인 <광장>의 주인공이 남과 북을 관찰했다면, 또 다른 정체성인 <화두>의 주인공은 미국과 소련을 여행한다. 선생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관념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에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럼에도 선생이 탁월한 작가인 까닭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남과 북의 분단시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를 모두 깊이 있게 성찰한다는 데 있다.

분단과 냉전은 지난 20세기 후반 우리 사회를 규정한 두 겹의 시대적 구속이다. 선생을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남북조 시대 예술가’, 문학평론가 김병익 역시 ‘남북조 시대 작가’라고 부른 바 있다. 남북조 시대의 다른 이름은 분단 시대와 냉전 시대다. 냉전분단체제를 제대로 넘어서기 위해선 이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고, <광장>과 <화두>가 이 이해에 대한 최고의 인문사회과학 텍스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추모사를 위해 선생의 따님인 최윤경이 최근 내놓은 산문집 <회색인의 자장가>를 읽어봤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딸의 기억들은 잔잔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추천했던 책의 하나인 지드의 <좁은 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좁은 문>을 권한 아버지는 내가 잘 모르는 아버지다. <좁은 문>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 좁다란 문을 열면 책 안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만날 수 있을지. 만나게 된대도 가슴이 철렁하고, 못 만나게 된다면 한없이 허전할 것이다. (…) 좁은 문을 열면 아버지가 서 있을까.”

이 구절을 읽은 사회학 연구자인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 작가 최인훈의 문학 세계는 광복 이후 절망과 희망, 고뇌와 영광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성을 이해하는 좁은 문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이라면, 아니 시민들이라면 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삼가 선생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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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여러분, 더위가 극심하니 혹시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있는 분은 월요일(22일)까지 미뤄주길 당부합니다. 이런 폭염에 범죄를 저지르는 건 단순한 깡패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고, 아주 위험하기도 합니다.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즌 3를 즐기거나, 페이스앱(얼굴을 나이 들게 만들거나 변형시켜주는 앱)을 갖고 놀거나, 지하실에서 가라테 연습을 하세요. 선선해질 월요일에 모두 다시 만나요.”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레인트리시 경찰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이날 브레인트리를 포함한 매사추세츠 동부 지역의 체감온도는 화씨 101도(섭씨 38.3도)를 기록했고 20일에는 화씨 111도(섭씨 43.9도)까지 치솟았다. 미국 CBS방송은 지난 주말 미 동부와 중서부를 펄펄 끓게 만든 폭염으로 최소 6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문자 그대로 ‘살인 더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너무도 유명한 이 문장은 더위가 불쾌감이나 고통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엄을 위협할 수도 있음을 전한다.

‘택배노동자 기본권쟁취 투쟁본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여름휴가 보장을 요구했다. 택배사와 홈쇼핑업체, 온라인쇼핑몰을 향해 “8월16~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하라”고 촉구했다.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이른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도 법적으로 휴가를 보장받지 못한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나, 휴가를 내려면 자기 돈을 주고 대신 배송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마솥더위가 이어질 8월, 택배노동자들에게 땀을 닦고 숨 돌릴 ‘이틀’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자주 신세지는 소비자로서 외친다. “이틀, 아니 1주일쯤 늦게 받아도 괜찮습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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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개혁이나 새로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 제도와 정책의 기반인 사회적 조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4대강사업, 최저임금제에 따른 논란 등은 그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9/07/23/l_201907240100277120022798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 외환위기 이후 강요된 각종 제도 개혁과 정책의 혼선은 총체적으로 한국 제도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외부에서 강요된 개혁은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자기 분석과 이해 없이 무분별한 제도 개혁은 그 실효성도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신뢰의 위기와 불안감을 가져왔다.


독일과 소련도 후발산업화 과정에서 선진국 추월 강박증으로 사회 전체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주요 사례다. 독일과 소련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한 사회나 집단이 그 사회 전체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소련의 경우와 같이 폐쇄된 체제하에서 체제의 자기 모순을 체크할 수 있는 기제의 부족, 독일의 경우처럼 산업화의 사회적 영향을 일반화하는 학문적 경향을 들 수 있다.

독일 전후 저명한 사회학자 다렌도르프는 왜 독일인은 자신의 문제를 모르게 되었고, 왜 독일 문제의 해답을 밖에서 찾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그는 독일형 산업화가 왜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사회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나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독일 산업화에서 국가의 역할, 이에 따른 거대한 경제조직과 집행상의 스피드 그리고 관료들의 온정주의적 성향을 독일 사회의 특징을 규정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의 작동 결과 독일 사회가 산업화는 이루었으나 봉건적 형태(industrial feudal society)를 띠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체제와 사회에 관한 자체 파악의 결여가 붕괴를 초래한 극단적 사례다. 필자가 수년 전 국제회의에서 전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만나 공산당 서기장으로 소련 사회와 체제 전체에 대한 이해의 수준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놀랍게도 소련공산당체제 붕괴의 시초가 된 발틱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 깔려있는 민족주의적 성향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답변의 이면에는 소련체제의 근본적 문제가 깔려 있다. 소련은 스탈린 시대 이룬 가시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벌어진 체제왜곡의 본질을 70년 가까이 외면해 왔다. 스탈린의 강압적 경제발전 방식, 즉 불가예측적인 경제목표의 상향 조정과 집행과정에서의 속도전은 지역공산당과 국가행정체제로 하여금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끊임없는 허위보고를 하게 하여 급기야 거짓말 공동체를 낳았다.  

그 결과 12차에 걸친 중앙의 계획 경제는 단 한 번도 계획대로 달성된 적이 없었다. 엄청난 대국이었지만 체제는 사실상 사상누각이었다. 이런 체제하에서는 비록 공산당 서기장이라 하여도 전체 파악이 어려웠던 것이다.

경제발전이 가져온 한국 사회 변화의 특징은 무엇일까? 한국은 산업화의 성공이 곧 근대화라는 신화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다. 이의 배경에는 한국 사회 전반이 후진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길 열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학문적으로 서구 경험에 기초하여 일반화를 추구하는 미국 사회과학의 영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 관한 기존 논의들은 대부분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개혁과 정책이 실패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김영삼 정부의 섣부른 세계화가 좋은 사례다. 외환위기를 가져온 무리한 세계화 추진은 대통령의 선진국 진입에 대한 집착이 큰 요인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후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한국 사회가 무언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열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거는 치러지고 대통령들의 공약은 끊임없이 남발되면서 급기야 그 실천율은 30%대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최저임금, 전교조, 노사, 환경 문제 등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하지 못한 정책의 한계를 확인하게 된다. 대통령이나 정권을 비판 또는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우리 사회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 보아야 할 때다. 거시적으로 급속한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의 특성을 재규명하고 미시적으로 분야별로 전개되고 있는 제도의 충돌을 한국적 특성을 감안, 우리 몸에 맞는 새로운 제도 창출로 전환하기 위해 지적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다.

<하용출 | 미국 워싱턴대 잭슨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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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을 앞두고 학생회에서 주관한 새내기 새로배움터에 참가했을 때다. ‘문선’이라 불리던 율동을 따라 하라 해서 숨고 싶었고, 자꾸 일어나 노래하라 시켜서 울고 싶었다. 2학년 선배들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연극은 급조한 티가 너무 났다. 처음 마셔본 맥주는 보리차 맛이었고, 막걸리라는 술은 식감이 상한 요구르트 같아 싫었다. 어서 일정이 끝나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둘째 날 밤, 마지막 순서로 준비된 풍물패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꽹과리를 앞세운 풍물패는 우리를 전부 이끌고 야외공터로 나갔다. 흥겨운 농악연주에 이어 오북놀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다. 2월 말의 얼음 같은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둥글게 모여든 다섯 개의 북이 일제히 머리 위로 들려져 둥둥둥 하던 순간 심장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던 느낌이 지금도 기억난다. 카리스마 있는 꽹과리보다, 장중한 징보다, 새침한 장구보다 나는 북이 더 좋았다. 낮고 굵게 울리는 북소리가 참말로 좋았다.

개강하고 몇 주 지나 동아리 가입 시즌이 되었다. 당시 단과대 소속 소모임을 학회라 불렀는데, 선배들이 저마다 학회에 가입하라며 밥도 사주고 매점에서 빵이나 우유도 사주고 그랬다. 

내 경우 학생식당 밥이 아닌 돈가스나 철판볶음밥도 종종 얻어먹곤 했는데, 당시 나와 교양수업을 함께 듣던 단짝 때문이었다. ‘소공녀’라는 별명을 지닌, 얼굴이 눈송이처럼 하얀 친구였다. 선배들은 다들 소공녀를 본인 학회에 들어오게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한참 설명하고 설득한 다음,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엉거주춤 서 있던 내게도 무얼 하고 싶은지 묻곤 했다. 

“풍물패요.” 나는 답했다. 북을 배우고 싶다고, 커다란 북이 머리 위에서 둥둥둥 할 때 심장이 뛰었노라고 말이다. 그러자 얼굴 긴 선배가 “모르긴 몰라도 북은 무거워서 여학우들이 들기 어려울 텐데…” 하는 것 아닌가? 옆에서 얼굴 동그란 선배도 여학생들은 대개 꽹과리나 장구를 치더라며, 북이나 징을 드는 경우는 못 봤다고 했다. 꼭 북을 치고 싶다며 시무룩해진 채 있던 나는 듣고 말았다. 학회실 구석 낡은 소파에 파묻혀 담배를 훅훅 피우던 복학생 선배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하는 걸 말이다. “꽹과리만 한 쪼끄만 계집애가 북은 무슨?” ‘꽹과리만 한 계집애’라는 말에 그만 마음이 상해서 풍물패 대신 단과대 학보사에 들어갔지만, 스무살로 돌아가 배우고 싶은 걸 하나만 고르라면 여전히 북이다.

대학원생이 된 후에도 교내에서 풍물 연주를 들을 때면 그때껏 내가 학교 울타리에 남아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해질 무렵이면 교정의 수풀 속에서 악기 연습하는 소리가 울리곤 하였고, 간혹 운 좋으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풍물패 정기공연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소규모 공연의 관객은 대개 그 동아리 선배들인지라, 지나가던 누군가 “얼쑤” 추임새를 넣으며 계속 서서 듣기는 아무래도 민망했다. 다른 볼 일이 있는 양 괜스레 그 앞을 수차례 오가며 슬쩍슬쩍 귀동냥하곤 했다.

어느 초여름 토요일 밤, 선후배들과 저녁 먹으러 나가다 학생회관 앞마당에서 북과 쇠를 두드리는 학생들을 보았다. 우리가 식사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도 여전히 거기 모여 악기를 치고 있었다. 다들 한껏 흥이 오른 듯했다. 교내 보안경비업체의 눈을 용케 피해 조그만 모닥불까지 피워 두었다. 

일행더러 먼저 들어가라 하고 나는 그곳에 홀로 남았다. 캄캄한 밤 모닥불이 훨훨 타오르고, 흥이 난 친구들은 북을 두들기며 펄쩍펄쩍 하늘까지 뛰어오르고 있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던 그 순간. 귀퉁이에서 훔쳐만 보면서도 나는 내가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언제부터인지 모교를 방문해도 풍물 연습하는 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 내가 재직하는 대학 교정에서 역시 아직 한 번도 못 들어보았다. 이제는 방음처리된 동아리방 안에서만 연주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물놀이 자체가 더 이상 학생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두둑두둑 빗소리 듣는 날이면 두둥두둥 북소리가 그리워진다. “들리던 소리도 들리지 않네. 그 어디서 울리고 있을까.”(노래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중에서)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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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 군용기 3대가 23일 오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고 이 중 러시아 공중조기경보기(A-50) 1대는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 침범했다. 공군 전투기가 A-50기를 향해 경고 사격했다. 중·러 군용기가 동시에 KADIZ를 무단 진입한 것은 물론 다른 나라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군 관계자는 “중·러 두 나라 군용기가 동해 상공에서 합류해 비행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양국 군이 합동훈련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부터 중국 군용기의 KADIZ 침범이 빈번해지더니 러시아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중·러 양국의 전례 없는 주권 침해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침범했다. 사진은 러시아 TU-95 폭격기 모습. _연합뉴스


출처:경향신문DB

중·러 군용기들의 이날 기동은 명백히 의도적인 행위이다. 공군은 사전 통보 없이 KADIZ로 들어온 중국에 대해 20여회, 러시아 폭격기와 조기경보기에 대해 10여회 등 30여회 무선 경고통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응답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비행했다. 러시아 조기경보기는 KADIZ 이탈과 재진입을 반복하면서 독도 영공을 2차례나 침범했다. 총 7분간 우리 영공을 비행했다. 용납할 수 없는 주권 침해에 공군 전투기가 경고사격을 가한 것은 당연한 조치이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국가들이 지키기로 약속한 선이다. 사전 통보 없이 무단 침범하는 것은 도발로 간주된다. 동해의 KADIZ는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과 중첩되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진입하지 않는 한 침범할 이유가 없다. 이번 중·러 합동 훈련이 다음달 5일부터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한 무력시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 방위 태세를 점검하는 동시에 동해 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기존 동북아 안보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도발이자 한국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직후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FSC) 서기에게 “이런 행위가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항의했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각각 주한 중국·러시아 대사와 무관들을 불러 항의했다. 중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동해 쪽 KADIZ를 침범한 이래 같은 행동을 반복·강화해 왔다. 이제 중·러가 합동으로 훈련하고, 영공까지 침범하는 데에 이르렀다. 더욱 실효성 있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KADIZ·영공 침범은 미·일 대 중·러의 신냉전 조짐과 함께 동북아 정세의 변화 징조로 볼 수도 있다. 군은 물론 정치권 모두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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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울산지검이 수사 중인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위반 사건에 대해 22일 ‘계속 수사’ 결정을 내렸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가 위조 면허증으로 약사 행세를 한 피의자의 확정되지 않은 혐의와 공개돼서는 안되는 증거까지 경찰이 보도자료에 담아 언론에 알린 것은 법 위반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의위 결정 취지는 피의자의 인권과 개인정보 등은 법으로 엄격히 보호돼야 한다는 것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피의사실 공표는 죄의 유무가 가려지지 않은 피의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여론재판이자 인격살인 행위다. 증거와 무죄추정 원칙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억울한 누명을 쓴 상황이라면 더욱 크다. 그 피해를 법에 호소해도 무시되기 일쑤다.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08~2018년 사이 접수된 피의사실 공표 사건 347건을 분석한 결과 기소에 이른 사례는 전무했다.

수사당국이 중대범죄를 저지른 현행범이나 공인에 대한 수사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 차원이나 국민의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원칙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형법 등은 수사기관의 기소 전 피의사실 누설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토록 하고 있다. 피의자 신상공개도 중대범죄자로 확실한 증거가 있고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대법원도 충분한 증거와 무죄추정 원칙을 준수할 때만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사기관들이 ‘일상’처럼 피의사실을 흘리는 것은 ‘공보준칙’이라는 이름의 훈령을 통해 그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는 탓이다. 범죄재발과 오보·추측성 보도 방지, 공공안전과 국민 협조 등이 필요한 때는 수사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공보준칙은 형법과 배치되고,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 게 우리 법체계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최근 피의사실공표죄의 엄격한 적용과 기소 전 공개할 수 있는 범죄 사실은 입법을 통해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도 이달 중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정부는 예외규정은 세부기준으로 명확히 하고, 공개여부도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인격권 침해를 막을 수 있고, 국민 알권리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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