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직설

해마다 이때면 특정 주제에 따른 ‘원고 청탁’이 돌아온다. 엉겁결에 받은 전화, 대뜸 ‘복날 먹는 거’로 써 달라는 말이 건너왔다. 그 ‘먹는 거’ 가운데 ‘민어’는 이미 정한 바였다. ‘이열치열’로 기둥 세우고, ‘반가 음식’에 ‘복달임’으로 벽 치고 지붕 인다는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갸우뚱하다 답했다. “복달임의 핵심은 지역과 공동체의 휴식,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땡볕 피하기예요. 지혜는 그런 데 있어요. 오로지 먹는 소리면 복달임의 참모습을 말할 틈이 없죠. 휴일의 휴식에 별미 있으면 더 좋겠죠. 삼복 중의 식재료와 음식이 다 복달임이 됩니다. 민물잡어가 그중 만만했고, 잘 익은 과일, 과채가 오히려 청신합니다. 있는 대로 수박, 참외 나누어 먹고 버무리나 개떡쯤이 휴식의 별미로 넉넉했어요.”

말 나온 김에 민어 이야기나 좀 하겠다. ‘민어(民魚)’는 예전에 많이 잡힐 때에는 보통 사람들이 반찬거리에서 제수에 이르기까지 두루 쓴 어물이다. 민농엇과, 대구과, 민어과 물고기를 두루 이르는 한자 이름을 쓰기도 했다. 정약전(1758~1816)은 <자산어보>의 민어 항목에서 부세를 민어의 아종으로 여겼다. 예전에는 지역에 따라 민어뿐 아니라 민어를 닮은 살점 넉넉한 흰살 생선을 두루 민어라 했을지 모른다. 일본 문헌에서도 실물과 어휘를 둘러싸고 조선과 비슷한 뒤섞임이 확인된다. 한편 <난호어목지>는 민어의 다양한 쓰임과 인기를 기록하면서 “무릇 바닷물고기로서 수요가 큰 것 가운데 이 물고기처럼 요긴한 것이 없다”고 했다. 다 떠나서, 민어는 맛이 좋다.

뼈는 끓이면 끓일수록 짙고 깊고 풍미 그윽한 곰국을 낸다. 기름질(oily) 뿐 아니라 개운한 지방질의 풍미는, 영어를 빌리면, 잘 익은 버터처럼 녹진하다(buttery). 여기에 넉넉한 살점까지 어울린 민어탕은 과연 진미이다. 횟감으로 빠지겠는가. 결을 살린 숙수의 칼질이 연출한 민어회는 씹을수록 기분 좋은 촉감이 잇새를 간질인다. 간질이면서 고소함을 뿜는다. 수분을 적절히 제어하면? 잘 말린 약대구의 예도 있지만, 해풍과 일광에 마른 민어의 감칠맛은 그야말로 폭렬하는 순간이 있다. 찌면 찐 대로 바닷내와 손잡은 달큰함이 배가된다. 구우면 소금이 밀어내고 증폭한 ‘buttery’한 풍미가 감칠맛과 손잡고 거침없이 먹는 이의 미각에 육박한다. 규모 있게 뜬 포에 달걀옷을 입혀 지진 민어 전유어를 보고 있으면, 음식이 이렇게 얌전하고 어여쁠 수가 있구나 싶다. 부레를 포함한 내장은 내장대로 회에 탕에, 또 데쳐 두루 먹었다. 알집으로는 알젓과 어란으로 변신했다. 굴비처럼도 가공하고, 북어처럼도 가공했다.

민어는 여름에만 맛있는 어물이 아니라, ‘여름에도’ 맛난 어물이었다. ‘복달임에도’ 좋았다. 누구에게나 고마운 어물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먹방을 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민어를 두고 복날 먹지 못하면 안될 것처럼 굴었다. 2000년대는 호들갑 고착의 시기이다. 1960년대 이후 보편화한 복달임 음식인 삼계탕과 구별되는 새 기삿거리, 새 방송용으로 요긴했던 것일까. 대중매체는 자연 조건이 바뀌면서 덜 잡히고, 가공의 다양성도 떨어지면서 값이 오른 민어에 ‘고급’ ‘반가 음식’을 뒤집어씌웠다. 그뿐이었다. 앞서 말한 민어의 미덕은 몸집 큰 흰살 생선에 대체로 깃들어 있다. 농어·대구·보구치·수조기·참조기·부세가 어디 빠지는 자원인가. 크면 큰 대로 깊은 맛이 있고, 상대적으로 작으면 염장하거나 건조하거나 반건조해 다시 맛을 들여 유통해 먹었다. 오늘날에는 그래도 서남해 산지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 내력과 가공과 조리와 관능의 세부 그리고 덜 잡히면서 잠깐 잠복한 민어의 가능성은 먹방이 궁금해하는 바는 아닐 테다. 한여름 보통사람의 휴식은? 병어·붕장어·뱀장어·전복·자두·복숭아·보리·밀·옥수수·토마토·감자·고추·호박·가지·오이·연·칡에 이르는 이 철의 먹을거리와 그 음식 문화는? 또한 먹방용 화제는 아닐 테다. 먹방이 궁금해하지 않는 바, 굳이 써 보인다. 복날 앞두고 받은 원고 청탁은 정중히 사양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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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은 2012년부터 매년 수년 내에 우리 사회와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되는 기술을 10가지 선정해 발표해 왔다. 올해는 지난 1~3일 중국 다롄에서 개최된 하계 다보스포럼에 맞추어 2019년도 ‘10대 떠오르는 기술’을 발표하였는데 세계경제포럼의 발표 자료에 근거하여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순환경제를 위한 바이오플라스틱이 선정되었다. 내 연구실에서도 오랜 기간 연구하여 상당한 기술을 축적한 미생물이 직접 생산하는 생분해성 고분자가 포함되었다. 또한, 지구상에 가장 풍부한 리그노셀룰로직스 분해물을 원료로 미생물 발효에 의해 단량체들을 생산하여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기술들도 포함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문제가 급부상하였고, 그에 따라 예전부터 개발되던 기술들이 본격적으로 더 발전하면서 선정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 가격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번째로는 사회적 로봇이 선정되었다. 인공지능으로 나날이 똑똑해지는 로봇은 카메라와 다양한 센서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사회적 지능과 감성지능을 빠르게 배우고 있으며 상대방을 보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를 유추하는 알고리즘을 장착하기 시작하였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사가 만든 로봇 페퍼는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얼굴과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인지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1만5000대가 공항고객서비스, 쇼핑도우미, 호텔 체크인 등을 도와주고 있다. 블루 프로그 로보틱스사의 버디는 보다 더 많은 감정표현을 하며 비서업무와 집의 자동화와 보안업무까지 해내는 로봇으로 발전하였다. 소비자용 로봇은 2025년에는 2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며, 고령화 사회를 맞아 사회적 로봇은 더 빠르게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측되었다.

세 번째로는 나노구조와 나노구멍 등으로 덮은 마이크론 수준의 얇은 표면을 만들어 유리로 만든 렌즈를 대체할 수 있는 메탈렌즈가 선정되었다. 아직은 대량생산과 유리만큼 좋은 성능으로 빛을 투과하게 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극복되면 휴대폰의 카메라뿐 아니라 전문가용 카메라, 실험실 광학현미경 등을 아주 작게, 그리고 값싸게 만들게 되는 날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네 번째로는 무질서한 단백질들을 신약 타깃으로 하는 기술이 뽑혔다. c-Myc, p53, K-RAS, NUPR1 등과 같이 암에 연관된 무질서한 단백질들은 구조가 계속 변화되어 신약 타깃으로 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눈부신 생물물리학의 발전과 계산능력의 향상으로 이러한 무질서한 단백질들도 신약 타깃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앞으로 암과 치매 등의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 번째로는 환경오염을 줄이는 똑똑한 비료가 선정되었다. 농작물 재배 시 수율을 올리기 위하여 질소와 인비료를 듬뿍(?) 뿌린다. 하지만 대부분은 식물의 영양성분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대기나 하천으로 손실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료성분들을 작은 캡슐에 담아 토양의 온도, 산도, 습도 등에 따라 천천히 내 놓도록 하는 서방형 그리고 조절형 비료기술이 개발되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센서 기술들이 결합되면서 원하는 때와 장소에 이렇게 맞춤형으로 비료가 제공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여섯 번째로는 가상 모임 협업기술이 선정되었다. 멀리 떨어진 여러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고도 함께 일하는 것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결합하고 5G 기술을 등에 업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 스카이프 미팅과 같이 멀리 떨어져 정보만 교환하던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협업을 할 수 있는 날도 기대해 본다.

일곱 번째로는 첨단 식품 추적과 포장기술이 선정되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매년 6억명이 식중독에 걸리고 그중 42만명이 사망한다. 앞으로는 작은 센서를 식품 포장이나 접촉면에 넣어 음식이 상했는지, 개봉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주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상하는 정도를 예측하여 섭취가 가능한지 여부까지도 알려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기술과 연계하여 생산부터 소비까지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덟 번째는 안전한 핵반응기 기술이 선정되었다. 현실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충분한 에너지를 얻는 것에 원자력만큼 좋은 것이 없다. 대부분은 안전하지만 만약 사고가 나면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걱정거리다. 현재 핵반응기는 핵연료로서 우라늄 다이옥사이드가 들어 있는 지르코늄 합금막대를 사용하는데 냉각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지르코늄이 과열되면 물과 반응하여 수소를 만들고 이것이 폭발할 수도 있다. 실제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러했다. 따라서, 전기 공급이 끊겨도 냉각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는 기술과, 아예 물 대신 액체 소디움이나 용융염 등으로 물을 대체하여 수소 생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기술 등이 개발되고 있다.

아홉 번째로는 DNA 데이터 저장기술이 선정되었는데, 이 기술에 관해서는 내가 세계경제포럼 10대 기술 발표 시 해설을 해주었다. 현재 빅데이터 시대에 사는 만큼 흥미로운 주제이므로 다음번에 상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열 번째는 재생에너지의 대용량 저장기술이 선정되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에너지 저장기술도 빠르게 발전해 왔는데, 여분의 에너지를 물의 위치에너지로 바꾸었다가 사용하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널리 쓰였으나,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저장도 급속히 늘고 있고, 흐름전지 기술을 이용한 에너지 저장도 활발히 연구 중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올해 ‘10대 떠오르는 기술’에는 에너지, 헬스케어, 식량, 신소재 등 다양한 기술들이 뽑혔다. 앞으로 이 기술들이 미래에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들을 포함한 중요한 미래기술들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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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상의 주인은 곤충이다. 곱등이, 노린재, 집게벌레 등이 지구의 주인이라니 불쾌감이 치솟겠지만, 지구 환경을 만들고 인류를 선택한 것은 곤충이다. 

공룡시대에서 포유류 전성시대가 된 것도 단지 하늘에서 날아온 불덩어리 덕분만은 아니라고 한다. 거대 고사리 대신 화분식물이 지구를 뒤덮어 포유류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준 것도 벌, 나비, 파리와 같은 곤충들의 수분활동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의 착각과 달리 우리가 곤충들을 선택한 게  아니라  곤충들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곤충은 지구 환경도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더 이상 석탄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흰개미 등이 나무 잔해를 분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게다가 전체 곤충의 90%는 익충이라고 한다. 각종 유기물을 먹어치우고 분해해서 지구를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나게 한 것도 곤충이다. 곤충이 못 먹는 플라스틱으로 인해 지구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곤충이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위협적인 동물도 곤충이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코브라 따위가 강력하다고 하나, 이들에 의해 매년 죽어가는 사람은 불과 몇 십, 몇 백에 불과하다. 반면 곤충은 상비군 격인 모기 하나만 해도 매년 인류 50만명을 학살한다. 파리, 빈대, 진드기, 바퀴벌레까지 나설 것도 없다. 차포 떼고 졸만으로도 페이커급의 슈퍼플레이를 하는 셈이다. 

물론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하여 벌레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고 치면 사람이 가장 나쁘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곤충을 퇴치하는 회사보다 사람을 퇴치하는 무기회사가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곤충은 미래산업의 주역이다. 곤충으로부터 신소재를 만들고, 불치병 치료제도 만든다. 미래의 단백질 공급원도 곤충이 대체할 거라고 한다. 밀웜과 같은 곤충식품만 먹어도 환경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 인간이 소만 먹지 않아도 매년 1500억㎏ 이상의 메탄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더 이상 오리에게 유황을 먹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곤충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정확히는 벌레시대가 더 적합하겠다. 벌레를 숭상하고 흠모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서로를 벌레로 분류하고 있다. 틀딱충, 맘충, 한남충, 급식충, 애비충, 설명충, 진지충 등등… 거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벌레로 분류된다. 혹자는 이것이 모욕적인 혐오표현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인간 중심주의에 빠진 고루한 단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맘충, 틀딱충 등등이 혐오표현이라면 스파이더맨, 앤트맨도 혐오표현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길러내는 엄마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산업화를 이룬 어르신들의 공덕을 곤충의 초인적인 능력에 빗대어 맘충, 틀딱충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납득하기 어렵다면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떠올려보라. 벌레가 사람보다 낫다는 방증 아닌가. 게다가 ‘나는 개똥벌레’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이라고 스스로나 사랑하는 상대를 벌레에 빗대어 노래 부르기도 한다. 물론 메퇴지, 쿵쾅이, 검새, 기레기와 같이 안타깝게도 곤충에 이르지 못하는 부류들도 있다. 분발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벌레로 부르는 이유가 ‘상대를 비하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우리는 기초교육을 통해, 갈등과 이견은 사회 규범을 조절하거나 만들어내고, 연합과 제휴를 통해 구성원 간의 유대를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일부의 문제를 전체 부류의 문제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권력의 음모이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벌레라고 부르면서 박멸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 모두가 벌레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벌, 개미와 같이 철저하게 조직화, 분화된 진사회 동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견도 없고 번뇌와 고통도 사라지고 하나의 목적과 조직을 위해 철저하게 복속하고 그것이 존재의 목적이 되는 통제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소통은 사라지고, 걸러지지 않으나 사실상 검열된 정보와 선동의 흐름만이 교환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면 친일파 혹은 빨갱이’라는 기적의 논리나 ‘나만이 정의’ ‘국민은 옳다’는 식의 사상의 포르노가 횡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들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분위기와 증오의 격류에 휩쓸려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니체도 ‘착각은 개인들에게는 기이한 일이 되지만 집단, 당파, 민족, 시대의 경우에는 엄연한 규범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맘충, 틀딱충, 한남충 등은 혐오의 표현이 아니어야만 한다.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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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갯불과 함께 장마. 후텁지근 열대야. 가공할 습도는 땀에 절게 만든다. 십자고상의 예수님도 이렇게 더우면 양팔 벌리기 기구운동을 잠시 멈추고 땀을 닦으신다. 대웅전의 부처님도 스님이 선풍기를 살짝 틀어주면 안면에 미소가 ‘살짜기 옵서예’로 번진다. 엊그제는 연꽃 방죽이 있는 완주 송광사에서 연차 다회를 가졌다. 또 강원도 강릉땅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절집 청학사. 나도 실무자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동무들과 우연히 방문했다. 스님이 내신 귀한 차를 얻어 마셨다. 더위를 불사하고 팔도 유람을 했는데, ‘하나라도 더 알라’는 사우디 최고 선생님 존함마따나 앎과 배움이 느는 유람이었다. 이름만으로 거뜬히 세계 여행이 가능하다지. 인도에 가장 위대한 철학자 ‘알간디 모르간디’, 인도 최고 요가 수행자 ‘안꼰다리 골라꽈’, 타짜 챔피언 중국의 왕창 따와 프랑스의 몽땅 따…. 이런 분들 성함이나 주워 섬기고 살다가, 제법 철이 들었나 요샌 ‘하나라도 더 알라’. 

이름난 다인 중의 한명인 지인이 첫물차를 안겨주어 팔팔 끓인 샘물에 내려 마시는 중이다. 땀을 내면 그만큼 차라도 마셔야 한다. 좋은 잎차는 가슴 밑바닥까지 뜨겁게 만들어 삿된 더위를 내몬다. 베트남에 가면 리아(Ria) 잎사귀를 이용해 수프를 끓이거나 요리에 곁들인다고 한다. 숲에서 난 열매들과 고기 등을 내다 팔아도 리아 잎사귀만큼은 팔지 않는단다. 발에 쥐가 나는데 특효라고 믿어 신령하게 아끼던 잎사귀. 틱낫한 스님도 망명 중에 이 리아 잎사귀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하루는 누가 리아 잎사귀라고 가져와 수프를 끓여 반가웠는데, 아뿔싸 엉뚱한 풀을 뜯어 끓였고 모두 미열을 앓았단다. 잎사귀 하나로도 고국 땅을 그리워할 수 있다. 누군가 이 땅을 그리워하는지 잎사귀들이 살랑살랑 손을 흔든다.

슈퍼맨의 가슴에는 옷이 스판이라고 에스자가 새겨져 있다. 슈퍼맨도 좌선을 하고 차를 마시고자 고른 천이렷다.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흙에서 나서 흙으로 가고, 물에서 나서 물로 가는 덧없는 인생을 다들 느껴보는 것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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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이다. 모두들 날씨에 민감하다. 반면 기후변화에는 무관심하다. 날씨와 기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는 지구온도가 장기간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한다. 날씨는 그 균형에서 벗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눈앞의 날씨변화는 쉽게 알아차리지만, 소리 없이 진행되는 기후변화는 감지하지 못한다. 문제는 미세한 기후변화가 삶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구 평균온도가 0.5도만 올라도 해수면이 10㎝ 높아져 1000만명이 위험에 빠진다는 통계가 있다.

최근 독일 연구진은 기후변화의 속도가 동물들이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가 인간에 앞서 동물의 위기를 부를 것이라는 불길한 소식이다. 과학자들은 현재 상태로 12년이 흐르면 기후위기는 최악의 상태에 직면한다고 예측한다. 지금의 탄소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하로 줄이지 않으면 지구 문명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중국조차 공산당 당헌에 ‘생태문명’을 삽입했을까. 21세기를 충적세와 다른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규정하는 학자도 있다. 인류에 의한 자연파괴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대라는 뜻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시대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화두는 기후위기다.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후 30년 가까이 이 문제를 붙잡고 있다. ‘녹색평론’ 최신호(2019년 7~8월호)에는 모두 20편의 글이 실려 있다. 시, 서평, 연재물 등을 빼면 기후위기(6편), 민주주의와 정치(3편), 기본소득제(2편)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기후위기 해결이 당면 과제라면 민주주의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고,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경제적 삶을 위한 장치다. 비핵화, 한·일관계 등 현안에 관심 있는 이들은 ‘녹색평론’이 비정치적이고 탈시사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녹색평론’만큼 정치적인 잡지도 없다. 김종철은 정치를 다루되 현상이 아니라 근본을 얘기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종철은 ‘근본적 생태주의자’다. 생태문제를 문명사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녹색사상가’다. 그는 이번호 ‘녹색평론’ 권두에세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를 녹색화라는 큰 틀에서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비핵화 논의에 매달리고 있을 때, 김종철은 비핵화 이후,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그리고 있었다. 물론 한반도의 녹색화는 비핵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는 가까운 곳과 먼 곳,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는 복안(複眼)을 가졌다. 황우석 사건이 터졌을 때, 그리고 한·미 FTA가 논의됐을 때 그는 여론과 다른 의견을 냈다. 그때는 호된 비난을 샀지만, 지금은 다르다. 10여년 전 기본소득제를 얘기했을 때도 반향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 의제가 됐을 뿐 아니라 일부 농촌은 이미 시행 중이다.

김종철은 단순한 환경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환경과 기후의 위기를 문명사적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위기의 근원을 근대 문명으로 지목한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에 근간을 둔 산업경제가 지속되는 한 환경과 기후의 위기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기후위기의 해법은 자본주의 성장과 발전의 고리를 끊는 데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김종철이 여느 환경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아나선다는 점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대안은 ‘소농을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다. 그가 근대문명이 아닌 소농 중심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비근대 사회’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고 인간 본성을 지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마을자치와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종철 생태사상론집 &lt;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gt; 참조)

‘녹색평론’은 줄곧 생태에 대한 근본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전국에서 50여곳의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 운영될 정도로 열성독자도 꽤 된다. 그러나 ‘녹색평론’의 생태주의는 아직 사회의 주류 담론이 되지 못하고 있다. 모두 ‘기후위기’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발등의 불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위기 대책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나선 이후 유럽 전역에서 청소년들의 ‘기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기후 문제에 대해 너무 조용한 한국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구약시대의 선지자 이사야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며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수백년이 지나 현실화됐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선언하고 예수 영접에 나섰다. 김종철과 ‘녹색평론’이 울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음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그 외침이 도시로, 마을로 울려퍼져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을 실천에 나서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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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이 24일 현재 91일째 묶여 있다. 역대 계류 기록을 보면 2000년(107일), 2008년(91일)에 이어 세번째였지만, 이제 2위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대로라면 추경안 계류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울 판이다. 추경은 예산 투입의 적기를 놓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2대 국회는 대구·부산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9차례 추경안을 처리해 집행한 바 있다. 전시(戰時) 피란 국회에서도 처리했던 추경안이 지금은 여야의 극한대치로 심사조차 제대로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여의도에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추경안이 무산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그동안 국회에서 별별 꼴을 다 봤지만 산불과 지진 피해 이재민을 도울 목적으로 편성된 긴급예산안이 묵히고 묵히다 폐기 전망까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국회가 이렇게 된 데는 일차적으로 자유한국당에 책임이 있다. 한국당은 추경안 처리 조건으로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 경제실정 청문회, 북한 목선 사건 국정조사, 정치개혁특위·사법개혁특위 위원장 교체, 국방장관 해임안 등을 내걸며 발목을 잡았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추경을 볼모로 이참에 한밑천 잡자는 얄팍한 상술(商術)과 무엇이 다른가. 나경원 원내대표는 23일 연구·개발 업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제외,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또 다른 조건을 추가로 내걸었다. 추경안(6조7000억원) 규모는 올해 예산 469조원의 1.4%에 불과하다. 여기에 온갖 정치 현안을 갖다 붙여 압박하니 누가 보더라도 과도한 정치공세로밖에 비치지 않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지금은 경기 불황에 일본의 보복공세가 이어지는 비상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여당 원내대표단과 오찬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드릴 수 있도록 정치권은 협치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고 추경안 처리를 거듭 당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치력을 발휘해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는커녕 야당에 맞서 똑같이 싸움만 벌이고 있다. 6월 임시국회 종료일인 지난 19일 이후 여야 원내대표들은 물밑 접촉마저 중단했다고 한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당이 ‘야당 탓’만 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이제는 추경안을 둘러싸고 각종 진기록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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