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의도 정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뼛속에는 ‘그때그때 달라요’ DNA가 숨어 있다. 자신과 당의 유불리에 따라 과거를 싹 잊어버리고 대응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말’ 정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당에서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공수가 교대되면서 되풀이되다 보니 악순환의 정치문화로 뿌리내렸다. 상황에 따라 변신해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반응은 히스테리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니 정치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공인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면 신뢰받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도 ‘내로남불’로 비난받고 있다. 야당 시절에는 극단의 표현으로 혹평을 쏟다가도 여당이 되면 180도 태도를 바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리화하는 모습이 카멜레온의 전형으로 비친다.

조국 전 민정수석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임 수석 인선안 발표에서 떠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내가 행위자일 때와 관찰자일 때가 일관적이지 않은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편향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할 때와 남이 하는 것을 바라볼 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이중 잣대는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기제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가혹하게 비난하다가도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변명하는 모순적 태도를 그저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정치인이나 정당은 달라야 한다. 신뢰의 정치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려면 언행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언행을 평가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등등을 알아낸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에 대한 여야의 논평대립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금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을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무부 장관에 최측근 민정수석을 기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최악의 측근인사·회전문 인사”라는 논평을 냈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여당이 되어 똑같은 상황을 옹호하고 있는 모양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지금은 헌법질서에 대한 모욕이자 보복·공포정치의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가 검찰권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명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검사 전성시대의 절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이 다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던 때다. 거기에 청와대 파견검사까지 합치면 청와대가 일선 검찰청 이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는 모양새여서 검찰공화국 소리를 들을 만했다. 청와대의 검사들, 검찰에 장악된 법무부가 청와대와 검찰 간의 끈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대통령 최측근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부 장관이 되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사정라인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연결고리를 통해 검찰의 중립성이 심히 해쳐질 것이라는 우려가 설득력이 있었고 현실화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매우 느슨해졌다. 그만큼 검찰권 장악 우려는 해소된 상태다. 아무리 대통령의 분신으로 인정받는 인물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더라도 검찰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제도적으로도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청와대에는 파견검사도 없고,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사파견도 불가능해졌다. 민정수석비서관도 검사 출신이 아니다. 검찰이 장악했던 법무부도 상당부분 탈검찰화가 이루어졌다.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이 비검찰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확 달라진 상황이다. 사람만 달라졌다면 야당의 우려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인사권으로 검찰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이전 정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여당의 태도를 ‘내로남불’로 깎아내릴 수 있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행’이라는 명목만 보면 똑같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 실질이 다르다. 그리고 기획하고 착수했던 법무·검찰 개혁의 완수라는 법무부 장관의 임무도 다르다. 

올바른 비판을 하려면 자기가 경험했던 것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시각과 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반대편에 서 보고 한쪽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해야 대립정치의 악순환도 끊어낼 수 있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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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찾은 교토의 여름은 무덥고 습했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 두 나라가 연일 주고받는 날선 언어와는 달리 교토에서 만난 지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대화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악화 일로를 걷는 한·일관계로 이어졌다. 짧은 시간에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 간 출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회의적 의견이 다수였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은 일본 지식인층에서조차 한·일관계를 논할 때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언어가 실종된다고 개탄했다. 그 자리를 ‘신념의 언어’가 차지했다. 한·일관계가 서울 출발 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정부 간 교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학 간 학문적 교류와 협력 역시 예전과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확정된 교류 일정도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취소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특히 일본이 우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분야의 협력은 더욱 그랬다. 열려있던 소통의 문들조차 하나, 둘씩 서서히 닫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일관계가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이지 않고 이념(또는 신념)적으로 경화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한다. 

첫째, 한·일의 민과 관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답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각자 신념에 매몰되어 그 신념이 지향하는 것들을 절대선이자 정의로 맹신하고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사실(fact)의 힘을 믿기보다는 강철 같은 신념을 내세워 한·일관계의 현실을 바꿔보려고 한다. 사실이 아닌 완강한 신념으로 무장한 언어는 소통이 아닌 불통을 만들었다. 그 언어는 곧장 무기가 됐다. 결국 ‘간헐적 반일 감정’의 주기만 단축시켰다. 

둘째, ‘군국주의 일본’이 보여준 야만성이 잠복기를 거쳐 아베의 시대에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아베에게 던질 ‘아름다운 복수’는 어쩌면 우리만의 공허한 감성적 수사일 수 있겠다 싶다. 일본이라고 해서 이성적 집단이 분출하는 높은 윤리의식과 정의가 왜 없을까마는 미국과 탯줄이 연결된 아베의 시선이 불길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를 더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때문이다. 이러한 ‘아베의 일본’을 이웃국가로 두고서 한·일관계의 미래를 밝게 그려나가기란 어렵다. 

셋째, 한·일관계의 이른바 패러다임 이동(shift)이 시작됐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이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의미한다고 할 때, 한·일관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당대 일본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한국에 대해 공유하고 있던 신념과 가치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양국 모두 ‘정상적 인식’으로 서로를 보는 것이 한계에 도달, 이제는 새로운 렌즈로 양국관계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작금 한·일의 불화는 두 정치지도자가 지니고 있는 세계관 충돌의 결과이다. 무엇보다 아베의 일본은 유독 한국인에게만 깊은 회오(悔悟)도 없이 역사로부터 애써 도망을 치려고 한다. 아베가 그 역사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1965년 한일기본협정 시대의 한국이 아닌 지금의 우리가 여전히 일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긴 호흡으로 역사를 읽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퇴행적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갈등에서 전환점은 어느 지점에서 만들어질 것인가?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긴 해도 한국이 1965년 기본협정을 폐기할 의사가 없다면 그리고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기를 희망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면 어떤 형태로든 봉합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처의 흔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폐 속에 결핵을 앓은 자국이 완치가 되더라도 남는 것처럼 말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 격돌한 시간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저녁자리를 끝내고 어둠이 짙게 내린 교토의 거리로 나서자 고온다습한 공기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이병철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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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는 29일 일부 관련 보도에 대해 “현재 ‘청해부대의 파병’과 같은 보도가 있었는데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우리 선박의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호르무즈 파병은 지난 24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 자리에서 파병 요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각국 외교관들을 불러 호르무즈해협의 ‘민간선박 공동호위 연합체’ 결성에 참여하도록 설명회를 열었다. 이 호위 연합체에 청해부대를 파견하자는 방안이 파병안의 개요다. 아덴만에서 한국 선박 호송 등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전구역 확대는 신규 파병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70~80%가 통과하는 길목인 만큼 이 지역의 안정은 한국의 경제적 이해에도 직결돼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이 2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해리 해리스 주미대사(왼쪽)와 함께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파병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호르무즈 긴장, 즉 미·이란 간 갈등이 왜 벌어졌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공동으로 타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봉쇄하면서 긴장을 키웠고, 지난 5~6월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피격사건이 잇따르자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연합군 결성에 나선 것이다.

요컨대 호르무즈 긴장은 미국의 일방통행식 합의 파기에서 촉발됐다. 게다가 유조선 피격사건은 경위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은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격화시킬 뿐이다. 한국의 파병은 명분도 없는 데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 이란과의 관계파탄은 물론 중동 일원의 친이란 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최우방을 자처하는 일본조차 파병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동맹국이자 한반도 평화를 좌우할 힘을 가진 미국의 요청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면 다른 지역의 분쟁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은 그 원칙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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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러시아의 한국 영공 침범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핵무기 도입을 주장했다. 조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며 “미국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즉각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틈만 나면 나오는 한국당의 전술핵 배치 주장에 어이가 없다.

조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다. 조 최고위원은 “언제까지 북한의 웃음거리, 조롱거리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며 “대한민국이 핵무기로 무장돼 있다면 일본, 러시아, 북한, 중국이 이렇게 얕잡아 보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동북아지역이 핵 도미노에 빠져 핵위협이 더 커지게 된다. 그전에 핵무장 시도만으로도 국제사회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당의 이런 주장에 이미 여러 차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더구나 과거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에 한국군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고 관여는 더더욱 할 수 없는 핵무기를 다시 들이자는 게 제정신에서 하는 소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일회성이 아니다. 당내 북핵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인 원유철 의원도 전날 핵무장론을 언급했다. 과거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한 바 있다.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주장을 조장하는 당의 풍토이다. 황교안 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이 북한 편에 서 있으면 이 나라와 국민은 누가 지킨다는 말인가”라며 9·19 남북군사 합의 폐기를 주장했다. 지난 27일엔 “우리가 이겨야 할 상대방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믿기지 않는 위험천만한 인식이다. 과거 새누리당 집권 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위기를 유발해놓고 허둥댄 것은 까맣게 잊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것은 안보위기를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한국당이 진정 안보정당을 표방한다면 최소한의 합리성은 담보해야 한다. 허황된 핵무장론을 배척하지 못하는 한 한국당은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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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자 5명 중 1명이 ‘아빠’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상반기 민간부문 육아휴직자 5만3494명 중 남성이 1만1080명으로 20.7%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중이 20%를 넘은 것도, 반기 만에 1만명을 돌파한 것도 처음이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9% 급증했다. 이런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사상 처음 2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남성 육아휴직이 늘어나는 것은 ‘맞돌봄’ 문화가 확산하고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진_ 서성일 기자

육아휴직 아빠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엄마 혼자 육아를 도맡는 ‘독박 육아’로는 갈수록 깊어지는 저출생 현상을 완화할 길이 없다. 육아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은 개인적으로 자아실현 기회를 상실하는 일일 뿐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다. 저출생·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부모와 사회가 함께 키우는’ 문화가 필수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성 육아휴직이 아직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가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7%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59.2%)보다 소폭 줄기는 했으나 대기업 쏠림은 여전하다. 육아휴직이 자녀를 둔 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로 인식되고 장려되는 기업문화 정착이 시급하다. 기업은 육아휴직을 장기적·거시적인 인적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론 기업에만 책임을 미룰 수는 없다. 남성 육아휴직을 늘리려면 정부의 더 많은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중소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 더욱 다양한 우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한 육아휴직 재원을 다양화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준다. 따라서 혜택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고용보험에 가입한 임금노동자들이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일반조세나 통합사회보험기금 등 다양한 재원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충당한다. 그래서 자영업자·프리랜서·실업자들도 육아휴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육아빠(육아하는 아빠)’의 보람과 기쁨을 더 많은 아빠들이 누릴 수 있도록 더 촘촘한 제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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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인 7월28일 장맛비가 내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차별에 저항하는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의 2주기 추모식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님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박정기님은 지난해 향년 89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막내아들 박종철은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에 의해 23세로 죽어갔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마석 모란공원 추모식에 아버님과 30년 동안 활동을 같이했던 유가족들을 비롯해서 민주화운동의 동지들, 그리고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저는 추모식에서 장남수 유가협 회장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에 이어서 추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추도사를 여기에 옮깁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자리에 서니까 종철이 초혼장을 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1989년 3월3일로 기억합니다만, 3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장대비가 하루 종일 퍼부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정을 나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들러서 노제를 하겠다고 했지만 경찰이 길을 막았습니다. 길바닥에서 장대비를 맞고 하루 종일 버텼습니다. 결국 장례 일정은 늦어져 마석 모란공원에서 불을 켜고 하관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 종철이 유택을 마련하지 못했던 일에 후회가 많았습니다. 강압에 의해서 임진강 얼음물에 아들의 뼛가루를 뿌렸습니다. 

“철아, 이 애비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그때의 아버지의 외침이 많은 이들을 울렸습니다. 고문에 의해 막내아들을 빼앗기고도 무덤 하나 만들어주지 못한 못난 ‘애비’…. 아버지는 다른 열사들의 추모식에 가서 한편에서 우시고는 했습니다. 그 회한이 너무 컸습니다. 그런 회한이 다른 열사들의 묘보다 종철이 묘를 크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아버지와 딱 30년을 같이 활동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유가족과 동생을 잃은 형 유가족으로 만났습니다. 그 30년을 친아버지보다 더 자주 만났고, 대화를 했습니다. 유가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요? 저는 아버지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일기에 제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거리의 투사’로 많이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늙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아버지는 금테 돋보기안경을 끼고 신문기사를 열심히 찾아 읽으셨고, 책도 부지런히 읽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으로 33년째 근무하던 중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했던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나 자신도 이웃도 구하지 못하고 여든여덟 해를 살았지만, 내가 구하려 한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이었다. 나는 아직도 철이가 죽음과 맞바꾸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쓰신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아버지의 공부는 책 읽는 공부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으로, 온갖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통일선봉대장으로 몸으로 아끼지 않고 당신이 갈 곳을 찾아서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1991년에는 강경대 사건과 관련해서 구속이 되어 영등포교도소에서 몇 달을 사셨습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감옥살이를 그대로 따라서 했습니다. 신입으로 감방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사코 말려도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낮은 곳으로 향하려던 종철이의 뜻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걸레 들고 방바닥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재소자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싸움을 하기도 하면서 아버지는 민주투사로 거듭났습니다. 

책을 읽다가, 신문을 읽다가 의문 나는 일이 있으면 공책에다 꼭 메모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했습니다. “박 국장” 때로는 “박 선생” 하면서 전화를 거셨는데, 그 시간이 새벽 5시, 6시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침형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에 새벽 4시경에는 이미 잠에서 깨었다가 그래도 생각해주신다고 참고 참다가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늦게 들어와 한참 곤한 잠에 빠져들어 있는 그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가 솔직히 짜증이 났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거리에 나오신 것은 지난 촛불항쟁 때 부산에서였습니다. 그 추운 날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게 무리였지만 누가 아버지를 말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 무렵에 아버지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때는 새벽시간이 아니라 낮 시간이었습니다. “박 선생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잘 있나?” 오늘 아버님의 따뜻한 그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생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뵌 건 지난해 3월이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한 번 찾아뵈어야지 하던 참에 부산에 일이 있어서 내려갔던 길에 들렀습니다. 종부 형에게 전화를 하니, “정신이 없으셔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시지만 너는 알아보시지 않을까?”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도통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하셨습니다. 전날 문무일 검찰총장이 사과를 하러 다녀갔고, 그런 통에 기력이 더 없으신 것 같다고 간호사들이 말해주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스물세 살의 철이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무엇을 꿈꾸었을까? 나는 그 답을 지금도 찾고 있다.”

아버님은 저세상에서도 공부를 하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먼저 오신 이소선 어머님, 문익환 목사님, 박용길 장로님, 김진균 교수님, 김근태 선배님, 그리고 최근에 자리를 잡은 노회찬 의원님에게 궁금하신 걸 물어보시고 토론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 아버님은 막내아들이 죽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걸 “한 인간의 사랑”일 거라고, 이미 오래전에 답을 찾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추구하셨습니다. 

항상 배우고 공부하는 유가족,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어른, 그래서 끊임없이 약자와 고통받는 자의 곁을 찾아가셨던 그 발걸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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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가 말하길,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뉜댔다.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이건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한 기준이며 그 나머지에겐 모두 아차상을 주겠노라고 그는 썼다.  

나의 학생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을 종종 본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다. 어떤 얘기를 하려다 말 때. 말 못할 이유로 당장의 솔직함을 포기할 때. 남 탓만 할 수 없을 때. 가장 원망스러운 건 자기 자신일 때. 아이들은 복잡한 마음으로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고친다. 그렇게 쓴 것들은 아주 조금 노인의 문장처럼 보인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글을 완성해놓고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 원고지에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그저 다음주에 쓴 이야기는 내게 보여주고 싶어지기를, 안심해도 되는 독자로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애쓸 뿐이다. 10대들 앞에 글쓰기 교사로 서는 건 마음 놓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연습 같다. 아이들이 비밀과 죄책감을 쌓으며 어른이 되어갈 때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 중 하나일 수 있도록 말이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여느 소년들처럼 그 책 속의 소년도 슬픔과 그리움을 겪으며 자라난다. 그는 엄마가 아빠와 싸운 뒤 만드는 카레의 맛을 안다. 그 카레는 맛이 없다. 미움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소년은 생각한다. 또한 소년은 죽음이 두렵다. 엄마와 아빠가 죽을까봐, 누나들이 죽을까봐, 자기가 죽을까봐 두렵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막 눈물이 난다. 소년은 울면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을 하는 노래도 있다. 뮤지션 신승은이 쓰고 부른 ‘쇳덩이’라는 노래다. 노래는 부모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거냐고. 아이가 이런 세상에 왜 나를 태어나게 했냐고 물었다면, 어른은 이런 나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고 묻는다. 쇳덩이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 적어본다.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아/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쇳덩이가/ 왜 나의 가슴팍 위에 자리 잡고 있는지/ 숨을 왜 잘 못 쉬고 있니/ 네가 물었고/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쇳덩이가/ 왜 너의 가슴팍 위에도 자리 잡고 있는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서로가 들어줄 수 없는 딱 그 모양의 쇳덩이/ 왜 태어난 건지 모르겠어/ 엄마 아빤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건지/ 어쩌면 거기서부터 난 잘못되어 있는 건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포옹을 할 때마다 귀를 닫고서 했었지/ 사랑을 잘해보고 싶어/ 깨끗하고 행복한 사랑/ 애초에 내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가 나서서 말해준다면/ 오늘부로 깨끗이 포기할 텐데/ 너의 뒤통수를 만지는 일도/ 함께 아침을 차려 먹는 일도/ 논쟁을 하다 와락 껴안는 일도/ 어쩌면 나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이었다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꼭 해보고 싶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이 노래가 흘러나와 나는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건넜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가슴팍 위 쇳덩이를 솔직히 말해보려던 참에 상대방의 가슴팍 위 쇳덩이도 보여 입을 다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감각 같았다. 내 것 아닌 쇳덩이의 색깔과 모양과 무게도 곧바로 알아보는 안목. 서로 들어줄 수 없음을 알고 귀를 닫은 채 하는 포옹. 

이 가사는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일까.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일까. 아니라면 노인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일까. 잘 모르겠다.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이 아니라는 것만 알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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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처음 주창했다. 남과 북이 통일되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일 텐데 통일대박론의 맹위는 정권이 바뀐 지금에도 여전하다. 그러나 ‘대박’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 중에는 한국인들이 잊어버린 게 하나 있다.

1930년대 만주국 개발론자들이 즐겨 쓰던 ‘보로모케(떼돈벌이·ぼろ儲け)’란 단어가 있다. 당시 일제는 괴뢰 만주국과 조선을 통일하려 했는데 그때 조선인들에게 만주 개발을 홍보하며 썼던 단어가 ‘보로모케’, 즉 대박이다. 조선총독부가 ‘조만일여’론을 주창하며 조선 자본가들에게 만주의 석탄자원 등의 채굴에 참여하고 철도와 기타 부동산, 공장 등에 투자해 ‘대박’나라고 홍보했다. 신문 광고에는 ‘일확천금’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고 이광수 같은 작가도 열심히 선전에 참여했다.

당시 만주 개발론자들에게 만주와 조선의 평범한 민중들을 위한 풍요로운 공동체 건설 따위의 철학은 없었다. 만주군 군관학교를 다녔던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대일본 만주국의 유산>(고단샤, 2010)이라는 책에 관련 일화가 나온다. 기시 노부스케는 1936년 만주국 정부 산업부 차관이었다. 박정희는 이후 일본 총리가 된 기시를 1961년 11월에 만났다. 기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만주 개발 5개년 계획’이 실제로 잘 안됐던 것을 언급했고 박 대통령은 만주국에서 못해낸 경제발전론을 한국에서 이어받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강남 개발로 땅부자들이 생겨났지만 그곳에 원래 살던 진짜 땅주인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1930년대 만주 개발의 수혜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만주의 평범한 농민들이 만주 개발로 부자가 됐을까? 결국 부자가 된 건 조선과 일본의 자본가들이었다. 만주 주민들의 균등한 삶의 질 향상은 없었다. 

‘조선·만주를 통일하고 만주의 자원을 개발해 경제대박을 내자’는 만주 개발론을 보고 따랐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용어까지 비슷한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왔다. 통일을 경제발전의 논리로 국한시키는 그 철학에도 놀랐지만, 아버지 때의 만주 개발 선전용어였던 ‘대박’이란 단어를 비슷하게 따온 것에서도 놀랐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 대박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맥락을 잊어버린 것 같다.

만주와 조선을 통일하고 만주의 자원을 수탈해 부자가 되려 했던 일본과 조선의 자본가들이 즐겨 사용한 ‘대박’이란 단어를 남한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민중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 남한 자본가들이 자신들을 수탈하려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나는 ‘한·몽 평화협력 회의’ 참석차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 논의가 된 것은 남한 자본이 어떻게 몽골 자원을 개발해 공장을 만드느냐 따위들이어서 크게 실망했다. 한국인들은 몽골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는 데만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지금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태도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도 노골적으로 ‘대박’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통일에 대한 기본 철학은 박근혜 정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남북정상회담 때 동행한 기업인들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자본의 이익 창출 논리대로만 움직이며 사는 대기업 총수들이 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까지 남한식으로 개발해서는 안된다. 남한에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킨 경제개발 방식을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게 남한 자본가들과 그들에게 둘러싸인 문재인 정부의 인식이다. 북한도 남한처럼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다 장악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망하는 식으로 개발되는 게 그게 한민족의 미래인가?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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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방에서 학생 상담을 하다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노노재팬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일본제 필기도구를 많이 쓰고 있는데, 쓰던 것은 버리지는 않지만 새로 구입할 때는 꼭 원산지를 확인해서 일본제가 아닌 것을 고르고, 가능하면 국내 제품을 사용한단다.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방학식 날에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방학 중 노노재팬 활동 캠페인을 하려고 했다가 학교에서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에 대한 캠페인은 불가’라고 허락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요즘 노노재팬 운동이 정부나 단체, 어떤 기관의 주도가 아닌 순수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동력들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무렵부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위안부소녀상 건립운동에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게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적극적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입시제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교과서를 익히고 문제의 정답을 잘 맞히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량도 입시 평가 대상이 되면서 시간을 쪼개서 참여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이 강조되었고 학생들이 교과서 밖으로도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런 의미 있는 활동에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지금 노노재팬 캠페인의 경우,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인가 아니면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인가, 또는 우리 정부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따른 인접국의 반발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데도 이에 대해서 학생들이 공부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반론하며 토론하는 과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배움의 과정 중인 학생들에게 적절한 탐구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 과정에서 발견해야 하는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역량을 준비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단순하게 친일은 나쁘고 우리는 옳다는 선동적 논리나, 우리가 잘못했으니 빨리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정치적 해법만 횡행하는 현실은, 자칫하면 건강하게 시작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캠페인이 방향성을 잃고 극단의 논리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반한 서울형 민주시민 논쟁수업은 큰 의미가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란 구서독에서 1976년에 ①학생에게 강압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금지. ②학문적·사회적 논쟁 상황을 교실수업에서 그대로 재현. ③학생 실생활과 관련 있는 주제에 대해 학생 자신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판단·결정하는 원칙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학생들은 ‘교복 입은 민주시민’이기 때문에, 학교의 교실뿐만 아니라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문화의집과 같은 청소년 기관에서도 상시적으로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은 어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짐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아주 좋은 세계시민 학습 주제라는 것을 이해하자.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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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많이 지는 사촌동생이 학교에 들어가 배운 노래를 했습니다. “어린 송아지가 큰 솥 위에 앉아 울고 있어요.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히프짝이 뜨거워.” ‘응? 히프짝?’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줬더랍니다. 영어사전 뒤져보니 ‘엉덩이’ ‘궁둥이’ ‘둔부’ 여러 가지로 뒤섞여 나오더군요. 그러곤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다시 그 ‘히프(hip)짝’이 떠올라 사전을 깊이 뒤져봤습니다. 우리가 앉을 때 바닥에 닿는 부분이 ‘궁둥이’, 궁둥이 위쪽 살 많은 부분이 ‘엉덩이’, 엉덩이에서 가장 뒤끝에 있는 부분이 ‘꽁무니’, 이 셋을 모두 다 합친, 흔히 ‘둔부’라고 하는 부분이 ‘볼기’더군요. 그러니 네발짐승 ‘어린 송아지’가 주저앉은 ‘butt’을 궁둥이가 아닌 엉덩이로 번역한 거겠지요.

얼마 전 할머님 세 분이 말씀 나누시다 민망한 단어가 나오니 목소리를 죽여 수군거리시더군요(청력들이 나쁘신 탓에 주위에 다 들렸지만요). 또 예전에 자리 비운 어느 여직원을 기다렸더니 “똥 누고 왔어요” 해서 민망해한 적도 있었죠(그녀가 생글거리며 그랬습니다. “그게 뭐 부끄럽다고 그래요.”). 

업어 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라는 속담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가 있습니다. 궁둥이를 맞든 볼기를 맞든 어느 쪽이나 한 몸이라 아프긴 매한가지죠. 또한 치마 걷고 앞뒤로 쭉 터진 고쟁이를 옆으로 제쳐 오른쪽 궁둥이를 활짝 까고 일을 보는데 누가 나타납니다. 엉겁결에 오른손 놓고 왼손으로 끌어 덮으려다 되레 왼쪽 볼기 전체를 노출시킨 경우일 수도 있겠지요. 부끄러운 짓 가리려는 얕은 수가 마찬가지이자 되레 더 부끄러운 짓이라는 말입니다. 

쑥스럽다고 ‘아내’ 대신 ‘와이프’를 쓰고, ‘볼기’ 놔두고 ‘히프’를 쓰게 되었네요. ‘히프’를 ‘히프’라 부르는 나라들에선 부끄러운 ‘볼기’를 고상하게 ‘히프’라 부르는 나라의 언어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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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스포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80년대 한국 군사정권이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이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월드컵은 민족주의의 전시장이고, 올림픽 역시 정치 선전 도구이자 집권세력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가 적지 않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책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대북 정책 수단의 하나로 이용하겠다고 천명했던 셈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은 이런 정치적 외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시하고 있다. 올림픽 헌장은 “스포츠와 운동선수를 정치적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면서 “올림픽 현장에서 어떤 종류의 시위도 금지되며 정치적, 종교적, 인종주의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에서 중국의 쑨양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말뿐인 조항이 아니다. 이를 위반한 선수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축구대표팀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 보였다가 동메달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메달도 박탈당할 뻔했다.

IOC가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이유는 이념과 이해관계가 아닌, 인체의 힘과 속도로 대결하는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가 정치나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IOC도, 선수도, 팬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포츠와 정치·사회를 분리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스포츠 세계만큼은 땀과 노력이 보상받는 곳, 참여자 모두가 규칙을 준수하는 곳, 규칙을 위반할 경우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보전하겠다는 뜻이다. 공정성이 무너질 때 스포츠의 가치는 근간부터 흔들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난 28일 폐막한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이례적인 장면을 낳았다. 몇몇 선수들이 공개 시위를 벌였는데, 독재정권이나 인종차별에 항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포츠의 공정성을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호주 대표팀의 맥 호턴은 지난 21일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 금메달리스트인 중국 대표팀 쑨양이 2014년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보인 전력이 있고, 지난해 9월엔 자신의 도핑 검사용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뜨려 도핑 관련 기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는 남자 200m 자유형 공동 3위인 영국의 던컨 스콧이 메달 시상식이 끝난 후 1위 쑨양의 악수를 거절했다. 스콧은 언론 인터뷰에서 “쑨양이 수영을 존중하지 않았는데 왜 우리가 쑨양을 존중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시위를 벌인 호턴과 스콧은 선수촌 식당에서 다른 서구 선수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국제수영연맹(FINA)은 선수 행동규범 조항에 ‘메달 시상식 등에서 다른 선수를 겨냥한 의사표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FINA 인사들은 쑨양이 도핑 샘플을 훼손했을 때 미온적인 경고 조치에 그쳐 이번 사태를 부른 장본인들이다. 외부 정치세력이 아니라 스포츠계 내부인들이 스포츠 가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세계반도핑기구는 스포츠중재재판소에 FINA를 제소한 상태다. 호턴과 스콧의 의사표현 방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쑨양의 출전이 선수들에게 대회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던 광주는 본의 아니게도 수영계 공정성 회복을 원하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로 전달한 장이 됐다. 쑨양 문제를 다룰 스포츠중재재판소의 심리는 9월 시작된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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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춘기 시절 갈 곳 몰라 헤맬 때 더러 꼰대 같은 소리를 해댔다. 골짜기에서 얼른 능선을 타라. 그 방법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아니하고 그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게 상책이라고만 했다. 어떤 자리에서는 주워들은 풍월로 그만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도 충고랍시고 던지기도 했었다. 내 마음조차 어디 있는 줄 깜깜 모르는 주제에 마음 운운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퍽 가소롭기만 하다, 아무튼.

산에 가서 깔딱고개 몇 개 넘으면 능선을 만난다. 그 능선에 서면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온다.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지만 최초의 사람은 산에서 성큼성큼 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고 상상하게 된다. 그 깊이를 짐작 못할 침묵의 덩어리인 바위를 관찰하면 이 또한 바다에서 융기한 흔적이 있으니 마냥 터무니없는 생각만도 아닐 터다. 오르기는 어렵고 내려가기는 더 어려운 법이라 했다. 그러니 저 아래 세상이란 잘되기는 무지 어렵고, 잘 안되기는 너무나 쉬운 현장이 아닐까, 아무튼. 

설악의 능선은 겨울에도 좋지만 여름에 가면 더 좋다. 봉우리 이름이 주는 뜻을 가늠하다 보면 하늘의 한 별자리를 짚어나가는 기분에 발길도 가볍다. 한계령에서 올라 귀때기청을 곁눈질하고 끝청, 중청 그리고 대청으로 이루어진 ‘설악좌’를 순례하는 기분이란!

오늘의 행로는 끝청을 지나고 잠시 멈췄다. 중청대피소를 지척에 둔 바위들 틈에 야생화가 잔뜩 피어 있다. 높은 산중인데도 그 이름이 등대시호란다. 꽃은 뿌리-줄기-잎-대궁-꽃의 일반적인 모양을 따르지 않는다. 기하학적 구조가 특이하고 자잘한 꽃을 들여다보면 하도 오묘해서 눈알이 뱅뱅 돌 지경이다. 이 꽃안을 ‘등대시호좌’로 명명해 줄까. 

캄캄한 바다를 밝히는 등대로 짐작하고 이 높은 산도 결국 바다에서 왔다는 한 근거로 삼으려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등대시호는 등잔을 거는 대에서 따온 이름이라 했다. 사무실 한편에 호롱과 양초를 모두 놓을 수 있는 녹슨 등대가 있다. 시골 큰집에서 쓸모를 잃고 뒹구는 것을 수습해온 것이다. 저 등잔불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가. 내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꿈을 눅진하게 담은 듯한 설악산의 등대시호.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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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학생들 간에 무전여행이 성행하였다. 방학 때를 이용하여 서넛이 작반하여 지방을 순회하는 것인데 고을이나 술막에 들르면 신문지국이나 지방인사의 신세를 졌다. 학생 위에 무거운 책을 지웠던 당시의 사회는 생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학생들의 하숙을 주선해 주고 그들의 점심값을 알선해 주면서도 불평은 샘스러 다시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었다.”(김남천 ‘무전여행’)

소설가 김남천의 얘기처럼 무전여행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조건 없이 숙식을 제공받으며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인정과 환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압통치 때 무일푼으로 해외를 여행한 이들도 있었다. 작가 심훈이 그랬다. 자의 반 타의 반 상하이·항저우·베이징을 떠돈 그는 ‘무전여행기: 북경에서 상해까지’를 남겼다. 심훈에게 무전여행은 문학의 꿈을 키운 ‘무전유학’이었다.

무전여행은 청춘의 특권이었다. 모험과 도전의 상징이었다. 어른들에게 그것은 ‘방랑벽’의 다른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무전여행은 쉽지 않다. 특히 해외 무전여행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워킹홀리데이나 베그패킹 등 신종 무전여행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워킹홀리데이는 현지에 취업해 경비를 조달하며 여행하는 제도로, 국가 간 협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구걸(beg)’과 ‘배낭여행(backpacking)’의 합성어인 ‘베그패킹’은 구걸하면서 하는 여행을 가리킨다. 

아시아 언론들이 최근 구걸 여행자인 ‘베그패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아시아를 여행하는 백인 베그패커들이 노골적 구걸 행각으로 관광지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베그패커들은 여행비와 유흥비를 충당하기 위해 버스킹(거리공연)·거짓 구걸을 벌이는가 하면, 왕궁·사원 등 금지 지역에서 구걸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베그패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추방까지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 지역이 아니다. 베그패커들은 정작 백인 국가에서는 홀대받는다는데, 아시아가 그들의 무대가 된 이유가 뭘까. 생활비가 싸기 때문일까.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때문일까.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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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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