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우버나 배달앱으로 표현되는 ‘플랫폼노동’이 사회적 이슈다. 우리는 ‘타다’ 드라이버나 ‘쿠팡’ 플렉스 기사, ‘대리주부’ 가사서비스 직업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되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곳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들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어느덧 꽤 많아졌다. 이미 배달업 다수는 플랫폼노동으로 이동했다. 몇 년 전과 달리 일자리 지도가 바뀌는 것 같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은 우리에게 기회일까, 장애일까.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는 취업자의 2% 남짓이라고 한다. 특히 기술발전으로 온라인 노동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니 거의 매년 26%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및 크리에이티브, 멀티미디어 직업군의 성장이 확인된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부둣가’나 ‘디지털 갤리선 노예’처럼 일감 찾는 가상이민과 같은 표현도 사용한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영국에서 플랫폼노동 규모는 취업자의 0.5%에서 4.0%로 추정된다. 우리도 올해 처음 플랫폼노동 규모가 발표되었는데 취업자의 약 53만명(1.5~2.3%) 수준이다. 아마도 IT나 물류유통 산업의 규모를 보면 그보다 더 많을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디지털 경제시대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플랫폼노동의 정의와 유형부터 대안까지 매우 활발하다. ILO는 플랫폼노동을 온라인 작업의 ‘웹’(web) 기반 일자리와 배달운송·가사서비스 작업처럼 ‘지역장소’(local) 기반 일자리로 구분한다. 언론에 알려진 몇몇 사례만 보더라도 플랫폼노동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소득 수단을 제공한다. 앞으로 디지털경제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 가치 창출인데, 제조업 못지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 같다. ‘바퀴 달린 컴퓨터’라는 표현처럼 플랫폼노동은 기존 유해 환경에서 벗어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또 일과 삶의 균형이 자유로운 일자리도 있다. 꼼꼼히 봐야겠지만 가사서비스 영역처럼 비공식 부문의 일이, 공식부문으로 전환된 긍정성도 있다. 

문제는 산업은 성장하는데 명확한 사용자가 없다. 그래서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도 한다. 이유는 플랫폼노동 다수가 근로계약이 아닌 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최저임금이나 휴일휴가, 퇴직금, 사회보험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플랫폼노동은 보수가 낮고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제공받는다. 게다가 플랫폼노동자들은 기존보다 더 심각할 정도의 시간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도 많다. 대표적으로 고객 서비스 평점이나 리뷰 시스템이다. 고객 평가는 소득과 일자리에 직결된다. 좋은 평가는 등급 향상으로 연결되고, 본인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부 기업은 서비스 평가가 낮은 사람들을 회원 목록에서 탈퇴시키기도 한다. 결국 고객에 의한 통제가 단순 통제가 아닌 일자리 상실의 신호인 것이다. 

이미 플랫폼노동은 국경을 초월하기에 노동법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어렵다. 계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시정할 공식적인 제도도 없다. 일부 고숙련 일자리를 제외하면 중간 수준의 일자리들이 저숙련 플랫폼노동으로 대체될 개연성도 많다. 앞으로 플랫폼노동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최소한의 권리와 보호가 필요하다. 이미 대안적 논의는 시작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표준적인 계약과 수수료 책정, 계약방식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는 사회적 안전망 적용, 데이터 및 사생활보호 논의까지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과세’를 통해 플랫폼노동자의 소득과 실업급여, 유급휴가, 교육훈련 등의 비용에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노동법), 덴마크(단체협약), 이탈리아(사회협약)에서는 플랫폼노동자에게도 노동자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사례도 있다. 이제 우리도 플랫폼경제시대, 기술혁신과 위험성 사이에서 미래의 일은 어떻게 변화될지 논의할 시점이 된 듯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오스크 사회  (0) 2019.08.09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0) 2019.08.06
플랫폼노동, 기술혁신과 위험성 사이 해법 찾기  (0) 2019.08.02
1965년과 2020년  (0) 2019.07.30
반성하지 않는 자들  (0) 2019.07.23
예술대학 학생들의 절규  (0) 2019.07.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나라가 근대 국제정치에 정통성을 가지고 참여하기 위해선 근대국가라는 국가를 성립시켜야 한다. 테러단체나 과거의 전근대적 왕조국가를 지금 국제정치의 합법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정치를 힘이 좌지우지하는 무정부상태로 인식하지만, 일단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근대국가’를 만들어내면 최소한의 대접은 받게 된다. 또 일반인이 동경하는 힘 있는 국가, 즉 강대국도 꿈꿔볼 수 있다. 현재 국제정치에서 근대국가보다 더 힘이 센 국제정치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근대국가라는 체제가 다른 어떤 체제에 비해 정당성뿐만 아니라 힘을 동원하는 능력이 크다.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최소한의 대접을 받는 이유는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에서 근대국가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했고, 또 상호 수교를 한 국가들도 꽤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 힘의 동원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근대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국가자원을 동원하여 핵무력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만큼 근대국가체제는 근대 이전의 다른 국가형태에 비해 우월한 체제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근대 이후 어느 국가이든 자신의 근대국가체제를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앞서고, 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 왔다. 우리는 구한말 이러한 추세를 지도층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에 일본이라는 근대국가 안으로 강압적으로 빨려들어가는 불행을 겪었다. 반면 일본은 그 국제정치 추세를 정확히 읽어내어 근대국가체제를 신속히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유신이라는 미래 구상을 통하여 국가적 힘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즉 강대국을 만들었다. 당시 전근대의 최강국이었던 청나라를 격파하였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힘을 갖추었다. 국토의 크기 및 백성의 숫자와 상관없이 근대국가체제와 그렇지 못한 체제의 능력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도 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였지만, 일찍이 근대국가체제를 만들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누렸을 만큼 근대국가체제를 언제 어떻게 만드느냐가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위치를 정해주었다. 

그래서 근대 국제정치의 세계는 근대국가의 설계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책무였다. 흔히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근대국가의 설계가 백년대계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의 강대국이 지금도 강대국인 것을 보면 그 백년대계를 실감할 수 있다. 백년대계가 반드시 100년 후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미래를 염두에 두는 지도층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지도층이 있는 나라는 구한말 대한제국과 같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라도 지키기 어렵다.

우리 대한민국도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전 국민의 노력과, 세계사의 운을 함께 타면서 이제 세계굴지의 근대국가로 발전하였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G20이라는 그룹에도 들어가 있고, 선진국의 모임인 OECD에도 가입했다. 세계에 7개국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3050클럽, 즉 인구 5000만명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국가클럽에도 들어갔다. 우리 군사력은 세계 7위 안에 들어가고, 인적자원과 기술수준을 포함한 경제력도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다. 동계 및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모두 유치한 몇 안되는 조직력을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한류를 대표하는 K팝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수준의 실력을 가질 만큼 뛰어난 문화적 역량도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는 한 번도 ‘강대국’의 비전을 가진 적이 없고 아직도 중견국에 만족하고 있다. 국가의 외교에는 적응의 외교와 극복의 외교가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라는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적응의 외교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 생존을 모색하는 약소국 혹은 중견국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지정학적 현실을 극복하는 외교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이 강대국을 지향하는 외교와 비전이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강대국이 되고픈 열망이 있다. 하지만 정작 강대국 비전과 백년대계를 제시하고 끌고 가려는 지도층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도 의병정신과 이순신정신만을 얘기하고 있다. 이제 이를 넘어서야 한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에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진정한 극일은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역량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선 지정학을 극복하는 강대국의 꿈이 있어야 한다.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금모으기 정신을 강요할 게 아니라, 힘과 도덕적인 면에서 모두 인정받는 강한 국가 만들기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힘을 모아달라 해야 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학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1일 시행에 들어간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출발부터 난항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강사 신규 채용 공고를 완료한 학교는 전국 대학 328곳 중 106곳(32.3%)에 불과하다. 대학 3곳 중 2곳 이상이 강사 채용을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다. 일부 대학의 강사 채용 방식을 놓고 불만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 대학이 2학기 수강신청에 들어갔지만, 강사채용이 늦어지면서 폐강 등 학습차질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강사법은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최소 1년 이상 임용보장과 함께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등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시행을 앞두고 대학에서 강사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강사 대량해고’를 예고했다. 실제 올 1학기에만 ‘해고 강사’가 1만5000여명, 폐지된 강의가 6000여개나 됐다고 한다. 강사법 시행 후에도 상황은 다를 것 같지 않다. 강의 선택권이 줄어든 학생들이 받는 피해도 문제지만, 강의 배정을 받지 못한 강사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갓 박사학위를 딴 신진학자들이 강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개인뿐 아니라 학문후속세대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손실이 작지 않다.

대학에서 강사 수를 줄이는 것은 돈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법 시행에 2965억원이 들어간다고 추산하지만, 정부가 강사법 시행을 위해 올해 투입하는 예산은 288억원이 전부다. 교육부는 대학 재단의 적립금을 강사 임금으로 전용할 것을 요구하지만,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조치 등으로 전용할 예산이 없다고 맞서는 상태다. 

개정 강사법은 강사의 신분 안정과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대학·강사·정부의 합의에 의해 마련됐다. 제대로 안착된다면 대학 교육제도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강사법을 연착륙시키고 시행 과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정부는 강사법 시행에 따른 소요 예산을 파악해 추가로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강사 구조조정에 앞서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강사법 시행을 계기로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문사회·기초학문 분야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은 절실하다. 국가 차원에서 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학술전담기구 설립도 고려해야 한다. 학문 연구와 후속세대 양성을 기업화된 대학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발생한 수몰사고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생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일 오전 7시10분쯤 지하 40m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가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한 협력업체 노동자 구모씨(65)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됐으나 숨졌다. 미얀마 국적의 ㄱ씨(23)와 이들을 대피시키려 터널에 들어갔던 현대건설 직원 안모씨(29)는 실종됐다가 1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안씨는 결혼한 지 갓 1년이 넘은 신혼이었다. 그의 부인은 망연자실, 말조차 잃었다고 한다. ㄱ씨는 미얀마에 있는 부모와 형제자매 6명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2년여 전 한국땅을 밟았다가 변을 당했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참담하다. 

우가 내린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지하 터널에서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하고 고립된 노동자 3명을 구하기 위해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그런데 이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을 살펴보니, 황당한 게 한둘이 아니다. 먼저 하늘에 먹구름만 보여도 작업을 중단토록 한 매뉴얼은 무시됐다. 호우예보 속에 터널 안에서 노동자들이 작업 중인데도 양천구청과 시운전사인 ㄴ사, 시공사인 현대건설 사이의 소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 제1의 통신강국인데도 현장과의 연락은 불가능했다. 그사이 수문 2개가 자동으로 열렸고 쏟아진 6만t의 물이 노동자들을 덮쳤다. 수문이 열리더라도 빗물이 작업현장까지 도달하는 데 23분이 걸렸기 때문에, 곧바로 닫았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수문은 그러나 개방 후 40여분이 지나서야 완전히 닫혔다. 현장에는 그 흔한 튜브 등 안전장비 하나 없었다고 한다. 최초 작업에 투입된 구씨 등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971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중 절반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숨졌다. 정부는 2022년까지 산재사고 사망자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했으나 되레 늘고 있다. 일터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는 노동자가 줄지 않는 것은 규정은 허술하고 처벌은 약한 탓이다. 지난 10년 동안 산재사망사고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0.5%였다.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를 통해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정부도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허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시민사회단체가 원하는 ‘중대재난기업처벌법’ 제정 등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인, 일터에서의 노동자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테스토스테론은 안드로겐(남성호르몬의 총칭)의 하나일 뿐이지만 유독 각별한 대접을 받는다. 남성의 근육은 물론 뇌까지 ‘남성적’으로 만든다는 관점 때문이다. 모험심, 경쟁심, 성적 욕망, 권력욕 등 이른바 ‘남성성’이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의 시사평론가들은 “남성이 장악한 월가에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위기가 온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코델리아 파인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테스토스테론 렉스>에서 ‘테스토스테론 결정론’이 비과학적 통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때 지구 최강의 육식동물이었으나 멸종해버린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처럼 사라질 신화라고 본다. 그는 성평등이 진전된 스웨덴 사례를 들며 “위험 감수의 측면에서 성차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백인과 비백인 사이에선 차이가 나타났다”고 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남성적’ 특징이 아니라 ‘지배적 집단’의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과학의 영역에선 신화가 무너져내리고 있지만, 스포츠 영역에선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남아공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28)가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9월 열리는 카타르 세계육상선수권에 나가기 어렵게 됐다. 세메냐는 2012·2016 올림픽에서 여자 800m 2연패를 달성한 스타다. 그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반 여성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이유로 성별 논란에 시달려왔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대법원은 “세메냐가 수치를 낮춰야 800m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자 선수가 400m~1마일(약 1600m) 종목에 출전하려면 6개월 이상 수치를 5nmol/ℓ(리터당 나노몰)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세메냐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으나 기각되자 스위스 연방대법원에 항소했다.

IAAF는 성별 규정이 공정성을 위한 것일 뿐 차별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공정성을 위해 타고난 호르몬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한다면, 키가 지나치게 큰 사람들은 농구나 배구를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남자 선수 중에도 일반 남성보다 테스토스테론이 훨씬 많은 이는 출전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닐까.

<김민아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엊그제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친구들 몇이서 처음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들과 그 시절 얘길 하다보니 세상의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이뤄졌는지 감회가 새로웠다. 집마다 어떤 가전기기가 있는지 공개적으로 손을 들라며 조사했던 이야기도 나눴다. 참으로 인권감수성이 없었던 때였다.

그때 나는 시골에서 전학 와서 언니 오빠와 대구에서 자취를 했다. 자취집엔 전화기가 없었다. 전화 걸 일이 있을 땐 전화국까지 가야 했다. 신청한 전화번호로 교환원이 전화를 걸어 연결해줘야 통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손엔 스마트폰이 있다. 소형 컴퓨터를 들고다니는 셈이다. 음성통화도, 문자도, 화상통화도 가능하고, SNS 앱으로 언제 어디서든, 또 동시에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은행 업무도 주문도 결제도 할 수 있고, 길찾기 앱으로 아무 데라도 찾아갈 수 있다.

그땐 주말마다 ‘비둘기호’란 완행열차로 고향집엘 다녀왔다. 지금은 KTX로 17분 걸리는 그 길이 두 시간 넘게 걸렸고 그런 열차조차 하루에 두세 번밖에 없었다. 엄마가 매주 싸주시는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해야 해서 자취방엔 자그마한 중고 냉장고가 있었다. 요즘 흔한 양문형 냉장고 용량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년간 자취방에 TV가 없어서 주말에나 볼 수 있었다. 리모컨도 없었던 시절, 채널권을 두고서 얼마나 다퉜던지….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개인 시청까지 가능한데 말이다. 중2 때였나, 컬러 TV시대가 열렸다. 얼마나 놀랍던지!

올해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40년이 되었다. 친구들과 얘길 나누며 다시금 우리 삶이 얼마나 편리하고 안락하게 바뀌어왔는지 새삼 느꼈다. 게다가 이런 변화가 한 사람 생애 절반의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났단 사실도 참으로 놀랍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가를 수반한 것이었다. 바로 기후변화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에너지 노예’라 불리는 수많은 기계를 만들었으며 그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왔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와 특히 석탄 발전 전력을 너무나 쉽게 많이 사용해왔다. 산업화의 빠른 진행만큼 기후변화도 가파르게 진행되어 왔다.

기후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대응수단이 없지 않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절약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에너지전환이 기후위기, 나아가 고용위기 해결의 현명한 대안들 중 하나다. 이를 위한 기술변화도 사회변화도 가능할뿐더러,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 오래 유지해온 전력기술이나 시장구조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기술 혁신과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

최근에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기공급사업자와 자율적인 계약을 통해 재생에너지로 특정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전력구매계약(일명 PPA)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재생에너지 100% 전력을 쓰겠다고 선언한 세계 굴지의 RE100 기업들이 계속 늘고 있다. 이미 191개다. 그리고 이 기업들은 이제 협력업체들에도 부품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만들어 납품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기업환경이 바뀌고 있지만 RE100에 우리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PPA가 가능한 전기사업법 개정, 에너지전환으로 가는 여러 문들 중 하나다. 이제 그 문을 열어야 한다.

빠른 변화는 가능할 뿐 아니라 빠른 변화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많은 일들이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거나 상상 속에 머무르기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그로 인해 사회도 바뀌고 사람들 생각도 바뀌어 왔다. 이미 기술은 있다. 이제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요구되는 변화를 더 빨리 만들어가야 한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안에 있는 ‘제국’  (0) 2019.08.16
지천으로 전염된 4대강 공사  (0) 2019.08.09
에너지전환, 빠른 변화를  (0) 2019.08.02
기후변화 보도에 유감  (0) 2019.07.26
기후, 삶의 기본  (0) 2019.07.19
따옥따옥 따오기, 그 처량한 소리  (0) 2019.07.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식구들은 나더러 ‘테레비빠꼼이’라 불렀다. TV편성표를 줄줄 꿸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리고 여전히 ‘들마줌마’(드라마 보는 아줌마)로 살아간다. 요즘엔 K-TV에서 송출해주는 <전원일기>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다시 보고 있다. 예전의 농촌풍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다시 볼 수 있는 데다 아련한 추억이기도 해서다. 한국 드라마는 한류의 중심 콘텐츠인 데다 각 방송사의 주요 수입원이다. 광고가 잘 붙기 때문이다. 인기 작가와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는 그 자체로 수출상품이다 보니 지상파는 물론 종합편성채널까지 모두 드라마 제작에 사활을 건다. 그야말로 드라마 왕국이고 드라마 공화국이다. 

시청자는 드라마라는 상품의 소비자다. 모든 소비가 그렇듯이 이 상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가 만들었는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드라마라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재밌으면 그뿐. 그러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한 편의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는지 잠시 깨닫는다. 붐마이크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현장 사진을 그때서야 볼 수 있어서다.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단체 사진이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올라오면 그때 잠시 카메라 밖에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방영될 신작 드라마 예고편을 보면서 ‘신제품’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금세 사람은 잊곤 한다.  

‘쪽대본’으로 표상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은 ‘이한빛’이라는 드라마 피디의 죽음으로 그 실상이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2016년 <혼술남녀>라는 드라마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피디는 스스로 노동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이자 또 ‘노동착취’를 감행하는 관리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견딜 수 없어 생을 내려놓았다. 그의 동생인 이한솔씨가 쓴 <가장 보통의 드라마>라는 책을 보니 드라마 제작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고 악랄하기 짝이 없다. 공인된 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은 언감생심, 장장 일주일에 126시간. 하루에 두세 시간도 못 자고 드라마를 만든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야외 노동자들의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야외 촬영이 많은 드라마 제작 현장만은 예외다. 안 먹으면 죽지만 드라마 안 본다고 죽을 일은 없으니 ‘그깟 드라마’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오죽하면 ‘12시간 쉬고 12시간 일하자’라는 구호가 터져나올 정도겠는가.  

하지만 드라마 현장도 엄연히 노동현장이다. 근로기준법 테두리 안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들이 ‘관행’과 ‘특수성’이라는 미명 아래 가볍게 박탈된다. 몰라서도 당하고 알면서도 당하는 현장이다. 이런 낡은 방송 제작 현실을 바꾸고 싶어 했던 이한빛 피디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센터’에서 요즘 드라마 제작 현장에 커피 트럭을 보내고 있다. 연예인들에게 팬들이 종종 간식트럭을 보내곤 하지만, 한빛센터에서 보내는 커피와 간식트럭은 카메라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커피와 함께 미디어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 상담과 권리 캠페인도 함께하고 있다. 비록 커피 한 잔이지만 자신들을 위해 배달된 커피는 잠을 쫓는 각성제이자 스스로의 권리를 깨닫는 각성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현장에서 좋은 드라마가 나올 테고, 그 공익은 시청자인 우리가 함께 누리지 않겠는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