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만세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출범 백주년을 맞았던 지난 3월과 4월, 우리는 백년의 감회에 젖었습니다. 민주공화제 백년의 나라에서 백년시민이 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의 ‘공화적 협력’의 현실을 떠올렸습니다. 민주공화제의 헌법질서 아래 우리는 헌법가치를 얼마나 공유하며, ‘공화적 협력’에 얼마나 충실한가? 정부는? 국회는? 정당은? 노와 사는? 언론과 방송은? 나아가 시민사회와 개인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미래백년을 위한 협력의 꿈을 제대로 꾸기도 전에 일본의 무역도발이 ‘국난’의 기억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위안부문제와 징용배상판결에 대한 아베의 불만과, 군국주의의 꿈을 접지 못한 아베의 야욕이 마침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한국 제외’라는 횡포로 속을 드러냈습니다. 전범의 유전자가 일본의 국가지도부에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확인시킨 겁니다. 우리는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일본의 무역행패나 그로 인한 경제위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숱한 국난극복의 역사와 함께 가깝게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하나로 뭉쳐 이겨낸 위대한 협력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우리 내부의 분열과 협력하지 않는 대한민국입니다. 1%대, 0%대의 경제성장률로 가더라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협력의 대오로 견딘다는 각오라면 이 터무니없는 경제폭력은 충분히 이겨낼뿐더러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백년의 기회가 더 빨리 열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국가재정 여력이 어느 때보다 튼튼합니다. 정부는 재정 여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경제체질을 바꾸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1조원을 투입한다고도 했습니다. 어쩌면 아주 못된 이웃이 우리의 백년미래를 다질 수 있는 밖으로부터의 자극을 주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엄중한 현실 앞에서 우리 내부의 국가적 협력이 긴박하고도 절실하며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국가적 협력과 결속에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자유시장경제 기반의 사회에서 협력의 핵심은 경제주체들에 있습니다. 탐욕과 야만의 이빨을 번득이는 외세 앞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계와 경영계의 협력만이 나라를 지킬 강력하고도 근원적인 무기입니다. 무엇보다 ‘협력’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문이 크고도 다양하게 열려야 합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대화가 노동기반과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는 ‘신노동운동’의 실천양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공동체의 공공적 과제를 더 많이 떠올리며 구래의 운동방식을 과감히 뛰어넘어야 합니다. 기업 또한 시장가치를 넘어 인간가치와 공공가치를 더 많이 추구하는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자기 몫을 좀 더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협력적 대화’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절박하고도 위태로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협력적 대화운동이야말로 신노동운동이자 ‘신기업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눈에 띕니다. 내년 최저임금 2.87% 인상에 대한 노동계와 일반시민 간의 너무 다른 인식차이를 보며 그는 “우리는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대한민국의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설명해 왔을까?”라고 묻습니다.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소통에 대한 강한 열망이 엿보입니다. 김 위원장이 바로 ‘신노동운동’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읽힙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또한 똑같은 문제로 더 깊이 더 오래 고뇌하고 있을 겁니다.

노동운동의 오랜 통념은 산업화시대 조직노동자들이 계급적 주체로 계급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존 노동운동도 대기업 정규직 거대노조를 기반으로 정부나 자본 측과 대결적 관계를 유지하며 단체협상이나 직접투쟁의 제한된 활동방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노동단체들은 대부분 덜 개방적이거나 비공개적이어서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취약했고, 사회적 대화는 정부주도의 단일 기구를 통해 가동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노동운동은 이제 그 시효가 만료되어 ‘구노동운동’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산업화시대가 탈산업 디지털 시대로 바뀜에 따라 구노동운동 또한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신노동운동은 자본 측과 적대적이거나 대결적 관계를 넘어 노동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는 협력적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노동운동의 주체는 노동계급을 넘어서는 ‘노동시민’이며, 대기업 정규노동자를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점점 더 확대되는 플랫폼노동자와 같은 특수형태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구심을 만듭니다. 노동영역 자체가 보편적 질서로 작동하고, 노동권익을 넘어 사회적이고 공공적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노동공공성’이야말로 신노동운동의 핵심쟁점입니다. 신노동운동은 공익재단과 같은 다양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어 제도적 수단을 통한 공개적 소통을 확장해야 합니다. 신노동운동으로서의 사회적 대화운동이 노와 사와 정부와 시민사회가 서로를 더 개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수준의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만들어야 협력하는 대한민국이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새로운 백년의 미래가 다소 더디게 그려지는 와중에 일본의 무도한 겁박이 들이닥쳤습니다. 우리는 이 치졸한 반칙과 행패를 오히려 우리의 경제와 정치와 사회의 체질을 좀 더 빠르게 바꾸어 새로운 백년의 미래를 앞당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신노동운동을 추구하는 사회적 대화운동이 흔들리지 않는 국가적 협력과 결속의 무기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국가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협력경제의 패러다임’에 앞장서는 신기업운동이 이에 화답해야 합니다. 고약한 전범국가의 반성 없는 행패에 굳건히 대응함으로써 협력경제와 협력사회의 근육을 키우는 데 사회적 대화운동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더없이 엄중한 국가위기의 시기에 반협력적 이탈과 반공화적 이반을 감시하고 경고하는 것도 신노동운동의 몫입니다.

<조대엽 |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다 못 먹겠으면 좀 덜어.” 상냥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어른 하나와 소년 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한 소년은 부리나케 밥을 덜었다. 밥을 던 소년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밥을 덜고 나니 마음의 짐도 덜어진 모양이었다. 다른 소년은 밥을 덜지 않았다. 묵묵하게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다. “다 먹었다!” 밥을 던 소년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밥을 덜지 않은 소년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 밥그릇을 보니 아직도 절반 넘게 밥이 남아 있었다. 분명 주문할 때는 허기졌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니 배고프지 않았다. 오늘 첫 끼니야, 더위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해, 김치가 맛있게 잘 익었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며 꾸역꾸역 먹었다. 옆 테이블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억지로 밥을 먹은 게 결국 탈이 났다. 오후의 일정을 소화하다가 여러 번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면 주어진 일을 소화하기 힘들다.

다음 날 친구와 함께 간 식당에서는 고봉밥이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른 밥을 덜어 친구에게 주었다. 먹성이 좋은 친구는 고맙다고, 이것밖에 안 먹어서 괜찮겠느냐고 잇따라 말했다. 요새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초록색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했다. 고깃점을 든 채 그 말을 하니 이상했지만, 기분 좋게 웃었다. 더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고 더는 게 필요할 때가 있음을 알았다. 친구는 배가 고프고 식욕이 왕성하다. 내가 던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덤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바깥에 나오니 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인권이 부른 ‘돌고, 돌고, 돌고’였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라는 가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돌고 돌고 돌고”가 흡사 “덜고 덜고 덜고”로 들렸기 때문이다. 웃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덜어주면, 동시에 우는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덜어내면 사이좋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좋을 것이다.

몸의 짐을 덜면 어깨가 가뿐해진다. 밥을 함께 먹은 친구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떠날 때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더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짐을 더는 만큼 시간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근사했다. 몸의 짐은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

마음의 짐을 덜면 걸음이 경쾌해진다.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이 없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코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필요가 없으니 느긋하게 기지개를 켤 수 있다. 원치 않은 일에 개입하게 되었을 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벅찬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하고는 싶지만 잘할 수는 없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그 마음으로 착수하는 일에 몸이 기민하게 반응할 리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덜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빽빽해서 빛살 한 점 들이치지 못했던 일상이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더는 일은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옥죄고 위협하고 지우려 하는 것들을 덜어내야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어 있는 상태여야 채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한테 절박한 것이, 꼭 필요한 것이.

먹은 것이 채 소화되지 않은 상태거나 특정 식재료를 소화할 수 없는 몸에는 값비싼 음식물조차 독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맡은 일을 소화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도 심신에 과부하를 일으킨다. 어떤 감정이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쾌히 만나고 무언가를 척척 만드는 일도 어렵다. 그때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더는 일이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에는 능동적으로 덜기 시작해야 한다. 일을, 계획을, 주변 사람들을.  

더는 일은 나를 응시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때로 도움을 주기까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셈이다. 담을 때가 아니라 덜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보인다. 기꺼이 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은 | 시인>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품격에 대하여  (0) 2019.08.13
글과 닮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0) 2019.08.08
덜어내는 삶  (0) 2019.08.06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0) 2019.08.01
소년의 마음으로 쓰는 소년의 글  (0) 2019.07.30
민어  (0) 2019.07.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방학하고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 한 친구가 최근 있었던 어려운 일을 토로했다. 8시50분 등교인 학교인데 학생이 9시 지나서 등교한 적이 있어 기록했던 것을 학부모가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미리 문자를 보내지 않았냐며 사정이 있다고 했었는데 왜 생활통지표에 표시했냐는 항의성 전화였다. 

일부 교사들은 방학한 뒤 며칠은 불안해한다. 방학식 날 학생에게 배부한 생활통지표에 대해 불만을 가진 학부모가 연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학생에 대한 ‘행동발달 및 특성’을 읽고 ‘왜 이렇게 부정적인 표현을 써줬냐’ ‘이런 표현은 빼달라’ 등…. 그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주지 못했으면 그랬겠냐는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교사의 평가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교육을 불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성적 처리 기간이 시작되면 교사들 사이에 이런 노하우가 떠돈다. 행동발달 및 특성을 기술할 때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직접적 표현은 피하고 행간에 의미를 담으라는 어려운 주문 말이다. 생활통지표를 읽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교무실로 민원 전화가 오니까 조심하라는 이유다. 그런 당신은 무엇을 가르쳤길래? 당신은 과연 잘 가르쳤느냐? 비난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을 현장에 선 교사들은 오롯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부서지고 깨어진 신뢰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민원인과 피민원인의 지경에 이르기 전, 교사와 학부모가 가슴을 마주하며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보통 3월에 학부모 대상 공개수업을 한다. 그날따라 비도 오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공개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약속한 대로 아이들이 교실 가운데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수업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서클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토킹 피스를 받은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놓으니 창밖에 빗소리도 잦아드는 듯했다. 교실 뒤편에서 참관하던 학부모들의 굉장한 집중력이 서클의 한가운데에 와닿자 소심한 아이의 떨리는 작은 목소리도 똑똑히 들렸다. 아이들을 보내고 곧이어 학부모 총회가 이어졌다. 둥글게 앉아 먼저 ‘공감’과 ‘경청’의 의미를 나눈 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를 함께 읽었다. 시를 매개로 한 명씩 돌아가며 시에서 와닿는 구절을 소개하고 떠오르는 자기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학부모가 겪고 있는 양육의 고달픔, 교사가 갖는 학교 교육의 고충을 평가나 조언, 판단과 비난 없이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총회를 마칠 때쯤 교사와 학부모 모두 눈물을 흘렸고 서로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주에 이어진 학부모 상담 기간에 찾아온 한 학부모님은 이날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큰아이도 학교에 보내왔고 둘째 아이까지 매년 참여했기에 뻔할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왔던 것을 반성했어요. 기대 없이 왔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교실이 그토록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에 감동했고 앞으로 아이들이 편안하게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정현종 <방문객>의 일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위지영 | 서울 신남성초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전자석을 만들자면 못을 새빨갛게 달군 뒤 식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磁氣)를 쉽게 띠는 철, 무른 철, 연철(軟鐵)이 되기 때문이죠. 연철은 철사만큼은 아니지만 간단한 연장으로도 쉽게 휘어지지요. 이 연철의 순우리말이 ‘뜬쇠’입니다. 이 뜬쇠가 나오는 속담이 ‘뜬쇠도 달면 어렵다’입니다. 온순하고 잘 참는 사람이 한번 화나면 더 무섭게 화를 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인두나 다리미가 잘 달궈지지 않는 것도 ‘뜨다’라고 하는데, 철은 빨리 달궈지지 않지만 달아오르면 무섭게 이글거립니다.

속담에는 늘 숨은 맥락이 있습니다. ‘뜨다’에는 ‘굼뜨다’ ‘둔하다’ ‘입이 무겁고 말수가 적다’ 같은 뜻이 있습니다. ‘뜬쇠’를 사람 별명으로 보면 ‘쇠’가 들어가니 마당쇠, 먹쇠처럼 서민이거나 아랫사람일 겁니다(‘구두쇠’처럼 남을 얕잡아 부를 때도 ‘-쇠’를 붙입니다). ‘뜬쇠’니 굼뜨거나 무던한 사람의 별명이겠지요. 동네마다 한 명씩 있던 ‘바보형’처럼 누가 뭐래도 배알 없이 히죽거리고 맙니다. 욕 듣고도 부처님이요, 때려도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습성은 못됐습니다. 그럴수록 반응 한번 보자고 더 괴롭힙니다. 반응할 때까지 수위를 자꾸 올립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때, 아차! 싶게 뜬쇠의 얼굴이 심상찮게 시뻘겋습니다. 

참는 데도 한도가 있다는데 뜬쇠들은 남들보다 한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부탄가스통이라면 뜬쇠들은 프로판가스통이라서 터졌다 하면 일대가 다 끝장납니다. 아랫사람이라고, 무르고 만만하다고 인격 모독하고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참다 참다 터지면 크게 덴겁하고 여럿 다칩니다.

 무던한 사람이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뜬쇠 자신도 모릅니다. 잘못 건드렸다 싶으면 이미 일 났습니다. 사생결단 전까지는 무슨 수로도 달래고 무마할 수 없습니다. ‘어렵다’ 뜻에는 ‘불가능’도 있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글 창제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가 얼마 전 개봉했는데, 역사왜곡 논란으로 안타깝게도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극영화가 역사를 다룰 때는 허구적 창작이 불가피하며, 그것이 영화적 즐거움의 중요한 요소다. 이때 창작의 의도와 논리가 관객의 마음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한글 창제에 승려 신미의 역할이 컸다는 설정이 관객의 거부감을 샀다는데, 직접 관람하지 못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한글의 발명>이라는 뛰어난 책을 쓴 원로교수가 그런 설정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아, 관계자들은 매우 억울하지 않을까 싶다. 실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감독은 ‘훈민정음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라는 자막과 관련하여, “저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으나, 그 누구도 역사에 대한 평가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넣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중립적 발언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존경의 대상인 세종의 역할이 왜곡되었다고 느낀 관객에게는, 영화의 설정이 허구가 아니라 감독의 신념이라고 인정하는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관객의 영화에 대한 영향력도 극대화되고 있다. 이제 영화를 선보일 때 관객을 어떻게 유혹하느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의견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고, 생겨나더라도 널리 전파되지 않게 하여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생일>은 소재의 민감성을 감안해 배우들과 감독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려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가장 비수기에 개봉하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으나, 구설수 없이 몇 주간 흥행 1위를 지켰다. 영화의 진정성이 바탕이 되었으나, 메시지를 관리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상업영화의 개봉과정에서 메시지를 빈틈없이 관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영화마저 이럴진대, 현대정치는 본래부터 메시지의 전쟁이다. 큰 선거의 캠프에서는 메시지 관리가 알파이자 오메가다. 국제정치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조치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이 격화된 며칠 사이에 오간 메시지에서는, 일본 측의 메시지 두 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선 일본 외무성 부대신이 TV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면서 ‘적반하장’이란 표현을 쓴 것을 지적하며, 그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며 무례하다고 말했다. 차관급 인사가 외교 상대국 정상의 발언을 비난한 것은 외교 결례이므로, 외교부는 일본에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그의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왜 그가 ‘적반하장’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한국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적반하장’은 아주 수위가 높은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어에 미숙한 나로서는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한자어 본래의 뜻이 강한 뉘앙스로 전달된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극우인사라는 그는 이미 어떤 의도를 가졌겠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거칠다고 시비할 핑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이 냉정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는 말도 어색하게 들렸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드는 격으로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무언가 일본 관료들이 한국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이것이 일본 내각에 포진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논리 그리고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 일본 경제를 추격하는 한국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한국이 국제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이고, 감정에 치우쳐서 규범을 무시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우리의 말과 행동의 배경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내정치용이 아니라 높은 관심과 함께 전 세계로 전파될 메시지들은 어차피 전혀 다른 수준에서 정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쓸데없는 빌미를 줄 필요 없다는 것은 정부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베 정부가 충격적인 조치에 나서는 것을 정부가 미리 막을 수 있었는지, 아니면 불가피했는지는, 외교에 대해 문외한이고 막후에서 진행된 경과를 모르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잘잘못을 떠나, 이제는 시민과 정부를 믿고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경제적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정부의 메시지는 일본보다 나았으면 한다.  

단호한 결의의 메시지도 좋지만, 사활을 걸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메시지는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한국이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엄격한 법치주의 국가라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한국 안의 다른 목소리에 대한 존중을 통해 지혜를 더하는 다원주의도 보여주었으면 한다. 목청을 높이기보다는 시쳇말로 뼈를 때리는 논리와 증거로 무장했으면 한다. 역사 앞에 겸허하고 진실한 태도가 배어났으면 한다. 약자와 소수자를 옹호하는 인권국가라는 것도 드러났으면 한다. 일본정부와 일본국민을 적절히 구별했으면 한다. 민족의 자긍심을 잊지 않되, 현실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자유무역과 호혜평등을 통해 세계가 번영할 수 있다는 확고한 철학이 담긴 메시지를 띄웠으면 한다.

앞으로 수많은 난제가 있을 것이며, 힘의 논리가 얼마나 엄중한지 처절하게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담대하면서도 냉정하고, 단결하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며, 시련 속에서도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보답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첫걸음은 격조와 철학이 살아있는 정부의 메시지에 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한국을 폄하하며 내세우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것이 더욱 절실하다.

<조광희 | 변호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이를 먹으면서 나만의 취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젊음에 기댄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도 안 통하고 몸은 힘들어 죽겠는데도 그 불편함에 굳이 시간과 돈을 쓰는 여행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다. ‘투덜이’ 빌 브라이슨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때 비행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비행은 장거리일수록 좋았다. 낯선 땅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이동은 심야 버스나 기차를 이용했다. 패키지여행은 내겐 ‘여행’이 아니었다. 나는 ‘다르다’고 내심 으스댔었다. 근데 그냥 젊어서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5시간이 넘는 비행은 걱정부터 앞섰다. 오지 트레킹보다는 도시 관광, 숙박은 도미토리가 아닌 호텔로 자연스레 나의 여행은 변해갔다. 그러다 10여년 전부터 시작한 게 일본 소도시 여행이다.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는 소도시에 숙소를 잡고, 로컬푸드 마켓에서 과일을 사먹거나 일본인들을 따라 식사 때마다 생맥주를 마시는 것. 바로 일본 여행의 재미였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 앞에서 서울 중구청 관계자가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노(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배너기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올해 여름은 다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함께 지난달 중순부터 자발적으로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이 시작됐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장난스레 올려놓은 ‘친일파’ 테스트에도 일본 여행에 관한 항목이 있다. ‘일본 여행을 자주 간다’ ‘일본말을 할 줄 안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남에게 신세지기를 싫어한다’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한다’ 등으로 이 중 3가지만 해당되면 친일파라고.

일본이 우리에게 인기 여행지가 된 이유는 길어봐야 2시간 남짓,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관광인프라도 훌륭하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난해에만 753만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그러나 최근  국토교통부 항공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름휴가가 본격화된 7월 중순 이후 보름간 인천공항을 이용해 일본 여행을 다녀온 승객은 휴가 시즌을 앞둔 한 달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4% 감소했다.

얼마 못 갈 거라던 일본의 예상과는 달리 불매운동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시민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일본 여행 취소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노(NO), 보이콧 저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로고는 소셜미디어에서 삽시간에 퍼져 서로를 독려하며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도시들과의 문화교류를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 서울시도 일본과의 교류 중단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당장 이번달과 다음달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교류행사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또한 10월13일 개최 예정인 ‘서울달리기대회’와 관련해 한국미즈노 등 일본 브랜드를 협찬사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보이콧’은 아베 정부에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당장 일본의 입장 변화를 끌어낼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한국이 만만찮다는 것은 보여줄 수 있다. 물론 효과를 보려면 6개월 이상 지속돼야 한다. 이제 정부는 냉정해야 한다. 지자체들도 교류를 이어나가야 한다. 이미 국민들은 차분히 일본과의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반일 감정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때론 상상 밖의 힘을 발휘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런 내셔널리즘이 감정에 휩싸인다면 장기적으로 큰 손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이 배타주의로 바뀌는 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폭염 속 우리는 견디기 힘든 지점에 서 있다. 일본 대신 집 근처 시원한 도서관으로 북캉스를 떠나보자.

<이명희 전국사회부>

'일반 칼럼 > 기자 칼럼, 기자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님, 애국이 별겁니까”  (0) 2019.08.16
피해자의 품격, 국가의 품격  (0) 2019.08.13
이제 냉정해질 때  (0) 2019.08.06
빨대 박힌 그 코는  (0) 2019.07.23
경기교육청에 무슨 일이  (0) 2019.07.18
아무도 이방인이 아니다  (0) 2019.07.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유코!

오랜만에 불러본다. 22년 전 런던에서 만났을 때를 기억하니? 영어 실력이 뛰어나던 너는 사려 깊고 다정했지. 귀국 후 연락이 끊겼지만 늘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너를 다시 떠올린 건 한·일관계 때문이야. 최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며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 정부도 상응 조치를 취하고, 시민들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어. 아마도 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일본 시민은 지금 한국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잘 알지 못할 거야. 1965년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며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과거사 문제는 마무리된 것 아닌가, 왜 뒤늦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하는가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한국 어르신의 삶에 대해 들려줄까 해.

신천수님은 17세이던 1943년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 노무자로 가게 돼. 돈도 벌고 기술도 배우리라 기대했는데 실상은 달랐어. “기숙사 창에는 쇠창살이 끼워져 있고, 문에는 망보는 사람이 있었다.”(신천수님 진술서) 일본제철은 임금도 주지 않고 강제 저축을 시켰어. 통장과 도장은 사감이 보관했지. 일은 위험하고, 식사는 보잘것없고, 송금도 할 수 없으니 도망치고 싶어했다. 그런데 동료에게 ‘도망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것 같은” 폭행을 당하고 만다. 사실상 노예의 삶이었지.

1945년 해방 후 귀국한 신천수님은 1997년에야 다른 피해자 여운택님과 함께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게 돼.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패소했지. 신천수·여운택님과 다른 피해자 2명은 2005년 같은 취지의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어. 1·2심은 일본 법원과 같았으나, 2012년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며 원심을 파기하지. 2013년 서울고법이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지만 피고 기업이 불복하며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가게 돼. 일본 눈치를 본 박근혜 정권과 당시 대법원이 야합하는 바람에 재상고심은 5년이나 지연된다. 지난해 10월 현 대법원이 원고 4인의 승소를 확정하지만, 신천수님 등 세 분은 세상을 떠난 뒤였어.

일제 강제징용 생존 피해자 이춘식씨가 10월30일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대법원 청사로 향하고 있다. 소송은 13년 만에 피해자 승소로 확정됐다. 이준헌 기자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돌입했어. 이달 2일에는 전면적 화이트리스트 배제까지 강행했다. 입법·행정·사법권이 분립된 한국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정경분리 원칙을 외면한 행태이지.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이 ‘징용공’(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명확하다”고 했어. 아베를 필두로 한 일본 우익은 ‘청구권 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도 일괄 해결됐다’며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달라. 1991년 야나이 슌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은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지난해 11월 고노 다로 현 외무상도 이를 인정했어. 약속을 어긴 쪽은 어딜까.

한국 시민의 'NO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신주쿠(新宿) 아루타 마에에서 반(反) 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옛 피식민국가 시민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는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역사와 정직하게 대면하고,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일은 품격 있는 결단이지. 독일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수도 베를린에 세우고 거듭 반성함으로써 존경받는 국가가 되지 않았니. 난 ‘아베의 일본’을 거부하는 ‘다른 일본’에 희망을 걸어보려 해. 지난 4일 도쿄에서 한국의 ‘NO 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저명한 지식인들이 대한국 수출규제 철회 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철지바동력차 노동조합도 아베 정권의 행태를 “폭거”라고 비판했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강제중단되자 일본 문화·언론계에서 분노한다는 소식도 듣는다. 아직 소수이겠으나 이분들의 한마디, 한 걸음이 변화와 연대의 시작이 되리라 믿어.

보편적 인권을 부인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뜨리는 ‘아베의 일본’에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그들의 망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이야. 가쓰시카 호쿠사이(19세기 우키요에 대가)와 구사마 야요이(현대미술가)의 미감(美感)을 사랑하지만, 도쿄에는 가지 않으려 해. 다만 약속할게. 혹여 한국인 누군가가 무고한 일본 시민을 혐오하거나 모욕한다면 강력히 비판할 거다. 폭력적·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 아래서만 승리할 수 있으니까. 아베의 방식으로는 아베를 극복할 수 없으니까.

언젠가 우리 함께 서울 북촌과 도쿄 우에노공원을 거닐 수 있기를 바란다. 너와 내가, 또 다른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정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그런 날이 곧 오리라 믿어. 그때까지 강건하기를.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의 꼭대기가 숲처럼 우거지고 그 속에 큰 고민이 살고 있듯 산의 상층부에 습지가 있다.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아래에 처하기를 좋아하는 물을 높이 받들고 있는 터라 세상의 신비와 고요가 집합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의 고민에 상응하듯 혹 이무기라도 살고 있는 걸까.

내 안에 이리도 많은 구멍이 있었구나. 닭똥 같은 땀방울이 마구 빠져나오는 이열치열의 상쾌함을 느끼면서 서늘한 기운이 밀집한 습지의 물가로 접근하면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한 토막도 따라 나온다. 흘러가는 시냇물. 물에는 물고기가 제 몸뚱이 하나를 밑천으로 살았다. 물 바깥에서 물속의 물고기를 보는 건 기이한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쉬리 떼를 발견하는 건 언제 보아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바지를 걷고 매미 소리를 귀에 꽂으며 직접 물에 들어갔다. 물에서 물고기를 이길 수 있겠나. 하지만 물낯에 튕기는 햇살을 얼굴에 바르며 일렁이는 물살 아래 미끈거리는 돌과 모래를 더듬다가 운 좋게 모래무지, 동사리, 꺽저기를 잡기도 했다. 그렇게 물에서 물고기를 떼어낼 때의 짜릿한 흥분을 어찌 잊으랴. 

강원도 고성의 어느 습지. 미리 알고 가는 길이었지만 짐작 못한 곳에서 습지는 툭 튀어나왔다. 숲에서 뱀을 만나듯, 점빵에서 알사탕을 눈으로 훔치듯 숲속의 습지는 뜻밖의 발견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낡은 길에는 고사목이 쓰러져 있고 어느 태풍의 소행인 듯 나무는 뿌리째 뽑혀 밑동과 잔뿌리가 수직으로 허옇게 드러나 있기도 하였다.

물가에 좀 더 접근해 본다. 습지에 깊숙이 물구나무서 있던 산과 구름은 더 깊은 속으로 빠져들면서 나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땀에 전 한 사내의 모습을 떠받쳐 주는 건 각시수련이다. 주로 오래된 습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매우 귀한 식물이다. 연꽃의 잎과 줄기가 공중을 짚는다면 수련은 수면에 그 높이를 맞춘다.

수련(睡蓮). 문자적으로 졸음과 관련이 있으니 수련은 물을 이불처럼 깔고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중일까. 어쨌든 저를 제대로 보려면 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라는 것이니 그 옛날의 기억을 확실하게 반짝 일깨우는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청부채  (0) 2019.08.20
염소와 고사리  (0) 2019.08.13
각시수련  (0) 2019.08.06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경향신문은 지난 3월 <피해 할머니 없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시대 온다>는 기획보도를 실었다. “얼마 안 가 피해자 없는 시대를 맞이할 텐데, 그때는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실상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확산시킨 것은 당사자 할머니들과 이를 응원한 시민들이었다. 1990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결성으로 문제 해결 노력의 싹이 텄고,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전 세계적인 여성인권문제, 전시 성폭력 문제로 부각됐다. 이듬해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2015년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도 반영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며 덜컥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합의에 따라 졸속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피해 할머니들을 돈으로 꾀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재단 해산으로 겨우 원점으로 돌렸지만, 이로 인해 한·일관계는 더욱 꼬이게 됐다.

재일 조선인 르포작가 김영은 “일본에서는 일본이 이미 여러 번 사죄와 유감을 표했고, 아베 신조 총리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얘기했지만 한국이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일본의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은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 사흘 만에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앞서 2일 전시회를 찾은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망언했다. 과거사를 지우려 표현의 자유마저 서슴없이 포기한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또 별세했다. 올해만 5명째로, 이제 생존자는 20명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이들의 목소리를 온 힘을 다해 기억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기억투쟁’이다. 하지만 현실은 갑갑하다. 정부가 2012년부터 해왔다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은 위안부 자료 통합 사이트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빨리빨리’의 나라, ‘IT 강국’이란 말이 무색하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에 대응하는 방식은 비단 경제 조치만이 아니다.

<송현숙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를 말합니다. 인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책무를 가집니다. 나라 밖으로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국제법이 작용합니다. 전 지구를 아울러 국제법이라고 부를 만한 실체는 1차 세계대전 후에 생겨납니다.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나서야 국제법 관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인권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국가 간 연맹이 느슨했고, 여전히 식민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상황이 달라집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후방 구분도 없이 도시 전체가 격전지가 되어 버렸고, 무기 성능 향상으로 민간인 피해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국가의 이름을 걸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합니다. 그 끔찍한 상황을 보고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국제법이 개인의 인권 보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을 보호하자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누구든 인간으로서 국가와 국제사회의 부당한 간섭 없이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고, 그런 권리가 침해되면 개인이 인권을 걸고 자기의 이름으로 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유엔은 2005년 그 확인을 위한 결의를 합니다. ‘Basic Principles and Guidelines on the Right to a Remedy and Reparation for Victims of Gros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and Seriou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약칭: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라는 결의입니다.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은 국가나 법인, 개인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진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결의는 그때까지 확립된 국제법상 개인 권리에 관한 법리를 집대성한 문서로 ‘피해자 권리장전’으로 불립니다.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으니까 독일과 일본도 당연히 찬성했습니다. 독일은 이런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정당 성향에 상관없이 누가 총리가 되어도 희생자 앞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면서 사과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인권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그 흐름을 말씀 드렸습니다. 국제기구 근무 경험을 가진 동료 판사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잠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대신 포기할 수 있나요? 질문을 약간 바꿔서, 인권에 부당한 침해를 받은 국민이 배상청구를 하면 국가가 그 청구를 못하게 막을 수 있나요? 법률 관계는 개인과 기업,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에 모두 성립할 수 있고, 이들 법률 관계는 서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서로 간섭할 수 있다고 하면, 특히나 국가가 개인의 권리 행사를 대신할 수 있다거나 포기시킬 수 있다고 하면, 그런 체제는 전체주의입니다.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국가의 3요소 가운데 국민이 사라진 체제입니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은 뼈아픈 경험과 지극히 당연한 논리에서 비롯한 인권을 향한 발걸음이자, 세계가 공감하고 격려하는 옳은 방향입니다. 이웃나라에서 강제징용 판결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흐름, 무엇보다 인권에 기초해서 2012년, 그 후로 6년이나 지난 2018년에야 대법원은 강제징용자들의 권리를 최종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웃나라 사정은 당파적 이익을 위한 정권의 선택이지 나라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쓰럽습니다. 언제 의자를 돌려 앉아 자국 국민에게도 같은 요구를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일본 국민이 정부보다 현명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간은 연속하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작용하며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성하는 미래는 소중합니다.

<함석천 |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부가 2020년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8590원을 최종 확정했다. 최저임금의 의결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한국노총이 제기한 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대 세번째로 낮은 인상률(2.87%)을 정하면서 산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최저임금위원회의 의결은 문제가 있었다. 사용자 측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업종별·규모별로 차등 적용하자며 논의를 노동자와 영세사업자 간의 ‘을들의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저임금제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노동자 임금 결정에 개입하여 저임금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최저선에서 보장하는 제도다. 또 사회불평등 해소와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소득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그러나 최저임금 논의는 그 취지와 달리 ‘시장 논리’에 압도돼왔다. 사용자 측은 문재인 정부 들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와 고용 악화를 초래했다며 동결을 요구해왔다. 결국 내년 최저임금이 동결 수준으로 오르면서 계층 간 임금 불평등은 고착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최고임금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퇴직한 한 대기업 총수는 퇴직금과 연봉으로 456억원을 받았다. 정보통신기술 업체 대표는 연봉으로 138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최저임금(약 1890만원)의 2474배, 730배 많다. 최고임금제는 재벌총수, 기업 대표·임원들의 과다한 임금을 줄여 최저임금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제도다. 

지난 4월 부산시에 이어 지난달 경기도 의회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임원의 보수를 제한하는 ‘최고임금 조례’를 통과시키며 최고임금제 실험에 나섰다. 최근에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최고임금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청년노동단체들은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의 10분의 1로 맞추자는 ‘1대 10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최고임금제와 함께 ‘최고임금위원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소극적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대기업 임직원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못하도록 발의한 ‘살찐고양이법’은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지자체 일부에서 싹을 틔운 최고임금제가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