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0대 후반의 스위스 여성이 미국 국경을 통과하려다 세관원의 제지를 당했다. 여권의 사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손가락 지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스위스 바젤대학의 피터 이틴은 ‘입국심사 지연’ 질환이라고 비유했다.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식 중 하나로 지문이 자리 잡은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진나라 관리들은 사람마다 각기 지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미시시피에서의 생활>이란 책에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지문을 이용해 범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했다. 국가에 의해 의무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에 편입될 때 만 17세가 되는 우리 청소년들은 반드시 지문을 등록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법의학이나 범죄수사에서 흔히 사용되곤 하는 지문의 생물학적 기능은 무엇일까? 어떤 과학자들은 촉촉한 지문이 잡은 물건을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종이를 연거푸 넘길 때 손가락 끝이 건조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듯도 싶다. 지금은 보기 힘든 일이 되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손가락에 침을 퉤퉤 뱉어가며 지폐를 세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무에서 주로 생활하는 코알라가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지문을 가지고 있다는 관찰도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촉각과 관련된 기능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엄마 배 속에서 여섯 달이 지나는 동안 발생이 완결되는 지문에서 땀샘과 그에 연결된 몇 가지 신경세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전을 손가락으로 만져서 그것이 500원짜리인지 100원짜리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 자판기 투입구에 실수 없이 집어넣을 수도 있다. 이는 지문과 피부 아래 신경이 없으면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지문과 결부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지문의 돋은 능선을 따라 일정하게 배열된 땀샘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호젓한 산길에서 호랑이를 마주칠 일은 이제 없겠지만 직장 상사나 면접관을 대면해야 할 일은 흔히 생길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에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주변을 살펴 돌멩이나 작대기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바탕 접전을 치르거나 도망할 때는 손바닥 땀이 소용 있을 수 있겠지만 상사의 면전에서 그것은 별 쓰임새가 없다. 이렇듯 급격히 변화한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은 가끔 구닥다리 신세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스트레스 반응일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근육에 혈액을 듬뿍 보내고 눈을 부릅떠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일은 석기시대에는 필수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적을수록 좋다. 

어쨌든 지문은 손에 예민한 촉각 기능을 부여하면서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한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목욕탕에 있다가 나왔을 때 손가락이 불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유독 손가락 끝이 더욱 그렇다. 피부 각질이 물을 머금어서 혹은 혈관이 수축해서 그렇다는 둥 몇 가지 이유를 대지만 기실 이 현상에는 신경계가 관여한다. 손목 신경을 다친 사람의 손가락이 물속에서 붇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어슷하게 홈이 파인 타이어처럼 물속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우리 손가락이 일시적으로 변형을 치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문이건 주름이건 우리 손바닥과 손가락은 참으로 특별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미국 입국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저 여성의 손가락에는 왜 지문이 없었을까? 먼 친척을 포함해 여성의 가족 중 일곱 명이 지문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과학자들은 그 증상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마침내 그것을 찾아냈다. 피부에서만 발견되는 특정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털이나 손톱을 구성하는 주된 단백질인 케라틴에 돌연변이가 있을 때에도 간혹 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문 없는 저 스위스 여성은 단지 촉각이 좀 무디고 종이돈을 잘 세지 못하는 불편함 말고 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았을까? 기자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여성은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했다. 수영장에서도 발만 물에 담그고 앉아 있었을 뿐 친구들과 함께 헤엄을 즐길 수 없었다. 약간만 근육 운동을 하면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열을 내지만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는다. 사실 잘 느끼지도 못한다. 인간의 신체가 되먹임 체계를 적절히 가동하면서 언제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땀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부는 ㎠당 약 150~340개에 이르는 에크린 땀샘을 구비하고 효율적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우리는 약 200만~500만개의 땀샘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가장 많이 분포한 땀샘은 머리에서 몸통, 사지로 내려가면서 그 수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지문에 박혀 있는 땀샘도 체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박동하듯 에크린샘을 통해 피부로 일분에 땀을 최대 스무 차례나 주기적으로 흘리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일은 침팬지나 고릴라 그리고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포유동물의 경우 에크린샘은 역할이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 코끼리는 혈관이 풍부하게 분포한 귀를 팔랑거리거나 주름진 피부로 표면적을 늘리면서 적도의 더위를 견딘다. 개나 고양이는 주로 헐떡이면서 체온을 식히지만 인간처럼 땀을 흘리지는 않는다. 대신 발바닥에 땀샘이 풍부하다. 이들과 달리 우리 인간은 몸 표면과 공기의 경계면에서 충분히 땀을 흘리고 그것을 증발시키면서 체열을 떨어뜨린다.  

현대에 들어 인류는 오래되었지만 완성도가 높은 ‘땀 흘림’이라는 우리 몸의 생리학적 되먹임 기제 대신 화학 에너지가 듬뿍 가미된 전기 온도조절 장치에 대한 의존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시동 켜진 자동차 옆을 지나가기 무섭고 에어컨 실외기 앞의 회양목이 가뭇없이 시들어가고 있다. 덥고 습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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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큰 규모의 강연을 기획하면서 업체-작가 사이에서 한 달 넘게 서로의 일정과 내용을 조율한 일이 있다. 대학원생 조교 시절에 학회라든가 세미나라든가 하는 것들의 실무를 담당해 보기는 했지만 이러한 사회적 경험은 사실 처음이었다. 업체에서는 이런저런 요청을, 사실은 요구라고 할 만한 것을 계속해 왔다. 섭외한 작가들은 대개는 내가 알고 있거나, 글을 좋아하고 존경하거나, 이것을 핑계로 꼭 연락해 보고 싶었거나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해 차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 보려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었다.

불쾌감을 표시하며 빠지겠다고 선언한 작가도 있었다. 몹시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의 실수로 관계가 단절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한동안 아무 일을 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그였다고 해도 ‘이건 많이 무례한 일이잖아요’라는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 작가들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오히려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며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척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을 앞두고 강연 내용이나 일정이 변경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요청하는 여러 서류들도 자신의 시간을 내어 빠르게 보내주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특히 나와 나이가 비슷한 모 시인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기업과 일하는 무게에 시인과 일하는 무게를 함께 얹어 죄송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그가 쓰고 있는 시와 같았다. 덕분에 나는 그 문구를 붙잡고 당시의 짓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로 일주일쯤은 힘들 때마다 그 문자를 열어보았던 것 같다. 강연이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나에게 “괜찮아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에요”라거나 “요즘 강연을 줄여가고 있는데 오히려 좋은 소식이네요”라고 답한 작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기초로 타인의 처지를 사유할 줄 알았고,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내면서 타인의 삶을 보듬어 낼 줄을 알았다. 이것은 정말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다.

나에게도 강연을 요청하는 연락들이 종종 온다. 학교, 도서관, 여러 시설, 기업, 독서모임 등이다. 수십 명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담당자들과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이 요청하는 강사카드라든가 강의계획서라든가 강의자료라든가 하는 것들을 종종 빼먹곤 했다. 분명히 일정에 기록해 두기는 하는데 꼭 한두 개씩 잊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언제 답신을 주실 수 있을까요”하는 메일을 받고서야 “오늘까지 보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답하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요청한 것을 받지 못하면서도 ‘죄송’의 수사를 사용해야 하는 그 심정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처럼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은 그 처지가 되어보고서야 자신을 기초로 누군가를 상상해내게 된다. 항상 누군가에게 상처와 번거로움을 전하고서야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아 그저 죄송할 뿐이다.

며칠 전 모 주간지에서 원고를 요청하고는 3주 동안 3번에 걸쳐 지연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담당 기자께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오셔서, 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싶어서 “담당자만큼 마음 힘든 사람이 어디 있나요. 무게를 덜어드려야 하는데 원고라도 제때 보내겠습니다”하고 답신을 보냈다. 물론 그 시인의 문자를 표절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답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내가 더욱 사랑하게 된 몇몇 작가들은, 결국 자신의 글과 삶을 일치시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글을 닮은 언어와 행동을 타인에게 보낼 줄을 알았다. 아마 그들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잘살고 있는지 별로 자신이 없는 나는 글로써라도 나의 삶을 견인해 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글과 닮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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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련 굵직한 행정소송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사고 지정 취소와 관련한 소송 기사들이 수십건씩 포털을 채운다. 갈등과 분쟁이 가득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이지 다른 누구가 아니다.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교육정책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교육을 흔들고 있다. 

자사고 제도가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큰 이유는 우리 헌법정신에 반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함으로써 매우 분명하게 교육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교육의 기회균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국민 누구나가 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 즉 취학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함을 뜻하므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가로 하여금 능력이 있는 국민이 여러 가지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재정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국민에게 취학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게끔 그에 필요한 교육시설 및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과한다.”(99헌바63, 2001·1·18)

이에 비추어 볼 때 자사고 제도는 어떠한가. 학교교육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일반고의 3배,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엔 연간 학비가 2500만원으로 일반고의 9배에 달하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수준이다. 교육과정의 다양성은 재력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적성과 흥미,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의 경험을 제공하여 그 잠재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교교육의 목적이 있다. 사회통합전형이 있다고 하지만 서열의 정점에 있는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들은 법령상 의무규정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사회통합전형 학생들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자사고 제도는 헌법 제31조 제1항의 교육기회의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도 상당하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듯 우수 학생 선점에 기반하여 대학입시에 치중한 결과 고교서열화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2018헌마221, 2019·4·11). 혹자는 자사고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일반고와 자사고가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육생태계가 파괴된 현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내뱉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려면 전제가 있다. 출발선 등의 조건을 유사하게 맞추어야 한다. 자사고와 일반고의 조건은 이미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입학생들의 내신 성적만 보더라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교육을 정상화하며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선 법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유일한 길이다. 지정 취소를 통한 폐지는 소송을 전제하고 있어 법적 혼란이 더 크고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 소지가 높다. 이미 지정 취소가 예정된 학교들 거의 모두가 행정소송을 예정하고 있고 전북교육청은 교육부에 대한 권한쟁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이 아니다. 법령에 따르면 평가결과가 우수할 경우 자사고로 재지정되어야 한다. 자사고 제도 자체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법령 개정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자사고 측에서는 신뢰보호이익의 원칙, 학교선택권 침해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다양성이라는 자사고 제도 신설의 목적 자체가 형해화된 지금, 자사고 제도에 대한 신뢰보호가치가 높지 않으며 교육기회의 균등 및 고교서열화 해소 등의 공익적 가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신뢰보호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볼 여지도 적다. 또한 선 지원 후 추첨제, 일반고 안에서 학생 중심 선택의 교육과정 다양화 제도가 마련되고 있는 만큼 과도하게 학교선택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것처럼 학교 제도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가가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정책을 탄력적·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교육과 학교 제도에 관하여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이 발견될 경우 이를 시정하여야 하는 것은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국가의 의무이다(2018헌마221, 2019·4·11). 국가는 헌법의 교육기회 균등의 가치를 수호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이 발현할 수 있는 학교교육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개정하라.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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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세상은 선의로 가득해 보인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죽어서는 천국을 누리자며 가가호호 초인종을 누르는 상냥한 자매님들. 못난 중생들이 안타까워 함께 도통 세계에 들자고 손 내미는 형제님들. 올바른 국가관과 정의를 설파하고픈 열정으로 가득한 어르신들을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달리는 택시에서 무수히 만난다. 

SNS는 또 어떤가. 조목조목 공정하고 지혜로운 집단지성의 숲을 거닐다 보면, 이미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이토록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데, 어째서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악당(빌런)들은 끝없이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지방의 교도소에서 강의를 했다. 감호시설은 처음인 데다 수십명의 대상자 모두 남성이라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들어온 이도 있겠지만, 아직은 나의 이해력이 닿지 못할 마음의 심연을 가진 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들어간 강의실에는 앳된 청년에서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무심한 눈빛들이 시간이 지나며 편안하게 바뀌어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 ‘소통’과 관련된 실습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청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진지한 경청과 정확한 이해, 따스한 공감의 언어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강의를 마치고 오는 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청년은 어떤 이유로 그곳에 있을까. 혹시 그 타고난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불행한 환경이나 안타까운 상황으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 친구와의 대화가 힘들다고 했던 재소자는 소통이 어려워서 육체적인 폭력이라도 저지른 것일까’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한 이의 부모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들의 속사정을 다 알 수도 없고, 잠시의 인상만으로 섣부른 동정심이나 이해를 표하며 지옥 같은 삶을 경험했을 피해자들을 망각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다양한 범죄와 가해자의 심리에 대한 학습을 해오면서 고민하는 부분은, 타고난 범죄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마부터 소소한 절도범까지, 거의 모든 범죄의 배경에는 불안정한 환경이나 부모가 있다. 간혹 사이코 패스라 불리는 선천적인 공감능력 결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매우 극소수다. 뉴스에서 흔히 다루는 조현병으로 인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범죄의 우려로 격리가 필요하다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멀리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잔혹 범죄나 성범죄의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조현병은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폭력적인 환경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로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공격성을 가진 이도 드물다.

범죄 행동은 궁핍한 경제적 사정과 육체적 폭력이 일상인 가정에서 쉽게 발현되지만, 그것은 협의의 범죄개념으로 국한될 경우에 그렇다. 법망을 피해가는 더 큰 의미의 범죄자들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이는 가정에,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을 둔 경우도 많다. 

정서적 문제로 심리상담을 하는 청소년들의 부모 직업 상위에는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들이 나란히 올라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부모와 더 행복하고 선량한 아이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다. 

지구 평화가 요원하고 곳곳에 다양한 빌런이 계속 출몰하는 이유는, 악을 쳐부수는 어벤져스가 없어서도, 위대한 가치를 논하는 이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쉼 없이 자신의 올바름을 주장하고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느라 정작 자신의 자녀와 가족이, 혹은 바로 그 자신이 흑화해 가는 것을 방치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외부로 향한 분노의 시선을 줄이고, 자신의 내면과 가족의 눈길을 마주하는 따뜻한 시간을 늘려보자. 어느 순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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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재량근로제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일본 경제침략 피해기업에 대해서는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신규화학물질의 인허가 기간을 대폭 줄여주는 방안도 내놓았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을 연기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하나같이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정책과 시도들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윤상현 위원장이 22일 전체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 채택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일본의 도발을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한번 더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사회안전망과 노동자의 기본권을 흔드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은 ‘하책’임을 알아야 한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노력은 ‘탈일본’은 물론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추진했어야 할 정책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개발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불과 얼마 전 강화했던 화학물질관리법의 안전 기준 등을 도로 후퇴시킨다면 게도 구럭도 잃는 수가 있다. 화학물질사고는 2012년 구미공단 불산누출사고나 가습기살균제 비극에서 드러나듯 일단 발생하면 재앙에 버금가는 피해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아온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정부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업무 목표·내용·기한 등을 ‘지시’할 수 있도록 ‘틈’을 열어줬다. 이로 인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재량근로’라는 근본 취지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고통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더 크다. 탄력근로제로 인해 노동시간 단축 효과 역시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 유예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추진하는 현실은 여당조차 사안의 경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정부와 기업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더라도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노동자의 권리 침해도 노동자 다수가 납득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일감몰아주기 허용 등 공정경제를 훼손하는 정책 추진도 마찬가지다. 자칫 눈앞의 불을 끄려다 큰불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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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뙤약볕에도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분들. 고등어라도 한 마리 사러 장에 나가기, 병원에 약 타러 가기, 외출은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병원과 약국을 차례로 들러 약봉지 하나씩 들고 탈래탈래 걸어 나오면 반기는 것은 다시 뙤약볕. 나도 약봉지를 항상 챙겨 다닌다. 약이라 함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의 그 약. 병은 선고받은 그날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것은 약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커피 라떼를 싫어한다지. 왜냐면 어른들이 입만 열면 ‘나 때’엔 어쩌고저쩌고. 그래봤자 일찍들 잔디밭으로 돌아가셨다. 라떼는 이제 그만. 옛 어른들은 신통방통 약이 없으니 일찍 숟가락을 놓았다. 의학이 발달하여 바야흐로 백세 장수시대. 남보다 먼저 죽으면 매우 억울하다.

제아무리 명품 패션, 명품 가방을 자랑하고 다녀도 병원에 눕는 순간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오줌이 담긴 비닐주머니를 샤넬 백 대신 옆구리에 차고 다닐 수도 있다.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법. 그러니까 건강하게 살았을 때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더불어 행복한 장면도 남겨둬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딱 한 가지. 살 수 있는 사람과 곧 죽을 사람의 차이도 정답은 같다. ‘무얼 찾아 맛있게 먹는 사람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

곡기를 끊지 않고 보조식품이라도 입에 털어 넣으면 어찌저찌 오줌과 똥을 눌 수 있다. 그래야 내일 조간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 ‘먹되, 배부르게 먹지 말고 잘 먹어라! 몸을 움직여 배고프게 만들라! 밥을 먹고 나면 꼭 걷기운동을 하라. 걷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다리가 튼튼해야 오래 산다. 걷다보면 나팔꽃도 보고 깨꽃도 보고 포도넝쿨에 달린 잘 익은 포도를 따먹을 수 있다. 천하의 명약이 있대도 고요히 생을 돌아보며 숲길을 걷는 보약에 비기랴. 손에 든 줄줄이 약봉지보다 두 발로 서서 걷는 순간이 보약이렷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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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극한 슬픔이나 위기, 기쁨의 순간 부르는 이름이다. 만들어진 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엄마’라는 이름에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힘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엄마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자칭 애국보수 시민단체 ‘엄마부대’는 2013년 발족 이후 여러 모습으로 활동해왔다. 세월호 참사,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굵직한 이슈들이 불거질 때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어버이연합’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어 활동했다. 이 단체 주옥순 대표는 2016년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 딸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당했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다”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학생을 폭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2018년에는 허위사실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아베 수상님 사죄드립니다”라고 발언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회원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간에 더불어민주당원이 평화의소녀상 옆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2017년 9월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당 디지털정당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돼 활동하기도 한 그의 현재 직함은 유튜브 ‘엄마방송’ 채널 진행자다. 구독자 수가 15만명이 넘는다.

엄마부대가 최근 지향하는 가치와 정반대의 ‘친일 정체성’을 드러냈다. 주 대표는 지난 1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수상님, 저희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관계의 그 모든 것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일본 파이팅”을 외쳤다고 한다. MBC 탐사보도 프로 <스트레이트>의 보도다. 그는 지난 6일 ‘엄마방송’에서 “일본은 우리를 도와주는 나라”라며 “과거 식민지배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해준 게 많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그동안 애국보수를 참칭한 세력이 사랑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폭염 속에서 여론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무엇보다 ‘모성’과는 동떨어진 활동을 해온 이들이 엄마라는 이름을 단체명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분노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민 모욕죄’ ‘엄마 사칭죄’로 소송이라도 하고 싶다. 엄마부대는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며 누구의 엄마란 말인가.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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