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 섬 가운데 세 번째로 큰 섬이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섬인 규슈에는 22개 코스로 이뤄진 규슈올레가 있다.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 출신 공무원이 아이디어를 내서 규슈 지방정부와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함께 만든 길이다. 

간세(조랑말 표식)를 비롯한 모든 것이 한국의 제주올레와 쌍둥이다. 2012년 2월 처음 길을 낸 이후 지난해까지 45만5000명이 걸었고, 이 중 30만명이 한국인이다.

규슈올레길도 당분간 한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선 시민사회의 불매운동 및 여행 자제 운동의 여파다. 역으로 일본 내에서도 한국 여행 자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일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도 여럿 취소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경제를 무기화하면서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교류가 점점 말라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단칼에 자르기에는 너무 많이 연결돼 있다. 한 예로 올 상반기 한국의 수출이 8.5% 감소했고 일본의 대한 수출도 13.3% 줄어들었다. 한국 제품이 안 팔리면 일본 부품도 함께 잘 안 팔린다. 한국에 들어오는 일제 상품 중 맥주나 옷 같은 소비재는 6.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품·소재·장비들이다. 

한국 경제가 잘되어야 일본 경제도 잘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들도 아베 정부의 조치를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침략이라기보단 자충수이다. 

경기 활성화는 두 나라의 교류를 통해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 규슈올레가 만들어지면서 고령화를 걱정하던 한적한 일본 마을에 사람들이 흘러들고, 한국의 올해 상반기 서비스수지는 일본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 증가하며 개선되는 식이다. 이처럼 사람이 활발히하게 오가야 경제도, 문화도, 서로에 대한 이해도 풍성해진다.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많이 온다.

더 나은 교류를 위해 과거사 문제는 마땅히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정권 강화나 선거용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두 나라 사람들 사이의 흐름은 이어져야 한다.

<경제부 | 박은하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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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15분의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잠깐 들른 후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터라 출출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주문대로 갔다. 사람 대신 사람 키의 입간판이 맞이했다. 더 이상 사람이 주문을 받지 않으니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자동결제기를 사용하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키오스크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스크린 터치를 몇 번 하다 연이어 실수를 하니 조바심이 났다. 우물쭈물 제대로 주문도 못하고 나왔다. 가판대에서 핫도그나 살까 했더니 여기도 키오스크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느새 버스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늦은 저녁에 식당에 갔다. 식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둘러보았지만 손님은커녕 주문받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속이 훤히 보이는 주방에 요리사만 달랑 있었다. 키오스크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지난번 경험도 있고 해서 이번엔 아주 자신만만하게 키오스크 앞에 섰다. 몇 번의 스크린 터치를 통해 무사히 주문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아주 호기롭게 음식을 사겠다고 한다. 그런데 키오스크로 주문한다는 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며느리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나서자 아니라며 신용카드를 뽑아든다.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자 보다 못한 며느리가 자기 신용카드를 꺼냈다. 가벼운 실랑이가 오간 후 결국 시어머니는 포기하고 며느리가 계산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나 활용되었던 키오스크가 일반 식당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비스’는 키오스크에 떠넘기고 ‘물질’을 팔고 있다. 명분은 효율성이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의 욕구를 최대한 빨리 성취하게 해준다. 판매자는 인건비를 줄여 더 많은 이윤을 빨리 뽑아낸다. 구매자는 표준화된 제품의 카탈로그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최대한 빨리 위장의 결핍을 채운다.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이를 사회의 맥도널드화라고 일찍이 말했다. 맥도널드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효율성이다. 하지만 판매자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매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니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효율성마저도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이를 깨닫게 되면 구매자의 방문이 줄고 판매자의 이윤도 축난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고객이 무인 키오스크를 이용해 햄버거를 주문 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일반 식당에까지 키오스크가 확산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키오스크 사회’로 대전환하고 있다는 메타포다. 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대전환은 양가적이다. 우선 전자기기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행위자에게 자유를 준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전자기기를 통해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익명성이 극대화된다. 그들 모두 사람으로서 마땅히 주고받아야 할 의례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서비스산업이 요구하는 감정노동과 감정관리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사회학자 지멜이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든 ‘사회적 어울림’(sociability)을 쪼그라트린다. 사회적 어울림은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마치 동등한 것처럼 대하는 동시에 서로를 독특한 존재로 존중한다. 신분제를 제거했다는 현대사회에서도 시민들은 여전히 사회구조적으로 동등하지 않다. 그럼에도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사회적 어울림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키오스크 사회는 다른 시민들과 마주할 사회적 장을 줄임으로써 이러한 문화적 역량을 키울 기회 자체를 축소시킨다.

키오스크와의 상호작용이 사회적 어울림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전자기기와 상호작용하려면 교육받아야 하듯 사람과 상호행위하기 위해서도 배워야 한다.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대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습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을 펼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키오스크의 확산을 단지 경제적 효율성이나 접근의 평등성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키오스크 사회가 번져갈수록 더욱더 사회적 어울림의 공간을 이곳저곳 널리 구축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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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 한국문화원장 박모씨의 비리 혐의에 관한 조사가 부실했다는 지난 2일 ‘뉴스타파’의 보도를 접하고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다.

7월16일 뉴스타파는 박씨의 비리를 처음 보도하며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해외문화홍보원이 지난 5월의 정부합동감사에서 봐주기 감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보도 직후에 해외문화홍보원은 조사에 나섰고, 7월22일부터 25일까지 직원 4명으로 이루어진 조사팀이 현지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박 원장의 비리를 알린 (아마도 계약직일) 문화원 직원들이 궁지에 빠진 모양이다. 비리 혐의에는 현 박양우 문체부 장관의 윤모 정책보좌관도 연루되었다니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뉴스타파의 보도 영상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블랙리스트 스캔들과 관련하여 문체부 공무원 등 수사의뢰가 된 10명 중 하나인 김모씨가 기자에게 철저한 조사를 다짐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지난 7월1일자로 문체부는 대규모 인사발령을 냈다. 작년 말 문체부가 제2차 대국민사과와 함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수사의뢰한 공무원 중 3명이 이날 산하기관으로 발령이 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3명의 인사 내용을 본인들이 원하지 않아 문체부가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김씨이며 그는 해외문화홍보원의 해외문화홍보기획관이 되었다. 

2017년 7월부터 1년 가까이 활동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펴낸 백서에 따르면, 김 해외문화홍보기획관은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장 시절에 하급자에게 ‘2016년 찾아가는 중국도서전’ 위탁도서 중 5종의 배제를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인물이다. 그는 이미 출판계에 의해 형사고발이 되어 있었지만, 해외 문화원에 근무 중이라는 이유로 직접 조사도 받지 않았다.

이처럼 제대로 조사나 처벌을 받지 않고 해외문화홍보기획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산하기관의 비리 혐의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을까? 블랙리스트 실행, 짬짜미 비리, 자기 식구 봐주기 관행이 공무원 사회의 체질과 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의혹이 짙다. 다른 예로, 지난 7월19일 박종관 문화예술위원장은 문화예술위원회가 저지른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거듭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상부 지시를 거부해 불이익을 당한 문화예술위 직원들과 달리 정작 핵심적 역할을 한 ‘가해자’들은 피해 예술가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 거센 항의를 받았다.

지금 양심적이고 능력있는 공무원들의 심정은 매우 참담할 것이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긴박한 대전환의 시대에 공무원 사회의 갱신은 절실하다. 블랙리스트를 기획하고 실행한 이들의 진심 어린 반성과 변화가 없다면, 진상규명은 영원히 미완으로 남을 것이고 국정목표의 하나인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를 위한 참다운 ‘민관협치’의 길을 개척할 수 없다.

뉴스타파의 영상은 민망할 뿐이다. 문체부 공무원 출신 문화원장은 자신의 결백을 위한 맞대응 차원인지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려고 취재기자에게 걸핏하면 휴대폰을 들이댄다. 관련된 젊은 주무관은 공익제보자에게 신분 노출 염려가 있으니 조사를 받지 않으려면 연락을 달라는 묘한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기자가 e메일 사본을 들이대며 왜 공익제보자의 신상보호 원칙을 무시하는 메일을 보냈느냐고 추궁하자 눈이 부시다면서 딴청을 피운다. 공익제보자가 그렇게나 만만했던가, 명확한 증거가 남는 e메일을 사용하다니.  

나도 블랙리스트가 신물이 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기는 어렵다. 지난 1월7일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은 문체부의 어설픈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며 공무원 두 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그중 한 사람이 윤 회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내가 2월15일자 ‘정동칼럼’을 빌려 이런 적반하장의 행태를 실명으로 비판하자 그는 나마저 형사고발했다. 당연히 무혐의 처리되었지만, 경찰 출두 일정을 잡는 일이나 조사과정은 내게 괴로운 시간낭비였다. 학교 선생이 글이라도 한 줄 더 읽을 시간에 무슨 꼴인가. 그래서 이 글이 비판하는 모든 공직자의 실명을 숨겼다. 독자께서 겁먹었구나 하신다면 항변하기 어렵지만, 물러서지는 않아야겠다. 고초를 겪는 힘없는 공익제보자들을 잊어서야 쓰겠는가.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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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등 유통업계 종사 노동자들에게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서 있는 자세로 대기하도록 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유통업 종사자 건강권 증진·노동환경 개선 등을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장관에 권고했다고 8일 밝혔다. 몇 차례 현장 조사를 통해 드러난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노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강제하는 움직임이다.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이 4월2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장 내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묵묵부답인 백화점·면세점 업주들를 규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인권위는 산업부 장관에게는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적용대상·범위 확대 검토, 휴게시설 등 작업환경에 관한 사항을 실태조사에 포함하고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 수립 시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노동부 장관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근로자 휴게시설 설치 및 세부기준 이행 현황 점검’ 조항을 신설하고, ‘서서 대기자세 유지’ ‘고객용 화장실 이용 금지’ 등의 관행을 점검·개선할 것과 미이행 시 과태료 등에 관한 사항을 법제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지난해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의 화장품 판매 노동자 건강실태 조사에선 백화점·면세점의 화장품 판매 노동자가 하지정맥류나 방광염 등 각종 신체 질환이나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2배에서 최대 6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에는 백화점과 면세점 내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관행이 노동자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진정이 인권위에 접수되기도 했다. 

사실 현재도 큰 틀에서 관련 법규는 갖춰져 있다. 2011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마트 내 노동자를 위한 의자 비치를 의무화했고, 2018년 노동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와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가이드’ 등을 마련해 유통업체에 권고했다. 다만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이번 인권위의 권고는 관련 부처에 세부기준 마련과 이행 현황 점검 조항 신설, 과태료 신설 검토 등 내용이 구체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를 표방한다. 해당 부처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과 고객도 ‘고객이 왕’이기에 앞서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인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화장실 가게 해 달라는 요구를 외면하고,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후진적인 노동환경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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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일단 보류했다. 8일 ‘일본수출규제 관계장관회의’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당초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삭제하는 조치를 ‘전략물자수출입 고시’ 개정을 통해 추진하려던 방침을 바꾼 것이다.

현행 고시는 전략물자 지역을 ‘가지역’과 ‘나지역’으로 구분해 일본 등이 속한 가지역 국가에는 수출우대조치를 하고 있다. 정부는 ‘다지역’을 신설하고 일본에 대해 별도의 규제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를 보류하고 ‘눈에는 눈’으로 맞서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일본이 한국의 결정을 주목하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함께 이제민 자문회의 부의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의 방침은 갈등을 완화하려는 대승적 조치다. 먼저 도발한 것은 일본이지만 힘겨루기를 중단하고 냉각기를 가지면서 해결방안을 찾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국이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마당에 동일한 맞대응 조치를 취하는 데 따른 부담이 큰 점도 있다. 승소 확률이 낮은 것은 물론 일본의 방어논리를 강화시켜줄 수 있다. 대일본 수출규제가 한국 기업에 타격을 주는 부작용도 감안한 듯하다. 

일본이 보인 일련의 유화적인 태도도 묵살할 수 없었을 터이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도 추가로 개별규제 품목은 지정하지 않았다. 근본적인 전략의 변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전 가능성을 낮춘 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기왕에 규제했던 품목 가운데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의 한국 수출을 예상보다 빨리 허가한 점도 고려 요소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갈등의 위험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얼마든지 자체 판단으로 수출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다. 언제든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한국으로의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이다. 유화조치가 한국의 반응 떠보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정부의 신중하고 시의적절한 판단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일 갈등이 전면전에서 벗어나 숨고르기 국면으로 들어선 것은 일단 다행스럽다. 분명한 건 한·일 간 갈등이 양국 모두에 마이너스라는 사실이다. 일본이 한국에 필수적인 부품을 수출규제함으로써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고, 한국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여행 중단이 확산되면 일본 역시 큰 피해를 피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한·일 간 신뢰가 갈수록 바닥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간 신뢰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양국 모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양국 국민이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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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기름을 부은 유니클로 임원의 말은 아마도 그가 장기간 우리 국민을 면밀히 관찰한 데에서 나온 말이리라. 그 임원은 ‘냄비근성’을 부드럽게 표현해 줬는데 우리 국민은 왜 분노한 것일까. 아마도 수많은 사회문제들에 쉽게 끓다가 아무런 해결 없이 잊히고 반복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면이기에, 정곡을 찔린 아픔에 더 분노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폭염과 기후재난, 겨울에는 미세먼지, 연중 플라스틱쓰레기와 핵문제, 자연파괴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환경뉴스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이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가 오염되어 모두가 피해를 받는 상황이 뚜렷해짐에도 점점 관심 밖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폭염은 에어컨, 녹조는 페트병의 생수, 미세먼지는 공기청정기가 해결해주고 쓰레기와 방사능은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외면하지만, 더 이상 진부한 재난영화의 클리셰가 아닌 내 눈앞의 현실임을 주시해야만 한다. 언론을 만들어가는 일부는 외면이 가능하겠지만 많은 서민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8일 경북 영주시 평은면 영주댐 부근에 짙은 녹조가 끼어 있다. 이곳은 영주댐을 만들고 4년동안 매년 녹조가 발생된 곳으로 수질개선을 위해 만든다는 목적과 다르게 오히려 수질이 악화된 지역으로 내성천 보존회등 환경단체들이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한반도 역사상 최대 혈세낭비와 환경파괴 행위인 4대강사업으로 촉발된 ‘녹조라떼’는 한때나마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지금은 마치 강물이 깨끗해지기라도 한 양 관심 밖으로 밀렸지만, 연어도 아닌 것이 물을 거슬러 오르며 확산되고 고도정수에도 식수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갈수록 오염이 심해지는 게 현실이다. 4대강 재자연화 촉구는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하루라도 빠른 보의 철거와 강둑의 복원이 국민의 생활환경 개선과 건강 위협을 줄이는 일임은 자명하다. 여기에 더해 경제부흥을 빙자한 환경파괴 행위인 하천 토건사업이 허상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로도 반드시 빠르게 추진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도 보 해체는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그런데 복원이 더딘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파괴적 보 조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단물을 다 빼먹은 4대강이 아닌 그 지천으로 옮겨갔을 뿐, 지금 이 시간에도 4대강을 포함해 국토의 모든 강에는 무수히 많은 보가 촘촘히 건설되고 있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단순 진리의 검증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는데, 이제 또 다른 만고의 진리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검증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4대강을 막은 16개 보 해체에만 관심을 갖는 사이 국토의 실핏줄이라 할 수 있는 지천에서는 각 지천 하나당 4대강사업 모든 보의 개수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보가 지금도 계속 건설되고 있다. 그럴싸한 ‘생태하천 복원’ ‘고향의 강’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다.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강을 죽이고, 지금은 ‘생태하천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위대함이 만들어낸 생태기능과 아름다움을 망가뜨리고 있다. 말장난 사업으로 멀쩡한 멸종위기어류의 서식처가 없어지고, 둔치의 자연정화기능이 상실되고 있다. 더불어 상류의 물길까지 막아 물은 4대강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오염된다. 윗물에서 썩은 물이 흘러들어오는데 4대강 보가 해체된들 강물이 깨끗해질 리 만무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지천의 수많은 보 조성사업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하류의 4대강에 있는 모든 보를 해체해도 절대 물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4대강 재자연화는 늘 그랬듯 ‘논란’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그사이 지천의 보는 셀 수 없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루한 논란 끝에 시범적으로 철거한 몇몇 보는 궤변으로 일삼은 4대강 찬성론자들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낼 것이다.

불탄 잿더미 복원을 위한 논쟁보다는 지금 확산되는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벌어진 폭력인 4대강사업보다 현재진행형인 지천에서 자행되는 각종 하천파괴사업 중단이 훨씬 시급하다. ‘녹조라떼’는 후손의 생명을 위해 식지 않는 ‘가마솥’이 되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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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여년 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는 ‘요즘 것들’의 버릇없음을 탄식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의 점토판에도 ‘요즘 애들’을 나무라는 폭풍 잔소리가 발견되었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역사 이래 인류가 고민해온 숙제일 터이다.

수고했으니 저녁이라도 함께하려는 상사에게 막내 사원은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선수를 친다. 그는 이미 검도복으로 갈아입고 준비한 상태다. 야근하려는 팀장이 “저녁 뭐 시켜줄까”라고 묻자 젊은 직원은 음식 대신 “퇴근시켜 주세요”라고 말한다. 팀장은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라는 아재 개그로 쑥스러움을 모면하려 하지만 억지 웃음을 유발할 뿐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습속을 부끄럽게 하는 상업광고의 장면들이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씨(오른쪽)와 90년대생인 경향신문 이유진 기자가 5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제 사회 주축으로 진입하고 있는 1990년대생은 이전 세대보다 부유하지 못한 첫 세대로 꼽힌다. 팽창사회를 경험한 기성세대가 수축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 세대를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진짜 꼰대가 된다. 1990년대생들은 IMF 외환위기(19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겪는 앞 세대를 보면서 회사에 충성하거나 열심히 일해도 보답이 없다는 걸 먼저 학습한 세대다. 직장이라는 곳이 안정적인 선택지가 아닌 이상 충성과 소속감, 희생은 그들의 언어가 아니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는 베스트셀러가 말하는 바가 있다. 1990년대생 담론을 일으킨 <90년생이 온다>(임홍택)는 이 세대의 특징으로 ‘간단함’ ‘병맛’ ‘솔직함’을 꼽았다. 길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재미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이 불편해한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신세대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0년생이 온다>를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누구나 경험한 젊은 시절, 그러나 지금 우리는 20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라는 글을 적어 책을 전했다고 한다. 다 함께 그네들이 역사적 ‘별종’이 아닌 이 시대의 ‘요즘 것들’임을 공유하자는 취지일 터이다. 그게 국정과 정책에도 반영되기를 기대해 본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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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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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일단 국면은 경제전쟁처럼 보인다.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에 한국이 대응하는 식으로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부터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2019년은 1919년과 다르다는 결의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다짐도 눈에 띈다. 

아베 정권의 도발에 대해 시민사회는 단호했고 또 지혜로웠다. 일본 국민과 아베 정권은 나눠 봐야 한다며, 서울 중구청이 내건 일본 반대 깃발을 내리게 했다. 보이콧 운동은 민간의 몫이라며 여론을 일으킨 것은 놀라웠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곧바로 깃발을 내린 중구청의 대응도 좋았다. 꼭 중구청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보다 성숙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집단지성의 발현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 이번에는 이겼으면 좋겠다. 아베 정권의 오만한 행패를 묵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시작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냐는 법리논쟁이었다. 한동안 오락가락하긴 했어도 대법원은 청구권협정과 별개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 국가 사이의 채권·채무관계는 풀었을지 몰라도,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있다는 거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재산 압류와 매각 절차가 진행되었다. 판결에 따른 민사 집행을 하는 데 행정부의 역할은 전혀 없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의 경제보복은 뜬금없고 가당치 않은 것이다. 반성조차 없는 가해자의 횡포일 뿐이다. 그게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염두에 둔 것이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정치적 속내 때문이든 상관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이웃 나라를 강제 점령해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했던 전범국가가 취할 행보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양식 있는 시민들이 분노하고 이번에는 제대로 싸워보자고 벼르는 거다. 

일본 정부는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인권문제를 간단하게 경제전쟁으로 바꿔 버렸다. 이른바 프레임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술책이다. 상대가 프레임을 바꿔 자행한 경제도발에 제대로 맞받아 싸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책을 마련하고 또 다른 도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싸움이 원래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인권문제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결코 잊어선 안된다. 아니, 단지 잊지 않는 데서 멈춰선 안된다. 경제전쟁의 프레임을 되돌려 가해자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반성도 사과도 없으며, 나아가 객관적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1965년 이후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되짚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부족했기에, 피해자들은 법원을 통한 구제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던 거다. 아쉽게도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정부 차원에선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기본적인 인권문제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생존 피해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보다 신속하게 움직였어야 했다. 

가해자가 반성조차 없고, 엉뚱한 경제보복이나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비도덕성, 반역사성, 그리고 반인권만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본과 싸움을 벌이는 한편, 피해자들을 구체적으로 도울 방법도 찾아야 한다. 우리 국민의 피해를 우리 정부가 먼저 걱정해야 하는 당연한 책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과거사를 이렇게 푼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을 지켜보는 여러 나라의 정부와 시민들에게도 한국이 인권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대응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줄 수 있어서 좋다. 

솔직히 말하면, 인권문제를 두고 일본과 아옹다옹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풍경이다. 일본의 정치지도자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정치인이 된 전형적인 도련님이다. 아베 신조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외무대신이던 시절, 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아베 신타로가 장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비서를 지낸 것과 같은 방식의 정계입문이었다. 아베 신조는 2021년까지 총리직을 예약해놓았으니, 이대로라면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유명한 가쓰라 다로 총리의 20세기 초반 기록을 넘어서는 거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을 뿐, 한국에서라면 아베식 성취는 불가능했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없다. 집안 내력에 따른 후광 따위는 없었다.

두 나라 헌법만 봐도 금세 답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헌법 제1조는 일본왕이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평화헌법 조항인 제9조에 이르기까지 제1조부터 제8조까지는 모두 일본왕에 대한 규정들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극단적 대비다. 적어도 국가체제와 민주주의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일본에는 흔한 국가인권기구도 없다. 일본은 여전히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아베 신조의 직함은 내각총리대신이다. 일본왕의 신하일 뿐이다. 

당장의 경제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권문제를 풀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지형을 만들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가 아니라, 일본 정부는 상상도 못할 새로운 방식으로 싸우는 거다. 우리의 진지한 노력은 일본 시민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을 거다. 괜히 무시하거나 괴롭혀도 좋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따라 배우고 싶은 부러운 나라가 되는 게 진짜 이기는 거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겨보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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