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15일은 서울에 지하철이 개통된 날이다. 그날 석간신문에는 “대망의 지하철 전철시대 개막” “수도권 교통의 혁명” 등의 제목과 함께 여러 기사가 실렸다. 세계 지하철 건설 역사상 가장 짧은 공사 기간을 자랑하며, m당 건설단가가 300만원으로 국내에서 제일 비싼 공사비가 들었다거나, 공사기간 중 파낸 흙으로 군자동 저습지를 메웠다거나, 청량리에서 열린 개통식이나 인천에서의 시민환영대회 사진과 함께 그날 시승을 한 시민들의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지하철을 타니 정신이 아찔하다든가, 30초 만에 문이 닫히니 어리둥절하다든가와 같은. 그날 기념 승차권을 가진 2만여명의 시민들이 “신나게 도는 선풍기 아래서 피서마저 겸한 담소를 나누며” 시승을 했다고 적혀 있다. 

그 신나게 도는 선풍기 아래, 나도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 밑을 시속 40㎞로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엄마와 떡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74년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출처:경향신문DB)

그날은 광복절이었다. 또한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통령 부인이 총에 맞은 날이기도 했다. 그날 아침 우리는 느긋하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화면으로 그 아수라장을 목격했다. 뭔가 일이 일어난 것 같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으며, 무슨 작은 해프닝이겠거니 생각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종각역으로 갔다. 무료 왕복 지하철표를 받아 종각에서 청량리까지 갔다가 다시 열차를 바꿔 타고 종각역으로 돌아왔다. 서울역이 아니라 종각역으로 간 것은 떡 때문이었다. 

유명한 종로의 떡집에서 개통기념으로 떡을 나눠준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길게 줄을 서서 찹쌀떡을 받았다. 다섯 개를 한 줄로 묶어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눠주는 떡을. 엄마는 떡집 주인이 어린애라고 주지 않으려는 것을 내가 기어이 딱 버티고 서서 “나는 왜 안 줘요? 나도 사람 하나인데?” 하며 따졌다고 했다. 그 모습이 정말 우습고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나? 결국 주인은 “자, 한 사람이다” 하고 우리에게 떡 한 줄을 더 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떡 두 줄을 받아, 한 줄은 지하철에서 까먹고 나머지 한 줄은 집에 가서 먹었다고 한다. 오후에 간 사람들은 떡도 못 받았다며, 일찍 가서 받아 먹은 거라고 은근히 자랑하듯 말하면서.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고 그 아침부터 찾아갔는지와 그날 지하철을 탄 느낌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두꺼운 종이승차권의 질감까지도 기억하는 사람이. 그래도 지하철 안에서 먹었던 찹쌀떡은 정말 맛이 좋았다고 기억했다. 

그리하여 엄마에게 남겨진 1974년 광복절의 기억을 종합하면, ‘대통령 부인이 죽은 날 그것도 모른 채 새로 개통한 지하철을 타고 공짜 떡을 먹으며 좋아했다’로 정리된다. 또한 나는 기어이 한몫의 떡을 챙겨 아버지에게 가져다준 아이로 엄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후 나는 수도권 전철과 더불어 살았다. 1호선 전철역에서 가까운 인천의 어느 동네로 이사를 갔고, 바로 그 전철을 타고 통학을 했고, 그 전철을 타고 종로통으로 가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했으며,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주 뜀박질을 했다. 지하철 개통을 기념하여 나눠준 공짜 표와 기념 떡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은 나의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신문기사의 표현대로 수도권 교통의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당시에, 엄마도 나도 몰랐던 것이 있었다. 최단기간 최고비용으로 개통된 수도권 전철이 무슨 돈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무상원조가 아니라 고금리 차관이었으며 고리로 돈을 빌려주면서도 일본 물자만 구입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는 것을, 열차 한 대에 두 배의 폭리는 취하며 팔아먹었다는 것을, 기술이전은커녕 하급공사만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고금리로 빌려준 돈은 결국 공사를 담당한 전범기업의 주머니로 돌아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무상원조라는 면죄부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는 산업구조의 족쇄로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장의 잔치를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개통식의 리본을 자르기 위해. 그러나 그것이 45년이 흐른 후, 부메랑처럼 돌아와 뒤통수를 치게 될지도 알았을까? 알았더라도 그렇게 했을까? 

45년 전 서울 거리는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의 물결 속에 축제 분위기를 더했으며, 시민들은 처음으로 지하철 시대를 실감했다고 그날의 석간신문은 전한다. 그리고 그때 네 살이었던 나는 내 몫의 기념 찹쌀떡을 챙겨, 시민의 대열에 합류해 지하철을 탔다. 내가 탄 지하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지하철이 45년 후 어느 곳에 가 닿을지, 아무것도 모른 채 공짜 떡이나 먹으면서 좋아했다.

<천운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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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반도체가 아니라 소년이다. 소년의 나이는 열일곱.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밑으로 어린 동생이 둘 있었다. 그날은 아버지와 콩밭을 매고 있었다. “마을 이장과 면사무소에서 나온 사람, 그리고 다른 네 명 정도가 밭에 있는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을 이장이 아무 말 없이 노란색 봉투를 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훗날 소년이 담담히 구술한 그날은 너무 평온해 더 슬프다. 사람들은 봉투만 전달하고 돌아갔고 아버지는 점심이나 먹자며 소년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그러고는 옷장을 열어 하얀 목면 양복을 입히고는 말없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겼다. 결국에 밥은 먹지도 못했다. 급히 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소년도 아버지에게 봉투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알고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강제징용이었다. 

황해도 곡산에서 콩밭을 매던 소년은 그렇게 일본 규슈의 탄광에 끌려갔다. 그러고는 속옷 한 장만을 걸친 채 지하 채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합숙소의 취침종이 울린 후 소년은 방울 맺힌 눈으로 천장을 보며 말하곤 했다. “전쟁이 싫습니다. 탄광도 싫습니다. 죽는 것도 싫습니다. 식민지도 싫습니다.”

며칠이 지났을 때 사무실에 불려간 소년은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너는 비국민이다!” 바닥에는 대역죄의 증거인 양 보따리가 풀어헤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쌀가루 봉투 안에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넣어준 모양이다. 직원은 이런 물건을 공출하지 않고 감추었다며 소리를 질러대고는 소년의 서류에 ‘비국민’이라는 표시를 해두었다.

‘비국민’은 참으로 괴상한 말이다. 그것은 타국민이 아니다. 국민이면서 국민이 아닌 사람, 다시 말해 국민 자격이 없는 국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우선은 조선인에게 딱 들어맞았다. 당시 조선인은 한편으로 일본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일본 국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식민지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부 일본인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전쟁 중인 나라에 충성을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 말이다.

1945년 1월1일, 소년은 탄광을 탈출한다. 일본 국민도 아닌데 일본의 전쟁에 헌신하며 죽어갈 생각이 없었다. 일본의 비국민들이 그의 탈출을 도왔다. “그 시대는 그곳이 탄광이든 어디든 자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을 놓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도망자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감옥에 들어가는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 일본인들, 더 나아가 그런 일본이라면 일본인이기를 그만두겠다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소년은 부지런히 도망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8월15일 정오에 ‘옥음방송’이라는 걸 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방송이 끝난 후 칼을 찬 군인이 단상에 올라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은 자유다! 대일본제국은 지금 막 그것을 허락한 것이다! 앞으로 너희들의 행동에 절대로 관여하지 않겠다! 이상!”

소년은 이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처음에는 자유라는 말에 만세를 불렀다. 더 이상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까지 이어지던 민족적 속박이 풀렸으므로.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소년은 이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말이 그다음 말이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대일본제국은 앞으로 너희들의 일에 절대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 말이다. 

일본은 항복했고 전승국들과의 협약에 따라 식민지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잃었다. “옥음방송을 듣기 전까지 자네들은 일본의 명령에 따라야 했지만 옥음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자네들과 일본과의 관계는 완전히 없어진 거라네.” 정말로 무책임한 말이었다. “우리는 원해서 징용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대일본제국의 필요에 의해 끌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징용인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았다. 강제징용을 자행했듯 방치를 자행한 것이다.

다음날부터 하카타항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수백명씩 싣는 배로는 귀향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항구에 나앉은 조선인들의 생계를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수십만명이 귀향했지만 또한 수십만명이 그대로 남았다. 소년도 귀향하지 못한 채로 거기 남았다.

소년은 그로부터 70년 가까이를 살았지만 그의 삶은 1945년 8월의 하카타항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았다. 늙은 소년의 구술은 거기서 멈추어버렸다(이흥섭,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 논형). 일본과 한국, 미쓰비시와 삼성은 미래로, 세계로 달려갔지만 소년은 70년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마 귀향했어도 처지가 바뀌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처럼 징용에 끌려갔다가 귀향했던 청년 이춘식은 98세가 되어서야 한국 대법원에서 피해 보상 판결을 받았는데 그러고도 “나 때문에 국민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뱉어야 했으므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삼성을 지키고 일본은 미쓰비시를 지키는데, 불화수소보다 적게 남은 소년들의 이야기는 누가 지키는 것일까. 우리의 기억소자에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했던 비국민들의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기는 한 걸까.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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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서 벨기에인인 주인공은 통역사로 일본 기업에 취직하는데, 작가는 그 일본 기업을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과할 줄 모르며, 오만한 형식과 절차에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변화할 줄 모르는 조직으로 묘사한다.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우리를 배제하는 일본을 보면서 이 소설 속 일본 기업을 생각했다. 이런 상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무엇일까?

미·중 무역전쟁의 화웨이 사례를 보자. 중국의 기술굴기를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주자인 화웨이는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표적이 됐고 결국 지난 5월15일 미국은 자국 기업들에 화웨이와의 사업을 금지하라는 사실상 수출금지 조치를 했다. 세계 2위 스마트폰 공급업체인 화웨이가 스마트폰 운영시스템(OS)인 안드로이드를 더 이상 공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자체 OS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에는 보통 2~3년이 걸리기에 당장에 세계 시장에서의 존립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화웨이 위기설’은 의외로 빨리 마무리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화웨이그룹의 올 상반기 매출도 상승했고, 2020년까지 1000억달러 수준의 매출 유지를 장담한다. 화웨이의 자신감은 자체 OS 훙멍 개발을 올해 안에 마치고 출시까지 할 수 있다는 데서 왔다. 앞으로 중국은 화웨이 폰에 자체 OS를 사용할 것이고, 안드로이드는 세계 최대 시장을 잃어버리게 됐다. 이처럼 화웨이는 기술 개발의 ‘속도’를 ‘가속’하는 방법으로 무역전쟁에서 싸우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밥 교수는 4차 산업 시장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재미있게 비유했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고기가 느린 고기를 잡아먹는 시장”이라고. 즉 미·중 무역전쟁에서의 승리는 덩치 큰 쪽이 아닌 더 빠른 쪽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가한 수출규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기업의 기술 진보를 막으려는 일본의 시도를 뛰어넘는 것은 더 빠른 기술 진보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진보를 가속한다는 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개인 통신과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 스마트 팜, 공유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에 걸쳐 일어난다. 그런데 최근 카카오 택시나 타다 사례에서 경험한 것과 같이 이 변화는 기술과 기업만 준비됐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과 인력의 문제, 정부의 법 제도의 합리화와 개선과 같이 사회 전체가 빠른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두려움과 떨림>의 주인공은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일본 회사의 비합리적 처우로 화장실 청소부가 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소설가로 변모해 성공한다. 반칙하는 상대를 맞잡고 싸우는 데서 끝난 게 아니라 자기 변화에 성공한 결말이 통쾌하다. 4차 산업혁명은 속도전이고, 스스로 변화를 빠르게 수용할 역량을 갖춰야 가속하고 승리할 수 있다. 일본은 스스로 빨리 뛸 변화 대신 추월하려는 옆 선수의 발목 잡기에 매달리고 있다. 무역은 어차피 불공정한 게임이지만 다행히도 4차 산업혁명의 속도전에선 간혹 반칙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따라잡을 만큼 가속이 가능하다. 다만, 그 가속은 스스로 변화할 준비가 됐을 때에만 가능하다. 일본은 놓치고 있지만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지수 | 호서대 글로벌 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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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위험천만한 놀이가 기억났다. 쇠못으로 자석 만들기. 기차 레일 위에 쇠못을 올려놓고 레일에 귀를 댄다.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면 기찻길 아래 숨어 지나가길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쇠못은 종잇장처럼 얇게 펴졌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쇠붙이가 자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이 아니지만 이 쇠붙이는 딱지나 구슬로 교환할 수 있는 소중한 녀석. 누구 쇠못이 더 센 자석이 되었는지 견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름 스릴도 있고 소득도 짭짤했다.

과학자들과 함께한 밥상에서 오래전 악동들의 장난을 떠올린 이유는 그 자리에 자석을 전공한 과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기 전에 자석과 자기력에 대한 짤막한 강연을 들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오래전 기억들까지 소환당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석은 참 신기한 현상이었다. 멀리 있는 물체를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니.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철가루를 뿌려서 자기력의 모양을 본 이후로는 자석에 대해서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날, 강연의 초점은 ‘자기력은 무엇인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요점만 이야기하자면 자기력은 전자가 이동할 때 관찰된다. 전류는 전자의 흐름이고 그래서 전기가 흐르는 전선 주변에 자기장이 생긴다. 전기 신호로 자기력을 제어하는 전자석은 반도체를 사용하기 이전에 일상생활 속의 전자제품들에 흔하게 사용되던 것들이다. 그렇다면 전기가 흐르지 않을 때도 힘이 짱짱한 자석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자석들의 힘의 원천은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전자들의 움직임이다. 원자들이 한 방향으로 서면, 이 전자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힘들이 상쇄되지 않고 합쳐져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구의 내핵에 있는 액체 금속의 전자들의 흐름이 나침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구 자기 현상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데, 작은 금속 조각이라도 원자들이 일정하게 늘어서 전자의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서면 자기 현상이 관찰되는 것이다.

자석과 관련된 연구는 비교적 자석과 자기력이 고대부터 잘 알려진 현상이었고, 영국 사람 길버트가 자석에 대한 일관된 설명을 1600년에 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분야보다 늦었다. 원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다룰 수 있는 기술적인 수준에 이르고서야 자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이다. 앞으로 자석에 씌워진 마법의 베일이 벗겨지고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설명할 때부터 힘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미루고 현상만 기술해 왔던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뉴턴보다 유리하다.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자기력을 비교적 수월하게 설명할 수 있다. 전자 두 개가 평행하게 움직일 때, 둘이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둘 사이엔 전기력만 작용하지만, 둘의 속도가 다르면 공간이 찌그러지고 그 효과가 자기력으로 나타난다.

다시, 밥상의 수다로 돌아가보면, 이야기는 어떻게 쇠못이 자석이 되는가로 번졌다. 오랜 시간 동안 기차가 오가면서 압력과 열이 작용해서 레일이 이미 자석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쇠못에 압력과 열이 주어졌을 때, 레일이 띤 자기력의 영향으로 원자들이 일정하게 배열되면서 쇠못이 자석이 될 것이라는 추론이 이어졌다. 그러면 레일은 왜 자석이 되었을까? 레일 위에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오가면서 압력과 열이 가해질 때, 어떤 힘이 레일 속의 원자들을 일정하게 배열하는 것일까? 한참의 설왕설래 끝에 지자기의 방향에 따라 레일 속의 원자들이 배열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달했다. 그렇다면 레일은 남북 방향으로 N극과 S극이 배열된 자석이 되었을 테니, 그 위에서 만들어진 쇠못 자석도 세로 방향으로 N극과 S극이 놓인 자석이 되리라.

두서없는 밥상 토론이 지구 내핵의 금속 성분의 흐름, 그 흐름에 따른 전자의 움직임, 그것이 만드는 자기장이 대한민국 기차 레일을 자석으로 만든다는 추론으로 이어졌다. 철로 위에 철없는 아이들이 올린 쇠못과 그 쇠못이 기차 바퀴에 밟혀 만들어지는 자석으로, 그리고 그 자석의 극성까지 논의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최종 결론은 직접 해보기 전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 전말을 모두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학 이야기는 이렇게 재미있고, 그 이론에 맞추어 사건들을 꿰어 보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물론, 그것이 모두 진리로 판명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주장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조금만 배우고 익히면, 고리타분한 정치 이야기를 벗어나 훨씬 흥미진진한 밥상 대화를 할 수 있다. 장담하건대, 훨씬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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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로보트 태권V> 주제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나에게 소규모 연구용역을 맡긴 공공기관 직원의 전화다. 제출서류 중 주민등록초본이 빠졌단다. 연구보고서 작성보다 행정서류 정리를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나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다. 

동주민센터를 찾았다. 한 손에는 어떤 서류를 뗄 건지를 적은 종이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는 기계에서 순번표를 뽑아 민원인 의자에 앉았다. 초등학교 교실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처럼 다소곳하게 민원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어르신이다. 500원을 내고 초본을 받아들었다.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500원은 땀이 쏟아지는 무더위에 10㎏의 무게와 수백m의 이동 거리를 의미한다. 500원은 회계상 기타수익일까 잡수익일까. 별생각을 다 하고 앉아 있다. 스트레스 상태인가보다. 이 글을 보며 ‘인터넷으로 뽑지 왜 그런 짓을, 쯧쯧…’ 하며 혀를 차는 분도 계실 것이다. 생각이라는 놈이 스트레스를 만나 좁은 공간에 갇히면, 알고 있는 일도 기억에서 꺼내오지 못하고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스트레스는 두 배가 된다. 하지만 이번 일은 스트레스가 세 배랄까.

추가적인 스트레스의 진원지는 두 곳이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왜 나보고 다시 가지고 오라는 것일까. 나의 신체적 능력과 연구용역을 하는 자의 정부 충성도를 측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나머지 한 곳은 공공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공공서비스가 신체적·사회적·경제적 약자를 역차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민원서류를 발급받는 이들은 업무공간이 실내이고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무직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추론을 바탕으로 보면 젊을수록, 고학력일수록, 월평균 가구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일 가능성이 있다. 반면 읍·면·동사무소에 직접 방문하여 돈을 내고 민원서류를 발급받는 이들은 거주지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거나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자영업자 혹은 고연령층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월평균 가구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일 가능성이 있다. 약자가 공공서비스를 받는 데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시간, 돈, 체력을 더 많이 쓰는 셈이다. 당장 읍·면·동사무소에 방문하여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때 내는 500원부터 없애면 좋겠다. 민원서류는 부처와 기관별로 약 270개가 존재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약자가 역차별받지 않도록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지능정보화사회로 가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불치병을 고치는 데 1회 치료비가 25억원인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 건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시대를 관통하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앞으로도 사서 먹기 힘들 정도의 가격표가 붙은 신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러한 신약의 다수는 일반 국민의 의료데이터와 특정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의료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분석하고 학습한 인공지능을 통해 개발한 신약일 것이다. 이 신약의 주인 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신약을 얼마를 주고 사야 할까. 

지능정보화사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해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고, 반대로 대형자본과 최고지식을 갖춘 이들이 살아남고 중산층은 붕괴하며 초양극화 사회로 진행될 수도 있다. 지능정보화사회는 기존 사회경제 시스템의 진일보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리셋(reset)하는 차원이 다른 진화일 수도 있다. 천사의 얼굴과 악마의 얼굴 중 어떤 얼굴이 우리에게 미소 지을까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 취지에서 우선 민원서류 발급 문제부터 해결해보자.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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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앉아 여름비를 본다


발밑이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단

열무 한단

부추, 시금치 한단 같은


그리움 한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놓은

내 손 한묶음의

크기


고영민(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박용래 시인은 억수 같은 장대비의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는 누군가 자신을 목놓아 부르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장대비 빗줄기를 “상아(象牙)빛 채찍”이라고 해 영혼의 고독과 불안과 통증을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여름비를 대파의 하얀 뿌리 같다고 썼다. 여름비를 보면서 대파며 열무며 부추며 시금치 한단을 묶는 것을 상상한다. 기른 것의 싱싱한 한단을 묶는 일을 상상한다. 또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싱그러운 생각도 한다.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은 풍경을 바깥에 서서 평면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풍경의 공간 내부로 한걸음 들어간 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빗속으로 들어가 빗줄기를 한묶음씩 묶는 상상을 함으로써 그 풍경은 사건적 풍경으로 거듭난다. 하나의 풍경에 노동과 삶의 기억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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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부임한 주한 프랑스공사관 대리공사 콜랭 드 플랑시(1853~1922)는 공사관에서 조선의 고서를 구입한다고 소문을 냈다. 그리고 조선인 통역관을 고용해 책을 대거 사들였다. 1900년 파리 세계만국박람회가 열리자 수집한 도서를 출품했다. 그 가운데에는 <직지(直指)>(직지심체요절)도 있었다. 그때 서지학자 모리스 쿠랑은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알아봤다. 그러나 자신의 저서 <한국서지>에서 <직지>를 “1377년 7월 청주 외곽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 배포했다”고 소개했을 뿐 ‘세계 최고’라고 언명하지 않았다. 

1906년 고국으로 간 플랑시는 <직지>를 포함한 장서를 경매에 내놓았다. <직지>는 수집가 앙리 베베르에게 낙찰됐고, 1950년 그의 가족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1972년 이 도서관 사서 박병선은 ‘파리 세계도서전’에 <직지>를 내놓았다. 그는 출품에 맞춰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8년 앞선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 학계의 공인을 받았다. 1985년 청주시 운천동에서 흥덕사 터가 발굴됐다. 2001년 9월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직지>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미완성이다. 한 권뿐, 그마저 상·하권 중 하권만 전하기 때문이다. 책을 찍었던 금속활자도 남아 있지 않다. 아직도 서양에서는 48부가 남아 있는 구텐베르크 <성서>를 세계 최고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직지>를 더 찾고, 알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지>를 홍보하기 위해 히말라야에 오르다 실종된 ‘직지원정대’ 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10년 만에 발견됐다. 충북 직지원정대는 “지난 8일 네팔등산협회로부터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인근에서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2009년 실종된 민준영·박종성 대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06년 출범한 직지원정대는 2008년 히말라야 등정에 나서 6000m급 무명봉인 ‘직지봉’ 등반에 성공하고 새 등정로 ‘직지 루트’를 개척하는 등 <직지> 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등반에 나섰다 조난을 당했다. 이들 역시 <직지>의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 두 대원의 명복을 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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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무렵이었다. 점심시간 직후, 식곤증이 내려앉은 조용한 편집국에 불쑥 낯선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일말의 쭈뼛거림도 없이 사회부 쪽을 향해 직진해왔다. 

“어, 여기 막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출입증 없이 1층 로비를 무단으로 통과해 올라온 그를 악성 민원인이나 영업사원쯤으로 여긴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는 해고노동자입니다. 제보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단정한 셔츠 차림에 두툼한 서류봉투를 한 손에 끼고 있던 그는 아무런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잡상인’으로 오해를 받게 한 것이 미안해져 안쪽 회의실로 모시고 갔다.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그는 서류봉투에서 주섬주섬 두꺼운 종이뭉치를 꺼냈다. 종이에는 그가 노조 설립을 시도한 순간부터 시작된 사측의 탄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기사화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약 28년 전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말이 거짓일 것이라 단정한 것도 아니었고, 심각하지 않은 문제라 여긴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산적해 있는 수많은 현안들을 떠올린 순간, 그의 오래된 이야기는 내 머릿속 우선순위에서 저 뒤로 밀려났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주신 자료는 저희가 검토한 후 기사화하게 되면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는 찰나, 그는 자료를 복사해 가져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하기야 여러 언론사를 돌며 제보를 할 때마다 그 두꺼운 자료를 원본으로 주려면 복사비용만도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그렇게 복사한 자료는 내 책상 한구석에 다른 서류들과 함께 놓였고, 그 뒤 다시 들춰지지 않았다. 나는 곧 그의 이름을 잊었다. 

그래서 처음엔 몰랐다. 50일 넘게 철탑 위에서 단식투쟁을 하며 몸무게가 30㎏ 가까이 빠지고 오른쪽 반신마비 증세까지 나타났다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0)의 기사를 읽으며 ‘아, 우리 사회가 또 한 명의 노동자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저러다 큰일 나겠다”고 별다를 것 없는 한두 마디를 보탰다.  

삼성그룹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가 9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TV 철탑에 올라가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다 불현듯, 정말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철탑 위에서 앙상한 몰골로 나타난 저 사람이 1년 전 내가 손잡아주지 못했던 바로 그 사람이란 것을. 잊고 있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며 철탑 위의 인물과 겹쳐진 순간, 잠시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리 길지 않았던 그와의 만남을 비교적 자세히 기억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태도가 다른 제보자들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회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꼭 기사화해 주세요. 꼭 연락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보통 제보자들은 자신의 절박함을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하려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끊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필요하면 연락드리겠다”는 내 의례적인 멘트에 “알겠습니다”란 말만 남기고 여상히 돌아섰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는 애초부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왔던 것이다.

그가 결국 철탑 위에 올라가고야 만 것은 자신이 당한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언론사를 돌고, 경찰서를 드나들며 지난 28년 동안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는 뜻이다. 그의 억울한 호소를 거절하고 외면해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있었다. 나는 노동자들이 철탑 위로 올라갈 때마다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해야만 눈길이라도 한번 주는 우리 사회”를 비판해왔지만, 내가 비판해온 그 ‘우리 사회’ 안에 내가 있었다.  

사측은 그를 성추행범으로 몰아 해고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고, 납치·감금까지 했다. 퇴근길,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각목으로 맞아 20일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도 있었고, 아내는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그는 이 역시 사측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에게는 어제 같은 그 일을 사람들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고 했다. 하루도 더 견디기 어려웠을 그 억겁 같은 기나긴 고통의 세월은, 역설적으로 너무 긴 고통이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철탑에 올라가게 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오늘로 63일째. 지금도 그는 삼성 측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 CCTV 철탑 위에 있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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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리스크가 문제다.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및 영공 침범을 미·중 패권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본다면, 동맹리스크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진다. 일본의 경제침략도 한·미·일 3자를 대등한 관계가 아닌 계서적 관계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동맹리스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이 경제도발을 하기 전에 미국과 사전협의를 거쳤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하지 못하는 것도 미국의 눈치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한 행동의 자유를 상실한 것도 일종의 동맹리스크다.  

한·미·일체제가 중요하다면, 한·일관계가 더 악화되기 전에 미국이 조정에 나서야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한·일 양자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하면서도, GSOMIA 파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명백히 미국이 일본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위기는, 알면서도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용기의 부족에서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최근 들어 동맹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담지자였던 미국은 힘과 두려움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일본을 재무장시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의 일환 때문에 일본의 경제침략이 발생했다고 하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판단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재무장한 일본이 언제까지나 미국의 충실한 동맹으로 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재무장한 일본은 행동의 자유를 누리려 할 것이고, 그러면 미국의 생각과 정반대로 중국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면 미국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동아시아 지역의 합종연횡은 수천년 동안 이어진 생존의 기술이다.   

우리에게 일본의 경제침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이다. 중거리 핵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중국과 러시아에는 쿠바 핵미사일 배치사건과 다름없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 핵전쟁도 불사했다. 미국이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언급하자 중국은 즉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반응을 보였고, 러시아는 미국을 향한 전략폭격기 도발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 후보지로 언급되고 있지만, 입지적으로는 일본에 배치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중거리 미사일과 다름없는 이지스어쇼어 배치가 결정되었다. 핵탄두만 장착하지 않겠다면 배치결정에 따른 반발을 겪을 필요가 없다. 한국처럼 중국의 경제공세에 취약하지 않다. 일본 재무장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단속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침략도 한국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기 위한 구상의 일환일 수 있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이도저도 못하게 되고 미국이 가세해 한국을 경제위기에 빠뜨린 다음, 일본은 재무장을 묵인받고 미국은 중거리 핵무기를 배치하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한다는 시나리오를 그저 허황된 망상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우리 같은 나라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만일 한국에 중거리 핵무기가 배치되면 중국은 즉각적인 단교를 포함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한·중 경제관계는 파탄나고 우리 경제는 붕괴될 것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위협은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가고, 북한은 핵무장을 공식화할 것이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전쟁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우리를 지켰던 동맹이 더 큰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번에 방한한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나, 다음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면 동맹국의 입장을 먼저 살펴야 한다. 배치에 따른 괴멸적인 보복과 피해를 동맹국이 알아서 감당하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는 장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가 납득해야 할 문제다.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요구를 수용하든 거부하든 고난과 파국은 불가피하다.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 이후 국민들이 겪어야 할 피해의 정도를 고려해 볼 때, 이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결정해야 할 문제다.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총화를 모아야 결과를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회피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은 감당하기 어려운 모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설 |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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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정치개혁·사법개혁특위가 8월 말 활동시한이 불과 3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전 중이다. 양 특위는 지난달 말 위원장과 간사를 새로 뽑고 위원회 구성까지 마쳤으나 난데없는 소위원장 자리 다툼 때문에 지금까지 개점휴업 상태다. 정개특위는 선거제 개혁 논의를 주도할 ‘1소위원장’ 자리를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사개특위에선 검경소위원장을 두고 민주당·바른미래당이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을 선임하려고 했지만, 한국당이 “우리 당과 협의가 안됐다”면서 안건조정을 신청하며 제동을 걸었다. 국회법상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면 최장 90일까지 활동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90일 동안 법안 논의는 시작도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고서야 어렵게 두 달간 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 취지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정개특위, 사개특위 가운데 어느 한쪽의 갈등이 해소된다고 해서 법안 심사가 순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지난 4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될 때부터 정치적으로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홍영표 정개특위 위원장은 이번주부터 선거법 개정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유기준 사개특위 위원장은 “어느 한쪽만 의사일정을 앞서갈 수 없다”고 했다. 한쪽만 틀어쥐고 있으면 두 특위를 모두 공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여기에 더해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신설키로 한 ‘노동개혁특위’도 엉뚱하게 윤리특위 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출범이 불투명해졌다고 한다. 노동특위 설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한계를 보완하고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주요 노동현안을 중점적으로 다룰 특위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에 따른 것이다. 노동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하루빨리 출범시키기는커녕 다른 위원장직 다툼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지금 양 특위는 이런 자리 다툼으로 허송세월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밤낮으로 서둘러도 안건심의와 합의안 마련이 버거운 상황이다. 더구나 정치·검찰 개혁은 시민이 꼽는 개혁 대상 1, 2호이지 않은가. 여야는 소위원장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고 특위를 정상 가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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