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앞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했다. 대로변에 야자나무가 늘어선 LA를 가로질러 닿은 글렌데일은 조용한 도시였다. 특히 도서관 앞 공원은 한적했다. 노인 둘이 나무 그늘에 앉아 두런거렸고, 그들 뒤로 주먹을 단단히 쥔 소녀가 앞을 응시한 채 꼿꼿이 앉아 있었다. 

 글렌데일시는 2007년 7월30일 미국 하원이 만장일치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기념해 매년 7월30일을 ‘위안부의 날’로 지정했으며, 2013년에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이곳에 소녀상이 설 수 있었던 것은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려는 활동가들의 노력도 주요했겠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지지 덕분이라고 했다. 글렌데일 시민의 40%가 넘는 아르메니아계 시민들이 과거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쉽게 공감했다(<기억 전쟁>, 임지현, 휴머니스트)는 것이다.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것은 아픔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의 연대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시립도서관 1층 갤러리에선 ‘1N3 : SEXUAL VIOLENCE PANDEMIC’ 기획 전시가 열려 역사가 덮어온 여성들의 아픔을 그려낸 예술 작품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위안부의 아픔이 아시아에 있는 작은 나라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오랫동안 되풀이해온 폭력임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서 내가 한참 동안 바라본 것은 철판에 한글로 새긴 글씨였다. 들어봐… 들어봐….

들어봐! ‘평화의 소녀상’은 그들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의 할머니였으며, 어머니였으며, 누이였던 그들은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당신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지구에 산다면 누구든지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17년 일본 오사카시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피해자 기념비’가 서자 60년 동안 맺은 자매결연을 파기했다. 얼마 전 일본 나고야시에서는 전시회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일본은 소녀상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유세에서 러스트벨트로 상징되는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해 계산된 혐오의 레토릭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이러한 논법은 지금도 종종 등장한다. 가령 과거에 비해 경쟁력을 잃은 미국 경제, 특히 중국의 거센 추격 등 외생변수를 여성과 무슬림,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탓으로 전가하고 이들을 위험한 타자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그중 하나이다. 이런 극우 포퓰리즘적 정서는 이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한국 수출규제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문제는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해 한국 내 여론 분열을 계산했다는 정황들도 발견된다. 최근 국내의 정치적 갈등이 더욱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논쟁과 비평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 싸움의 언어 역시 최소한의 공유지를 벗어나선 곤란하다. 상대방의 존재를 근원부터 부정하는 치킨게임의 언어는 윤리적 차원을 넘어 그 언어가 도달하길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어렵다.

한 예로 여당의 야당에 대한 친일 프레임이 현 상황을 타개할 최상의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감정적 민족주의의 언어들이 지지자를 염두에 둔 전략적 화용론의 일부일지라도, 책임 있는 정당의 언어로 여겨지기 어렵다. 이에 대한 야당의 대응 담론이나 언술들은 더욱 문제적이다. 일례로 국가적으로 공감과 연대를 확장해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지혜와 힘을 모으고 신중한 해법을 모색하는 대신, 외교안보라인을 포함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추경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던 야당 대표의 말은 정치의 패권이나 권력 지향적 속성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대다수 국민 정서상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결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여행 보이콧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보다 큰 문제는 언론의 양비론이다. 한때 세계적 경제대국이자 문명화된 국가의 전범으로 여겨지던 일본과 그 정부의 일방적 조치에 대해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엄정한 힘의 논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말이 그중 하나이다. 아베 정부의 ‘내셔널리즘’과 문재인 정부의 ‘극일’ 모두 비이성적이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논조는 또 다른 예이다. 평화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 제9조를 수정해 전쟁이 가능한 이른바 ‘정상국가’로 되돌리려는 역사수정주의자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라는 변수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이를 현 정부의 외교실패로 규정하는 보수언론의 양비론은 위험하다.

특히 관련 사태에 대한 정부 인사들의 대응 담론을 신중치 못한 행위라 문제 삼는 것은 표면적으론 언론의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첨예한 국제질서 속에서 내부의 위기를 외부의 갈등으로 전가해 전쟁 같은 위기상황을 조장하는 아베의 위험천만한 정치공학을 용인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 인사들의 말에 대해 전시동원체제 아래의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양자대립적 논의로 치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지적 또한 계산된 양비론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작은 차이를 봉합하고 큰 뜻에 힘을 모아야 하는 준엄한 시점이다.

<류웅재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800년 전쯤 쓰인 고대 서사시 <일리아스>를 읽었을 때 놀란 점 중 하나는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과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처참한 죽음 묘사였다. 예를 들어 <일리아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는 장면은 이렇게 묘사된다.

 “오른손으로 휘두르는 날카로운 창에서 광채가 번쩍였다. 아킬레우스는 가장 적당한 곳을 찾아 그의 고운 살갗을 살폈다. (…) 쇄골이 어깨에서 나와 목을 감싸고 있는 부분, 즉 목구멍만은 드러나 있었으니 그곳은 치명적인 급소다. 바로 그곳으로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덤벼들어 창을 밀어 넣자 그의 부드러운 목을 창끝이 곧장 뚫고 나갔다.”

<일리아스> 속 숱한 죽음은 통계 숫자로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전사자 개개인에게 모두 처절한 죽음의 정황이 주어진다. “오른쪽 엉덩이를 치자, 창끝이 곧장 방광을 지나 치골 밑을 뚫고 나왔다” “한 사람은 청동 날이 달린 창으로 젖꼭지 위를 찔러 죽였고 또 한 사람은 큰 칼로 어깨 옆 쇄골을 쳐서 어깨를 목과 등에서 갈라놓았던 것이다” “그의 허벅지를 찌르니, 그곳은 사람의 몸에서 근육이 가장 두꺼운 곳이다. 창끝에 힘줄이 끊어지자 어둠이 그의 두 눈을 덮었다”는 식의 죽음 묘사가 1만5000여행에서 이어진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는 현대인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이처럼 전쟁은 매끈한 육체를 조각조각 찢는다. 어제까지 누군가의 친구이자 가족이자 이웃이었던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도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의 본질은 청동기 시대와 현대가 다르지 않다. 군사사가 마이클 스티븐슨은 <전쟁의 재발견>에서 베트남전에 투입된 어느 고참병이 신병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을 전한다.

“총탄은 도널드의 어깨 위쪽을 관통하여 가슴을 뚫고 나왔다. (…) 도널드는 총탄에 맞고 바로 죽지 않았다. 입과 코 밖으로 창자가 삐져나와 걸렸다. 아마 총탄에 맞았을 때 기침하며 쏟아냈을 것이다. (…) 그를 보았다. 그는 17살 난 어린 친구였다.”

전면적인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내 삶의 큰 행운이다. 물론 북한과의 갈등 상황에 따라 ‘전쟁 위협’이 고조되거나 국지적인 무력 충돌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전면전이 벌어지진 않았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국가의 암묵적이며, 당연하고,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국가는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한다. 과거 일본이 식민지 조선인들을 의사에 반해 징발한 것도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전쟁에 반대하거나 정부에 이견을 표하기도 어렵다. 전쟁을 치르는 국가는 어떻게든 이겨야 하므로, 전쟁을 원치 않던 시민들도 전쟁에 힘을 보태거나 최소한 침묵하곤 한다.

많은 이들은 지금 ‘전쟁’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무력을 동원한 전쟁은 아니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로 촉발된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갈등이다. 하지만 경향신문을 포함한 다수 언론, 정치권이 현재 국면을 ‘전쟁’이라 칭한다.

이번 조치는 일본이 물질의 대국일지언정 정신의 소국임을 보여줬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아직 이 ‘전쟁’으로 신체가 찢겨나간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도 없다. 다만 무력이 동반되는 전면전을 방불케 하는 수사, 전시처럼 획일적인 구호만이 난무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표하면 ‘이적’으로 몰린다.

어렵사리 한 걸음씩 진전시켰던 노동과 복지의 수준은 순식간에 물러난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시기를 사업장 규모에 따라 최장 3년 가까이 늦추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는 신규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 절차에 대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상속세를 낮추자는 제안도 나온다. 엄중한 경제 요건을 들며 노조의 파업 자제를 촉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있다. 헌법은 노동자가 파업할 권리를 보장하지만, ‘전시’에 헌법은 거추장스럽다고 여기는 듯하다.

2017년 타계한 스웨덴의 공중보건의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의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고,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아동이 예방접종을 받으며, 세계 인구 중 80%가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는 매우 드물다. 수십만년 동안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 생존을 도모해야 했던 인간의 뇌는 여전히 극적인 본능에 사로잡혀 세상을 오해한다고 말한다.

공포는 유용하다. 창에 허파가 꿰뚫릴 뻔하거나 부비트랩을 밟아 하반신이 날아갈 위험이 있을 때, 공포는 이를 경고하고 피하게 해준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다. ‘전쟁’이란 공포를 퍼트려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은 있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적자원관리란 조직의 유효성을 위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배치하는 한편 계발하고 유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국내외의 인적자원관리는 다양한 기회와 위협요인에 직면해 있다. 우선 인간의 지적능력과 감성이 과학기술과 결합해 인류의 지속 가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지식혁명의 태동은 물적자원을 중시하는 산업혁명보다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반면에 직접고용을 대치하는 외주의 확산은 조직 내 인적자원관리 기능을 약화시켰다.

인적자원관리의 발전은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 정부의 인적자원관리는 정실주의에서 엽관주의를 경유해 실적주의로 변화했다. 정실주의란 관직을 세습하거나 매매하는 왕조나 권위주의 체제의 인사행정을 의미한다. 반면에 엽관주의란 선거를 매개로 대중의 참여를 용인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관직교체를 둘러싼 정쟁이 격화되자 미국은 1883년 펜들턴공무원법을 제정해 능력을 중시하는 실적주의로 전환하였다.

미국 기업의 인적자원관리는 20세기 초 부상한 GM, 포드, 보잉 등 대기업들의 관리체제가 과학적 관리론에서 인간관계론으로 전환된 일과 관련 있다. 1914년 헨리 포드는 매년 400%에 달하는 이직률을 해소하는 체계적 고용관리를 위해 1일 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1시간 단축하는 한편 최저임금도 100% 이상 인상한 일급 5달러를 지급했다. 이후 고용이 안정되고 소비가 촉진되자 포드사는 국민적 칭송을 받았다. 더불어 노동조합 확대와 최저임금제 시행 및 노동관계법 정비로 인적자원관리의 중요성은 배가됐다.

현대적 인적자원관리의 목표는 효율성과 공공성으로 구분된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약한 인적자원관리의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해 1964년 민권법을 제정해 약자우대 조치로 대표되는 공정인사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1991년에 개정된 민권법은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나 연방계약이행절차사무국(OFCCP)과 같은 추진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여성의 고용차별 금지와 평등임금에 관한 유리천장법, 장애인의 고용차별 금지와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하는 미국장애인법 등과 같은 정책수단을 구비했다. 이후 미국은 채용과 승진 및 보상에서 차별이 이루어지는 공공과 민간조직에 수백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규제와 더불어 공정인사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첩경이라는 설득을 병행해 왔다.

우리나라의 인적자원관리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변화를 시작하였다. 청년고용 친화정책 강화, 기간제나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 확산, 지역인재 우대 등이 대표적인 우수사례이다. 하지만 공공 일자리의 양적 확대에 부응하는 신규업무 발굴과 임금체계 조정, 성희롱 기준을 둘러싼 남녀 간 갈등의 해소, 장애인 친화적인 조직문화 유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해소, 고용보조금의 효과성 제고 등에서 분발이 요구된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붓을 들었으나 눈앞이 뽀얘 한참을 머뭇대다가 겨우 긁적거려본다. 8·15, 그때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애들과 들에서 멱자구(개구리)를 구워 먹고 있는데 마을에 라디오가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갑자기 와~ 우리가 마침내 일본 제국주의를 때려 부수었구나, 이제는 왜놈 경찰서와 집을 부수러 간다기에 쫓아가 보고는 눈깔이 떼굴떼굴. 흰쌀이 넘쳐나고 날고기와 갖은 마른반찬, 과자와 과일들이 넘쳐났다. 네놈들만 실컷 처먹었구나. 배알이 뒤틀려 돌아와 “엄마이, 나 밥 줘” 그랬는데 내놓는다는 게 겨우 강냉이 한 자루와 콩국 한 바가지가 아닌가. “야 엄마이, 우리가 왜놈들을 쳐부수었는데 겨우 강냉이 한 자루가 뭐이가? 흰쌀밥 좀 먹자구나.” “얘야, 쌀밥은 있는 놈만 먹는 거다, 네 애비가 쌀 말을 지고 온다면 몰라도.”

나는 그때 퍼뜩 깨우친 것 같았다. 제아무리 민족 해방을 이룩해도 내 것이 없으면 주림은 한이 없다는 거. 그리고 얼마 후였다. 엄마가 “네 애비가 축구선수가 소원인 너를 데불고 서울엘 가신단다. 어서 가서 축구선수가 돼서 돌아오거라.”

그리하여 맨발로 따라온 아, 서울. 와서 보니 그야말로 아득하기만 했다. 중학교를 못 다니니 공을 만져볼 기회가 있어야지. 그리하여 길거리를 헤매며 나는 생각했다. 참된 축구선수란 재주가 있고 뜻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그걸 살릴 수가 없는 이눔의 세상을 발로 차버리는 거, 그게 진짜 축구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길거리의 쓰레기, 깡통, 돌멩이를 걸리는 대로 내지르다 보니 어느덧 아흔이 다 되었다.

이따금 젊은이들이 “선생님, 젊은 날 꿈은 뭐였나요” 물으면 나는 한마디로 자른다. “나는 젊은 날도 없었거니와 꿈도 없었다”며 씁쓸히 고개를 돌린다. “왜 없었어요, ‘젊은 날’이라는 시도 있으신데요.” 이때 나는 멋쩍어 긴 한숨만 들이쉴 뿐 티 나게 내뱉질 못하는 사람이다.

8·15 해방을 이룩한 지 어느덧 일흔넷 해인 오늘, 우리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38선으로 우리네 허리가 동강났지만 이에 우리들은 어떻게 했느냐 이 말이다. “네 이놈들, 얻다 대고 우리네 허리를 잘랐드냐” 하고 들이대고 싸웠던가, 못했다. 도리어 38선을 국경선으로 받아들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여러 해의 실존 경험으로 보면 손바닥만 한 이 땅이 둘로 갈라진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침략이다. 그렇다, 38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대한 침략인데도 왜 우리들은 전면적 도전을 못했던가 이 말이다. 둘째, 8·15 이후 남쪽에서 왜놈들이 뺏어갖고 있던 재산을 다시 뺏어보니 자그마치 남쪽 재산의 95%로, 그야말로 해방의 실질이요, 따라서 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물질적 기초였는데 그때 미국은 그 많은 재산을 미국의 분단을 받아들이고 분단의 국가화에 동조하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에게만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해방의 실체는 없어지고 나아가 부정부패, 악덕 지배계층이 조작된 것이다. 셋째, 우리 겨레의 중심인 이 땅의 ‘니나(민중)’들은 어정쩡한 지배계층의 정치의식, 윤리, 도덕에 물들지 않고 늘 제 넋을 가지고 살아왔다. 왜 나만 땀을 흘려야 하나,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 같이 흘려 다 같이 잘살자는 보편적 인간 정신이 니나들의 역사의식이었는데 그것마저 불순 사상이라며 때려잡았던 것이 이른바 분단국가의 정신적 망발이라. 이 분단시대는 그야말로 인간 정신의 전면적 황폐화를 강요해왔지만 이에 항거하여 니나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이어 발전시키는 계기는 못 잡고 있는 이때 다시 맞는 아, 8·15 해방.

아무려나 기념행사도 나쁘지 않고 되새김질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제 참말로 중요한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니나들의 천추의 한을 들이대 보는 게 아닐까. 첫째, 한반도의 강제 분단은 예나 이제나 그 역사적 본질로 보아 마땅히 청산해야 할 침략이라는 것이니 그것을 어느 누구의 안타까운 깨우침으로만 놔두질 말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의 하나같은 아우성으로 소리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한반도에 대한 분단은 이 땅에 대한 아주 노골적인 침략이니 우리 다 함께 그 침략을 짓부수자. 둘째, 참된 해방은 특정한 몇 사람만 큰소리치고 물질적 풍요를 나눠주는 게 아니다. 특정한 사람이 따로 없이 너도나도 다 같이 땀을 흘리고 그리하여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수록 이끼가 끼게 마련. 그렇다, 날마다 때마다 껍질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목숨, 그것을 ‘살티(새 생명)’라고 했다. 참된 해방의 세상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이들이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판에 아베가 어쩌자고 나타나 판을 깨는가. 일본에도 니나들이 들고일어나 일본, 아니 세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뭐? 일본이 근본적으로 바뀌질 않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제국화를 노골화하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이참에야말로 온 세계가 몽땅 일어나 아베의 신제국주의 일본을 청산해 참 세계평화를 일구어야 할 것이다.

<백기완 | 통일문제연구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참 따뜻하고 배려심 많던 사람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남을 무시하고 위압적으로 대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평소의 기대와 달라진 모습을 접하고 나면 오랫동안 맺어온 인간관계가 무너지기 십상이고, 그렇게 틀어진 관계는 회복되기 매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정서에서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치명적인 일일뿐더러, 그 주어진 지위라는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전보다 많은 것을 누리다 보니 그렇지 못한 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영향력을 실감하면서 사람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측근에 둘러싸여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귀가 막히거나, 쇄도하는 민원 혹은 근거 없는 비방들로 인해 스스로 귀를 막아버리는 일도 일어날 법하다. 다만 이는 실제로 변한 것이라기보다 그전에는 그럴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 뿐 그것이 그 사람이 지닌 본연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정작 사람이 변했다면, 접하지 못했던 정보들과 새로 확보된 시야로 인해서 구체적 사안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지고 그것이 신념의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일 것이다. 전에는 안 보이던 부분까지 고려해야 하고 때로는 안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이전의 지론과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관건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내면에 있다.

군자는 세 번 변한다는 말이 있다. 멀리서 볼 때는 점잖고 무게가 있어서 곁을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막상 만나보면 따뜻한 얼굴빛으로 편안하게 품어주고, 대화를 나눠 보면 명확한 논리력에 탄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는 입장에서는 세 번의 변화지만 실은 변한 것이 아니라 일관된 내면에서 우러나는 인품이다. 엄숙하면서 온화하기 어렵고 온화하면서 명확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인지라 낙차 큰 변화로 느껴질 뿐이다. 지속 가능한 따뜻함은 내면의 올곧음 위에서만 가능하다. 지위가 오를수록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판단의 근거가 사심인지 공의인지를 끊임없이 되물을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국 스스로 그 지위를 감당할 만한 내면을 지니고 있지 못함을 입증하고야 마는 일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추석에는  (0) 2019.09.11
고단한 일상의 찌꺼기를 없애려면  (0) 2019.08.28
사람이 변했다  (0) 2019.08.14
면장을 면하려면  (0) 2019.07.31
혁신을 위해 필요한 것  (0) 2019.07.17
균형은 달려야 잡힌다  (0) 2019.07.0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나의 소원’, 1947년)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는 백범 김구의 말은 겸사가 아니었다. 오랜 소망이었다. 그는 &lt;백범일지&gt;에서 1910년 안명근 사건에 연루돼 투옥됐을 때 독립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실제 상해 임시정부에서 그는 도산 안창호에게 문지기를 청했다. 문지기는 낮은 직책이다. 그런데 임정 내무총장인 도산은 뜻밖에도 경무국장(현 경찰청장) 임명장을 내밀었다. “감당할 수 없는 자리다”(백범), “왜놈 사정을 잘 아는 인재를 등용한 것”(도산). 밀당 끝에 백범은 1919년 8월12일 경무국장에 취임한다.

임시정부 경무국은 독립운동가 보호, 청사 경비뿐 아니라 일본군 정탐, 반민족행위자 처단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인력은 정·사복을 포함해 20여명. 백범은 초대 경무국장직을 5년간 수행했다. &lt;백범일지&gt;에는 1922년 상해 황포탄 폭탄투척에 가담한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고, 일본 밀정 김도순과 정필화를 검거해 처단한 일 등 경무국의 활약상이 상세히 실려 있다. 경찰 총수로서 자부심이 컸던 백범은 경무국장 시절 콧수염을 기르고 백색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찍은 사진을 남겼다. ‘임정 초대 경무국장’은 백범 독립운동의 출발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찰은 ‘순사’나 ‘하수인’의 이미지로 각인된 친일·부일세력이었다. 그들은 독립운동가를 체포·고문·구금하며 식민체제 유지에 기여했다. 임시정부 경찰은 달랐다. 교민과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경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 활동이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경찰청이 8월12일을 ‘임시정부 경찰기념일’로 정하고, 경찰청사에 백범 흉상을 설치했다.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다는 선언이다. 백범 흉상의 표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정부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 꿈일 만큼 가장 낮은 곳에서 겨레를 섬겨 민주경찰의 표상이 되었다.”

<조운찬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계화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는 세계화를 국정 과제로 적극 추진했다. 세계화는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함으로써 국가 간 관계가 새로운 변화를 겪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간 교류의 양적 증대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였다면, 그 관계의 질적 변형은 세계화(globalization)로 명명됐다. 세계화 현상을 ‘인터내셔널리제이션’이 아니라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계화를 지탱해온 양 축은 정보혁명과 신자유주의였다. 정보혁명이 24시간 투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금융자본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했다면, 신자유주의는 자유화·탈규제·민영화를 내세워 ‘미국식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강제하게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한 ‘보수의 시대’란 1980년대부터 열린 이 신자유주의 시대 또는 세계화 시대를 함의한다.

세계화 시대에 제동을 건 것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의 다른 이름은 ‘대침체’였다. 대침체란 1929년 ‘대공황’에 빗댄 말이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대침체의 서막을 알렸다. 대침체는 서구 국가들의 잇단 부채 위기로 이어졌다. 30여년 동안 표준적 세계관으로 군림해온 신자유주의는 결국 고장 났고, 사회과학자들은 물론 정책입안가들은 세계화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지난 10여년간 진행된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가장 주목할 변동 중 하나는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말한 ‘중심부 투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해온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받게 됐고, 지구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간의 도전 및 응전이 세계경제를 뒤흔들어 왔다. 1980년대에 일본의 도전을 물리친 바 있는 미국은 이제 중국의 굴기(起)를 꺾기 위해 무역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세계경제 및 정치가 미국 주도의 ‘1극’에서 미국과 중국 주도의 ‘2극’으로 분화되며 균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변동은 포퓰리즘의 부상이다. 포퓰리즘은 인기 영합 정책인 동시에 정체성 정치다. 정체성이란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고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게 하는 사유와 감정을 뜻한다. 정체성 정치란 종교·인종·젠더·민족 등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며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체성 정치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표출하는 동시에 정치세력에 의해 동원된다.

정체성 정치로서의 포퓰리즘 사례들은 미국의 우파 트럼프주의에서 스페인의 좌파 포데모스까지 다양하다. 일본 아베 정부의 통치 역시 반다원주의와 반지성주의라는 포퓰리즘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가 강조하듯, 아베 정부는 경제성장과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시민의 자유와 입헌민주주의를 거침없이 제약하려는 ‘일본의 싱가포르화’를 추구한다. 민족주의는 포퓰리즘으로 재무장돼 새로운 통치 기술로서의 힘을 얻는다.

이 짧은 글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세계화의 현주소다. 오늘날 세계화는 자신의 내적 긴장을 증대시킨다. 정보혁명의 가속화는 경제의 지구적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는 반면, 포퓰리즘의 발흥은 정치의 애국주의 망탈리테를 소생시킨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가 제로섬 관계가 아닌 동시 증진 관계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 위에 우리 인류는 서 있는 셈이다.

둘째는 변화하는 동북아시아다. 지구적 헤게모니를 놓고 중심부 투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20년’을 포퓰리즘으로 보상 받으려는 일본이 각축하는 것이 21세기 전반 동북아의 현주소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되는 일본의 경제 보복의 직접적 원인은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역사적 문제이지만, 그 배경적 요인의 하나는 대내적으로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며 대외적으론 한국 경제의 부상을 견제하고 제어하려는 아베 정부의 극우 포퓰리즘에 있다고 봐야 한다.

내일은 광복절 74돌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광복절이 안겨주는 감회는 남다르다. 광복(光復)의 의미는 빛을 되찾는 데 있다. 그 빛의 의미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민족의 자존과 독립, 이웃 국가와의 공존과 상생에 있을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을 위한 정신과 기술의 당당한 독립을 추진하되, 동북아의 미래를 위한 평화와 번영의 항구적 모색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가 만일 여든 다섯 살이 된다면, 그때에도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변화하는 인간일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영화 <김복동>을 보는 내내 나는, 오지 않은 시간의 나를 상상해 보았다. 1926년생인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증언한 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의 전면에 나섰다가 한동안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칩거했다. 다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로 돌아온 것이 2010년, 할머니가 여든 다섯이 되던 해였다.

“군인들에게 끌려다닐 때 나는 나를 찾지 않았어. 해방되고 다들 나를 찾을 때도 나만 나를 찾지 않았어. 나 없이 살았어, 나 없이. (중략)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 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했어.”

김숨 작가가 김복동 할머니의 말들을 받아 옮긴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에는 열 다섯부터 예순 둘까지의 삶이 지워져버린 한 사람이 있다. 할머니가 1998년 자신의 그림으로 증언한 ‘14세 소녀 시 끌려가는 날’의 그 모습,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총 멘 일본 병사들의 재촉을 받으며 고향을 떠나던 그날에, 할머니의 ‘나’는 멈춰 있었을 것이다. 예순 둘에 다시 ‘나’를 찾은 뒤에도, 할머니는 따뜻한 격려를 받지 못했다. 부끄럽다며 형제가 등을 돌렸다. 일본에 끌려갈 때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나라는, 40여년 만에 입을 연 할머니에게 여전히 모질었다. 1990년대 초 집회에 나선 할머니는 곧잘 이를 막는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져 알 수 없는 곳에 떨어뜨려지곤 했다. “거짓말이라고. 그런 일을 겪고 사람이 살 수는 없다”고 낳아준 어머니조차 도리질을 해야 했던 할머니의 진실은 그렇게 거듭 내던져졌다.  

1992년 1월8일 수요시위가 처음 시작된 후, 나는 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습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종종 현장을 지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결연한 모습으로 시위에 나서는 할머니들을 존경하면서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당당한 요구라는 것 외에 할머니들의 싸움의 의미를 20대의 나는 잘 몰랐었다. 눈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30년 세월이 흘랐다는 것을 체험한 50대의 나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할머니들의 진저리쳐지는 고통은 현재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고, 쉽사리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폭력에 의해 훼손된 ‘나의 사람됨’을 복원하는 투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떳떳한 고향이 있습니다.”

2018년 아픈 몸을 이끌고 일본 교토의 조선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간 할머니는, 그 옛날 자신처럼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교복으로 입은 소녀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떳떳한 고향이 있으니 일본 땅에서 차별받더라도 기죽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소녀였던 할머니는 지은 죄도 없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할머니 자신은 오늘의 소녀들이 기댈 떳떳한 고향이 되었다. 

한 사람의 삶이, 역사의 텍스트가 된다. 식민 지배의 숨죽인 피해자를 넘어서 평화인권운동가로 탈바꿈한 한 사람의 마음의 진보를 통해 한국 사회도 조금씩 사람다움의 길로 나아왔다. 김복동 할머니의 싸움은 과거와는 달라야 할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2016년 지진이 일본 규슈를 덮쳤을 때, 누구보다 먼저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고 수요시위 현장에서 모금참여를 호소했던 김복동 할머니에게서 오늘의 우리는, 아베는 규탄하되 서울 한복판에 ‘노 저팬’ 깃발이 걸려서는 안된다는 분별력을 배웠다. 독립된 나라에서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이 ‘나의 소원’이라고 했던 것은 백범 김구였지만, 온몸을 던져 그를 실현한 것은 죽음 같은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고, 정의를 요구하며, ‘나비 기금’을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여성들을 돕는 일에 나섰던 김복동 할머니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반바지 차림에 까르륵거리며 웃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고 나온 아이들이었다. 할머니는 그 소녀들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1991년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김학순 등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날로 올해 제7회를 맞는 국가기념일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이 순간을 평생 기다려왔다”는 고 김학순의 일성을 듣고 나는 전율하였다. 이른바 ‘유교적 정조문화’를 가졌다는 사회에서 이 고령의 여성은 어떻게 이렇게 날카롭게 인식을 벼릴 수 있었을까. 그때부터 ‘위안부’의 말과 재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9년에는 2000년 12월 도쿄에서 개최될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제 전범 국제여성법정’의 준비 차원에서 증언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lt;증언4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gt;(이하 &lt;증언4집&gt;)를 2001년 출간하였다. 그동안 한국에는 1993년 &lt;증언1집&gt;이 출간된 이래 2집(1997), 3집(1999), 4집(2001), 5집(2001), 6집(2004) 등 모두 100건이 넘는 피해자 증언이 축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재현 방법에 대한 논의에도 진전이 있었다. &lt;증언4집&gt;은 ‘증언자 중심주의’ ‘묻기에서 듣기로’ ‘구술체 재현’ 등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위안부’ 증언연구는 한국의 공권력 피해자 증언연구의 맥락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된 연구이며, 구술사·여성사·피해자 연구 등의 측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되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은 조명되지 않았던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견인차가 되었고, 법정과 인권기구에서 정의실현을 위한 증거가 되었으며, 이름 없는 고령여성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한국의 식민지역사와 아시아역사를 새로 쓰고 새로운 집합기억을 만들어내는 등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간 위안부 증언은 주로 한국어로만 회자되었다. 1995년 영국 학자 키스 하워드가 &lt;증언1집&gt;을 번역한 이래 증언집 전권이 번역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이뤄진 &lt;증언4집&gt;에 대한 영문 번역사업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이 사업은 서울대 여성연구소와 미국 어바인에 소재한 캘리포니아대학의 한국학센터 간 공동연구로 진행하였다. 위안부 증언은 어려운 한국어이다. 그것은 깊은 침묵 속에 놓인 40여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고, 가공할 성폭력 경험을 언설로 표현해야 하는 언어적, 신체적, 감정적 텍스트이다. 피해자들은 진한 사투리를 사용하였고, 때론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개인의 이야기이자 당시를 함께 살아냈던 집합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얼매나 우리 어매가 속이 상혔겄어. 그 여자가 쌀 내놓으라고 졸르니껜 쌀이 어디가 있겄어? 속이 상하지, 그래서 내가 세상에, 여섯 살 먹어서 뭔 밥 세 숟가락 돌라 먹고, 우리 엄마한테 그렇고롬 맞고, 그러니 일본놈이 쌀밥 줄게 가자 허니 내가 안 따라 가겄어?”(&lt;증언4집&gt;, 최갑순 증언, 173면)

&lt;증언4집&gt;을 출간한 연구원들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그들의 힘과 영혼, 고통과 극복의 서사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런 의미를 살려내는 외국어 번역이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문 1차 번역을 담당했던 UC 어바인의 연구원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양국어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와 한국의 근대역사에 대한 지식과 감각으로 깊이 있는 번역을 해 주었다. 서울대 여성연구소팀은 번역의 대상물인 한국어 &lt;증언4집&gt;과 인터뷰 당시 작성하였던 ‘녹취록’을 바탕으로 증언자가 말한 증언의 의미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짚어내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위안부 증언의 원본은 녹취록이지만 또한 그들의 말 그 자체에 있는데, 해석과 판단의 난점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다. 연합군 자료를 조사해 온 강성현 교수(성공회대)가 말하듯이, 당시 연합군 심문자와 피심문자 ‘위안부’ 사이에는 통역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매뉴얼대로 ‘위안부’들을 매춘부라는 뜻의 ‘prostitute’로 표기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명확한 이름조차 없었던 이 인권유린 행위는 1990년대 이후에야 인권 법률가들, 역사연구자 등에 의해 ‘체계적 강간’ ‘성노예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lt;증언4집&gt; 영문 번역은 대다수 고인이 된 증언자의 말을 기억하고 기록했던 한국의 연구자들이 증언자들과 잡았던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머지 한 손을 저 태평양 건너의 연구자들과 맞잡고 진행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미국의 연구자들이 나머지 한 손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내밀 때 ‘할머니들의 언어’는 지구를 돌고 돌아서 메아리치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런 ‘번역의 사슬’로 인해 할머니들은 살아있는 영어로 세계인들에게 말을 하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지역의 이야기가 글로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 및 형식에 대한 번역작업에 대한 지원이 요청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4일은 1992년 시작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가 1400번째를 맞이하는 날이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는 28년째를 지나며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위’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1991년 8월14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에 맞서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수요시위의 도화선이었다. 오늘은 특히 한·일 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1400번째 시위가 열리는 데다 김 할머니의 증언을 기려 지난해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1400차 수요시위는 서울을 비롯해 호주·영국·일본 등 10개국 34개 도시에서 함께 열린다. 90분간의 행사에서는 각국의 연대성명 발표와 영상메시지 상영, 세계 연대 집회 현장연결도 진행될 예정이다.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들이 1400차 수요시위에 함께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과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사진전시회도 열린다.

수요시위의 요구사항은 일본 정부의 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역사교육, 법적 배상 등이다. 애초 30명 남짓으로 시작된 시위는 2002년 500회, 2011년 1000회를 돌파했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호소는 나라를 움직였고, 나아가 세계를 바꿨다. 수요시위에 용기를 얻은 아시아 각국 피해자들이 ‘미투(Me Too)’ 대열에 동참했고, 유럽에서도 그 뒤를 따랐다.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측면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성폭력이자, 전쟁범죄라고 거듭 규정했다. 수요시위는 과거를 지우고 부정하려는 일본의 민낯을 드러내고, 고발했다.

스스로를 ‘떳떳지 못한 몸’이라 여기던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요시위를 통해 역사 속에서 걸어나와 시민들에게 용기와 인권, 평화를 몸소 가르쳤다. 이제 수요시위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연대하는 인권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별세한 후에는 직접적인 사죄와 반성의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사실을, 국제무대에서 평화와 인권,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무겁게 깨달아야 한다.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부끄러운 것임을 깨달았다”는 할머니들의 외침을 언제까지 외면할 셈인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결국 또 꺼내든 것이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다. 자유한국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자를 공격하기 위해 30년 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까지 악의적 프레임을 덧씌워 소환했다. 황교안 대표는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며 조 내정자의 사노맹 관련 이력을 문제 삼고 나섰다. ‘무장봉기’ ‘폭발물 제조’ ‘무기탈취’ ‘자살용 독극물’ 등 공안 조서에나 등장하는 피 묻은 언어들을 쏟아내며 지명 철회를 주장했다. 명색이 제1야당 대표가 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을 억압하고 민주인사를 탄압하던 5공 공안검사의 저열한 인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 참담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황 대표의 ‘사노맹 사건’ 주장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됐다. 조 내정자는 황 대표의 지적과 달리 사노맹에 ‘몸담았던 사람’이 아니다. 사노맹 부설 연구기관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을 뿐이다. 1994년 법원은 당시 조국 울산대 교수에 대해 사과원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노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형을 선고한 것이 아니다. 황 대표가 ‘무장봉기’ ‘폭발물’ 등을 조 내정자에게 연결시키는 것은 당시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도 반한다. 더욱이 1994년 국제앰네스티는 사노맹 관련자들을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거나 가혹행위를 받은 정치범 및 양심수’로 규정하고 조 내정자를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했다.

황 대표가 무시무시한 ‘국가전복 조직’으로 묘사한 사노맹조차도 시비될 것이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헌정 질서 확립에 기여했다’며 사노맹을 민주화운동 일환으로 재평가했다. 이는 사노맹이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고자 만들어진 민주화운동의 한 부류로 평가받고 복권됐음을 뜻한다. 광주시민을 총칼로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군부독재에 맞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운 것은 기리고 자랑할 일이지, 매도되거나 반성할 일이 결코 아니다. 참회할 사람은 독재에 부역하며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자신의 안위만 챙겼던 ‘공안검사 황교안’이다. 오로지 정쟁 때문에 민주화를 위한 희생과 노력을 폄하하고, 국가공권력의 피해자들을 좌익 용공으로 낙인찍어 공격하는 구태정치는 퇴출돼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