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412호 법정.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했다고 허위 답변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곳은 좌석이 30개 정도밖에 안되는 소법정이다. 기자는 사전에 취재용 방청권을 받아 법정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청권이 없어 법정에 들어오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법정 경위들과 다투고 있다고 했다.

“김기춘 나와라!” “방청 못하게 하는 판사 각성하라!” 유가족들 항의는 형사30부 권희 재판장이 선고문을 낭독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누군가는 법정 문을 쿵쿵 두드렸고 그 과정에서 고성과 격한 단어도 나왔다. 권 재판장 목소리가 묻히거나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했다. 법정 경위를 향해 한 차례 “해결이 안돼요?”라고 물은 권 재판장은 계속 선고를 진행했다. 

법정 문은 꽉 닫혀 있었다. 36도의 기온에 환기도, 냉방도 안되는 소법정에서 1시간가량 선고가 이어졌다. 이마엔 땀이 줄줄 흘렀고, 법정 밖에선 유가족들의 분노 섞인 호소가 들려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선고문 낭독을 듣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꼭 이렇게 선고를 해야 했을까. 법원은 청사에 입간판 형태로 ‘재판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한다’고 공지했다 한다. 법원 청사를 자주 드나들지 않는 시민에게는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홈페이지에 공지글을 올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과도 다르다. 

권 재판장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법정에는 여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그곳에 서서 방청하도록 할 수도 있다. 다른 재판에서도 방청을 원하는 시민이 많은 경우 서서 선고를 듣게 하거나, 아예 법정 문을 열어놓기도 한다. 상황을 진정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잠시 휴정하거나 유가족들에게 법정에 들어오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뒤 선고를 이어갈 수도 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방청객이 많을 것을 예측하고 애초에 더 큰 법정에서 선고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핵심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다. 재판 진행은 재판장 재량이고, 김 전 실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허위공문서 작성과 행사죄다. 엄밀히 말하면 유가족들이 ‘범죄 피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책임 회피로 진상규명이 지연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가족들이 입었다. 실질적인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피해자로 명시한 세월호특별법도 있다. 가해자에게 어떤 판결이 선고되는지는 피해자의 알권리에 속한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사건을 심리한 판사들이 발간한 백서를 보면 충격이나 슬픔에 찬 유가족들의 격앙된 반응을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해하고, 제어만 하기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 달래는 방법을 고민한 내용이 나온다.

유가족들이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던 그 시각, 같은 법원의 417호 대법정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법정은 공간이 넓고 냉방도 잘된다. 방청객은 그다지 없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대법정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묻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나, 법원은 꼭 그렇게 선고를 해야 했나.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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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전력공기업인 한전이 작년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적자를 기록하였다. 한전의 적자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주장들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한전의 영업적자를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인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과연 탈원전 때문에 한전이 적자로 전환되었는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우선 탈원전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 정책은 2018년 기준으로 발전 비중이 23%에 달하는 원자력을 일시에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60년에 이르는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수명이 완료된 설비들을 순차적으로 폐쇄함으로써 원전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2018년의 경우 원전 정비과정에서 격납건물 철판이 부식되고 콘크리트 공극이 발견되는 등 문제점이 발생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비일정을 연장함에 따라 원전이용률이 일시적으로 저조하였다. 탈원전 차원이라기보다는, 안전한 원전 가동을 위한 측면이라고 봐야 한다. 

다음으로 원전이용률 하락이 한전 적자의 직접적인 요인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원전이용률이 65.9%로 전년 대비 5.3%포인트 낮아졌고 한전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9년 상반기 기준 원전이용률이 79.3%로 전년 동기 대비 20.5%포인트나 개선되었음에도 영업적자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는 곧 최근 한전 적자 요인이 원전이용률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물론 원전이용률 하락이 한전 영업적자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전의 영업실적은 원전이용률뿐만 아니라, 발전연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 유가, 유연탄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특정 원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2019년 상반기에 영업적자가 증가한 것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원전이용률이 전년 동기 대비 크게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미·중 무역분쟁 확대 등으로 같은 기간 1075원에서 1146원으로 71원 상승하는 등 해외에서 수입하는 발전연료 가격이 상승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더불어 봄철 미세먼지 저감을 위하여 석탄발전기의 예방정비를 봄철에 집중하여 시행하는 등 석탄이용률이 전년 동기와 대비해 하락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원·달러 환율, 유가, 유연탄가 등이 전년 동기와 유사하여 발전연료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더라면 상반기에 영업이익이 다시 흑자로 전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2018년과 2019년 상반기의 한전 적자는 탈원전 때문이 아니며, 환율·유가 상승 등에 따른 연료 가격 상승이 주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다양한 변수에 의해 전력공급원가가 급격하게 변동될 수 있는데, 과거처럼 과도한 흑자가 나도 문제이고, 지금처럼 적자가 발생해도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전이 앞으로 국가의 미래 에너지 정책을 구현해나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 에너지안보 및 지속 가능한 에너지전환 정책 추진을 위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한전의 재무건전성 확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반복되는 원인 규명 논란에서 벗어나, 에너지전환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미래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한전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소비자에게도 올바른 가격시그널을 줄 수 있도록 전력공급원가를 합리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는 요금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액션플랜을 수립하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을 정확히 산출하여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등 미래 세대들을 위한 발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 한전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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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국무위원들의 유고로 정치에 뜻이 없던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참에 살펴보니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몇 번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황 대행님’으로 불렸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서열은 정부조직법에 정해져 있다. 총리가 1위이다. 2위는 기획재정부, 3위는 교육부다. 모두 부총리급의 국무위원이기 때문에 서열이 높다. 이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의 순서다. 내가 의외라 느낀 것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서열이 생각보다(?) 높아서다. 드라마에서 권한대행을 맡게 된 환경부 장관보다 3계단이나 위인 열한 번째다. 

이번 개각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포함된다. 장관 후보자는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임명된다면 조직 내 승진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권의 발탁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사실 김현수 차관이 농식품부 장관으로 지명되리라는 건 농업계에선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가장 늦게 임명된 장관도 농식품부였다. 당시 농업계에서는 만약에 기재부나 교육부 장관이 이렇게 늦게 임명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자조를 섞기도 했다. 농식품부 장관 청문회 때마다 장관 후보자들은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다고 당당하게 대답했어도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김영록 전 농식품부 장관이 도지사 선거에 나가면서 7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고, 현 이개호 장관도 총선 출마 의지를 처음부터 밝혔다. 이개호 장관은 1년짜리 장관직을 수행하고 정치적 고향으로 돌아간다.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세 번째 농식품부 장관 후보가 지명된 것이다. 

지난 7월부터 진보진영의 농민단체에서는 적폐청산의 대상인 전 정권의 관료를 농식품부의 수장으로 앉히는 것을 반대한다고 천명해왔다. 이와는 반대로 며칠 전 김현수 장관 후보 추천을 환영한다는 성명서가 이례적으로 몇몇 농민생산자단체에서 나왔다. 농식품부 장관 후보를 두고 찬성과 반대가 극과 극으로 맞서는 상황이지만 대체로 농업계 안에서의 소란일 뿐이다. 이번 개각의 국민적 관심사는 단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해서는 연일 수천개의 찬반 양론 댓글들이 달리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농식품부 장관에 대한 기사는 배포된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수준이다. 예측컨대 농식품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않을 것이고 무난하게 임명될 것이다. 

‘지정생존자’의 서열은 의외로 높은 농식품부지만 그만큼의 중량감은 없다. 서열을 올린다 한들 이 사회에서 농업·농촌·농민의 문제가 중심의제로 다뤄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서글프지만 익숙하다. ‘사람 중심의 농정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와 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농식품부 김현수 장관 후보자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이길 바란다. 정권 3년간 벌써 세 명의 농식품부 수장을 맞이하는 심정이 허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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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본이다. 폭염보다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외침이 더 뜨겁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과 광복절을 지나며 함성은 더 커졌다. 직접적인 발단은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 보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아베 정부는 수출규제로 보복을 감행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건 일본 정부만이 아니었다. 2010년과 2015년, 대법원은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끄떡도 없다. 기업이 법 위에 군림한다? 2004년, 고용노동부는 현대기아차의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해놓고도, 여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기업의 눈치를 본다? ‘재벌’이란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더 많은 이익을 내려고 노동자들을 제멋대로 고용하고 해고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현대기아차 재벌,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징용으로 사람들을 마구 동원하고 착취했던 일본 제국, 이 둘은 그 본질에서 서로 얼마나 다른가? 문재인 정부가 아베 정부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현대기아차부터 제대로 다룰 일이다.

광복. 일제에서의 해방은 암흑 속에서 빛을 되찾은 기쁨과 감격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벅찬 기쁨과 감격도 일상의 변화로 녹아들지 않으면, 결국 의미 없는 문자만 남게 된다. 해방 후 74년,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왔는가? 성경의 ‘출애굽’은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해방의 사건, 아니, 해방의 시작이었다. 해방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사회 건설로 완성될 터였다. 이스라엘 율법의 핵심인 안식일, 안식년, 희년 규정에는 모든 인간의 평등과 존엄, 땅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전망이 담겨 있다. 이 전망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현실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해방은 잠시뿐 억압과 수탈의 역사가 반복된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왕정 이후에는 줄곧 부패한 왕들의 폭정과 실정에 시달렸고, 결국 아시리아와 바빌론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해방을 가로막는 세력은 안팎에 모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내부 세력이 더 위험하다.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아베 정권만 위험한 게 아니다. 이 땅의 자본은 기회만 있으면 노동자의 삶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정부는 그런 자본의 요구에 화답해왔다. 일본 경제보복이라는 비상한 상황이니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을 완화하라고 요구한다. 이 법규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불화수소 누출사고 이후 국민 안전을 위해 마련되었다. 얼마나 되었다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예하라고 채근한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세 번째로 긴 나라다. 우리나라 토건 세력은 4대강을 16개 보로 찢어놓고도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생태하천이라며 전국의 지천에 보 건설을 계속하고, 양수발전이라며 댐 건설로 지역주민의 삶과 환경을 파괴하기 일쑤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며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지에 케이블카를 놓으려 한다. 그 집요함에 소름이 돋는다. 개인과 자연이 자본의 편리한 먹잇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오늘, 자본이야말로 제국이다.  

우리 사회에서 제국 노릇하려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몰아내야 한다. 사람의 존엄과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만큼 우리의 해방은 완성된다. 딱 그만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의 한이 덜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삶이 나아지고, 개발의 발톱에 찢긴 자연이 회복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다짐을 실현하려면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제국의 횡포가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잊지 말 일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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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본 관객이라면 다섯 살짜리 유키가 그 작은 발로 깡충깡충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났던 ‘삑삑~’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유키는 그날 행복했다. 열두 살인 큰오빠 아키라와 언니 교코, 작은오빠 시게루와 함께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외출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발에선 삑삑 소리가 났다. 앙증맞던 그 소리는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민 작은 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유키의 엄마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어린 남매들을 놔두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맏이 아키라는 사회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 동생들과 함께 굶주리며 유령 인간처럼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유키는 병을 얻었고 결국 언니·오빠와 작별하고 하늘로 떠난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장면

1988년 도쿄에서 실제 일어난 어린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 고립된 채 고통을 겪는 아이들, 약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2005년 국내 개봉된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장면은 남은 아이들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성장과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지만 극장 밖 세상에선 더욱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병든 몸으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2014년 벌어졌고, 지난해 ‘증평 모녀 사건’ ‘구미 부자 사건’ 등에 이어 올 초 ‘망우동 모녀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육체적·정신적 고통 등이 수년간 지속되며 낳은 비극이다. 급기야는 며칠 전 영화 속 유키처럼 앙증맞은 신발을 신었을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북한이탈주민인 40대 엄마와 함께 굶어죽은 채 발견됐다. 사람이 아사(餓死)한 것이다.

모자의 죽음은 수도검침원이 이들이 살고 있는 한 임대아파트에 직접 찾아가면서 알려지게 됐다. 몇 달째 요금미납으로 단수조치가 된 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경찰은 시신 부패 등 정황을 볼 때 모자가 두 달여 전 죽음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견 당시 냉장고는 텅 빈 채 먹을 것이라곤 고춧가루뿐 아무것도 없었고, 엄마의 통장 잔액은 지난 5월 3858원을 인출한 후 0원 상태였다. 방문에는 아이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철없는 낙서가 쓸쓸히 남아 있었을 뿐이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차마 믿기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굶어서 죽나. 전쟁통도 아니고 2019년 대한민국 서울에서다. 나는 이렇게 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 살고 있었나, 정말 사람 옆에 사람이 없었나….

이들이 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렀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탈주민 가정이라는 특수성이 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15일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실시한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로 미취학 자녀가 있는 가구 28%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응답자의 경우 가난해서 끼니를 굶어본 적 있다는 응답도 4.5%에 이르렀다.

탈북민 모자는 18개월간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것은 물론 수개월간 단전·단수 상태에 있었지만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아가는 발굴 시스템을 가동하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시스템적으로 부족한 면을 느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부모가정은 독거노인에 비해 어린아이가 있어 더 제도적으로 점검될 수 있고 당사자들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구해 그나마 덜 위험하다고 믿어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당황스럽다”고 했다.

소외된 약자들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를 보완해온 것이 사실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이후 빅데이터를 통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고 현장에서 위기가구를 적극 발굴하는 프로그램도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 모자의 죽음은 현재의 시스템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시스템을 마련할 때 복지 서비스 제공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몸을 더 낮은 곳으로 낮춰 바라보고 더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제도가 발전할지라도 점점 더 개인화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복지 시스템’에도 공들여야 한다.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탈북민 모자의 여섯 살 난 아이도 영화 속 유키처럼 분명 세상을 향해 도움의 마지막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김희연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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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에서 독일 청년 3명의 여행기가 전파를 탔다. 이들이 스스로 정한 행선지 중 한 곳은 서대문형무소였다. 이들이 전한 생생한 느낌과 한국 역사에 대한 공감, 독일의 역사교육 이야기는 꽤 신선했고, 호평이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대문형무소는 우리에게 수난과 치욕, 부정적인 기억의 장소다. 이른바 ‘네거티브 유산’이다.

근래 들어선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거티브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9·11테러 발생지인 뉴욕의 그라운드제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등이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이다. 우리 사회에선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며 ‘네거티브 유산 논란’이 불붙었다. 최근엔 사안에 따라 보존 여부와 방식을 신중하게 찾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인천 부평구에선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으로 꼽힐 만한 ‘미쓰비시 줄사택’ 철거 논란이 뜨겁다. 이곳은 1938년 일본군 무기를 만드는 조병창의 하청업체인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됐던 노동자들의 합숙소였다. 집들이 줄세운 것처럼 나란히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서 이렇게 불렸다. 1000여가구가 있었지만 수십 채가량만 남은 이곳은 사실상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강제노동자 합숙소다. 당시 주거 현실을 볼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지만 9개 동의 줄사택 중 3개 동이 이미 철거됐고 추가로 2개 동도 철거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 공동이용시설과 주차장 등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남은 줄사택 보존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일제 군수기지의 흔적이 남았던 미쓰비시 강철 공장은 이미 철거돼 공원으로 바뀌었다.  

식민지 문제와 관련해 인적 청산은 철저히 하되, 물적 청산은 하지 않고 교훈의 현장으로 남기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다.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가뜩이나 일본은 위안부 등 있는 사실도 부정하고 있는데, 침략과 수탈의 증거마저 스스로 없앨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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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지난해 12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동해상에서 광개토대왕함을 겨냥한 위협 비행이 시작이었다. 일본은 위협비행을 하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에게 사격 예비동작으로 레이더를 쏘았다고 했다. 한 달 뒤 일본은 다시 보란 듯이 이어도 인근에서 대조영함 위를 초근접 위협 비행했다. 영상을 공개한 끝에 초계기에 조사된 레이더 주파수를 내놓으라고 하자 일본 측은 도리어 한국 측에 주파수를 내놓으라는 상식 밖 주장을 폈다. 억지 주장에 물타기로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홍보했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우리 군이 먼저 실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지난 8개월간 상황을 되짚으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일본의 의도를 너무나 늦게 간파했다는 것이다. 우선 아베 신조 총리가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사안을 주도했다는 일본의 최초 보도는 위장이었다. 당시 공세를 주도한 것은 분명 방위청이었다. 경제 분야의 한·일 갈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산 해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 패소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한국에 대한 대응 조치들이 지난달 참의원 선거를 위한 아베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일본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갈 방향을 정해놓고 있었고, 초계기 공세는 그 시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이 얼마나 치밀하게 한국에 대한 공세를 준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강상중 교수의 분석대로 아베 총리 개인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일본의 즉흥적이지 않은 공세를 우리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런 방향은 되돌리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계기 사건과 이후 드러난 미국의 태도도 주목해야 한다. 해군 전술장교 출신으로 미군 전력의 핵심인 태평양사령관을 지낸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는 한·일 레이더 사건의 진상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연초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미국은 이상하리만치 무섭게 침묵을 지켰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서지 못하게 견제할 유혹을 느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현실화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의 안보는 이미 전인미답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달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영공을 침범한 것은 한 예일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일본도 계속 도발을 강화할 것이다. 북한의 압박에도 수시로 대응해야 한다. 안보집단의 의지와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군은 그동안 역량을 보여준 적이 없다. 미국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다른 전략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접근할 당시 해군은 위협비행 장면을 영상에 담지 못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아래서 일본을 늘 우방국이라고만 믿어온 결과다. 국방부는 미국이 우리 논리에 동의했다고 하지만 미국은 끝내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러시아 공중조기경보기의 영공 침범 때 공포탄까지 쏜 공군의 대응은 훌륭했다. 그러나 곧바로 러시아의 실무협의에 응하고 영공침범에 대한 자료를 넘긴 것은 실책이었다. 러시아 전투기들은 그 후 며칠간 연속으로 한국을 무시한 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침범했다. 

광복 후 지난 70년 동안 군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에 안주해왔다. 군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전략적 사고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진지한 접근까지 무디게 했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운을 띄우자마자 예비역 장성들이 찬성하는 성명서를 냈다. 미국만 바라보고 온 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배치 때보다 몇 배의 보복을 받을 게 뻔한데 다른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광복 후 우리 안보집단의 한계이다. 무기 도입도 필요하지만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더 시급하다. 오늘날 국가들이 글로벌 전략에서는 이해를 함께할 수 있어도 지역 전략에서는 상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중·러 대 미·일의 대결구도가 뚜렷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정은 복잡하다. 중·러 간 경쟁은 물론 미·일의 이해 상충도 눈에 보인다. 최근 아베 총리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접근이 이를 시사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대북 적대시와 미국 의존적 안보관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으면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이다. 냉정한 대응이 기존 체제를 답습하자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과 정치권이 함께 고민하며 이 길을 닦아 나가야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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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고 분단돼 있기 때문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화두로 제시한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경제에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자강(自强)’에 국정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그 방법론으로 책임있는 경제강국,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을 제시했는데, 꾸준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년관에서 열린 제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가장 관심을 모았던 대일 메시지에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 경축사에는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된다”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판하는 대목도 담겼지만 수위는 낮았다.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과거사 현안도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이라는 포괄적 표현에 머물렀고,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미래지향적 관계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내년 도쿄 하계올림픽에 대해 “세계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에 선을 긋고 일본 정부의 숙원인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지난해 평창을 통해 남북이 화해로 나아간 것처럼 도쿄 올림픽을 한·일 화합의 계기로 삼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일본 정부는 주목하길 바란다.

이번 경축사는 일본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고, ‘경제 자강’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극일(克日)’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일 경제전쟁의 엄중한 상황에도 절제된 톤을 유지함으로써 한·일 대화 가능성을 높인 것은 바람직하다. 양국 갈등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면서 ‘출구’를 모색하자는 국면전환 메시지로 봐도 좋을 것이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외교당국 간 대화에서 풀어나갈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오는 21일쯤 개최될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한·일관계는 갈등의 터널 한가운데에 있다. 출구를 찾는 일은 한·일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칠지, 갈등 해결의 출발점이 될지는 일본 정부에 달려 있다. 외교당국도 일본과의 대화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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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탈북 여성이 6세 아들과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의 통장은 지난 5월 3858원이 인출된 이후 줄곧 잔액이 0이었고, 집 안에는 고춧가루 외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수돗물마저 끊긴 집에 사망 후 두 달여 만에 미납 수도요금을 받기 위해 들른 검침원과 아파트 관리인이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참으로 참담한 죽음이다.

2009년 탈북한 이 여성은 중국동포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병을 앓던 아들과 단둘이 살게 됐다고 한다. 5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각종 대책이 이어졌지만, 이 모자에게 생명줄은 닿지 않았다. 지난해 ‘충북 증평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29종의 정보를 분석해 위기가 예상되는 가구를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복지 위기가구’ 지원 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탈북민 모자는 전기·수도·가스요금을 1년 이상 연체했는데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체납 사실을 통보했지만, 복지 당국에 정보가 넘어오지 않았고, 전기·수도요금은 아파트 통합관리비에 들어 있어 단전·단수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혼 후 이 여성은 기초수급자로 월 87만여원의 생계비를 받거나 탈북민 관련 재단에서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부와 단절된 모자의 삶에 이런 정보는 너무 멀었다.

있는 제도조차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이 더욱 뼈아프다. 더 중하고 덜 중한 목숨은 없다.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보다 촘촘한 안전망과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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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서 법원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에 대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판결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재판부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에게는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국민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 박 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침실 집무’와 ‘머리 손질’ ‘최순실 회동’까지 차마 믿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은 그런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는커녕, 사후에 7시간 행적을 조작하는 데 급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공문서를 조작해 국회에서 거짓답변하고, 국가재난 컨트롤타워를 청와대에서 안행부(현 행정안전부)로 무단 수정했다. 이들이 제대로 된 보고를 하고 적절한 조치를 했더라면 304명이 생목숨을 잃는 일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하고자 했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고령이나 증거부족 등 이유로 집유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 공문서를 조작했고, 위법한 방법으로 수정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입증·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은 앞뒤가 맞는 판결인가. 이번 판결은 국민 생명권 보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국가와 고위공무원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법관 상대 진정·청원 건수는 4600여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도 사실로 드러난 마당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근간도 흔들리게 된다. 아직 2심과 최종심이 남아 있다. 사법부는 법과 원칙, 상식에 맞는 판결로 깊어진 국민 불신에 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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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흔네 번째 광복절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양국 간 경제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맞는 올해 광복절은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각별하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유지돼온 한·일관계의 틀을 전면 리셋(재설정)해야 하는 시작점에 광복절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1965년체제’는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기본틀이자, 냉전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원칙이었다. 공산권체제를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한·일에 군사안보를 보장하고 일본은 한국과 협력하는 대항체제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둘러야 했고, 식민지배의 완전한 청산이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한·일관계는 출발부터 불씨를 안게 됐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냉전체제에 균열이 발생했고,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 달성하면서 한·일관계의 틀도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 군사정권이 억압해온 식민지배 청산 요구도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양국 갈등으로 ‘정경분리’ 원칙까지 허물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베 신조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는 이 금기를 깬 것이다.

한·일 갈등이 역사·영토 분야를 넘어 경제로까지, 그것도 일본의 선제공격에 의해 확대된 것은 한·일관계의 기본틀이 효력을 상실했음을 확인한 사건이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가해자로서의 책무를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일본의 행동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불만이 있겠지만 한국이 경제·안보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데 대한 당혹감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다음날 발표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남북 화해와 북·미 대화의 진전으로 동아시아 냉전질서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개헌의 명분을 약화시킨다. 일본의 외교전략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파트너의 지위를 굳히는 동시에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역내 외교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는 1965년체제의 틀 안에 고정시켜 한국이 냉전질서 해체를 주도할 수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급속한 화해와 한국의 식민지배 청산 요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며, 이 지점에서 한·일 간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아베 정부의 도발이 형태와 방향을 바꿔가며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한국은 이에 응전하면서 한·일관계를 리셋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은 전후 고도성장으로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 빈부격차 등 문제도 적지 않지만 전후 최빈국이던 한국이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물다. 경제면에서만 본다면 약소국이라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일본의 소재·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최종 조립하는 분업구조가 고착화돼 왔고, 이 ‘약한 고리’를 일본이 치고 들어오긴 했지만 이 역시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달성되긴 어렵겠지만 핵심소재·부품·장비의 공급 다변화와 국산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해 한국 경제의 균형발전을 꾀할 모처럼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루기 위해서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복원을 통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정치와 민간 교류를 구분하는 냉정한 시각을 갖춰야 함도 물론이다. 일본에 맞서야 할 때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서면서도, 대화와 협력 기조는 유지하는 ‘균형 잡기’가 한·일관계 리셋의 출발점에 선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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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게 깨다. 깻대는 심을 때부터 목숨 줄이 간당간당하다. 겨우 살아남은 야문 무리가 솟구친다. 가장 덥고 습한 장마와 여름을 나게 된다. 베어지면 곧바로 햇볕에 바짝 눕게 된다. 가장 뜨거운 아스팔트나 마당에다가 넌다. 잘 마르면 다음 순서, 죽도록 두들겨 패기. 바깥주인이 때리고 안주인이 때리고 개가 밟고 지나가도 욕을 먹지 않는 게 깨 털기다. 뒤지도록 두들겨 맞는 도리깨질이 끝나도 수난은 더 이어진다. 이제는 까불기. 돌조각이라도 있을까봐 바람에 까분다. 더러 땅바닥에 동댕이질. 그러고 나면 가장 센 불에 올라가 볶임을 당할 차례. 기름이 되는 녀석들은 쥐여 짜는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고소한 참기름을 불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건 그러니까 참기름이 아니라 피눈물이렷다. 당신의 시골 어머니가 보내오는 참기름은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더운 날 다리 밑에서 천렵놀이. 뱃살 번진 아재들 사우디 건배사. ‘사’나이 ‘우’정 ‘디’질 때까지. 흥을 돋우면 아낙들도 이에 뒤질세라 아우디. ‘아’줌마 ‘우’정도 ‘디’질 때까지. 그러고는 뒤끝에 비빔밥을 쓱쓱 만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질긴 목숨의 참기름을 쭈욱 두른다. “요거이 차이나 아니여. 니뽕거 아니여. 국산 로컬이여.” “알았어 알어.” 박수들을 친다. 고소하고 맛나고 질긴 우정들아. 사랑들아.

엄마 냄새. 참기름 냄새. 아이들도 엄마표 비빔밥을 좋아해. 이 고소한 밥을 안 먹고 단것만 찾으면 저만 병나고 손해지. 언젠가 북청사자놀이를 현장에서 봤는데, 사자탈을 벗은 아재들이 구석지에서 참기름에 비빔밥을 말아먹는 풍경. 잊지 못한다. 큰 양푼에다가 같이들 우걱지걱 비벼 먹는 저 힘. 저 기운.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내는 신명이었다. 참깨 들깨 나누며 함께 견디고 함께 넘어온 아리랑 고개.

참깨 들깨 수확 철이다. 차를 몰다가도 마을길에 깻대가 널어져 있으면 조심조심. 두들겨 맞을 일을 생각하면 또 불쌍불쌍.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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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군산이지? 지난해 10월 장률 감독의 영화<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 시사회가 열린 날 입소문을 먼저 탄 것은 제목이었다. 무대는 짐작가지만, 군산과 거위를 묶은 착상은 곱씹어야 했다. 사업가부터 칼국숫집 주인, 조선족 가사도우미, ‘돌싱’까지…. 영화엔 언젠가 꿈이 있었고, 지금은 살맛을 잃거나 공허하게 하루를 때워가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 무기력한 처지를 감독은 자동차·배 공장이 떠나고 그 돈의 낙수(落水)가 뚝 끊긴 군산에서 그렸다. 인생과 도시의 부침을 다시 날고 싶은 ‘거위의 꿈’에 빗댄 것이다.

군산은 근현대사에서 롤러코스터 진폭이 가장 컸던 도시다. 1899년 문을 연 항구는 일제강점기 쌀의 최대 반출로였고, 만경 들녘의 미곡을 옮긴 전군가도(전주~군산)는 최초의 포장도로였다. 강제징용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도 실어낸 눈물의 항구는 해방 후 오랜 세월 인천항과 부산항의 뒷전으로 밀렸다. 롤러코스터는 1996년 대우차(GM대우)가 세워지며 다시 위로 향했다. 2008년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들어섰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전국 최고를 찍은 때다. 잔업·특근을 하는 20~40대 젊은 노동자들과 돈이 넘치는 도시. 일제의 적산가옥과 ‘전국구 맛집’까지 즐비한 군산은 관광지로도 떴다. 한때 날던 도시는 지금 빌딩의 4분의 1이 비고, 젊은이는 떠나고, 물산과 물동이 끊긴 자칭 ‘죽은 도시’가 됐다. 조선소가 문 닫은 2017년, 자동차 공장이 떠난 2018년 2단계 충격파가 드리워진 뒤다.

지난달 24~25일 군산에선 숙의형 대토론회가 열렸다. 노동자가 임금을 덜 받고 지자체가 복지를 더하는 ‘광주형’, 세금을 깎아주는 ‘구미형’에 이은 ‘군산형 일자리’가 화두였다. 전기차 클러스터로 가려는 군산형은 대기업이 아닌 중견·중소기업이 주축이고, 노사교섭도 지역단위로 해보려는 첫길이다. 주부는 “먹튀 대기업의 트라우마”를 말했고, 고교생 입에선 “정규직 많은 일터”가 앞섰다. 배·자동차의 2~4차 하청기지로 살다 벼랑에 선 도시의 아픔이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 후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기지로 키우려는 곳은 중소기업이다. “난 꿈이 있어요~”로 시작하는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이 일제 수탈사가 배어 있는 군산 거리에서 무르익길 기다린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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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국가든 과거의 경험이 현재나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경험의 강도가 강할수록 잔영도 오래 남는다. 이를 이력효과라고 한다.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놓았을 때 쇠붙이에 없었던 자성이 생기는 것과 같다. 자력이 강할수록 쇠붙이의 자력도 세진다. 한·일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은 양국 간 오랫동안 축적된 과거사의 이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베 신조 정부가 경제적 도발을 했다.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외교적인 사안에 불쑥 경제적인 보복카드를 내민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가장 아파할 부분을 노렸다. 한국경제의 주력인 반도체산업에 ‘수출규제’라는 칼을 들이댔다. 한국 기업뿐 아니라 일본 기업도 상처를 입는 무리한 조치다.

이를 두고 일본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단체에는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의원의 40%가 가입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창립회원이며 내각의 80% 이상이 이 단체 출신이라는 말도 있다. 극우적인 발언을 일삼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소 다로 부총리도 멤버이다. 이 단체는 천황제 국가의 복원을 꿈꾸고, 2차 대전 도발을 경제 봉쇄에 저항한 자위적 전쟁으로 주장한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실현과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일본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회의에 대한 관심은 아베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군사적 우경화는 오래전에 예견됐다. 이미 30년 전 폴 케네디는 일본 경제력의 폭발적인 성장과 군사력의 과소성장이라는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일본이 ‘상업적 전문지식과 재정적인 풍요만 가지고 국제적 권력정치라는 무질서에서 버틸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월등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이 그랬듯이 일본도 군사력 증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걸로 본 것이다. 일본이 소규모 ‘자위대’만 가진 ‘단순한 무역국가’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패전국가로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전방위 평화외교의 중단을 의미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서 웃고 넘기지 않고 군사분야에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주변국의 반발을 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폴 케네디는 군사대국으로의 길을 ‘일본의 딜레마’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선택 시기는 코앞의 미래로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 엔진이 멈추면서 군사대국의 야심도 잠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일본은 1985년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 이후 경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엔화가치 절상으로 일본 제품의 경쟁력은 떨어졌다. 일본은 엔고가 독배인 줄 모르고 즐겼다. 1989년을 정점으로 일본 경제의 거품은 한꺼번에 꺼졌다. 부동산과 증권시장의 참담한 하락을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일본인들은 쇼와(昭和·1926~1989)시대의 마지막을 ‘아름다웠던 시절’이라 부른다. 거품이었지만 한때 풍요했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메이지 시대 이후 가장 좋았던 때였다는 말도 한다. 축제는 끝났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지우고 싶도록 암울한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시대다.

아베가 2012년 총리에 올랐다.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경제가 살아나면서 야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일본을 움직이는 주체는 소수의 양심세력이 아니라 주류인 우익세력이다. 아베는 일본 우익의 선봉이다. 아베는 레이와(令和·2019~)시대의 출범을 과거와의 단절, 새로운 시대의 출발로 삼기로 작정했다. 아베의 생각은 분명하다. 전쟁 가해자였던 과거 흑역사 청산,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화, 궁극적으로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의 완성이다. 아베는 레이와시대가 시작하자마자 한·일 간 청구권협정 문제를 꺼내들었다. 수치스러운 과거를 땅에 묻는 것이 첫번째로 정리해야 할 막중한 과제인 것이다. 해결방식이 무모한 것도 그 같은 배경에 기인한다.

양국이 대치하고 있다. 일단 꺼낸 칼을 쓰지도 않고 도로 칼집에 넣을 수도 없는 형국이다. 양국의 입장이 천양지차인 만큼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일청구권 문제는 미래에 벌어질 양국 갈등의 시작일 뿐이다. 독도문제, 일본 평화헌법 개정 등 불씨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장기 극일 플랜을 짜야 한다. 흥분 속에 내부 총질은 필패의 길이다. 힘을 키우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자신감을 갖되 자만은 금물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허황된 꿈을 좇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미래는 생존을 위한 고단한 여정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꿈이 아닌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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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히로뽕 수출 X나게 해가, 그 망할 놈의 원숭이 새끼들 다 뽕 쳐맞고 오줌 질질…. 애국이 별겁니까, 예? 우리가 일본을 뭐라도 이겨야 될 거 아닙니까.” 좀 거칠긴 해도, 이 대목에서 웃지 않은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이건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 히로뽕을 밀수출하려는 세관원 최익현의 말일 뿐이다. 현실에서 더한 일도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만주, 간도 등지에서 벌어졌다. 일본도에 죽어나거나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위안부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 대사는 그냥 개그일 뿐, 오히려 너무 싱겁게 느껴질 테다. 임진왜란 때는 어땠는가. “통석의 염” 같은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적어도 독일 수준 같은 반성과 사죄 위에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을 치유하지 않는 한 참된 ‘한·일 국교정상화’는 요원하다. 외교 수사로 아무리 꾸며봐야 공염불이다.

최근 일본의 잇단 수출규제 조치에 들불처럼 번지는 불매운동이 예사롭지 않다. 대체 어느 정도로 일본 제품이 사랑받는지 궁금했다. 한 날은 어느 고교생의 필통을 살펴봤다. 이름도 생소한 일본 볼펜이나 형광펜, 지우개까지 한 움큼이 나왔다. 3분의 2가 넘는다. 학생도 이번에야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생활 구석구석에 일제가 파고들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좋은 ‘샤프’는 늘 일제였다. 국산은 펜 끝이 흔들리곤 해서 툭하면 얇은 심이 부러졌다. 그러나 이젠 우리 경제가 일본의 꼬붕 노릇 하던 시절이 아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광주 광산구의 한 거리에 'NO! 아베, OK! 광복' 문구가 걸려 있다. 이 현수막은 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을 지역위원회가 시민들의 모금을 받아 내걸었다. 연합뉴스

일본의 수출규제는 역사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배경에는 급성장한 한국 경제에 대한 견제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 전자업체 이익을 더해도 삼성전자 하나보다 못한 처지다. 일본 기술자가 없으면 고장 난 제철소를 못 돌리던 시절도 아니다. 과거 브라운관 TV 때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제품을 우리는 못 만들 줄 알았다. 그러나 액정화면(LCD)으로 넘어오자 삼성, LG가 뒤엎어버렸다. 현대정공 시절 미쓰비시 차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껍데기 씌워서 팔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적어도 신차 품질로는 일본 도요타, 혼다 같은 대중 브랜드는 따라잡았다.

아직 곳곳에 일본 기술력은 탄탄해 보인다. 자전거 변속기만 봐도 시마노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카본 소재는 일본 도레이가 잡고 있다. 국내 굴지 대기업에 ‘국산 카본도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돈이 안된다”였다. 중요한 소재이지만 정작 뒤늦게 손대기에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드는 격이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시마노 뺨칠 변속기 하나 못 만들까. 결국 이런 건 강소기업들이 해내야 한다. 정부 지원은 물론 대·중소 협력체제를 통해 마중물을 부어야 할 때다.

무조건 반일, 극일이 현명한 해법은 아니다.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해서라면 어차피 일본과도 손잡아야 한다. ‘아시아의 패권자’가 될 가능성이 큰 중국을 어떻게 견제하느냐가 한국과 일본엔 향후 큰 숙제다. 과거 1000여년 역사에서 보듯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인 일본이 충돌했고, 그 완충지는 한국이었다. 청일전쟁에, 만주국의 오점까지 지닌 중국이 일본을 그냥 놔둘 리 없다. 이번 한·일 갈등의 뿌리는 대중 견제용 포석이란 해석까지 나온다. 일본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잘 보여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불타오른 반일감정은 그냥 내버려둬라. 어차피 한풀이 굿판은 1965년 억지 합의로 꿰맞춘 한·일이 치러야 할 대가다. 참된 해법은 그 뒤 자연스레 찾게 될 것이다. 그 대전제는 일본을 ‘정상국가’로 바로잡는 일이다. 징용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했건만 그런 기억조차 지워져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한 인간으로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유대인은 요즘도 나치를 찾아 단죄하기 위해 이런 팻말을 붙인다고 한다. ‘Spat, aber nicht zu spat(늦었지만 너무 늦진 않았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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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TV에 방영된 한 광고는 당시의 번화가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서 있는 ‘정신대’ 여성을 비춘다. 그러다 “역사는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브랜드의 로고가 등장하며 광고는 끝난다. 

비록 이 광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했지만, 고작 국산 운동화를 팔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은 지옥같은 경험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동원한 천박함은 나의 기억 속에 길이 남았다. 

내가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들에 냉담해진 것은 이런 기억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애국은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곳곳에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겠다는 악당들이 출몰해 웃기지도 않은 티셔츠를 팔거나, 인기를 얻으려 날뛰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데다, 국적이라는 것이 변경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누구나 쉽게 옷을 갈아입듯 국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와 나를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 것이 가능한 것도, 또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문제들은 일본과 전 정권들이 만들어 냈다. 더 깊이 기원을 따지자면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전후 냉전구도 속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원했던 미국의 압력이며,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길 원했던 독재정권의 협잡의 산물이다.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하고 힘과 돈의 흐름이 과거와 달라진 덕에 봉합되었던 문제가 마침내 파열음을 일으키며 튀어나왔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힘을 모으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 기준이 굴종이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와 대의명분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과열된 흐름과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지도층에서는 선언적이고 과격한 발언과 조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는 보수정당과 한국 극우들의 책동에는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 싸움에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지나치게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까지도 느낀다.

싸움을 안락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를 대비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들을 보면 모두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염두에 둔 것들뿐이다.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희생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벌과 국가의 책임을 시민들의 몫으로 돌리고, 개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정작 한국의 재벌과 고위층은 위기를 통해서도, 또 위기 극복을 통해서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부를 쌓았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이토록 낮은 것에는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 내내 국가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버림받았던 배신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파국은 공평하게 오지 않으며, 언제나 약자들의 삶을 먼저 집어삼킨다는 교훈을 한국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뼈아프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모든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격차가 발생한다. 이 격차가 불합리하고 클수록 그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해체된다. 격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모든 공동체가 맞이한, 그리고 어쩌면 그 공동체의 핵심을 결정하는 문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위기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부와 권력을 취할 생각에 들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이야말로 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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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의 차가 빠른 속도로 내 차를 앞질러 추월한다. 내가 보면 옆 차가 빨라 보이고, 옆 차의 운전자가 보면 내 차가 느려 보인다. 누구 얘기가 맞는지 다툴 일도 없다. 둘 다 맞다. 기준이 내 차인지 옆 차인지에 따라 같은 운동을 다르게 볼 뿐이다. 

지구에서 본 해, 해에서 본 지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제다. 지구에 붙박여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아침 해가 동쪽에서 떠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본다. 마치 해가 하루에 한 번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지구와 해를 함께 보는 이는 다르게 본다. 해가 지구 둘레를 하루에 한 번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팽이처럼 거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자전하는 것을 본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해가 돈다, 아니다, 지구가 돈다, 둘이 다투면, 멀리서 함께 볼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누구의 눈으로 보는지,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일이 있다 해서 모든 세상일이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해가 아니라 지구가 돈다.

처음 지구의 자전을 생각해낸 사람을 떠올리면 나는 늘 경이감을 느낀다. 주변을 보라. 집채만 한 바위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엄청난 크기의 땅 전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사실, 지구 자전에 반할 법한 일상의 경험이 많다. 앞으로 달려보라. 얼굴로 불어오는 시원한 맞바람이 땀을 식힌다.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바람이 한쪽으로 끊임없이 마주 불어 선풍기 없이 더운 여름을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현실은 그렇지 않을까. 지구가 돌고 있다면, 내 손에서 놓은 물건이 지구 자전 반대방향으로 치우쳐 떨어지지 않고 왜 똑바로 내 발밑으로 떨어질까. 땅 전체가 움직인다고 처음 주장한 과거의 그 경이로운 사람은 당시에는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으리라. 독자도 가슴에 손을 얹고 위 얘기를 고민해보라.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학교에서 여러 번 배워 익숙한 지식일 뿐인지 말이다. 익숙함을 앎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구와 해의 운동, 그리고 내 차에서 본 옆 차의 움직임은 고전역학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이라 하면 누구나 아인슈타인을 떠올리지만, 사실 갈릴레오가 먼저다. 갈릴레오의 상대성과 뉴턴의 물리학만으로도 위에서 얘기한 것은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지구가 움직여도 맞바람이 불지 않는 이유는, 마찰력으로 말미암아 지구 위의 대기도 결국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땅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물 담긴 컵을 돌리면, 오래지 않아 컵 안 물이 컵과 함께 도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구가 자전하는데 물체가 발밑으로 수직으로 똑바로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동전을 떨어뜨려 보라.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도 동전은 내 발밑으로 떨어진다. 동전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기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차와 같은 처음 속도를 갖기 때문이다. 과학이 상식이 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던 현상이 이제 당연한 상식이 된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시속 100㎞로 달리는 기차에서 시속 100㎞로 야구공을 앞으로 던지면 땅 위에 멈춰 서 있는 사람은 시속 200㎞로 날아가는 야구공을 본다. 땅 위에서 본 공의 속도는 기차의 속도에 기차 안에서 본 공의 속도를 더해 얻어진다. ‘1+1=2’와 다를 바 없는 얘기다. 축구경기의 승부차기에서, 제자리에 멈춰 차지 않고 달려오다 공을 차는 선수는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를 이용하는 셈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빛의 속도로 공을 앞으로 던지면, 땅 위에 정지한 사람이 본 공의 속도는 얼마일까. 갈릴레오는 그 속도가 빛의 속도의 두 배라고 알려주지만, 아인슈타인의 결과는 다르다. 정지해 있는 사람도 공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 ‘1+1=1’이 되는 셈이다. 믿기 어려운 놀라운 결과지만, 현실의 많은 실험은 하나같이 갈릴레오가 아닌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준다. 물론, 물체가 빛의 속도에 육박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그렇다.

갈릴레오의 상대성이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든, 둘 모두, 누가 기준이냐에 따라 물체의 운동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얘기가 있다. 바로, “누가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 보여도, 결국 똑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거다. 옷차림이 달라져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인 것처럼, 상대성이론의 진정한 의미는, 달라 보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기준이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물리법칙이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는 “등속으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가 본 운동법칙은 같다”는 것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이 원리에 더해서 “등속으로 움직이는 관찰자라면, 빛의 속도는 누가 봐도 같다”를 보탠 얘기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은 ‘다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같음’에 대한 얘기다. 같은 법칙이 적용되지만, 기준이 달라지면, 각자가 보는 현상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확연히 달라 보이는 세상일이 많다. 같은 일을 어쩜 저렇게 정반대로 볼 수 있는지, 서로 상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구에서 해를 보면서 해가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해에서 지구를 보면서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 있는 곳을 바꿔볼 일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멀리서 둘이 나란히 지구와 해를 함께 살필 일이다. 서로 다르게 본다고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일도 그렇다. 서 있는 곳이 달라도 여전히 유효한 보편법칙이 있다. 나는 요즘, 평화를 자주 떠올린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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