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다. 파리 아우스터리츠역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다시 기차역에서 갈아탄 자동차로 30분을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마을이다. 하루에 버스가 세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의 서너 곳 남짓했던 소박한 호텔들은 대개 문을 닫고 이젠 하나만 남았다. 사실 지난봄에도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올라 격자무늬 창이 있는 객실에서 일주일을 지냈었다. 얼굴만큼 꽃송이가 큰 달리아가 활짝 피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일주일을 묵기로 했다. 이처럼 허름한 호텔에 일주일씩이나 머무는 까닭은 길 건너에 있는 마을을 산책하기 위함이다. 그 마을은 사람 대신 ‘기억하라’는 프랑스어(Souviens-toi)와 영어(Remember) 문구와 ‘침묵(Silence)’이라는 팻말이 낯선 이를 맞이하는 곳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마을의 옛 이름은 ‘오라두르 쉬르 글랑(Oradour-sur-Glane)’이며 토요일이던 1944년 6월10일 오후, 마을을 지나다니던 전차의 기적소리와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멎었고, 성당의 종소리와 대장장이의 망치소리조차 자취를 감췄다. 당시 마을에 살던 이들은 650여명이었으나 그날 대부분의 주민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는 아이와 여자들이 갇혀 있던 성당에 폭탄이 터지기 직전 3m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린 마담 루팡쉬와 남자 다섯 명을 합하여 여섯이 전부이다. 남자들은 로디의 헛간에 갇혔다가 도망쳤는데 그 헛간에서만 60여명의 남자들이 학살당했다. 그 외 어린아이 205명과 여자들을 포함한 나머지 주민들은 앞에 말한 성당이나 농가의 헛간에 갇힌 채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단 몇 시간 만에 1000년이 넘게 주민들이 살아온 평화로운 마을 하나가 통째 사라지는 터무니없이 잔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주민들을 학살한 이들은 연이어 마을의 그 어느 것도 남겨 놓지 않겠다는 듯이 불을 질렀으며 마을의 그 어느 한곳도 불길이 닿지 않은 곳 없이 깡그리 타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참혹한 학살극을 벌인 이들은 나치친위대 소속의 제2 기갑사단인 ‘다스 라이히(Das Reich)’였다. 그중에서도 기갑사단 기계화 보병연대의 제1대대 지휘관이었던 소령 아돌프 오토 딕만(1914~1944)이 마을에 주둔했던 독일군 중 가장 계급이 높았으며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일을 저지른 3주 후 노르망디에서 전사했지만 그가 남긴 보고서는 더욱 분노를 자아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을 주민들이 집집마다 폭탄을 감춰 두었는가 하면, 독일군을 자동차에 묶어서 처참하게 죽였고, 마을 우물에는 독일군의 시체가 즐비했으며 레지스탕스들이 성당의 지붕에 폭탄을 감춰 두었다가 마을에 불이 나자 터져서 주민들이 몰살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전후에 거짓임이 밝혀졌다. 

전쟁이 끝나자 샤를 드골 장군(1890~1970)은 오라두르 쉬르 글랑을 순교자의 마을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로 했으며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돌로 지은 집은 거뭇하게 그을음이 내려앉고, 씽씽 달려서 왕진을 온 의사의 푸조 자동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며 마을을 상징하고 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주던 주유기나 건물들도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전차가 다니던 철로 위로는 애자에 감긴 전선이 어지러이 얽혀 있고 전기도 흐르지 않는 전선을 감고 있는 전봇대가 외롭다, 후에 집집마다 그곳에 살았던 이의 직업이며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붙여 놓았는데 더러 허물어진 집 안에 사진을 남겨 놓은 집도 있다. 어떤 집에는 갓난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사진이 있어 함께 살던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양장점과 주점 그리고 마차를 수리하는 이의 작업장과 철공소, 이발소와 미용실, 전차역과 바로 이웃한 우체국, 전차역 앞 전봇대에 매달린 공중전화, 녹슨 철공소와 차량정비소, 성당 앞의 와인바와 호텔 건물까지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마을 모습은 내가 태어난 후 처음 대한 엄청난 풍경이다. 

마을을 둘러보며 누구 하나 얼굴에 웃음기를 띤 사람들이 없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다. 모두 처연한 표정으로 망연히 집들과 가재도구나 농기구들을 조심조심 바라보다가 짙은 탄식을 쏟아내거나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을 뿐이다. 나 또한 처음 텅 빈 마을과 맞닥뜨렸을 때 상상을 뛰어넘는 풍경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음은 물론 불현듯 솟구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았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사진기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장면들이 내 속에 새겨졌다. 그것은 현상되지 않은 채 잠상(潛像)으로 남아 있으며, 그 스멀거리는 기억 때문에 오늘 다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이 마을을 찾겠지만 2013년 9월4일에는 특별한 사람이 찾아왔다. 비록 상징적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당시 독일의 대통령 요하힘 가우크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피해자들로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독일의 다른 정치인들이 나치 수용소와 같은 장소를 방문해 참회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가 마을에 오자 학살 당시 살아남아 어느덧 89세의 노인이 된 장 마르셀 다트아웃은 “프랑스 대통령은 자주 만났지만 독일 대통령은 언제 오려나 기다렸다. 이야기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는 말로 그를 맞이했다. 

독일은 이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인류의 보편적 사고에 있어 큰 잘못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가 만족하지는 못할 테지만 되풀이하여 참회하며 다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가해자의 본분이다. 그러곤 자신들에게 드리워졌던 그늘을 벗겨내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과거를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인간 일반 누구나 삶을 사는 동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국가라고 해서 다를까. 요즈음의 일본이 더욱 안타까운 까닭이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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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해상에 있는 하시마라는 섬은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이 섬은 강제노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숨긴 채 2015년 7월 일본의 23개 근대산업시설 중 하나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 군함도 강제노역의 생존자 한국인 4명은 1997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만 패소한다. 이분들은 2005년 한국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와 2018년 대법원에서 마침내 원고승소 확정판결을 받는다. 보상 원천인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을 빌미 삼은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과의 경제전쟁을 선포한다.

1970년 12월7일, 브란트 서독 총리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숨진 바르샤바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는다. 2013년 8월20일, 메르켈 총리는 나치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나치 잔혹 범죄에 관한 독일의 책임이 절대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2019년 8월1일, 독일 외무장관 하이코는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독일인의 이름으로 저지른 만행에 대해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 독일의 역사 참회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1993년 8월4일, 일본 관방장관 고노는 일본군 성노예의 강제성 및 일본 정부 관여를 인정한 담화를 발표한다. 1995년 8월15일, 총리 무라야마는 일본의 전쟁 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다. 2005년 7월15일. 총리 고이즈미는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 계승 의지를 밝힌다. 2012년 아베 총리 취임과 동시에 “침략의 정의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부정한다. 2018년 10월18일, 일본 여야 국회의원 70여명은 전쟁 주범의 혼령을 모아 둔 야스쿠니신사에 머리를 조아린다. 역사를 부정한 채 전쟁이 가능한 나라, 새로운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운동 경축사에서 친일 척결과 독립운동 예우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 했다. 전쟁 후 프랑스는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알베르 카뮈와 민족반역자 척결을 내세운 샤를 드골 대통령을 등에 업고, 나치에 부역한 이들을 모조리 단죄함으로써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백범 김구 선생에 비해 국내 정치기반이 약한 이승만이 권력의 핵심에 친일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올바른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친일 척결은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친일파의 후손은 경제계, 사법계, 학계 전 영역에 걸쳐 대한민국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다.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자손들의 삶은 어떠한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반영된 실제 삶을 살고 있다. 국내는 물론 중국의 랴오닝, 지린 및 헤이룽장성 등에는 아직도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한국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서울시가 올해 광복절을 맞아 물질적으로 미약한 지원이지만,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 및 지원강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작은 위로가 된다.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고,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오류와 상처를 반복할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단순한 궤도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국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역사의 영웅에서 끌어내렸다. 기득권의 반발은 진실 앞에서 무너졌다. 다음의 광복절에는 한 단계 나아간 친일 척결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셨던 그 후손들의 행복과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역사 바로 보기가 실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치용 |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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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지도자와 선수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의 책략적 요소가 있긴 해도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땀방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국내외의 각종 선발 대회 및 출전권 획득의 과정이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고 절차인 바, 이것이 모두 종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1년 후의 무대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올림픽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보이콧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 흔히 올림픽을 ‘세계인의 한마당’이요 ‘우애와 친선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장내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연의 일이다. 장외에서는 온갖 스포츠 정치가 난무하고 글로벌 기업과 스포츠 권력이 충돌한다. 이를 분간해야 한다. 선수들의 땀방울에는 성원을 보내되 경기장 밖의 혈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시각으로 스포츠 권력과 일본 정치 책략과 글로벌 자본의 ‘각축전’을 비판하고 개입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시피 아베 정부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일본 사회 통합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제고 정도가 아니라 보수적인 야욕의 경기장으로 확연해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를 올림픽의 축포로 덮으려는 시도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성화의 첫 봉송지 결정은, 1964 도쿄 올림픽을 상기할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에 성화는 지금처럼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를 전국으로 봉송하여 일종의 올림픽 스펙터클 문화 선전의 장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였다. 히틀러로서는 성화를 아테네에서 개최 도시 베를린으로 직배송하기보다는 독일 전역의 도시를 순회하게 함으로써 파시즘과 올림픽의 이중 변주곡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를 고도의 전략으로 구사한 것이 1964 도쿄 올림픽이다. 이 대회의 성화 첫 봉송지는 오키나와. 성화는 오키나와의 주요 전적지를 순회하였으며 특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히미유리노탑에서 전쟁고아가 성화를 높이 들었다. 그렇게 출발한 성화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거쳐 도쿄에 입성하였고 히로시마 피폭 2세로 ‘원자 소년’이라 불린 청년이 최종 점화자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본은, 전쟁에 단지 패했을 뿐이며 원폭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임에도 세계 평화에 나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연출한 것이다. 

이 국가적 기획에 일본 전후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적극 동참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여러 경기장을 취재하면서 인간 신체에 대한 찬사와 올림픽에 대한 헌사를 쏟아냈다. 반면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히로시마 일대를 취재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올림픽이 극심했던 안보투쟁과 전공투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자민당 등 일본 우파 정치의 문화적 책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마무리된 폐막식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전 세계 인간이 이렇게 손을 잡고 원을 이뤄 춤추는 감동”이라고 썼고, 오에 겐자부로는 무질서하면서도 자유롭게 들어선 외국 선수단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입장한 자국 선수단에 대해 “꽤나 쌩뚱맞은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올림픽 폐막 3년 후에 스포츠 스펙터클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뒤엉킨 사태를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 묘사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올림픽 기간 중에 격앙된 ‘애국심 따위는 TV 스위치가 꺼지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나, 일본 우파는 무려 50여년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윽고 아베 정부에 이르러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헌법 개정, 경제보복, 후쿠시마 사태의 미봉과 정치 선전으로서의 ‘부흥’ 등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면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2020 도쿄 올림픽이 갖는 아베 정부의 정치외교적인 책략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낫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편 장외에서는 올림픽에 노골적으로 스며드는 아베 정부의 반평화적인 측면을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지도에 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었는가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하며 후쿠시마는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평화, 환경, 스포츠 단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가 도쿄 올림픽의 여러 문화 행사와 장치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수많은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베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와 비판의 관점을 지닌 수많은 일본 시민들과 만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올림픽의 장외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애의 행진을 해야 한다. 올림픽이 진실을 감추고 야욕을 펼쳐내는 장이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이며 그저 구호일 뿐인 ‘세계인의 축제’를 진정한 평화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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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러 부모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링크 하나가 공유됐다. 딸아이를 입학시키지 않고 홈스쿨링한 엄마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최근 기사였다.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집에서 직접 가르친 이 엄마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한 정황은 없었으나, 판사는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생활로 아이의 복지를 저해했다”며 아동복지법 위반(아동 유기, 방임)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채팅방의 홈스쿨러 부모들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불안해했다. 간혹 비정상적인 부모의 아동학대가 기사화되며, 홈스쿨링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례적인 이번 판결은 개인에게 교육의 선택권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홈스쿨링은 1990년대 말 시작된 대안교육운동과 그 흐름을 함께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안학교와 함께 입시와 경쟁 중심의 공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활기를 띠었다. 당시 귀농·귀촌 운동과도 맞물리면서 가족 모두가 시골로 이주해 홈스쿨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일을 돕거나 시골생활을 함께 꾸리며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했다.

최근에는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안’ 가기보다는 ‘못’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러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를 도시 속에서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모는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아이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의무교육은 ‘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교육인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 혹은 ‘학업 중단 학생’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홈스쿨러를 구분하는 경계 또한 모호해졌다. 한 홈스쿨러는 ‘혼자 집에 갇힌’ 듯한 용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세상에서 배우는 자, 로드스쿨러라고 칭하기도 했다. 일부 부모는 학습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특별 교육으로 홈스쿨링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홈스쿨링은 미국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합법이고, 아시아·아프리카까지 이를 허용하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가 도처에 널린 세상에, 학교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일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다양한 교육의 형태를 허용해 오히려 공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지평을 넓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일찍이 홈스쿨링을 합법화한 미국에서는 홈스쿨러들이 혼자 하기 어려운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수업을 공교육에서 함께 듣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듣는 수업을 줄이고 개인의 진도와 관심에 따른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하이브리드 스쿨도 미래 교육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법으로 처벌할 게 아니라 홈스쿨링의 장점을 살리되 그 개별화가 각자도생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그 개별화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된다. 의무교육 기간이 연장된다고, 한 해 5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20만명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제대로 풀어갈 ‘실력’일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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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체육대회를 할 때면 늘 고사를 먼저 지냈습니다. 고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역시 돼지머리입니다. 입이 귀에 걸린 놈으로 사 와 콧구멍 귓구멍에 지폐 꽂고 고사 잘 지냈습니다(요즘은 혐오감 줄이고 뒤처리도 곤란치 않게 돼지저금통, 가짜 돼지머리 등으로 대신하는 추세입니다). 대회 치르는 동안 뒤풀이 조는 솥에 돼지머리 넣고 한 번 더 삶습니다. 끓는 물 밖으로 귀가 비죽 솟아서 숟가락 나눠 쥐고 뜨거운 김 참으며 꾹 누르고 있자니 시골 출신 선배가 그럽니다. “야야, 놔둬. 귀는 저절로 익어.” 아! 그렇게 하나 배웠습니다. 뱀에게 물려도 끄떡없는 두꺼운 비곗살이라도 귀는 얇으니 덜 잠겼다고 덜 익진 않을 테죠.

속담에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핵심을 먼저 처리하면 부수적인 건 저절로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 역시 숨겨진 맥락이 있습니다. ‘머리’를 조직의 ‘윗대가리’로 보면 ‘삶다’는 ‘구워삶다’(여러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들다)가 됩니다. 그러면 ‘귀’는 ‘귀퉁이’ ‘끄트머리’ ‘말단’을 뜻하고 ‘익다’는 ‘안면을 트다’ ‘얼굴을 익히다’가 됩니다. 다시 말해 윗선을 구워삶으면 그 라인에 딸린 하급자들과도 쉽게 안면을 익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형님아우 하는 ‘빽’이나 돈다발 들이밀 ‘뒷구멍’만 있으면 일 번거롭게 할 거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는 법이지요.

급하다고 아무리 우는소리 해도 실무자가 안 된다고, 법규가 그렇다고, 절차가 있고 순서가 있다며 우직하거나 융통성 없이 뻗대면 보통 사람은 마냥 기다리며 동동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큰일을 먼저 보라, 그럼 작은 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비웃으며 구린 돈과 지린 접대로 ‘하이패스’하는 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돼지머리 썰 때는 꼭 귀부터 썰립디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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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운세를 살필 만큼 그리 고급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되는대로 밀고 나아갔다. 뒤늦게나마 날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의 훈련’을 소화한 아이가 대청도로 배치된 것이다. 스포츠뉴스가 끝나면 백령도가 표기된 지도가 떴다. 최북단 섬의 근황을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상냥한 음성이 몹시도 반가웠다. 첫 면회를 갔을 때 고독한 섬의 생태계도 염두에 두었지만 꽃보다는 쫄병이었다. 군인에서 아들로 돌아와 모처럼 시름을 잊고 동생과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2분3초’의 외박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해병 대신 꽃 보러 가는 길. 꽃산행을 응원하듯 배 이름도 하모니플라워다. 대청도에 내리니 5년 전의 생생한 추억이 땅보다 단단했다. 웬만한 지역은 일몰 이전에는 접근에 제한이 없었다. 대청도로 우편엽서를 제법 보낸 터라 이 지역의 주소는 지금도 훤히 왼다. 까나리액젓 담그는 통이 즐비한 옥죽동을 지나 모래사막 근처 용머리 해안을 탐사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흔한 순비기나무의 꽃, 해당화의 열매들이 한창이다. 

여름 바닷가에서는 벌거벗는 게 상책이다. 피서객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침내 그것과 만났다. 꽃에 입문했을 때, 오후 3시에 정확하게 꽃봉오리가 터진다는 말을 듣고 퍽 신기해했던 대청부채였다. 날카로운 칼 같은 잎이 서로 얼싸안으며 부챗살처럼 퍼진다. 나사처럼 배배 꼬인 채 지고 있는 꽃 옆에 피기 일보 직전의 꽃봉오리가 있다. 동영상 모드로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멀리 끊임없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짐작도 못할 저 바다의 깊이를 아들은 가슴에 들어앉혔을까, 생각하는 순간 꽃봉오리 하나가 확, 세상 구경을 하였다. 꽃잎 벌어지는 소리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렸나, 안 들렸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청도에서 대청부채를 보았다는 건 곡부에서 논어를, 달에서 이태백의 시를 읽은 셈에 비견할 수 있을 듯! 

제대 특명을 받고 하모니플라워를 탄 기분을 가늠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물에 뜬 배처럼 나의 기분도 파도 마루에 높게높게 걸리었다. 대청부채,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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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의 일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가족과 함께 집 근처 나들이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인천 계양산 자락에 예쁜 정원이 갖춰진 카페가 있었다. 열 살 난 딸과 아내랑 함께 바람이나 쐴 겸 향했다. 카페는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북적였다. 갑자기 딸이 “아빠! 여긴 내가 못 들어가는 곳이야. 여기 ‘노키즈존’이라 13세 미만 어린이는 들어갈 수 없대”라고 한다. 검색할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입구에 정말 그런 푯말이 서 있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을 찾아갔다. 아이에게 코코아 한 잔을 사주며 차별당하고 거절당한 기분에 대해 물어봤다.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기분이 어때?”라고 묻자, 아이는 “아빠, 엄마랑 오랜만에 바람 쐬러 나왔는데 나 때문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한다. 혹시 ‘여자’라서 차별당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만약 네가 한국 사람이어서 또는 피부색이 달라서 차별당한다면 어떨까?” 하고 물었더니 정말 불쾌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며 평등권을 기본적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건 없는 평등이 민주주의와 근대 인권의 핵심 개념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어느새 12년이나 경과했지만, 지금까지 이 법이 제정되지 못한 까닭은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은 일부 보수개신교와 출신국가와 성별 등으로 노동조건을 차별하는 재계의 반대, 그리고 이에 동조하거나 눈치를 보아 온 정부와 국회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차별과 혐오 정서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우리는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국가이지만, 지난해 제주 난민 사태가 보여주듯 난민 혐오 정서가 강한 사회이다. 3·1운동 100주년이라지만, 과거 우리도 나라를 잃고 세계 곳곳을 떠돌던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연세대학교에서는 이번 학기부터 실시하기로 한 보편적 인권교육에 대해 일부 세력이 ‘기독교정신에 반하는 인권교육’이라거나, ‘강제적 인권교육으로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각종 차별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참여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2017년 대선 때는 ‘국가인권위원회 법이 존재하므로 불필요하다’며 공약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했다. 이후 유엔에서 수차례에 걸쳐 우리 정부에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ILO 핵심협약 비준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우리에게 차별금지법과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한 이유는 작게는 공동체 내부의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과 혐오가 죄라는 사실을 널리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더 넓게 보면 조건 없는 환대(hospitality)라는 인류 보편의 정의를 위한 것이다. 환대는 공동체 안에 이미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배제되고 소외된 자에 대한 환대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마음을 울리는 경축사와 선언을 들려주었고, 시민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땅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위한 정부와 대통령의 의미 있는 실천이 보고 싶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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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4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3개월 만에 장외투쟁 재개를 선언한 황교안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장외투쟁을 지속해서 열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국민의 경고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가 지난 14일 대국민담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며 경고한 ‘특단의 대책’이 고작 장외투쟁이라니 명분과 실효를 운운하기에도 낯뜨겁다. 무엇보다 황 대표 스스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서, 국회에서 초당적인 대책과 해법 마련에 천착하지 못할망정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겠다니 무책임한 처사다. 정녕 실력과 열정이 있다면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는 국회라는 마당에서도 능히 가능하다. 더욱이 그 견제와 비판의 ‘운동장’이라 할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와 주요당직자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6일 오후 '긴급 국가안보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부터 세번째)가 16일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에서 개최한 ‘긴급 국가안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사

지난 4월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항의해 두 달 넘게 전국을 돌며 장외투쟁을 벌여 국회 기능을 마비시켰던 한국당이다. 미뤄진 민생 현안과 일본의 경제보복, 미·중 무역분쟁,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따른 대책과 입법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또다시 장외로 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력한 투쟁”을 하겠다니 한국당은 대체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생과 안보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정부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꾀하고 지지층 결집에 골몰하는 것은 ‘황교안 대권놀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황 대표는 당과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돌파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 장외투쟁 카드를 꺼냈을 터이다. 당내에서 나온 지적처럼 “거리투쟁 이외엔 다른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외 대표의 한계”다. 한국당 지지율이 황 대표 취임 직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지난번 장외투쟁 와중에 ‘맛본’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이 어른거릴지 모른다. 자극적인 색깔론과 ‘반문 깃발’에 목매는 장외투쟁으로 일시적이나마 지지층을 결집시켜 상승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3개월도 못 가 주저앉은 지지율이 징표다. 정책 대안과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투쟁’만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낡은 장외투쟁은 황 대표의 대권놀음에는 잠시 마취효과가 있을지언정, 수권정당으로서 한국당에 대한 한 가닥 남은 기대마저 접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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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지시를 다 지키고 죽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19일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24세 비정규직 김용균씨 사고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4개월간 1만여 노동자에게 묻고, 현장과 서류를 들여다본 진상조사의 답이 그날의 죽음은 김씨 책임이 아니라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익히 짚어진 ‘2인1조 근무 위반’식의 표상적 지적을 넘어 그 죽음의 끝에는 민영화·외주화의 허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억울함이 풀렸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누구나 아들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간에는 단서가, 증거가 없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해 말 김용균법 국회 처리를 위해 온몸을 던진 그로선 8개월 만에 받아든 특조위 보고서의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특조위는 이날 사고가 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진상보고서는 이라크전쟁 희생자보다도 한 해 더 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산업재해를 실증적으로 그려냈다. 손상·중독 경험 비율은 발전사보다 자회사 노동자가 7.1배 높고, 협력사는 8.9배까지 치솟았다. 석탄발전소에 협력사 노동자가 1명 증가하면 연간 작업 손상이 0.75회 늘어난다는 수식도 도출됐다. 발전사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자회사 정비는 77, 협력사 연료운전은 53, 2차 협력사 노동자는 31을 받는 것으로 비교됐다. 국가가 인건비를 따로 지급하는 계획정비공사도 노임으로는 3~25%만 지급됐다. 업주들만 땅 짚고 헤엄치고, 노동자 주머니를 향한 세금은 중간에 흩어진 것이다. 보고서는 발전5사 분할이 외주화 속도를 높이고, 하청 노동자 확대로 갔다고 짚었다. 기술 향상과 원가 절감을 경쟁시키겠다던 민영화 구호는 바래고, 발전사가 단기·미숙련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공기업이 됐다는 냉정한 평가다. 굳이 발전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얘기다.

안전 잣대에서, 특조위 권고는 구체적이고 궁극적이다. 김용균씨가 속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직접고용하고, 임원진에 안전보건담당이사를 두고, 노동안전 문제는 원·하청이 공동교섭하도록 했다. 법·제도적으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담겼다. 특조위를 이끈 김지형 전 대법관은 “노동안전을 한 발자국이라도 앞당기게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번 보고서가 대한민국을 돌아보는 거울, 변화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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