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원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아니다. 석탄산업이 호황을 이루고 광부를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그러나 자원 가격이 안정화한 1980년대 이후부터 자원산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에너지 및 광물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주요 자원 수입액을 보면 석유 1014억달러, 가스 271억달러, 석탄 182억달러, 철광석 229억달러, 구리 579억달러, 알루미늄 70억달러, 니켈 10억달러 등 모두 2355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총수입액 5432억달러의 43.4%에 해당하는 큰 규모다. 우리 경제에서 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막대한 자원을 수입해 공장을 돌려 지난해 총수출액 6011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입한 자원을 가공하여 다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지난해 주요 자원의 수출액은 석유 447억달러, 철강 352억달러, 구리 490억달러 등 모두 1345억달러다. 전체 수출액의 22.4%를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정유회사, 철강회사, 제련회사를 가지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국제자원시장은 경기와 자원 생산동향 같은 자원 보유국의 정책에 따라 자원 가격이 큰 폭으로 등락을 보이는 매우 불안정한 시장이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원하는 자원을 세계 각국에서 싼값에 구매할 수 있어 힘들여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몇 배의 값을 치러도 구할 수 없는 자원도 있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에 뒤처진 것이 우리 자원산업의 현실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우리는 그동안 땀흘려 확보한 해외 유망 광구 26개를 헐값에 매각하고 말았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대가는 혹독했다. 2008년부터 자원 가격이 급등하자 여기저기서 후회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 필요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자원 확보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문제다. 외환위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이미 확보한 자원 개발사업들을 내실화하면서 미래를 위해 신규 투자를 늘려 나가야 한다. 

해외 자원 개발과 관련해 비싼 값을 치르고 어렵게 얻은 노하우와 그간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쌓은 자원부국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최근들어 주요 광물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15일자 런던국제금속거래소(LME) 비철금속 가격정보를 보면 t당 구리는 35.50달러, 아연 7.0달러, 텅스텐 195달러, 니켈은 60달러 떨어져 각각 5690달러, 2262달러, 1만6880달러, 1만5990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조선, 철강산업에 많이 쓰이는 철광석의 가격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국제 철광석 가격은 7월21일 125.77달러에서 8일 기준 94.12달러로 하락했다. 중국의 건설부문 호황이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 철광석 가격은 80달러 선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자원확보의 적기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등장한 중국의 희토류 카드나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 조치도 결국 자원 확보와 기술 개발 싸움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자원 개발을 통한 자원 확보는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자원 개발에서 한번 실기(失機)하면 10년 후 땅을 치는 법이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야 할 때다.

<강천구 | 인하대 초빙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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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고 자란 곳은 치앙마이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는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를 고생시키는 사람으로서 입을 꾹 다물고 있기가 민망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태국에 열두 살짜리 아들과 두 살 된 딸이 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스스럼없이 휴대폰에 담긴 아이들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의젓한 아들과 어린 딸의 환한 웃음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타향살이도 서러울 텐데, 강아지한테 물리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나는 또다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 사고의 책임은 모두 나한테 있었다. 사고의 배경에는 지은 지 2년도 채 안 된 아파트 천장에 물이 새서 에어컨 배관 공사를 다시 하게끔 한 건설사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아지를 들여놓은 방문을 연 어린 조카 탓도, 방문이 열리자마자 낯선 방문자한테 부지불식간에 달려들어 손을 덥석 물어버린 강아지 탓도 할 수 없다. 

강아지가 노령이라 이빨이 성치 않은 줄 알았는데, 웬걸 물린 이의 손에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피는 나지 않았어도 금방 시퍼렇게 멍이 올라왔다. 사과하고 치료비를 주며 함께 온 사장한테 병원 진료를 받으면 청구하라고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말고 병원 가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부랴부랴 다친 이를 데리고 직접 병원에 갔다. 

그의 이름은 소라야였다. 진료를 받은 뒤 우리는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그는 식당 일을 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에어컨 수리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나섰다고 했다. 소라야는 나와 헤어질 때까지 원망은커녕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을 다치게 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는데, 그는 말없이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언짢은 기색조차 내비치지 못하던 태국인 부부의 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다. 

올여름에도 불볕 아래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또한 부당해도, 원하는 게 있어도 내색조차 못한 것은 아닐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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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27일, 정홍원 당시 총리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거기에 동의해 후임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5개월의 변호사 생활 동안 16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낙마해 버렸다. 정홍원은 계속 총리직에 있어야 했다. 그 후 지명된 문창극 전 기자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헛소리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정홍원은 여전히 총리였다. 다행히 국회의원이던 이완구가 총리가 되면서 정홍원은 사의 표명 후 거의 10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는데, 그 이완구가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두 달 만에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다. 새 총리는 당시 법무장관이던 황교안으로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황교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그는 특검팀의 청와대 조사를 거부하고 특검 연장을 거부하는 등 맹활약한다. 그 황교안은 지금 당 대표에 차기 대선주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가 됐다면 어땠을까? 당시 야당은 그를 ‘전관예우의 적폐’로 몰아 낙마시켰지만, 업계 사람들은 그 정도 수입이 전관예우치고는 적은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5년여가 흐른 2019년 8월, 법무장관 후보자 조국 교수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 생활만 해서 별것 없을 줄 알았건만, 웬걸, 해명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정권 때 총리 후보자들에게 추상같은 잣대를 적용했던 야당은 집권당이 된 지금 조국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조국에 대한 의혹 제기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라 하고, 안민석은 한국당이 최순실의 은닉재산을 밝혀내는 게 두려워 조국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여론을 살피려고 대형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탐독했다. 하필 그곳이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어서 그런지, 조국이 받는 의혹에 대해 눈물겨운 방어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빈번한 논리가 이것이었다. “적폐세력들이 조국 반대하는 걸 보니 조국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 반드시 법무장관 시켜야겠네.” 이 말에 좀 움찔했다. 내가 적폐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조국이 법무장관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두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이 횡행한다. 일전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면 친일파라 한 데서 보듯, 조국은 정부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가 아무 직함이 없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이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지 않겠는가? 내가 앞으로 2년여를 법무장관이 지정한 친일파로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렵다. 

둘째, 며느리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점점 드물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조국 남동생의 아내는 이혼했음에도 시어머니에게 자기 집을 기꺼이 내줘가며 헌신적인 봉양을 한다. 물론 그녀가 시어머니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벌인 적이 있지만, 그거야 모시는 게 어려운 나머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한 것일 뿐, 실제로 돈을 받으려는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다. 21세기에 보기 드문 효부인데, 조국이 일반인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네 집안이 그런 모범을 보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게 우리 미풍양속으로 뿌리를 내려, 앞으로 며느리들은 설령 이혼을 한다 해도 시어머니 봉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셋째, 가족 간 돈거래가 사라진다. 조국의 신고재산은 56억원, 이 가운데 예금이 34억원이나 된다. 이쯤 되면 빚에 허덕이는 다른 가족들도 신경 써줄 만하지만, 그는 차라리 사모펀드에 전 재산을 내던질지언정 가족들에겐 냉정했다. 특히 2013년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 재산은 21원에 불과해 충격을 줬는데, 이 액수는 웬만한 노숙자보다도 적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전두환이 재벌 같다. 조국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 간에 돈을 빌리려고 하면 “법무장관을 봐!”라며 거절하는 일이 속출하지 않을까? 

넷째,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대세가 된다. 과거 조국은 폴리페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학생들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니 정치를 하려거든 교수직을 그만두라는 게 그의 말이었지만, 자신이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장관 후보에까지 오르자 ‘임명직은 괜찮다’며 사표 제출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조국은 대학에서 강의 한 번 안 하고 8월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조국이 장삼이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돼 사회가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이 밖에도 외모지상주의가 강화된다든지, 성적이나 가정형편보다는 권력이 대학 장학금의 척도가 된다든지, 국가에 진 빚은 안 갚아도 되는 풍조가 생긴다든지 하는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만 같으니, 내가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그가 장관에 연연하기보다는 교수로 돌아가길 바라는데, 글을 맺기 전에 정신승리를 해본다. 이 글을 욕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건 내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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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6일 부산시청에서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 D-100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간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정상회의는 2014년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 지 5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나는 2010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이어 이번 회의까지 4회 연속 외교부 소속 준비기획단에서 공간조성 부문 자문위원을 지내왔다. 성공적인 공간은 구성과 조명, 음향장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완성된다. 참가자들의 동선을 비롯한 기능 역시 정리해야 한다. 기술적 구성 외에 한국적 감성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과 디자인적 요소 역시 빠질 수 없다. 

2010년 G20 정상회의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전시 및 특수 이벤트 공간 전문 설계 및 시공사인 하그로브 임원들이 방한해 준비기획단과 자문회의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그로브는 미국의 33번째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 대통령(1945~1953년)의 취임식을 시작으로 대를 물려가며 백악관의 대형행사를 도맡아 시행해온 회사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신뢰와 책임감을 쌓은 하나의 회사가 일관성 있게 국가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비용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10여년간 정상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일관된 공간 디자인 프로세스와 현장 체크리스트 정도는 갖게 됐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지는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상회의 결과 이상으로 민간외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부산 일원에서 열리는 행사의 하나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한·일 경제전쟁 탓에 외교적 대화와 경제적 대안이 절실한 때에 우리에게 아세안 10개국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세안은 더 이상 세계 경제의 변방이 아니다. 2030년에는 세계 4위 경제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 국가들과 더욱 전략적 협업과 소통을 해나가는 데 이번 회의 공간이 최적화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새삼 다짐해본다. 

새로운 국가전략의 모색이 이뤄질 회의가 100일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행사의 성공을 위하여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수경 | 숙명여대 환경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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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은 과거사라는 특정 영역에 국한된 쟁점에서 비롯됐다. 그것도 우호 국가 간에 발생한 일이다. 제한된 분야에서 제한된 수단을 통해 제한된 목표를 추구하는 게 합리적이다. 아베 신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양국관계 전반을 흔드는 도발을 했고, 그 때문에 전쟁 수사가 난무한다. 

하지만 이건 전쟁이 아니다. 양국이 모든 영역에서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국가 대 국가로 맞서야 할 당위성, 불가피성이 없다. 양국에서 각각 정부·시민사회·개인이 똘똘 뭉쳐 국경선을 두고 대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국 모두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도 일본도, 정부·시민사회·개인 사이 아무런 틈이 없어서,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국가라는 하나의 단위로만 관찰되는, 완전한 통일체가 아니다. 한·일 각각 내부에는 다른 견해와 관심, 이익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층층이 쌓여 있고 그들은 서로 경쟁도 하고 불화하기도 한다. 양국이 갈등하는 상황이라 해도 이런 내부 구조는 변함이 없다. 그게 바로 한·일이 민주주의 체제인 이유이다.

민주주의 체제 간에서는 국경을 가로질러 교차 대립하는 일이 흔하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 좋은 예다. 철거를 결정한 일본 당국에 맞서 양국의 예술가와 시민들이 표현의 자유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이 대치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때 정부와 예술가가 갈등했던 것처럼 대립의 축은 상황에 따라 이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혐한에 혐일로 대응, 인종주의에 인종주의로 맞서고, 일제 볼펜·일식집·사케와 같이 일본 관련 모든 것을 부정하며 한국 대 일본으로 대립 축을 못 박는 것은 문명사회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니다. 일본은 모든 악덕의 집합체이며 일본 전면 부정이 곧 선이라는 생각은 마니교적 이분법일 뿐 이다. 

다행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혜로워진 시민들은 일본 아닌 아베가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를 거꾸로 세우는, 아베의 반동은 아베를 표적으로 삼는 것의 적실성을 입증한다. 마침 아베는 지난 15일 종전 기념사에서 일본인 300만명의 희생이 조국의 장래를 걱정한 결과였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 군국주의가 300만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

한국 시민들의 ‘NO 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 아루타 마에에서 ‘친하게 지내요’ 등 한국어가 함께 쓰인 손팻말을 들고 반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 _ 연합뉴스

아베와의 싸움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생각해야 할 게 있다. 우리 사회가 한·일 분쟁의 와중에도 퇴행의 길로 내몰리지 않으면서, 더 성장하고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 성찰하는 일이다. 일본과 이런 경쟁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과도 같다. 누가 역사 앞에 더 정의로운가? 누가 더 평화를 추구하는가? 누가 더 다양성을 존중하는가? 누가 더 불평등 해소에 적극적인가? 누가 더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가?

정부·여당은 그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 보복에 대응한다며 주 52시간 노동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유보하거나 적용 예외로 하는 비상책을 내놓았다. 세 가지는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가습기 살인, 재벌 집중의 반사회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높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도입한 제도다. 이해 당사자 간 이익과 손실, 산업 발전과 생명 존중, 기업 경쟁력과 재벌 개혁이 겨우 균형점을 찾아서 이룩한, 많지 않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베와의 싸움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취급한다. 그사이 비리혐의로 재판 중인 한국 최고 재벌은 나라를 살릴 구세주 대접을 받는다. 아베가 한국에서 이룬 역전극이다.

만일 세 가지를 내주고 이겼다고 해보자.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노동 조건의 악화, 기업의 눈먼 이윤추구, 재벌 집중 심화다. 그것이 무슨 일을 낼지 우리는 잘 안다. 우리 안에 꽈리를 틀고 앉아 우리를 할퀴고 상처를 낸다. 위기 때 약자를 보호하면서 사회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면서 사회가 약해진다. 노동과 생명과 정의를 기득권 방패막이로 써먹은 대가는 분명하다.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임이 아베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다. 아베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분명히 해두자. 그건 아베나 일본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에 지는 것이다. 우리는 안과 밖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해야 한다. 상처뿐인 승리가 우리의 목표일 수 없다.

한국은 일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베와 싸우고 한·일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더 성숙해졌으면 한다. 일본도 성숙해지면 좋겠다. 그러면 양국관계도 성숙해지지 않을까?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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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도 한양의 4대문이 모두 정위치에 ‘복원’됐다. 일제강점기 유일하게 멸실된 정서쪽 돈의문(敦義門)이 20일 정동사거리 터에서 ‘디지털 개문식’을 열었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세상에 세워진 돈의문은 놀랍도록 옛 모습 그대로다. 실존하는 흥인지문(동)·숭례문(남)·숙정문(북)과 함께 서울 정도 후 4대문 이름에 담았던 ‘인의예지’ 뜻도 114년 만에 빈자리가 메워졌다.

돈의문은 유독 터잡기에 시간이 걸렸다. 태조 5년(1396년) 사직동 고개에 들어섰다가 태종 13년(1413년) 풍수상 시비로 경희궁 서쪽 언덕으로 옮겨 서전문으로 불렸다. 세종 4년(1422년)엔 그 자리가 통행하기 험해 현재의 남쪽 마루터로 옮겼다. 돈의문이 ‘새문’ ‘신문’으로 불리고, 그 안쪽에 신문로·새문안길이 생긴 것도 세 왕을 지나 늦게 자리잡은 까닭이었다.

증강현실로 복원된 돈의문. 서울 중구 정동사거리에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돈의문 AR’을 실행하거나 돈의문박물관 앞 키오스크를 이용해 감상할 수 있다. 서울시 제공

돈의문은 중국 사신과 개성·마포나루터 상인들이 드나든 ‘교역의 문’이었다. 성문 밖에는 중국 사신을 맞은 모화문과 경기감영이 위치했다. 일제가 1915년 도로를 넓히며 허물 때도 돈의문은 서울의 첫 노면전차(서대문~청량리) 출발지였다. 당시 헐린 목재는 경매 끝 205원50전에 낙찰됐다고 한다. 풍파도 많았다. 임진왜란 중 문루가 불탔고, 인조반정 후 이괄이 도성을 침공했던 문이고,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려고 파루종이 울리자 들이닥친 문이었다. ‘의(義)’자를 이름에 새기고도 왜적·반란·낭인들을 지켜봤고, 일제가 없애버린 그 문은 1세기 뒤 4차산업혁명 속에 온전히 ‘재건’됐다.

복원은 험로였다. 10년 전 서대문고가차도 철거 후 원형 복원 계획을 내놨던 서울시의 선택은 디지털이었다. 교통·보상 문제로 실제로 짓지 못하고 민관이 함께 우회로를 잡은 것이다. 아쉬움과 달리, 전문가들의 지혜와 땀이 밴 AR앱과 돈의문박물관에서 VR기계로 직접 본 가상세계는 ‘문화재 지평’을 새로 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루 4차례 조도를 달리한 성벽·홍예문·단청 고증이 깔끔하고, 숙종 때 현판을 쓴 유학자의 한문 필체를 분석해 만든 한글 현판이 신선하며, 문루에선 한양의 야경이 보인다. 5G 시대 디지털 문화재는 막힘없고, 창의적이다. 전국으로 뻗어나갈 그 출발점에 돈의문이 세워졌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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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난 직후 미국의 한 방송이 현지의 한 가족을 인터뷰했다. 기자가 가장에게 원전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물었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그 가장은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고 하였다. 이 장면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벌어졌을 때 이 같은 대답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침착하고 정제된 답변은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이에 대한 일말의 해답은 국가와 사회(개인), 위정자와 일반대중 간의 관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일본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기본적으로 서구에 대한 위협에 사회 전체가 대응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서구의 제도와 문화 수용은 일본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일본 정체성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일본식으로 산업화·근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너무 일본적이라 다른 나라들의 모방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일본의 근대화는 제국주의적 방식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요구했고 그 결과는 패전으로 귀결되었다.

일본의 민주화는 바로 이 패전의 선물이었다. 일본 민주주의는 사회가 쟁취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한 학자가 말했듯이 미국의 온실 속에서 태어났다. 미 군정은 탈군사화 이외에는 근본적으로 일본 사회를 바꾸어 놓지 못했다. 패전은 일본 엘리트들의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을 가져오지 못했다. 원폭이 남긴 깊은 상처는 정치적으로 일본 엘리트들이 일본 국민과 오히려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쟁취되지 않은 민주주의 속에서 일본 국민의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어렵게 했다.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국가중심적 사상이 남아 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당의 정치 독점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왔다. 일본 사회의 갈등적 요소들은 관료체제 안에서 대부분 걸러져 일본 사회를 더욱더 탈정치화로 치닫게 했다. 

한국 민주주의도 시작은 미국에 의해 주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간 권위주의체제와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쟁취된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국가와 사회, 개인과 국가 관계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정당은 한국 사회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한국시민사회는 집단적으로 국가에 저항하지만 정상적인 협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궁극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의 이런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쉽게 변하는 정책과 입장, 허둥대는 듯한 모습, 타협이 없는 것 같은 정쟁 등은 한국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최근 일본 외무부대신이 한국 내 반일집회에 대해 어딘가 어색하다고 한 발언이 그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또한 금번 수출규제에서 나타나듯 일본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의 변화 자체를 이해하기보다 일본적 시각에서 한국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시각은 식민지 경험에 입각하여 일본을 단일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정상국가화가 군국주의로 이해된다. 동시에 일본 위정자와 일본 국민을 분리하지 않게 된다. 일본 국민들도 역사적으로 희생당했다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패전 이후 70여년간 미국의 영향하에서 반미는 물론이고 국가에 대한 도전을 하지 못했던 일본 국민 대중의 일반정서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일본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은 한국민주화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의 영향과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한·일 교섭은 처음부터 미래의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다. 외교는 대중의 문제가 아니었고 한·일관계는 냉전의 베일에 가려 위선적이고 부패한 관계였다. 위정자와 엘리트들에게 지배되었던 한·일관계는 미국의 영향하에 표면적으로는 정상성을 유지했을 뿐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엘리트 수준의 한·일관계가 대중 수준으로의 이전을 의미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피맺힌 사연들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이슈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한국의 국내 변화는 탈냉전과 함께 한·일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극일 비전은 경제에 그쳐서는 안된다. 일본보다 동적이고 활발한 민주주의 정치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 상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더욱 보편적이고 다른 국가들의 공감대를 얻어 귀감이 되는 민주정치야말로 일본을 이기는 길이다. 나아가 경제적 극일은 진정한 민주적 제도의 정착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용출 | 미국 워싱턴대 잭슨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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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과목은 3학년 전공필수였고, 그 선생님의 수업은 타 학과 학생들도 앞다투어 신청하는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수강신청 마감 30분 전에 남은 과목 아무거나 입력해 넣던 한심한 부류에 속했다. 그러니 학부시절 내내 그분의 강의를 듣지 못했다. 가르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봤을 뿐이다. 학생회선거 유세를 돕기 위해 강의실 바깥에서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다 문틈으로 우연히 본 것이다. 비스듬한 어깨로 교탁에 팔을 기대고서 카랑한 목소리로 뭔가 설명하셨는데, 그 모습이 기억에 깊이 남았다.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해서였다. 밤에 행정조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 드니 저편에서 “너희들은 무슨 일을 이렇게 하냐?”는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강의실 배정표가 잘못되어 선생님이 수업하는 교실이 겹쳤던가 보다. “조교실장 당장 올라와보라” 하시는데 이미 귀가한 조교실장이 당장 올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고 거기엔 나밖에 없었다. 겁을 집어먹고 찾아뵈니 선생님은 그새 화가 풀려 계셨다. “몇 학번이냐? 내 수업은 언제 들었지?” 물으시는데 차마 예전에 수업 한 번도 못 들었다고, 그 이유가 수강신청을 대충해서였다고 밝힐 순 없었다. 그랬다간 다시금 분노가 점화될 것 같아 적당히 수업 들은 시늉을 하였다. 거짓말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몇 주 지나 선생님을 다시 복도에서 마주쳤다. 꾸벅 인사하는 나를 돌려세우시며 “네가 법문학을 공부한다는 그 이소영이구나?” 하셨다. 내 지도교수에게 논문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당신 또한 문학청년이었다며 이런저런 작가의 소설을 읽어봤냐고 물으셨다. 그중 둘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작가였고 다른 한 명은 아예 모르는 이였다. 대답을 못한 채 우물쭈물 서 있으니 언제 한번 연구실로 찾아오라 하셨다. 혹시 아직 공부하지 않은 내용을 물어보셔서 대답을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던 나는 선생님 연구실 앞을 지날 때마다 종종걸음을 하였다. 

그로부터 몇 해 더 지나, 그해 마지막 눈이 내리던 어느 초봄,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내가 그분에 대해 가진 기억은 이렇듯 사소한 것들이다. 편찮았던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수많은 기억을 나누어가진 분들의 상실감 앞에서 내게 허락된 애도라곤 고작 “난 또 (동명이인인) 배우 ○○○가 죽었나 했지” 하고 떠들던 철없는 1학년 학생들 뒤통수를 최대한 성난 눈으로 노려보는 정도였다. 세부전공도 다른 데다 아직 학생인 내가 조문을 가면 ‘나대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까 망설였다. 그러다 발인 전날 밤 문득,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복도에서 뵌 날이 떠올랐다. 그때 해주신 어떤 말씀이 기억났다.

나는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문상 복장도 갖추지 못한 채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향해 캄캄한 밤길을 달렸다. 숨이 턱까지 닿아 도착해서야 내가 조문예절을 그때껏 익힌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백합을 손에 쥔 채, 이번에도 한쪽 무릎 세우고 손을 제비처럼 옆에 모으는 그 절을 해버렸다! 실수했음은 문 앞의 선배들 표정을 보고 바로 알았다. 평소였다면 자책하며 잠 못 잤겠지만 그날은 아무렇지 않았다. 남들 눈에 괴물처럼 보였어도 상관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란 마음뿐이었다. 이젠 10여년 전의 일이다.

그때 복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다. “네가 학자로서 어떻게 커 갈지 내가 잘 지켜보고 있다.” 나는 어떻게 커 가고 있을까, 지금 모습을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 가끔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럴 때면 지치고 닳은 상태로도 스스로를 지탱하며 걸음을 떼어놓게 된다. 바랐던 만큼의 재능을 갖지는 못했을지언정, 들인 공에 비해 연구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을지언정, 계속 읽고 쓰고 배우며 가르칠 힘을 한 움큼 얻는다. 때로는 과분하게 자신을 잘 봐주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를 지탱해준다던 지인의 말처럼 말이다.  

어쩌면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신 걸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천상에서 뵈면 꼭 “감사합니다!” 하고 싶다. 그러고서 “가만있자, 누구였더라?” 하시기 전에 얼른 도망쳐야지.

<이소영 |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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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제9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시작됐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21일 양자회담을 열기로 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연장 여부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시행을 각각 목전에 둔 시기여서 이번 회담이 한·일관계의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GSOMIA를 연장할지, 폐기할지를 24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강경화 장관은 20일 GSOMIA 연장 여부와 관련해 “결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오는 28일부터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다. 회담에서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면 이 조치들이 강행되면서 한·일관계는 수습불능 상태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서로를 겨냥한 조치들을 동시에 내려놓게 되기를 바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사진)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


지난 7월 초 일본의 반도체 소재 3대 품목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50일을 지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조심스럽게 전환을 모색하는 흐름이 엿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일본 수출규제를 비판하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국내 일각의 우려를 무릅쓰고 경축사에 내년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점이 돋보였다. 일본에서도 아베 정부의 자성과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장문의 사설을 통해 “상호 보복에 종지부를 찍고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규제 반도체 3대 품목 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최근 허가한 것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 사회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두 나라 장관은 이번에 양자회담 외에도 여러 차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달 초 태국 방콕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났을 때보다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사태의 어정쩡한 봉합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경제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로 철회를 촉구하되 갈등 해결의 단초를 찾는 노력을 병행하는 어려운 임무가 강 장관에게 부여돼 있다. 고노 외무상도 겸허한 태도로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총리실과 경제산업성이 주도했고, 외무성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켜서 있었다는 관측이 있지만 고노 외무상이 외교책임자라는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두 장관이 무거운 책임의식을 갖고 갈등 해소의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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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의 마지막 관문인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이하 협의회)에서 전문가들이 최종적으로 사업 “부동의” 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구성원 14명 중 찬반 양측과 결정권 없는 위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5명 전원이 사업추진에 부정적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말 한마디로 ‘억지 추진’된 설악 케이블카 사업이 총체적 부정 평가를 받은 셈이다. 사업추진 결론은 이달 말 환경부가 최종 발표한다.  

출처:경향신문DB

20일 바른미래당 이상돈·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이 공개한 협의회의 최종 회의결과에 따르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국립생태원, 국립공원공단, 동식물 전문가 위원 등 중립 성향 기관·전문가 모두가 8개 쟁점마다 근거를 대며 사업추진에 부정적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양양군이 2011년 설치 계획을 낸 이후 케이블카 사업은 2012년과 2013년 거듭 환경부의 퇴짜를 맞으며 사실상 폐기됐다. 그러나 2014년 강원도를 찾은 박 전 대통령의 “조기에 추진됐으면 한다”는 한마디로 사업이 살아났고, 이듬해 국립공원위원회 승인이 나며 급물살을 탔다.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역은 5개 보호구역(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곳이어서 엄중한 단계와 평가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단계마다 사업통과를 위한 거짓과 끼워맞추기, 무리수로 점철되며 논란을 자초했다. 하지도 않은 조사를 한 것처럼 꾸미고,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조작하고 부풀린 사실이 드러났다. 추진 주체가 자신있게 내민 경제성조차 국회 예산정책처가 경제성 분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힐 만큼 엉터리였다.

이제 전문가들의 최종 결론까지 내려진 마당에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해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환경적인 이유는 물론 경제적 가치도 조작과 허상임이 드러났는데 계속 추진하겠다면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은 다른 국립공원에도 신호탄이 될 수 있다. 5중 보호구역마저 개발이 허가된다면 다른 곳은 어떻게 막겠는가. 잠깐의 과실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환경훼손의 대가는 길고 쓰라리다. 설악산은 우리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는 국제적 보호종인 산양의 번식지 가능성으로 세계도 주목하는 곳이다. 자랑스럽진 않아도 부끄러운 세대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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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몸통시신 사건’ 피의자 ㄱ씨가 지난 17일 새벽 서울 종로경찰서에 자수하기 전 서울경찰청을 먼저 찾아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서울청 야간 당직자는 방문목적을 묻는 질문에 ㄱ씨가 “강력형사에게 얘기하겠다”고 하자,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ㄱ씨가 자수했으니 망정이지, 마음을 바꿔 도주라도 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경찰의 초기 부실수사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전남편 살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실종신고 이틀이 지나서야 단서가 포함된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했다. 범행장소 확인이 늦어지면서 현장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부실한 압수수색 때문에 졸피뎀 등 증거물도 현재 남편이 제출해서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서울 동작구의 한 빈집에서는 2015년 실종신고된 20대 남성 백골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이 숨진 남성이 살던 바로 옆집이었는데, 경찰은 4년간 이웃집조차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 

손님을 살해한뒤 한강에 유기한 장대호씨가 지난 18일 영장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고양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의 안이한 수사는 시민에게 큰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지난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폭력의 가·피해 정도를 따져 격리 등 상응조치를 했더라면 살인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최근 경찰청에 진정한 사건에서도 이혼한 전남편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던 여성 ㄴ씨는 3차례나 112신고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경찰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해 결국 살해됐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는 지난해 25만건 가까이 됐지만 수사에 공식 착수한 경우는 17%에 불과했다. 

정부가 최근 확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은 경찰이 모든 사건의 1차 수사·종결권을 갖는 것이다. 검찰 지휘 없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독점해온 ‘기소 결정권’까지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안이 정부안대로 시행되면 경찰이 수사한 사건 10건 중 4건은 검찰 송치 전 무혐의 종결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런데 초동수사에 대한 처리가 이 모양이라면 과연 1차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맡겨도 될지 강한 의문이 든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실수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안은 허술해지고 검경 수사권 조정 취지도 무색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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