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세계경제포럼의 2019년 10대 떠오르는 기술과 이들 중 DNA 데이터 저장기술을 제외한 9가지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다. DNA 데이터 저장기술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내가 게재했던 해설을 기반으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매일 알게 모르게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만들어내는 데이터,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통한 데이터, 기업 활동 데이터, 거시 및 미시경제 데이터, 주식 및 금융거래 데이터, 기후와 날씨 관련 데이터, 교통 데이터, 건강검진 데이터뿐 아니라,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e메일, 메시지, 블로그, SNS, 광고 클릭 활동을 통한 데이터 등 우리는 거의 모든 활동을 통해 매시간 수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데이터 분석회사 도모는 지난 7월9일 새로 업데이트된 2019년 전 세계 데이터 관련 정보를 발표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1분마다 449만건의 구글 검색을 하고, 450만편의 유튜브 비디오를 보며, 51만건의 트윗을 날리고, 69만시간에 육박하는 넷플릭스 영화를 보며, 5만5000개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고 한다. 또한 1분마다 1억8800만개의 e메일을 보내고, 1800만개의 문자를 보내며, 9772번 우버를 이용한다고 한다. 이는 불과 몇 달 전 내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인용했던 작년 데이터와 비교해도 빠른 속도의 증가이다. 작년 데이터 중 몇 가지만 보면 1분마다 388만건의 구글 검색, 433만편의 유튜브 비디오 시청, 47만건의 트윗, 1억5900만개의 e메일 전송을 했으니, 데이터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2020년에는 1인당 1초에 1.7메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인구를 78억명으로 예상할 때 1년에 418제타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이다. 1제타바이트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들고 다니는 1테라바이트 외장하드 10억개가 필요한 엄청난 데이터양이다. 

현재 0과 1의 디지털 데이터들은 자성 혹은 광학 데이터 저장장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사용 연한은 보통 10년 정도로 보며, 아주 잘 보관해도 100년은 넘길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주기적인 복제 및 보관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소중한 활동을 담은 수많은 데이터들을 어떻게 장기간 보관할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 보관과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에너지 수요는 어떻게 해결할까?

이에 DNA를 구성하는 A, T, G, C 네 가지 염기를 이용하여 합성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쓰고, DNA 시퀀싱을 통해 읽는 DNA 저장기술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아직도 많이 비싸기는 하지만,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DNA 시퀀싱 기술은 DNA의 염기서열을 예전보다 빠르고 싸게 읽을 수 있게 하였고, DNA 합성기술 또한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예전보다 훨씬 값싸게 합성이 가능하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DNA의 높은 안정성이다. 보관 상태가 좋을 경우 수십만년 이상 문제없이 보관이 가능한데, 이는 실제 50만년 전 말의 화석에서 전체 DNA 염기서열을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매우 높은 저장밀도는 DNA 저장기술이 가장 주목받는 큰 장점이다. 하버드대 분석에 따르면 대장균의 DNA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삼면이 각각 1㎝인 1㎤의 부피에 10의 19승비트를 저장할 수 있다. 이는 이론상 1㎥의 크기에 전 세계가 현재 1년간 만들어내는 모든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밀도에 해당한다. DNA는 정해진 서열로 한번 만들고 나면 값싸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또한 DNA는 저장 시에 특별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 남극이나 북극 같은 곳에 저장소를 만들면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DNA의 높은 저장밀도를 고려하면 도심 건물에 보관해도 저온 보관에 들어가는 에너지양은 얼마 안된다. 

DNA 저장기술은 지난 수년간 빠르게 발전했다. 2017년 조지 처치 교수팀은 크리스퍼 DNA 편집기술을 이용하여 대장균의 게놈에 사람의 손 이미지를 저장하고, 이를 다시 90%의 정확도로 읽어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달리는 말을 탄 사람의 동영상을 저장하고 읽어내어 동영상 정보도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크리스퍼 DNA 편집기술 이외에도 여러 재조합 효소들을 이용하여 DNA 기록과 편집이 가능하다. 앞으로 DNA 바코딩 기술 등과 결합되면서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워싱턴대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DNA에 데이터를 쓰고, 저장하고, 읽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트위스트 바이오사이언스와 같이 DNA 저장기술 및 저장장치 개발에 집중하는 벤처기업도 생겼다. 

그렇다면 DNA 저장기술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은 높은 비용 문제다. 한번 만들고 나면 원하는 만큼 복제가 값싸게 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초기 합성비용이 한 개의 뉴클레오타이드당 70원씩이니 단순히 계산해도 1메가바이트 데이터 저장에 7000만원이나 든다. 읽기에 해당하는 DNA 시퀀싱은 합성보다는 많이 저렴하여 30억 뉴클레오타이드를 읽는 데 약 100만원이 든다. 따라서 아직 비용 측면에서 보면 DNA 저장기술은 상용화까지 멀다고 하겠다. 또한 읽고 쓰는 속도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하드디스크나 SSD보다 많이 느리다. 그러면 DNA 저장기술이 가치나 있기는 한 건가? 그렇다. 우선 생물학 및 생명공학 연구에서는 다양한 생명현상을 시간에 따라 저장하면서 연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아주 중요한 데이터들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저장매체에 수년마다 계속 복제하는 것을 대신하여 DNA에 장기간 저장할 수 있다. 즉 중요한 데이터들을 DNA에 저장하여 타임캡슐과 같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아직은 DNA 저장기술이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을 감안할 때 DNA 저장기술 혹은 이와 같이 획기적인 신개념의 저장기술 개발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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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세다. 급하다. 거칠다. 한마디 한마디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고 날카롭다. 표현과 수사가 구구절절 극으로 치닫기만 한다. 침소봉대(針小棒大)가 기본값이 되고 나니 양두구육(羊頭狗肉)에도 둔감해지고 말았다. 음식을 둘러싼 말글 말이다. 음식 또는 미식이 업인 사람들의 말글뿐 아니라, 일상 속 음식에 잇닿은 말글이 오늘 대개 그렇다. 장삼이사들이 살아가는 골목, 일터가 되는 길거리, 매일의 반찬거리를 대느라 돌아다니는 시장 여기저기 내걸린 음식의 말글이 어느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것이다. 닭갈비집의 모든 재료는 닭갈비의 고향 춘천에서 공수하고, 팥빙수집 팥은 기가 막히게들 정선, 경주, 나주, 신안 등 팥 주산지에 자리한 큰아버지네 또는 외삼촌네서 농사 지은 팥을 직접 공수해 쓴다고들 한다. 부모님의 시골 텃밭에서 쌈거리를 공수하는 백반집과 한정식집이 어느 동네에나 넘치게 있다. 심지어 내 텃밭을 두고 영업한다는 고급 음식점에서는 ‘방금 텃밭에서 공수한 채소’를 쓴다고도 한다.

‘공수(空輸)’란 ‘항공 수송’을 줄인 말이다. 하늘로 난 길을 통해 화물을 실어 옮기고 주고받을 때에 쓸 말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뭍 사이의 항공편이 아니면, 이 땅의 철도와 화물차로 운송할 수 있는 물류가 아니면, 대한민국 먹을거리 유통 및 요식업이 공수를 통해 얻을 이익 또는 편의란 웬만해서는 없다. 강원, 경북, 전남과 서울 등 수도권 사이의 공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자영업자? 1만명 가운데 한 사람꼴도 안될 테다. 명실상부가 어긋나니 극에 달한다. 정답고 수더분한 음식 앞에 ‘마약(痲藥)’이 왔다. 마약떡볶이, 마약김밥, 마약튀김, 마약어묵꼬치, 마약전 등등. 장수가 판촉을 위해 한 번 쓸 말이라면 모르겠으되, 막다른 지경의 표현에 한국어 사용자 모두가 감염된 형국이다. 극에 달한 표현이란 빈곤한 어휘만큼이나 사물의 세목을 향한 상상력을 가리는 나쁜 효과를 낸다. 마약 너머, 떡볶이·김밥·튀김·어묵꼬치·전을 운용하는 조리의 기술은? 나는 맛을 보았는가 아니면 자극을 받았는가 되돌아보면? 맛이 진공인 자극의 지속 가능성은? 파괴와 파멸의 쾌락을 환기하는 음식의 자리란, 있더라도 따로 있을 테다. 무엇보다 어떤 형편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럼에도 정답고 수더분한 음식의 가치만큼은 이어가고 있는가. 극에 달한 말에 반비례하는 서민대중 음식의 질을 돌아보면 다만 허무하다.

‘투하(投下)’도 못잖다. 설탕이나 소금 따위, 가루는 친다. 즙액 또한 친다. 또는 뿌린다. 송송 썬 파나 실파 따위는 국물에 넣는다. 장식이라면 올린다. 투하란 떨어뜨리거나 던져서 넣기니, 그 말에 이어지는 무게나 몸집이나 수고의 정도가 밥 짓고 상 차리는 부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끔찍한 표현이지만 ‘폭탄 투하’야말로 투하라는 명사의 쓰임을 잘 보여준다. 또는 ‘자본 투하’ 같은 용례가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한 한국어 사전의 선택이다. 투하라는 말은 그 머리 위에 ‘충격’이라는 효과를 어느 정도 이고 있는 말이다. 웃자고 한 번 쓴다면 모를까, 음식을 하면서 내내 쓸 말은 아니다.

내 동작이 조리와 음식의 어떤 과정, 무슨 효과, 어느 사물과 이어졌는지 섬세하게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치고, 뿌리고, 넣고, 올리는 동작, 그리고 거기 잇닿은 적절한 용언을, 체언 및 수식언까지 함께 고려해 운용하게 마련이다. 이윽고 설거지를 할 즈음에는 ‘설거지하다’ 단 하나로 게으르고 빈곤하게 말하지 않을 테다. 무언가 묻고, 붙고, 끼고, 물든 그릇을, 헹구고, 가시고, 부시어, 애벌설거지를 지나, 필요하면 두벌설거지도 거쳐 아퀴를 지을 줄 알 테다. 그 사람은 설거지를 둘러싼 바로 그 행위와 그 상태에 맞는 적확한 말로, 처음과 중간과 끝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세고, 급하고, 거칠고, 새되고, 극에 달한 끝에서는 기약하기 힘든 노릇이다. 상황이 말을 이끌기도 할 테고 말이 상황을 이끌기도 할 테다. 우선은 마음부터 평평하게 고르기로 새삼 다짐한다. 먹는 데 엮는 말 한마디가 엄중하기만 한 오늘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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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함길도에 김생이라는 거부가 살았다. 함길도는 함경남북도에 걸친 땅인데 발해가 망한 후 거란족 등이 차지했다가 조선 초에 다시 우리 땅이 되었다. 김생은 미개척지 함길도로 이주하여 황무지 개간으로 큰 부를 이뤘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건 동화 속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늘 악당이 등장한다. 김생의 친구 김원룡에게는 김도련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 자가 무척 사악했다. 김도련은 흉계를 꾸며 김생의 부를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김도련은 ‘김생이 내 아버지의 노비였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면서 노비추쇄문서를 형조에 제출했다. 노비추쇄문서는 도망간 노예를 찾아달라고 형조 등에 제출하는 소장과 같은 것이다. 친구 사이였던 김생과 김원룡이 주종관계일 리 없건만, 황당하게도 형조는 김도련의 손을 들어준다. 김생과 후손들을 김도련의 노비로 만들어버리고 모든 재산을 빼앗아 김도련에게 넘겼다. 

상식 밖의 결론에는 늘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당시 형방승지였던 조말생이 김도련의 뇌물을 받고 이런 불법을 자행한 것이었다. 김생 일가는 억울함을 풀려고 했으나 조말생의 권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놀랍게도 조말생은 당대의 염근리로 행세하면서 왕의 두터운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탐관오리가 청백리로 둔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낡은 신발을 신거나 낡은 가방만 들쳐 메도, 서민의 대변자인 것처럼 떠들기만 해도 가능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생 일가는 형조에 김도련을 고발했다. 하지만 병조판서로 승진한 조말생은 손을 써 이를 방해했다. 조말생의 지시에 따라 재판을 지연한 형조참의는 그 대가로 친척들의 벼슬을 점지받았다. 김생 일가는 다시 사헌부를 찾아갔다. 역시 조말생은 사헌부를 압박했다. 인사권으로 위협하고 부당한 수사를 한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하지만 사헌부는 조말생의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진상을 밝혀냈다. 조말생뿐 아니라 김도련으로부터 뇌물(노비)을 받은 관료 수십명의 범죄를 밝혀내 왕에게 보고했다. 좌의정, 우의정, 개국공신, 병조참의 등이 포함되어 있어 지금으로 치면 김도련 게이트라 불릴 만한 대형 부패사건이었다. 하지만 왕은 조말생의 죄상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안 맞지만 불법은 없었다’는 만능 치트키다. 이에 힘을 얻은 조말생은 사헌부 관원들을 모함했다. 아들 조선은 폭력배를 동원하여 대사헌을 감시했다. 심지어 사헌부에서 조사받고 나온 증인을 납치하여 폭력으로 증언을 번복시키기도 했다. 

사헌부의 수사가 막히자 사간원이 나섰다. 사간원은 조말생에 대해 국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라 주청한다. 하지만 왕은 자신이 이미 결정했는데, 더 이상의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반역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사슴을 말이라 우길 수 있고, ‘내가 납득되지 않으니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고 억지 부릴 수 있는 게 권력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말생은 사면되었고 더욱 승승장구했다. 왕은 그를 의금부 제조로 임명했다. 의금부는 왕의 교지를 받들어 수사와 재판을 하는 최고의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 치면 뇌물 전과자가 대법원장 혹은 검찰총장이 된 것이다. 지금도 논문 표절, 주가 조작 가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재산 빼돌리기 등을 해야만 고관대작이 될 수 있으니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비정상이 반복되면 그것이 정상이다. 물론 사간원 대간들은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시위를 했다. 조말생과 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조말생의 아들은 문과에도 급제했다. 쓰앵님을 동원했는지, 인턴을 출중하게 수행한 덕인지 모르나 아무튼 조말생이 과거를 담당하는 예문관 대제학으로 있던 때였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로또급 행운은 늘 권력자의 자식들에게만 일어난다. 행운은 권력지향적인가 보다. 행운을 믿지 않은 홍문관 관리들은 조말생의 아들에 대한 급제자 발표를 거부했다. 조말생은 인사권으로 그들을 ‘조졌다’. 간신이 총애를 받으면 권신이 되고, 권신은 부정과 부패를 낳는다. 

이야기의 결말은 씁쓸하다. 조말생은 판중추원사 등 요직을 차지하고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 격인 김도련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김생의 후손들은 결국 면천(免賤)하지 못하고 노비로 살다 죽었다. 현실은, 동화와 달리 대개 악당이 승리한다. 지금 우리가 그보다 나은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조말생은 능력이라도 출중했다. 그나마 남은 거라고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한 청요직 관리들의 기상 정도라 할 것이다. 

광해군 3년 과거에서 ‘가장 시급한 나랏일이 무엇인가’라는 책문이 나왔다. 이에 합격자 임숙영은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이다’라고 답했다. 격분한 광해군은 임숙영을 불합격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넉 달에 걸친 삼사의 격렬한 반대에 결국 왕은 뜻을 굽히고 임숙영을 합격시킬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으로서는 분할 노릇이지만, 이게 나라다.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검사내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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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 논란을 계기로 앞으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검증 ‘코스’에 자녀 논문 문제가 추가될 것 같다. 조 후보자 딸의 경우 그가 제1저자로 등재된 해당 논문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 가점 요소로 작용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다만 조 후보자 딸이 입학할 당시인 2010년은 대학들이 대입전형서류를 5년만 보관하고 폐기하던 때라 논문의 가점 여부가 정확히 확인될지는 불투명하다. 대입전형서류 보관연한이 10년으로 늘어난 건 지난해부터다.

본질적으로 이 사안은 논문을 지도한 교수의 연구윤리 문제다. 한 사립대학 교수는 “조 후보자 딸이 해당 논문에 참여한 기간이나 기여한 내용 등을 봤을 때, 다른 이유를 배제하고서라도, 제1저자 등재는 명백히 부적절해보인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연구부정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의 전반적인 시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 학술계에 논문을 비롯한 각종 연구성과에 대해 ‘윤리’라는 개념이 등장한 역사는 길지 않다. 2005년 겨울 전 국민을 ‘멘붕’에 빠트린 황우석 사태가 그나마 계기가 됐다. 교육부에 연구윤리 문제를 다루는 전담부서가 생긴 것도 불과 10여년 전인 2007년이다. 논문과 관련된 연구윤리 문제는 그간 논문을 베끼거나 하는 등의 연구자 본인의 부정 문제에서 최근 미성년 저자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고교생의 논문실적이 대입전형의 주요 ‘스펙’으로 각광받으면서부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다. 강윤중 기자

교육부도 부랴부랴 2017년부터 실태조사에 착수해 미성년 자녀나 친·인척 등을 부적절하게 논문에 저자로 올린 사례를 수십 건 적발했다.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매년 수만 건에 달하는 논문을 교육부가 일일이 조사해 부정을 밝힐 순 없는 일이다. 조사과정이 쉬운 것도 아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미성년 논문 문제를 조사하는 공무원에게 ‘내가 장관으로 가서 당신을 혼내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교수도 봤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연구자가 ‘양심’적으로 논문을 써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양심이란 게 자녀문제나 친분 앞에서, 때로는 출세나 영달을 위한 욕심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업기관이자 연구기관을 자임하는 대학이라면 연구자는 물론 연구자가 생산해낸 결과물까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이에 반해 국내 대학들은 논문 부정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연구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거나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만 보여왔다. 미성년 저자 논문 문제만 해도 “그런 사례가 없다”는 식의 불성실한 자료를 제출했다가 교육부로부터 재조사 처분을 받은 대학이 여러 곳이다. 대학별로 연구윤리 문제를 전담하는 담당자를 두고 있긴 하지만 인력이 1~2명에 불과해 실질적인 연구부정 검증 및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독립성을 가져야 할 연구윤리 전담 인력이 현재 총장 등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조 후보자 딸 문제를 계기로라도 대학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윤리를 보호하는 데 나서야 한다. 연구윤리를 어긴 연구자에 대한 처벌 역시 대학의 몫이다.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솜방망이 징계만 할 게 아니다. 현행 규정상 연구윤리 위반 연구자에 대해선 대학이 파면까지 처분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도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자의든 타의든,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사안 조사에 착수한 단국대학교의 대응을 지지한다. 이 역시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까.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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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혀를 내밀고 더워하면 수박을 나눠 먹었다. 포도는 몇 송이 달리지 않아서 새들에게 양보. 쳇- 기다려도 감사의 인사가 없구나. 내 사랑 레몬으로는 주스를 해서 마신다. “꿈을 꾼다네. 하느님이 되어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꿈. 하지만 너무 지루해 죽을 맛이야. 땅에서 사는 게 차라리 나았어. 기적놀이를 하는 하느님이 아니라면 미치고 말았을 거야. 잘 왔어. 나는 하느님이야. 나는 날마다 기적을 베풀지. 레몬즙으로 만든 비를 뿌릴게. 이슬 내리듯 동굴들을 적시게 하고, 하수구에도 일품 라인산 와인이 넘치게 할게. 시인들은 내가 선물한 음식을 반겨하더라.” 독일시인 하이네의 시 ‘귀향’에서처럼 레몬즙 비가 내리고는 해. 오늘 비소식이 있다. 빗물로 머리를 감으려고 양동이를 내다 놓았다.

레몬 나무를 한 그루 열심히 돌봤는데, 레몬 열매가 송알송알 달렸어. 생큐 생큐. 이건 기적이야! 소리쳤어. 내 일상은 마치 미국시인 휘트먼의 그 일상처럼 소소하기 이를 데 없으니 이건 기적이 맞다. “평범한 일상. 사무실 혹은 책상, 자두 과수원과 사과 과수원, 정원 가꾸기. 씨 뿌리기. 나무 베기, 꽃 피우기와 덩굴 키우기. 곡식과 비료. 회토, 진흙, 찰흙, 하층토 쟁기질. 삽과 곡괭이와 갈퀴와 괭이. 물대기와 물빼기. 말빗과 말옷, 말 고삐와 굴레와 재갈, 말먹이 짚다발, 외양간과 바닥, 곡식 저장고와 구유, 건초와 시렁. 여기 도시와 시골. 난로와 촛불, 가스등과 히터와 수로. 싸우는 사람의 일격, 어퍼컷 하나 둘 셋. 빵집의 빵과 케이크, 열대의 과일과 푸줏간 선반의 고깃덩이. 당신의 방과 침실, 당신의 피아노포르테, 난로와 조리 기구.” 휘트먼은 ‘직업을 위한 노래’를 쓰면서 집 안을 죽 한번 둘러봤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 축복 같은 시가 찾아왔겠지. 창문 밖엔 푸른 잎사귀의 레몬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풍경. 우린 수많은 기적 속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지. 정원은 온통 꽃들, 열매들. 이젠 가을이야. 돌본 만큼 정직한 열매를 거두길. 공정한 세상에 살고 싶어라. 소소한 기적에 환호하면서.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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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기간 종료를 눈앞에 두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특위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논의했지만 여야 간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 무소득으로 끝났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의원들은 정개특위 활동 시한인 이달 말까지 선거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국당은 합의 처리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법개혁특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걸려 있지만, 회의다운 회의 한번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 선거제·검찰 개혁은 소리만 요란했을 뿐 빈손으로 끝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정개특위에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은 의원정수 300명을 유지하면서 지역구는 줄이고 비례대표는 늘리는 게 주요 골자다. 거대 양당에 유리한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를 비례성을 강화해 민심(득표율)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로 개혁하자는 것이다. 반면 한국당은 의원정수 270석 축소와 비례대표 폐지안을 내놓고 있다. 비례성·대표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승자독식 선거제를 극단화하는 ‘청개구리’ 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술 더 떠 그동안 한국당은 제대로 된 선거법 협상안도 내놓지 않고 시간만 질질 끈 채 무성의로 일관해 왔다. 아무리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합의처리가 최선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합의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개특위에서 선거법을 의결하면 법사위 계류기간(90일)을 거쳐 늦어도 11월에는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만약 정개특위에서 의결하지 못하면 행정안전위로 넘어가 계류기간 180일을 다 채운 후 또 법사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본회의까지 가려면 내년 1월이나 돼야 한다. 이 경우 선거구 획정 등 후속 작업을 감안하면 내년 4월 총선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달 말까지 정개특위 의결이 반드시 필요하고 절박한 이유다.

다행히 정개특위 위원 19명 중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8월 말 의결’에 찬성하고 있어 과반은 확보돼 있다고 한다. 새로운 선거제도를 총선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더 시간을 미룰 수 없다. 패스트트랙에 연대했던 여야 4당은 표결 처리를 통해 시민의 염원을 받들 것인지, 또다시 선거제 개혁을 허공에 날려버릴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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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21일 베이징에서 만났다. 제9차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두 나라 외교 사령탑이 회동해 양국 간 갈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이날 회담은 양국 간 갈등 해소의 돌파구를 마련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평행선을 달렸다. 두 장관은 35분 동안 기존 입장만 확인한 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다만 양국이 대화 채널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회담은 3년마다 열리는 정례회의이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 용의를 밝힌 8·15 경축사 이후 양국 간 갈등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지난 1일 두 장관이 방콕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에서 냉랭하게 돌아설 때와 달리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갈등 해소의 실마리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시한(24일)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조치 시행일(28일)을 앞둔 상황이라 양측이 부담을 느낄 법도 했다. 하지만 양측은 이날도 서로 물러설 여지가 없을 만큼 경직돼 있다는 점만 확인했다. 다만 양국이 외교 대화 채널을 유지하기로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소득이다. 한·일 외교 당국 간 대화를 복원시켰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일본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고노 외무상이 회담 직후 일본 언론에 ‘지금이야말로 교류가 필요하다’며 외교 당국 간 대화 채널 유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한·일이 갈등할 요소는 앞으로도 많다. 당장 GSOMIA 재연장 시한이 이틀 앞으로 닥쳤다. 일본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한국 정부는 GSOMIA 폐기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르면 22일 협정 폐기 여부를 발표할 수 있다고 한다. 미·중 무역갈등 등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결과이지만 일본의 7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 특히 대한국 수출은 6.9% 떨어졌다. 한국의 7월 수출 실적도 11% 줄었다.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당장 구체적인 소득이 없더라도 양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안보 분야와 정치권, 민간 등 기존의 교류 채널들을 적극 활용, 접촉면을 유지·확대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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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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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쌓이면서 도덕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모펀드 거액 투자, 친·인척 간의 부동산 위장 매매 의혹, 웅동학원 채무 변제 회피 의혹 등 조 후보자 가족의 재산 관련 의혹들은 일반의 상식으로는 쉬 납득되지 않는 의문투성이다. 여기에다 조 후보자 딸의 학업 관련 의혹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는 시대정신인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분노의 반향이 심상치 않다. 특히 청년들은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의 딸 정유라 사건까지 소환하며 ‘조로남불(조국+내로남불)’의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21일 (출처:경향신문DB)

조 후보자 딸은 외고 재학 시절 2주가량 대학 의과학연구소에서 인턴을 하면서 대한병리학회에 제출한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됐다. 무려 6년간 연구한 성과물을 집약한 논문에 함께 참여했던 교수·연구원을 제치고 인턴인 고등학생이 연구 기여도가 가장 높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셈이다. ‘열심히 인턴한 정당한 성과’라는 후보자 측의 해명을 대학에서 논문 작업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수긍하지 못할 게다. 조 후보자 딸은 논문 등재 1년 뒤 대입 자기소개서에 그 이력을 밝혔고, 고려대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논문 등재 과정에서 특혜와 부정은 없었는지, 이 논문이 대입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조 후보자 딸은 또 부산대 의과전문대학원을 다니면서 두 차례 유급하고도 6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은 장학금을 한 번 받는 동안 조 후보자 딸만 여섯 번을 받았다. ‘낙제생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차원’으로 지급됐다는데 어불성설이다. 반값 등록금 논쟁 때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 중심에서 경제 상태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창했던 조국 교수는 어디 있는가. 조 후보자 딸은 외고, 고려대, 부산대 의과전문대학원에 진학할 때 사실상 필기시험을 한 차례도 치르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조국판 ‘스카이캐슬’이란 비아냥이 나올까 싶다.

조 후보자는 20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딸이 대학 또는 대학원에 부정 입학을 했다는 의혹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부정 입학 시비는 ‘논문 의혹’에서 연유한 것이기에 차후 규명이 필요할 터이다. 조 후보자는 당장의 궁지를 ‘위법은 없다’거나 ‘비판을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넘기려 해선 안된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공분을 직시해야 한다. 청문회 이전이라도 진솔하고 소상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긴다면 조 후보자 차원을 넘어 문재인 정부의 ‘공정’과 ‘정의’를 캐묻는 상황으로 내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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