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스티븐 코비의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 두 번째,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이다. 1996년 스티븐 코비사의 한국 파트너 회사에 입사하느라 무심히 읽다가 내 인생을 처음으로 되돌아보게 한 전환의 책이었다. 1994년 출간 당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초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고 있는 걸 보면, 저자가 언급한 습관은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좌우 정권을 떠나 이런 장면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의문이 든다. 변호사가 되려면 로스쿨에 가고 변호사시험을 준비한다. 의사가 되려면 의사자격시험을 봐야 한다. 공무원도 다르지 않다. 다 필수과목이 있다. 비록 유한하긴 하나 어마어마한 예산과 법을 정하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정치인의 필수과목은 무엇인가? 

아주 오래전에 미국인 대학생과 노래방에 갈 기회가 있었다. 왁자지껄 음주가무가 이어지는 가운데 누군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 대학생 왈, 자기는 앞으로 정치인이 될 거라 이런 유흥 장면이 찍히면 안된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서 술이 확 깬 경험이 있다. 불과 20대 대학생이 이런 처신을 할 수 있게 만든 건 무엇일까?

아들이 이제 고3이다. 초·중·고를 거치며 학기 초에 꼭 제출해야 하는 설문지에는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포함돼 있었다. 요즘엔 희망 대신 장래직업을 묻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묻는 것까지는 좋은데, 학교가 아이가 희망하는 장래직업에 맞춰 맞춤형 교육을 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 장래직업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에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 새로운 직업이 무엇일지 잘 모르는 시대에 사는 터라 설문에 답하자면 한숨이 나온다.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이 7월25일 서울 홍대전철역 근처에서 거북이 분장을 하고 플라스틱이 동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발하고 있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쓰레기와 동물과 시’라는 기획을 마련해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바다로 옮기자면 올해 피서지에서 가장 많이 나온 쓰레기는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이다. 1인당 일회용 비닐 사용량 세계 1위도 우리나라다.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져 우리 밥상에 오른다 해도 올해 추석 선물은 또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물건들을 선택할 거다. 같은 값이면 더 크고 있어 보이는 포장들은 모두 플라스틱인데 말이다. 마지막을 마음에 새기며 시작하지 않기에 촉발되는 대표적인 일이 바로 환경문제다. 

우리는 여태 제대로 된 환경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거창하게 환경교육이라고까지 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소비교육이랄까, 자기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소비의 시작점과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교과목에서 요청받은 적도 없다. 교육이란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세먼지, 플라스틱 폐기물, 폭염 등등 환경문제가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알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환경교사는 멸종위기종이고 문화적인 방법으로 시민의 환경인식을 드높이고 있는 환경영화제 예산은 계속 깎이고 있다.  

연세대가 내년부터 학부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인권을 교양 기초과목으로 개설한다. ‘인권과 연세정신’이라는 제목의 1학점짜리 강의는 ‘왜 인권인가?’ ‘인권의 역사와 내용’ 등 다양한 주제로 13주간 진행된다. 매우 고무적이고 부러운 일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과 타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에 대해 생각하고 배워본 적이 없다. 쌀이 마트에서 나오는 줄 아는 아이들이 자라서 기재부 공무원이 된다면 어떻게 환경교육 예산을 늘릴 수가 있을까. 대자연의 위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환경정책 입안자가 돼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스티븐 코비의 말대로 황금알을 얻으려면 거위를 잘 돌봐야 하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게 성공의 원칙이다. 정치인 걱정은 그만두자. 인권에 이어 어느 대학에선가 기후환경 필수교양과목도 탄생되길 빌어본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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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에 다시 촛불이 켜진다. 서울대·고려대엔 23일 밤 점화되고, 부산대 학생 커뮤니티도 그 얘기로 뜨겁다. 저마다 논문·장학금·입학 ‘특혜’ 시비가 일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적을 뒀거나 두고 있는 곳이다. 개강 목전이지만 촛불 제안에는 수백~수천의 글이 붙고 있다. 진보적 인사·정부를 성토하면서 태극기·성조기가 아닌, 촛불을 드는 광경도 이채롭다. 말 그대로 ‘조국 촛불’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최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 후보자는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서울대엔 “조국 교수님 부끄럽습니다”, 부산대엔 “정치적 스탠스가 아니라 원리·원칙의 문제”라는 글이 떴다. 고려대에선 “법무장관 자녀 문제를 공개 제기하는 게 무서운 로스쿨생”이라며 첫 촛불 제안자(졸업생)가 넘긴 바통을 ‘재학생 촛불집행부’가 이어받았다. 하나같이 언감생심 닿기 어려운 ‘고스펙’과 그걸 깔아주는 전문직 부모의 ‘학종 품앗이’, 유급자가 받는 ‘6학기의 면학 장학금’…. 학생 커뮤니티에는 조 후보자 딸의 꽃길을 바라보는 청춘들의 아픔과 화가 흘러간다. 법의 잣대를 따지기 앞서 새삼 목도하는 ‘특권’에 분노하고, 질 높은 스펙을 따라 ‘기회와 부’가 세습되는 세상에 다리 힘이 빠진다는 글이다. 행간에는 대화하고픈 ‘멘토’였고 닮고 싶은 ‘미래’였던 사람에 대한 낙담도 섞인다. 팩트와 설이 뒤범벅돼가는데 진솔한 소명도 청문회도 겉도는 불통은 실시간 단톡방 문화에 젖어 있는 20대의 역정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에서 22일 부정이 긍정을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9주 만에 일어났다. 도덕적 담론을 주도하면서 수신제가를 못한 ‘조국’이 뒤돌리기도, 막기도 어려운 장기판의 외통수가 된 셈이다. 

“우리는 20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보름 전 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는 책을 선물하며 물은 말이다. 책에는 서로 피해주기도 간섭받기도 싫고, 워라밸은 중시하며, 세상은 법대로 순리대로 공정하게 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그 90년대생이 지금 더 조국에 화를 내고 촛불을 들려 한다. 소설가 공지영은 조국을 지지하며 “촛불의 의미가 담긴 싸움”이라고 했다. 서로 촛불을 말하지만, 2016년 겨울 광화문에 켜졌던 촛불의 초심은 캠퍼스에 있다. 칼날 위에 선 조국이 엄중히 듣고 새겨야 할 ‘젊은 촛불’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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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22일 경기 김포시 건설현장에서 한 사람이 7.5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8일간 뇌사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그해 9월8일 끝내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딴저테이’, 미얀마 출신 미등록체류자였다. 

사망 당시 25세였던 이 청년은 2013년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고, 2018년 3월 체류기간 만료 후에도 귀국하지 않아 미등록체류자 신분이 됐다. 사고 당일 건설현장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그는 미등록체류자를 단속하던 법무부 단속반원에게 쫓겨 도주하다 7.5m 아래 ‘101동 외벽 지하주차장 흙막이 구역’으로 추락해 의식을 잃었다. 딴저테이의 아버지는 사고소식을 듣고 한국에 들어왔고, 아들의 장기를 한국인 4명에게 기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딴저테이 사망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하여 지난 2월13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사고 당시 단속반원들은 주거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식당으로 난입했고,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며 수갑을 채웠다. 미등록체류자 여부를 확인하거나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는 등 최소한의 절차도 준수하지 않고 일단 수갑부터 채우고 바닥에 앉게 한 뒤에야 신원을 확인했다. 단속된 외국인들은 버스에서 대기하면서 긴급보호서와 미란다원칙 고지 확인서에 서명할 때에도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다. 출입국관리소까지 이동하는 6시간 동안도 수갑에 묶여 있어야 했다.

현장의 단속반원 전원은 딴저테이가 추락한 사실을 알았지만 119구조대에 신고한 것 외에 어떠한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채증하거나 단속을 계속하였을 뿐, 피해자의 추락 지점으로 내려가거나 피해자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관계자 징계 △인명사고 예방과 인명구조를 우선으로 하는 세부 단속지침 마련 △유사한 인권침해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미등록체류자 단속과정에서 발생되는 사실상의 체포 및 연행 등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감독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여전히 토끼몰이식, 폭력적 단속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관계자 징계도,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재발방지 대책도 없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단속과정에서 미등록체류자 9명이 사망하고, 77명이 부상했다. 토끼몰이, 강압적 방식에 의한 단속으로 매년 이주노동자가 추락하여 숨지거나 다치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지만 책임지는 사람도, 대책도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미등록체류자 단속에 대해서도 영장주의를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독일은 강제퇴거를 하려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고, 프랑스와 캐나다에서도 형사소송법의 일반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미등록체류자이기 전에 생명과 신체의 자유,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미등록체류자를 수갑을 채워 추방해야 할, 적법절차는 깡그리 무시해도 좋은 ‘단속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으로 자본은 이윤을 얻고, 국가는 세금을 걷지만 이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부끄러운 조국,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후보자 가족과 신변을 둘러싼 언론보도가 연일 홍수를 이루지만 정작 인사청문회에서 꼭 듣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딴저테이의 죽음에 대해 정중한 애도를 듣고 싶다. 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했다(하겠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토끼몰이식 단속과 차별 대신에 이주노동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고,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굳은 다짐과 약속을 듣고 싶다. 더 이상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 말을 꼭 듣고 싶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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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전화를 걸어온 민화는 마지막 코끼리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마지막 코끼리?” 

나는 이불을 끌어 올리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오늘 오후 2시49분에 지구상 마지막 코끼리가 죽을 거래. 이제 세상에 코끼리는 없어.”

언론은 늘 ‘마지막’, ‘멸종’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며 인간의 ‘마지막’ 남은 감수성을 자극해왔다. 사실은 복제 기술 덕분에 생명 종 다양성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해졌다. 인간도 과학기술상으로는 복제 가능한 세상이다. 단지 불법일 뿐이다. 코끼리 복제가 어려울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호기심에 민화를 따라가기로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후 2시경 안락사 장소인 ‘종 다양성 연구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코끼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이미 10만 명이나 있었다. 하늘에는 대형 코끼리 애드벌룬이 띄워졌다. 웃고 있는 분홍 코끼리였다. 자율주행차 운전석에 앉은 민화는 인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올해로 몇 살이지?” 

나는 민화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렇지 제 나이도 잊냐? 백마흔.” 

“오늘 죽는 코끼리는 몇 살일까?”

코끼리 나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차는 스스로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민화가 이어서 말했다.   

“코끼리는 보통 60년을 산대. 인간 평균수명 150세의 절반도 못 사는 셈이야.”

오후 2시35분이 되어서야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니 3층 높이 축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축사 앞 원형 울타리 주변을 에워쌌다. 주변이 어수선한 가운데 상인이 인파들을 헤치며 외쳤다. 

“마지막 파리! 마지막 모기도 있어요!”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가 가져온 건 파리와 모기 화석이었다. 그것들은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후 멸종되었다. 복제 기술이 있지만 꿀벌과 달리 수익성이 없으므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아이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파리, 모기 화석을 사주어야 했다. 민화는 호박에 갇힌 곤충처럼 통째로 화석이 된 모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당장 윙윙 소리를 낼 것 같은 모기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채 시간에 갇혀 있었다. 요즘은 사체를 빠르게 냉동시킨 후 고분자 크리스털에 넣는 급속 화석이 유행이다. 이렇게 하면 크리스털 안에 갇힌 멸종 생물들은 죽기 전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오후 2시45분이 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유니폼을 입은 사육사가 나왔다. 그는 코끼리가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2년이나 축사 생활을 했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안락사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제 나옵니다. 큰 박수를!”

높이가 3m는 될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코끼리가 고개를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마지막 코끼리는 큰 문과 대비될 정도로 조그마했다. 게다가 앙상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곳에 지구상 최고의 육지 동물은 없었다. 코끼리가 느린 속도로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자기를 보러온 구경꾼들을 잠시 둘러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난데없이 울타리 주변을 돌았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사육사가 그런 명령을 한 게 아니었다. 민화가 말했다. 

“서커스 출신 코끼리들의 습관이야. 곧 죽을 녀석이 원형 무대만 보면 돌아.” 

삐익삐익 소리도 냈다. 관중들을 향해 했던 팬서비스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다 힘없이 주저앉았다. 울타리 주변이 조용해졌다. 

“코끼리는 공룡 멸종 이후 육상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이란다.” 

내 옆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속삭였다. 2시47분이 되자 사육사는 코끼리를 축사로 데려갔다. 

축사 앞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코끼리의 안락사 장면이 AR(증강현실)로 펼쳐질 예정이다. 2시48분 눈앞에 코끼리가 쓰러져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49분 간호사가 주사기를 가져온다. 녀석의 등에 긴 주삿바늘이 꽂힌다. 

“잘 가, 알리.” 

사육사가 외친다. 50분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눈을 감는다. 51분 코끼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가 코끼리 코에 귀를 갖다 대더니 입을 삐쭉인다. “죽었나봐.” 52분 코끼리 머리 위로 흰 천이 씌워진다. 53분 코끼리는 화면 밖으로 옮겨진다. 

AR 화면이 꺼졌다. 민화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하얀 가루가 담겨 있었다. 

“뭐야?” 내가 물었다. 

“남편 유골.”

“그걸 왜?”

“난 항상 이걸 들고 다녔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고 말이야. 그런데 50년째 들고 다닐 줄은 몰랐어.”

민화가 주머니를 뒤집었다. 하얀 뼛가루가 땅에 떨어졌다. 

“인간이 한계수명을 넘어 무병장수까지 실현하는 동안, 코끼리는 왜 사라져 갔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사육사가 다시 나왔다. 

“마지막 코끼리 화석이 나왔습니다. 최첨단 급속 화석화 방식으로 5분 만에 부위별 화석을 얻는 데에 성공했죠. 먼저 코끼리 코 화석부터 선보이겠습니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기부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방금 죽음을 지켜본 코끼리는 어느새 토막토막 잘린 화석이 되었다. 코 다음으로 상아, 그다음으로는 귀, 그리고 다리 화석이 나왔다. 코끼리 코와 상아 화석을 원하는 사람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야 했다. 이곳은 흡사 경매장 같았다. 

사람들이 원했던 부위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코끼리 발톱 화석에 기부금을 냈다. 크리스털 안에는 귀여운 발톱이 담겨 있었다. 코끼리 발톱을 본 건 처음이었다. 민화는 내가 산 화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돌아가는 길에 애드벌룬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봤다. 한없는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웃고 있는 분홍 코끼리였다.

<김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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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발화나 이미지가 (방아쇠를 당기듯이) 폭력의 경험, 특히 성폭력, 인종차별, 전쟁 등과 관련된 트라우마의 기억을 촉발하고 심리적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영미권에서 ‘트리거(방아쇠) 경고’(trigger warning)라 한다. 대략 ‘사전 경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의 대학에서는 학내에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자유주의적 옹호의 파생물인 ‘안전한 공간’은 혐오에 따른 차별, 공격적 언사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공간으로 학내를 정화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경험의 주관성과 논쟁적 사유의 정치성을 고려하면, 학내에서조차 안전이라는 이념이 쉽게 현실화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여러 교수자들이 강의 내용에 논쟁적 요소가 있을 수 있으며 그로써 불편이 초래될 수 있음을 강의계획서에 명시하거나 수업 중에 예고하는 ‘사전 경고’를 활용한다. ‘사전 경고’는 주관적 경험과 공적 담론의 필요성 사이에서 논의의 균형을 찾기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역으로 교실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실의 ‘불안전’은 대체 어디서 초래되는 것이며, ‘안전한’ 교실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안전’에 치중하는 교육은 학생들을 지적 유아상태, 정치적 진공상태에 머물게 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봉쇄하며 피해자의식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논쟁적 주제에 대한 접근에 신중한 태도는 필요하지만  누군가는 폭력에 대한 논쟁 자체를 일종의 폭력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곤혹스러운 사실은 이 문제를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현안 중 하나로 만든다. 

최근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성평등 수업을 실시한 도덕교사가 성비위를 저지른 것으로 여겨져 직위해제됐다는 소식은 교권, 책임, 교수법, 학생들의 정서와 연령별 수용능력 등에 대한 논란을 야기했다. ‘사전 경고’ 및 ‘안전한 공간’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대학 내의 논란을 중등교육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으나, 민감한 주제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과 그 방식에 대한 고찰이라는 점에서 두 상황은 공통점이 있다. 

해당 수업에서 교사는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상영했다. 이 영화는 여성이 경험하는 성불평등을 남성이 경험하는 것으로 뒤바꿔 낯설게 재연함으로써 일상화된 성불평등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학생의 민원에, 광주시교육청은 영화의 ‘선정적’ 영상과 충격적 대사 등이 부적절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도 교육청은 교사의 일부 발언의 부적절성을 문제 삼았으나, 어떤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문제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교육은 이뤄질 수 없다. 해당 수업에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이 과민하거나 편협했을 거라고 쉽게 단정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수의 학생들이 교사의 의도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이다. 다만 학생의 어려움을 감안하면서도,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가 엄연한 현실의 일부라는 사실과 그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감행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성적 수치심’을 주요 판단근거로 삼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법은 성폭력의 개념 자체를 문제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사항에 대해 이루어졌는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통념에 대한 문제제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의 심리적 장벽이 문제였는지, 교사가 실제로 성평등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비교육적 언사로 수업을 운용했는지를 구별하는 일은 중요하다. 교수법상의 난점을 성비위로 처벌하는 일이 생긴다면 성평등 교육의 가능성 자체를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객관화하는 노력, 사적 감정과 현실 사이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시도는 교육기관이 제공해야 하는 지적인 훈련의 핵심이다. 바로 그 점에 대해 교사, 교육기관, 감독기관, 사회가 함께 토론해야 한다. ‘안전한 공간’의 일차원적 유지는 자유로운 의사 교환과 사유의 확장을 저해하며,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방해하는 반지성주의를 부추길 뿐이다. 성, 젠더, 인종, 이주민, 계급 등 다양한 차원에서 차별이 공공연히 구조화된 우리 사회에서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정착하도록 교육하는 일은 계속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한다. 불편한 논쟁의 집요한 지속이 결국 우리 사회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본적 요건이라는 사실을 학생들 수준에 맞게 가르치는 일을 앞으로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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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우며 세상에 쉬운 일이 없음을 간절히 느낍니다. 김성태 의원도 아버지로서 마음고생이 많지 않았을까요. 딸은 취업은 고사하고 취업 준비도 잘 안된 듯합니다. 서류전형 탈락, 면접 최하위권 등의 성적을 보면 말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의원은 KT에 딸을 채용하도록 청탁했고, 그 결과 정규직 자리를 꿰찼습니다. 하지만 김성태 본인은 이를 검찰의 무리한 기소, 정치보복이라는 주장 등을 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최종 법적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죠. 문제는 김성태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입니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의 청렴, 양심, 공익 추구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책임이 단순히 도덕적인 것을 넘어 제도적, 정치적 근간임을 말해주는 것이죠. 공익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이고 사적일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개인이 더 이득을, 다른 누구는 손해를 보기는 합니다. 지역경제를 위해 도로를 건설해도 누구는 집값이 올라 이득을 챙기지만, 다른 누구는 소음과 먼지로 괴롭죠. 어떤 공공정책도 이런 양면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의가 중요합니다. 전체를 위했다는 대의와 명분이 없으면 어떤 정책도 효과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공익을, 대의를 추구한다는 대중의 신뢰는 민주사회 질서의 근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갖는 ‘정치적’ 책임이 그만큼 엄중한 것이죠.

김성태는 그 정치적 책임을 저버린 셈이 됐습니다. 드러난 정황이 심각한 만큼 자리에서 물러나고 법적 다툼을 하는 게 맞죠. 하지만 눈물이 나오고 “피를 토할”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비슷한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당장 KT 채용 의혹만 봐도 다른 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의심을 받았습니다. 강원랜드 비리도 판박이 꼴이었죠. 채용비리뿐만도 아닙니다. 특활비를 줄였다지만 국회 예산을 빼돌리거나 주변에 몰아준 사례도 수없이 많습니다. 주식을 가진 회사를 위한 법안을 발의, 재산을 불리기도 하죠. 그렇다고 할 일은 제대로 하나요? 전 국민 앞에서 폭력과 폭행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파업마저 일삼습니다. 그사이 사회 곳곳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법안은 빛을 못 봤습니다. 추가경정예산안도 제출된 지 100일이 되도록 버려져 있었죠.

반면 자기 목과 밥그릇 지키기에는 열심입니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저지 폭행 조사를 원천무효, 정치공세라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체포특권’을 악용해 경찰 수사를 피하는 셈이죠. 이런 식의 방탄국회는 수도 없지만 개선하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제 목에 방울 달기 싫은 겁니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국회는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면서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을 뺐죠. 김영란 전 대법관 본인이 반쪽 법안이라고 꼬집은 이유입니다. 이를 올해 정부가 다시 추진하면서 ‘국회의원’을 적용 대상으로 명시했지만, 통과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회를 보고 있으면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하는 데 너무 익숙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다들 하니 나도 한다. 그래서 한 것뿐인데, 내가 누군데 처벌은 말도 안된다. 모두 이러는 사이 국회의원 질은 하향평준화됩니다. 게다가 시급한 현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국회가 신뢰도가 가장 낮은 국가사회기관 1등(올해 1.8%), 2등(2018년 2.4%)을 다투는 게 당연하죠. 국회의 정당성이 약해지면서 민주체제의 근간도 흔들립니다. 이런 자들이 만든 법에 믿음이 갈 턱이 없고, 지키자니 억울하고 벌 받아도 억울합니다. 특단의 조치를 위한 시민들의 지혜와 힘을 급히 모아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돈 씀씀이도 줄이고 임기도 미국 하원처럼 2년으로 단축해야 합니다. 임기를 줄이는 게 당장 어려우면 4년에 한 번 있는 선거를 2년에 한 번씩, 의원 절반을 뽑는 것은 어떨까요. 공수처를 빨리 만들고 고위공직자들 죄는 일반인보다 더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민의를 듣고 법을 만드는 게, 거들먹거릴 일이 아닌 보통 업인 사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은 아닐 테지요.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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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일본 정부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 간 신뢰 훼손으로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당초 예상보다 강력한 대응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한·일관계 악화는 물론 한·미 간 냉기류도 예상된다. 


NSC 회의 결과 보고 받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옆 회의실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결정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있다. 보고 자리엔 이낙연 국무총리(맨 왼쪽)도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GSOMIA 파기를 결정한 데는 명분과 이유가 있다. 일본은 한국에 전략물자 수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면서 안보상의 문제를 들었다. 여기에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문제 삼으니 민감한 군사정보를 계속 공유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정보 교류의 양이 해마다 감소해 협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국내 여론도 GSOMIA 파기를 지지했다.


GSOMIA는 일본과 체결한 유일한 군사협정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크다. GSOMIA를 종료하는 것은 이 협정 체결을 주선한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은 대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단호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초래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번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일본 측의 태도에 전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먼저 경제도발을 한 일본이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GSOMIA 유지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21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은 요지부동이었다. 


일본이 한국의 GSOMIA 종료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예정대로라면 일본은 오는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일본이 한·일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 조치를 신중히 재고해야 한다. 또 일본은 한국의 선 조치만 요구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부도 이번 조치의 후과에 대비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미국과 충분히 소통했다며 GSOMIA 종료 후에도 한·미 간 군사분야 협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안보 불안이 야기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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