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고 장자연씨 강제추행 혐의로 10년 만에 기소된 전 조선일보 기자 조희천에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유는 ‘접대자리가 아니라 생일파티였고 참석자 중 권력이 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조희천이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며, 강제추행이 있었다면 분위기가 험악해졌을 텐데 1시간 이상 이어졌고, 종업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공개적인 장소였으며, 파티 참석자 등 모두 강제추행이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윤지오의 진술만으로 형사처벌할 정도로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따져보자.먼저 생일파티는 그 어떤 이유보다 평소 접대하고자 했던 사람을 불러 접대하기에 좋은 명분이다. 접대받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없다. 이 때문에 생일파티는 접..
10년 쓴 노트북을 바꿨다. 그동안 이렇게 오래 쓴 노트북은 처음이다. 그만큼 내가 사용을 잘했다는 건지, 아니면 제품의 내구성이 그만큼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10년이란 정이란 게 들어버릴 만한 세월이다. 내가 일용했던 모든 양식이 10여년에 걸쳐 내 오래된 냉장고를 거쳐갔던 것처럼 이 노트북에는 내가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머물렀다. 생각뿐만 아니라 잘 표현되지 않았던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노트북을 열어놓은 채 한 글자도 치지 못하고 스크린이 슬리핑 모드로 넘어가는 걸 보며 시간만 보냈던 때도 있다.노트북은 마지막 1, 2년 동안은 성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무거운 프로그램은 돌릴 수 없었고, 금방 뜨거워졌고, 때때로 팬 돌아가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마지막 몇 달은 자칫 방심했..
낭독회가 끝나고 사인회가 이어졌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데다 대화 위주의 행사도 아니어서 자리가 일찍 끝날 줄 알았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오디오 북 출판을 알리는 행사였다. 나는 후반부에 시 두 편만 읽으면 되는 찬조 출연자였다. 그런데 내 시집을 들고 온 독자들이 제법 있었다. ‘서울에 사는 나무’를 주제로 책을 펴낸 저자, 그 책을 음성으로 ‘새로 쓴’ 연극배우, 이를 기획한 출판사 관계자 등 행사 주역들에게 눈치가 보였다.행사장이 거의 다 비어갈 즈음, 중년여성 한 분이 내 시집을 내밀며 잠깐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긴한 얘깃거리가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일단 성함을 묻고 서명을 하는 사이, 옆에 앉은 여성분이 말문을 열었다. “이년 전 사랑하는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 슬픔을 선생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뜨겁다. 이미 과도할 정도의 논란이 있으니 여기에 가부간 의견을 더할 생각은 없다. 법률적 절차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임명이든 낙마든 결정될 것이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이 논란 끝에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이다. 심청이(조국 후보자를 심청에 비유하는 게 적절한지는 접어두고) 인당수에 뛰어들었다면 무언가 얻는 게 있어야 한다.대중이 분노한 지점은 뿌리 깊은 불공정일 것이다. 그동안 보수층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불공정에서 진보진영도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하고 더 분노하는 것일 수 있다. 불공정이 교육 영역에서 확인되면 대중의 분노와 절망은 더 커지게 된다. 교육은 그나마 흙수저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꿈을 꾸어볼 수 있는 디딤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냉정하게 보자면 이것..
잊을 만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싶은 상대방이 맞춤법은 물론이고 엉성한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하면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든다는 고백. 맞춤법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문장 가지고 사람 평가하지 말라며 토닥이는 댓글이 있는가 하면 사전 검색도 안 해보는 건 기본적으로 성의 부족이다, 글이란 게 교양의 문제인데 맞춤법도 자연스럽게 익힌 사람이 신뢰가 간다며 글이라곤 평소에 멀리한 사람인가 보다고 콕 짚어 폄하하는 댓글도 있다. 경험상, 출판을 하는 나로서는 글만큼 그 사람을 잘 알려주는 게 없다. 일상의 글쓰기,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 당연한 것이지만 잘할수록 매력적이다. 어쩌면 좋을까.규모가 큰 서점뿐 아니라 큐레이션이 잘된 개성 있는..
세상이 오직 ‘조국’ 한 단어다. 공직후보자 한 사람을 두고 1만개 넘는 기사와 실시간 포스팅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휴전 제안까지 나왔다. 존재하는 모든 전선이 힘 대 힘으로 충돌한다. 사퇴냐 버티기냐 차원을 넘어선 것 같다. 조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물러나더라도 사회 전체가 감당할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걱정이 앞선다. ‘조국이 당긴 방아쇠’가 무엇을, 어디를 정조준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심리적 참전을 택하기로 했다.‘조국 현상’은 과거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의혹의 결이 노골적 부패와 명백한 불법성을 띠고 있진 않다. 진보세력 상층부의 기득권이 유지되고 대물림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본질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세대 ‘리더들’의 ‘권력 ..
마치 한개의 돌복숭아가 익듯이 아무렇지 않게 열(熱)한 땅 기운 그 끝없이 더운 크고 따스한 가슴… 늘 사람이 지닌 엷게 열(熱)한 꿈으로 하여 새로운 비극(悲劇)을 빚지 말자. 자연(自然)처럼 믿을 수 있는 다만 한오리 인류(人類)의 체온(體溫)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에 의지하라. 의지하여 너그러이 살아 보아라. 박목월(1915~1978) 땅의 기운이 없으면 무엇도 위쪽으로 자라날 수 없다. 뜨거운 땅의 기운이 있어서 한 알의 돌복숭아도 계절에 맞춰 익는다. 시인은 하나의 성숙과 무르익음을 가능하게 하는 그 근거를 “크고 따스한 가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인류에게도 땅처럼 견고하고 큰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인류의 체온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이 있음을 잊지 않아서 늘 너그럽게 살자고 말한다.우리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언론과 야당의 의혹 제기가 2주째 이어지고 있다. 가족 명의의 사모펀드 약정, 웅동학원 채무변제 회피 논란, 딸을 둘러싼 대학·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장학금 수령, 논문 제1저자 등재 등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 해도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쏟아지는 의혹들을 접한 시민들은 상실감과 분노, 상대적 박탈감,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 등을 표출하고 있다. 조 후보자가 과거 누구보다 활발히 공동체와 약자를 위한 도덕적 담론을 펼쳐왔기 때문에 실망과 허탈감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조 후보자에 대한 숱한 의혹은 일방적 폭로만 있을 뿐, 실체 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 이 중에는 합리적인 의혹도 있지만, 사실보다 부풀려진 ‘가짜뉴스’도 뒤섞여 있을 것이다. 조 후보자 딸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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