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가 나던 해 세밑/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4·19 혁명은 5·16 군사쿠데타로 완성되지 못했고, 이 땅의 민주주의는 긴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1987년 정점을 이룬 민주화 운동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고,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첫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냈다. 그 결실들은 정권교체의 뿌리가 됐다. 1980년대 대학생에게는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이들이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경제는 호황이었고,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낙관적 경기 전망이 대세였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당시 30대를 사람들을 ‘386세대’라 불렀다. 지금은 50대가 됐고, 간단히 86세대라고 한다.

-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들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힘입어 사회 주도세력이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도덕성을 강조한 86세대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진보적 이념을 가진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지칭하는 ‘강남좌파’이면서 촌철살인의 비평과 현실참여로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기도 했다. 그가 했던 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그는 “20대 청년 조국은 부족하고 미흡했다”며 “그러나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법과 제도 개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도 했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소명을 다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는 점점 커졌다.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들어 취업은 힘들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비정규직에게 맡겨졌고 그들의 월급은 정규직에 훨씬 못 미친다. 계층 이동 사다리였던 교육은 이제 계급을 공고히 해주는 성벽이 됐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되면서 부동산과 교육에 탐닉했다. 정의와 평등, 공정을 얘기하던 그들은 대화에서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기득권이 된 그들은 돈과 인맥과 정보로 그들만의 ‘스카이 캐슬’을 만들었다. 2주 인턴 후 제1저자가 된 단국대 논문의 지도교수는 “유학에 도움을 주려 했다”고 밝혔다. 저조한 성적에도 6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은 이유는 “면학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기득권을 통한 기회의 대물림이다.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민주화 상징 세대는 이제 아재를 넘어 꼰대가 되었다. 편하게들 의견 좀 내보지라고 말문을 열곤 제멋대로 결론을 내버리는 사장, 무슨 일이든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부터 하는 부서장, 능력은 떨어지면서 평가받을 땐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노래하는 직장 선배가 바로 예전의 그들이다. ‘민주적’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교조적인 풍모를 감추지 못한다(김정훈·심나리·김향기 <386세대 유감>).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86세대에게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불평등의 세대> 저자인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책에서 질 좋은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 386세대가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구조의 실천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저버렸다고, 그래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지난 주말 청년들은 분노로 촛불을 들었다.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선’ 광경을 목도하면 ‘고개를 떨구는’ 게 당연하다. 조 후보자를 포장했던 ‘공정과 정의’가 되레 의혹의 출발점이었지만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조국만 문제냐’ ‘불법은 아니다’ ‘절차상 문제없다’는 물론 심지어 ‘보편적 기회’를 잡지 못한 흙수저들을 책망하는 언동조차 서슴지 않았다. 제발 부끄러움만이라도 느껴야 한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의 궤도를 한참 벗어나고 있다. 능력은 있는가. 지난 2분기 소득 상위·하위 20% 간 가처분소득 격차는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노동자는 여전히 일하다 죽고,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 부동산값은 대형 규제책에도 숨만 죽이고 언제 다시 천정부지로 뛸지 가늠할 수 없다. 촛불의 염원은 점점 늪으로 빠지고 있다. 

(※조국 논란을 보며 김광규 시인이 1979년 발표한 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칼럼의 내용은 시인의 생각과 무관하다.)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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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에 있는 중학교에 강연하러 갔을 때, 교장 선생님의 첫 마디는 “우리 학교 아이들 대개가 집안 형편이 안 좋습니다”였다. 사실 학교에 강연하러 가면 통과 의례처럼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가정형편이 어떠한지 말해준다. 친절한 사람은 학부모의 직업군과 거주 형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얼마나 되는지까지 알려준다. 그러니 강연할 때 고려하라는 것인데, 고작 두 시간 남짓 책 얘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면 그들은 반드시 보충 설명을 한다. “그러해서 아이들 강연 듣는 태도가 썩 좋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들이 경제 수준으로 아이들을 단박에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늘 씁쓸했다.

하여간 서울 변두리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친절한 부류여서 주변 아파트 시세까지 말하면서 덧붙였다. 버스 정류장으로 치면 대여섯 정류장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옆 동네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그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굳이 알려준 뒤 당부했다.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합니다.” 어른들이 잘 부탁할 필요 없이 아이들은 강연 내내 집중했고, 똘똘하게 질문도 잘했다.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해줄 때 맨 먼저 달려온 여학생은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인데, 수학을 잘 못해요. 다 틀렸죠.”

그는 수포자는 이생망이라고 했다. 이번 생은 망쳤다고 하는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고작 열세 해밖에 살지 않았지만, 현재가 초래할 미래를 뻔히 알고 있다. 수학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경제력이 뒷받침되고 정보력을 갖춘 부모가 없다면 꿈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노력의 기회조차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 수준이 미래를 규정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체념을 배웠다.

아마도 아이들은 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법을 쓰면서라도 명문대학교에 자식을 보내려고 아등바등한 이를 보면서 또 자조 섞인 말을 할 것이다. 저렇게 할 수 없다면 이번 생은 망한 거구나. 개혁을 말하는 이는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성공과 행복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면서 과연 뭘 개혁하는 것인가 되묻게 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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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의 도움을 받아 태양광발전에 참여하는 시민을 에너지농부라 부른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2013년 조합원 99명으로 시작한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이 이젠 조합원 400명을 바라본다.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태양광발전소 5기를 설치해 운영 중이고, 올해 안에 3기의 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발전소 용량은 큰 것은 100㎾ 수준이며, 작은 것은 50㎾ 안팎이니 5기를 합쳐야 330㎾ 규모이고, 3기를 추가해도 580㎾ 정도이지만 조합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햇빛의 도움을 받아 에너지농사를 짓고 있고, 이러한 움직임이 모여 서울을 태양의 도시로 만들고, 나아가 에너지 전환에 힘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운영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이 10여곳 있다. 전국적으로는 시민참여형 협동조합이 30곳에 이른다. 2011년 3월11일,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그 피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 끔찍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시작한 것이 에너지협동조합이고, 태양광발전이다. 비단 핵발전소로부터 나오는 방사능의 위험만이 아니라 기후변화의 위협과 심각한 미세먼지를 보면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서울시가 ‘태양의 도시 서울’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태양광발전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는 대한민국 에너지 소비량의 10% 가까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전력의 95%를 다른 지역에서부터 끌어오고 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력은 대부분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핵)발전소로부터 생산된다. 발전소 주변 지역과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수반한다. 서울에서 전력 자립률을 조금이라도 높인다면 다른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태양광인가? 재생 가능 에너지 중 한국에 가장 어울리는 에너지원이 태양광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조량은 미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태양광발전의 선두주자인 독일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이다. 또한 시민들 누구나 참여해 손쉽게 발전소를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정쟁화하는 일부 언론과 집단에서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태양광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교란시키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전자파 피해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화재 위험도 태양광발전과는 직접 연관성이 없다. 산림 훼손 등 일부 지역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지만, 산지태양광에 대한 가중치를 낮추고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태양광에 문제가 있다면, 독일이나 네덜란드, 덴마크와 같은 유럽 선진국들이 어떻게 태양광으로 전체 전력의 수십%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제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있다. 조금 더 비용을 내더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방사능 공포를 감당하면서 지낼 것인가? 선택은 우리들에게 달려 있고, 그 결과는 다음 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최승국 |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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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가 식인 풍습을 지닌 거인 괴물에게 포로로 잡혔다. 꼼짝없이 잡아먹힐 판이다.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는데 괴물이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물었다. 오디세우스는 본래 이름 대신 우데이스라 답했다. 우데이스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괴물이 술에 취해 잠자는 사이 오디세우스는 불에 달군 거대한 나무 꼬챙이로 괴물의 눈을 찔렀다. 도움을 청하려고 괴물이 소리 질렀다. “우데이스가 나를 찔렀다.” 하지만 다른 괴물은 긴박한 외침을 “아무도 나를 찌르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오디세우스가 나를 찔렀다”는 SOS 신호로 들리지만 “아무도 나를 찌르지 않았다”는 그저 술주정 같다. 오디세우스는 꾀를 써서 위험으로부터 빠져나왔다.

국립인 어떤 기관의 전시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전시물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앞으로 갔다가도 타인을 배려해 곧 뒤로 물러났고 감상을 나눌 때도 다른 이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소곤댔다. 매우 인기 있는 전시여서 관람객이 많았지만 번잡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의 있는 공간이었다. 단 한 명의 사람에 의해 밀도는 높았음에도 고요하기만 했던 그 아름다운 모순된 상황이 끝났다. 그 사람은 뒤에 관람객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진열장 앞을 한참 동안 점령했고 사진을 찍는다며 위아래 좌우로 종횡무진 오갔다. 그 사람이 다음 전시물로 건너가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관람의 평화를 회복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노라면 역주행하여 자신의 존재를 다시 전시했다. 모든 움직임엔 “나는 이래도 괜찮아”라는 가상의 말풍선이 따라다니는 듯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공적 공간에서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키는 상호작용의 기본원리는 그 사람과 무관했다. 그 사람은 공간을 거리낌 없이 넓게 썼고 한 번도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인 듯 큰 목소리로 게다가 쉬지 않고 말을 뱉었다. 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그 사람을 피했다. 냄새가 나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을 피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당신이 왜 피하는지 알 것 같다는 눈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다. 마지막 전시장에서 그 사람에게 관람 예절을 지켜달라는 당부이자 경고를 전해달라고 스태프에게 부탁하며 그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물었더니, VIP라고 답했다.

VIP는 이름이 아니다. 직함도 아니다. VIP는 이름과 직함을 숨길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는 호칭이다. 이름과 직함을 숨겨야 마땅한 경우가 있다. 중요한 공적 인물의 경우 공공장소에 등장할 때 이름과 직함이 숨겨져야 안전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을 경호상의 이유로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고 VIP라 부를 때가 있다. 자신을 우데이스로 부르게 했던 오디세우스의 행동을 긍정으로 평가하면 오디세우스는 꾀돌이지만 부정으로 평가하면 그는 술수 내지는 수작을 부렸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VIP라 부르는 것은 호칭으로 은폐와 엄폐를 수행해 신변보호를 하려는 일종의 꾀다.

의전 혹은 경호를 위한 꾀부리기 호칭으로 시작된 VIP가 맥락을 상실한 채 남발되기 시작하면 술수 내지는 수작으로 바뀐다. 백화점에서 일정한 기준 이상의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을 VIP라 부른다. 소비의 크기로 사람을 분류하고 특정한 사람에게 특권을 주는 백화점의 처사에 시니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만 백화점의 사람 분류 방식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비록 더 많은 물건을 팔려는 술수로 VIP라는 호칭을 남발해도, 백화점은 사기업이 운영하는 영업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적 공간이라면, 국립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공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왕립, 즉 로열에는 특권과 시혜의 의미가 들어가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민주공화국인 한국에 왕립 기관은 없다. 한국에서 로열은 한 호텔(로얄)의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국립은 다르다. 국립의 기반이 되는 민족 혹은 국민은 어떤 차별도 용납할 수 없는 수평의 개념이다.

VIP는 본래 매우 중요한 사람, 즉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식 호칭이다. 냄새가 나지 않음에도 모두가 피했던 그 사람, 스스로 VIP라 생각하는 사람은 국립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람(very ignorant person)이자 공적 공간에서 적절한 행동 양식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very impossible person)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적어도 국립 기관 안에선 우리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다. 공공 공간에서 자신만의 권력과 특권을 전시했던 그 사람은 자신을 VIP라는 호칭도 모자란 VIP 중의 VIP, 즉 VVIP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VVIP라고 착각하고 있는 그 사람의 행동은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우 VIIP스러웠다. VIIP는 그 사람에게 적합한 아주 특별한 호칭인데, 매우 무식하고 구제불능인 사람(very ignorant and impossible person)이라는 뜻이다. VIIP를 한국어로 실감나게 옮기면 진상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 할 수 있다. 나는 그날 진상을 만났다.

<노명우 |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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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왔다. 예부터 추석에는 뜨거운 여름 동안 농부가 땀 흘려 지은 햇곡식과 과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가족·친지들과 송편을 빚으며 정을 나누어왔다. 3000만~4000만명이 움직이는 ‘민족 대이동’ 기간의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가득 안고 고향을 찾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에게 추석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추석 풍경도 변하고 있다. 2017년 농촌경제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71.2%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이고, 간편하게 구색만 맞추겠다는 답변도 35%나 차지했다. 핵가족화, 1~2인 가구 증가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이 추석에 많이 소비되기를 기대했던 농업인들의 마음에는 진한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파인애플·망고 같은 수입과일을 차례상에 올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조상님께 맛있는 음식을 올리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만, 명절 차례상만큼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소신이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로 장비는 18.2%, 소재는 50.3% 수준인 낮은 국산화율 때문에 반도체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우리 농업도 마찬가지다. 소고기 자급률이 36.3%이고, 곡물 자급률은 23%밖에 되지 않는 만큼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우리 농축산물의 소비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추석 선물은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표시이며, 보내는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최근에는 가성비에 더해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가 높은 소비, 즉 ‘가심비’가 높은 소비가 대세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땅에서 우리 농업인이 키워 안전하고 신선한 국산 농축산물은 주고받는 사람 모두가 만족하는 최고의 선물이라 자신한다.

농협은 추석을 맞아 전국 2200여개 하나로마트에서 사과, 배, 한우 등 실속형에서 명품 농축산물까지 다양한 농축산물 선물세트를 준비했다. 전국 100여곳에 직거래장터를 개설하여 소비자들이 착한 가격에 우리 농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게 돕고 있으며, 농식품부와 함께 사과, 배, 사과·배 혼합 등 3종류의 ‘과일 알뜰 선물세트’ 10만개도 공급할 예정이다. 우리 농축산물을 주원료로 농업인이 직접 만든 한과·참기름·장류 등 선물세트도 3년째 선보일 계획이다. 이런 농업인 생산기업 선물세트는 지역단위로 예선과 본선을 거쳐 엄선된 상품으로 선물하는 분의 품격을 높여주고 받는 분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올해 300만 농업인은 양파·마늘에 이어 무·배추까지 대풍을 일궈냈지만, 풍년의 역설로 인한 가격 하락으로 상심이 크다. 이럴 때 추석 선물로 우리 농식품을 애용한다면 농업인에게 힘을 주고 소득 증대에도 보탬이 되며, 식량안보에도 기여하는 1석3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올 추석도 우리 농식품을 한아름 안고 방문하는 사람들로 고향이 북적이면 좋겠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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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과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실망스럽다.” 2013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미국의 논평이다. ‘실망’은 불만을 나타내는 4가지 외교 표현 가운데 두번째로 수위가 높다. ‘규탄’보다 낮지만 ‘유감’이나 ‘우려’보다 높다. 그래서 동맹국에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결정하자 “강한 우려와 실망”이라고 밝혔다. 심지어는 “한국의 조치가 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입장문도 냈다. 주한미군 문제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겨냥한 압박 공세다. 이 정도로 GSOMIA가 미국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지 의문이 든다.

미국은 GSOMIA 종료로 한·미·일 3각 안보 공조의 균열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압박 대상이 잘못됐다. 한·일 간 역사문제를 안보문제, 경제문제로 끌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이 도발했을 때는 “양국이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 선제공격한 일본은 내버려두고 공격당한 한국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애초 미국은 일본을 압박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실망스러울지 몰라도 한국은 미국이 실망스럽다.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비아리츠 _ AFP연합뉴스

더구나 미국은 이번 사태의 거의 전 과정을 한국과 공유했다고 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따르면 “하우스(청와대)와 하우스(백악관) 간 실시간 소통했다”. 그러니 한국이 고위급 특사를 2차례 일본에 파견하고, 국장급·장관급 등 각급 실무회담도 여러번 제의했지만 일본이 모두 문전박대한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대화의 손길을 내밀고, 사전에 이런 내용을 통보까지 했지만 모욕적 무시만 당한 것도 목도했을 터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한국은 최선을 다했고, 주권국가로서 절제 있는 대응을 했다. 김 차장은 “GSOMIA 연장을 희망해온 미국이 실망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언제까지 미국의 심기를 고려해 고분고분 처신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미국이 GSOMIA를 한·미·일 3각 공조의 중요한 고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는 GSOMIA가 애물단지나 다름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안보적 효용성은 낮으면서 한·중관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GSOMIA를 통한 한·일 간 군사정보 교환은 매우 적다. 상황은 분명하다. 동맹으로서 이익의 공통분모를 확대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우경화를 묵인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냉전 이후 미국은 오랫동안 한·일 갈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공산권의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공조 필요성이 약화된 것이다. 한국의 국력신장으로 의존적 한·일관계가 수평적 경쟁관계로 전환되면서 갈등 조정이 한층 힘들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한·일 역사 및 영토 갈등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을 다시 무대로 불러낸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의 굴기에 맞서기 위한 한·미·일 공조의 절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돌아온 조정자’ 미국의 일본 편들기는 여전했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동북아 정세의 새로운 갈등요소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GSOMIA 사태가 그것을 입증한다. 한국이 종료를 결정했지만 사실상 먼저 걷어찬 것은 일본이다.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낙인찍고,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하는 국가와 군사정보를 교류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일본은 두 달이 다 되도록 안보 불신 주장을 입증하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일탈은 미국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일본 편들기는 또한 우경화를 부추기고 주변국을 자극하게 된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성찰해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우리는 한국이 한·일관계를 정확히 올바른 곳으로 되돌리길 희망한다”고 요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에게 묻는다. 그것은 일본에 할 말 아닌가. 또한 미국 스스로에게 할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두고두고 미국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오늘부터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의 시행에 들어간다. GSOMIA 종료 조치 발효는 3개월 뒤다. 상황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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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전 중에 생소한 경고등이 들어와서 당황한 일이 있다. 찾아보니 ‘D.P.F(Diesel Particulate Filter)’ 가동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였다. 디젤 엔진에서는 입자상 물질이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환경보호를 위해 D.P.F가 걸러낸 물질을 차량 내부에서 높은 온도의 열로 태워 처리함으로써 외부로 배출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 이 기능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일정 속도, 일정 시간 이상 달려 줘야 한다. 그런데 장거리 주행을 하지 않고 단거리 이동에만 반복적으로 차량을 이용하다 보니 배출 물질이 처리되지 못하고 쌓여버린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사실을 알고도 바쁜 일상 때문에 깜박거리는 경고등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몇 차례 짧은 거리를 오가는 운전을 하다가 문득, 이 경고등이 쳇바퀴 돌 듯 일상에 갇혀버린 삶을 향한 신호로 느껴졌다. 반복되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이런저런 찌꺼기들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는데 그 위에 다시 또 일상을 얹어 가는 삶. 문제는 인식도 감각도 거기에 고정되어 간다는 점이다.

18세기 여행가로 유명한 정란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전국 각지를 두루 다 돌아보고 나서 이제 제주 한라산을 유람하겠다고 하니, 듣는 이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일상은 팽개친 채 여행만 다니더니 급기야 당시로선 위험천만한 제주도 뱃길에 오르겠다니 상식 밖의 일이긴 하다. 이용휴는 그를 전송하는 글에서 도리어 과거시험 준비나 각종 공무 서류에 빠져 사는 이들을 딱하게 여기며 말했다. “수백 년 후에 과연 지금 비웃는 자의 이름이 남을까, 비웃음을 당한 자의 이름이 남을까?”

일상을 벗어나 떠나는 여행이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은 새로운 인식과 감각이다. 인문학이나 종교에 효용이 있다면, 그 역시 고정된 인식과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데 있을 것이다. 주어진 하나의 시선만으로 일상의 이해관계와 선행관습에 갇혀 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몸을 위한 스트레칭의 기본은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안 쓰던 방식으로 쓰는 데에 있다. 그럴 때 몸이 새롭게 깨어나면서 조화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무엇에 갇혀 사는지 돌아보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식, 다른 감각을 경험해 보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볼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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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다른 이름은 ‘경해(鯨海)’다. ‘고래 바다’라는 뜻이다. 우리 옛 문헌에는 동해를 ‘경해’로 표기한 사례가 적지 않다. 고래잡이도 성행해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에 포경 기록은 끊이지 않는다. 동해에 고래가 많았다는 사실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래 바다’를 처음 서양에 알린 이는 네덜란드인 하멜이다. <하멜표류기>를 쓴 그는 다른 저서 <조선왕국기>에 “동해에서는 매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작살이 꽂힌 고래가 많이 발견된다”고 썼다. 이후 유럽 포경업자들은 동해를 ‘고래 어장’으로 기억했다.

유럽인에 의한 동해 고래잡이는 19세기 중반에 시작됐다. 1846년 10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머나먼 동해로 출항했다. 오호츠크해와 도쿄만에서 포경활동을 마친 리앙쿠르는 동해로 가던 중 지도에 없는 암초를 발견했다. 이 배의 선장 로페즈는 뒷날 프랑스 해군성에 항해보고서를 올렸다. “1월27일 나는 다줄레(울릉도)가 북동 2분의1 북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때 동쪽에 큰 암석 하나가 있었다. 이 암석은 어떤 지도와 책자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위치는 북위 37도2분, 동경 129도26분이었다.” 리앙쿠르호는 1847년 1월27일 서양 최초로 독도를 ‘발견’했다. 1851년 <프랑스 수로지>는 이 섬을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 ‘리앙쿠르 암(암초)’이라고 공식표기했다(정인철, ‘프랑스포경선 리앙쿠르호의 독도발견에 관한 연구’).

‘리앙쿠르 암초.’ 서양에서 독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세계인들이 애용하는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 ‘구글맵스’에는 독도가 대부분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로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국 28개국 가운데 ‘독도’ 표기는 한국뿐이었다. 일본은 ‘다케시마’로 썼다. 미국과 유럽은 한·일 독도 영유권 분쟁을 의식해 중립용어인 ‘리앙쿠르’를 쓴다고 한다. 이는 제국주의 발상이자 오리엔탈리즘이다. 독도는 역사적 연원이 있고, 현재도 실효지배하고 있는 우리 고유영토다. 일본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독도(Dokdo)’ 명칭의 국제화가 필요하다. 독도에 대한 정명(正名)은 군사방어훈련보다 더 독도를 지키는 일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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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사회적 대화로 연금개혁안을 만들어보자며 6개월 시한으로 발족한 후 기간을 연장해 약 10개월을 운영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경사노위 본회의에 참여해 법적으로는 자문기구이지만 의결기구로 생각해 결정을 존중하겠다며 경사노위에 힘을 실어주었다. 과연 연금특위는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에 걸맞게 활동했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다. 사회적 대화를 벌이자며 연금특위가 발족하자 정작 사회에서는 연금개혁 논의가 사라졌다. 연금특위가 가동되면 다양한 의견과 쟁점으로 토론이 뜨거워질 줄 알았는데 거꾸로였다. 연금특위 관련 언론 기사도 그리 많지 않았다. 보도자료도 발족 때와 기간 연장을 알리는 소식으로 두 번 나왔을 뿐이다. 논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홈페이지를 찾아가 요약 회의록을 읽어야 했다.

연금특위 발족 보도자료에는 “계층(청년, 자영업 등) 및 지역별 간담회, 전문가 워크숍,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 중에서 실행된 것은 출범 직후 개최된 전문가 워크숍 1회가 전부이다. 여러 차례 회의를 열었다지만 여기서 제기된 논점을 공론화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찾아볼 수 없다.

김영순 교수가 쓴 <코끼리 쉽게 옮기기>는 코끼리처럼 무거운 연금개혁을 성사시킨 영국의 경험을 소개한다. 영국은 이해관계자 집단들의 의견 접수와 협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전 국민연금 토론’, 공론조사 방식의 여론조사 등 전면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침내 코끼리를 옮길 수 있었다. 이 책이 사회적 대화의 성공 요인으로 강조하는 것은 연금실태를 명확하게 담은 정보의 제공, 그리고 이를 토대로 진행된 사회적 토론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기존의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연금 문제를 숙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지게 되었다는 평가이다.

우리는 어떤가?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연금특위가 얼마나 응답하며 사회적 토론을 이끌었는지 의문이다. 핵심 논점들을 정리하고 상반된 주장들을 비교 평가하면서 알리는 활동이 있었는가? 연금특위 덕분에 시민들은 연금개혁의 과제와 해법을 공감하게 되었는가?

연금특위가 여러 대표성을 지닌 위원들로 구성되었으니 내부 토론 자체가 사회적 대화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발족 보도자료도 “국민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노동계, 사용자, 비사업장가입자, 청년, 공익을 대표하는 몫으로 13명의 위원을 선정했다.

하지만 연금논의 지형을 아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운 구성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목표로 활동하는 특정 연대기구에 속한 단체 대표와 여기서 직책을 맡고 있는 교수를 합치면 총 8명에 달한다. 직역, 세대, 공익 영역의 수많은 단체와 전문가 중에서 유독 이 연대기구에 속한 사람들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각 위원들의 활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개별적으로 나름 소임을 지녔기에 제안에 응했을 것이고, 위원회에서 열심히 토론했음은 회의록에서 확인된다. 문제는 전체 위원 구성의 구도이다. 사회적 대화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을 포괄하도록 균형을 갖추었느냐는 질문이다. 이는 연금특위에서 도출된 결과의 정당성에 영향을 주고, 향후 사회적 대화의 신뢰 자체를 흔들 수 있기에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특위에 8월 말까지 최종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다수안과 소수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까지 덧붙인 걸 보면 결과를 이미 아는 듯하다. 정부는 다수안이 만들어진 걸 사회적 대화의 성과로 홍보하며 국회로 공을 넘길 것이다. 이 어려운 숙제를 6개월로 마무리하려던 애초 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순이다.

현재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당연히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동시장 중심권에 있는 사람일수록 효과가 크다. 노동시장 주변이나 밖에 있는 계층에게는 기초연금 인상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아마도 미래 세대가 연금특위에 앉아 있었더라면 왜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정을 방치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과연 연금특위는 이 주장들을 균형있게 반영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연금개혁은 현재 세대 내부의 다양한 의견, 그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처지까지 감안하는 사회적, 역사적 대화를 요구한다. 이번 연금특위의 경험을 꼼꼼히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진짜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 말이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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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가족들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권력형 비리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사건을 배당하면서, 부산대의학전문대학원·고려대·웅동학원·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사안으로 자료 확보가 늦어져 사실관계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수사 조기착수 배경을 설명했다. 조 후보자 측에 제기된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계층 간 분열·반목을 낳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신속한 수사 착수는 올바른 결정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오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적선동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고려대·서울대·부산대·단국대 등 대학과 가족이 투자한 펀드를 운용하는 코링크PE 사무실, 가족이 운영해온 학교법인 웅동학원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조 후보자 측에 대한 고소·고발은 부동산실명법 위반·제3자 뇌물·업무방해·직권남용·명예훼손 등 혐의로 모두 10여건이 제기된 상태다. 후보자 딸의 의학논문 저자 등재와 이를 앞세운 고려대 입학, 서울대환경대학원·부산대의전원 장학금 수령과정 등에 대한 의혹은 청년세대에게 좌절과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뒤틀린 계급의식을 소환, 확산시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모펀드 투자와 조 후보자 일가가 운영하는 웅동학원 사금고화 의혹 등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3채 매입과정과 자금 출처, 위장매매 등 의혹도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검찰조직을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검찰의 강제수사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수사 착수 배경을 놓고 ‘정치적 판단 없는 수사’라는 목소리와 ‘조국 구하기 아니냐’는 의심이 동시에 제기된다. 검찰수사를 빙자해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해소시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한다는 것이다. 과거 검찰이 권력형 비리 등을 수사하면서 진실에 눈감은 전례도 이런 의심을 키운다. ‘검찰 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라는 의견과 ‘검찰 독립의 승부수’라는 주장도 오간다. 한 점 의혹도 없이 진실을 규명한다는 검찰의 자세가 요구된다.

조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무엇 하나 가볍게 볼 게 없고, ‘상식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사실로 미뤄 제기된 혐의에 대한 위법 가능성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검찰은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그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 분노를 잠재우고, 검찰 스스로도 ‘정권의 꼭두각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휘둘리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지금이야말로 검찰이 대통령의 주문을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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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27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과 관련해 “GSOMIA가 종료하는 11월23일까지 약 3개월의 기간이 남아 있다”면서 “그 기간에 타개책을 찾아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고, 우리는 GSOMIA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저는 일본 정부가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 한·일 양국 정부가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전날에도 국회 에서 같은 취지의 제안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리의 발언은 정부의 종료선언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GSOMIA가 유지되고 있는 3개월을 한·일관계의 새로운 협상시한으로 설정하자는 의미로 보인다. 물론 최근 한·일관계의 양상으로 본다면 3개월이란 기간이 길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관계를 악화시키는 조치를 양측이 자제하면서 문제를 풀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면 3개월 내에 출구를 찾아내는 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간 내에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10월22일) 등 계기를 염두에 두면서 포괄적인 해법을 마련하자는 이 총리의 제안은 유연하고도 현실적이다. 일본 정부가 이 제안을 진중히 검토할 것을 당부한다. 이 총리의 발언은 GSOMIA 종료선언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국내 보수세력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예정대로 28일부터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교갈등을 이유로 민간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는 등 자유무역 정신을 훼손하는 일본의 부당한 조처를 다시 한번 규탄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신뢰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GSOMIA 종료에 대해서도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대응”이라고 비판한 아베 신조 총리의 태도도 유감천만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로 봐서는 이 총리의 제안이 먹혀들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GSOMIA 종료선언과 동해 영토수호훈련 실시 등 강수를 잇따라 둔 만큼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양국은 사태를 추가로 악화시킬 우려가 있는 조치를 당분간 삼가는 ‘현상동결’의 태도로 대화 재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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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7일 발표한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전수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 응답이 3년째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 폭력보다 언어폭력이나 집단따돌림 등 정서적 피해가 늘어났다고 한다. 또 이날 보건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2018년 아동 종합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한국 아동 청소년의 평균 행복 수준은 대체로 높아졌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각기 다른 기관의 조사지만 두 가지는 같은 토양, 같은 뿌리에서 배태된 우울한 지표다. 

학교폭력 조사에서는 초4~고3 전체 재학생 중 1.6%에 해당하는 약 6만명이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3%(약 5만명), 재작년 0.9%(약 3만7000명)에 이어 연속 증가 추세를 보여 우려스럽다. 초등학교에서의 피해 응답 비율이 3.6%로 가장 높았고, 학생 1000명당 응답 건수로는 언어폭력이 8.1건, 집단따돌림이 5.3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집단따돌림은 피해유형에서 전체의 23.2%를 차지해 1년 새 6.0%포인트나 급증했다. 집단따돌림은 다른 폭력으로 쉬이 옮겨가고, 드러나지 않는 폭력인 만큼 더욱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18년 아동 종합실태조사’는 9~17세 아동과 중·고등학생 2219명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측정했는데,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6.57점으로 2013년 조사 때(6.10점)보다 약간 높아졌다. 그러나 한국은 ‘2015년 OECD 웰빙지수’에서 27개 회원국 아동들이 매긴 평균 점수(7.6점)보다 1점가량 낮아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조사 대상인 7개 영역(건강·성취·관계·안전·동네·생활 수준·미래 안정성) 중 특히 현재 생활 수준과 미래 안정성에서 만족도가 낮았다. 이 두 가지 항목에서 빈곤가정과 비(非)빈곤가정 아동 간의 점수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같은 날 발표된 두 가지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정서적 폭력이 늘고 있고, 삶의 만족도를 최하위로 평가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특히 빈곤·비빈곤 가정의 만족도 격차는 사회 전체와 소름끼치게 닮았다. 학교폭력과 낮은 행복도의 해법을 학교와 아이들 안에서만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미래도 달라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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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 살았던 적이 있다. 비유나 상징으로서의 개천이 아니라 진짜 개천이다. 동네 야산과 이어지는 내였다. 그 내를 건너는 높은 다리가 있었고, 내와 다리 사이에 편편하고 넓은 터가 있었다. 그 터에 지어진 집이었다. 다리 옆에 놓인 제법 긴 계단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어서 대문도 없었다. 우리는 그 집을 ‘다리 밑 집’이라고 불렀다. 계단 바로 아래 있는 주인집 뒤로 객차처럼 꼬리를 물고 다닥다닥 붙은 셋방이 세 개거나 네 개였던 집. 마당 끝에 서면 개천이 보였는데, 물이 흐르고 있던 것도 같고, 그때 이미 마른 천이었던 것도 같다. 쓰다 만 소설 어딘가에 가까스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 설명도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 살 때 너무 어렸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은 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진 날,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을 둥그런 등으로 받아내며 마당 한가운데 주저앉아 울던 엄마의 모습, 옆집 노부부가 내놓은 상에 차린 음식을 집어먹었다가 몹시 써서 퉤퉤 침을 뱉었는데 다음날 그 방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 그 이후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 전날 몰래 집어먹은 쓰디쓴 음식 맛이 혀끝에 올라오던 기억 같은 것들. 좋은 기억도 있다. 여름밤이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리 위에 올라와 돗자리를 펴고 모여 앉았다. 주위에는 다른 집이 거의 없어 온통 캄캄했는데,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다가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가 쏟아지는 별 사이에서 북두칠성을 찾아줬다. 그게 엄마가 아는 유일한 별자리였다.

옆방에는 나와 같은 반인 여자아이가 살았다. 마르고 까맣고 냄새 나고 공부도 못해서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던 애였다. 2학년 때였나. 구구단을 먼저 외운 친구들이 구구단을 미처 못 외운 친구들을 한 명씩 맡아 책임지고 가르쳐주라는 담임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 모두가 싫다고 피하는 그 아이와 자처해서 짝꿍이 됐다. 평소에는 그 아이와 같은 집에 산다는 게 알려지는 것도 싫어 아는 척도 안 했는데, 그 순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사실은 왜 그랬는지 안다. 그건 그냥 한마디로 잘난 척이었다. 그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속담이 “개천에서 용 난다”였다. 나는 내가 용이 될 줄 알았다. 아무리 봐도 그 집에서 나 말고는 용이 될 사람이 없었다. 나는 개천에 살지만 우리 반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심지어 선하기까지 하다는 그런 ‘도덕적 우월감’. 그러나 내가 그걸 깨닫게 된 건 그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걸 실패하고 난 후였다. 그 아이는 끝내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나는 그 아이의 냄새에서 놓여나지 못했고, 끝나지 않은 구원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내 행동이, 내 마음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 바탕에 놓인 오만과 치기를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구도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나는 개천에 살지 않는다. 용이 되어서 나오지는 못했지만, 용이 못 된 것도 아닌 것 같다. 용이, 뭐 사실 별거인가 싶기도 하다. 이만큼 사는 내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나온 날을 생각하면 대견하다. 

지난여름 써야 할 글이 있어 서울의 오래된 골목을 두루 훑고 다녀야 했다. 나를 골목으로 안내한 이는 그 좁고 투박한 삶의 증표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그 길에서 반사적으로 쪽문 안쪽에 있는 햇빛 들지 않는 방과 곰팡이 가득한 벽과 찢어진 벽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나는 그 길이 사라지기를, 그 삶들이 그 골목을 부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다.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살아온 자리도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다시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가 살던 개천은 오래전에 복개되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는 그 사실이 가끔 다행스럽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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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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