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요즘 화제다. 책 곳곳에서는 소위 ‘꼰대질’을 하는 기성세대와 자신을 ‘호갱’으로 대하는 기업을 외면하는 청년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사고방식, 행동, 양태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간단, 재미, 정직이라는 키워드다.

우리 연구소의 20대 연구원도 비슷하다. 관심 없는 내용은 읽지 않고, 3줄 이상의 댓글은 읽지 않는다. SNS에서 큰 이모티콘은 싫어한다. 스마트폰 데이터 비용이 아까운지라 고용량 사진은 사절한다. TV는 보고 싶은 장면만 찾아서 본다. 일상의 대화에서 ‘월급 루팡’(월루)과 같은 알아듣기 힘든 줄임말도 자주 사용한다. 그렇다고 1990년대 청년들이 어설프고 맥락이 없진 않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청년들은 우리 사회가 해석해준 대로 살아야 하는 삶을 당당히 거부한다.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청년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더 많은 변화, 더 넓은 참여,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는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청년시민회의는 2017년 시작되어 3년째다. 올해는 시장 직속의 ‘청년청’과 함께 약 500억원의 청년자율예산제를 논의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청년시민회의는 지난 6개월간 청년 1000명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자기 목소리를 내온 공간이다. 20대 초반부터 직장인까지 매우 다양한 청년들은 더 나은 변화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학생(193명), 회사원(168명), 청년활동가(97명), 구직 청년(89명), 프리랜서(63명) 등 매우 다양하다. 1000명이나 되는 청년들은 왜, 어떤 이유로 한자리에 모였을까. 학교 졸업 후 대기업 취업을 당연시하거나, 공무원시험 준비가 전부인 것에 대한 거부일지도 모른다.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의 욕구인 것 같다. 아무리 요구해도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섭섭함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학교를 벗어난 청년들에게 자기증명만을 요구했을 뿐, 사회 가치에 대한 목소리를 낼 공간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청년들의 진지함은 1970년생인 내게는 충격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자기 시간을 내면서까지 각자도생의 시대에 그들의 언어와 목소리로 청년정책을 만들고 있었다. 시민으로서 평등권을 보장하는 작은 참여를 요구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함께 소통하는 길입니다!”라는 무박2일의 워크숍에서 눈에 띈 문구는 청년 감수성을 가늠케 한다.

도시주거, 건강, 교육, 복지안전망, 일자리경제, 민주주의, 평등다양성 등 30여개 분과로 나뉘어 6개월간 청년정책을 만들었다. 일반(45개), 특별기획(9개), 자치구(42개)까지 총 96개 정책이 제안되었다. 프리랜서 안전망부터 안전한 공간, 은둔형 외톨이, 쫓겨나지 않는 도시, 일터 내 민주주의, 중소기업 복리후생 계좌제까지 현실적 정책들이다. 지난 3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분과회의, 소주제회의, 부서 간담회까지 치열한 고민을 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사업은 특별기획과 자치구 영역이다. 2개 이상의 영역에 걸쳐 추진돼야 할 특별정책과 지역문제 해결 자치구형 정책을 위해 제안된 것들이다. 특히 서울시 청년자치예산 중 자치구에 5분의 1이 할애됐다. 16곳에 77억원이 배정됐다. 소소한 식탁, 재능 공유 마켓, 마음건강, 1인 가구 기반 조성, 미래직업 양성 등 동네 참여예산의 실현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자치구라는 지역을 연결하려는 청년들의 세밀함을 엿볼 수 있다. ‘정책의 변화’와 ‘시선의 확대’를 느낄 수 있다.

청년시민회의를 시작했던 청년들은 ‘1000개의 필요, 500개의 아이디어, 100개의 정책’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경험도, 언어도, 풍경도 낯설었던 행정조직에서 그들은 어떤 상상력을 펼쳤을까. 8월31일 보편적 권리로서 지방정부의 청년정책을 확인하고 싶다. 공정성이 화두인 요즘, 불평등과 격차해소의 중요성이 논의되면 좋겠다. 이제 우리도 핀란드(주택수당, 마음건강), 오스트리아(교육훈련), 프랑스(자기활동계좌제), 영국(사회자본)의 정책들이 청년들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도입되길 기대해 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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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맡은 자리와 위치에서 소임과 본분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자리’와 ‘위치’라는 것은 일단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사유화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개인이 일군 기업에서 사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 기업이 1인 기업이 아닌 한 그 사장 자리도 기업 내에서 공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보다는 많은 권한을 갖게 되지만 그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사장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사장 자리에 있다고 해서 기업을 자기 마음대로 막 할 수 없다. 교수라는 자리도 대학 내에서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회사에서 과장, 부장, 임원 등의 자리도 모두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여기서 공적인 성격이 의미하는 바는 그 자리는 그 자리가 부여된 제도나 기관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교수는 대학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고, 사장은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며, 부장, 임원 등도 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다. 

너무나 분명하게도 공무원이라는 자리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건 ‘늘공(늘 공무원)’이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그 자리와 위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적인 이익이나 사적인 욕구를 충족하려 하면 안된다. 이런 경우 공사구별이 안된다고 표현한다. 교수가 교수라는 자리를 이용하여 학생들을 사적으로 부리고, 그 자리를 징검다리로 하여 권력이나 재물을 추구하면 학교라는 곳이 원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교수는 교수의 원래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 자리이다. 즉 연구하고 교육하는 자리이다. 본인의 연구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어 회사나 국가의 자문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래 교수의 기능 외적인 부의 영역이지 주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이 주의 영역이 되면 컨설팅 회사나 기업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공무원으로 빨리 자리를 옮기는 것이 학교를 망치지 않는 길이다. 진정한 학문의 발전은 정체되고, 불쌍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내팽개쳐진다. 기업의 과장, 부장, 임원 등의 자리도 각기 맡은 바 소임과 기능이 있다. 그 자리를 이용해 사적인 영리를 기업 안에서 추구하거나, 부하 직원을 회사의 일과 관련이 없는 일로 부리고 괴롭히면, 회사에 해를 끼친다. 회사의 배임과 횡령이 강력하게 처벌되는 이유도, 상사의 부하 직원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처벌되는 이유도 모두 자리가 사적으로 이용되어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정확한 사실을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이 본분이지만, 기자라는 자리를 이용하여 사적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면 이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왜곡된 보도나 선동적인 보도를 통하여 몇몇 사람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국가와 사회라는 공간의 정보 유통이 혼탁하고 망가져 사회에 심한 해를 끼치게 된다. 국가 공무원이 자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영달과 재물을 추구하면, 공공성이 파괴되어 국가의 기능이 왜곡되고, 심한 경우에는 나라가 흔들린다. 많은 저개발 국가의 부패한 독재정권이 바로 국가의 공적 자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권력과 욕망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과 2017년의 촛불혁명은 바로 이러한 공사 구별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에 공공성을 찾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공공성 회복, 즉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바로 촛불정신이었다. 정권이 아니라 이권을 잡는 정치세력, 국가를 사랑방으로 만드는 정치세력,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총수들이 존재하는 나라, 공적 자리로 갑질하는 기득권이 활개치는 나라가 아니라 각기 자리에서 맡은 바 공적인 소임을 다하는 그런 전문적이고,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리라는 권력을 획득하여 사유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리를 통해 제대로 일을 하려는 것이 목적인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가? 공적 영역의 가장 큰 그릇인 국가에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맡은 바 소임과 책무를 다해야 할 큰 짐을 떠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가지면 사회는 혼돈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국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아무리 우리 편이라도 공공의식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모자라면 중요한 곳으로 가면 안된다. 나라가 망가지면 결국 우리 편도 망가진다.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공공의식과 전문성, 그리고 국가가 지향해야 할 공공성의 기준은 이전 정부와의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치를 놓고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지금 공공성의 회복을 외친 촛불마저도 사유화하려는 세력이 보인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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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정치개혁인 선거제 개혁 작업이 큰 분수령을 넘어섰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활동 종료를 이틀 앞둔 29일 전체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 4월3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합의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지 121일 만에 소관 위원회 심사를 마무리하고 법사위로 넘겨지게 됐다. 정개특위 고비마다 각종 지연술을 동원해 시간만 끌어온 한국당이 “날치기”라며 반발하는 것은 공허하다. 정개특위 종료 시한까지 내몰린 마당에 여야 4당만의 표결 처리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내년 4월 총선에 적용될 선거법인 만큼 최소 연말까지는 개정이 완료되어야 한다.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에서 최장 90일간 체계·자구 심사를 하는 만큼, 이를 역산할 때 정개특위의 선거법 의결은 거의 막바지 시점이었다. 최장 180일의 상임위 심사기간을 59일 줄임에 따라 연말 본회의 처리가 가능해진 셈이다. 선거제 개혁의 가장 큰 난관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개특위 관문을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은 정당득표율과 의석 배분의 비례성을 높이고 다양한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게 핵심이다. 의원정수는 300명을 유지하면서 지역구는 줄이고 비례대표는 늘렸다. 거대 양당에 유리한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를 비례성을 강화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로 개혁하자는 취지다. 선거연령을 현행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춘 것도 획기적이다. 한국 정치의 병폐인 지역주의와 거대 양당의 대결정치를 끝내기 위해 필수적인 게 선거제 개혁이다.

선거법 개정안이 정개특위를 통과했다고 그대로 법제화되는 건 아니다. 3개월간의 법사위 숙의기간과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여야의 막바지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 게임의 규칙인 선거법은 합의 처리가 최선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당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선거제 개혁 저지 방침을 접고 이제라도 개선안을 마련해 협상에 나서야 한다. 선거법이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는 동안 여야가 별도 정치협상 채널을 가동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정개특위 통과로 추진력을 얻은 선거제 개혁의 열차는 멈춤 없이 달리게 됐다. 선거구 획정 등 총선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연말 본회의에서 선거제 개혁의 대장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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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등 사건에 대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34억여원의 ‘말 3필’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여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뇌물의 출처가 삼성전자이므로 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에 해당하고, 자금의 성격도 범죄수익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삼성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승계작업을 인정했다. “이 부회장이 강압에 못 이겨 돈을 준 것”이라며 말 3필 등에 대한 뇌물·횡령 혐의를 무죄로 보고, 승계작업은 없었다는 2심 재판이 잘못됐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정치권력과의 부도덕한 거래를 통해 재벌 승계작업을 유리하게 이끌려던 자본권력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국민 누구도 법 앞에 평등함을 보여준 판결인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은 2016년 ‘비선실세’ 최순실씨(본명 최서원)의 국정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 등은 최씨 등을 위해 400여억원 상당의 뇌물을 제공하거나 약속한 사실이 드러나 기소됐다. 1심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되면서 구속을 면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심도 파기하고 되돌려보냈다. 공직선거법상 공직자의 뇌물죄는 분리 선고해야 하는데 1·2심 재판부 모두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부정한 청탁은 대가관계가 인정되면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부정한 청탁은 장래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도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고,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인정된다”고 했다. 공직자에 대한 부정한 청탁에 대한 단죄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당연한 판단이다.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 승계작업이 없었다면 수십억원을 그냥 주고, 수백억원의 지원을 약속할 리 없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 부회장의 뇌물액수는 90억원 가깝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파기환송심에서 횡령 액수가 50억원 이상 인정되면 이 부회장은 수감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뇌물로 자신과 기업에 유리하게 국가정책까지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그에 상응하는 법의 단죄는 당연하다. 그런데 삼성 측은 이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움과 성원을 부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저지른 죄에 대해 응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국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법 앞의 진실이다. 이번 판결로 자칫 ‘재벌 봐주기’로 끝날 뻔했던 사건을 바로잡고, 사법정의도 세울 수 있게 됐다. 다시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유착하는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잘 살펴 법과 원칙, 논리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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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속을 맴도는 불안의 하나는 “나는 내셔널리스트인가” 하는 것이다. 의문이 아니라 불안이다. ‘노 저팬’의 일본 보이콧이 그리 걱정되지도 않고, 일본에 대한 정부의 ‘강 대 강’ 대응이 이상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끈기 있게 이어지는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에 감정이 고양되기도 한다.

“애국심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피난처”(새뮤얼 존슨)를 되뇌며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늘 의심하고, 지금도 한·일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미래를 희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낯설다. 정부가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엔 멈칫하기도 한다. 그리 신실하지도 않았지만, 오래전 잊어버렸던 젊은 시절 운동권의 세례가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이런 불안 속을 배회하다 보면 마주하는 질문은 ‘국가’다. 국가의 실체는 있는가.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21세기에도 국가는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이다. 세계화·정보화와 함께 국가의 경계란 그저 정치 영역에서만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은 아닌가.

일본의 실천적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는 “현대 세계에서 국가나 국민이라는 단위로 법적·정치적 결정이 이뤄지는 한 국가, 국민 단위의 정치적인 해결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대담집 <책임에 대하여>)고 말한다. 확연히 불온한 징후를 보이는 일본 내셔널리즘을 우려하며 고뇌를 담아 한 말이다. 이처럼 ‘국가’는 진보적 세계주의자들에겐 ‘아포리아(aporia·난관)’와 같은 문제다.

그의 말처럼 국가라는 것이 구성원들의 생활공동체로 공동의 이해관계를 다루는 단위가 되고 있다면 그 유효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근대국가의 목표가 시민의 자유와 생명·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었듯, 핵심은 구성원의 자유와 민생을 신장할 공동체로서 국가의 역할이 존재하는가의 여부다.

그 점에서 국가나 민족주의의 한계도 명료하다.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들 삶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것을 넘어 국가나 민족을 절대화하거나 인격화할 때 의미는 상실된다. 구성원의 자생적 의식의 발로가 아닌 정치적 수단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몹시 위험하기도 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류를 참화로 몰아넣은 1세기 전이 그러했다.

결국 내셔널리즘적 열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지향하는 내용과 배경, 진로일 것이다. 긍·부정은 여기서 갈린다. 그럼 지금 한국사회의 ‘반일’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한·일 충돌의 직접 도화선은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한·일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모두 매듭짓겠다는 일본은 철저히 그들의 개인청구권에 대한 배상 책임을 부정한다. 소송을 한 징용 피해자들은 지금 큰 심적 부담을 느낀다. 우리 사회는 두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 안보 우려와 함께 정부를 향해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과 일본의 경제 조치를 부당하다고 보고 불매운동에 나선 입장이다. 어느 것이 더 피해자 개인에게 공감하는 것일까. 전자는 ‘안보를 위해 개인 희생은 일정부분 불가피하다’는 두려움은 아닌가.

일본 조치에 대한 응전이란 점에서 보면 강자의 간섭·억압에 반대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성격이 짙다. 지난 수십년간 정치·경제적 성장으로 고양된 자존감이 민족 단위로 표현되는 것이란 풀이도 들린다. 하지만 ‘반일·불매’를 주도하는 20·30대 젊은 세대들을 생각하면 민족 범주로만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앞선 세대들에 비해 훨씬 개인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런 그들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민 것은 ‘공정·정의’라는 그들 정체성과 닿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금 그들의 내셔널리즘을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

세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경제적 신냉전’이라 할 불길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일본 도발은 그 한 부분이다. 그들이 정상국가로 주장하는 ‘메이지·쇼와 시대’ 정체성으로 회귀 조짐을 보일 때 예견된 일이다. 실체는 고작 동아시아에서 미국 대리인으로 작은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는 욕망일 테지만….

사실 걱정할 것은 ‘내셔널리스트인가, 아닌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책임 있는 세대로서 이 살벌한 시대를 살아갈 미래 세대의 국가 비전과 전략을 준비조차 못했다는 것일 게다. 굴욕의 100년 전처럼 앞선 세대들이 친미·친중식 세력주의 생존론만 우길 동안 ‘젊은 그들’은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

앞선 세대들은 성찰해야 한다. 청년들이 열정을 투사할 국가 정체성의 비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공동번영, 행복하고 평등한 시민이 조합되는 어떤 지점 위에 있을 것이다. 그걸 젊은 세대의 ‘새로운 민족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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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산불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지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지구의 허파’인데 우리 관심이 너무 인색하다. 무려 한 달 가까이 산불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언론재단의 기사 검색 사이트인 빅 카인즈로 검색해보니 한 달간 보도 기사량이 59건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3주째로 접어든 8월22일에나 기사로 등장했다. 지난 4월15일 노트르담 성당 화재 때는 그날부터 한 달간 총 기사량이 1081건이었다. 프랑스를 넘어 인류 문화자산의 파괴문제라 그 정도 보도량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견줘 아마존 산불에 대해선 너무 무심하다. 노트르담 화재 기사량의 0.1%에도 못 미친다.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발 빠른 대응이 없다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2014년 제5차 종합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산림파괴를 포함한 토지 이용 변화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총 온실가스의 11%에 달한다. 탄소 흡수원을 더 늘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서울시 면적의 15배, 아마존 열대우림의 15%가량이 한꺼번에 잿더미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을까? 아마존 우림은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27일(현지시간) 브라질 북부 파라주 알타미라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타고 있는 가운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알타미라 _ AFP연합뉴스

브라질은 쇠고기와 닭고기, 대두 생산 세계 2위, 옥수수 생산 세계 3위 국가이자 대두와 육류 제품 세계 최대 수출국이다. 우림의 나무를 없앤 후 소를 방목하거나 가축 사료로 쓸 콩과 옥수수를 생산한다. 식용동물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은 전체 온실가스의 14%에 달한다. 더 많은 식용동물과 사료 생산을 위해 더 많은 숲들이 불태워진다. 나무를 베어 없애는 건 힘들고 시간이 걸리기에 불을 내서 한꺼번에 태워버린다. 

그래서 아마존 우림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지구 산소 공급이나 이산화탄소 흡수 차원을 넘어서더라도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식품 수입국 중 하나로 브라질 농축산물의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아직 브라질로부터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지만 지난해부터 돼지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닭고기 수입량 중 브라질산이 최고로 많다. 브라질로부터의 수입이 한국 전체 농산품 수입의 5% 정도이지만 옥수수와 콩 자급률이 2016년에 각각 0.8%, 7.0%였으니 갈수록 수입이 늘 것이다.

302만마리, 1127만3000마리, 1억7055만1000마리. 무슨 숫자일까? 우리나라에서 2017년에 키웠던 식용 소와 돼지, 닭의 마릿수다. 우리는 한 사람당 고기를 얼마나 먹을까? 2018년 농림축산식품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17년의 경우 소 11.3㎏, 돼지 24.5㎏, 닭 13.3㎏으로 총 49.1㎏이었다. 2000년에는 각각 8.5㎏, 16.5㎏, 6.9㎏으로 총 31.9㎏이었으니, 그사이 53.9%나 증가한 것이다. 2017년 이 세 육류의 자급률이 66.7%였고 쇠고기는 41.0%로 더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2017년 한국인 1인당 총 육류 소비는 58.0㎏, OECD 평균(69.4㎏)보다 낮지만 세계 평균(34.7㎏)보다 월등히 높다. OECD 평균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육류 수입은 갈수록 느는데, 사육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처럼 멀리서 수입해올수록 냉동에도 이동에도 더 많은 에너지가 쓰여서 온실가스 배출이 더 늘어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유럽에선 육류세 도입이 늘고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2016년부터 도입되었고 영국은 도입을 준비 중이다. 독일에서는 육류 제품 판매세 인상 법안이 발의되었다.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국민 건강과 가축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서란다. 우린? 당장은 육류세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지구 환경문제와 우리 삶의 연결성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모두가, 매 끼니, 채식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육식을 피하는 건 어떨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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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는 ‘과수원 집’이란 택호를 여전히 쓴다. 1960~70년대에도 ‘특작’이라 우대받으며 돈 좀 만지는 농사는 과수와 축산이었다. 그래서 과수원 집 아들, 딸들은 주머니에 철전이라도 넣고 군것질 좀 할 수 있는 동네 부자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해살이 과채보다 과수의 경우 첫 수확에 걸리는 시간도 5년 안팎으로 길고, 기술의 숙련도도 축적돼야 하고, 저장시설 등을 갖추는 등 자본이 많이 투하되는 농업이다.

올해 전국 과수농가들이 마음을 잔뜩 졸였다. 아니 2015년부터 긴장 상태다. ‘과수화상병’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사과 주산지인 충주와 제천 등지에서 발생하고 아직도 중부지역에 발생하고 있어서다. 말 그대로 과일나무가 화상을 입듯이 타들어간다는 이 병은 2015년 안성의 배 농가에서 처음 발생하고 올해 177농가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과, 배 등 장미과 식물에 발생하는 병이다. 확산이 빠른 데다 치료법도 없어 치명적이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반경 100m 내외 과수화상병 기주식물은 매몰해야 한다. 게다가 3년간 그 땅에서 기주식물은 심을 수 없다. 그런데 그 기주식물들에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딸기까지 포함된다. 폐원 3년 뒤 그 자리에 묘목을 심어 수확하려면 최소 4~5년이 더 보태지므로 7~8년간 농가의 생계는 정지다.

이는 우리를 경악시켰던 구제역의 살처분 풍경과 매우 흡사하다. 오죽하면 ‘과수 구제역’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구제역은 백신이라도 있지만 과수화상병은 그것마저 없으니 ‘과수 아프리카돼지열병’쯤 될 것이다. 다만 가축들은 비명을 지르고 과일나무들은 비명 없이 땅에 묻힌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과수 농민들에게는 나무를 매몰하는 장면이 살풍경이지만 도시인들에게는 큰 충격을 던져주진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안 먹어도 큰일 안 나는 과일이라 여겨서일지도 모르겠다. ‘디저트’로 분류되는 과일은 굳이 국내산 생과일이 아니어도 대체품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동안 농촌진흥청에서도 예찰과 방제에 대한 농가 교육을 해왔다.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으로 판단해 ‘소독철저’와 ‘신고철저’라는 아주 기본적인 매뉴얼을 수립했지만, 정작 농민들이 궁금한 건 방제약이 효과가 검증됐느냐다. 검증을 하려면 실험을 해야 하고 그건 예산과 인력의 문제다. 그리고 늘 부족한 것이니 핑계로는 영 궁색하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결국 기관의 의지 아닌가. 여하튼 과수화상병 피해규모가 커지자 2015년 첫 발생 이후 올해 들어 예산을 확보하고 약제 실험과 예측모형 및 저항성 품종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부디 꼭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충주에서 발생한 과수화상병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작년 과수화상으로 폐원한 뒤, 다른 과수원을 빌려 사과 농사를 짓던 한 농가의 이동경로를 지목했다. 가급적 내부 인력으로만 깨끗이 소독된 작업도구와 장갑을 쓰면서 일하라 하지만 고된 과수원 일은 이주노동자들의 조직적인 계절노동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곤충과 바람으로도 전염된다는 과수화상병의 다양한 원인들 속에서 남는 것은 자나 깨나 농민들이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뿐이다. 때 이른 추석이라 덜 여문 과일들이라도 쏟아져 나온다. 추석 명절 하나 바라보고 달려왔을 폐원 농민들은 이 장면이 부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디저트여도 농민들에겐 생존 자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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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제기된 의혹과 관련 증거들이 보여주는 심각한 도덕적, 법적 흠결 때문이고, 이러한 흠결을 지닌 장관은 검찰개혁의 기수가 아닌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많은 국민들의 눈에는 명확한데 여권 및 진보 진영 주류의 시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거대한 혼돈에 빠져 있는 듯 보이거나, 진영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마지못해 발언하고 움직이는 듯한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진심으로 적극적인 옹호를 펼치는 이들도 있다. 거악에 맞서기 위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판단이 그 배경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의 흠결이 정도를 넘어섰다고 보는 이들의 시선에선,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기에 한참 모자란 억지 논리로, 그간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들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걸로 보인다. 

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 때인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 수여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조 후보자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이튿날인 28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며 굳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김기남 기자doolee@kyunghyang.com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의 역사에 있어 거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사태의 역사적 의미를 겸허하게 돌아보며 과감하게 구습을 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정치 및 진영 논리에 따라 대충 넘어가느냐에 따라 진보의 미래는 비상할 수도, 몰락할 수도 있다. 

‘조국 논란’은 한국 진보의 역사에서 세 번째 단계의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진보는 첫 단계에서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이로써 민주, 자유, 평등, 정의, 인권의 보편 가치를 일깨웠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민주화 운동 외에는 무능하다는 비판을 딛고 경제를 비롯한 국가 경영의 모든 일에서도 유능할 수 있는 진보임을 확인시켰다. 

그렇다면 다가올 세 번째 단계에서 진보는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까? 진보 세력에 잠재됐던 문제가 응축돼 표출된 이번 사태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개개인에게 내재된 욕망의 섬세한 이해 및 관리 문제다. 

앞의 두 단계에서 진보는 보편 가치를 구현하는 역사를 주로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만들어가는 데 관심을 갖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기에 방점을 두다 보니 개인의 내면 및 의식의 문제는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방치했다. 외부로 주창하는 보편적 가치와 개인의 내밀한 욕망이 서로 충돌할 경우 그 충돌을 인지하는 감각도 약할 뿐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후자 편에 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내면의 욕망을 철저히 이해하고 관리하는 일은 자기 수행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런 얘기를 접하면 문제는 사회 구조에 있을 뿐이고 개인 의식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그런 도학적 군자 같은 얘기는 그만하라며 내치곤 한다. 그러는 사이 갈등과 모순이 쌓이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위선은 진보를 향한 보수 세력의 비판적 구호이기도 한데, 이를 단지 반대 진영의 비난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진보가 두 번째 발전 단계에서 무능하다는 보수의 비판을 딛고 일어섰듯이, 세 번째 단계의 진보는 위선이라는 비판을 뼈저리게 돌아보며 이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개개인의 내면 세계를 존재적 차원에서, 보편 가치의 차원에서 돌아보고 관리하는 힘을 기르는 일에 달려 있다. 이제 정치적 삶의 중심에 구도적인 수행을 놓는 진보가 필요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진보가 이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국민의 신뢰 밖으로 밀려나며 급격히 힘을 잃을 것이다. 이 단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 ‘조국 논란’을, 진보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구도에서 냉철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나라가 잘되려면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가 양 날개로 서야 한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보수 세력의 안착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현 상황에서, 진보에 대한 희망마저 꺾일까 두렵다.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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